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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 저 5.18바이블’은 북한이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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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14-07-15 12:45 조회5,99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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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석영 저 5.18바이블’은 북한이 썼다. 

 

1980년대의 청년들 치고, 황석영 저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광주 5월 민중항쟁의 기록’, 일명 ‘넘어넘어’)를 읽지 않은 사람 거의 없다. 이 책에 기록돼 있는 내용을 사실로 믿지 않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그래서 이 책은 ‘5.18바이블’로 통했다. 그런데 최근 황석영은 이 책을 자기가 쓰지 않았고, 누가 썼는지 알지 못한다고 고백했다. 조직에서 황석영 이름으로 낼 것을 권유해서 1985년 5월 15일 자기 이름으로 발행하게 됐다고 밝혔다.  



그런데! 여기에 한 이변이 발견됐다. 매우 희한하게도 “5.18바이블”이 1999년 3월, 미국에서 번역되었는데 저자가 황석영이 아니라
이재의로 표시돼 있다는 사실이다. 2009년 5월 오마이뉴스는 이 책의 원 저자가 5.18당시 전남대학 3학년생이었던 ‘이재의’(58)였는데 황석영이 자기 이름으로 책을 내면서 인세까지 다 챙겨갔다고 비난했다. 전남대학 3학년생이 이런 방대하고 다양한 현장 상황을 기록하여 대학생들의 존경을 받는 베스트셀러를 썼다는 주장인 것이다, 당시에도 작가가 아니었고 지금까지도 작가 인생을 걷지 않은 광주의 토박이 기자 이재의가 대학교 3학년을 다니면서 수십 년 동안 베스트셀러의 왕좌를 지켜온 대작(?)을 썼다는 이 주장에 과연 국민들은 선뜻 동조를 할까?  

 

그런데 이 책은 내용과 글맛이 북한이 쓴 두 개의 대남공작 역사책을 빼닮았고, 중요부분을 그대로 베꼈다. 1982년에 북한이 발간한 "주체의 기치따라 나아가는 남조선 인민들의 투쟁"과 1985년 5월 16일, 역시 북한이 발간한 "광주의 분노"라는 두 책을 모자익한 책이라는 것이 필자가 내린 결론이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또 다른 이변이 나타났다. 소준섭이라는 광주인이 나타나 자기가 5.18바이블 '넘어넘어'의 원조라 주장한 것이다. 소준섭은 1982년에 “광주백서”를 자기가 직접 편집했는데, 황석영이 자기 책을 다 베꼈다며 황석영을 비난했다. 5.18당시 소준섭의 나이는 22세, 지금은 국회도서관에 근무한다.  

2011년 1월 1일 날짜로 입력된 신동아 기사가 있다. “땀과 발로 쓴 우리 기록 황석영이 베꼈다.”라는 제목 아래 소준섭의 발언이 실렸다.  

“광주의 분노’(북한 조선노동당출판사 1985.5.16)는 ‘광주백서’(1982 발행)가 소개한 에피소드를 부지기수로 베꼈다. 그중 한 대목만 소개한다. 광주에서 직접 확보한 증언을 바탕으로 쓴 ‘광주백서’를 먼저 읽어보자. ‘광주의 분노’는 이 대목을 이렇게 베꼈다.”  

[.. .여대생으로 짐작되는 세 명의 아가씨들이 공수병에 의해서 서서히 껍질이 벗겨지고 부라자와 팬티까지 모조리 찢어내고 그중 유독 험하게 생긴 공수병이 워커발로 아가씨의 궁둥이를 걷어차면서 “빨리 꺼져 이년들아. 지금이 어느 때인 줄 알고 데모하고 지랄이야.” 성난 늑대처럼 내몰았다. 그러나 이 일을 어찌하랴. 처녀들은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같이 가슴을 쓸어안고 길바닥에 주저앉아 버린다. <중략> 이때 한 놈이 고함쳤다. “이 썅년들이 살기가 싫은가봐. 그럼 할 수 없지.” 순간 아가씨들의 등에는 대검이 똑같이 꽂아지면서 분수를 뿜어냈다. . .] <‘광주의 분노’ 19~20쪽> 



한마디로 이 인용부분은 소준섭에게 저작권이 있는데 북한이 1985년에 펴낸
‘광주의 분노’에 그대로 베껴 썼다는 주장인 것이다. 위 인용부분은 매우 중요하기도 하고 유명하기도 한 “찢어진 깃폭”의 내용이다. 1980년대 한국 대학교의 붉은 대자보를 장식했던 그 “찢어진 깃폭”이 바로 이것이다.  

소준섭의 이 주장은 거짓말이다. 그 증거는 2가지다. 하나는 1982년 북한이 발행한 “주체의 기치따라 나아가는 남조선 인민들의 투쟁”에도 “찢어진 깃폭” 내용이 들어 있다는 사실이다. 이 책의 발간연도는 “광주백서”와 똑같이 1982년이다. 이 증거보다 더 충격적인 증거가 있다. 일본책 “일한오해의 심연”이다.  

이 책에 의하면, ‘찢어진 깃폭’은 1980년 6월 5일, 일본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처음으로 배포됐고, 이 내용은 북한이 발간한 대남 모략물들(노동당 출판사 발간 2권의 책, 북한의 정기간행물, 영화 님을 위한 교향시)의 내용과 정확히 일치한다.    

일본의 니시오까(西岡力)가 1992년 지은 저서 ‘일한오해의 심연’의 31-43쪽에는 “찢어진 깃폭‘이 일본 말로 소개돼 있다. 이 일본 말 부분은 당시 한국말로 된 자료를 번역한 것이며 이 불온자료는 1980년 6월 5일 ‘일본가톨릭정의평화협의회’가 가지회견을 통해 배포한 것으로 밝혀져 있다. 니시오카는 발행처도 없고 저자도 없는 이 내용들이 한국정부를 모략하기 위해 거짓말들로 작성돼 있다는 것을 조목조목 분석해놓았다. 그런데 이를 배부한 종교 단체는 기자회견장에서 이렇게 발표했다고 한다.  

 
 

“이 자료는 우리에게 보내기 전에 내용의 타당성을 입증한 한국 가톨릭교회의 믿을 만한 소식통으로부터 입수된 것이다. 우리는 내용의 진실성에 책임을 진다. 이 증언은 광주에서 서울로 돌아가기 위해 탑승했던 고속버스에서 내린 5월 19일부터 증언자가 직접 목격했던 사태 설명에 대한 녹음테이프에서 베끼고 편집하여 번역한 것이다. 그는 그날 아침 서울로부터 도착해서 가족들의 안전을 점검하고 아래 사태가 일어났을 때는 서울로 다시 돌아가려던 참이었다. 증언은 증언자가 군대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철도를 따라 5월 24일 새벽 7시 광주를 떠난 시점에서 끝난다. 그는 도로 이용을 피하려 애쓰면서 산을 넘고 계곡을 빠져 서울행 기차를 탔다. 그 후의 보도에 의하면 그는 광주사태에 관해 이 증언을 한 혐의로 체포되었다고 한다.“    


                                              결 론 
 

기필 부분을 제외하면 황석영의 ‘넘어넘어’ 책은 그가 신동아에 실토한 그대로 황석영이 쓴 책도 아니고, 이재의나 소준섭이 쓴 책도 아니다. 이 책의 내용들은 북한에서 왔고, 북한은 5.18 당시 비정규전의 각 분야를 담당하는 특수부대를 통해 광주일원의 각 곳에서 그리고 전남의 나머지 17개 시군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폭동들을 기획하고 지휘하고 기록했다. 그리고 5월 27일, 광주폭동이 진압된 지 불과 1주일 만인 6월 5일, 모략전의 기지를 일본으로 옮겨 “찢어진 깃폭”을 한국대학가에 퍼트렸고, 이 허위내용들이 한국의 대학가를 휩쓸면서 1980년대의 한국사회를 광란의 굿판으로 몰고 갔던 “민주화 쓰나미”를 일으켰던 것이다. 1980년대의 민주화 굿판은 바로 5.18의 연장이고, 지금도 모략을 내용으로 하는 심리전이 5.18의 연장선상에서 진행되고 있다.  

우리가 가장 크게 관심을 가져야 하는 부분은, ‘넘어넘어’책 내용이 지금도 5.18역사의 바이블이라고 믿고 있는 국민이 매우 많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 책은 위에서 살핀 바와 같이 그 저자가 북한이다. 이 책의 내용들은 북한이 발간한 책들과 대동소이하고, 1995년 검찰이 낸 '광주관련사건 최종보고서' 내용과는 모두 반대이며, 5.18세력이 유네스코에 보낸 광주시민들의 목격담 내용과도 모두 반대된다. 소준섭은 반복해서 밝히기를 이 책 내용 모두는 광주시민들의 목격담을 담은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광주시민들의 목격담은 유네스코에 등재돼 있고, 유네스코의 등재된 목격담과 '광주백서'에 정리된 목격담 사이에는 천지차이가 존재한다.

또한 '광주백서'에 기재된 "찢어진 깃폭"은 북한이 제작해 1980년 6월 5일 일본에서 배포된 것이 분명한 것인데도 소준섭은 이 사실을 알지 못하거나 숨기고 있다. 이처럼 북한이 써준 모략물을 대한민국 현대사의 핵심인 5.18역사책으로 숭배하며 배워온 이 국민, 그리고 이를 방치한 이 나라는 참으로 부끄럽고 쓰라린 자기모독의 늪에 빠져 있다. 우리는 황석영 등 '북한의 앞잡이가 되어 적화의 부역자로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을 반드시 응징해야 할 것이다.  

이 공간을 통해 국민에 알리고 싶은 것은 5.18에 대한 매우 중요한 사실들이 2010년 2월 이후 대거 발견되고 여론화되기 시작하였다는 사실이다. 그런데도 새로운 지식이 확산되지 못해 정치권을 포함한 많은 국민들이 옛날에 입력된 지식에 안주하고 있다. 2010년 2월 이후 새롭게 발견되거나 부각된 사실들은 아래와 같다.  

1) 영화 ‘님을 위한 교향시’의 존재를 사실로 확인하였다. 지금도 서초동 국립중앙도서관 5층에 가면 이 영화를 비디오로 볼 수 있다. 제작기간은 1989-91, 개봉은 1991년, 시나리오 황석영, 영화음악 윤이상, 영화주제곡 “임을 위한 행진곡‘  

2) 북한 특수군이 5.18광주에 확실하게 왔다는 사실과 그 수는 최소 600명이라는 사실과 이를 증명하는 여러 가지 사실들  

3) 황석영 저 5.18바이블이라는 ‘넘어넘어’ 책은 북한이 제작하여 황석영 이름으로 낸 사실.  

4) 5.18세력의 주장은 허위-모략 일색의 ‘넘어넘어’에 기초하고 있고, 우리 애국세력의 주장은 팩트들에 기초하고 있다는 사실 


                                                      부 록

1980.6.5.에 일본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확산시키기 시작한 “찢어진 깃폭”의 원문을 아래에 소개한다.


                                                   찢어진 깃폭” 원본  




1. 아름다운 도시 
 

1980년 5월 19일, 아름답고 조용한 전원도시 전남의 도청소재지, 독립과 민주주의 투쟁에 몸바친 수많은 영웅을 길러낸 호남의 젖줄이며 빛의 고을인 광주가 피의 쑥밭으로 변하던 날, 공설운동장 입구에다 황급히 승객을 토해내고 도망치듯이 시외로 빠져 나가던 고속버스 뒷모습에서 나는 사태의 심각성을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나는 피로에 지친 몸을 택시에 던지고 운전사에게 도청 앞으로 가자고 말했다.  

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그는 죽는 시늉을 하면서, “차라리 걷는 게 나을 거요”하며 확 브레이크를 밟고 나를 다시 내리게 했다. 하는 수 없이 걷기로 하고 임동 쪽으로 걸어갔다. 불타 버린 파출소가 어느 패전한 도시의 단면을 보여 주는 듯했다. 도처에 대검을 부착한 계엄군들이 승전의 대가로 얻어 낸 적지를 짓밟듯 온통 시가지를 누비고 있었다. 나의 전신에선 오싹 소름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나는 조심스레 그들 가운데를 뚫고 벌써부터 이마에 돋아난 식은땀을 훔치면서 금남로에 접어들었다. 한때는 꽃들이 무성히 피어나 내방객을 환영해 주던 아름다운 도시, 소박한 인정, 잘 정돈된 시가지들은 모두가 옛 시절의 추억에 잠기고 폐허로 변해 가고 있었다. 포근한 어머니의 젖가슴마냥 도시를 살찌게 하는 아름다운 산 무등산, 또 봄이면 둑 위에서 낚시질하는 강태공들의 모습이 깃든 극락강이 있는 아름다운 전원도시에 지금은 찬바람이 불고 있었다.  

2. 살인면허  

광주시민은 양처럼 순하다. 그러나 이 날 그토록 순한 양들이 민주수호라는 제단에 바쳐지는 피의 제물이 되고 있었다. 무한한 권력을 휘두르는 권력자는 권력의 지속적 유지를 위해 현체제의 어떤 변화도 용인하지 않는다. 어떠한 변화나 개선을 촉구하는 행위는 권력자에 의해 즉각 체제전복의 음모로 간주되어 무참한 탄압의 대상이 되는 것이 후진국의 풍토라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는 바이지만, 오늘의 호남일각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태는 사상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반민중 탄압의 극을 장식할 것이다. 여기저기에서 들려오는 함성, 창자를 뒤틀리게 하는 비명, 임종을 알리는 듯한 숨가쁜 신음소리, 흡사 대지가 메말라 저 젊은 넋들에게서 짜낸 피를 서서히 마시고 취하기 시작하는 것 같았다.  

하늘은 온통 메아리치는 함성으로 찢어지고 있었다. 시위학생들과 구경하던 무고한 시민들을, 벌떼처럼 날아들어 온 공수특공대가 단 한 마디의 경고도 없이 포위해 버렸다.  

“설마 무고한 양민을 죽이기까지 하랴”하는 단순한, 그리고 어리석은 믿음에 의지하고 중심가에 접어든 나는 일단 살아야 되겠다는 가장 본능적인 마음에 쫓겨 필사적으로 도망쳤다. 뒤쫓아오는 총검의 섬뜩한 촉감이 어깨로 의식되며 어느 빌딩 안으로 정신없이 뛰어들어갔다.  

고맙게도 먼저 온 사람들은 눈깜짝할 사이에 셔터를 내려 주어 철퇴로 골통이 부서지는, 대검에 가슴이 찢어지는 참극을 면할 수 있었다. 난생 처음으로 죽음이라는 검은 그림자가 내 곁에 다가와 있음을 절감했다. 나는 피신객들 틈에서 생쥐처럼 움츠려 앉아 그물망처럼 엮어진 셔터의 바깥 정경에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고막을 찢는 총성, 예리한 대검, 철봉 휘두르는 소리, 누군가의 목숨이 절단나는 비명소리는 지옥의 한 장면처럼 내 의식을 뚫고 들어왔다.  

남녀노소, 학생, 시민 할 것 없이 닥치는 대로 갈기고 찌르고 부수었다. 마치 2차대전 당시 독일군에 의해 모잠비크 민중이 무자비하게 학살되던 그 현장을 직접 눈으로 보는듯한 착각이 일어났다. 그러나 그만큼 재빨리 나는 내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주위의 일에 다시 관심을 가졌다.  

미처 피하지 못한 70세 가량의 할아버지의 뒤통수에 공수병의 철퇴가 내려치자마자, 노인의 입과 머리에서 분수 같은 피가 쏟아져 내리며 비명도 아픔도 없이 훌쩍 거꾸러졌다. 나는 어찌해야만 좋을지 몰라 망연히 서 있다가 꼬아지는 아픔에 계단에 주저앉고 말았다. 곁에 있던 아주머니는 발을 동동 구르다가 그대로 장승처럼 땅바닥에 무너져 내렸다. 약하고 힘없는 민중의 집단적 분노가 솟아나고 있었다. 그것은 호소할 곳도 의지할 곳도 없는, 참으로 외롭고 고독한 서러움이었다.  

살인현장, 그것도 가장 무자비하고 잔악한 살인현장을 직접 목격하기는 처음이다. 그러나 살인자의 악랄함은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두 명의 공수부대에게 개처럼 끌려온 여인은 만삭에 가까운 임신부였다. “야, 이년아, 그 주머니에 들어 있는 게 뭐야.1” 나는 무엇을 묻는지 몰라 그녀의 손을 살폈으나 손에 주머니 같은 것은 눈에 띄지 않았다. “이 쌍년아, 뭔지 모르나. 머스마가. 계집아가.” 그들은 매우 흥분한 것처럼 보였으며, 내가 그들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깨달은 순간은 바로 이 순간이었다. 여인의 목소리를 들을 수는 없었으나 아마 자기도 알 수 없다고 말하는 눈치였다. “그럼 내가 알려주지!” 순간 여자가 반항할 짬도 없이 옷을 나꿔채자 그녀의 원피스가 쭉 찢어지며 속살이 드러났다. 공수병은 대검으로 그녀의 배를 푹 찔렀다. 후비면서 찔렀는지 금방 창자가 튀어나왔다. 그는 다시 한 번 그녀의 아랫배를 가르더니 태아를 끄집어내어 땅바닥에 할딱이고 있는 여인에게 던졌다. 도저히 믿을 수도 있을 수도 없는 이 처참한 현장을 목격했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고개를 돌리고 몸서리치면서 이를 갈았다.  

나는 눈을 감고 혀를 깨물었다. 전신에 경련이 일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때에는 시체도 공수병도 보이지 않았다. 옆에 서 있던 사람의 말에 따르면 마치 오물을 쳐내듯이 가마니에 쑤셔 넣고 쓰레기 차에 던져 넣고 갔다는 것이다. 나는 무의식중에 소리쳤다. “오, 주님! 어떻게 해야 합니까.”이 순진무구한 사람들의 피의 대가로 무엇을 해야 보상이 될까. 이제 이 나라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까. 정말로 저들이 이 나라 국토방위라는 성스러운 과업을 수행하는 대한민국의 국군일까.  

내 자신의 목숨을 위해 그토록 끔찍한 광경을 숨어서 엿보던 자신이 부끄러워지기 시작했다. 이러한 일에 항거할 수 없는 자신의 비굴함을 보고 참으로 치사한 인간의 모습이 바로 나로 보여졌을 때, 자신에게 이루 말할 수 없는 모멸감을 느꼈다. 배가 갈라져 죽어가던 그 여인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나 자신의 비겁하고 용렬한 모습에서 최초로 자기증오의 감정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어느새 딴 곳으로 피신했는지 내 옆에 있던 사람들은 다 없어져 버렸다. 계엄군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엔 핏자국과 파편이 오물과 분노와 함께 남아 있었다. 대검과 철봉을 피해 군중들은 골목, 다방, 식당, 가게, 건물 등 안전한 곳이면 아무 데고 뛰어들었다. 피를 마시기에 혈안이 된 군인들은 아무나 잡히는 대로 찌르고 갈겨서 현장에서 즉사시키는 것이었다. 그들은 살인면허를 소지하고 있었다. 그들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누구나 죽일 수 있는 살인면허를 소지하고 있었다.  

“쿼바디스,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나는 십자가에 못박히기 위해 로마로 간다” 로마병정들에게 무차별 학살되는 초기 기독교인들을 보고도 도망가는 사도 베드로를 보고 하신 예수의 말씀이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이유 때문에 권력에 짓눌리고, 풍요로부터 외면당하고, 소외와 고독의 한 가운데서 굶주림과 추위에 떨며 권력과 무력의 제물이 된 그들은, 자신의 목숨을 결코 서 푼 이상의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베드로를 비롯한 사도들이 로마에 가서 먼저 자기들이 십자가에 못박히자는 결단을 내리고 발걸음을 돌렸던 그 역사적인 전환, 그들의 행동이 오늘의 기독교의 초석이 되었다고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나의 형제가, 나의 동포가 저렇게 피를 토하는 현장에서 자리를 피해 시 변두리에 위치한 월산동 쪽으로 도망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처가와 동생들의 생사를 확인해야 한다는 것이 내가 도망할 이유가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들은 내가 도망치기에 충분한 이유가 못 된다고 다시 생각했다. 그러나 내가 이 자리에서 죽지 않으려면 그렇게 해야 한다. 하나님의 사업을 내가 행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것이 충분한 도피이유가 될까. 모르겠다. 우선 이 순간을 면하고 보자. 나는 가능한 한 골목길만을 선택해서 달렸다.  

다행히 손에 든 게 없어서 좋았다. 어느 골목을 벗어나 대로 앞에서 딱 서고 말았다. 거의 반사적으로 몸을 빈 상자 뒤에 숨겼다. 참으로 무섭고 끔찍한, 역사가 생긴 이래 어느 학살의 현장에서도 결코 시도되지 못했을 그런 장면을 보아야 했다. 과연 저 군인들이 나 자신과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똑같은 한국인이란 말인가. 설령 김일성에 의해 북한에서 남파된 게릴라인들 이들처럼 잔인할 수가 있을까.  

공수병들이 여대생으로 보이는 3명의 여학생을 불러 세워 놓고는 발가벗기고 있었다. 브래지어와 팬티까지도 모조리 찢어내고 그 중 유독 험하게 생긴 공수병이 구둣발로 아가씨들을 차기 시작했다. “빨리 꺼져! 이 쌍년들아! 지금이 어느 때인 줄 알고 데모나 하고 지랄이야!” 그는 성난 늑대처럼 내몰았다. 나는 아가씨들이 빨리 도망쳐 주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러나 내 소원과 달리 내 기도가 들리지 않았는지 그 아가씨들은 땅바닥에 주저앉아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이 때 군인 하나가 고함쳤다. “이 쌍년들이 살기가 싫은가 봐! 그럼 할 수 없지” 순간 아가씨들의 등에는 대검이 꽂혀있고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아가씨들이 거꾸러지자 군인들은 대검으로 그네들의 가슴을 ×자로 긋더니 생사도 확인하지 않고 쓰레기차에 던져 버렷다. 암매장을 하는지 불태워 버리는지 그것은 알 길이 없었다.  

바로 이 때였다. 시민들의 분노 어린 고함이 더욱 거칠어졌고 흥분이 절정에 올랐다. 누군가 “시민이여! 모두가 일어섭시다! 우리의 자식들이 다 죽어갑니다. 공구들과 곡괭이든 닥치는 대로 가지고 싸웁시다!”고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와---!”하는 함성과 함께 시민들이 모여들더니 어느 목재소에선가 각목을 가져왔다. 겁에 질린 오합지졸처럼 도망치던 시민들은 돌아와 싸우는 자세로 돌변해 갔고, 학살은 더욱 심해졌다. 공수부대와 맞서 맨손으로 싸울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만일 내가 총검에 대항하다 죽는 날이면 죽음이 너무나 헤픈 것이 될 것이다. 나는 간신히 자제하면서 될 수 있는 한 빨리 달렸다. 그 날 밤 11시가 지나서야 동생들의 생사를 확인할 수가 있었다. 아가씨들의 끔찍한 최후가 자꾸만 눈앞에 아른거려서 한잠도 자지 못했다.  

3. 언어를 초월한 사랑  

밤을 새워 볶아 대는 총성, 전쟁영화에서나 듣던 자동화기의 연발 소리, 카빈과 기관총이 연달아 빗발쳤다. 도대체 저 총알들은 누구의 가슴을 노리고 있는가. 도심의 아스팔트는 선혈로 물들고 계엄군의 무차별한 발포는 밤이 새도록 벼락 쳤다. 고3에 재학중인 내 동생이 군대에 화염병을 던지며 밤을 새운 뒤 집에 돌아와 전하는 말에 따르면 시위군중 5백여명 이상이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고 한다. 나는 개죽음을 당해서는 안 된다며 말렸다. “친구와 형제가 죽어가는데 나만 살자고 도망가란 말입니까.” 내 동생은 흥분을 누르지 못하여 대들었다. 나는 할 말이 없었다.  

친구와 친척들의 피를 보고 학생들과 시민들은 분노와 저주의 극에 달했다. 시내의 모든 택시기사들은 저마다 차를 몰고 와 시위군중을 태우고 카퍼레이드를 벌이기 시작했다. 어디를 가나 가로엔 박수와 환호로써 격려하는 시민들로 꽉 차 있었고, 젊은이들은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차에 올라탔다. 고속버스, 시내버스, 불도저, 노획한 군 장갑차, 장교 전용차, 각양각색의 차량들이 수백 대가 넘었다.  

아세아자동차 공장에서 수백 명의 정비원이 뛰어나와 고장 난 차량을 정비하여 다시 내몰았다. 줄 서는 시위차량을 위해 서비스하는 데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주유소 직원들은 아무 차량에나 필요한 대로 기름을 공급했다. 차량마다 피로 쓴 플래카드가 걸려져 있었다. 덜 마른 선혈이 흘러내리는 차체의 구호가 군중들을 흥분시키고 있었다. “살인마 전두환을 때려 죽이자! 최규하 대통령은 물러가라! 김대중씨를 석방하라!”는 피로 갈겨 쓴 플래카드와 함께 대한민국의 국기가 그들의 손에서, 그들의 차에서 펄럭이고 있었다.  

울다가도 웃을 수밖에 없는 모습도 많았다. 고속버스 지붕에 올라앉은 수십 명의 학생들이 함성을 외치며 총검 대신 각목과 공구로 차체를 두드리며 구호에 강한 악센트를 가미하고 있었다. 차량을 확보한 데모군중의 기동력은 무서운 것이었다. 동생은 오픈카에 횃불을 설치하고 시내를 누비며 시민들의 궐기를 외치고 다녔다. 나는 그를 말리고 싶지 않았다. 사실 나는 생사를 걸고 친구들과 함께 투쟁하는 그의 충정에 감사함을 느꼈다.  

공수부대가 철수하겠다는 말이 들렸다. 시민을 무차별 학살하는 군인들의 만행에 격분한 한 육군장교가 곁에 있던 5명의 군인을 사살하고 자기도 자살했다는 말이 전해졌다. 사병들 사이에 혼란이 커져 갔다. 공수특공대는 도시외곽으로 철수하고 정규 계엄군이 진입하여 시위군중을 향해 무차별 사격을 자행해 왔다. 젊은이들의 피가 여전히 거리에 흩뿌려져 있었다. 길바닥에 나뒹구는 어린 소년들의 피와 시체를 보며 어느 시민이 그냥 서서 구경만 할 수 있겠는가 

광주는 공포와 전율의 도시가 되었다. 화염이 사방에서 솟았다. 군대에 의해 외부세력과의 모든 통신이 완전히 차단된 절해고도의 지역이 되었다. 그러나 시민들의 가슴은 불타고 있었다. 거기에 동참하지 못했던 사람, 하나로 굳게 뭉친 이 민중들을 자신이 직접 목격하지 못한 사람들은 이 해방감을 알 수 없으리라. 민주주의 수호 투쟁에 목숨을 던진 젊은이들의 얼굴에서 눈물을 볼 수 있었으리라. 피로 물든 가슴들, 그들의 머리엔 자신의 피로 쓴 구호와 얼룩이 진 띠를 동여매고 목이 찢어져라고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사랑하는 우리의 이웃, 어리고 티 없는 아이들, 이젠 아주머니들조차 차에 합류하고 있었다. 외치다 외치다 목이 쉬어 이젠 들리지조차 않는 목소리로 민중을 향해 눈물로 호소를 보내는 어린 소년들의 절규에 나는 기어코 울어 버리고 말았다. 승차하지 못한 시민들은 김밥을 만들어 왔고 음료수를 가져왔다. 먹을 것, 마실 것을 송두리째 쓸어 담아 왔다. 계란, 빵, 콜라, 우유, 쥬스 등 모두 시위군중에 주고 싶어했다. 상자에 모두 집어 넣다가 보니 노인은 그것을 들어올릴 수 없었다. 나는 그것을 들어다 달리는 차량을 세우고 차 안으로 밀어 넣었다. 그들의 얼굴 위에는 싸우다 죽으리라는 각오가 역력했다.  

먹을 것을 준비 못한 부인들은 물통을 들고 나와 그들의 얼굴을 닦아 주고 물을 입에 대어 주었다. 시민들은 몰두한 얼굴로서 질주하는 차량을 따라 달리고 있었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과 목숨을 함께하는 피와 사랑의 투쟁이었다. 등을 두드려 주며 격려하는 사람, 약과 드링크제를 들고 나온 약사, 박수와 격려를 보내기에 혼신을 다하는 인파.  

4. 5월 22일의 헌혈자들  

최루탄의 독기가 확 퍼져 눈을 뜨고 있을 수가 없었다. 열기와 폐허로 변한 도시는 지옥의 한 장면 같았다. 데모군중이 점점 격렬해지자 또다시 계엄군은 사격을 시작하였다. 여기저기에서 비명을 토하며 쓰러져 가는 수많은 시민들이 있었다. 시민들은 화산지대마냥 되어 버린 금남로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시민들은, 30만 이상이라고 추정되는 그 거대한 인파는 거리를 꽉 덮고 장사진을 이루었다. 페퍼포그의 무서운 효력은 말로만 들었지 경험해 보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나는 연방 재채기를 해 대며 쏟아지는 눈물, 콧물을 필사적으로 훔쳐 대면서 군중 틈으로 비집고 들어갔다. 계엄군은 도청 앞 광장에 장갑차를 지그재그로 정차시켜 바리케이드를 쳐 놓고 총구를 시민 쪽으로 향해 놓았다. 그것은 언제 불을 뿜을지 모르는 활화산의 분화구 같았다.  

하오 3시, 장차 무서운 충돌을 예견하는 조짐이 짙어져 갔다. 무기가 없는 학생들은 유일한 무기로 각목과 주유소에서 뽑아 온 기름을 준비하였다. 그들은 다섯 개의 드럼통을 트럭 위에 싣고 통마다 기름을 가득히 담아 계엄군 쪽으로 몬 뒤 솜뭉치에 불을 당겨 드럼통에 던졌다. 거대한 불기둥이 하늘 높이 솟아올랐다. 이것이 신호인 양 계엄군들의 총구에서 불이 튀기 시작하였다. 장갑차 위에서 태극기를 흔들며 구호를 외치던 중 3학년 또래의 소년이 이마와 복부에서 시뻘건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군중을 향하여 쏟아지는 실탄은 빗발치듯했다. 여기저기에서… 내 앞에서 지휘하던 청년이 “아이쿠”하는 외마디를 남기고 쓰러졌다. 들것을 준비하지 못한 군중들은 등에 업거나 각목으로 들것을 만들어서 환자와 시신을 날랐다. 저 어린 나이에 이름도 없이 죄도 없이 꽃잎처럼 쓰러져 갔다.  

태극기를 흔들며 동포의 총에 맞아 무의미하게 죽어간 저 무명소년의 이름은 역사에 어떻게 기록될까. 폭도, 불량배, 반국가적 단체, 용공세력 내지 간첩의 사주를 받은 공산주의 용의자라고 기록될 것인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들풀, 열매도 맺지 못하고 향기를 뿜어 보기도 전에 베어진 들풀, 이제 찬서리에 뒤덮인 저 어린 꽃에 무어라 이름을 붙여 주어야 할까. 찢어진 채 펄럭이는 피로 물든 깃폭, 그 속에 뚫린 총알구멍은 민중의 서리고 서린 적의와 원한만큼이나 많았다.  

오늘의 지성, 오늘의 종교인들이 진정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수십 년 동안 쌓여 온 민중의 원한, 우리가 그것을 무시하고 개인적인 안일과 영화를 얻기 위해 권력과 부도덕한 세력에 야합한다면, 그리하여 정부의 억압과 권력을 증가시키기만 한다면 장차 저 축적된 분노는 무엇이 되어 나타날 것인가. 역사가 전달되고 민중의 맥박이 끊어져야 하는 오늘의 위기 속에서 우리는 미래의 천국만을 꿈꿀 수가 있단 말인가. 단종을 복귀시키려다 실패한 사육신, 이태조의 건국에 반대하여 피를 뿌린 정몽주는 충신으로 역사에 기록되면서 왜 똑같은 대의를 위해 쓰러져 가는 젊은이들은 폭도라고 지탄되어야 하는가. 그들이 죽음을 당하면서까지 무슨 개인적인 욕심을 추구한 것이 있는가.  

총알을 피해 퇴각하던 군중들은 어느 골목길을 꺾어 돌아 거기에 기다리고 있는 또 하나의 불행과 마주치고 말았다. 이런 혼란 속에서 몇 미터도 되지 않는 좁은 골목길에 수천 명이 밀어닥치는 바람에 수많은 사람이 밟히면서 50여 명이 죽거나 부상당했다. 이런 혼란 속에서 나는 “용케도 총알과 대검을 피했지만 여기에서 죽고 마는구나” 생각하며 눈을 감았다. 그러나 나는 기적적으로 살아났다. “시민 여러분, 헌혈을 하십시오! 피가 필요합니다. 피가 없어 사람들이 죽어갑니다!”  

학생들은 마이크로 헌혈을 호소했다. 수많은 남녀가 헌혈하겠다고 나섰다. 진짜 피로 ‘헌혈차’라고 쓴 구급차에 탔다. 나는 적십자 병원을 향해 출발했다. 병원에 들어서자 피비린내가 나를 맞았으며 나는 구역질이 나올 것 같았다. 병실, 복도 할 것 없이 그 큰 병원이 환자로 가득 차 있었다. 앉아서 채혈할 만한 공간도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다시 차를 타고 양림동 다리 곁에 있는 다른 병원으로 향했다.  

길을 따라 서 있던 군중들을 가르며 가운데서 한 청년이 나타나 군중을 저지하려고 하는 계엄군에게 돌을 던졌다. 그는 힘없이 거꾸러졌다. 학생처럼 보이는 청년 둘이서 철모를 벗겨 골통을 박살내었다. 군중은 박수를 쳐 대었다. 모처럼의 복수를 목격한 시민들의 얼굴에서 승리의 기쁨이 출렁이고 있었다. 나 자신도 압제자에 대해 보복하는 것에 시원한 흥분이 저려 왔다.  

어느 병원이나 환자들은 초만원이었다. 마침내 헌혈을 하고 나서 나는 잠시 생각에 젖어 보았다. 누군가 이름도 모를 젊은이의 피와 내 피가 혼합되어 흐른다고 생각하니 연민의 정이 솟아올랐다. “살아라! 제발 살아서 용감하게 싸워 다오. 이 젊은이들 어느 누구의 피도 헛되지 않기를 바란다”  

5. 누가 그들을 폭도로 몰아세웠는가.  

광주에 파견된 계엄군은 모두 도시외곽으로 철수했다. 시민들은 도청을 장악했고 화순, 송정리, 나주, 함평 등지의 무기고에서 무기와 탄약을 탈취했다. 4천여 정의 총, 5만발의 탄약, 수류탄, 다이너마이트는 계엄군과의 전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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