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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하이라이트, 5.18과 북한은 "내통-야합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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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10-04-23 16:52 조회20,42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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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18과 북한은 내통-야합 관계


5.18 광주에 북한 특수군이 왔느냐, 오지 않았느냐? 이 문제는 매우 뜨거운 문제요, 5.18의 진면목을 적나라하게 밝혀주는 주제다. 단도직입적으로 북한군이 광주에 왔느냐, 오지 않았느냐, 이런 식으로 의문을 제기하면 그 다음의 문제는 증거가 있느냐 증거가 없느냐, 이렇게 제기될 것이다.


이 세상에 북한 특수군을 보았다는 사람은 없다. 북한특수군이 광주에 왔을 것이라는 정황증거는 수도 없이 많다. 그러나 북한특수군이 오지 않았다는 정황증거는 하나도 없다. 그렇다면 게임은 정황증거가 많은 쪽이 이기는 것이 아닌가? 이렇게 보면 게임은 끝났다. 그러나 필자는 보다 확실한 승리를 위해 새로운 접근방법으로 이 문제에 접근하고 싶다.


5.18 사람들과 북한이 한편이 되어 반미-반정부-적화통일 투쟁을 벌이기 위해 내통 야합(Collaboration)을 했다는 사실을 증명하고자 하는 것이다. 야합한 증거는 매우 많다. 5.18사람들과 북한이 한편으로 야합돼 있다는 표현은 5.18단체가 필자를 고소하는데 쟁점으로 삼은 ‘5.18광주에 북한 특수군이 와서 그들 나름대로의 작전을 수행하고 갔을 것이라는 데 대한 심증이 간다’는 표현보다 더욱 강력한 명예훼손이 된다 할 것이다.


1. 5.18 영화의 뿌리: 1991년 상영되기 시작한 북한의 5.18영화 ‘님을 위한 교향시’ 내용과 남한의 5.18영화 ‘화려한 휴가’ 모두가 황석영의 작품에 근거해 있다. 영화의 주제는 반미-반정부-자주통일이다. ‘화려한 휴가’라는 남한 영화의 제목은  황석영이 쓴 ‘광주 5월 민중항쟁의 기록’47쩍-52쪽에 있는 중간제목이며 영화의 장면들은 이 내용들에 기초하고 있다. ‘광주 5월 민중항쟁의 기록’은 5.18을 총정리한 5.18의 교범이다.


북한영화 ’님을 위한 교향시‘는 제목 자체가 황석영 냄새를 풍긴다. 5.18의 노래 ’임을 위한 행진곡‘을 바로 황석영이 작사한 것이다. ’님을 위한 교향시‘의 시나리오는 황석영이 직접 북한으로 올라가서 쓴 것이다. 5.18은 5.18의 대변인 황석영을 매개체로 하여 반미-반정부-적화통일을 위해 북한과 내통-야합한 것이다.     


2. 5.18 음악의 뿌리:
윤이상은 ‘님을 위한 교향시’의 배경음악을 작곡했다. 그 배경음악의 주제곡은 빨갱이들이 부르는 반역의 노래 ‘임을 위한 행진곡’과 북한과 5.18사람들이 한마음이 되어 강조하는 ‘통일의 노래’다. 윤이상은  5.18 사람들에게 ‘광주여 영원히’라는 교향곡을 특별히 작곡해 기증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의 가사는 황석영이 만들었다. 5.18의 영웅 윤상원을 따르라는 노래 ‘임을 위한 행진곡’에 얽힌 사연은 5.18사람들과 북한이 내통-야합한 생생한 증거인 것이다. 


3. 김대중의 정체: 황석영의 ‘광주 5월 민중항쟁의 기록’ 20쪽 하단에는 “가난하고 불우한 집에서 법관이 나오기를 기대하는 것처럼 내 고장에서도 인물이 하나 나와야 한다는 민중적 열망이 간절하였던 차에 전남의 대중적 영웅인 김대중이 대통령 출마에서 좌절당하고 고난을 받은 데 대한 반작용”으로 5.18이 일어났다는 표현이 있다.

광주시위의 플래카드와 유인물에는 “김대중을 석방하라”라는 구호가 담겨 있다. 북한의 5.18영화 ‘님을 위한 교향시’에도 “김대중을 석방하라”라는 구호가 쓰인 플래카드가 보인다. 김대중은 5.18의 배후자다.


1980년 판결문에는 .“5.18은 김대중으로부터 사주와 자금을 받은 전남대 복학생 정동년 등이 자금을 살포 선동하여 폭력시위를 유발하고, 홍남순 김성용 등 반체제 인물들이 이에 편승하여 김대중을 수반으로 하는 연립과도정부를 수립하기로 하고 폭도들을 더욱 선동하여 방화, 파괴, 살인, 강도 등의 행위를 저질러 광주를 무정부사태로 만들고 계엄군에 총격까지 가한 폭동”이라고 표현돼 있다. 


이런 김대중이 대통령이 되어 햇볕정책이라는 미명 하에 국민 몰래 적장인 김정일에게 5억달러를 바치는 등 반미-적화통일을 획책했다. 6명의 탈북자들이 '북한에 알려져 있는 김대중'을 폭로했다. 5.18은 남조선에서 공화국을 위해 열렬히 싸우고 있는 김대중을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  김일성과 김대중이 짜고  일으킨 국가전복 폭동이었다는 것이다.(홈페이지 시스템클럽 최근글 496호 참조) 


황석영은 5.18은 김대중이 탄압받고 있는데 대한 반작용이라 했다. 5.18은 김대중이 중심이 된 사건이며, 구태여 1980년의 판결문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김대중과 5.18은 둘이 아니라 하나다. 5.18 단체의 건달들은 2002년 5월 20일, 필자의 사무실에 와서 필자의 서랍에서 김대중의 사진이 나오자 반사적으로 “어, 이거 큰형님 아녀”이렇게 외쳤다.

5.18단체는 2008년 건국 60주년을 맞아 보훈처에서 많은 돈을 들여서 5.18묘지에 설치해준 ‘건국 60주년 기념’ 조형물을 ‘건국개념은 5.18의 숭고한 이념과 배치되는 것’이라며 당장 철거하라 야단을 쳐 보훈청은 즉시 철거했다는 보도가 있다. 5.18사람들도 건국개념을 부정하고 김대중도 건국개념을 부정했다.

김대중은 23세 때 남노당에 가입하여 일본에 가서 북한 베트콩 파들과 반국가단체로 판결된 한민통을 구성했고, 대통령이 돼서는 북한에 충성하는 골수 빨갱이 노릇을 했다. 그가 빨갱이라는 데 대해 이의를 달 사람들은 빨갱이들 말고는 별로 없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5.18 사람들과 5.18의 중심인물인 김대중은 둘이 아니라 하나이며 이 하나는 빨갱이인 것이다. 


4: 5.18 행사의 주인은 북한: 통일부 정보분석실의 분석(주간 북한동향)에 의하면 5.18에 대한 북한의 행사는 매년 평양에서 먼저 열리고, 이어서 전 지역의 시, 도 단위에서 대규모로 열린다. 평양대회에서는 부주석을 위시한  당-정 최고 수뇌부들이 참석한다. 행사의 요점은, 광주민중항쟁의 염원을 기어이 달성하고, 남한에 전민적 봉기를 일으켜 미군을 몰아내고 국정원과 국가보안법을 철폐하고 정권을 타도하여 조국통일을 이룩하자는 것이다.


통일부 자료에 의하면, 한국에서는 광주에서만 기념행사를 하지만 북한에서는 평양은 물론 전국의 시도 단위로까지 확산하여 ‘전국행사’로 개최하며 노동신문 사설, 평양방송, 중앙방송은 물론 각종 잡지 등에서 릴레이식으로 5.18의 뜻을 기리고 남한 빨갱이들을 향해 반미-반파쇼-정권타도를 선동한다.


5. 5.18은 북한의 자산: 탈북자들의 증언에 의하면 북한에는 1만 톤 프레스에 “5.18청년호”라는 이름을 붙였다 한다. 이에 대한 증거는 사진으로 제시돼 있다. 천리마 운동의 하나로“5.18무사고 정시견인차 운동”이라는 것이 있다고도 증언했다. 이는 통일부 자료 목록에도 있고(5.18무사고.정시견인.초과운동 발단 20주 기념보고회”증35 1쪽 42호 표시부분), 북한의 월간지 ‘천리마’ 1995년 제1호 “<<5.18무사고정시견인초과운동>>의 불길 높이”(증36, 78쪽)에도 증거돼 있다.


그 외에도 탈북자들은 ‘5.18소년 호 땅크(탱크)’ ‘5.18청년직장’ ‘5.18식품가공공장’ ‘5.18고치(누에)청년작업반’ 등 5.18광주사태를 기념하기 위한 사례들이 있다고 증언하지만 이들에 대한 증거는 아직 찾지 못했다. 북한에서 발간된 대남공작 역사책 “주체의 기치에 따라 나아가는 남조선 인민들의 투쟁”(1982.3.20.‘조국통일사’)는 5.18을 김일성 지도에 따라 남조선 혁명세력과 민중이 김일성을 흠모하여 자주민족통일(적화통일)을 위해 일으킨 반정부폭동 중 최고의 작품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천리마 운동에도 5.18, 가장 큰 기계에도 5.18, 공장에도 5.18, 5.18은 북한의 국가(?)자산인 것이다.


6. 광주에 나돈 유언비어는 북한이 제조: 5.18당시 광주에 나돈 4대 유언비어다. 1) “공수대에게 환각제를 먹였다” 2)“여학생을 발가벗긴 채 세워놓고 칼로 유방을 도려내어 죽였다”3)“임산부의 배를 찔러 태아를 꺼냈다.” 4)“공수부대들은 젊은 놈은 모조리 죽여라, 광주시민 70%는 죽어도 좋다는 구호를 공공연히 외치고 있다”


위 유언비어는 광주시민이 생산한 것이 아니라 북한이 생산 유포한 것이다. 유언비어는 광주시민들을 폭발케 한 정신적 환각제였다. 유언비어들에 광주시민들이 분노하여 거리로 나온 것이다. 이런 유언비어를 광주시민이 아닌 북한이 생산-유포했다는 것은 5.18을 북한이 배후 조종했다는 뜻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논리는 피해갈 수 있는 논리가 아니며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는 바로 공식적인 증거능력을 갖는 통일부 자료다.


북한에서 망명한 거물 강명도씨는 “평양은 망명을 꿈꾼다”라는 책을 냈다. 이 책의 241쪽에는 “나의 친구 이화섭은 5.18이 터지자 몇 주간 밤잠도 못 자고 광주민주화운동을 부추기는 대남선전삐라를 만들어 살포했다고 말해주었다”는 구절이 있다. 


북한에서 발간된 “광주는 잊지 않는다”[조선녀성 1990년 제3호] (증 30)에 바로 위 유언비어가 수록돼 있다.   


“심지어 파쑈살인마들은 환각제를 먹인 공수특전대놈들을 봉기진압에 내몰면서 <광주시민 70%를 죽여도 좋다. 젊은이들은 모조리 죽이라.>는 살인명령을 내리였으며 신경가스탄을 비롯한 유독성화학무기까지 사용하여 봉기군중을 무차별적으로 살육하다 못해 녀학생들의 유방을 도려내여 죽이고 임산부의 배를 갈라 태아까지 꺼내여 참살하는 등 차마 눈뜨고 볼수 없는 귀축같은 만행을 감행하였다. 광주의 거리거리에는 항쟁용사들의 붉은 피가 랑자하였다. 여기에 한 해외동포가 친척집을 방문하기 위하여 광주에 갔다가 인간백정들의 피비린 살육만행을 목격하고 쓴 수기의 일부가 있다.


<<...참으로 무섭고 끔찍한 살인 행위였다. 여자대학생으로 짐작되는 세명의 처녀들이 공수병에 의하여 옷을 벗기우고 있었다. 속옷까지 모조리 찢어낸 다음 험악하게 생긴 공수병이 처녀들의 앞가슴을 걷어차면서 성난 늑대처럼 내몰았다. 처녀들은 하나와 같이 가슴을 감싸고 길바닥에 꺼꾸러졌다. 순간 처녀들의 등에는 대검이 똑같이 박아지면서 피가 분수처럼 뿜었다. 역전광장앞에서도 조선대학교의 6명의 대학생들과 3명의 녀공들을 창고에 가두고 발가벗겨 희롱하다가 나중에는 광장에 끌어내여 분수대에 매달고 유방을 도려내어 전선대에 묶어높고 칼로 가슴과 배를 찌르던 나머지 사지를 찢어죽이였다. 두명의 공수병이 만삭이 가까운 임신부를 끌어다놓고 <야, 이년아, 이 주머니에 들어있는 것이 뭐냐?>하고 묻자 임신부는 미처 대답을 하지 못하였다. 그러자 한 공수병이 <머슴애는 모조리 죽이라는 것이 전두환총장의 분부다.>하고 소리치면서 <새끼주머니에 든것이 머슴인가 계집앤가,>고 다그쳐물었다. 이때 옆에 있던 다른 공수병이 <내가 알려주지,>라고 하면서 녀인이 반항할 짬도 없이 옷을 나꿔채자 원피스가 쭉찢어지고 속살이 드러났다. 후비면서 찔렀는지 금방 창자가 튀여나왔다. 그들은 다시 그 녀인의 아랫배를 가르더니 태아를 끄집어내여 아직도 할딱거리며 마지막으로 숨져가는 녀인에게 던졌다.”(증30, 39쪽 3단 중하단)  


북항당국이 발간한 단행본 “주체의 기치따라 나아가는 남조선인민들의 투쟁”(1982 조국통일사)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악귀 같은 교형리들은 녀학생들을 그들의 부모가 보는 가운데 발가벗기고 젖가슴을 도려낸 다음 화염방사기로 불태워 죽였다. 무차별 하갈의 잔학성은 어린이나 늙은이, 임산부들에 대한 만행에서 더욱 몸서리치게 드러났는데 놈들은 광주천 기슭에 쓰러진 어머니의 시체를 붙잡고 우는 4살 짜리 어린이에게도 달려들어 ‘폭도의 종자를 멸종시키라’고 하면서 총검으로 참살하고 살인만행에 항거하였다 하여 70대의 할아버지도 하수구에 밀어넣어 죽였고, 임신부의 배를 가르고 창자가 튀어나온 배에서 태아를 꺼내 던지는 귀축같은 만행도 서슴치 않았다.”(증31, 590쪽 하4줄-591쪽 3줄)


7. 5.18의 목표는 ‘민족자주통일’(적화통일)     


1985년 당시 전남사회운동협의회 대표였던 전계량은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라는 책(풀빛, 1985.5)을 내면서 발간사를 썼다. 책의 내용은 황석영의 “광주 5월 민중항쟁의 기록”을 그대로 전재한 것이다. 여기에는 5.18이 반미-반정부-자주민족통일을 위한 해방전쟁이라는 요지기 들어 있고, 5월 22일부터 26일까지를 해방기간이라고 정의했고, 광주가 해방구였다고 정의했다. 이는 북한에서 발간된 책들과 맥을 정확히 같이 하는 것이다. 문맥이나 내용들에 있어 5.18의 바이블로 알려진 황석영 저 ‘광주 5월 민중항쟁의 기록’은 북한에서 발간된 책자와 그 주제 및 표현에 있어 거의 일치한다. 야합이라 아니할 수 없는 것이다. 

 

                                             결 론


5.18과 김대중은 둘이 아니라 하나다. 5.18 사람들과 김대중은 대한민국 건국개념을  부정했다. 5.18에서 19세 학생 신분으로 가장 혁혁한 공로를 세웠다는 윤기권은 ‘님을 위한 교향시’가 상영되던 시기인 1991년에 김일성의 부름을 받아 북한으로 올라가 영웅대접을 받으면서 반미-반파쑈-통일 선동의 도구로 이용되고 있다.


김대중은 대통령이 되어 국민 몰래 적장인 김정일에 돈을 주었고, 평양에 가서 경호원을 따돌리고 작장과 단 둘이 한 차에 타고 다니면서 접선을 했다. 퍼주기를 일삼고. 반미를 일삼고, 적장과 연방제 적화통일 방안에 합의했다. 5.18 사람들의 수뇌부인 김대중, 황석영, 윤이상, 문익환, 서경원 모두가 빨갱이들이다. 이들 모두는 북한을 방문하여 김일성을 만나 야합했던 빨갱이들이다. 특히 황석영과 윤이상은 북한에 가서 반미-반정부-자주통일을 주제로 하는 5.18영화 ‘님을 위한 교향시’를 만들어 주었다.


1987년 9월 ‘천주교 광주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가 발간한 사진 책자가 있다. 제목은 “오월 그날이 오면”. 1990년 평양의‘한민전평양대표부’가 발간한 사진 책자가 있다. 제목은 “아! 광주여!”. 위 두 사진 책에는 5.18광주에서 죽은 시체들 중 얼굴이 가장 비참하게 으깨진 시체들의 사진들이 수록돼 있다. 그런데 남쪽 책의 사진들과 북쪽 책의 사진들이 모두 똑같다. 북한과 5.18단체들이 자료들을 공유하고 있다는 확실한 증거인 것이다. 이른바 내통의 증거인 것이다. 사진 책을 발간한 북측의 의도와 남측의 의도가 같고 사진 내용이 같은 것이다.


 조선노동당출판사가 1985년에 발간한 단행본 <광주의 분노> (증38) 에는 무기고 이름들이 나열돼 있고, 사망한 어린 학생들의 이름이 나이, 소속학교, 학년과 함께 정확히 나열돼 있다. 이 이름들은 북한보다 10년 후인 1995년에 공개된 수사자료와 정확히 일치한다. 북한에서 벌이는 며칠간씩의 5.18행사를 보나, 북한에서 발간된 도서와 책자들을 보나, 영화를 보나, 천리마 운동과 기계 등에 붙여진 ‘5.18’등을 보면 구태여 탈북자들의 증언들을 빌리지 않더라도 5.18은 북한의 자산이며, 북한의 성공사례다.


이렇게 눈에 뻔히 보이는 야합의 판을 쳐놓고서도 5.18이 숭고한 민주화운동이라고 주장하는 것을 보면, 사람들이 이토록 간교하고 두꺼운 얼굴을 소유하고 있을까 하는 놀라움이 앞선다.


2010.4.23.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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