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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명이 어떻게 올 수 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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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13-05-08 23:33 조회12,57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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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00명이 어떻게 올 수 있느냐?  

                       600명의 업적이 양아치 계급에 어울리는가?  

군사지식이 일천한 사람들은 당연히 이런 말을 한다. 특수부대 600명이라면 2개 대대 규모인데 그 많은 인력이 어떻게 들키지 않고 광주에까지 올 수 있느냐는 의문을 제기한다. 아울러 그 많은 특수군이 광주에까지 오는 동안 이를 감지하지 못한 당시의 군과 정부는 직무를 엄청 유기한 것이 아니냐는 공분도 표출한다. 

전두환을 잡아넣기 위해 검찰이 근 2년 동안이나 연구해 발표한 1995년 7월 18일의 검찰보고서에는 분명 5월 21일에 300명씩의 2개 조가 아시아자동차에서 대량의 장갑차와 트럭 버스 등을 탈취하여 그 차들을 가지고 전남지역 17개 시군에 산재한 38개 무기고를 향해 떠났고, 오전 12시부터 오후 4시까지 무기를 털었다는 기록이 있다.  

그런데 민간인 사망자 166명 중 5월 19일과 5월 20일까지 사망한 사람은 13명, 전체 사망자 166명에서 13명을 제외한 153명만이 5월 21일 활동했던 사람들이다. 여기에 1심에서 유죄판결을 받은 283명을 보태면 436명이 된다. 이들이 5.18유공자의 최정예 광주시민이었다, 이들의 계급은 광주의 유지들이 필자에게 일러준 대로 양아치 계급 그대로였다. 5.18의 1등 공신 436명!  

황석영이 쓴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라는 책은 북한의 대남공작 역사책 ‘광주의 분노’를 베껴 쓴 책이다. 이 책의 제35쪽에는 “600명으로 구성된 폭동군중의 한 집단”으로 표현돼 있다. 5월 21일 600명(300+300)이 수행한 혁혁하고 화려한 작전은 세계 최정상급의 특수군 정도라야 수행할 수 있는 고난도의 작전이요 머리가 비상한 작전계획이었다.  

아시아 자동차 공장에 가서 아무런 잡음-소란 없이 깨끗하게 300여대의 트럭과 4대의 장갑차를 신사적으로 공출받기 위해서는 20사단 지휘부 차량을 탈취해야 한다는 기막힌 생각, 미장이, 자개농 시다, 용접공, 껌팔이, 구두닦이, 양아치 등의 천민계급이 할 수는 없는 대상이다.  

             600명의 특수군이 어떻게 멀리 광주에까지 올 수 있었다는 말인가?  

어떻게 그 많은 600명이 후방인 광주에까지 왔는가? 당시 중앙정보부 및 보안사의 대공정보를 총괄했던 사람은 이학봉이다. 이학봉은 필자에게 이런 말을 해주었다.  

“수십 명 정도 와서 배후 조종했다는 것은 판단이 갔던 사항이다. 하지만 600명이 왔다면 대한민국이 다 뒤집어 졌을 것이다. 그런 말 지박사가 하면 공연히 애써서 쓴 ‘수사기록으로 본 12.12와 5.18’의 진가가 훼손되니 그런 말 안 했으면 좋겠다.”  

이른바 신군부의 대북정보 사령탑이었다는 이학봉이 이 정도의 시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 600명이 드러내 놓고 우리 공수부대를 위시하여 60만 대군과 맞상대를 불러 정규전을 수행하러 왔겠는가? 그들은 요소 요소에 박혀 사회에 불만을 가진 양아치 계급을 매수 또는 협박하고, 이 나라에 불만을 가진 전라도 사람들의 공분을 부추기고 유언비어와 감언이설로 부나비들을 선동-협박하여 앞장서게 하고 뒤에서 군중심리를 자극하는 유언비어를 퍼트려 대규모 폭동을 연출하러 온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비로소 10만 도시게릴라 작전을 연출해낼 수 있었던 것이다. 북한이 바보인가? 600명이 아니라 6만명을 보냈다 해도 람보식으로 60만 대군을 상대로 싸우려 했다면 이는 자살행위다. 그만큼 당시 정부의 판단능력과 감시능력을 엉터리였던 것이다.  

                                 600명은 무엇 때문에 왔는가?  

그러면 600명이 내로라하며 대낮에 집단으로 침투했다고 생각하는가? 북한이 그렇게 바보인가? 11명 단위, 23명 단위, 31명 단위. . 이런 식으로 소조단위의 침투를 했다고 말해주지 않는가? 군의 입발린 주장대로 전방-해안이 물 샐 틈 없이 경비됐다면 1968년 1월 21일 김신조가 속한 33명(31명은 오류)이 청와대 문 앞에까지 어떻게 침투할 수 있었으며, 그해 10월 30일 무장간첩 126명이 어떻게 울진 삼척에까지 침투하여 이승복을 포함하여 람보식 학살 작전을 수행할 수 있었겠는가?  

                                 전국봉기는 김일성의 영원한 주문  

10.26 전에 김일성은 박정희 대통령을 제거하기 위해 부마사태를 배후조종했고, 10.26이후에는 통전부를 풀-가동하여 적화통일을 위한 결정적 시기를 만들어 내려 광분했다. 이것이 부마사태요 사북탄광사태요 광주사태였다.  

탈북자들이 북한의 여러 곳에서 들은 이야기들을 종합해 보면 이들 600명은 10명, 20명, 30명 단위의 소조로 잠수함을 타고 또는 남한에서 납치한 어선들에 엔진 4개를 달아 엄청난 속도를 내는 남한 어선으로 가장하고, 심지어는 땅굴을 통해 소조 단위로 넘어왔다.  

10.26직후부터 5월 중순에 이르기까지 장장 6개월에 걸쳐 넘어왔고, 상당한 규모의 일부는 고첩들을 동원했다 하지 않는가? 필자는 중령-대령으로 국방연구원에 있으면서 최전방의 철책선과 해안과 육해공군 레이더 기지들을 두루 다니면서 우리의 경비망이 얼마나 허술한지 속속들이 파악한 사람이다.  

여기까지만 설명하고 탈북자들이 북한에서 들었다는 이른바 ‘카더라통신’을 소개하고자 한다. 비록 ‘커더라 통신’이지만 이는 북한에서 탈북자들이 들었던 진솔한 이야기들이다. 이 이야기들은 한국군의 실정을 누구보다 많이 안다 할 수 있는 필자에게 상당히 합리적으로 들리는 이야기들이었다.  

                                           탈북자들의 증언  

증언1. 교육자의 시각에서 본 5.18사건 (전 함경남도 금야군 고등중학교 교원) 

내 내연남 안창식이 11명을 이끌고 잠수함에서 하선하여 남쪽의 안내원을 따라 도착한 곳은 남조선의 전라도지역인 목포라는 해안가 도시의 작은 상점가계 안방이었다. 침투인원들은 그곳에서 7명의 현지 북한요원들(그들 일곱 사람은 이미 전에 북한에서 파견되어 내려온 공작조)을 만났고 그들을 통해서 앞으로 전라도 지역에서 계획하고 있는 작전내용과 이를 위한 사전준비 작업이 무엇인지에 대한 임무사항을 전달받았다.  

그들이 당시 임무내용을 전달받으면서 한순간에 파악했던 것은 조만간 남조선에서 4.19인민봉기를 능가하는 전국적인 대규모의 인민항쟁이 무장폭동의 성격으로 준비되고 있다는 사실이었으며 자신들이 목포지역으로 급파된 것도 그 일을 준비하기 위해서였다는 것이었다. 본인의 말에 의하면 그들이 목포에서 만난 7명의 북한요원들은 박정희 대통령이 사망하기 전에 부산과 마산에서 일어났던 대학생들의 반정부폭동을 배후조종하기 위해서 파견된 사람들이었고 북한은 부산, 마산 폭동을 5.18광주사태와 마찬가지로 전국으로 확대할 계획이었다고 한다.  

부산, 마산사태가 전국적인 인민봉기로 확산되지 못하고 조기에 진압된 것은 폭동이 일어나게 된 동기와 확대될 수 있는 명분이 취약했으며 부마사태의 정당성에 대한 지역 민심의 합법적인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았던 것이 주요한 실패의 원인이라고 했다. 

미리 침투해있던 7명의 인원들과 합류한 안창식을 비롯한 11명의 인원들은 여러 개의 소조로 분산되어 전라도 현지에서 북한의 지령을 받고 움직이는 조직들이 사전에 확보해놓은 무기고들의 위치를 재확인하는 한편 새로운 무기고들의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서 3개월여 동안 전라도 전 지역에 대한 정찰을 이 잡듯이 샅샅이 진행하였다고 한다.  

1980년 2월말을 넘기면서 폭동이 전개되면 임의의 시기에 무기탈취가 원만히 진행될 수 있도록 전라도지역에 포진되어 있는 무기고들에 대한 사전파악과 요해사업이 성과적으로 마무리 되었다. 1980년 3월로 계획되어있던 광주폭동이 5월로 늦어진 것은 1980년 4월말에 일어났던 강원도의 사북탄광사태와의 밀접한 연관 때문이었다.  

사북탄광에서의 폭동조짐을 첩보망을 통해서 사전부터 구체적으로 감지하고 있던 북한은 3월로 예정되었던 광주폭동을 4월말로 연기하라는 지령을 내려 보냈고 득보다 실이 많은 산발적인 소요보다는 전국각지에서 일시에 동시다발적으로 들고 일어나는 전국규모의 항쟁이 성격으로 보나 위력으로 보나 훨씬 효율적이라는 것을 계산하였다. 

목포에 침투하였던 11명의 요원들이 사북탄광사태에 직접적으로 개입한 일은 없었다고 했지만 그들의 말로는 그곳에도 북한의 계획적인 지령을 받고 파견된 별도의 특수부대요원들이 잠입하여 사북사태가 강원도지역 전반으로 확산되도록 배후를 은밀히 조종하였다고 증언하였다. 

증언2. 북한군건설여단 33명의 떼죽음 속에 숨겨진 광주의 비밀

(전 함경북도 무산군 도시건설사업소 노동자. 제대군인) 

나의 부대는 공병국 27건설여단 

내가 북한에서 군사복무를 한 부대는 공병국 산하 27건설여단이다. 북한에서 건설여단이라 하면 인민군대 중에서도 제일 수준이 낮은 부대로 취급되고 일년에 총 한방도 제대로 쏴보지 못하는 부대라고 정평이 나있다. 그만큼 정규군의 특징을 갖고 전쟁을 대비해서 훈련을 하는 부대가 아니라 군복을 입고 총은 들고 있지만 국가적으로 제기되는 특수한 건설대상들을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부대이기 때문이다.  

이 부대들이 기본적으로 담당하는 건설대상들은 김일성, 김정일과 연결되어 있는 혁명 사적지를 만든다든가 별장과 도로를 만드는 일, 남조선으로 내려오는 땅굴을 파는 일, 외부에 노출되지 않는 지하 군수공장을 만드는 일 등 일반 사회부문 건설 자들이 맡을 수 없는 일들이다.  

증언11. 5.18광주와 북한 (전 조선작가동맹 작가)  

광주에서 무장폭동이 시작돼서 진압군과 시민군이 가장 치열하게 맞붙어서 교전을 벌리는 날 이들에게 남쪽으로 침투할 데 대한 임무가 떨어졌다고 하였다. 그런데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 사람들이 남조선으로 들어오는데 이용한 통로가 다른 사람들이 한 결 같이 이구동성으로 해상이라고 말하는 것과는 180도가 완전히 다른 특이한 통로였다.  

그들 23명은 북한의 강원도 철원 쪽에서 갱도(땅굴. 북한식 표현으로는 갱도)안으로 들어갔고 그 통로를 따라서 남쪽으로 내려왔다고 하였다. 남조선으로 내려가서 배후 작전을 수행하라는 임무를 분명히 받았는데 왕청같은 갱도 안으로 길안내를 해서 처음에는 그 형님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모두가 영문을 몰라서 어리둥절했다고 한다.  

북한에서 오래전부터 공병부대들을 전문적으로 동원하여 유사시 남쪽으로 이용할 땅굴을 많이 팠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자기네들이 걷는 길이 설마 땅굴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는 것이었다. 땅굴은 시멘트로 구축해서 영구화되어 있는 상태는 아니었고 규모는 탱크(북한말로 땅크)나 차량이 통과할 수 있는 폭 정도는 안 되지만 순수 전투부대들은 충분히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라고 하였다. 그들이 남한의 어느 지역까지 와서 갱도바깥으로 나왔는지는 한밤중이어서 지도상으로 계산해도 잘 알 수 없었다고 했고 밤중에 살펴봐도 주위가 한산한 농촌마을은 분명하였다고 하였다. 남쪽 갱도의 출입구에서 그들을 마중한 것은 두 늙은 내외라고 하였다.  

소부대작전은 주로 대낮보다는 밤에 진행되는 것이 관례지만 23명이라는 인원이 밤길에 동시에 움직이면 계엄령이 선포된 상황에서 분명히 위험한 일이기 때문에 그들은 여러 개 조로 분산되어 전라북도지역으로 출발하였다고 한다. 그들이 북한을 떠나기 전에 지휘부로부터 받은 일차 타격목표는 전라북도 지역에 있는 군사시설 및 정부기관들이라고 하였다. 충청남도의 관할구역을 거의 벗어나서 전라북도 지역으로 들어설 무렵에 임무를 취소하고 시급히 전체인원이 당장 부대로 복귀하라는 날벼락 같은 명령이 그들에게 떨어졌다고 한다.  

어렵게 남조선 땅을 밟고서도 총도 한방 제대로 쏴보지도 못하고 되돌아오라는 명령을 받았을 때 함부로 행동할 수 없는 적후라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지만 너무 분통이 터지고 기분이 상했었다고 했다. 임무 대상이 코앞에 있었지만 상급의 명령이니 어쩔 수 없이 도중에서 발걸음을 돌리지 않으면 안 되였다고 그 형님은 안타까웠던 그때의 심정을 소상하게 이야기해주었다.


                                               땅굴 이야기 
 

여기에서 땅굴 출구를 노부부가 지키고 있었고, 이들이 길을 안내했다는 이야기는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 필자가 여러 경로를 통해 들은 바로는 노부부가 외딴 곳에 집을 지키고 있는 곳은 일단 땅굴 출구로 의심할만한 곳이다. 필자는 김진철 목사가 주장하는 연천 땅굴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김목사님이 나타나시기 전에 국방부 및 육군 땅굴 담당자들을 상대로 싸우다가 소송을 당해 500만원의 벌금을 문 적이 있다.  

연천땅굴은 지질학자, 폭파전문가, 토목공학 박사 등 8명의 전문가들이 북한의 폭파공법에 의해 뚫어진 인공땅굴이라지만 빨갱이 김대중은 200년 3월 초 김정일에 접선을 요청하려 베를린에 가면서 이를 천연땅굴이라며 방패막이를 해주었다. 연천땅굴을 반드시 절개돼야 한다.  

땅굴 문제로 국방부와 싸우다 1998년에 벌금 500만원을 물은 사람은 오직 필자 혼자뿐이다. ‘휴전선 이하 4km를 넘는 땅굴은 없다’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과학자도 아니고 겨우 고등학교를 졸업했거나 별 볼 일 없는 대학에서 학업에 보다는 정치판에 뛰어들어 청춘을 부나비처럼 불살라버린 때 묻고 오염된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필자는 남굴사의 창설멤버였다. 필자는 몸 에너지가 부족하여 다른 일들이 많아 땅굴 프로젝트에서 떠났지만 한 결 같이 싸우는 김진철 목사님-이종창 신부님-이창근 선생-박찬성 목사님을 비롯한 애국자들에 경의를 표한다. 

 

2013.5.8.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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