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 명분 없는 5.18은 폭동반란 (만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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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만토스 작성일13-05-05 23:24 조회8,194회 댓글2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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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 名分 없는 5.18은 폭동반란이다
광주5.18 비극의 名分을 “民主化”라고 말하지 못하면 그 사건 자체가 애초부터 권력찬탈을 노린 혁명의 企圖이며, 나타났던 현상은 暴動叛亂이라고 정의 할 수 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5.18관련단체, 민주화 광신도들, 종북 좌파세력은 5.18광주의 비극을 거론할 때 반드시 “민주화 운동”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려 한다. 그들 모두는 5.18이 민주화라는 성스러운 名分으로 포장되기를 바라는데, 만일 그렇지 못하면 스스로 폭동반란을 일으켰던 폭도들로 불려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5.18광주의 비극이 1980년 당시의 대한민국 정치정세를 분석해 본 결과 5.18관련자와 그 광신도들이 주장하는 “민주화”라는 명분과는 전혀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입증해 보이려고 한다. 즉 처음부터 5.18사태는 대한민국 민주화를 위한 정치활동과는 거리가 멀었다는 결론이다. 이제 김대중이 사조직화한 국민연합이라는 재야정치 집단이 소위 민주화라는 이름으로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밝혀 보겠다.
1979년 12월26일 박정희 전 대통령 시해사건이 발생한 후 1980년 5.18비극이 발생할 때까지 5개월 간의 정치상황을 나열한 후, 과연 김대중 세력이 일으켰던 5.18사태가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필수불가결한 과정이었는지를 따져 볼 것이며, 만일 김대중 세력이 주장하듯이 당시에 정치활동에 제약이 없었는데도 그들만의 선택으로 전국적 시위확산을 통한 최규하 과도정부에 대한 권력 찬탈의 음모가 드러난다면 그들의 민주화 名分은 곧장 사라지는 것이다.
1) 박정희 시해사건으로 5.18측이 말하는 독재정치는 사라지고 최규하 과도정부가 들어 섰으며, 과도정부는 유신정권 하에서의 모든 정치탄압을 점차 해제시킬 것이며, 자유로운 정치활동을 통해 과도정부 1년 내에 대통령 선거를 실시한다고 대국민 성명을 발표했었다.
2) 김영삼과의 신민당 대선경선 패배를 예상한 김대중은 국민연합을 私組織化 하여, 제1조직은 반체제운동 복학생으로 구성된 ‘민주연합청년동지회’ 김대중의 전위조직으로 결성하여 학생운동을 전담시키고, 제2조직은 ‘민주헌정동지회’로 일반인을 상대로 김대중의 외곽전위조직을 결성했으며, 제3조직은 ‘한국정치문화연구소’로 20-40대의 정치지망생로 구성한 김대중의 외부 사조직으로 결성 했다.
3) 4월에 접어 들어 대학가에서는 학원민주화를 둘러싸고 전국 85개 대학 중 40개 대학에서 학내시위, 단식투쟁, 철야농성, 총장실점거 등 실력행사가 빈발한다.
4) 4월14일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중앙정보부장 서리에 취임한다고 발표하였으며, 4월21일 사북탄광 노조폭동사태가 발생했고, 5월1일 서울 대전에서 최초 학생가두시위 발생, 5월3일 서울대총학생회에서 15일 대규모 가두시위를 예고하고, 김대중은 학생운동을 정당한 저항이라고 발표한다.
5) 5월12일에는 더욱 과열양상을 띄는 학생시위를 기화로 제주도를 포함 전국비상계엄학대 공포, 같은 날 김대중의 국민연합이 ‘민주화 촉진국민연합대회선언문’을 발표한다. 그 내용은 비상계엄령 즉시 해제, 신현확 총리와 전두환 보안사령관의 즉시 퇴진, 정치범의 전원석방과 복권, 언론자유보장, 유신정우회 통일주체국민회의 정부개헌심의위원회의 즉시 해체에 대해 정부의 명확한 대답을 국민 앞에 밝힐 것이며 이 요구가 관철되지 않으면 5월19일 정오를 기하여 행동강령에 기초하여 우리 국민은 투쟁에 나선다.
6) 5월18일 0시를 기해 김대중 등 반 체제인사들이 ‘내란선동 및 음모혐의’로 체포되고, 광주에서는 계엄령이 선포된 그 날 바로 광주사건이 시작되었다. 그것은 갑자기 일어난 것이 아니고 ‘김대중’조직의 계획적 행동이며, 전국계엄령에 대결하는 궐기였다고 계엄사가 발표한다.
한 마디로 김대중과 국민연합 사조직은 최규하 과도정부를 무너뜨리고 권력을 획득하려고 청년학생들을 동원하여 국가를 혼란에 빠뜨린 셈이다. 그러나 최규하 정부는 김대중 세력의 정국혼란 기도를 전국계엄령 선포로 맞섰으며, 결국 광주에서 사전에 철저하게 준비되었던 김대중 세력은 계엄군을 자극하고 광주시민을 끌어들여 5.18광주의 비극을 초래하고 만다. 더욱 불행한 일은 북한으로부터 침투한 특수군인들이 광주시민들을 사살하고 유언비어를 살포하여 계엄군의 잔인성을 부각시키는 교란작전을 폄으로써 폭동반란을 심화시켰다고 탈북군인들이 증언한다.
5.18단체와 광신도들은 5.18을 “군사독재를 종식시키려는 일념으로 용감한 광주시민들이 국군의 무자비한 진압에 맞서 민주화를 요구하며 싸웠던 민주화 운동”이라고 주장하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이미 끝난 박정희의 유신독재를 언급하며 최규하 정부의 1년 내 大選약속도 완전히 무시하고 일으켰던 5.18폭동반란에 민주화 운운 하는 것은 참으로 교활한 대 국민 속임수다. 김영삼 집권을 예상한 김대중이 정상적 집권 不可를 간파하고, 청년학생들을 앞세운 불법폭력 시위를 이용하여 정부를 전복시키고 국민연합 세력이 권력을 획득하려는 막다른 선택을 했던 것이 바로 “5.18폭동반란”이었음이 역사기록은 말하고 있으며, 5.18의 民主化 名分은 완전하게 사라진 셈이다. 이상.
2013년 5. 5. 만토스
댓글목록
장여사님의 댓글
장여사 작성일
민주화를 운운 하는 자들이 멍청한것이지요.
5.18이 민주화 운동이라면 대한민국 남한 사람 다 때려 죽이고
북한에가서 통일되었다고 만세 부를 자들이 진보[좌파]란?자 들이라는것입니다.
심심도사님의 댓글
심심도사 작성일
불법시위 였으며,
폭동이었었지요!!!!
맞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