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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남로당 중앙당의 지령(5) (비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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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비바람 작성일12-12-16 01:33 조회10,72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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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 남로당 중앙당의 지령

 

1. 4.3위원회의 남로당 변호

2. 폭동 지령문

3. 폭동 전야 ‘신촌 회의’

4. 제주도 인민유격대 투쟁보고서

5. 천검산(千檢山)은 누구일까

6. 남로당 중앙당의 지령 부인설(否認說)

7. 9연대 문상길 소위의 중앙당 발언

8. 스티코프 비망록의 폭로

9. 남로당 중앙당 지령에서 폭동까지

 

5. 천검산(千檢山)은 누구일까

 

김봉현은 한림 금악리 출신으로 4.3폭동에서 주역으로 참가했던 고위급 인물이다. 그는 4.3폭동의 와중에 일본으로 도망가 ‘제주도 피의 역사’를 저술했다. 그리고 김민주와 함께 ‘제주도 인민들의 무장투쟁사’를 쓴 저자이기도 하다. 두 저서는 4.3에 대한 극좌적인 시각, 즉 당시 4.3에 참여했던 빨갱이 입장에서 4.3을 저술한 책이다.

 

김봉현은 제주 4.3사건 발발 40주년인 1988년 일본 문예지 ‘민도(民濤)’와의 인터뷰에서 남로당 중앙당에서 제주로 파견된 오르그(조직책)에 대한 중요한 증언을 남겼다.

 

인터뷰에서 김봉현은 4.3폭동 당시 중앙에서 파견된 ‘천검산(千檢山, 千オソコムサン)’ 또는 천가모끼라는 코드네임을 가진 조직책이 제주 무장유격대 뿐만 아니라 제주도당의 정치 및 조직사업까지 총지휘했다고 밝혔다. 천검산은 4.3폭동 당시 중앙에서 파견된 오르그의 가명이었다. 그리고 제주도 무장유격대의 무기, 탄약과 기타 투쟁용 자재 및 생활용품 일체를 제주도 밖에서 해로를 통해 비밀 공급받았다고 증언했다.

 

김봉현 : 군사부는 도당위원회 위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결정을 하는 것은 중앙에서 파견되어온 조직책인 것입니다.

- 그 조직책은 어디에서 파견되어 온 것입니까?

김봉현 : 물론 본토인 남로당 중앙에서지요. 그 사람의 이름은 千オソコムサン(천 고무상)라고 했지요. 별명은 천가모끼라고 했지만 한자로 어떻게 쓰는 지는 모르겠습니다. 성은 一千 二千의 千인지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남로당 제주도위원회의 지도를 했던 사람이 이 사람이지요. 군사 이론에도 탁월했던 것 같습니다.(17)

 

김달삼의 본명은 이승진이고, 박헌영의 가명은 노상명이었다. 김달삼의 장인 강문석은 자기의 가명이던 김달삼을 사위에게 물려 주었다. 이렇듯 남로당원들은 누구든지 가명을 하나 두 개 정도는 가지고 있었는데, 천검산은 남로당 중앙당에서 파견된 4.3폭동의 배후 지휘자로 알려진 인물이다. 천검산은 평안북도 선천에 소재한 산의 이름으로, 4.3폭동을 지휘하는 남로당 중앙당의 누군가는 이 산의 이름을 자신의 이름으로 삼았다. 그는 누구였을까.

제주인민해방군의 투쟁보고서에는 3월에 폭동 지령을 전달했다는 중앙의 오르그가 두 명 등장한다.

 

(1) 1948년 3월 중순경 전라남도 당부에서 제주도 당부로 '올구' 이(李)동무를 파견 무장 반격 지령과 함께 기위 부식(扶植)한 국경(國警)프락치는 도당부(島黨部)에서 지도할 수 있으니 무장 반격에 국경(國警)을 최대한으로 동원하도록 하라는 지시를 하여 왔다.

(2) 도당부 상위(島黨部 常委)에서는 이상 도(道)당부의 지령을 받고 같은 해 3월 15일 도(道) 파견 '올구'(18)를 중심으로 회합하여 첫째 당의 조직 수호와 방어의 수단으로 둘째 단선(單選)단정(單政) 반대 구국투쟁의 방법으로 전도민을 궐기시켜 무장반격을 전개하기로 하고 그 준비 및 실행계획을 다음과 같이 결정하였다.

 

위 (1)번에 등장하는 오르그 한 명은 이명장으로, 이명장은 47년 5월에도 제주에 내도했었다. 그리고 이 때 상부로 올라갈 때는 제주도당에서 보내는 ‘프락치의 지도 문제와 활동 방향에 대한 지침’ 문의를 전남도당에 전달하는 임무를 맡기도 했었다. 그리고 이듬해 48년 3월 중순에 다시 이명장은 제주에 내려왔다. 이번에는 상부로부터 ‘기위 부식(扶植)한 국경(國警)프락치는 도당부(島黨部)에서 지도할 수 있으니 무장 반격에 국경(國警)을 최대한으로 동원하도록 하라는 지시’와 함께 ‘무장 반격 지령’을 가지고 제주에 내려왔다.

 

그리고 4.3폭동이 결정되었던 3월 15일의 ‘신촌회담’에도 한 명의 중앙 오르그가 등장한다. 위의 (2)번에 등장하는 오르그는 신촌회의를 주재한 인물이다. 이 인물과 이명장은 동일 인물로 착각할 수도 있으나, 이명장은 전남과 제주를 왕래하면서 제주도당과 전남도당 간의 문서나 지시사항을 전달하는 일도 맡는 것으로 보아 그다지 고위급은 아니었다. 3월 중순에 이명장이 제주에 내려온 것도 이명장의 임무는 문서 전달 외에 중앙의 인물을 제주도당까지 안내하는 임무를 겸비했다고 보여진다. 이명장의 안내를 받으며 제주에 왔던 중앙당 오르그인 누군가는 당연히 중앙당의 주요 인물이었다. 그만큼 중앙당 폭동 지령을 전달하는 3월 15일의 ‘신촌회담’은 중요한 것이었다.

 

김봉현에 따르면 천검산은 군사 이론에도 탁월하고, 제주도당을 총지휘할 정도로 고위급이었다. 따라서 하위급인 이명장은 천검산일 확률이 적다. 천검산은 3월 15일 신촌회담에 참가했던 인물 중의 한 명임은 분명하다. 3월 15일 신촌회담에서는 남로당의 주요인사들이 대거 참가했다. 투쟁보고서에는 ‘도(道) 파견 올구’라고만 표현하여 정확한 인원수는 등장하지 않는다.

남로당 지하총책이었던 박갑동도 중앙당 지령이 김달삼에게 시달된 것을 3월 중순으로 지목했다. 그러면서 박갑동은 남로당 중앙당에서 내려왔던 인사들로는 이런 사람을 꼽았다.

 

당시 중앙당에서는 당군사부 책임자 이중업과 군내 프락치 책임자 이재복(민간인. 중앙당 군사부원) 등을 현지에 파견하여 소위 현지 집중지도로써 군사활동의 확대를 기도했다. 또 폭동의 두목 김달삼의 장인이며 중앙선전부장 강문석을 정책 및 조직지도 책임자로 선정하여 제주에 보냈었다.(19)

 

강문석은 제주에 한 번도 내려오지 않았다는 증언도 존재하지만, 남로당 고위층들의 행동은 극비 사항에 속했기에 제주에 오지 않았다는 증언에 신빙성은 별로 없다. 그러나 강문석이가 제주에 내려왔다면 그가 가명을 쓴다 하더라도 제주 출신인 그가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피하기에는 어려웠을 것이다. 따라서 강문석은 제주에 상주하기보다는 일회성으로 제주에 내려와 폭동 지도를 한 다음 제주를 떠났을 가능성은 있지만, 그가 천검산일 가망성은 별로 없다. 이중업과 이재복 중에 한 사람이 천검산일 확률이 높다.

 

4.3위원회는 3월 15일의 신촌회담을 무시하고 2월 신촌회의에서 폭동이 결정되었다고 거짓말을 했다. 2월 신촌회의는 읍면 대표들이 모인 지휘부 구속 대책회의였고, 3월 15일의 신촌회담은 중앙의 폭동을 제주도당에 전달하는 명실공히 남로당 제주도당의 최대 행사였다. 지금까지 ‘신촌회담’에 등장하는 남로당 중앙의 인사들만 해도 4명이다. 이명장, 강문석, 이중업, 이재복 등이다. 그러나 3월 15일 신촌회담에 참가하기 위해 육지부에서 내려온 사람들은 이들만이 아니었다.

 

그 때 제주에 내려왔던 사람들 중에는 조경순이라는 여자도 있었다. 조경순은 제주 출신으로, 여순반란사건의 지휘자인 김지회의 애인으로 유명하다. 지리산에서 빨치산 활동을 하며 항상 빨간 스웨터를 입고 다닌다고 해서 ‘빨간 스웨터의 여두목’으로 불렸다. 1949년 4월 10일 김지회와 조경순은 지리산 덕동리 달궁 부락에 은신해 있다가 국군과 교전 끝에 김지회는 총상을 입고 도망가다가 죽었고, 조경순은 다리에 총상을 입고 체포되어 사형되었다. 이 때 그녀 나이 스물이었다.

 

조경순은 광주 도립병원에서 간호사로 근무할 때 환자로 입원했던 김지회를 만났다. 열렬한 남로당원이었던 두 사람은 가까운 사이로 발전하여 동거로 들어갔다. 조경순이 휴가를 얻어 제주도로 떠났던 것은 이 때 즈음이었다.

한달이 지난 후에야 그녀는 자신이 제주도에 다녀온 이야기를 김지회에게 고백했다. 조경순은 제주도에 파견된 남로당 중앙의 주요 간부의 안내 임무를 맡았던 것이다.(20)  ‘빨치산의 진실’을 쓴 이기봉도 당시 제주도에 파견됐던 남로당 중앙의 인사들로 강문석, 이중업, 이재복 등을 꼽았다. 박갑동과 다르지 않다.

 

박헌영은 2월 중순 남로당 선전선동부장인 강문석을 제주도당위원회 정책 및 조직지도 책임자로 임명하여 당 군사부장 이중업, 군사부 프락치 책임자 이재복 등과 함께 제주도에 파견했다. 그리고 이 때 전남도당에 이들의 안내 책임이 떨어져서 전남도당 군사부책과 조경순이 그 임무를 수행했던 것이다. 일행은 전남도당에서 목포항에 준비해 놓은 밀선을 타고 제주도로 건너갔다.(21)

 

미군 문서에도 남로당 중앙당의 동향이 나타나 있다. 48년 7월 1일의 브라운 대령 보고서에는 본토에서 제주도에 파견된 남로당 조직책들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남한만의 단독선거가 치러질 것이라는 사실이 분명해지자 (남로당의)조직활동이 강화되었고 특별 조직책들이 본토에서 (제주도로)파견되었다. 이들은 모두 한국인들이었다. (제주도의 남로당)주요 지도자들은 공산주의 침투전략을 위한 집중교육을 받았다. 다른 나라 국적을 가진 사람들이 참여하고 있다는 증거는 없다. 선거 이전 기간 동안 공산주의 세포조직이 제주도의 모든 마을과 도시에 조성되었다.(중략)

1946년에 남로당이 세운 철저하고 장기적인 계획이 1948년 5월까지 고도로 훈련된 선동가와 조직가들에 의하여 능숙하고 단호하게 수행되었다는 점.(중략)

현재까지 제주도 남로당의 활동은 전라남도 도당의 지시를 받고 있다. 남로당 제주도위원회(22)는 도당 본부로부터 모든 지령을 받는다.(중략)(23)

 

3월 15일의 신촌회담에서는 중앙당의 오르그가 회의를 주재했다. 이는 중앙당에서 내려온 강문석, 이재복, 이중업 세 사람 중에 한 사람이 주재했을 것이다. 김봉현에 따르면 천검산에 대하여 제주도당을 지도했으며 군사 이론에도 탁월했다고 밝혔다. 이런 사실을 대입시켜봤을 때 군사 이론에 탁월한 사람은 이중업이었고, 이재복은 이중업의 직속 수하였다.

 

여순반란사건을 주도했던 김지회와 지창수도 같은 남로당원이면서 중앙 조직과 지방 조직에 속해 같은 부대에서도 서로 모르는 사이였다. 남로당 조직이 점조직으로 이루어져 당 내부에서조차 서로의 정체를 잘 모르는 이런 사정을 감안한다면 이들 중앙당 인사들의 정체를 아는 사람은 제주도당 고위급들로 극소수였을 것이다. 제주도당 당원들에게 신촌회의를 주재하는 이는 그저 ‘중앙당 오르그’였고, 무장 대원들에게 폭동을 지휘하는 이는 그저 ‘천검산’일 뿐이었다.

 

강문석은 3월 15일 신촌회담에서 폭동에 대한 결정을 내려지는 것을 지켜본 다음 즉시 제주를 떠났을 것이다. 그리고 천검산은 군사지도를 하다가 빠르면 4.3폭동 직후, 아니면 5.10선거 직후에, 그리고 늦으면 김달삼이 월북을 위해 제주를 떠날 때, 천검산도 제주를 떠났을 것이다. 그의 임무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기 때문이었다. 남로당 중앙당의 인사들은 제주에 폭동의 불쏘시개를 던져놓고 활활 화염이 타오르기 시작하자 유유히 제주를 떠났던 것이다. 폭동 후의 비극은 고스란히 제주민들이 뒤집어 써야 했다.

이런 상황에서 본다면 천검산은 이중업이나 이재복, 두 명 중 한 명이다.

 

이중업은 이중영, 또는 김창선이라는 가명을 썼으며, 남로당 중앙당 조직부 총책임자였다. 이중업은 남한을 무대로 우익게열의 요인 암살, 테러 방화를 자행하던 인물로, 1949년 2월 25일 홍제동에서 체포되었다. 7월에는 군 프락치의 도움으로 탈출, 여간첩 김수임의 집에 머물다가 김수임의 도움으로 월북하는데 성공한다.

 

이재복은 이근민, 박영근, 오일서, 이일도 등 4개의 가명을 사용했다. 이재복은 해방 후 목사로 활동하다가 정치에 발을 들여 놓으면서 박헌영의 신임을 얻게 된다. 당시 군사부장이던 이중업이 월북해버리자 이중업의 자리를 이어받게 된다. 1949년 12월 18일, 김창룡 대위가 이끄는 체포조에 체포되어 전향을 거부하다가 총살에 처해졌다.

 

이중업과 이재복 중, 4.3 당시 이재복은 군사적 경험이 부족한 민간인 출신임을 감안하면 천검산은 군사적 이론이 높았던 이중업일 확률이 농후하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북한이나 소련에 있는 추가 자료가 나와준다면 확실히 밝혀지겠지만, 이 분야의 전문 학자들이 더 연구하여 천검산의 정체를 명확하게 밝혀주기를 고대하는 바이다.

 

4.3진상보고서에서 천검산에 대한 김봉현의 증언은 철저히 무시되었다. 그리고 남로당 중앙의 거물들이 모인 중요한 회담이었던 3월 15일의 신촌회담도 4.3진상보고서에는 간단하게 세 줄 정도로 언급하고 지나쳐 버린다. 4.3폭동에 남로당 중앙당의 지령이 없었다고 주장하려면 천검산이나 3.15신촌회담을 다뤄서는 안 되기 때문이었다. 3월 15일 신촌에서는 중요한 인물들이 모였고 중요한 결정이 내려졌다. 그것은 4.3위원회가 결정적으로 숨기고 싶은 것이었다.

 

 

(17) 고문승. 제주사람들의 설움. 387쪽.
(18)  ‘오르그’의 다른 발음
(19)  박갑동. 박헌영. 199쪽.
(20) 이기봉. 빨치산의 진실. 289쪽.
(21) 이기봉. 빨치산의 진실. 298쪽.
(22) 제주도위원회는 제주도당을 말함
(23) 주한미육군 군정청 일반문서. 제주4.3사건자료집9. 39쪽.

 

김동일
전국논객연합 회장. 제주자유수호협의회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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