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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읽어야 할 제주4.3(3) (비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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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비바람 작성일14-01-10 23:46 조회5,48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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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의 애착도 무너졌다

김덕선 (28년생. 우도면 출신. 서귀포시 서귀동 거주)
        
- 경찰 경위 퇴직. 제주4.3위원회 실무위원.
        
- 2011. 6. 30. 증언


올해(2011년) 1월 31일 제주4.3사건진상규명 및 희생자명예회복실무위원회(이하 실무위원회)의 실무위원으로 위촉되었다. 우근민 도지사로부터 위촉장을 받고 첫 회의 때 우 지사에게 “4.3사건의 정의를 말해달라.”고 요구해 우지사를 난감하게 만들기도 했다. 김덕선은 “서귀포발전소와 서귀중의 방화, 구좌면사무소에 불을 지른 것은 누구였는가?”를 위원들에게 묻고 “방화는 군경, 도민도 아니고 분명 폭도의 짓”임을 분명히 밝혔다. 또한 4.3특별법에서 정의(*제2조)가 내리어졌고 법에 정의된 4.3 그날은 소요사태이고, 남로당이 경찰지서를 습격, 경찰관 6명과 우익인사 6명을 살해한, 공산폭동을 일으킨 날임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위원 10명 중 그만을 제외한 9명은 그와 의견을 달리했다고 밝혔다.

6.3을 기념일, 추념일로 정한다는 것은 ‘우스운 일’임을 강조했다. 그날을 기념일로 정한다는 것은 남로당의 폭동을 기념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이 공산당으로 인정하는 것과 다름없는 일이라는 것.

그의 충격은 실무위원회 2차 회의가 열린 3월 20일에 있었다. 봉개동 평화공원에서 열린 이날 회의는 지난 1월 26일 희생자로 추가 결정된 469명에 대한 위패의 봉안장소를 논의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위패 봉안소에서 뜻밖의 이름을 발견했다. 그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김진태’의 이름이 그곳에 있었던 것이다.

김덕선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1948년 6월 15일(음 5월 9일, *‘4.3은 말한다‘ 등은 6월 16일) 북촌 포구사건이, 몸서리치게 악몽에 시달렸던 그날의 일들이 그의 뇌리에 파노라마처럼 펼쳐졌기 때문이다. 김진태, 그는 그의 앞에서 우도지서주임이었던 양태수 경사를 죽였던 인물이다. 발길로 그의 얼굴을 발로 차 바다로 빠뜨린 자이고, 생을 포기하게 이르도록 한 자이다.

북촌포구 사건이 있던 그 때 김덕선은 제주농업학교 4학년생 나이 21살 때이었다. 4.3으로 휴교되었다가 우익 학생들에 의해 개학이 결정되었다고 우도지서로부터 연락을 받고 쌀과 고구마를 1가마씩 배에 싣고 읍내로 가는 양태수 경사, 진 순경과 이장 김응식(당시 37세), 지서 급사 양남수(20), 강 순경의 장모, 백 순경으 임신한 처와 4살 난 아들, 우도초등학교 김선생 등 모두 15명이 타고 있었다. 북촌에 이르기 전에 커다란 상어 2마리가 배에 자꾸 다가오자 양 경사는 칼빈총으로 3~4발을 발사했고 나머지 승객은 갑판에 있었다.

북촌 앞바다 다려도에 이르렀을 때 앞바람이 거세게 불어와 갈짓자로 3번 2척이 북촌포구로 입항하는 것이 보였다. 항해가 힘들자 선원 대신 김덕선이 배 밑에 선실에 있는 양 경사에게 다가가 사정을 말하고 북촌 포구로 들어가야하는지를 붇자 그는 일단 북촌포구로 가 배 닻을 내리되 상륙은 말도록 했다.

배가 선창에 닿자 밀짚모자를 쓰고 갈베옷을 입은 청년 3명이 다가왓다. 김덕선은 고향에서 늘 그렇듯 ‘향보단이 임검’하러 오는 것으로 착각했다. 순수하게 우돗배라 말하고 항해 목적도 손쉽게 “지서 주임과 함께 지서 쌀을 가지러 읍내로 간다“고 말했다. 그들이 폭도인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

3명 중 2명이 임검하겠다고 배에 올라 양 경사가 있는 선실로 내려갔다. 이어 그들 중 김진태가 양 경사의 총구를 붙잡고 칼빈총을 뺏으려 들었다. 다른 한 명은 진 순경의 44식 소총을 뺏으려 했다. 양 경사는 다툼 속에 이미 장전된 총을 쏘았으나 그 총알은 배 바닥을 뚫었다. 김진태는 칼빈총의 탄창을 빼버렸다. 승객을 모두 배에서 내리도록 했다.

20여 명의 청년들이 그들을 에워싸 양손을 묶어 포박하고 주먹질을 했다. 이어 대낮에 산쪽으로 끌려갔다. 배 안에 있던 쌀과 의복 등을 가지러 갔던 폭도들은 옆구리에 총을 맞고도 살아있던 진 순경을 찾아내 마구 폭행해 피투성이인 진 순경을 끌고 왔다. 진순경은 극심한 통증과 갈증에 물을 달라고 외쳐댔다. 이틀 후 폭도들은 굴속에 들어가면 물을 주겠다고 말은 하면서 김덕선과 양남수가 보는 앞에서 진 순경의 등을 죽창으로 마구 찔러 살해했다.

김덕선이 김진태라는 이름을 안 것은 선흘곶 굴로 끌려간 뒤 하룻밤을 자고 나서다. 김덕선의 오른쪽 눈가가 붉게 멍든 것을 보고 김진태가 왜 얼굴이 그렇게 됐는지 묻자 “선생님이 발로 찼다”고 대답했다. 김진태는 계란을 갖고 오도록 지시했다. 계란을 주자 김덕선은 “선생님의 이름”을 물었고 그는 “나는 김진태”라고 밝혔다.

선흘곶 감금 중 김덕선 일행은 폭도들이 한 사람씩 개별 조사를 펴 학교 증축을 위해 나선 김응석 이장, 그의 동생이 경찰관임을 알았고 두 여인도 경찰 가족임을 확신했다. 3~4일 후 ᄄᆞᆫ 본부로 이동 중 뜻밖에 농업학교 동창을 만났다. 나중 경찰관이 된 그는 바닷물로 옷이 엉망이 된 김덕선의 몰골을 보고 배에 있었던 옷을 찾아내 갈아입혀 주었다. 폭도였던 그의 비밀을 무덤에까지 갖고 가겠다고 말했다.

인민재판을 받기 위해 연대본부로 가던 중 처음 암호를 서로 불러대는 것을 보았다. 이쪽에서 ‘암호’, 저쪽에서 ‘석’하니 이쪽에서 ‘탄’으로 응답, 그날의 암호는 석탄임을 알았다.

그 와중에도 백화룡 순경의 4살짜리 아들이 임신한 엄마한테 ‘노들강변’ 노래를 불러주도록 떼를 썼다. 그때 그 여인은 구슬프게 ‘가거라 3.8선’을 불렀다. 그들은 물론 폭도들까지 눈물을 흘렸다. 말을 들려주던 김덕선의 눈가에도 눈물이 흘렀다.

감금 중 식사는 주먹만큼도 안 되는 고구마 2개가 하루 양식이었다. 이때 너희들은 감사하다는 말을 하지 않고 전혀 반성하지 않는다고 야단하는 폭도가 있었다. 그는 축산과(김덕선은 농과) 동창이었다. 김덕선은 처음 “동무”란 말을 썼고 “감사합니다”라고 고개를 숙여야 했다. 그도 나중 경찰관이 됐다. 허우대가 건장, 상관에게는 곧잘 대들고 큰소리도 쳐댔지만 같은 계급의 김덕선에게는 고양이 앞의 쥐처럼 쩔쩔맸다. 그에 대해서도 무덤까지 갈 비밀이 되었다.

인민재판을 이틀 앞둔 밤 그 날의 잠자리는 이층굴. 굴은 모두 자기엔 너무 비좁았다. 나이 어린 김덕선과 양남수 둘이는 밑에 층 굴에 포개 자야했다. 입구에 돌을 덮자 숨이 막혔다. 산소가 부족해 정신을 잃을 정도였다. 입구의 돌을 드러냈을 때는 아침 10시쯤 머리가 빠개질 듯 아팠다. 그 때 김덕선은 “이런 고통을 받으려면 차라리 죽여달라”고 폭도들에게 애원했다. 그는 생의 애착보다 생을 포기하려 했던 것이다. 그러자 폭도들이 내일이면 연대본부에 간다는 답이었다.

본부에 도착하자 이곳저곳에서 들리는 말은 ‘국경동무’, 국경동무란 말이 생소한 그는 폭도들에게 무슨 말인지를 묻자 그들은 ‘국방경비대의 탈주병’이란 말이었다. 그곳에 수십 명의 탈주병이 있었던 것. 묶었던 포박도 풀어주고 인민재판이 열렸다. 그들 모두에게 사형이었다. 집행만 남았다. 그날 오후 6시에 집행될 예정이었다.

이일은 후일 김덕선이 경찰관이 돼 경찰국장 관사 경비업무를 맡고 있을 때 다시 회자되었다. 오현중학교에서 열리는 애월면 출신 강노반 중위에 대한 군법회의에 참고인으로 출석하라는 것이었다. 9연대 소속 강노반 중위는 6.25 후퇴 때 탈영, 고향에 잠시 왔다가 육지로 나가려다 부두에서 헌병에 검거돼 조사를 받던 중 북촌포구 사건을 말하였다. 사형이 집행되기 2시간 전 일행 13명을 살렸다는 사실을 밝힌 것. 그 증인으로 김덕선을 불렀고 김덕선은 그때 그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그러나 검찰관 해군대위 장시영은 “장교가 생에 애착을 가져 탈영했다”며 사형을 구형, 강노반은 끝내 사형됐다.

김덕선이 구명된 이유는 그의 일행, 곧 경찰가족들이 선흘곶에 감금됐다는 정보를 입수한 경찰이 경비대에 협조를 요청, 강노반 주위의 지휘로 국군은 폭도들의 연대본부를 공격한 것이다.

그날 오후 4시쯤 ‘노랑개(*군인, 검은개는 경찰) 새끼’들이 온다며 여자들은 자리를 옮기지 않고 그대로 있도록 하고 남자들은 3~4명 씩 폭도의 감시 아래 숨도록 했다. 강노찬 순경 장모가 흰 수건을 흔들며 살려달라고 외치자 군인들이 일제사격을 멈췄다. 여자와 군인들의 대화가 이어지고 군인들은 “우도이장 나오라”며 한 사람씩 이름을 불러대며 구출하기 시작했다.

이때 김덕선과 양남수, 김선생은 군인들의 소리는 들렸지만 멀리 떨어져 있었다. 결국 모두가 구출되었지만 김덕선과 양남수는 눈짓, 손짓으로 총을 가진 폭도로부터 탈출을 신호하며 도망을 시도했다. 두 사람이 도망쳐도 그 폭도는 군인이 무서워 그들에게 총을 쏘지는 못했다. 한참을 뛰고 달아났지만 방향을 가늠하지 못했다. 나무에 올라가서야 함덕오름을 찾아냈다. 1시간여 가시덤불을 헤쳐 뛰어가니 신작로 길이 나왔다. 이젠 살았다며 두 손을 들어 올리고(*항복자세) 500여m를 걸어 합덕지서에 도착했다. 경찰들에게 그 동안의 이야기를 하자 경찰은 기진맥진한 김덕선을 앞장서라며 다시 선흘곶을 안내토록 했다. 경찰 토벌대는 자정 무렵 선흘곶에 있는 절에서 밥을 먹던 폭도 1명을 생포했다. 그 폭도를 심문한 결과 폭도들이 북촌 굴 안에 있다고 자백했다.

이튿날 경찰서의 지원 아래 생포한 폭도를 앞세워 북촌 마을로 들어갔다. 암석 하나를 들어내니 굴이 나왔다. 폭도의 수갑에 줄을 연결, 굴속으로 들어가도록 했다. 경찰이 줄을 놓쳤다. 30여 분이 지나도록 나오지 않았다. 보릿짚에 불을 붙이고 굴속으로 집어넣으니 왠 걸 앞의 집 마당에서 연기가 솟아올랐다. 경찰서장의 명령으로 김규식 형사가 4.5구경 권총과 손등을 들고 굴속으로 들어가 6명을 생포했다. 6명 중에 김진태가 있었다. 경찰의 북촌포구 사건에 대한 심문에 김진태는 잡아뗐다. 경찰서장이 ‘학생을 데리고 오도록’지시했다.

줄곧 부인하던 김진태는 그가 나타나자 고개를 떨구었다. 그렇게 하여 김진태는 붙잡혀 처형되었다.

때문에 김덕선은 평화공원에서 김진태의 위패를 본 순간, 눈앞에서 양 경사가 숨지는 것을 보았고, 생을 포기하려던 생각에 그 분노를 참을 수가 없었다. ‘경찰을 죽인 폭도는 위패를 내려놓아야 한다’고 강하게 위원들과 4.3 지원사업소 관계자에게 요구했다. 그러나 관계자는 “희생자로 결정되었기 때문에 재논의할 수 없다”는 답뿐이었다.

“평화공원에는 억울한 사람과 억울하게 죽인 사람이 함께 혼재되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이다. 그는 ‘죽인사람, 살인자’를 추모하도록 하는 것에 대해 이해가 되지 않는다. 주변에서 “아직도 많은 희생자들은 시체도 찾지 못했다”며 위로하는 말에 분을 삭힐 수밖에 없었다. 다만 4.3에 대한 시각이 오늘의 잣대로 4.3을 진단하는 것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다. 일본에서 대학 다니는 조카가 말한 그때 ‘쌀이 없었으면 라면을 먹으면 될 것이 아니냐’는 생각에 답답함을 느낀다. “목숨이 위태로운, 전쟁터에서 합법적인, 재판을 통한 처리 등의 합리적인 처리를 기대한다는 것은 그때 너무 시간이 없었다.”고 밝힌다.

김덕선은 6일여의 폭도로부터 감금, 억류생활을 복수하기 위해 49년 4월 5일 경찰학교 입교시험에 합격, 5월 3일 경찰관에 임용되었다. 경찰국장 관사 경비업무 등을 거쳐 함덕지서에서 근무하던 50년 11월이었다. 농민들의 가을 곡식 수확을 돕기 위한 추수경비대가 편성됐다. 각 지서에서 차출돼 15명으로 구성됐다. 주민들이 모두 소개됐던 조천면 와흘에 주둔소를 설치했다. 그때 관음사 일대에서 숯 굽는 일 경비업무를 맡다 귀대하던 경찰관 2명이 잠복해 기다리고 있던 폭도들의 습격으로 살해됐다.(그들 2명은 김00 보건소장의 아들과 여경주임의 아들로 군대 대신 경찰관이 되었던 귀한 아들들이다.) 총 2정과 수류탄 4개를 폭도들에게 빼앗겼다. 수류탄이 문제였다.

주둔 초소의 돌담은 초소에서 1~2m에 불과하여 수류탄을 터뜨리면 몰살 우려가 있었다. 그래서 대흘리 주민들을 동원, 담을 허물고 10여m로 확장 작업에 나섰다. 담을 다 쌓지 못해 잠을 자기 위해 1시간 거리인 대흘리로 가는데 대흘리에 거의 다다를 무렵 주둔지에서 불이 났다. 폭도들이 태운 것이다. 그때 김덕선은 소대장 김일준 경사에게 상황을 살피러 주둔지에 갔다 오겠다고 자원했다. 소대장이 말렸다. 폭도들은 ‘불 지르면 경찰관이 온다’는 것을 알고 매복하여 기다리고 있으니 혼자가면 위험하다고 말렸던 것이다.

이튿날 김덕선은 담 쌓는 작업 중 시계 유리가 깨져 조찬에 가 수리하고 오겠다고 하자 소대장이 승낙하는 등 그와 함께 5명이 각기 다른 일들로 대열에서 열외됐다. 10명망 주둔소로 향했다.

대원들은 폭도들의 매복 습격을 우려, 반대 방향으로 접근해 주둔지까지는 무사했다. 낮 12시쯤 점심시간에 맞춰 술을 사러 4명이 초소를 나가면서 기다리던 폭도들의 기습공격이 시작됐다. 총상을 입고도 간신히 살아난 변 순경을 제외한 9명이 몰살됐다. 김덕선이 시계수리를 마치고 조천지서에 들렀는데 지서에 있던 순경들이 ‘너는 어떻게 살았느냐’는 의심쩍은 눈길로 물었다. 이어 “너희 부대원들은 다 죽었다.”는 소식이었다.

경찰관들의 시신을 수습했는데 9명 모두가 목이 없었다. 대흘리 주민들을 동원, 가까스로 목을 찾아냈다. 고영은 후생의원 원장과 간호원 2명이 조천의용소방대원의 협조를 얻어 목을 맞추는데 쉽지가 않았다. 예리하지 않은 무딘 칼로 목을 억지로 짤랐기 때문에 맞추기가 쉽지 않았다. 99골 충혼묘지에 묻힌 김일준 경사와 대원 중 한 사람이 혹시라도 몸과 목이 다르지 않았을까 지금도 애태운다. “혼자 가려는 것은 위험하니 함께 가야한다”며 끝내 말린 김 경사는 그의 생명의 은인과 다름없다. 목을 자른 폭도들의 악행은 지금도 몸서리가 칠 정도로 저주한다.

김덕선은 “지금과 같이 4.3의 진상을 왜곡하도록 놔두어서는 안 된다”며 “경우회의 날에 4.3의 진상을 밝히는 사례를 찾아내고 경우지에도 발표하는 등 4.3의 진상을 바르게 정리해야한다”고 강조했다.

북촌 포구 사건은 “하필 그날 북촌리에서 입산했던 청년 7~8명이 그들 표현대로라면 ‘휴가차’ 마을에 들어와 있었다. 그들의 리더는 무장대 참모격인 김완식이었다.(*김완식은 무장대 핵심 간부로 훗날 유명한 ‘관음사 전투’를 지휘했으며, 끝내 산에서 자결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4.3은 말한다 3’ 54쪽

* 이글은 제주자유수호협의회에서 발간한
  제주도의 43일은? 3집에서 발췌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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