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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남로당 중앙당의 지령(3) (비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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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비바람 작성일12-12-02 22:14 조회8,72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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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4.3위원회의 남로당 변호
2. 폭동 지령문
3. 폭동 전야 ‘신촌 회의’
4. 제주도 인민유격대 투쟁보고서
5. 천검산(千檢山)은 누구일까
6. 남로당 중앙당의 지령 부인설(否認說)
7. 9연대 문상길 소위의 중앙당 발언
8. 스티코프 비망록의 폭로
9. 남로당 중앙당 지령에서 폭동까지



3. 폭동 전야 ‘신촌 회의’

1.22 검거사건으로 보름 후에 전국적으로 벌어졌던 남로당의 ‘2.7폭동’은 제주도에서는 커다란 소요사건 없이 조용하게 넘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1.22 검거사건 때 체포되었던 남로당 인사들은 5.10 선거 독려 차원에서 미군정에서 특사령을 발동하여 48년 3월에 모두 석방시켜 버렸다. 이 때문에 폭동은 진행될 수 있었다.


4.3진상보고서에는 4.3폭동이 결정된 시기를 48년 2월 즈음으로 밝히고 있다. ‘무장폭동이 결정된 것은 1948년 2월의 신촌회의에서 였다’는 증언을 인용하고 있다. 그리고 또 일본에 거주하는 이삼용의 증언을 빌어 ‘무장봉기가 결정된 것은 1948년 2월 그믐에서 3월 초 즈음의 일’로 신촌 회의에서 결정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그리고 신촌 회의에서 ‘무장투쟁이 강, 온건파의 논쟁 속에 12대 7로 결정되었다’는 “소설”도 쓰고 있다.


엄밀히 따지자면 ‘신촌 회의’라는 것은 좌익적 특유의 용어 장난이다. 신촌에서 회의는 있었지만 거창하게 ‘신촌 회의’라 부를 만한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신촌에서 열린 것만도 아니었다. 회의는 여러 번 있었고 그것은 폭동을 결정짓는 자리가 아니라 ‘대책 회의’였다.


● 기록에 보면 4.3항쟁 직전 2월쯤에 ‘대책회의’가 있었다고 나오는데, 그 ‘대책회의’는 몇 번쯤 있었고 어떤 분들이 참석했었습니까?
애월에서도 있었고, 오조리인가 종달리에서도 있었고... 마지막으로 신촌에서 했었다고 들었어. 도와 읍, 면 책임자들만 참석했었지
.


‘대책회의’는 신촌에서만 열렸던 것이 아니고 애월, 구좌, 조천 순으로 읍면 지역을 순회하며 열렸고, 조천면의 신촌에서 열린 것은 세 번째였다. 4.3위원회는 이 세 번째의 회의에 ‘신촌회의’니 ‘신촌회담’이니 하는 거창한 이름을 붙였다. 이것은 신촌에서 열린 회의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해 보려는 4.3위원회의 의도였다. 이유는 이 신촌 회의를 증언하는 와중에 ‘당시 중앙당의 지령은 없었다’는 발언이 나오기 때문이다. 좌익폭동을 희석시키려는 좌익적 4.3위원회로서는 보물 같은 증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신촌회의’는 폭동을 결정짓는 회의가 아니라 순전히 ‘대책회의’였고, 읍면을 순회하며 열렸던 ‘읍면회의’의 하나였다. 그렇다면 무슨 대책 회의였을까. 그것은 당연히 1.22 검거사건으로 제주도당의 주요 지휘부가 구속되어버린 후의 사후 대책을 말함이다. 여기에서 유의해야할 것은 대책회의가 구속에 대한 대책이 아니라 아주 중요한 일에 대한 대책회의였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구속된 지도부들에게는 남로당의 중요한 임무가 있었다는 것을 상기해야 한다. 그것은 폭동의 지령이었다.


남로당은 베일에 싸인 비밀스런 당이었다. 조직 체계도 이원화외어 있었고, 흡사 지금의 간첩 조직처럼 점조직으로 운영되었으며, 지령문서도 암호로 전달되고 있을 만큼 모든 것이 철통 보안 속에서 운영되는 당이었다.


이런 남로당의 특성상 폭동 지령은 지휘부의 주요 인사들만 알고 있는 상태에서 지휘부가 구속되어 버림으로서 폭동 지령은 허공에 뜬 상태가 되어 버렸다. 읍면회의의 참석자들은 대부분 폭동 지령을 모르고 있는 상태였다. 그러나 지령을 알고 있는 한 명이 있었다. 바로 김달삼이었다.


김달삼은 구속되지 않은 유일한 지휘부의 한 명이었다. 김달삼은 구속된 주요 지휘부를 대신하여 폭동 지령의 임무를 수행해야 할 위치에 있었다. 읍면회의는 주요 지휘부를 대신하여 이 ‘폭동 지령’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에 대한 김달삼의 고심이 들어있는 대책회의였다. 김달삼은 읍면지역을 순회하며 읍면 책임자들과 연속 수구회의를 열었지만, 그 회의에서 김달삼은 중앙당의 폭동 지령을 하달할 할 처지는 아니었다. 그 중앙당의 지령은 극비사항이었고, 또한 극비로 진행해야 했다. 제주도에서의 폭동은 남로당의 작품이 아니라 순전히 민중의 자발적인 모습을 띠어야 했기 때문이다. 대책회의에서 김달삼으로서는 지역 여론을 파악하여 폭동에 대한 여론을 환기하고, 의사를 타진하고 분위기를 조성하는 등의 바람잡이 역할을 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을 것이다.


4.3진상보고서에서 2월 신촌회의를 말하는 이삼용의 증언은 의미심장하다.

"이 자리에서 김달삼이 봉기 문제를 제기했다. 김달삼이 앞장 섰던 것은 그의 성격이 급했기 때문이다."


신촌회의에서 뿐만 아니라 다른 읍면회의에서도 김달삼의 임무는 구속된 주요 지휘부를 대신하여 폭동 수행을 정당하게끔 만드는 홍보 활동이었을 것이다. 김달삼의 처지나 상황으로 유추하건데, 읍면회의마다 김달삼은 봉기 문제를 제기하고 여론 조성을 했을 것이다. 김달삼이 앞장섰던 것은 그의 성격이 급해서가 아니라 그 계획을 진행시켜야 할 막중한 임무가 김달삼 혼자에게 있었기 때문이다. 이삼용은 ‘당시 중앙당의 지령은 없었다’고 증언했다. 이 증언은 틀렸다기보다 이삼용은 모르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폭동은 자발적인 행태여야 했고, 중앙당 지령은 발설해서는 안 되는 극비사항이었기 때문에 하부 조직원인 이삼용은 그 내막을 알 턱이 없었다.


그리고 모든 회의에는 늘 중앙당의 오르그가 참석했다. 오르그는 상부의 지시를 전달하고 지도하는 ‘조직 지도원’을 말하는 것이다. 4.3위원회의 주장대로 2월의 신촌회의에서 무장 폭동이 결정되었다고 치더라도 거기에는 중앙의 오르그가 참석했었기에 그것은 중앙당의 결정으로 보아도 하자는 없는 것이다. 제주도당 연락총책이었던 김생민은 오르그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당에는 반드시 올구가 뒤따릅니다. 남로당을 대표해 가지고 지도하고 회의시키는 감독권을 가진 것이 올구입니다. 중앙당에서는 전라남도 당에 올구를 보내고, 전라남도 당에서는 제주도 당부에 올구를 보냅니다.


제주도당에서 벌어지는 모든 회의에는 늘 오르그가 참석했고, 그 회의를 지도했음을 알 수 있다. 제주도당의 정책 결정의 배후에는 항상 남로당 중앙당이 버티고 있었던 것이다. 4.3폭동도 마찬가지였다. 이를 뒷받침하는 결정적인 증언도 존재하고 있다.

● 2월 ‘신촌회담’ 후부터는 군사부가 당의 주도권을 쥐게 된다는데 최종 항쟁 결정은 어떻게 해서 내려지게 되었다고 보십니까?
김달삼 등 군사부 책임자와 9연대 문상길 중위 등이 최종 항쟁 결정을 내리는데... 뭐, 도당에서도 막을 수가 없었지.


문상길은 9연대 장교로서 남로당 중앙당의 프락치였다. 김달삼도 남로당 중앙위원이면서 그의 장인인 강문석과 연결되어 있음으로 지방 조직보다는 중앙당 조직에 가깝다고 해야 할 것이다. 김생민도 김달삼을 일컬어 ‘강문석의 지령을 직접 받아 남로당 제주도위원회를 조종하는 (중앙당의) “오르그”로 보아야 할 것‘이라고 증언했다. 대책회의나 신촌회담에서 김달삼의 존재 자체나 발언 자체가 중앙당의 지령이었다는 것이다.


‘도당에서 막을 수가 없었다’는 위의 증언은 대체로 4.3의 일반적인 상식 수준을 대변한다. 그러나 4.3위원회는 정반대의 결론을 내렸다. 4.3위원회는 중앙당의 지령이 없었지만 제주도당이 내부적으로 무장 폭동을 결정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실상은 제주도당에서는 폭동을 주도한 것이 아니라, 중앙당 조직인 문상길과 김달삼이 주도하는 폭동을 제주도당에서는 막으려고 했지만 막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폭동 전날 밤 문상길은 중앙당 지령이 없었다며 9연대 출동을 거부했다. 이 관계에 대해서는 뒤편에 설명하게 된다)


4.3위원회의 2월 신촌회의 설명 중 가장 심각한 오류는 신촌회의에서 12대 7로 무장 투쟁이 결정되었다고 밝히는 부분이다. 이것은 흡사 무장 폭동이 신촌회의에서 투표를 통하여 결정된 것처럼 국민들을 오도하는 표현이다. 이것은 웃기고도 한편으로는 슬픈 표현이다. 남로당의 변호를 위한 4.3위원회의 눈물겨운 표현이기 때문이다.


투표 같은 것은 있을 수도 없었고 있지도 않았다. 4.3진상보고서에 등장하는 이삼용의 증언에도 투표라는 말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삼용은 신촌 회의의 참석자들의 성향을 이야기하면서 찬성과 반대 성향을 가졌던 사람들의 숫자를 이야기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4.3위원회는 이삼용의 증언을 이어 받아 인용하면서 교묘하게 투표가 있었던 것처럼 용어 장난을 하고 있다. 폭동은 이미 암호문으로 지령이 내려온 상태였고 제주도당은 이것을 수행할 수밖에 없는 종적 수직적 관계의 맨 하부에 있었다.


2월 신촌 회의에서는 다른 읍면 지역의 애월 회의, 구좌 회의와는 달리 상당한 격론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신촌은 남로당의 비밀집회가 자주 열리는 곳이었고, 조직부 아지트가 있었기에 다른 지역의 대책회의보다는 좀 더 무게가 있고 진도가 나간 회의였을 것이다. 읍면회의를 순회하며 폭동의 바람잡이 역할을 하던 김달삼은 세 번째 열렸던 신촌회의에서는 심각하게 폭동 주도에 나서게 되었음을 알 수 있다. 김달삼은 본격적으로 지방당 조직에 폭동 참가를 거론했고, 신촌회의에서 우세한 여론을 이끌어 냈다는 것도 짐작할 수 있다. 구속된 지휘부를 대신하여 폭동 선동에 나섰던 김달삼의 노력이 빛을 보는 순간이었다.


2월 신촌회의에서 무장 투쟁이 결정되었다는 4.3위원회의 주장은 역사적 사실이나 일반적 상식에 입각해 볼 때 황당무계한 것이다. 4.3위원회는 정보 획득에 어려웠던 남로당 하부 조직원들의 개인적 증언 두어 개를 근거로 내세웠지만 대부분의 4.3자료나 증언들은 남로당 중앙당의 역할을 확실하게 증빙하고 있다. 4.3폭동은 제주도당에서 저지하려는 모습이었고 중앙당에서는 추진하려는 모습이 사실에 부합한 것이다. 2월 신촌회의 후에 있었던 ‘3.15 신촌회담’을 들여다보면 남로당 중앙당의 지령 부정이나, 2월 신촌회의에 대한 4.3위원회의 주장이 얼마나 황당한 주장인지 실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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