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 비친 임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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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12-06-08 15:45 조회13,771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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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 비친 임수경
“민족과 하나”[김흥곤, 강현만, 평양 금성청년출판사, 주체92(2003)]의 p.441~443에는 임수경에 대해 아래와 같이 기록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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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통일 3대헌장이 마련되던 나날에
통일 열망이 전례 없이 고조된 때인 주체 78(1989)년 6월 30일 오후 1시 30분에 또 하나의 사변적인 일이 벌어졌다. 바로 그 시각 제 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에 참가하기 위하여 평양비행장에 첫발을 내짚은 남조선 《전대협》대표 림수경(당시 서울 외국어대학 학생, 21살)이 평양 도착성명을 온 세상에 공포하였던 것이다.
죽어도 분렬을 안고 죽으려는 극악한 분렬주의자들인 괴뢰들의 방해책동으로, 4시간이면 올 수 있는 길을 3국을 통하여 단신으로 지구를 한 바퀴나 에돌면서 끝끝내 남녘 100만 학도들의 통일념원을 안고 온, 림수경을 얼싸안고 수십만 평양시민들, 아니 온 북녘이 울고 웃었다.
반제, 련대성, 평화와 친선의 봉화가 타오른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개막의 날 보무당당히 입장하는 축전참가대표들의 대오 속에 《전대협》기발을 앞세우고 림수경 학생이 단신으로 5월 1일 경기장에 들어서자 10여만 군중이 일시에 환성을 터뜨리며 그를 열렬히 환영하였다.
림수경 학생은 주석단 앞에 이르러 조국통일의 구성이시며 민족의 태양이신 위대한 수령님과 경애하는 김정일 장군님을 우러러, 깊이 허리 굽혀 인사를 올리였다. 그것은 남녘 100만 청년학생들이 올리는 큰절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과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그의 의젓한 모습에 대견한 미소를 보내시며 몸소 자리에서 일어서시여 크게 손을 흔들어 주시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그후 축전에 참가한 대표들을 마련한 연회장에 몸소 나오시여 오래동안 헤여졌던 손녀를 만나신 듯 림수경을 뜨겁게 포옹해주시고 나서 정말 장한 일을 하였다고, 민족의 장한 딸이라고 높이 치하하시면서 《통일의 꽃》이라고 다정히 불러주시였다.
림수경은 평양으로 올 때는 분렬의 장벽을 멀리 에돌아왔지만 돌아갈 때는 문규현신부와 함께 죽음을 무릅쓰고 판문점을 거쳐 분렬장벽에 파렬구를 내면서 서울로 나갔다. (그때 남조선의 《천주교 정의구현전구사제단》 신부 200여명이 문규현 신부를 평양으로 파견했었다)
《사랑하는 북녘동포들! 안녕히 계십시오. 우리 〈전대협〉은 조국통일투쟁에서 굴하지 않을 것입니다. 믿어주세요. 다시 만날 때까지 안녕히.》
림수경의 이 목소리는 오늘도 판문점 하늘가에서 메아리치고 있다. 남조선괴뢰들은 조국통일을 위해 장한 일을 한 림수경 학생이 군사분계선을 넘어서기 바쁘게 쇠고랑을 채우고 《보안법》에 걸어 그에게 10년 징역형을 들씌웠다.
그러나 남조선에서 날로 높아가는 민족대단결에 바탕을 둔 련북통일 기운을 결코 억누를 수 없었다. 이렇게 1980년대는 어버이수령님의 헌신과 로고, 현명한 령도로 조국통일의 3대헌장의 하나인 고려민주련방공화국 창립방안이 제시된 년대, 전민족적인 대화와 협상의 문이 열리기 시작한 년대, 북과 남, 해외의 3자 련대실현 조건이 완전히 성숙된 년대로 조국통일운동사에서 빛나는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2012.6.8.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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