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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과 5.18에 대한 탈북상좌의 법정 증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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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12-06-23 14:11 조회20,99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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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증인 김유송 신문사항

 

1. 증인께서는 1958년 X월 Y일 함경북도 회령군 WWW읍에서 출생했고, 2001년 1월 11일, 북한을 탈출하여 중국에 은신하다가 2001년 3월 17일, 국제 선박을 타고 대련항을 출발하여 인천항으로 입국하여 대한민국에 자수한 후, ‘하나원’에서 동년 8월 20일까지 약 5개월 이상 대한민국 적응을 위한 교육을 받으셨지요?

2. 증인께서는 1974년 1월 8일, 북한 인민군 제60저격여단 전투원으로 입대하였는데 이 60저격여단은 1968년 1월 28일, 이른바 김신조 소대를 청와대에 침투시킨 악명 높은 124군 부대를 위장한 부대명칭이지요?  

3. 1968년 청와대 침투 후, UN과 국제사회의 항의에 부닥치자 군당국은 이 부대를 1976년에 기계화군단인 3군단에 형식적으로 편입시키고, 3군단장 옥치선에게는 이 부대에 보급물자만 공급케 하고, 모든 군사작전 지휘권한은 정찰국장 오룡방에 전속되게 하였지요? 

4. 이 60저격여단의 주 임무는 남한의 후방에 깊숙이 침투하여 한국 내에 있는 고첩들과 접선하여 연락임무를 담당하는 것이었으며, 당시에 북한이 가장 관심을 갖던 대상은 지대공 미사일, 지대지 미사일 즉 나이키, 호크, 어네스트죤 등에 대한 것이었으며, 각 기지에 대한 약도, 사진은 물론 각 시설에 대한 강도를 알기 위해 콘크리트 조각을 입수하여 이를 비닐봉지에 넣어 보내오면 이를 분석 처리하는 임무 등을 수행하였지요?  

5. 증인께서는 탈북하기 전에 북한군 상좌였으며, 북한군 총참모부 즉 남한의 합참에 해당하는 최고급 사령부 소속의 ‘국제연합무역회사’ 함경북도 무역관리소장으로 있었지요?

6. 북한에서의 외화벌이 회사는 오직 당과 군에서만 운영하고 있는데 증인께서는 함경북도에 위치한 무역회사의 총책으로 러시아, 중국, 일본을 상대로 외화벌이를 하였지요? 

7. 증인께서는 최고급 차량, 전자제품, 가전제품 등을 수입하면서 그 중 일부를 군의 최정상급 장군들을 위시하여 이른바 힘을 쓰는 당간부들에게 제공함으로써 인기 있는 존재가 되었고, 특유의 친화력으로 수많은 고위급 간부들과 자주 만나 친분을 쌓으면서 북한의 고급정보를 많이 알게 되었지요?  

8. 증인이 알고 지냈던 고위급 중에는 북한군수동원총국장인 차수(대장보다 높은) 이종산, 현 인민무력부장 김용춘 차수, 인민군총참모부 부총참모장 상장 안피득 등도 있었으며, 이러한 기회와 경력을 가진 탈북자는 그리 많을 수가 없지요?  

9. 1998년 9월부터 250명 정도의 대령으로부터 장군에 이르기까지 고위급 간부들이 소리 없이 숙청되고 처형되는 사건이 터졌고, 여기에 증인과 친한 간부들은 물론 증인까지 연루되어 감옥에 갇히게 되었으며 1999년 9월 13일 증인역시 ‘정부 전복 음모’로 체포돼 9일간 감옥 쇠창살에 매달려 고문을 받고, 15년 형을 받았다가 ‘힘 있는 사람’의 도움으로 6개월 만에 나왔고 이어 탈북하셨지요? (증1, 3쪽 ‘라’) 

10. 이 250명 정도가 숙청된 이유는 이들이 남한의 간첩이라는 것이었고, 이들 중에는 증인과 친했던 교도훈련 지도총국장 임태영 상장(우리의 중장), 총참모부 2전투 훈련국장 우명훈 중장(우리의 소장), 64저격여단 이상일 소장 등이 포함돼 있었으며, 증인은 이들에게 자금 등을 지원했다는 혐의로 사건에 포함됐다 하셨지요?(증1, 2쪽 ‘사’)  

11. 증인은 우리의 국정원에 해당하는 보위사령부 함북 책임지도원 김선우 상장, 김상욱 고려호텔 책임지도원 등 여러 사람에게 이유를 물었고, 이들은 모두 “남한 정권이 북한 사람을 고용했던 자료를 북조선에 넘겨줘서 잡은 것”이라고 말해주었는데 이는 곧 “김대중 정부가 북조선에서 활약하는 남조선 간첩들에 대한 파일을 넘겨줘서 일망타진하게 됐다”는 뜻이지요? (증1,3쪽 ‘라’)  

12. 증인과 가까웠던 임태영과 우명훈을 조사했다는 그 조사관이 증인께 들려준 말은 

“1968년 1.21 청와대 침투사건에 투입된 조원은 33명이다. ‘방차대’(후미담당) 요원이 3명이었는데 이들은 아파트 옥상에 있다 다 잡혔다. 조장과 림태영과 우명훈이 잡힌 것이다. 남조선 보안사가 이들 3명에 귀순하기를 회유했다. 가장 먼저 조장에게 귀순하기를 강요했더니 그 조장은 죽어도 못한다고 버티었다. 그래서 날이 시퍼런 작두를 가져와 이 작두에 목이 잘려 죽겠느냐고 했더니 스스로 작두에 목을 얹었다. 그의 목과 몸은 순식간에 두 동강이 나 작두의 양쪽에서 한동안 뛰었다. 이를 본 두 사람은 기가 질려 얼굴이 노래졌다. 그리고 귀순 및 충성서약서를 쓰고 지장을 찍었다. 남조선 정보기관은 최고의 자리로 출세해서 남조선에 충성하라며 이들을 북으로 보냈다. 임태영과 우명훈이를 처형시키기는 했지만 사실 안됐더라, 작두에 목이 잘려 피가 솟구치고 머리와 몸이 펄펄 튀는 것을 보고 누군들 항복을 하지 않을 수 있갔는가?” 이런 내용이었고, 이 내용은 2012년 2월 5일자 중앙선데이 신문에 게재됐지요?(증4의 3쪽 ‘다’ ‘라’) 

13. 증인께서 이러한 중요한 사실들을 중앙일보 기자들에게 알려주자, 중앙일보는 별도의 심층 취재를 통해 2011.12.25자 중앙일보에는 4쪽 분량의, 2012.2.5. 중앙선데이에는 8쪽 분량의 기사를 냈지요?  

14. 우리나라에서는 김신조 부대가 31명이었고, 김신조가 조장인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증인께서는 침투조는 33명이고, 조장은 김종웅 대위이고, 그 아래로 상위2명, 중위2명 그리고 나머지 28명은 김신조를 포함해 모두 소위였다고 증언했지요?  

15. 증인은 사살된 시체 중에 목 잘린 시체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고, 이를 알지 못하는 기자들은 독자적으로 국가기록원 등으로부터 목 잘린 시체의 사진을 찾아냈지요?(증2, 2쪽 ‘다’, 증4, 2쪽 ‘가’)  

16. 목 잘린 시체가 중요한 이유는 1998년 9월부터 북한에서 남한의 간첩이라는 죄목으로 처형된 250명 중 임태영이라는 3성장군과 우명훈이라는 2성장군이 이 33명중에서 살아간 사람이고, 남한에 충성하기로 한 사람이었다는 사실 때문이지요?  

17. 북한에서는 임태영과 우명훈이 최고의 명예인 공화국 훈장을 받았고, 33명 1개조가 1968년 청와대를 습격했다가 김신조의 배신으로 다 전사하고 오직 두 사람만 영웅적으로 살아 돌아왔다는 무용담이, 증인이 근무있던 특수부태의 교재에 실려 있고, 그래서 그 부대원들은 이 두 사람을 영웅으로 알고 있다 하셨지요?  

18. 중앙일보 기자들은 증인 이외에 같은 특수부대에 있었던 가명 최호준(56)이라는 탈북자를 찾아냈는데 그 분은 부산에 살고 있으며, 기자들은 그를 서울로 초대하여 증인과 함께 통성명을 하게했고, 증인과 함께 취재에 응하도록 했지요? 

19. 부산에 사는 가명 최호준씨도 ‘33명’, ‘임태영’, ‘우명훈’이라는 존재에 대해 증인이 알고 있는 내용을 그대로 진술했고(증4, 1쪽, ‘나’) 이에 더해 취재팀은 당시 보안사 김신조 사건 수사책임자로 있던 백동림씨를 찾아냈고, 백동림씨도 “기억하기로는 33명이다”(증4, 2쪽 ‘마’) 이렇게 증언한 것이 기사에 실렸지요?  

20. 이로써 중앙일보 취재팀은 증인이 제공하는 정보에 대해 신뢰를 했고, 국민이 모르고 있던 새로운 정보를 개발하게 되었고, 이는 조의 말단요원에 불과했던 김신조가 가지고 있던 사실과 북한 핵심부에서 가지고 있던 정보가 상당히 다르다는 것을 입증하게 되었으며, 증인과 부산에 사는 가명 최호준씨가 다 같이 알고 있는 임태영과 우명훈의 존재를 김신조씨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했지요?  

21. 증인이 고급정보를 많이 알고 있다는 정부가 청와대에까지 전해저서인지는 몰라도 증인께서 하나원에서 교육을 받고 있던 기간인 6월 어느 날, 하나원 원장인 김중태가 증인에게 와서 “청와대 홍보수석 등 40여 명이 증인과의 인터뷰를 원하니 응하겠느냐며 의사를 타진해 왔지요? 

22. 증인께서는 이에 흔쾌히 응하겠다 하였고, 이어서 청와대 홍보수석 등 40여 명과 90분 동안 인터뷰를 하게 되었지요? 

23. 가장 기억에 남는 질문은 “북한에서 김대중 대통령에 대해 어떤 인식을 가지고 있느냐” 이 질문이었지요? 

24. 이에 대해 증인께서는 ‘증인은 북한의 중상류층에서 인식하고 있는 김대중에 대해서만 알고 있는데 그걸 그대로 말해도 되겠는가 확인했고, 공보수석은 알고 있는 그대로 말해달라’는 했지요? 

25. 그래서 증인께서는 “김대중 대통령은 1848년부터 김일성이 고용한 북한 간첩”이라는 북한 중상류층의 인식을 그대로 말해주었지요? 

26. 2005년 월간조선1월호에는 제3국에 체류하는 전직 통일전선부(대남공작부) 요원의 충격적인 폭로내용들이 게재돼 있는데 여기에는 “386주사파는 통전부의 정규군이고, 우리는 김대중을 ‘수령님의 전사’로 불렀다”는 머리글도 있고, “김정일이 당시 송호경(2000년 남북정상회담 준비역)에게 지시하기를 '김대중이는 돈을 달라면 돈을 주고, 쌀을 달라면 쌀을 주게 돼 있는 사람이니 대화상대라고 생각하지 말고 10억 달러를 내리 먹여”라는 내용(증6, ‘가’ ‘나’ ‘다’)이 있는데 이에 대해 증인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27. 2011년, 여러 매체들은 한국에 HUMINT(Human Intelligence) 즉 북한정보를 얻기 위한 인적 정보라인이 고갈됐다는 걱정들이 기사화됐고, 이에 증인께서는 대북정보 라인이 고갈된 이유를 한국사회에 널리 알려야 한다는 동기와 한국사람들에게 김대중이 김일성이 키운 간첩이라는 것이 북한 상류사회에서 알고 있는 상식이라는 것을 알려야 한다는 생각을 하셨지요?  

28. 이런 차원에서 증인을 취재한 중앙일보는 증1의 2011.12.25자 보도를 통해 김대중이 대통령이 되자마자 1998년 4월부터는 남한의 대공 공작 및 수사관 수천명을 무더기로 내보냈고, 이어서 9월에는 북한에 우리가 길러놓은 우리 측 간첩 250명 정도를 숙청했다는 골격의 기사를 냈지요? (증1) 

29. 이 증1의 기사에는 기자의 취재내용과 증인의 증언이 나란히 실렸지요?  

30. 국정원에서는 8개월 동안 900명의 대북전문요원들이 강제퇴출 당했고, 이와 동시에 대공경찰 2,500명, 기무사 대공요원 600명, 공안검사 40명(증1, 2쪽 ‘나’)이 강제퇴출 당했다는 기사가 있지요?  

31. 증1 기사의 핵심은 김대중이 대통령이 되자마자 한편으로는 대공조직을 와해시키고, 다른 한편으로는 북에 길러놓은 우리측 간첩단 모두를 숙청케 했다는 것으로, 1998년에 남한과 북한에서 김대중이 무슨 일을 저질렀는가 를 다 파악하게 되고, 적장인 김정일에 5억달러를 국민 몰래 건네주었다는 사실이 미국에 의해 들통나고, “북한은 핵을 개발할 의사도 능력도 없다. 만일 개발화면 내가 책임진다”는 말로 북한핵개발을 비호해 준 사실 등을 알게 된 증인께서는 “김대중이 김일성의 전사요 간첩”이라는 것을 확신하고 계시지요?  

32. 북한에 대해 많은 정보를 갖고 계시기 때문에 증인께서는 대한민국이, 북한에 대해, 너무 안이하고 무지하게 대처하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상당한 불안감을 가지고 계시지요?

33. 증인은 2004년 8월부터 2008년 10월까지 4년 이상에 걸쳐 손수 북한 내에 정보망을 유지하면서 육군 정보사에 수많은 고급정보를 제공했고, 그 정보들은 대부분 A급으로 분류되었지요?  

34. 한 예를 든다면 2008년 초, 휴전선 비무장지대에 북한이 비밀스럽게 건설하고 있는 수많은 벙커들의 정체를 알고 싶어 했는데, 증인은 그 벙커 공사에 참여한 소대장을 중국으로 불러내 정보사 요원과 회동토록 하면서 정보사로 하여금 알고 싶어 하는 내용을 파악하도록 해주었지요? 

35. 내용인즉 155마일 휴전선 전장에 걸쳐 800개의 벙커를 2004년부터 2008년까지 건설했는데 그 목적의 첫째는 남침 시, 대부대가 휴전선을 통과하게 되면 조기경보에 걸리기 때문에 북한군 병사들이 무장을 하지 않은 가벼운 몸으로 벙커에 산발적으로 가서, 거기에 미리 정리해 놓은 중무장 장구들로 무장해 가지고 들키지 않게 휴전선까지 쉽게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고, 목적의 둘째는 무거운 군장을 지고 먼 거리를 행군하면 몸이 지치기 때문에 벙커를 짓는 것이라 했지요?  

36. 이는 매우 중요하고 귀중한 정보라 생각하시지요?  

37. 증인께서는 2004년에 북한 2군단 예하로 창설된 22사단 및 23사단에 대한 존재를 정보사에 제공해주었고, 그 외에도 남한에 와서 정보기관들에 제공한 정보들이 꽤 많지요? 

38. 2000년 6월 13일과 15일, 순안 비행장과 백화원 초대소 사이를 각 45분간씩 김대중과 김정일을 한 차에 태우고 운전했던 운전자가 그 후 곧바로 이슬처럼 사라졌는데 그 이유는 운전자가 대화의 비밀을 알고 있기 때문이라는 정보도 갖고 있으시지요?  

39. 북한에는 남한에는 없는 ‘1만 톤짜리 프레스’가 있는데 그 프레스는 오직 대륙간 탄도탄 제작을 위한 것이라 했고, 그 프레스에는 5.18이라는 최고의 명예를 상징하는 5.18을 넣어 ‘5.18청년호’라는 글씨가 새겨진 것이라 했지요? 

40. 93년(?)에 북한군을 한국군 복장으로 변장시키기 위해 북은 30만 명의 군복을 만들 수 있는 원단을 수입했는데 그 원단 수입을 담당했던 간부가 숙청됐는데, 그 이유는 원단을 제조한 회사가 원단에 암호를 넣어둔 것이 발각됐기 때문이라 했지요? 

41. 정주영이 북에 준 100대의 최신식 덤프트럭 덕분에 북한은 불가능해 보이는 군공사들을 쉽게 해냈다는 정보도 제공했지요? 

42. 북한당국은 북한 주민들이 남한 장비의 우수성을 알지 못하게 하기 위해 매우 제한된 구간에서만 사용하였다 하였지요?  

43. 증인께서는 인민군총참모부 부총참모장 상장 안피득으로부터 저수량 30억 톤을 자랑하는 금강산댐(임남댐)에 대해 자세히 들을 기회가 있었지요? 

44. 그 고위층은 자랑이라도 하듯 지도를 짚어가며 자세히 설명했는데 댐 건설목적은 첫째 ‘수공작전’인데 서울을 물바다로 만들고, 군사시설을 수장시킬 수 있다는 것, 둘째 금강산댐에 물을 가두어 두고 남는 물을 남으로 보내지 않고 동해로 흘려보냄으로써 남한의 수력발전소를 가동 불가능한 상태로 만들 수 있다는 것, 셋째 남한의 식수 및 공업용수를 고갈시키면 북한은 평시에 남한을 상대로 물장사를 할 수 있다는 것이라 했지요? 

45. 임남으로부터 최전방 동해까지 약 40km 구간은 동굴인데 그 동굴을 파느라 처음에는 2,700명 정도가 병들어 죽었고 그 후 또 4,000명 정도가 죽었는데 그 이유는 흙과 바위가 석회암(?)인지 인체에 매우 해로운 물질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라 들었지요? 

46. 동해로 이르는 40km 길이로 흐르는 물길 동굴은 전시에 차단되고, 차단되면 전차 3대가 나란히 달릴 수 있는 공간인데, 전시가 되면 가장 먼저 군사시설이 밀집돼 있는 강릉지역에 전차들이 밀어닥쳐 대규모 병력을 고립시킬 것이라 했지요? 

47. 증인은 금강산에서 근무하면서 현대에서 받은 돈을 김정일에 갖다 주는 역할을 했는데 김정일은 그 돈의 상당액을 남한 좌익조직들을 확장하는 데 사용했다 하였지요? 

48. 지금은 탈북자 2만 시대이고, 이들은 북한 전역에서 내려오고 직종이 다양한데다 대부분이 군대에 10년 이상 장기복무하기 때문에 각 지역, 각 군에 대한 정보 역시 다양하지요? 

49. 그래서 탈북자 사회에서는 국가가 보유한 대북정보의 80%는 탈북자들이 제공해주는 것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으며, 탈북자들이 남한에 제공해주는 정보는 무시될 수 있는 정보가 아니라 매우 소중히 다뤄져야 할 A급 정보라 할 수 있지요? 

50. 증인께서는 지금 탈북자 가운데에서는 가장 성공한 케이스에 해당하며 사업체를 중국과 한국에 다 가지고 계시면서 수많은 탈북자들을 고용할 목표를 가지고 특이버섯에 대한 특허를 내 가지고 버섯사업을 하고 계시며, 지금은 궤도에 올라있지요? 

51. 증인께서는 빈손으로 탈북하여 새로운 사업을 개척하는 데에도 벅찰 이 시점에서 정보사에 많은 정보를 개발하여 제공해 주고, 미국에까지 가서 북한의 실상을 알리고, 지금은 피고인을 도와 ‘대한민국대청소500만야전군’이라는 애국조직에 적극 참여하고 계시는데 그 이유는 오직 이 국가가 위태롭게 가고 있다고 생각하시기 때문이지요?  

52. 증인께서는 탈북한지 얼마 안 돼서 피고인이 운영하는 안보 홈페이지인 시스템클럽을 알게 되었고, 지난 2011년 2월 경, 피고인에게 전화를 걸어 피고인이 관련된 재판들에 증인으로 출석하여 피고인이 억울하게 당하고 있는 데 대해 증언을 하고 싶다 하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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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증인은 5.18광주에 북한 특수군이 대거 내려와 고첩들과 함께 무장봉기 작전과 모략작전을 수행했으며, 광주에 내려간 병력은 남한 사람들처럼 머리를 길게 기르고 있던 해주연락소 즉 특수작전부대에서 많이 내려왔다 했지요? 

54. 위 해주부대는 1987년 KAL858기를 폭파한 김현희를 양성한 부대라 했지요?  

55. 증인은 북한이 남파목적으로 조직한 특수부대 즉 게레라군을 소개하였는데, 중앙당 작전부에 소속되어 있는 대남연락소 예화부대로는 원산연락소, 청진연락소 ,해주연락소 등이 있고, 이와는 별도로 인민군정찰국소속 60저격려단(통칭 사천복수대), 11공군저격여단, 3.8공군육전여단, 64해상저격려단, 직속정찰대대(8개대대) 등이 있으며 군단들이 보유한 저격려단은 4군단에 17저격여단, 1군단에 61저격여단, 2군단에 62저격여단, 108훈련소, 5군단에 63저격여단 등이있으며 1개여단은 10-12개 대대로 편성되여 있으며 1개대대병력은 약 500명 1개 여단 병력은 5,000명 정도라는 등의 자세한 고급 정보를 정보사 등에 알려주었지요?  

56. 인민무력부 직속으로 교도훈련지도총국이 있으며 예하부대로 경보병여단들을 가지고 있으며 교도훈련지도총국이 보유한 북한경보병여단 병역은 10만명에 달한다 하셨지요?  

57. 증인이 60저격여단에 있을 때, 여단은 5.18 광주폭동이 일어나기 전해인 1979년 인민군총참모부 정찰국명령서를 하달 받았다 하셨지요? 

58. 명령서의 내용은 “정찰국 직속대대와 각 여단작전조 전투원 역량을 보충하고 작전조 전투원들의 머리를 장발로 기르는데 대하여”라는 제목의 명령서였지요?  

59. 당시 인민군병사는 전부 삭발을 하였으며, 남파임무를 수행하는 중앙당 대남연락소와 정찰국 직속 저격여단과 인민군군관(장교)들만 평상머리를 하고 있었지요? 

60. 당시 북한에서는 일반국민들이 장발을 하면 자본주의 요소라고 하여 국가와 단체의 비판대상이 되어 누구도 장발을 할 수 없었지요? 

61. 남파공작부대에 전달된 명령서에 장발을 명령한 것은 당시 한국의 청년들과 시민들이 장발을 하고 있기 때문에 광주에 침투하는 전투원들을 광주시민으로 위장하기 위한 사전준비였지요? 

62. 증인께서는 1979년 10월 박대통령이 시해된 직후인 1979년 12월 동계훈련기간에, 북한군이 대남 파견용 부대인 저격병, 경보병으로 쌍방 기동훈련을 실시했고, 펑안남도 양덕군에 위치한 최고사령부 판정장에서 대남침투방법, 격술, 육박격투, 강행군, 각종전술, 지형학, 적군공작법,(심리전)등 준비 상황을 판정받기 위하여 집결하였다 하셨지요?  

63. 당시 인민무력부 판정단 성원들은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 동지께서 몸소 지휘하고 계시는 남조선혁명은 대전환기를 맞이하고 있다. 최고사령관 동지께서 명령만 내리시면 당장이라도 달려가 임무를 완성할 수 있게 철저히 준비하여야 한다” 고 하며 5.18 발생 전에 정신무장 및 훈련을 강화하였다 하셨지요?  

64. 증인은 당시 이런 다급한 준비는 남파목적 없이는 상상할 수 없는 훈련이라고 생각하셨지요?  

65. 위 훈련기간 중 이전에는 전혀 볼 수 없었던 특이한 현상은 훈련에 동원된 모든 전투원들이 장발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며 특히 해주연락소 전투원들은 전부 장발을 하고 훈련하고 있었다 하셨지요?

66. 훈련장을 찾은 정찰국장 오룡방은 군사간부 강연회에서 “1974년 봄에 남조선에서 대규모 항쟁을 준비하였는데 실패하였다고 하며 이번에는 무조건 성공할 것이다”라고 장담하였지요?

67. 증인께서는 1997년 평양출장 길에 총참모부 모간부와 함께 전 인민군정찰국장 오룡방 대장과 전 124군부대 여단장을 하던 신수룡 상장을 만나 간담할 시간을 가졌지요?  

68. 북한군에서 청와대 습격과 대남침투 작전을 지휘하여온 게렐라 전문가 오룡방과 신수룡은 당시 북한군최고사령부 작전조에서 김정일의 대남작전을 보좌하고 있었다 하셨지요? 

68. 오룡방은 증인에게 “수령님께서 생전에 통일의 기회를 두 번 잃었다고 회고하시며 4.19와 5.18때 더 많은 역량을 투입하여 적극적으로 지원하지 못한 것을 후회하였다” 고하며 우리군대는 70, 80년대가 제일 전투준비가 잘 되여 있었다고 하며 그때 통일시켰어야 했는데 하며 후회했다“ 하셨지요? 

69. 124여단에서 한국에 침투시켜 임무를 수행하던 중 전사한 전사자들을 추모하기 위하여 황해남도 사천군과 안악군에 “남조선혁명가묘소”를 만들어 놓고 부대원들의 계급교양에 이용하고 있었다 하셨지요? 

70. 60구에 달하는 묘소 중 12구정도가 사망 일자를 1980년 5월로 표기돼 있다 하셨지요? 

71. 이는 124군부대에서도 광주에 파견됐던 전투원이 12구 있다는 뜻으로 해석하고 계시지요?  

72. 북한 로동당은 광주5.18사건은 수령님께서 구상하시고 장군님께서 지휘하신 남조선혁명의 위대한 승리라고 선전하며 김정일의 우상화 교육의 장으로 이용하고 있다 하셨지요? 

73. 그래서 북한에서는 해마다 5월이 되면 전 지역에 걸쳐 당과 정의 주도하에 5.18행사를 기념하고 거기에서 희생당한 전사들을 추모하고 있는 것이지요?  

74. 당시 김일성은 서울, 인천, 부산, 대구에서 동시 다발적인 폭동을 계흭하였으나 실패하였다고 후회하였지요? 

75. 증인께서는 광주5.18사건은 김일성의 적색통일 구상에 의하여 북한의 대남공작 부대와 김일성이 고용하고 키워온 한국의 민주세력으로 둔갑한 국내간첩들의 국가전복 반란이라고 알고 있으며, 5.18광주에 북한 특수군이 파견되었다는 것은 북한 사회의 상식으로 통하고 있지요?  

76. 증인은 국가정보원과 공안부서들은 잠에서 깨여나 좌파의 탈을 쓰고 국가정치 기관과 좌익시민 단체에 침투하여 친북 ,반미를 사회에 조성하여 대한민국의 존엄을 파괴하고 우리사회를 혼돈과 분열로 이끌고 있는 자들 속에서 고급간첩 김대중의 졸개들과 그와 연결된 자들을 엄격히 가려내어 이적죄로 처벌해야 대한민국이 수호될 것이라는 의견을 공개적으로 표현하여 왔지요?  

77. 여기 탈북자 이지명의 수기가 있습니다(증7). 이 수기는 “1.광주사태에 대한 당시 북한의 선전 2, 내가 만난 친구의 형의 증언”이라는 두 개의 소제목으로 쓰였고, 이 수기의 3쪽에는 “그 사람(친구의 형이자 광주에 왔던 사람)이 말했다. 너들 영화에서 임신부의 배를 가르고 태아를 끄집어내는 장면을 목격했지? 그랬다고 하며 친구가 그게 사실이냐고 묻자 그 형은 그게 말이야, 그게 그러니까 하며 한참 갑 자르다가 사실 그건 우리부대 특전사들이 한 짓이라고 했다. 그게 무슨 소리냐고 하자 그는 그래야만 시민들의 격분을 이끌어내고 과격한 행동에로 유도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또 그렇게 해야만 별로 힘들이지 않고 적후에서의 특수부대의 임무를 원활하게 진행시킬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그러한 만행이 백주에 감행되자 말 그대로 시민들의 격분은 하늘을 찔렀다고 했다. 한쪽에서는 정치 공작임무를 맡은 인원들의 국내외 기자들에게 그 사진을 넘기며 온 세상에 이 용서 못할 만행을 고발해 달라고 부탁하는 공작도 진행했다. 그렇게 한 목적은 다른데 있지 않다. 그 결과로 전 남조선 땅에 이 처절한 실태를 알리고 세계에 이슈화함으로써 전 남조선 땅에 반정부 시위로 들끓게 하고 세계 앞에서 북한군 진입의 구실을 마련하자는데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것이 바로 우리 수령님께서 구상하신 위대한 통일 전쟁이며 한반도에서의 승리의 서곡이 될 수 있는 멋진 작전이었다고 긍지에 넘쳐 말했다.”는 대목이 있고, 2009년에 탈북군인조직인 ‘자유북한군인연합’에서 발간한 500여쪽에 이르는 5.18수기 “화려한 사기극의 실체”라는 책을 읽으면 6.18광주에 북한 특수군이 와서 광주시민과 계엄군 사이를 이간하는 모략작전을 수행했고, 이 작전은 김일성과 김대중이 야합하여 일으킨 국가전복 폭동이었다는 것을 일사불란하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증인께서는 앞서 북한 특수군의 조직과 대남침투를 위한 훈련 사실과 장발지시 등에 대한 증언을 하셨으며 북한 최고위급의 입을 통해 5.18이 북한이 일으켰는데 아깝게 실패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하셨습니다.  

이에 더해 보태실 말씀이 있으면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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