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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다랑쉬의 비밀(7) 진술조서-함만실. 오지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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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비바람 작성일14-06-27 00:12 조회4,85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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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랑쉬의 비밀

 

1. 다랑쉬의 날조
2. 다랑쉬 유해
3. 다랑쉬의 진실
4. 다랑쉬의 폭도들
5. 세화리 폭도 대습격
6. 허위의 굿판들
7. 진술조서 - 함만실. 오지봉.
8. 진술조서 - 채정옥. 김병수.
9. 4.3사건 관련 유골처리 동향 제주경찰청 보고서

 

 

7. 진술조서 - 함만실. 오지봉.

 

진 술 조 서(함만실)

 

본적 : 북제주군 구좌읍 세화리 0000

직업 : 농업 성명 : 함만실 만 73세

 

저는 위주소지에 거주하면서 농업에 종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1992.4.2 북제주군 구좌읍 세화리 소재 월랑봉 동쪽 속칭 선수머세 부근 동굴에서 유골 11구가 발견된 사실이 있는데 동 유골은 4.3사건 당시 공비로 활동한 자들로서 수사상 필요하시다면 묻는 대로 진술하겠습니다.

이때 위 진술인의 내용을 더욱 명확키 위해 다음과 같이 문답을 행하다

 

문 : 진술인은 1948. 4.3사건 당시 직책을 진술하시오.

답 : 민보단 북제주군 구좌면 감찰부장으로 있었습니다.

문 : 48. 4.3 사건 이후에 공비들이 구좌읍 세화리에 출몰한 사실이 있는가요?

답 : 1948. 11. 3.(음력 동지달 3일) 초저녁에 공비들이 세화에 기습 공격한 사실이 있습니다.

문 : 당시 공비들이 세화리에 기습 공격하여 양민을 학살하고 재산을 불태운 사실에 대해 진술하시오.

답 : 48. 11. 3. 저녁 경에 민보단 단원들이 세화리 마을 일대에 성담을 쌓아 공비들이 기습에 대비하여 보초를 서고 있었는데 당시 저하고 단원인 김병윤 김병희 박용준 등과 같이 세화지서 옆에 있던 민보단 사무실에 모여 1시간마다 순찰을 돌고 있었는데 동일 18:00 경에 순찰을 돌고 사무실에 도착하여 휴식을 취하는데 보초를 서고 있던 지형찬이 사무실에 달려오면서 공비들이 기습하여 우리 부모들을 죽여 버렸다고 고함을 치기에 죽창을 들고 밖에 나와 보니 세화리 일주도로 상에 초가집이 불에 타고 있었으며 세화초등학교 공회당 역시 불에 타고 있었습니다.

 

문 : 당시 희생자가 얼마나 되는가요?

답 : 40-50명 정도가 죽창으로 죽어있으며 일부는 불에 타 죽은 사람도 있었습니다.

문 : 공비들이 세화리를 습격한 침입로를 알고 있는가요?

답 : 폭도들은 3군데에서 습격해 왔는데 1개로는 합천동과 전항동 다시 1개로는 중간지점에 습격을 했는데 미리 폭도들이 세화리에 잠복해 있다가 시간을 맞춰 일시 다발로 공격한 것입니다.

문 : 당시 공비들을 지휘한 우두머리를 알고 있는가요?

답 : 당시 공비들을 지휘한 자는 김달삼으로 알고 있습니다

문 : 당시 토벌에 참가한 사실이 있는가요?

답 : 네, 있습니다

문 : 작전 지휘는 누가 했는가요

답 : 군경 민보단원으로 구성했는데 작전 지휘는 군인에서 했습니다.

 

문 : 군.경.민. 합동 작전 일시가 언제인가요?

답 : 1984. 11. 4(음력) 9:00 경에 110명이 세화리 공회당에 모여 1개 소대에 군인 경찰과 민보당 합쳐 월랑봉을 중심으로 서쪽 지경, 저가 속해있던 소대 역시 군경과 민보단 합쳐 동쪽인 선수머세 부근으로 토벌작전에 들어갔습니다.

문 : 진술인 속한 소대가 속칭 선수머세 부근 즉 유골이 발견된 동굴도 토벌구역이었는가요?

답 : 유골이 발견된 동굴 역시 저의 소대 작전구역이었습니다.

문 : 동굴에 숨어있던 공비를 토벌한 사실이 있는가요?

답 : 네, 있습니다.

 

문 : 동굴에 은신해 있던 공비들을 토벌하게 된 경위를 진술하시오.

답 : 1948. 11. 4. 09:00 경 군인이 지휘로 군인 경찰 5명 민보단 50명이 공화당에 집결하여 월랑봉 동쪽을 중심으로 수색작전에 당하였는데, 동일 11시 경에 전기 동굴에 도착 주위를 수색하다보니 동굴 옆에 공비가 대변을 본 것을 확인하여, 동굴 가까이 가서 굴속에 손을 넣어보니 굴속에서 뜨거운 열기가 나고 사람냄새가 나자, 옆에 있던 군인 한 명이 동굴을 향하여 10여차래 사격을 가하자 동굴 속에서 약 20세 가량이 공비가 밖으로 나와 생포하여 굴속에 몇 명이 있느냐하니, 자기를 포함 11명이 있고 책임자는 구좌읍 상도리 오달용이며 현재 다른 거점으로 갔다기에, 당시 지휘관인 군인이 생포한 공비 허리에다 줄을 묶어 안에 있는 공비들을 자수시키도록 굴속에 집어놓았는데 굴속에 들어간 공비가 줄을 끊어 이들과 합세하므로, 지휘관인 군인이 생포가 불가능하므로 주위에 널려있던 메밀짚단을 민보단 단원들에게 가져오라하여 동굴 앞에다 막은 다음 불을 피워 연기가 동굴 안으로 스며들게 하였는데, 약 30분가량 되니 동굴 동쪽 끝에서 연기가 나기에 그 구멍 역시 막아 약 1시간 동안 계속 연기를 동굴 속으로 스며들게 했는데, 짚단에 불을 붙여 약 20분가량 되니 약 20대 청년이 굴속에서 나와 서쪽으로 도망가는 것을 주위에 포위했던 민보단에 잡혀 신문을 해도 묵비권으로 대답이 없자 군인이 현장에서 총살을 했는데, 당시 죽은 공비 호주머니에서 백지에다 한글로 덕천 글자와 아라비아 숫자가 적혀있었습니다. 군경민이 합동으로 약 1시간 동안 불을 피운 다음 약 2시간 동안 동굴 주위에서 점심을 먹고 휴식을 취하는데 지휘관인 군인이 동굴 안에 가서 생사 여부를 확인할 사람이 없느냐 하자 경찰관 및 민보단원들은 동굴에 들어가는 것이 무서워 서로 피하자 저가 자원해서 굴속에 들어가겠다 해서 줄로 저의 허리를 감고 약 2메다 뒤에는 종달리 출신 오지봉이 따라와 저가 굴속에 들어가 보니 10명이 남자가 엎디려 죽어있었으며 동쪽 끝에는 뚱뚱한 여자가 반드시 죽어있었는데 당시 죽은 남자 중에서 아는 공비가 있는가 해서 엎디려 죽은 시체를 반드시 뉘여 확인해보니 공비 중에 6층 처남인 조병윤 당시 31세 밖에 확인을 하지 못했습니다.

 

문 : 군경에 의해 공비들을 연기로 질식사한 동굴 입구를 어떻게 했는가요?

답 : 동굴은 시체를 확인 후 그냥 구멍을 터놓은 상태로 두었습니다.

문: 굴속에 죽은 공비들을 왜 지금까지 방치했으며 관계기관에 신고 또는 유가족들에게 연락을 하지 아니했는가요?

답 : 당시 토벌했던 경찰관들의 사건을 처리하고 유족을 찾아야 하는데 경찰은 공비소탕을 지휘한 군인만 믿다보니 지금까지 방치되어 왔던 것입니다.

문 : 당시 동굴에서 밖으로 나와 도주하던 공비가 세화리 출신 김문환 당 20세가량이라고 말하는데 사실인가요?

답 : 김문환이가 아닙니다.

 

문 : 당시 공비들을 토벌했던 경찰관이나 민보단 중에서 현재까지 생존자가 있는가요?

답 : 경찰관으로서 경찰학교 학생이었던 세화리 출신 조태용과 민보단 출신은 세화리 출신 김병수 등이 많습니다.

문 : 참고로 할 말이 있는가요?

답 : 공비들에게 죽은 양민들의 보상은 당국에서 해주어야 합니다.

문 : 지금까지 진술한게 사실인가요?

답 : 사실대로 진술했습니다.

위의 조서를 진술자에게 읽게 한 바 진술한대로 오기나, 증감 변경할 것이 전혀 없다고 말하므로 간인한 후 서명 날인하게 하다.

 

진술자 함만실 (날인)

 

1992년 4월 4일

제주경찰서 사법경찰리 경장 송순강

 

 

진 술 조 서(오지봉)

 

본적 : 북제주군 구좌읍 종달리 000번지

직업 : 농업 성명 : 오지봉 만 75세

 

-. 진술인은 위 주소지에 가족과 함께 거주하며 농업에 종사하고 있습니다

-. 그런데 4.3사건 당시 구좌읍 세화리 지경인 선수머세 지역에 군.경.민 합동 수색하며 굴 속에서 11명이 사망한 현장을 목격한 사실이 있는데 수사상 필요하시다면 묻는 대로 대답 하겠습니다

이때 위 진술인이 취지를 더욱 명확히 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문답을 행한다.

 

문 : 위 진술인의 학. 경력 관계를 말하시오

답 : 저는 구좌읍 종달리에서 출생하여 하도리에 있는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연월일 불상경 일본에 건너가 생활하다 해방직전(4개월전) 입국하여 1947. 7월 경 동리 청년을 규합 대동청년단을 조직 동 단체 대표로 활동한 사실외 특이 경력은 없습니다.

문 : 4.3사건 당시에는 어디에서 생활 하였나요?

답 : 저는 본적지인 구좌읍 종달리에서 대동청년단의 조직인 우익 단체를 조직하였으나 4.3사건이 발생하여 공비들이 부락에 침입 사람을 죽이고 집에 불을 질러 생활하기가 어려워 부산에 가서 생활하려고 하였는데 계엄이 발표되어 육지로 나가지 못하고 구좌읍 세화리에 거주하였습니다.

 

문 : 그러면 1948.11.(음력) 세화리에 폭도들이 침입한 사실은 알고 있는가요?

답 : 예, 제가 세화리에 생활하던 중 지서 부근 연월불상 밤 11:00-11:30 경 산에 있던 공비들이 세화리를 습격, 부락에 불을 붙이고 사람을 죽인 사실이 있는데, 그후 일시불상 경 함덕리 주둔 대대본부 명령에 따라 제주도 일선 군.경.민 합동 토벌작전에 동원되어 세화리 남쪽으로 수색한 사실이 있습니다.

 

문 : 그러면 그 당시 세화리 지경인 선수머세에 있는 동굴을 목격한 사실이 있는가요?

답 : 예, 있습니다. 저는 그 당시 군인, 경찰 등과 같이 한라산 방향으로 수색 중, 일행 중 성명불상자가 동굴이 있다고 소리를 질러 수색부대들은 동굴을 포위하고, 군인들이 밖으로 나오면 살려주겠다고 하였으나 나오지 않자, 군인이 동굴 입구에서 총을 발사하자 동굴 속에 있던 구좌읍 종달리 출신 고태원 당시 23세가량이 손을 들고 나오자, 군인들이 안에 몇 사람이 있느냐고 묻자 굴 속에는 11명이 있다고 대답하여, 누구누구가 있느냐고 묻자 옆에 있던 저가 듣기로는 종달리 출신 박봉관 31세, 강태용 24세, 고순경 23세, 고두만 23세 등이 있다고 대답하며, 본인이 굴에 들어가서 자수를 하도록 하겠다 하므로, 군인들은 고태원의 허리에 포승줄로 묶고 굴안으로 들여보내고 뒤따라 군인들이 따라 들어가려고 하였는데, 중간에서 줄이 끊어지자 들어가지 못하고 계속 자수하도록 하였으나 나오지 않아,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나올 기미가 없자 군인들의 명령에 의하여 주위에 있는 메밀대 및 주변 잡초 등으로 불을 붙여 동굴 입구에 밀어, 연기가 굴 속에 들어가 못 견디면 나오겠지 하여 불을 피웠는데, 약 30분가량 지나자 굴 속에서 1명이 튀어나와 덕천리 방향으로 도주하자, 포위하고 있던 군.경이 사격하였으나 300미터 가량 도주하다 총에 맞아 사망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굴 속에서 질식하여 사망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문 : 그러면 그 당시 동굴 내에 들어갔다 온 사실이 있는가요?

답 : 그 당시 약 3시간가량 연기를 피우고 나서 군인들이 동굴에 들어가려고 하였으나 아무도 지원하지 않자, 세화리에 거주하고 있는 함만실 30세가량(현재 세화리 거주)이 맨 먼저 들어가고 저가 뒤에 따라 굴 내부에 들어간 사실이 있습니다.

문 : 그 당시 상황을 자세히 진술 하십시오.

답 : 예, 굴 입구는 사람 1명이 겨우 들어갈 정도이며 내부에는 약 15평 크기 동굴이었습니다.

문 : 굴 내부 상황을 자세히 말하여 주십시오.

답 : 굴 형태는 구부러진 형으로, 굴 입구에는 남자 시체들이 있었으며, 안쪽 굴 속에는 여자 1명이 있었으며, 내부에서 밥을 지어먹고 잠을 잘 수 있도록 되어 있었으며, 자세한 내용은 어두워서 모르겠습니다.

 

문 : 그 당시 죽은 사람들을 알고 있나요?

답 : 그 당시 저와 함만실 등 2명이 굴속에 들어가 시체 등을 확인하였으며, 현재 기억나는 사람은 구좌읍 종달리 출신 박봉관 76세 가량, 강태용 78세 가량, 고순경 66세 가량, 고두만 61세 가량과 하도리 출신 고태원 65세와 하도리 출신 여자 1명을 저가 기억하고 있으나, 나머지 6명은 전혀 모르는 사람이었습니다.

문 : 그 당시 시체 중에는 어린 아이들이 있었는가요?

답 : 그 당시 죽은 시체는 23세에서 40세가량 젊은 사람들로, 어린 아이는 없었습니다.

 

문 : 참고로 할 말이 있습니까?

답 : 지금 언론에서 보도하는 내용들을 보면 엉터리 내용을 테레비로 확인도 없이 방영하는 것이 아주 좋지 않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문 : 이상 진술한 내용은 사실인가요?

답 : 예, 사실입니다.

위의 조서를 진술자에게 읽게 한 바 진술한대로 오기나, 증감 변경할 것이 전혀 없다고 말하므로 간인한 후 서명 날인하게 하다.

 

진술자 오지봉 (무인)

 

1992년 4월 4일

 

제주경찰서 사법경찰리 경장 현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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