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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 남로당 중앙당의 지령(8) (비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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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비바람 작성일13-01-28 02:59 조회8,40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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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 남로당 중앙당의 지령

1. 4.3위원회의 남로당 변호
2. 폭동 지령문
3. 폭동 전야 ‘신촌 회의’
4. 제주도 인민유격대 투쟁보고서
5. 천검산(千檢山)은 누구일까
6. 남로당 중앙당의 지령 부인설(否認說)
7. 9연대 문상길 소위의 중앙당 발언
8. 스티코프 비망록의 폭로
9. 남로당 중앙당 지령에서 폭동까지
8. 스티코프 비망록의 폭로

대구 10월 폭동, 제주 4.3폭동, 여순반란사건은 해방과 건국의 전후시기에 공산주의자들이 일으켰던 3대 유혈폭동이다. 이 폭동과 반란은 공산당(남로당)의 조종으로 발발한 사건이라는 것은 기존의 상식이었다. 그러나 좌익정권 기간 동안 이런 상식은 무너졌다. 제주4.3은 노무현 정권 때 만들어진 정부 공식문서에서 남로당 중앙당의 지령이 없이 남로당 제주도당이 독자적으로 일으킨 민중봉기였다고 천명하고 있고, 여순반란사건은 남로당의 계획적 사건이 아니라 남로당원 병사들에 의한 돌발적 사건으로 치부하는 것이 우세한 실정이 되어가고 있다.

10월폭동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노무현 정권 기간 종북좌익 세력들은 10월 폭동이 공산당에 의한 폭동이 아니라 노동자, 농민에 의한 민중봉기였다는 주장을 드세게 했었다.

노무현 정권 당시 민노총을 중심으로 하여 구성된 ’10월항쟁계승사업준비위원회’는 노동자, 민중의 항쟁이 당시 여론조작에 의해 폭동으로 기록됐다며 이의 진상 규명과 정신계승 사업에 나서겠다고 밝혔다.(26) 그리고 2010년에는 민노당의 대선주자였던 권영길 의원은 대구시·경북도교육청 국정감사 자리에서 “1946년 10월 항쟁(※10월 폭동을 지칭)만 해도 대구경북에선 폭동으로 가르치고 있다. 광주나 부산은 민주도시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는데, 대구경북도 그렇게 가르쳐야 하는 것 아니냐”(27)며 10월 폭동을 10월 항쟁이라 주장했었다.

그러나 10월 폭동이 10월 항쟁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 있었다. 바로 스티코프 비망록이다. 스티코프 비망록에는 대구 10월 폭동이 노동자와 농민에 의한 자발적 항쟁이 아니라, 소련의 사주를 받아 소련의 지시대로 유혈폭동을 벌이는 소련의 꼭두각시 조선공산당(28)의 모습이 생생하게 등장하기 때문이다.

스티코프는 1945년 8월 15일부터 1946년 2월 8일까지 북조선 주둔 소련 군정청 총사령관을 역임한 인물이다. 45년부터 북한 문제에 개입하면서 김일성을 픽업한 인물로, 미소 공동위원회 소련 수석대표이며 북한주재 초대 소련 대사(48~51년)를 역임한 당대 최고의 북한 실권자로 알려져 있다.

스티코프는 ‘김일성, 김두봉, 박헌영 등 북한의 정치지도자 뿐 아니라 남로당 등 남쪽 좌익까지 떡 주무르듯 했고 북한의 모든 것을 움직이는 막후의 지도자였다.(29) 북한 정권 수립기의 실권자였던 스티코프는 46년 8월부터 그날그날 있었던 구상과 생각들을 꼼꼼히 일기형식으로 메모를 남겼다. 이 기록이 스티코프 비망록이다.

스티코프 비망록은 중앙일보에서 1995년 5월 9일부터 30일까지 6회에 걸쳐 연재되었다. 중앙일보는 스티코프 비망록이 ‘북한정치사는 물론 남한정치사의 또 다른 이면적 진실을 밝혀주는 실마리를 제공했으며, 스티코프를 정점으로 한 소군정이 북한을 이미 완전히 자신들의 손아귀에 넣은데 이어 남한 정세에까지 깊숙이 개입한 사실을 명백히 밝혀주고 있다’고 평가했다.

스티코프 비망록에서 4.3은 언급되지 않고 있다. 중앙일보에 입수된 스티코프 비망록은 1946년 9월부터 47년 2월까지 만을 다루고 있는 ‘일부’이기 때문이다. 스티코프 비망록은 스티코프 사후 장남 빅토르의 창고에 있던 문서들을 북한이 실어가다가 흘려버린 것을 중앙일보가 입수한 것이었다. 언젠가 북한의 문서 창고에서 여분의 비망록을 더 찾을 수 있다면 4.3의 진상이나 비밀스런 현대사의 진실이 제 모습을 드러나게 될 것임에 틀림없다. 스티코프 비망록의 일부만으로도 현대사의 베일이 적나라하게 벗겨지고 있기 때문이다.

스티코프 비망록에서는 4.3과 관련하여 참조할 만한 몇 가지 정황들이 있다. 이것들은 4.3의 의문점을 해결하는 데 있어서 상당히 유용한 것들이다.(▲표시는 스티코프 비망록)

▲박헌영은 당이 사회단체들을 어떻게 지도해야 하는지를 문의하고 있다(46년9월9일)

▲남조선 정세와 지원조치. 로마넨코 . 테러와 압제에 반대하는 항의집회를 조직할 것(46년 9월11일)

조선공산당 산하기관인 전평 상무위원회는 조선공산당의 신 전술 지령에 입각해 46년 10월 파업투쟁을 전개하기로 계획했었다. 그러나 조선공산당 지도부는 이 계획을 바꿔 총파업을 9월로 앞당길 것을 지시했다. 즉 남로당의 9월 총파업은 원래 10월 중으로 예정됐었으나 9월로 앞당겨진 것이었다. 이유가 소련의 지시 때문이었다는 것을 스티코프 비망록은 밝히고 있다.

▲로마넨코. 남조선에서 파업투쟁이 확산되고 있다. 학생들이 파업투쟁에 합류했다. 요구조건의 관철범위를 어떻게 정할 것인가. 경제적인 제 요구, 체포된 좌익 활동가들의 석방. 권력의 양도 요구를 잠시 철회. 5백만 엔을 요청하고 있다. 재정지원을 위해 2백만 엔을 지급.

▲남조선 사태에 대한 북한의 반응. 남조선 인민들에게 동참할 것을 호소하고 있다. 집회 개최와 남조선 인민을 지원하기 위해 매일 두 시간씩 노동시간을 늘려 그 임금액을 남조선 지원기금으로 공제하는 것을 허락해 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 서울에서 시위를 시작할 예정이다. 3백만 엔을 더 요청하고 있다. 불가닌에게 전화하다. 우리의 (남조선)동지들에게 3백만 엔의 재정지원을 제공하는 문제 및 집회개최와 공제문제에 대해 긍정적인 답변을 듣다.(46년10월1일)

▲3백만 엔의 지원과 집회개최를 위해 작업시간을 단축하는 문제에 대해 지시를 내렸다.(46년10월2일)

▲문(정체불명)은 박헌영에게 39만엔이 지출됐다고 보고했다. 더 지급해 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46년12월6일)

▲로마넨코. 그의 계좌에 있는 1백22만 루블에 대해 논의했다. 그 돈을 박헌영에게 전달하고 계좌를 정리할 것을 명령했다.(46년12월7일)

여기에서는 조선공산당이 9월 총파업과 10월 폭동을 일으키며 소련에게 자금 지원을 요청하는 모습이 나타나 있다. 박헌영이 요청할 때마다 소련은 ‘자기들의 남조선 동지들’에게 거액의 자금을 아낌없이 지원하고 있다. 해방정국에서 남한의 혼란에는 공산주의자들의 소란이 있었고, 그 뒤에는 항상 소련의 입김이 작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부산에서는 농민들의 진출이 시작됐다. 지금 파업운동은 어느 정도 축소됐다. 조선공산당 중앙위원 조두원은 향후 투쟁을 어떻게 전개해야 할지 문의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빨치산부대들이존재하고 있으며, 반동진영과 민주진영 사이에 전투가 전개되고 있다. 그는 빨치산투쟁을 본격적으로 개시해야 할지 혹은 자제해야할지를 문의하고 있다. 박헌영. 파업투쟁은 폭동으로 성장 진화했다. 산으로 들어간 사람들은 식량과 탄약이 부족하다. 그들의 향후 투쟁방침에 대한 교시를 내려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 가까운 시일에 농민 투쟁이 개시될 수 있다.(46년10월21일)

빨치산 투쟁과 폭동 투쟁에 대해서도 남로당은 소련의 지시를 구하고 있다. 빨치산 폭동은 남로당과 소련의 입장이 맞아 떨어진 결과였다. 미군이 다스리는 남한이 혼란할 수록 소련의 위상은 높아 갈 것이었다. 박헌영은 스티코프에게 빨치산 투쟁으로 식량과 탄약이 부족하다며 호소하고 있다. 빨치산 투쟁이나 남로당의 폭동은 소련에게 자금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이자 청구서였다. 폭동이 극렬할수록 박헌영의 ‘청구서’의 금액은 높아질 수 있었다.

조선공산당은 폭동을 통하여 막대한 자금을 조성할 수 있었다. 그러나 잃은 것도 있었다. 10월 폭동으로 인하여 조직이 노출되면서 폭동 진압에 의해 공산당 조직은 궤멸적 타격을 입게 된다. 그러나 조선공산당은 46년 11월의 좌익 3당 합당으로 인한 남로당 창당과 47년 초의 당원배가운동으로 난관을 돌파하게 된다.

스티코프 비망록에서는 남한에서 좌익3당 합당이 지연되고 있을 때 蘇군정 최고지도부와 북로당이 좌익3당 합당의 진행을 위해 직접 남쪽 정치상황에 개입하고 있음도 보여준다. 3당 합당 과정에 蘇군정이 직접 개입했음이 문서로 처음 밝혀진 것이다. 그리고 궤멸되었던 남로당(공산당)이 47년 초부터 당원배가운동에 적극 나서 재기할 수 있었던 것도 46년 12월 7일 박헌영에게 전달된 1백22만 루블의 소련 자금이 원동력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제주도에서도 남로당 당원배가운동이 벌어지고, 민청, 부녀동맹, 민전 등의 남로당 외곽단체들이 집중적으로 결성된 것도 47년 초였다. 바로 소련 자금이 남로당으로 유입된 직후의 시기였다. 남로당 제주도당의 조직 부흥은 소련 자금의 수혜 덕분이었다.

제주의 민청과 민전은 후일 4.3폭동에서 주력을 담당하게 되는 단체들이다. 그리고 이들은 47년 3월 1일 북국민학교에서 3.1집회를 주도했고, 3.1절 집회는 가두시위로 이어져 난동으로 변했고 발포가 이루어진다. 4.3진상보고서는 4.3이 발발하는 단초가 되는 것은 3.1절 발포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소련 자금은 제주도에서 남로당의 창궐과 3.1집회를 가능하게 만들었다. 4.3진상보고서의 논리대로라면 4.3의 격발쇠는 소련이 당긴 것이 된다.

소련으로부터 자금줄 역할을 했던 것이 남로당의 ‘폭동’이었다면 남로당으로서 폭동은 님도 보고 뽕도 따는 일석이조의 짭짤한 사업이었다.

그렇다면 역시나 4.3폭동도 10월 폭동의 구조와 다를 바가 없다. 4.3은 남로당의 금고에 루블화를 채워주는 남로당의 ‘사업’이기도 했고, 미군의 체면을 구겨 소련의 위상을 높여주는 ‘혼란’이기에 소련의 ‘사업’이기도 했다.

4.3폭동의 이면에 숨어있는 이런 내막을 꿰뚫어 본 것은 조병옥이 있던 경무부였다. 경무부 공보실장 김대봉은 1948년 5월 18일과 5월 20일자의 동아일보에 제주폭동 현지답사기를 기고했다. 그 글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보라 조선인민은 죽음으로써 단선단정을 반대하고 있지 아니한가’라는 ‘프라우다’지의 논평일편(論評一片)과 ‘모스크바’ 방송의 하로(하루)밤 자료를 공급하자는 것이 ‘크레믈린’의 의도요 이 의도를 조선출신 소련인들이 충성스럽게 실행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우리 동포와 아까운 혈육을 스타린의 회심의 미소를 사기 위한 접시찬거리로 진상하여는 것이다.(31)

남로당은 스트코프에게 ‘우리들의 남조선 동지’들이었고, 대한민국의 경무부에게 남로당은 ‘조선출신 소련인’들이었다. 소련 신문 프라우다지의 논평 한 줄과 모스크바 방송의 하룻밤 자료를 위하여 남로당은 제주도민들을 유혈의 폭풍 속으로 내몰았던 것이다.

애초에 4,3폭동은 5.10선거 반대와는 관계가 없었다. ‘2월 중순과 3월 5일 사이에‘ 일으키라는 폭동은 3개월 후에 있을 5월 10일의 선거를 방해하기에는 너무나 이른 시간이었다. 그러나 스티코프 비망록을 읽고나면, 지령문에 나타난 폭동 발발 시기에 이해가 간다. 소련으로부터 주문이 왔기 때문이다. 1.22검거사태로 폭동이 불발되었지만 김달삼이 발 벗고 나서서 다시 폭동을 강력하게 재추진 해야만 했던 이유도 이해가 간다. 박헌영은 소련으로부터 ’클레임‘을 먹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소련의 ’주문‘에 남로당은 ’납기일‘을 늦추지 않으려고 최대한 노력한 것이다.

스티코프 비방록은 10월 폭동을 10월 항쟁으로 불러야 한다고 주장했던 좌익들은 스트코프 비망록 때문에 뻘쭘해졌을 것이다. 스티코프 비망록은 남한 현대사를 밝혀주는 등불 같은 것이었다. 4.3폭동에도 스티코프 비망록을 대입해보면 4.3의 미스테리는 아귀가 딱딱 맞으며 수수께끼가 풀어진다. 북한에 있는 스티코프 비망록 전체가 햇살 아래로 나와 준다면 남한 현대사의 수수께끼나, 남한 좌익들이 왜곡한 현대사도 암흑을 걷어내며 진실을 드러내게 될 것이다.



김동일
전국논객연합 회장. 제주자유수호협의회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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