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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누구 믿고 정부에 선전포고 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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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13-05-09 20:59 조회9,18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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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대중 누구 믿고 정부에 선전포고 했나?

 

5월16일, 학생시위가 전국 규모의 폭동으로 확대되고 있다는 사실에 고무된 ‘국민연합’은 ‘제2차민주화촉진국민선언문’을 발표했다. 이는 5월 22일에 국가를 전복시키겠다는 선전포고였다. “비상계엄의 즉각 해제, 신현확 총리의 즉각 퇴진, 정치범의 전원석방 및 복권, 언론의 자유보장, 유정회, 통일주최국민회의와 정부 개헌심의위원회의 즉각 해체 등에 대하여 5월 19일 10시까지 정부가 명확한 답변을 하지 않으면 5월 22일 정오를 기해 전국적인 대정부투쟁에 돌입할 것이다. 비상계엄은 무효이므로 국군은 지시에 복종하지 말 것이며, 언론은 검열과 통제를 거부하고, 전 국민은 민주화투쟁을 용감히 전개한다”  

국민회의는 이 선언문을 서울 소재 대학들에 배부하여 학생선동을 본격화했다. 이는 학생시위의 기세를 믿고. 과도정부를 물렁물렁하게 보고, 협박성 선전포고를 한 것이다. 당시 수세에 몰렸던 과도정부에는 그야말로 일대 위기가 아닐 수 없었다. 정부가 붕괴하느냐, 김대중이 붕괴하느냐에 대한 목장의 결투였던 것이다.  

같은 5월 16일, 오후 5:40분, 전국 44개 대학총학생회장단이 이화여대에서 연합회의를 열고, 국민회의의 ‘제2차민주화촉진국민선언문’을 재확인하고 5월 22일 봉기에 동참한다는 선언을 했다. 경인지구 15개 전문대학들도 경기공업전문대학에서 회동을 갖고 이에 가세했다. 전국으로 치닫는 이 폭력사태를 방치할 경우, 국가 전체가 무정부상태가 되고, 급기야는 국민연합이 의도한 바대로 국가가 전복될 것이라는 예측이 충분히 가능한 상황이었던 것이다. 

김대중에 의한 파행적 정국장악력이 날로 고조돼 가는 가운데 정부도 부산하게 움직였다. 1980년 4월 14일, 최규하 대통령은 “최근의 내외정세에 관한 대통령 담화문”을 발표했다. “이란 인질사태, 북한의 도발 책동 등 내외정세가 어려운 이 때 우리 사회일부에서 시국의 중대성을 생각함 없이 국민단합을 저해하는 언동을 하는가 하면, 일부 대학가에서 대학군사교육을 거부하는 등 소란이 계속외어 사회질서가 교란해지고 있는 것은 매우 유감입니다. 우리 국민 모두가 애국적 견지에서 자제와 하합으로 대동단결하여 국가적 시련을 극복해 나갈 것을 당부합니다.”  

안에서는 상황이 몹시 어지럽게 돌아가고 밖에서는 북한의 위협이 고조되는 가운데 최규하 대통령은 10.26 이후 기능수행이 불가능했던 중앙정보부의 기능을 정상화시켜야 한다는 판단 아래 4월 14일, 전두환을 중앙정보부장서리로 임명했다.  

1980년 4월 23일, 최규하 대통령의 지시로 신현확총리가 대책회의를 주재했다. 이한빈 부총리, 박동진 외무, 김종환 내무, 백상기 법무, 주영복 국방, 김옥길 문교, 이희성 계엄사령관이 참석한 대책회의에서 학원 및 노조의 과격한 행동에 대해 단호하게 대처할 것을 결정했다.  

1980년 4월 27일, 최규하 대통령은 이원홍 민원수석을 시위현장에 보내 시위상황을 직접 보고받은 후, 이원홍 수석을 계엄사령관에 보내 극렬하게 전개되는 학원소요 및 노사분규에 대해 강력히 대처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1980년5월10. 김옥길 문교장관, 전국 85개 대학 총장 및 학장회장을 소집하여 학생시위가 도를 넘었다는 사례들을 지적하고, 학칙을 단호하게 적용하고 범법자를 입건한다는 정부시책을 전달했다.  

1980년5월14일, 신현확 국무총리, 서울대, 연세대, 교대, 이대 총장들과 회동하여 총장들이 학원소요를 수습하는데 최선을 다해 달라고 호소했다.  

1980년 5월 15일, 서울역 시위에 의해 서울일원이 무법천지가 되자 신현확 총리가 다급한 호소문을 발표했다. “일부 학생들의 집단가두시위로 치안이 마비상태에 빠져 . .틈만 있으면 무력 등 온갖 방법으로 적화통일 하겠다는 야욕을 버리지 않고 있는 북한이 가만히 보고만 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 .사회의 안녕질서가 파괴되고 혼란이 생겨 국가안보가 위태로워지고 경제파탄이 온다면 국민 모두가 바라는 민주발전에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 .” 

                                               계엄사의 움직임  

계엄사도 빠르게 움직였다. 정도를 일탈한 재야 세력의 만행을 그대로 지켜보고 있을 수만은 없었던 것이다. 1980년 4월초, 치안본부는 계엄위원회에 무정부 상태에 대한 통계를 보고했다. 1980년 1월부터 3월까지 발생한 범죄에 대한 통계였다. 살인이 64.3%, 강도가 113.9%, 폭력이 20.1%, 절도가 21.4%, 밀수가 122.6% 급증했다는 내용이었다. 이에 성정화 내무장관은 “강력범들에 대해서는 사회복귀가 불가능하도록 강제 노동이나 강제수용 등의 특별관리가 필요하니, 계엄당국이 이를 뒷받침해주었으면 좋겠다”는 건의를 했다. 이는 삼청교육대의 필요성을 암시하는 것이었다. 이에 학생의 폭력시위, 노동세력의 폭력시위가 연일 끝 간 데 없이 치닫고 있어 종교계, 경제계, 언론계 등에서 파국적 난국을 하루 빨리 수습해달라는 요구가 빗발쳤다.  

1980년 4월 27일. 최규하 대통령은 이희성 계엄사령관에게 학원소요사태에 강력하게 대응 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1980년4월30일, 이희성 계엄사령관은 전국 계엄지휘관회의를 열어 학원-노조의 난동이 법치주의의 한계를 넘은 것이므로 단호하게 대처할 것을 지시했다. 5분 대기조 편성, 진압훈련 등 소요사태 대비훈련을 지시했다.  

1980년 5월 3일, 특전사 9여단을 수도군단에 배속시켰다. 1980년 5월 7일, 특전사 13공수여단을 서울 거여동에 이동시켰다. 1980년 5월 8일, 11공수여단(강원도 오음리)을 김포에 이동 배치했다(육본작명 제12-80호, 13-80호). 같은 날, 계엄사령관은 각 광역별 계엄분소에 지역기관장 및 교육감, 대학총장 등으로 구성된 ‘학원사태수습대책협의회’를 운영할 것을 지시했다.  

1980년 5월 13일, 계엄사령관은 김재명 작전교육참모부장을 ‘소요사태대책본부장’으로 임명했다. 한편 국방부 장관은 전군에 대간첩태세 강화 지시를 내렸고, 5.15에는 간첩침투가 예상되는 152개 취약도서에 일제히 수색작전을 실시했다. 1980년5월 14일, 학원소요가 전국적으로 확산되어 경찰병력으로는 진압이 불가하다는 판단과 아울러 계엄군의 출동이 요청된다고 신현확 총리에 보고했다. 김종환 내무장관으로부터 계엄군의 출동을 요청받은 계엄사령관은 정호용 특전사령관에게 특전사 6개 여단을 소요사태 진압에 투입할 수 있도록 준비하라고 지시했다(작전 제0-203호).  

1980년 5월 15일, 주영복 국방장관과 김종환 내무부장관이 한 헬기를 타고 서울 시내 시위상황을 직접 점검했다. 그리고 즉각 20사단 3개 연대를 잠실종합운동장과 효창운동장에 출동시켰다. 서울역 10만 시위대를 지휘했던 심재철이 갑자기 청와대 진입을 포기하고 회군을 했느냐에 대해 민주화세력들은 참으로 아쉬워하면서 이를 미스터리로 취급하고 있다. 아마도 군의 출동을 의식하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1980년 5월 16일 밤 10:30분, 최규하 대통령이 중동으로부터 급거 귀국했다. 당시 최규하 대통령은 오일쇼크로 인한 심각한 유류부족 현상이 일어나자 이를 타개하기 위해 5월10일 중동순방길에 올랐지만, 5.14일부터 소요사태가 심각해지자 에너지 외교를 중간에 포기하고 급거 귀국한 것이다. 신현확 총리를 위시하여, 김종환 내무, 백상기 법무, 주영복 법무, 이희성, 전두환 중정부장서리 등으로부터 상황을 보고받고 나서 대통령은 숙연한 말을 했다, “외국에 나가보니 국내가 시끄러워 창피한 마음이 들었다. 이 나라를 후손들에게 제대로 물려줄 수 있을지 걱정이 된다.”  

1980년 5월 18일, 수경사 헌병단, 30단, 33단 병력 670명과 전차 8대, 장갑차 22대가 청와대 특정구역을 경계하기 시작했고, 1,2,3군 지역 내에 있는 71개 방송국, 중계소들에 1,067명을 출동시켜 경계하기 시작했다.  

                                       보안사도 움직였다.  

5월 10일, 중앙정보부장서리인 전두환은 일본으로부터 남침에 대한 구체적인 첩보를 접수했다. 10.26 사건의 처리과정에 보듯 국가에는 전두환 말고는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나서는 사람들이 없었다. 같은 날 전두환은 이학봉 수사국장을 불러 학원소요 대응방안을 검토하라 지시했다.  

5월1 2일, 이학봉 수사국장은 전두환 중정부장서리에게 학원시위를 근절하려면 배후 조종자에 대한 사법처리가 불가피하다는 방침과 사법처리 대상자 명단을 보고했다. 국민연합, 민주청년협의회(복학생), 전국총학생회장단 핵심간부들이었다. 학생시위의 명분 중의 하나인 이후락과 같은 유신 부정축재를 포함 150여 명이 체포대상에 올랐다.  

한편, 이학봉 수사국장과는 별도로 권정달 정보처장은 “물계엄”으로 빈축을 사던 지리멸렬한 지역비상계엄을 전국비상계엄으로 확대하여 계엄의 권위를 획득하고, 비상계엄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 대통령 밑에 특별자문보좌 기구(국보위)를 설치함으로써 대통령이 직접 계엄업무를 강력하게 집행할 필요가 있다고 보고했다. 재야단체와 어울려 반정부적 성향을 보이는 국회를 해산하고, 새로운 국회를 구성하여 헌법을 개정 등 어지러운 정치적 현안들을 풀어가자는 것도 보고했다.  

5월 13일, 이학봉은 권정달 정보처장으로부터 관련 자료를 협조 받아 검거대상을 두 가지로 분류했다. 소요배후조종자를 ‘국기 문란자’로, 부정 부패자를 ‘권력형 부정축재자’로 정리하여 5월15일에 그 명단을 전두환에 보고했다. 5월 16일, 전두환은 이학봉 수사국장으로 하여금 이희성 계엄사령관과 주영복 국방장관에게 국기문란사건과 권력형 부정축재자 수사계획을 통보했다. 이희성은 그 중 한 사람을 체포에서 제외시켰다.  

5월 17일, 오전, 합수부는 이희성 사령관에게 김대중, 김동길, 김종필, 이후락, 박종규, 김치열 등을 체포하여 조사하겠다는 보고를 하였고, 동일 오전10:00시, 전두환은 시국수습방안을 보고하기 위해 이학봉과 함께 청와대에 도착했다. 최규하는 보고 취지에 동의했지만, 국회해산은 부결하였고, 국보위 설치에 대해서는 취지에는 동감하나 내각과의 관계를 고려하여 관계기관의 의견을 들은 후에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비상계엄의 전국확대는 쾌히 승낙했고, 수사는 즉시 시작하라고 지시했다. 당일인 5.17일 오후 7시경, 최규하는 전두환을 불러 권력형 부장축재자 1명의 삭제를 지시했다. 그리고 이어서 5.19일, 국보위를 긴급명령으로 하지 말고 현행법령의 테두리 내에서 설치하라 지시했다.  

5.17. 11:00경, 이학봉 합수단장은 중앙정보부, 경찰 등 합동수사단 관계자들을 보안사로 소집, 이런 배경을 설명하고, 중정 수사국은 소요를 배후조종한 국민연합관련자들을, 보안사 대공처는 권력형 부정축재자들을, 경찰은 복학생과 재학생 대표자들을 각각 검거하여 수사하도록 조치하고, 5월17일, 밤10:00시를 검거시각으로 정했다.  

이에 따라 5월17일, 오후 6;00경, 이대에서 회의 중이던 전국대학총학생회장들을 검거하기 위해 서울시경 수사관들이 출동했지만, 정보가 사전 누출되어 대부분이 도주한 채, 10여명만을 검거했다. 김대중은 밤 11:00시경 동교동 자택에서 수경사 헌병에 의해 검거되었고, 김종필은 밤 11:00경 자택에서, 복학생 정동년은 밤12:00경 광주지역 자택에서, 김상현은 5월18일 새벽04:00경 제주도 친지 집에서 체포되었다.  

5월 18일 12:00시, 계엄사는 권력형 부정축재자 혐의로 김종필 공화당 총재, 이후락, 박종규, 김진만 의원, 김치열 전내무장관, 오원철 전청와대 경제제비서관, 김종락 코리아타코마 사장, 장동운 전원호처장, 이세호 전육군총장 등을 연행하여 조사 중이며, 동시에 학생소요배후조종자로 김대중 국민연합 공동의장, 예춘호 의원, 문익환 목사, 김동길 연세대 부총장, 인명진 목사, 고은태 시인, 이영희 한양대 교수 등 26명을 연행하여 조사 중이라고 발표했다.  

이중 김대중, 문익환, 김상현, 예춘호, 이해찬, 한승헌, 한완상, 인명진, 고은태, 이신범, 심재철, 설훈, 이문영 교수, 이해동 목사 등 24명은 ‘김대중 내란음모사건 관련자로 육군본부 계엄보통군법회의에 회부되었다.  

5월 18일. 오후 김영삼 신민당 총재가 정무회의를 주재하여 연행자 석방, 계엄군 철수 등을 요구했고, 5월20일 오전 9:00시 상도동 자택에서 기자회견을 열려 하다가 수경사 헌병단 소속 병력 31명에 의해 소위 가택연금을 당하게 됐다.  

6월 18일, 합동수사본부는 권력형 부정축재자들이 재산을 국가에 헌납하고, 공직에서 사퇴하는 것을 전제로 형사처벌을 유보한다는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김종필 216억원, 이후락 194억원 등 총 853억원이며, 이와 관련한 기업인들은 수사를 하지 않을 것이라 발표했다. 6월 23일, 김종필 공화당 총재 등 6명의 공직 사퇴서가 우송되었고, 7월2일, 김종필 등 권력형부정축재자 9명이 연행 46일 만에 석방되었으며, 7월3일, 민관식 국회의장 대리는 김종필, 이후락, 김진만, 박종규, 이병희, 예춘호, 이택돈, 손국항, 김녹영 의원 등 9명의 국회의원에 대해 사직서를 수리했다.

  

2013.5.9.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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