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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 좌우합작 3장면(비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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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비바람 작성일14-03-26 20:58 조회5,42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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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진압군 사령관 김익렬 vs 제주인민해방군 사령관 김달삼

 

1948년 4월 말, 진압사령관이었던 9연대장 김익렬과 제주인민해방군 사령관 김달삼은 중산간 지대에서 대좌하였다, 좌익에서 '4.28평화회담'이라고 주장하는 만남이었다, 4월 3일에 폭동이 발발했지만 폭동을 진압하여야 할 진압군 사령관은 진압보다는 폭도 사령관을 만나는 협상에 골몰하고 있었다, (이 만남을 두고 김익렬은 기고에서는 4월 30일 중산간 지대의 초가집에서, 유고에서는 4월 27일 산간부락 국민학교라는 상반된 주장을 하였다)

 

김익렬과 김달삼의 만남에 김익렬은 평화회담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붙였지만 이 만남은 일종의 귀순 권유의 회동이었고, 인민해방군 측 자료에는 (김익렬이가) “인민군대표와 회담하여야 하겠다고 사방으로 노력 중이니 이것을 교묘히 이용한다면 국경(國警 : 국방경비대)의 산(山) 토벌을 억제할 수 있다는 결론을 얻었고” (중략) “그 후 5.10 투쟁까지는 국경(國警)으로부터 아무런 공격도 없어 우리의 활동에는 크나큰 이익을 가져왔다"고 서술하고 있다, 김달삼은 토벌을 지연시킬 목적으로 김익렬과 만남을 가졌고, 김익렬은 그 술책에 이용당하고 있었다,

 

김달삼의 목적은 4월말부터 가중되는 토벌전의 압력을 약화시켜 5월 10일까지 병력을 최대한 보존하여 5월 10일에 그 폭발력을 최대화하는 것이었다, 5월 10일은 대한민국 건국 제헌선거가 있는 날이었다, 김달삼의 목적은 성공했고 5월 10일에 제주인민해방군은 대대적으로 제주도 각지의 선거사무소를 습격할 수 있었다, 제주도에서는 3개의 선거구 중 2개의 선거구가 파탄되었다,

 

9연대가 토벌 참가를 명령받은 것은 4월 17일이었다, 4월말까지는 4.3폭동을 진압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그러나 김익렬은 이 시기를 김달삼과 면담한다면서 시간을 보냈다, 5월 6일 새로 교체된 박진경 연대장은 5월 10일 선거구 보호에 주력하면서 본격 토벌에 나서지 못했고, 결국 세력 보존에 성공한 인민해방군은 선거를 파탄내었다, 그리고 이를 목격한 도민들은 인민해방군이 우세하다고 믿어 민심이 좌측으로 기우는데 일조했다,

 

박진경 연대장이 부대편성을 마치고 본격적으로 토벌을 시작한 것은 5월 중순이었다, 국방경비대가 토벌 명령을 받은 후 이미 한 달이 지난 때였다, 이때까지 인민해방군은 4월 3일 지서 습격에 성공하고 5월 10일 선거사무소 습격에 성공하면서 기세가 올라 있었다, 9년 동안 벌어질 4.3폭동의 서막이 열리고 있었다, 이것이 김익렬 회담의 '공로'였다, 이것이 김달삼 이덕구와 더불어 김익렬을 4.3의 3대 책임자로 지목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2. 제주도4.3사건민간인희생자유족회 vs 4월제공준위

 

현재 제주도에는 우파성향의 '제주4.3정립연구.유족회'와 좌파 성향의 '제주4.3사건희생자유족회' 두 개의 4.3유족회가 병립하고 있다, 4.3유족회의 뿌리는 1988년 창립한 '제주도4ㆍ3사건민간인희생자반공유족회'로 거슬러 올라간다, 애초에 4.3유족회는 반공유족회라는 명칭을 내걸고 제주4.3을 공산폭동으로 규정하는 반공단체에서 출발했다,

 

1990년 제주도4ㆍ3사건민간인희생자반공유족회는 '반공'이라는 글자를 빼고 '제주도4ㆍ3사건민간인희생자유족회'로 개칭했다, 양쪽의 희생자를 품는 본격적인 유족회를 만들겠다는 의도였다, 91녀부터는 제주도 지역에 지회가 결성되면서 4.3유족회는 사회단체로 등록하였고, 양쪽 희생자 유족들이 모이는 합동위령제가 열렸다, 이때까지만 해도 4.3유족회는 건강했다,

 

1994년 제주도4.3사건민간인희생자유족회와 4월제공준위(4월제공동준비위원회)라는 단체가 공동으로 준비하는 4.3합동위령제가 처음 열렸다, 4월제공준위는 좌파단체인 4.3연구소를 중심으로 결성된 단체로, 제주4.3을 민중항쟁으로 주장하며 1989년부터 4월 3일에 '4.3추모제'를 열고 있었다, 4.3추모제는 4.3연구소, 역사문제연구소, 민족문학작가회의 등 좌파 단체들이 대거 참여하는 행사였다,

 

80년대의 민주화 바람을 타고 91년부터 제주4.3에서는 우파 유족회의 위령제와 좌파단체의 추모제가 동시에 열리고 있었다, 여기에 '용서와 화합'이라는 달콤한 목소리로 통합 여론이 높아졌다, 여론에 밀린 4.3유족회에서는 대승적인 차원에서 4.3유족회와 4월제공준위라는 좌파단체가 합동으로 주관하는 위령제를 94년에 처음으로 가진 것이었다,

 

94년 4월 3일 아침에 4.3유족회 김병언 회장은 망치로 뒷통수를 얻어 맞은 것 같았다, 행사장에는 어울리지 않는 붉은 만장들이 나부꼈고 4월제공준위에서 제작한 행사 팜플렛에는 폭도사령관 이덕구가 희생자로 등재되어 있었다, 김병언 회장의 강력한 항의로 행사장에는 소란이 일어났다, 그러나 이것은 제주4.3이 좌경으로 치닫는 한편의 예고편일 뿐이었다,

 

98년 김대중이 대통령이 되자 제주4.3의 역사를 뒤집는 4.3특별법의 공청회가 열렸다, 공청회의 한 발제자에 의해 4.3 당시 선포된 계엄령은 불법이었다는 주장이 나왔다,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발언이었다, 김병언씨가 이 발언에 강력히 항의하자 사회자 추미애 의원은 축출 명령을 내렸고 김병언씨는 공청회장에서 장정들에 의해 들려 끌려나왔다,

 

좌우합작의 위령제부터는 폭도를 '산사람'으로 인민해방군을 '무장대'라는 정체불명의 용어로 불러야 했다, 진실을 한발짝 양보함으로서 진실 전체를 도둑맞는 시발점이 된 것이다, 국내의 현대사나 중국의 현대사를 보면 좌우합작은 언제나 좌익의 승리로 귀결되었다, 용서와 화합이라는 달콤한 말에 넘어간 순간 진실과는 이별을 해야 하는 독배를 마신 것이었다, 그 독배를 든 순간부터 제주4.3의 역사는 거꾸로 가기 시작했고, 오늘과 같은 좌익지배의 제주4.3 기틀이 마련되었던 것이다,

 

 

3. 제주도경우회 vs 제주4.3희생자유족회

 

2013년 8월 2일, 제주도경우회 현창하 회장과 제주4.3희생자유족회 정문헌 회장은 나란히 앉아 기자회견을 열었다, 기자회견의 이름은 '화해와 상생을 위한 공동 기자회견'이라는 거창한 이름이었다, 이 사건을 두고 좌파언론에서는 '65년만의 화해'라며 제주4.3에 '화해와 상생'이 이루어졌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고보니 안보단체인 제주도경우회가 좌파단체인 4.3유족회로부터 양보를 받아낸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동안 4.3희생자유족회는 4.3을 민중항쟁으로 주장하면서 경찰에 대해 4.3의 학살 책임이 있다는 좌파단체의 주장에 동조하는 입장이었고, 예전의 제주경우회는 제주4.3을 공산폭동으로 규정하는 안보단체의 입장을 견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현창하의 제주경우회는 노무현처럼 역주행했다,

 

대한민국 애국세력들이 4.3추념일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폭도위패 철거 운동에 나서고 있을 때에도 제주경우회장과 4.3희생자유족회장은 손을 잡고 4.3평화공원을 방문하여 그 위패에 절을 올렸다, 4.3폭동을 진압하면서 폭도들의 죽창에 숨져간 수많은 경찰들의 영혼을 모독하고 4.3바로잡기 운동에 매진하는 대한민국 애국세력들을 배신하는 순간이었다,

 

제주의 좌익언론들은 애국세력의 4.3바로잡기 운동을 비하하며, 제주경우회와 4.3희생자유족회가 화해와 상생을 이룩했는데 '극우'인사들이 제주4.3을 부정한다고 했다, 대한민국 애국세력은 제주경우회에 대해 화해와 상생에 대한 업무를 위임한 바가 없다, 저것은 한 단체의 일탈일 뿐, 제주경우회에는 애국세력을 대표하는 단체도 아니고 대표성이 있을 수도 없다,

 

2014년 3월 9일에는 제주도경우회 현창하 회장은 4.3평화재단 이사에 선임되었다, 4.3평화재단 이사는 보수인사가 들어갈 수 없는 곳이다, 제주도경우회 현창하 회장은 역주행함으로서 김익렬처럼 좌파들에게서 칭찬받는 인물이 되었다, 그러나 역사는 좌우합작에 나섰던 사건들이 실체를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좌파들의 선전물에 이용당하는 도구가 되었고 그것이 결국에는 대한민국에 막대한 피해를 끼쳤다는 사실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비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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