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꺼진 불도 다시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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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12-04-29 22:20 조회12,49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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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진홍 동지:

mms://pds21.cafe.daum.net/download.php?grpid=vcW4&fldid=1lNp&dataid=428&fileid=3?dt=20061202220645&disk=28&grpcode=GUMNARA&dncnt=N&.wmv=  





2) 이재오 동지: 

 

1981년 10월 20일, 대검찰청 공안부는 “좌익사건 실록”을 발간했고, 이중 제 12권이 총870쪽에 달하는 ‘남민전사건’에 대한 것이다. 이 책의 804쪽에서 708쪽에는 이재오가 저질렀다는 구체적 범죄가 기록돼 있다. 남민전 기소자 총 73명 중 이재오는 60번이라는 번호로 달고 있고, 그의 암호명은 ‘한국주’였다.


이재오는 버스를 타고 6개의 다이너마이트도 날랐고, 민투위원장으로 삐라도 많이 뿌렸으며, 여러 사람들을 남민전에 가입시켰다. 그가 남민전에 가입시킨 사람은 차례대로 임헌영(임준열, 문학평론가), 임기목(교사), 최석진(경제연구원), 김승균(도서출판), 김정자(여교사), 김제술(책방 영업), 김영철(사원), 장미경(여교사) 등 8명이나 되었다. 이재오남민전에서의 핵심역할을 수행한 것이다.


1977년 1월 초, 남민전 대표 이재문은 민투의 조직을 확장하기 위해 삐라내용을 임헌영에게 작성케 했다. 동년 9월 이재문은 은평구에서 임헌영을 접선하여 ‘경애하는 주석 김일성 동지!’로 시작되는 충성맹세의 초안을 작성케 하여 10월초순에 초안을 교부받았다. 충성맹세는 사건기록 77쪽에 있다. 피고인 이재문 편에 수록돼 있는 것이다. 이재오의 말대로라면 이 충성편지의 내용은 피고인 임헌영 편에 수록돼 있었어야 한다. (사건·기록 77쪽 및 705쪽) 이처럼 임헌영은 남민전 조직의 글쟁이요 대필 참모였다.

  

특히 이재오는 1977년 1월 하순 18:00시경 북아현동 그의 극단 사무실에서 여교사 김정자를 만나 이런 말로 포섭하여 남민전에 가입시켰다.


“이 사회에는 비민주적이고 부조리가 많다. 빈부의 격차가 심하고 언론의 자유가 없으며, 인권과 생존권도 보장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자유가 유보되었다. 이런 것을 시정하기 위해서는 지하 비밀조직에 의해 조직적으로 투쟁해야 한다.”(745쪽)


피고인 번호 60번 이재오는 704쪽에 이렇게 소개돼 있다.


“중앙대학 재학시, 한일회담 반대 데모자로 제적되자 현 정권에 대해 불만을 품고, 1971년 4월 민주투쟁을 위한 명분으로 ‘민주수호청년협의회’를 결성  회장에 취임, 반체제 활동을 하다가 1972년 10월 유신 이후 반공법 위반, 긴급조치 위반 등으로 몇 차례 구속되자 더욱 반정부 의식을 굳게 가져 현 정부는 반드시 타도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이러이러한 범죄를 저질렀다.”(704쪽)  


김일성 충성맹세문을 작성한 사람은 피고인번호 72번 임헌영(본명 임준열)이다.  임헌영은 당시 직업 ‘문학평론가’로 표기돼 있는 글쟁이였으며, 남민전 핵심 73명의 대필자요, 괴수 이재문의 대필 참모다. 김일성에 보낸 편지는 이재문의 명에 따라 임헌영이 작성했고, 임헌영은 이재오가 포섭한 자로 서열상 이재오의 꼬붕이다. 따라서 김일성에 대한 충성편지는 비록 임헌영의 손을 빌었다 하지만 남민전 핵심 73명 모두가 쓴 편지가 되는 것이며 남민전의 이름으로 쓴 것이다. 이재오의 주장대로라면 이재오는 이 충성편지의 내용에도 반대, 보내는 데도 반대했어야 했다. 하지만 이재오는 반대는커녕 남민전의 열렬한 주역으로 활동했다.   


이재오를 거론하는 마당에 이 편지를 이재오가 썼다고 표현한 것은 사실에서 그리 벗어난 것이 아닐 것이다. 허위사실을 주장한 존재는 이재오도 마찬가지다. 충성편지는 오직 글쟁이 임헌영의 손을 빌었을 뿐, 이재문의 착상과 지시로 작성한 것이며 남민전 조직 73명 모두가 작성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헌영은 도구였을 뿐이다. 그러니 이재오의 주장이 얼마나 우스운가?


                                       이재오의 과거

                        1. '남민전' 빨갱이 활동으로 투옥

1979년 11월 남민전(남조선민족해방전선)이 적발됐습니다. 이재오는 이에 관련돼 복역했습니다. 남민전은 집요하고도 악랄한 빨갱이들의 조직이었습니다. 1960년대 인혁당, 통혁당사건 관련자들이 출감 후 노동자⋅농민⋅청년학생 등 각계각층을 규합, 북한과의 연계 속에 결성한 지하공산혁명 조직입니다.

이 사건은 1970년대를 대표하는 간첩사건으로 관련자만도 100여 명이 넘었습니다. 남민전은 안용웅(38) 등이 월북, 김일성에게 사업보고서를 제출하는 등 북한으로부터 구체적 지침을 받아왔고, 남한 내에서 북한이 요구하는 사회주의혁명이 성공할 경우 게양할 붉은 별이 그려진 대형 ‘전선기’(戰線旗)까지 만들었습니다.

심지어 이들은 공작금을 마련하기 위해 혜성대(彗星隊)라는 조직을 만들어 재벌집 강도 등을 계획했습니다. 김정익씨는 자신의 책 ‘수인(囚人)번호 3179’에서 “남민전 조직원들은 교도관 연락책까지 동원, 교도소 내외에 비밀지령을 주고받으며 조직을 강화시킬 정도로 치밀했다”고 적고 있습니다.

“계급적인 적들을 증오하라. 철저히 증오하라. 남조선에서 민중혁명이 일어나면 최우선적으로 해야 될 일은 이 사회의 민족반동세력을 철저하게 죽여 없애야 한다. 그 숫자는 2백만 정도는 될 것이다. 그래야만 혁명을 완전하게 완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시 재판결과 사건의 총 관련자 가운데 1심과 2심에서 39명이 석방됐으며 남민전 사건 연루자들은 지난 1989년까지 모두 만기 특사로 출옥했습니다. 특히 작가 홍세화(洪世和)는 1979년 당시 남민전 사건으로 프랑스에 망명, 공소시효가 만료된 이후인 1999년 한국에 돌아와 현재 한겨레신문 편집국 부국장으로 재직하고 있습니다.

빨갱이들의 집합소라 할 수 있는 민족문제연구소의 현 소장인 임헌영도 남민전 사건에 연루됐으며 이재오와는 동지 사이였습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한일 과거사 청산을 통해 역사를 바로 세운다는 명목 하에 지난 1991년 설립되었고, ‘친일인명사전편찬’ 사업을 벌여왔습니다.

                         2. 1986년 ‘민통련’의 민족통일 위원장

1984년 6월 29일 ‘민중민주운동협의회’(민민협)가 출범했습니다. 민청련 등이 중심이 돼 건설한 단체였습니다. 노동자⋅농민 등 기층 대중운동의 역량 강화에 중점을 두고, 조직도 개인 회원보다는 회원 단체를 중심으로 구성했습니다. 이 조직이 제대로 힘을 발휘하지 못하자 1984년 10월 16일 문익환⋅장기표 등을 중심으로 해 ‘민주통일국민회의’(국민회의)가 따로 조직됐습니다. 국민회의는 명망있는 재야 원로들이 주축이 됐습니다. 이 두 개를 통합한 것이 ‘민통련’입니다. 1985년 3월 29일 서울 장충동 분도회관에서 이 두 개 단체가 통합대회를 갖고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민통련)을 출범시키면서 문익환을 의장으로 선출했습니다. 총 23개 단체가 가입한 매머드급 민주화(좌익) 단체였습니다.

1986년 3월 30일 5만여 명이 모인 광주에서의 투쟁을 시발로, 5월 3일에는 인천에서 5⋅3인천사태를 일으켰고, 그 결과 민통련 간부 대부분이 수배되고 문익환이 구속됐으며 사무실이 폐쇄됐습니다. 주요 간부들이 구속 또는 수배된 상태에서 민통련은 1987년 5월 27일 통일민주당과 민추협을 위시한 제도권 정치세력과 가톨릭⋅개신교⋅언론⋅여성⋅노동자⋅농민 등 모든 민주화운동세력을 총망라한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국본)를 결성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맡았습니다. 이후 6월 항쟁을 통해 6⋅29선언을 이끌어낸 바 있습니다.

                    3. 1989년 ‘전민련’ 조국통일위원장

전민련은 민통련의 후신이며 당시 재야세력의 구심점이었습니다. 1989년 1월에 출범한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은 창립 성명서에서 “자주⋅민주⋅통일을 민중의 힘으로 달성한다는 민통련의 이념을 계승한다”는 성명을 냈습니다. 전민련은 국가보안법 철폐, 주한미군 철수 문제 등을 사회적 이슈로 가시화하는데 구심점 역할을 하면서, 민통련의 명맥을 이은 전국적인 재야 민주화운동단체라는 것을 내세웠습니다.

이부영이 상임의장, 장기표가 사무처장, 김근태가 정책기획실장을 맡아 ‘재야 트로이카’가 됐습니다. 하지만 1990~91년 이부영과 장기표가 신당 추진을 위해 전민련을 떠났고 김근태도 1995년 정계에 입문했습니다. 전민련이 어수선해지자 1992년 대선을 앞두고 1991년 12월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약칭 전국연합)이 결성되면서 해체되었습니다. 현재 ‘뉴라이트전국연합’과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은 명칭이 일맥상통하는 것입니다. 좌익의 가문을 계승한다는 의미이기도 하고, 김정일에 대한 충성약속이기도 한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좌익조직들을 가만히 살펴보면 늘 처음에는 그럴듯한 명분으로 철저하게 위장돼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전국연합’의 결성 목적은 민중생존권 수호, 전 사회적 민주개혁, 민족자주권 쟁취, 한반도의 자주적 통일, 주한미군철수, 국보법 철폐에 있습니다. 본부는 서울 용산구 남영동에 있습니다.

4. 1991년 ‘민중당’ 사무총장

‘민중당(남한조선노동당중부지역당) 사건’은 1992년 10월 안기부(국정원 전신)가 발표한 남로당 사건 이후 최대의 간첩단 사건이었습니다. 62명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됐고 300여명이 수배됐습니다. 이재오 역시 이 사건으로 복역했습니다. 수차례에 걸쳐 10년 반을 복역한 이재오는 지독한 빨갱이로 밖에 볼 수 없습니다.

구속자 중에는 중부지역당 총책 황인오씨를 비롯해 민중당 출신 손병선씨, 전 민중당 공동대표 김낙중씨, 전 민중당 정책위의장 장기표씨 등 재야의 거물들이 총망라됐습니다. 당시 안기부는 북한 노동당 서열 22위인 거물 간첩 이선실이 황씨를 포섭, 서울, 인천 등 전국 24개 주요 도시의 46개 기업과 단체 등 조직원 300여명을 확보해 북한 노동당과 남한 대중을 연결하는 역할을 했다고 밝혔습니다. 사건의 주역 중 황씨와 김낙중⋅손병선씨 등은 무기징역이 선고됐으나 이들 모두 1998년 8⋅15특사로 풀려났습니다.

                               6.3동지회 트리오

6.3동지회는 1964년 6월 3일 서울 주요 대학생들과 시민들 1만여명이 박정희의 한일협정 시도에 반대하는 데모를 주도했던 사람들이 구성한 단체입니다.


2006년 6월 3일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6⋅3동지회 41주년 기념강연회에서 이명박ᐨ이재오ᐨ손학규

                                     이재오의 발언

이재오 의원은 재야출신으로서 1996년 1월 김영삼의 권유로 한나라당 전신인 신한국당에 입당했습니다. 그의 발언은 다음과 같습니다.
“국보법은 수구⋅냉전의 산물이며 이미 사문화돼 있다.”

“내가 국보법으로 감옥에 가서 10년 반 동안 살았는데, 그러니 내 개인적으로야 그 법을 찬성하겠나.”

“이념논쟁은 구시대의 유물이다.”

2004년 5월 3일자 「한나라당 이제부터다!」라는 칼럼에 이재오는 이렇게 썼습니다.

“이념논쟁은 구시대의 유물임을 알아야 합니다 … 존경하는 17대 당선자, 한나라당 동지 여러분, 국가보안법은 이미 사문화되었습니다. 남북이 오고가고, 남북이 함께 공동체를 만들자고 하고, 금품이 오고가는데 국가보안법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국가보안법의 상징은 수구, 냉전시대의 산물이며 권력자의 정권유지를 위한 통치수단으로 이용되어 왔습니다. 그런데 지금 시대에 국가보안법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저는 국가보안법을 현실성 맞게 전면적으로 개정하거나 대체입법을 만든 후 폐지하는 것이 한나라당의 야당적 정체성을 보완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2005년 1월 24일 한겨레신문 기사에서 이재오는 남민전 동지인 홍세화(한겨레신문 기획의원)와의 대담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17대 국회 처음 열릴 때 제가 ‘보안법은 이미 사문화된 법이니 우리가 먼저 전면 폐지, 대체입법을 주장하든지 최고로 양보해도 개정안을 내 정국을 끌고 가자’고 했더니 그때는 의원들 대부분이 동조하는 분위기였어요. 그런데 현 지도부 들어서고 국가보안법의 ‘국’자도 못 고친다, 당의 운명을 건다, 이렇게 나가니까 당내 분위기가 달라졌어요. 제 개인적으로야 전면 폐지가 좋죠. 제가 보안법으로 5번 감옥 가서 10여년을 살았어요 … (중략) … 보안법은 어차피 사문화된 것 아니겠습니까. 한나라당의 시각에서 보면 제가 오늘 상당히 파격적으로 말했네요.”

이재오는 김일성주의 공산혁명조직이었던 남민전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남민전은 ‘진보적 민주주의’, 민투(남민전의 공개조직)는 ‘폭넓은 민주주의 실현’을 중시했다. 어쨌든 민주화 운동의 일환으로 지하운동에 제가 참여할 때는 1948년 건국 자체를 부정한 것이 아니었고 그 뒤 식민지적으로 종속되는 것에 대해 문제 제기하는 측면이 강하지 않았나한다.” 남민전이 공산화 조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라크파병에 대해 이재오는 반대했습니다. 2004년 5월 3일자 「한나라당 이제부터다!」라는 제하에 그는 이런 글을 썼습니다. “우리의 젊은 생명들을 사지로 몰아넣는 일이 결코 한미동맹보다 더 소홀히 취급할 수 있겠습니까? 파병을 재검토해야 합니다.”

사학법을 색깔로 몰고 가는 것에도 그는 반대하면서 박근혜의 발을 걸었습니다.

“한나라당의 기본적인 입장은 건강한 사학은 육성하고 비리사학은 처벌하자는 건데 비리사학을 옹호하는 걸로 비치니까 더 개혁적으로 나가야 합니다. 그런데 사립학교법 말만 나오면 ‘좌경화다, 사학을 지배하려 한다’며 강경파가 몰고 나오고, 지도부가 거기에 동조합니다. 우리 법안은 구체화시키지 않고 남이 내놓은 건 무조건 색깔을 칠해서 반대해서는 안 되죠. 정책과 법안 차이는 협상과 대화를 통해 합의점 찾아야지 여기에 진퇴를 걸고 투쟁할 일은 아니에요. 그런데 목숨 걸고 싸우니까 이 꼴 난 겁니다. 한나라당이 이 점에 대해선 반성해야 해요.”

그는 북한을 적으로 규정하지 않습니다. “한나라당은 북한을 적대시하는 과거의 남북 대결적 정책은 이미 버렸다. 남북간 교류협력이 강화되고, 남북이 공동으로 발전해서 경제공동체를 이루는 것을 대북정책의 기본 방향으로 삼고 있다. 한나라당 127명 의원 중 냉전적 사고를 기반으로 국회에 들어온 사람은 한 명도 없다.”

그는 연방제 통일을 지지합니다. “남북 서로의 체제에 대해 우월성을 놓고 접근하면 통일은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남한과 북한의 대등한 방식의 통일을 말하는 ‘1민족 1국가 2체제 등의 체제연합을 이뤄가는 통일’이라야 한다.”

그는 2000년 10월호 월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대한민국의 역사적 정통성을 기반으로 한 흡수통일의 헌법적 근거인 헌법 제3조의 영토조항을 “적절히 조절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헌법 제3조는 상징적인 조항이지만 이것을 잘못 이해하면 이 조항이 있는 한 북한과의 통일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북한을 우리가 흡수해야 하니까, 북한의 김일성 헌법이 있는 한 북한이 우리를 흡수해야 하듯이 서로 흡수해야 한다는 논리가 성립되죠. 이 조항은 적절히 조절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을 고집하면 북한에도 요구하는 게 불가능하게 되니까요. 북한과 적절한 협의를 거쳐 ‘우리도 너희 체제를 헌법적으로 인정할 테니 너희도 고치라’고 해야죠. 예를 들어 김일성 헌법에서 사적 소유를 인정하지 않는 조항 등을 철폐하라고 요구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북한 헌법 1조 같은 것도 우리 헌법 3조와 비슷하지요.(헌법 제3조와 관련된 발언中)”

그는 또 호주제 폐지도 주장했습니다. 2003년 6월 5일 한나라당 대표경선에 출마한 6명의 주자들을 상대로 한 오마이뉴스의 설문조사에서 호주제 폐지에 대한 찬성입장을 밝힌 바 있습니다.

장기표가 박근혜 공격하고, 남경필이 강재섭 공격하는 이유: 좌익세력의 비상사태

이번 7월 11일, 한나라당 대표를 선출하는 과정에서 전여옥 의원과 강재섭 의원이 이재오 의원의 이념 성향에 대해 문제를 삼았습니다. 그래서인지 인기순위 1위를 달리던 이재오가 탈락하고 3위로 따라가던 강재섭이 대표가 됐습니다. 이재오 측에서는 원내대표 등의 전력을 내세워 이미 이념문제는 세탁이 된지 오래인데, 한솥밥을 먹는 사람들이 이제 와서 이념을 문제 삼을 수 있느냐며 절간에 들어가 몽니(성질 자랑)를 부렸습니다.

남경필이 나서서 강재섭이 이념문제를 가지고 이재오를 공격한 사실을 놓고 한나라당을 수구정당이라 비판했습니다. 이어서 난데없이 장기표라는 사람이 나타나 박근혜가 이명박과 이재오의 밀착 관계를 폭로했다며 있을 수 없는 마타도어라고 공격했습니다. 한나라당에 있는 소위 소장파는 사실상의 주사파들입니다. 남경필, 원희룡, 고진화, 정병국은 우익 사회에서 널리 알려진 빨갱이 세력입니다. 열우당에 가 있어야 할 사람들이 한나라당을 교란시키기 위해 작전상 한나라당에 적을 두고 있는 사람들로 여겨져 왔습니다. 이들의 행동은 극렬하고 반미ᐨ친북적이며, 이념을 떠나 보더라도 아래 위를 모르는 후레인간들입니다. 이들이 이제까지 한나라당에서 최고의원 등 신분에 맞지 않는 직책을 차지해 오다가 이번에는 최고위원 자리에서 밀려났습니다.

이것도 기분이 나쁘겠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건 이들의 이념작전이 초장부터 어긋난 데서 느끼는 분노일 것입니다. 이들의 성향은 주사파 성향이기 때문에 ‘골수 빨갱이’인 이재오의 대표직 탈락에 심한 충격을 받았을 것입니다.

이재오는 전력을 보나, 현재의 발언록을 검증해 보면 그야말로 골수 빨갱입니다. 이재오가 당대표가 됐더라면 차기에 이명박이 대통령 될 가능성이 획기적으로 높았을 것입니다. 이명박을 차기 대통령으로 만드는 것은 뉴라이트의 지상과제입니다. 뉴라이트와 연계한 류근일ᐨ조갑제 등이 자신들의 체신을 내놓을 정도로 이명박을 밀어왔습니다. 따라서 이재오의 탈락은 개인의 탈락이 아니라 좌익 빨갱이들의 전략에 일대 차질을 가져오는 좌익세력 전체에 걸린 비상사태인 것입니다.

그래서 또 다른 새빨간 좌익 장기표가 나타난 것입니다. 장기표는 김대중ᐨ문익환의 국가전복 음모에 총대를 멘 전위대장이었습니다.

역시, 이재오는 이명박 대통령 만들기의 킹 메이커

절간에 가서 몽니부리는 이재오, 강재섭 공격하는 남경필 세력, 박근혜 직접 공격하는 장기표, 이들은 낱개 사건이 아니라 연대된 오케스트라입니다. 빨갱이 대통령 만들기의 킹 메이커역은 이재오에게 맡겨졌었을 것이라는 것이 제 판단입니다. 그게 초장부터 빗나간 것입니다. 이 어찌 비상사태가 아니겠습니까! 앞으로 이명박을 미는 뉴라이트ᐨ류근일ᐨ조갑제 등이 조선과 동아를 이용하여, 좌익들의 비상사태를 어떻게 풀어나가는지 우리는 초조하지만 흥미있게 지켜봐야 할 것입니다.

절간에 간 이재오, “왜 과거를 캤느냐”며 몽니를 부렸습니다. 과거를 캔 것이 아주 잘못된 것이라는 뜻입니다. 과거사 법을 만들고, 과거사위를 설치한 세력이 누구입니까? 남을 공격할 때에는 과거를 캐야 한다고 주장하고, 자기들이 공격받을 때에는 “과거를 캐면 안 된다, 미래로 나가야 한다.” 이렇게 주장합니다.

아니나 다를까 이재오는 하산하자마자 당무를 거부했습니다. 그리고 7월 18일 국회 대표최고위원실에서 열린 한나라당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해 가장 먼저 ‘대선후보 경선’의 공정성에 대한 우려를 나타냈습니다. “특정인이 당권을 오래 잡다 보니 특정 인맥이 중앙당과 시도지부를 장악해 공정한 전당대회를 치를 수 없는 구조적 한계가 있었다. 대선후보 경선을 공정하게 하려면 신뢰할 수 있는 인사들로 공정경선관리위원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박근혜 견제를 겨냥한 발언인 것입니다. 이와 동시에 이명박의 측근인 정두언 의원은 “이미 불공정하게 짜인 대선후보 경선관리 체제를 어떻게 바로잡느냐가 중요하다. 중립적인 인사들로 공정경선관리위원회를 구성해 관리하는 것이 방법이다.” 이렇게 거들었습니다.




3: 김문수 동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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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4.29. 지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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