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특별히 찬미-칭송하는 전옥주
페이지 정보
작성자 지만원 작성일13-07-02 18:56 조회12,161회 댓글0건관련링크
본문
북한이 특별히 찬미-칭송하는 전옥주
1985년 5월 16일 발간된 “광주의 분노”는 41-42쪽에 걸쳐 전옥주(본명 전춘심)을 매우 칭송하였다. 이 칭송의 글 속에서 우리는 전옥주가 의식적이든 비의식적이든 누군가에 의해 놀아났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다. 2013년 6월 27일, 우리 회원 경기병님은 광자 작전에 참여했다는 “연고대생 600”의 실체에 대해 문의하였고, 광주시로부터 이런 답변을 들었습니다.
“귀하께서 문의하신 사항에 대하여 알아본 결과 80년 항쟁일지에 ‘스피커를 통해 연․고대생이 서울에서 내려왔다고 발표했다’라는 기록이 있으나, 직접 가두방송을 한 전옥주씨는 그 당시 전달받은 쪽지를 읽었을 뿐 사실여부는 확인하지 못하였다고 증언하고 있고, 3. 5․18민주화운동에 연․고대생 참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다각적으로 노력하였으나 현재까지 객관적인 자료를 확보하지 못하였음을 알려드립니다.”
김대령 박사가 그의 저서(역사로서의 5.18)에서 밝인 바와 같이 전옥주는 누가 전해 주는 쪽지를 읽은 사람이었다.
아래는 ‘광주의 분노’ 41-42쪽에 있는 글이다.
“32살난 마산무용학교 녀교원 전옥주는 본가가 있는 광주에 왔다가 동생들이 참살당하는 데 분격하여 봉기에 참가하였다. 그는 초기에 봉기군중들에게 동을 날라다 주고 물을 떠다 주었으나 어쩐지 그것으로 자기 살 일을 다 한 것 같지 않았다. 무엇을 하면 더 잘 싸울 수 있겠는가 하고 궁리하던 전옥주는 방송을 하면 군중에게 더 큰 힘을 주고 논들에게 커다란 타격을 안겨줄 수 있다는 생각에 미쳤다.”
“하여 전옥주는 방송원이 될 것을 자원하여 나섰다. 마산에 어린 자식들을 주고 있는 어머니였지만 광주 사람들, 아니 동족이 무참하게 살육 당하는데 언제 자식들 생각을 하랴 하면서 봉기자들 대열 속에 뛰어든 그였다. 전옥주는 확성기를 설치한 군용차를 타고 다니면서 열정적인 선동구호로 봉기군중들의 사기를 북돋아 주었다.”
“시민들이여! 모두가 궐기하자! 전두환 악당은 광주시민들을 전멸시키라는 명령을 내렸다! 보라! 공정대의 만행을! 그들은 인간이 아니다. 인두겁을 쓴 짐승이 무리이다! 우리의 항거는 정의적이며 파쑈 폭력에 대한 민주의 폭력이다. 정의와 민주는 반드시 승리한다! 시민들이여! 모두가 궐기하자! 궐기하여 전두환 살인악귀를 타도하자!”
그는 이렇게 웨치며 광주시내의 큰 길들과 골목들을 누비였고 멀리 교외에 까지 진출하였다. 전옥주가 격동적인 방송을 하며 거리를 지나갈 때면 풋낯이나 알고 있던 사람들은 물론이거니와 생소한 사람들도 ‘우리 옥주’, ‘옥주 선생’, ‘마산의 녀선생’ 이라고 하며 총쥔 손을 높이 들어 반갑게 인사하였다. 그럴 때면 전옥주도 비록 처음 보는 얼굴들이였지만 서로가 통하는 마음들이여서 웃으며 손짓하며 반겨주었다.
5월 20일 밤, 전옥주는 봉기군중을 향하여 중대발표를 하는 영광을 가지게 되었다.
“시민여러분! 래일 도청앞에서 중대한 행사가 있게 됩니다. 자유의 광주, 민주의 광주에 일떠세울 광주민주국의 대표들을 선거합니다. 시민여러분! 모두가 도청앞 광장으로 모입시다. 모여서 우리의 대표기관을 선출합시다.”
전옥주는 온밤 광주시내와 주변군들을 돌아다니며 이렇게 외쳤다. 전옥주의 이 방송은 사람들을 몹시 흥분시켰다. 듣는 사람마다 가슴을 뭉클해 하였고 방송을 하는 전옥주 자신도 무한히 격동되였다. 자유의 광주, 민주의 광주를 상징하는 광주국! 광주의 봉기자들이 이 시각을 얼마나 기다리고 또 기다려 왔던가!
결 론
전옥주는 그야말로 엄청난 양의 가두방송을 했지만 그는 누구가가 그 때 그 때 쥐어주는 쪽지를 읽었고, 그 스스로 기억해낸 글이 아직 보이지 않는다. 위 ‘광주의 분노’에 실린 글을 보면 전옥주가 무슨 말을 하고 다녔는지 충분히 이해가 된다. 재판정에 나와 노인들까지 악랄하게 공격한 앙칼진 전옥주는 그야말로 북한의 찬사와 칭송을 받고 있는 사람인 것이다.
2013.7.2. 지만원
http://www.systemclub.co.kr/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