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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 역대 폭도사령관들 - 2대 이덕구(비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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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비바람 작성일14-07-12 00:42 조회5,677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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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해방군(폭도) 사령관 계보

 

                                  -제주4‧3정립연구‧유족회 이광후 사무처장

 

이글은 제주4‧3정립연구‧유족회에서 발간한 '4.3의 진정한 희생자는?' (2014. 6. 30 발행) 2집에 수록된 것이다.

 

1. 1대 사령관 김달삼

2. 2대 사령관 이덕구

3. 3대 사령관 김의봉

4. 4대 사령관 고승옥

5. 5대 사령관 허영삼

6. 6대 사령관 김성규

 

 

‣2대 사령관 이덕구(李德九, 1920~1949, 조천면 신촌리)

 

제주의 최대 참사 4‧3 폭동은 1948년 4월 3일부터 1952년 4월 2일까지 9년간 인민해방군의 살육과 방화, 강탈 등 온갖 만행이 빚어졌다. 4‧3의 비극은 인민해방군 사령관의 소영웅심으로 배가(倍加)됐다. 그들은 역사의 죄인(罪人)이다.

1대 사령관은 김달삼(金達三), 2대 사령관은 이덕구(李德九), 3대는 김의봉(金義奉), 4대는 고승옥, 5대는 허영삼, 6대는 김성규이다. 정권수 또한 사령관급 폭도 대장이다.

 

2대 사령관이 김대진(金大珍)이라는 주장도 있다. 나종삼은 ‘제주4‧3사건의 진상’ 212~213쪽에서

“무장대 사령관 김달삼이 제주도를 떠나자 후임은 김대진이 맡았다. 김달삼 후임에 대하여 김민주(金民柱, 본명은 김용남)는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

 

‘무장부대 최고 지휘자는 김달삼-남진-이덕구 순으로 이어진다. 즉 남진은 김달삼과 이덕구 사이에 있던 군사책으로 제주사람이다. 남진은 가명인데 본명은 모른다. 그는 48년 가을 경 유탄에 맞아 전사했다. 그 전에 관음사전투를 지휘했는데 패배의 책임으로 강등 당했었다.’

 

위의 증언을 요약하면 김달삼의 후임은 남진이라는 가명을 쓰는 사람이며 본명은 모른다는 것이다. 그런데 위 증언자와 김봉현의 공저인 ‘제주도 인민들의 공저인 ’제주도 인민들의 4‧3무장투쟁사‘ 89쪽에는 군책이 김달삼-김대진-이덕구로 이어졌다고 명시하므로서 남진의 본명이 김대진임을 말하고 있고, 4‧3연구소에서 펴 낸 증언자료집에도 김달삼 후임이 김대진으로 나와 있으며, 대정면당 위원장을 역임했던 이운방은 “양자회담이 있은 직후 김달삼이 모슬포로 내려와 회의를 소집했는데, 나는 연락을 받고 갔으며, 여러 동지들과 같이 부대장(김대진)을 동반한 김달삼을 만났다. 연대장(김대진)은 그해 가을 토벌대에 체포되었다가 석방되자 일본으로 갔는데, 대판에서 나에게 안부편지를 전해왔다”고 하였다. 김대진은 김달삼의 후임 사령관으로써 전투를 하다가 토벌대에 체포되자 이덕구가 유격대 사령관을 맡았으며, 김대진은 전사한 것이 아니라 석방되자 일본으로 도피한 것으로 드러났다. 따라서 이덕구는 3대 사령관이다.”

 

그러나 제주4․3연구소가 펴낸 ‘이제사 말햄수다 1’권 237쪽에

김대진에 대해서는 “•1948년 4월 15일 조직부 개편될 때 군사부 부대장 •1948년 가을 체포되었을 때 대정면 김성만과 일본으로 갔다함”으로 됐다.

반면 이덕구에 대해서는 250쪽에 “•1948년 8월 해주 대표자대회 참가를 기점으로 지도부가 교체될 때 제2대 유격대장 •군사부 총책이 된 후, 그가 지휘한 인민유격대는 위미리 전투에서 단 한 번 실패했을 정도로 지도력이 뛰어남”이라고 밝히고 있다.

 

또한 제민일보의 ‘4‧3은 말한다 ④’ 417쪽에

“신촌리는 김달삼에 이어 무장대 총책을 지낸 이덕구(李德九)의 고향이다. 또 무장대 간부였던 김대진(金大珍)도 이 마을 출신이었다”며 이덕구가 2대 사령관임을 분명히 했다.

특히 김대진이 체포될 즈음인 1948년 10월 24일 이덕구는 대한민국 정부에 선전포고를 했다. 때문에 2대 사령관은 이덕구이다.

 

 

"신촌리는 김달삼(金達三)에 이어 무장대 총책을 지낸 이덕구(李德九)의 고향이다. 또 무장대 간부였던 김대진(金大珍)도 이 마을 출신이었다. 몇몇 젊은이들은 이들을 따라 산에 오르기도 했다. 이런 저런 이유로 신촌리는 토벌대의 주목을 받았다."

"군사부는 모두 4개 지대로 나뉘었는데 제1지대(조천면 관할)는 이덕구(신촌리 출신), 제2지대(구좌면)는 김대진(신촌리 출신), 제3지대(남원면)는 김의봉(金義奉, 와흘리 출신), 제4지대(대정면)는 이름을 알 수 없는 오아무개(대정면 출신)가 각각 맡았습니다."

-‘4․3은 말한다’ 4권 417쪽, 424쪽 -

“남로당전남도당부 제주도위원회 군사부와 노동부책”

- ‘4․3은 말한다’ 1권 535쪽

 

• 큰 형(이호구)의 도움으로 작은 형(이좌구)과 함께 일본에서 공부하다가 임명관대학 재학 중 학병으로 입대하여 관동군 소좌로 복무하다 대좌로 제대함

• 8‧15이후 서울에서 활동하다가 제주에서 일하던 작은 형(이좌구)이 블러서 귀향

• 1946년 3월에 개강한 조천중학원에서 1947년 3월 총파업 이전까지 역사 와 체육 담당교사로 재직

• 1947년 3월1일 , 3‧1사건 이후 검거로 한때 은신했다 하나 그 시기에 옥 살이 경험이 있었음. 그때 고막이 파열되어 청각장애로 고생함

• 1948년 8월 해주 대표자대회 참가를 기점으로 지도부가 교체될 때 2대 유격대장으로 군사부 총책이 됨

• 군사부 총책이 된 후, 그가 지휘한 인민유격대는 위미리 전투에서 단 한 번 실패했을 정도로 지도력이 뛰어남

• 항쟁이 악화되어가던 시기(1949.6.7.)에 화북지서에서 출동한 토벌대에 포 위되어 격전 끝에 자살한 것으로 추정됨

• 부모, 아들, 딸, 부인 등 일가 50명이 몰살당함

• 형 이좌구는 당시 입산 후 도일하여 88년 사망 ”

- ‘이제사 말햄수다’ 250쪽 -

 

“분단시대 남로당 제주도지부 군사부장. 4․3 당시 인민유격대장. 산북 조천읍 신촌리의 넉넉한 집안에서 셋째 아들로 태어나 일본으로 건너가 오사카(대판, 大阪)의 일신(日新)상업학교를 거쳐 입명관(立命館)대학에 진학, 학병(學兵)으로 입대, 일본군 소위로 임관되어 복무 중 일본이 패전하자 아오모리(청삼, 靑森)에서 귀향했다.

 

해방된 조국은 사상적 대립과 갈등이 심한 가운데, 조천면 민청(民靑) 책임자로서 새로 설립된 조천중학원의 역사․체육 담당 교사로 부임하여 학생들을 가르쳤다. 얼굴은 살짝 곰보이면서 미남형이었다. 늘 목소리가 컸으니 이는 귀국 후 미군정에 의해 구인(拘引)되어 고문을 받을 때 고막이 파열되어 귀가 멀어졌기 때문이라 한다.

 

1948년 4월 3일 남로당 제주도당부에서 5․10 선거를 거부하는 봉기를 일으키자 동년 5월 말경 입산, 무장대의 지휘관으로 활동하였다. 처음 인민유격대 3개 지대(支隊)의 병력 약 1천5백 명을 김달삼(金達三)이 지휘할 때 그는 3․1지대 책임자로 무장대를 지휘하고, 동년 8월 군사 총책 김달삼이 월북, 해주(海州 )대회에 참가함으로써 이를 이어받아 무장대를 이끌었다.

 

국군 제2연대가 들어와 군경 합동작전으로 이를 최강공책으로 소탕하자 부대가 궤멸 직전에 이르러 지리산(智異山) 방면으로 탈출을 기도하던 중이었다. 해안 가까이 하산한 것을 주민의 신고로 화북에서 출동한 경찰토벌대에 의해 1949년 6월 9일(*7일 오기) 16시 화북지구 623고지(高地)에서 사살되었다. 이 소탕전에서 이덕구의 연락병 2명을 생포하고, 2명이 귀순하는 전과를 올렸으며 이후 유격대의 지휘부는 상실되었다. 주민들에게 경각심을 주기 위하여 관덕정 앞 제주경찰서 정문 입구 서쪽에 이덕구의 시신을 걸쳐 세워 전시하였다.

 

한편 북한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에서는 그에게 국기훈장 3급을 서훈(敍勳)하였다. 한편, 북한은 1990년에 와서 ‘조국통일상’을 제정, 이를 이덕구에게 수여하고 소위 애국열사능(愛國烈士陵)에 이덕구 묘비를 건립하였다. 이 자리에는 북송한 이좌구(李佐九)의 아들(이덕구의 조카) 등 9명이 참석하였다. 더구나 이러한 내용을 조국통일신보(1990.12.15.)에 대서특필로 부각시켰다. ”

- ‘20세기 제주인명 사전’ 321쪽 -

 

이덕구의 10월 공세는 48년 9월 21일부터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3차 유엔총회에서 대한민국을 정식으로 승인받는 일을 방해하기 위한 것이다. 장면, 조병욱, 정일형, 모윤숙, 김활란 등의 대표단의 노력했으나 승인에 불리한 사건이 터져 나왔다.

그 하나가 4‧3 폭동이 10월 초에 다시 터지는가 하면 10월 19일 여수 14연대에 의해 여수‧ 순천 반란사건이 일어났다. 이 때문에 ‘뉴욕타임스’지는 “서울의 미국 관리들이 한국은 완전히 붕괴 직전에 놓여 있다”고 본다고 보도할 정도였다.”

 

이덕구(李德九); 학병출신(일군 소위출신?). 남로당 제주당부 군사부장, 제주 인민유격대 1연대장, 제주 인민해방군 사령관. 49년 6월 7일 화북 삼양지역에서 최후까지 계속 싸움. 전사하여 그의 시체가 관덕정 마당에 걸림.

-아라리연구원의 ‘제주민중항쟁 1’ 479쪽

※제주자유수호협의회의 ‘제주도의 4월3일은?’ 2집 34~3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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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알아야할 좋은 내용 감사하니다. 복사하여 전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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