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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이 타살일 것이라고 분석한 지만원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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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12-05-02 20:06 조회25,42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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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무현이 타살일 것이라고 분석한 지만원의 글
 


최근 대선을 앞두고 노무현을 업고
선거에서 이득을 보려는 움직임들이 감지된다. 노무현에 대한 급조된 사기극을 한층 더 확대재생산하고 싶은 것이다. 빨갱이들이 감옥에 간 김지하를 자살시켜 볼쏘시개를 마련하려고 안간힘을 썼던 사실이 김지하의 입을 통해 폭로됐다, 이처럼 빨갱이들의 생존 수단은 언제나 시체장사였다. 

빨갱이들은 시체를 먹고 사는 집단이다. 시체가 있어야 거기에 소설을 얹는다. 전태일도 이한열도 김주열도 다 빨갱이들이 만들어 낸 시체다. 197-80년대에 빨갱이들이 만들어 낸 어린 노동자 시체는 17구, 이중 전태일이 시효였다. 이런 빨갱이들이 가공해낸 시체들은 아마도 30명 정도는 될 것이다. 빨갱이들의 시체장사는 1946년의 대구폭동, 1947년의 제주 3.1폭동, 4.3폭동, 1980년의 광주폭동, 1987년까지의 민주화 폭동에 이르기까지 군중심리를 선동 자극하는 유일 무이한 불쏘시게였다. 그 중 하나가 노무현이다. 하지만 김지하는 이런 음모에서 탈풀한 사람이다.

노무현은 박연차라는 한 기업인을 키워주면서 공생했다. 이런 일을 대통령, 그것도 천하 제1의 도덕가를 자처하며 남의 조그만 허물을 침소봉대하여 비난해왔던 대통령이 해왔다는 것은 국민적 비웃음거리가 되기에 충분했었다.


그런 도덕가 가문이 또 줄줄이 검찰에서 거짓말들을 했다. 그런데 그 거짓말들이 너무 상식에 어긋나는 것들이기에 또 국민적 조소를 자아냈다. 그가 자살하던 5월23일은 그의 부인이 검찰에 가서 얼굴을 떨구며 젊은 검사들에게 “왜 거짓말을 하시게 되었습니까?” 추궁을 받는 날이었다. 그 다음에는 구속 여부에 대한 “검찰의 선고”(?)가 예약돼 있었다. 그리고 언론들의 마지막 인격살인이 대서특필될 예정이었다.

노무현은 가족들과 그를 도와준 지인들을 살리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5월 23일 아침 시각에서 동결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생각을 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필자는 그가 타살되었다고 보았다. 빨갱이 세계에서 노무현이 차지하는 비중은 100중 90일 것이다. 그런 그가 감옥에 간다면 남한의 빨갱이들이 얼굴을 들지 못한다. 그래서 본인이 자살을 택했다기보다는 남북 빨갱이들이 결단을 내린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죽은 그를 미화시켜 궁지에 몰린 빨갱이 세력을 구출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아래 글은 필자가 그 당시 약 2주의 시간을 들여 우리 회원님들을 위해 분석 한 내용이다.


 

                                         미스터리 분석의 동기


노무현은 대한민국을 마음껏 파괴하고 간 사람이다. 전 사회적으로 그는 자살을 한 것으로 깊이 인식돼 있다. 대한민국을 적대시한 이적행위자가 죽었으면 됐지, 왜 그의 죽음에 대해  그 아까운 시간들을 소비하면서 자료를 찾아내고 정리를 하고 분석을 하는가?


그 첫째 이유는 진실을 추구하는 것이 습관화돼 있는 필자의 생리(DNA) 때문일 것이다. 그 다음 이유는 간첩에 대한 경각심을 갖기 위해서이다. 필자는 이한영을 간첩이 사살했을 것으로 생각한다. 아마 이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것이다. 그 다음은 정몽헌, 그는 대북사업을 비밀을 손에 쥐고 있는 사람으로 검찰 조사에서 추궁을 당하고 입을 열 수밖에 없었던 중대한 고비에 처해 있었던 사람이다. 바로 그 때 그가 자살을 했다고 했다. 아래에 그 이유를 짚어 보았지만 필자는 그가 타살되었다고 생각한다. 비밀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가 없어져 줘야 한다는 것이 타살의 동기라고 생각해 왔다. 이한영과 정몽헌은 비밀유지를 위해 타살됐을 것이라는 것이 필자의 생각인 것이다.


반면 용도폐기용 타살도 있을 것이다. 박헌영은 김일성에 충성했지만 김일성은 장차 그가 김일성 권위에 위험요소로 성장할 것이 두려워하여 간첩죄를 씌워 죽였다. 필자는 혹시 노무현도 이런 용도폐기 범주에 속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상상을 한다. 노무현이야말로 그 어느 누구도 상상할 수 없었던 실질적인 도움을 북한에 주었다. “달라는 대로 다 주어도 남는 장사”라며 5조 이상의 돈을 퍼주었고, 10.4선언을 통해 13조라는 돈을 더 퍼주기로 했고, 연합사 해체 등을 통해 한국의 안보를 허물었고, 사회 좌경화에 박차를 가했다. 그는 북한 측에서 보면 역사 이래 최고의 영웅표창을 받아야 할 사람인 것이다.


그런 공로를 이룩한 그를 만일에 북한이 기술적으로 살해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용도폐기, 좀 더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면 남한 공산혁명에 그가 걸림돌이 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가 수의를 입으면 한국에서 좌익들이 설 자리를 잃어 공산혁명이 불가능해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만일 필자가 짚어본 미스터리 이야기가 어느 정도 개연성을 뒷받침하고 얼마간의 설득력이 있다면 이 땅에서 깊은 생각 없이 친북세력에 가담한 사람들에게 일대 무서운 경종이 될 수 있을 것이며, 역으로 대한민국 수호세력에게는 패망직전의 월남에서처럼 애국자들이 의문사를 당할 수 있다는 데 대한 경보음도 될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미스터리 이야기를 전개해 보고자 한다.               


                       노무현 의문사의 개요


2009년5월23일(토) 새벽 노무현은 사저가 바로 코앞에(200m) 내려다보이는 부엉이바위에서 자살을 한 것으로 보도됐다. 자살인지 타살인지를 철저하게 조사해야 할 경남경찰은 그렇게 하지 않고 처삼촌 벌초하듯 끝내버렸다. 현장을 보존하고 즉시 국과수를 불러 현장검증을 하게하고, 부검을 하게하고, 관련자들과 목격자들을 철저히 수사해야 했지만 웬일인지 1차 브리핑에서 현장검증은 장례식 이후로 미룬다고 발표를 했다. 비가 오면 피가 모두 씻겨 없어지면 현장조사의 완벽성이 결여된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경찰이 더 잘 알 텐데도 이렇게 한 것이다.


노무현은 이병춘 경호과장 단 한 사람과 함께 집을 나섰다. 경호원이 단 1명이라는 데서부터 의문이 생긴다. 나가면서 양복을 입었는지 등산복을 입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확신이 없지만 분명한 것은 등산화를 신고 나갔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동네 등산이지만 양복차림에 등산화라는 것도 어색하다. 경찰은 양복을 입었다했고, 노무현과 마주서서 한동안 대화를 나눴다는 마늘밭 주인 박영철씨는 등산복을 입었다고 했다.


몇 달 동안 노무현의 집을 빽빽하게 둘러쌌던 보도진들도 어쩐 일인지 그날만큼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더구나 그날은 권양숙이 검찰 조사를 받는 날로 알려져 불꽃 튀는 취재가 예상되는 날이었다. 가장 의심되는 것은 이병춘의 횡설수설과 지방경찰의 조사태도였다. 유일한 증인인 이병춘이 조사 때마다 말을 4차례나 바꾸었고, 경찰은 오직 이병춘의 말에만 의존하여 조사결과를 브리핑했으며, 그 브리핑 내용은 이병춘의 행위를 정당화시켜주는 것에 불과해 보였다. 말을 바꿀 때마다 경찰은 이병춘을 마치 데려온 자식이나 되는 것처럼 "경호를 잘못한 데 대한 처벌을 받을까봐 심리적으로 불안해서 이리저리 둘러대는 것에 불과하다"며 이리 묻고 저리 감쌌다.


자살이라는 결론은 5월23일 낮, 컴퓨터 저장됐다는 유서에 자살한다는 내용이 있었다는 사실과 이병춘의 진술, 이 두 가지에 의해 내린 결론이었다. 그런데 이병춘의 말은 횡설수설하여 믿을 수가 없고, 컴퓨터 유서에도 의문점이 많다. 유서의 내용이 노무현답지 않다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들이다. 해탈한 고승이 써준 불경의 냄새가 나며 종이에 쓰지 않고 컴퓨터에 썼다는 것도 마음에 걸린다. 종이에 쓰지 않은 유서는은 신뢰성이 낮다. 컴퓨터 유서라면 집안의 비서관 등 남들이 얼마든지 조작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 자살을 각오하고 나가는 사람이 유서를 저장하자마자 군사적전 하듯이 뛰어나가는 것도 자연스럽지 못한 부분이다. 그래서 자살이라는 결론을 내기에는 그 근거가 매우 취약하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6월5일, 경찰은 노무현이 집에서 나가는 장면을 담았다는 비디오를 공개했다. 그런데 그 비디오에는 시각이 표시되지도 않았고, 뚝뚝 끊기고 영상도 희미한데다 영상들이 이어지지 않고 메뚜기처럼 툭 툭 튀는 것들이었다. 그것이 바로 그날 그 시각에 찍은 것인지도 믿기 어렵다. 경찰의 발표를 그대로 믿는다 해도 의혹이 크다. 그 동영상을 본 일반 아낙네들이 입을 모은다. 동영상을 보니 의문이 풀리고 확실히 납득이 간다는 것이다. 경호관과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는 노무현의 모습이 경호관과 똑같이 활력 넘쳐 보였으며, 도로가에서 풀까지 뽑는 모습은 도저히 죽으러 가는 사람의 모습이라고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자살하러 가는 사람의 발걸음은 천근만근 무거울 텐데 길가의 풀이 보이겠느냐는 것이다.“저 모습은 자살하러 가는 사람의 모습이 아니다”이런 결론들인 것이다.


우리는 2003년 8월4일, 새벽 정몽헌 회장의 죽음을 기억한다. 그는 현대 건물 12층에서 추락해 자살했다고 했다. 그는 박지원, 임동원과 함께 검찰의 추궁을 받고 있었으며 검찰에 모든 걸 밝힐 수밖에 없는 입장이었다. 바로 그 때 그가 5장의 유서를 남기고 죽었다. 그나마 5장 가운데 마지막 한 장은 없어졌다 한다. 유서는 마치 무엇을 베껴 쓴 것처럼 휘갈겨 썼고, 격에 맞지 않는 내용들도 많이 있었다. 예를 들면 김윤규사장에게 눈을 찡긋거리지 말라는 농담까지 있었으며 유분은 금강산에 뿌려주고 금강산 사업은 반드시 계속하라는 말도 들어 있었다.


그가 떨어진 12층 사무실에 있는 창문은 45도 정도 위로 젖히는 창문이고, 가로 90cm, 세로 37cm 였다 한다. 외상도 전혀 없었고, 구두는 신겨 있었다. 몸을 이리저리 비틀어도 빠져나가기 어려운 극히 비좁은 공간으로 재벌회장이 투신자살을 한다는 것은 상상 밖이었다. 죽는 데에도 최소한의 품위는 있는 것이 아닌가. 이 때도 수사는 쉬쉬하며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수사에 대한 심층보도도 별로 없었다. 떨어졌다는 그 나무도 며칠 후 없애버리고 새로운 나무를 심었다 한다. 이에 대해서는 아주 나중에 월간조선이 특정지역 건달 5명이 해치웠을 가능성이 있다는 식으로 의혹을 제기하는 선에서 매듭 되었다. 비밀의 누설을 예방하기 위해 누군가가 해치웠을 것이라는 의견들이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경남경찰의 최종발표


이병춘의 말에 따라 오락가락하던 경찰이 5월27일 사실상의 최종수사결과를 브리핑했다. 이는 조선일보에 의해 아래와 같이 구성되었다.


                             조선일보 기사

         

5.27일 경남지방경찰청 이노구 수사과장이 발표한 중간 수사결과에 따라 노 전 대통령의 당일 행적을 재구성하면 노 전 대통령은 5.23일 오전 5시44분 사저 내에서 유서 파일을 컴퓨터에 최종 저장한 후 "등산 나갈게요"라며 인터폰으로 이 과장을 나오게 했다. 노 전 대통령은 오전 5시47분 사저 앞에서 기다리던 이 과장과 만나 산행에 나섰다. 이 사실은 사저 앞 CCTV를 통해서도 확인됐다. 노 전 대통령은 등산로 입구 부근 마늘밭에서 만난 주민 박모(63)씨에게 "일찍 나왔네. 마늘 작황이 어떻노?"하고 물었고(5:55), 박씨는 "작황이 좋지 않습니다"고 답했다. 등산로를 따라 봉화산에 들어선 노 전 대통령은 봉화산 부엉이바위 위쪽에 있는 불교 사찰인 정토원 쪽으로 올라가다 정토원에서 110m 떨어진 '봉수대 0.37㎞'라는 이정표 부근에서 동행한 이 과장에게 "힘들다. 내려가자"고 말하고 부엉이바위로 향했다. 이때 이 과장은 사저에 있던 신모(38) 경호관에게 "하산하신다"는 무전을 날렸다. 오전 6시10분 부엉이바위에 도착한 노 전 대통령은 "부엉이바위에 요즘도 부엉이가 사나? 담배 있는가?"하고 물었고, 이 과장이 "없습니다. 가져오라 할까요?"하자 "아니 됐어요"라고 말했다. 또 폐쇄된 등산로에 사람이 다니는 흔적을 발견, "폐쇄된 등산로에 사람이 다니는 모양이네"라고 했고, 이 과장은 "그런 모양입니다"고 답했다. 노 전 대통령은 부엉이바위에서 뒤쪽으로 5m 정도 떨어진 묘지 옆 잔디밭에 앉아 "정토원에 선 법사가 계신지 보고 오지"라고 했고, 이 과장이 "모셔올까요"라고 되묻자 "아니, 그냥 확인만 해보라"고 했다. 이 과장은 바로 정토원으로 뛰어갔다. 이 시간은 6시14분으로 추정된다. 이 과장은 부엉이바위에서 247m 떨어진 정토원으로 뛰어가 선 법사가 있는 것을 확인한 뒤 부엉이바위로 뛰어 되돌아갔다. 노 전 대통령이 없는 것을 확인한 이 과장은 휴대전화로 사저 경호동에 있던 신 경호관에게 "심부름 다녀온 사이 대통령님이 보이지 않는다. 나와서 내려오시는지 확인 좀 하라"고 했다. 이 과장이 휴대전화로 전화한 시각은 오전 6시17분이다. 다급해진 이 과장은 마애불 부근 등지로 노 전 대통령을 찾아다녔으며, 사자바위까지 갔다 돌아오는 길에 정토원 요사채 앞에서 선 법사를 만났다. 선 법사가 "무슨 일이지? VIP(노 전 대통령) 오셨어?"라고 묻자 "아무것도 아닙니다"고 대답하고는 뛰어 부엉이바위로 되돌아갔다.당시 인근 3초소에 근무하던 전경은 이 과장이 노 전 대통령과 함께 부엉이바위에 온 장면을 목격했다(6:10-14분). 전경은 이 사실을 상부에 보고하느라 잠시 시선을 돌렸다. 노 전 대통령은 바로 이때 투신한 것으로 추정된다.”


                6월5일의 최종 수사결과 발표의 비논리성


경찰은 52초 분량의 cctv를 공개했다. 그런데 cctv에는 날짜와 시각이 표시돼 있지 않아  기자들에 의해 의혹이 제기됐지만 국민을 향한 공개적인 해명은 없었던 것으로 안다. 화면은 5월22일, 노무현-권양숙-노건호 3인이 정원을 둘러보는 장면, 5:47분 경호관과 인사 나누고 출발하면서 길가에 쪼그려 앉아 풀을 뽑는 장면, 흰 차가 추락한 노무현을 태우고 가는 모습으로 구성됐다.


노무현 집으로부터 등산로 입구 못미처 우측에 있는 박영철씨의 마늘밭까지는 평평한 마을도로이며 250m정도 돼 보인다. 집에서 등산로 입구가지가 271m라 한다. 아고라 팀들이 자체 시민수사팀을 만들어 답사한 바에 의하면 집에서 등산로 입구까지는 보통의 도보속도로 1-2분 걸린다 한다. 노무현과 박영철씨가 대화를 시작한 시각은 5:55분, 그러니까 1-2분에 걷는 거리를 8분에 걸어왔다는 뜻이 된다. 노무현은 오랫동안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다가 그날 처음으로 나갔다 하니 보행속도가 빠르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대화시간을 1분 정도를 잡는다면 노무현이 마늘밭을 출발한 시각은 5:56분이 될 것이다.  경찰이 발표한 바에 의하면 여기에서부터 그날 노무현이 걸었던 거리는 382m 정도가 된다. 마늘밭에서 등산로 입구까지는 20m 정도 된다. 등산로 입구에서 산등성이에 있는 T자형 3거리까지의 거리는 208m, 이 길은 사진에서 보듯이 경사 40도 동도의 매우 가파른 계단길인 모양이다. 능선 3거리 Junction에서 우측으로 137m를 가면 정토원이 있다. 이 길 역시 가파른 계단길이다. 3거리 Junction에서 좌측으로 목조다리를 건너 80m가면 부엉이바위가 있다.


노무현은 이 3거리 3거리 Junction에서 정토원 쪽으로 37m를 가다가 다리가 아프다며 되돌아와 부엉이 바위에 도착했는데 도착시각이 6:10분이라 한다. 결론적으로 노무현이 5:56분에 마늘밭 주인과 헤어져 부엉이바위에 도착한 6:10분까지 14분 동안에 걸은 총 거리는 20m+208m+37m+37m+80m=362m가 되는 것이다. 가파른 산, 계단으로 오르내리는 등산로 362m의 거리를 여러 달에 걸친 칩거와 고민으로 허약해졌을 몸으로 단 14분 만에 주파한다는 것은 공수특전대 용사들에게나 어울리는 이야기처럼 들린다.


더구나 노무현은 통상 1-2분 걸리는 등산로입구까지의 평지 250m를 8분에 걸쳐 걸었다. 그날 노무현의 건강은 이 정도로 약화돼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느릿느릿 걷던 사람이 가파른 등산길에 접하자마자 공수부대 요원처럼 날라 다녔다는 것이 쉽게 이해가지 않는다. 더구나 뉴스에는 부엉이 바위를 감시하는 3초소 초병이 노무현과 경호관이 부엉이 바위에 서 있는 것을 보았으며, 본 시각은 6:20분이라 한다. 아마도 이는 상황일지에 적혀있는 자료일 것이다. 노무현의 건강으로 보나, 가파른 계단식 등산로의 이동 거리 362m로 보나, 6:10분에  부엉이바위에 도착했다는 것은 신뢰성이 아주 낮아 보인다.    


노무현이 입은 옷은 콤비 양복, 상의는 회색이었으며 여기에 등산화를 신었다 한다. 경찰은 5월24일 최초 브리핑에서 현장검증은 장례식 이후로 미룬다고 했다. 그러나 그 다음 날 추락지점에는 혈흔이 안 보인다는 보도들이 잇따랐다. 그 후 경찰이 여러 날에 걸쳐 현장조사를 했고, 그 결과는 이렇게 발표됐다. [현장 나뭇잎에서 혈흔 2점, 이정표에서 1점, 옷과 등산화에서 31점 총 34점이 발견됐고 양복의 목 부분이 ㄴ자로 찢겨져 있었다. 부엉이 바위의 높이는 40.4m. 노무현의 투신시각은 6:14-17분, 이병춘 경호관이 추락한 노무현을 발견한 시각은 6:45분]. 약 30분 정도 누워있었던 그 자리에는 피가 많이 고였을 터인데 며칠에 걸쳐 어렵게 찾아낸 혈흔이 불과 2점(콩알사이즈?)이라니 이것도 이해가 가지 않는 대목이다.


6:17-45분(28분) 사이 이경호관은 신경호관과 여러 번 통화를 했다는데 뉴스 보도내용과 경찰의 최후 발표가 맞지 않는다. 뉴스 보도에는 6차례의 핸드폰 전화와 3차례의 무선교신(무전기)이 있었고, 무전교신 내용에는“놓쳤다, 보이지 않는다”는 통화내용이 있었고, 이 통화내용 때문에 경찰은 추락 당시 이병춘이 노무현과 함께 있지 않았다는 단서를 잡아냈고,  그래서 이병춘을 다시 조사했다고 했다. 첫 조사에서 이병춘은 이렇게 진술했다 “6:20분에 부엉이 바위에 도착했고, 25분간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저기 사람이 가네하면서 이병춘의 시선을 다른 데로 돌리게 한 후 6:45분에 뛰어내렸다.”그리고 그 다음날 경찰은 이병춘의 이 거짓(?) 진술을 액면 그대로 믿고 발표를 했었다.       


그런데 6월5일의 최종 발표에는 무전기 사용 1회, 핸드폰 사용 3회인데 통화내용은 모두 지워져 있다고 발표했다. 무전기는 6:45분에 단 한번 사용됐는데 “사고가 났으니 차  대라”는 것이었다고 했다. 그렇다면 “놓쳤다 보이지 않는다”는 무전교신은 무엇이었다는 것인지 이해가지 않는다. 최종발표에는 이병춘과 신경호원 아시의 통화가 아래와 같이 정리돼 있다.


6:17분 핸드폰 통화: “심부름 다녀온 사이 보이지 않는다. 나와서 내려오시는지 확인해라”

6:23분 핸드폰 통화: “찾았나. 안 보이나?”

6:30분 핸드폰 통화: “저수지나 연못 가에 찾아봐라”“정토원으로 가 보시죠” “가봤더니 없더라”

6:45분 무전통화: “사고 발생했으니 차대라”


통화내용은 지워져 있다니까 위의 정리내용은 이병춘과 신경호관의 진술에 의해 작성됐을 것이다. 여기에서 의혹이 가는 것이 많이 있다. 두 경호관이 빠르고 간편한 무전기를 사용하지 않고 느리고 복잡한 핸드폰을 주로 사용했다는 점이다. 경호의 기본 도구는 무전기다. 귀에 리시버를 꽂고 있기 때문에 무전기의 버튼만 누르면 리시버로 들으면서 금방 상대와 대화할 수 있다. 그리고 무전기는 경호용 최신 장비이며 공용 목적으로 사용되도록 규정돼 있다. 그런데 핸드폰을 사용하려면 뚜껑을 열고 단축키를 누르고 신호 가기를 한참 기다리고 귀에 꽂은 리시버를 빼야 한다. 이렇게 느리고 귀찮은 절차를 거쳐야 하는 핸드폰을 그 다급한 시각에 구태여 사용했던 목적이 무엇일까? 거기에 더해 통화내용도 모두 지워져 있다니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이 대목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고 이해하기 어려운 것만큼 의혹도 짙은 것이다. 


더욱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이병춘이 6:17분 최초 노무현을 놓쳤다는 바로 그 시각에, 사저 근무요원들 전체에 비상을 걸지 않고 그것도 핸드폰으로 신비서관에게만 나오라 했는가에 대한 것이다. 필자의 짐작으로는 “놓쳤다 보이지 않는다”는 말은 6:17분, 다급했을 때의 통화에서 있었던 말로 보인다. 놓쳤다”는 말은 누구를 추적했을 때 사용하는 말이지, 감히 ‘각하’에 대해 쓰기에는 심히 불경한 용어다. 


더더욱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이병춘이 피투성이로 쓰러져 있는 노무현을 느슨하게 포장된 쌀자루처럼 어깨 위에 메고 바위 밑으로부터 녹음이 우거진 비탈 산을 타고 평평한 지점에까지 66m를 걸어왔다는 사실과, 업고 오는 도중 사고지점으로부터 11m 되는 지점에 상의가 벗겨져 땅에 떨어져 있었고 등산화 한 짝도 벗겨져 있었다는 몇 개의 사실이다. 어깨에 들러 업고 오는데 상의가 저절로 벗어졌다는 것이다. 여러 사람들에게 물어봤지만 말이 된다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등산화가 벗겨진 것도 이상한 일이다. 그리고 경찰은 이동춘의 옷에 혈흔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도 발표하지 않았다.


노무현이 죽으면 유일한 동행자인 이병춘이 의심을 받는 것은 상식이다. 10년 이상 된 경력 높은 경호과장이라면 노무현이 시야에서 사라진 순간 곧바로 여러 사람들에게 비상을 걸어야 쉽게 결백을 증명할 수 있었다. 사저에 비상을 건 다음 119와 경찰을 불러야 했다. 이는 일반인들에게도 상식이다. 추락한 부상자는 119에 의한 응급조치 대상이지 경호관이 가슴을 눌러댈 일은 아니며, 더구나 물건처럼 둘러메고 다닐 대상은 아니다. 이는 아마도 고교생까지도 아는 상식일 것이다. 그런데 경호과장이라는 사람이 추락해 있는‘각하’를 쌀자루처럼 둘러메고 녹음의 산속을 뚫고 내려와 차에 태워 병원으로 갔다는 것은 이해할 수도 없고, 용사할 수도 없는 일이다. 가장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이런 것을 초기에 알았던 경찰이 부검도 하지 않고 국과수도 부르지 않고 시체부터 태웠다는 사실이다. 


더구나 경찰은 이병춘의 둘러내는 거짓말들을 그때그때 중계방송을 했다. 처음에는 투신할 때 그가 대통령과 함께 있었다고 했다. 그 다음에는 바위 밑으로 내려가서 등산객을 다른 데로 보내고 오니 사라졌다고 했다. 그 다음에는 심부름을 간 사이에 사라졌다고 했다. 경호관을 보았다는 사람은 동네 사람일 것이다. 그 사람을 찾아 어느 이경호관과 신경호관 두 사람 중 누구를 보았는지 확인해야 했지만 그렇게 했다는 뉴스는 없다.


노무현은 한번에 팍 하고 떨어진 것이 아니라 2차 3차 공중을 낙하하면서 바위를 때렸던 것으로 보인다. 마늘밭과 고추밭은 모두 등산로 입구 근처에 이웃해 있다. 고추밭은 더 높고 추락지점에서 가까우며, 마늘 밭은 지대가 상대적으로 낮고 조금 더 멀리 있다 한다. 그 때는 박영철씨와 고추밭주인 이기우씨 부부도 일을 하고 있었다 한다. 소리가 더 잘 들리는 고추밭 주인(이기우)은 '툭' '탁' '쿵' 3번의 소리를 들었다 했고, 그보다 소리가 덜 들리는 마늘밭 주인은 “쿵 쿵” 두 번의 소리를 크게 들었다고 했다. 정토원 관계자는 노무현의 뒷모습을 정토원에서 보았다고 했고, 초기 뉴스들은 노무현이 부모의 위패가 모셔진 법당에 가서 인사를 고하고 마음을 정리했다고들 했다.


               뉴스들에 나타난 내용들과 인터넷 의혹들              


1. 암벽에서 자살을 하려면 무의식적으로 먼 곳을 보면서 최대한 멀리 뛰어 내린다고 한다. 그렇게 뛰어내리면 바위에 닿는 순간 뼈가 부서지면서 장기가 파열된다고 한다. 하지만 노무현의 장기는 파열되지 않았고, 다리 대신 양팔의 부러졌고, 두개골 골절 등 두부의 손상이 사망원인이었다 한다. 전면은 비교적 깨끗하고 척추부분에 가해진 충격이 컸고, 머리도 뒷부분이 많이 타격을 입었다고 한다. 이에 대한 기사들을 뽑아 보았다. 


                            한국경제


봉하마을 주민인 이모씨(60)와 김모씨(58) 부부는 5월 27일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에서 "노 전 대통령의 사저에서 불과 5분 거리에 있는 고추밭에서 일하던 중 '툭' '탁' '쿵' 하는 소리가 연이어 들려왔다"며 "그때는 정확히 어느 지점에서 무엇이 떨어진지 알 수 없었지만 새벽이라 소리는 굉장히 크게 들렸다"고 당시 상황을 기억했다. 이씨 부부는 사건 발생 당일 오전 5시50분께 노 전 대통령이 투신한 부엉이 바위에서 100여m 떨어진 곳에 있는 고추밭에서 밭일을 하기 위해 집을 나섰다. 김씨는 "남편은 농약을 치고, 나는 김을 매고 있는데 아주 가까운 곳에서 큰 소리가 들렸다"고 말했다. 남편 이씨는 "두 번 정도 제법 큰 물체가 땅바닥에 부딪치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며 "하지만 비명소리는 듣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또 이 신문에 따르면 이씨 부부는 아침 식사를 위해 집으로 돌아가던 중 경호관이 투신한 노 전 대통령을 부둥켜안고 있는 장면을 목격했다. 김씨는 "부엉이 바위 밑에서 한 남자가 또 다른 사람을 일으켜 세우려고 하는지 두 손으로 안고 있었다"며 "그때는 그들이 대통령과 경호관일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경찰이 이날 3명의 경호관이 부엉이 바위 밑에서 노 전 대통령 수색작업을 했다는 발표와는 다른 대목이다. 이들 부부는 "집에서 나와 밭일을 시작하는 데 걸린 시간이 길게 잡아도 10분 이상 걸리지 않았다"며 노 전 대통령 투신 시점을 '6시10분에서 20분' 이내로 추정했다. 또 경호관이 노 전 대통령을 안고 있는 장면을 목격한 시간은 6시30분 전이었을 것으로 기억해냈다. 밭일을 끝내고 귀가한 시간이 6시30분 전이었다는 주장이다.(기사 끝)


시각도 제각각이지만 충격은 2-3차례 크게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그렇다면 멀리 뛰어내린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이는 두 팔로 1차 충격을 막으려 하다가 몸이 다시 떠서 제2차 3차의 충격을 발생시킨 것으로 보인다. 양팔이 부러진 것은 1차 충격을 막으려다 부러진 것으로 해석된다. 암벽에서 구른 사람이 왜 하필 머리 정상부분에 11cm 정도의 찢어진 상처를 남겼을까?

                                                                                                                  조선일보


“5월 23일 오전 6시50분쯤 추락” 머리에 큰 상처, 김해 세영병원으로 이송, 심폐소생술을 받은 후 즉시 부산대 양산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오전 9시30분 숨졌다. 문재인은 5시45분께 사저에서 나와 봉화산에서 등산을 하던 중 오전 6시40분께 바위로 뛰어내리신 것으로 보인다.  8시13분께 병원에 도착했으나 상태가 위중해 9시30분께 서거하셨다"


백승완 부산대병원장은 노 전 대통령의 직접 사인은 머리 손상이라고 밝혔다. 백 병원장은 이날 오전 11시 브리핑을 통해 "노 전 대통령은 23일 오전 8시 23분쯤 인공호흡을 하며 응급실로 이송됐으나 도착 당시 의식이 없었고 자가호흡도 없었다. 두정부에 11㎝ 정도의 열상이 발견됐으며 심폐소생술을 실시했지만 회복이 안돼 오전 9시30분 중단했다" 백 병원장은 "뇌좌상이 확인됐는데 두부 손상이 직접 사인으로 확인됐다"고 말하고 "이외에도 늑골 골절, 골반 등 전신에 다발성 골절이 확인됐다"고 덧붙였다.(기사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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