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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폭동 추가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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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14-08-13 12:15 조회5,83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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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주폭동 추가 분석

 

                                       이제까지의 분석  

이제까지 우리는 광주시위가 민주화운동이 아니라 폭동이었고, 그 폭동은 북한특수군이 기획-연출하였고, 일선에서 세계 최고수준의 게릴라전을 수행한 북한특수군 인력이 300명 단위로 묶어진 600명이었고, 이 600명이 수행한 작전이 어떤 것들이었다는 것을 18만쪽에 달하는 수사 및 재판기록과 북한의 대남공작 역사책, 북한의 정기간행물, 5.18기념재단측 자료 등을 통해 분석해 냈다.  

여기에 북한측이 남긴 영상, 표어문구 등 방증자료들이 여러 애국국민들로부터 보태지면서 결론을 풍부하게 치장했다. 필자는 5.18을 2개 전선에서 분석했다. 하나는 5.18에 대한 판결이 2개 존재하는데 1981년 4월 1일의 대법원 판결이 1997년 4월 17일의 대법원 판결에 비해 매우 공정하였다는 결론과 함께 1997년의 대법원 판결이 인민군의 군법회의 판사들이라야 쓸 수 있는 것들이라는 결론을 냈다.

 

                                  새로운 개념의 추가  

그런데 필자는 최근 5.18기념재단이 마련한 “5.18의 기억과 역사”“5.18항쟁 증언자료집”을 읽으면서 5.18 10일간의 폭동을 3개 국면으로 쪼개서 보는 것이 보다 가시적으로 5.18폭동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즉 5.18 초기단계에서 수행됐던 화려무쌍한 게릴라작전이 절대로 광주사람들에 의해 그리고 1981년 판결문에 내란수괴로 기록된 바의 정동년 급 인물들에 의해 수행되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가시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1981년 판결문에 의해 내란수괴로 정의된 정동년은 5월 17일 밤중에 체포돼 갔고, 그의 휘하에서 내란행위를 주동하였다는 12명은 그들이 도청에서 만나기 전까지는 서로 일면식도 없었던 뜨내기들이었지 정동년이 만든 조직이 아니었다. 300명 단위로 매복하여 20시단 지휘부를 공격할 수 있는 능력과 조직을 가진 사람, 600명 단위로 아시아자동차에 집결하여 4대의 장갑차를 몰고 나가고 370여대의 군용트럭을 몰고 나가 곧바로 전남지역 17개 시군에 숨어 있는 44개 무기고를 불과 4시간 만에 털 수 있는 능력과 조직을 기른 사람은 사형선고를 받은 5인과 무기징역을 받은 7인에는 없었다.  

1980년을 책임진 정보기관과 군은 텅 비어진 전남도청에 제각각 들어온 뜨내기들 이었다. 당시 정부는 어설픈 소영웅심에 사로잡혀 도청으로 들어왔던 양아치 계급의 애송이들만 잡아놓고 이들에게 모든 책임을 물었다. 그리고 불과 1-2년 사이에 모두 풀어주었다. 물론 이들의 죄는 사실 무거운 것이었다. 그러나 이들이 진 죄는 5월 26일 이후에 저지른 죄 밖에 없다.  

계엄군이 도청을 내주고 5월 21일 오후 외곽으로 철수(도망)하자, 5월 22일부터 광주 유지들이 모여 수습위원회라는 것을 만들어 놓고, 화려한 게릴라전을 수행했다는 대학생들을 초대했다. 그러나 그 어디에도 5월 21일까지의 눈부신 작전을 수행했을 법한 대학생은 나타나지 않았다. 사실은 그 반대로 대부분의 대학생들은 5월 18일 이후 깊숙이 숨거나 도망을 갔다.  

겨우 대학생이라고 나나타난 사람이 전남대 3년생 김창길이었다. 김창길은 온건파로 광주시민을 살려낸 은인이다. 그는 5월 22일부터 무기반납 등 평화적 사태수습을 위해 상무대 계엄사와 접촉하며 광주 사람들의 희망사항들을 전했다. 그는 도청에 폭탄으로 조립돼 있는 TNT 폭탄의 존재를 계엄사에 알리고 그 해체를 요청했다. 상무대 계엄사(소준열 소장)는 유일한 전문가 배승일 문관을 25일과 26일 두 차례에 걸쳐 도청 지하실로 보냈고, 김창길은 문관의 생명을 보호해 주었다.  

그런데 조선대학교 학생 김종배, 윤상원(서점 종업원), 박남선(화물차 운전수), 정상용(회사원), 허규정(학생) 등이 5월 25일 밤에 권총으로 김창길을 위협하여 내쫓고 미항공모함이 부산에 들어오니, 곧 자기들을 도와줄 것이라는 헛된 망상과 소영웅심에 사로잡혀 TNT로 조립된 폭탄을 폭발시켜 광주를 날려버리겠다는 협박과 함께 계엄군과 끝까지 싸우겠다고 선포했다. 이것이 바로 이들이 책임져야 할 죄다. 그런데 이들 강경파들은 조직으로 존재했던 것이 아니라 생면부지의 사람들이었으며, 이들은 각자 소영웅심에 사로잡혀 일종의 자존심 경쟁을 하고 있었다. 도청에서 빠져나가고 싶지만 자존심 때문에 엉거주춤 하다가 비극을 맞은 것이다.  

이때 소비도시에 불과했던 광주시는 식량난과 폭도들의 불장난에 엄청난 고통을 호소하며 정부에 조기진압을 압박하고 있었다. 이에 계엄군은 불가피하게 5월 27일 새벽 진압작전을 감행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민간측 희생자만 해도 17명이 발생했다. 김종배를 위원장으로 하는 투쟁위원회를 결성하지만 않았어도 이런 희생은 불필요했다.  

이러하기에 사형 및 종신형을 선고받은 12명을 포함한 252명에 대한 유죄판결은 정당한 것이다. 하지만 이들의 죄는 어디까지나 주로 5월 22일 이후에 저지른 죄이다. 당시 정부는 5월 21일까지 범한 중대 범죄행위자들을 찾아내지 못했다. 오직 마이크로 주민들을 선동하고 다녔던 전옥주(전춘심) 류의 범인들만 잡았을 뿐, 20사단 사령부를 공격한 사람들, 장갑차를 몬 범인들, 트럭을 운전하고 무기고로 가서 솜씨 있게 무기고를 파괴한 범인들, 교도소를 6회 공격한 범인들, 변압기를 폭발시켜 MBC에 불을 낸 범인은 찾아내지 못했다. 북한도 자료를 통해 꼬리를 잡혔듯이 북한특수군은 승산이 없어진 순간 즉 5월 24일부터 27일 새벽에 이르는 동안 축차적으로 안개처럼 사라졌다.  

만일 5월 26일 아침 김종배를 필두로 하는 강경파가 나타나지 않고, 온건파 김창길이 그대로 수습과정을 이어갔더라면 1심 유죄자 252명의 대부분도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고 중범죄자도 거의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랬다면 당시 정부는 5월 21일까지의 기막힌 게릴라 작전으로 인한 피해 책임을 누구에게 물었을까? 피해는 분명 엄청나가 발생했는데 범인을 잡지 못하는 매우 황당한 경우를 맞이했을 것이다.


                            5.18의 왜곡된 역사책은 북한이 썼다.  

김상집은 녹두서점의 주인 김상윤의 동생이다. 김상윤 부부는 예비검속 때 체포돼 있었다. 그의 아래-아래 동생인 김상집은 겨우 고등학교를 나온 사람이지만 저항정신이 확고했다. 5.18폭동 때 정보와 유언비어들이 통과하는 집배소 역할을 했고, 많은 화염병을 제작해냈다. 그런데 고교 학벌을 가진 그가 20대 초반 나이에 황석영 이름으로 발간된 ‘넘어 넘어’(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를 가장 먼저 입수한 사람이었다. 그는 그의 증언록에서 1981년 4월-6월 사이에 이 책 내용을 손수 정리했다고 자랑했다.  

소준섭은 이 내용을 1982년에 ‘광주백서’라는 이름으로 발간했다고 했다. 이재의는 이 내용을 자기가 썼다고 했다. 그런데 1985년에 이 책은 황석영 이름으로 ‘넘어 넘어’라는 제목으로 발간됐다. 그런데 이 책 내용은 북한이 낸 두 개의 책(주체의 기치 따라, 와 광주의 분노)을 거의 베낀 것이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5.18의 역사책이자 바이블로 수십년간 자리 잡아 온 ‘넘어 넘어’는 북한으로부터 김상집에게, 김상집으로부터 소준섭에게, 소준섭으로부터 이재의에게, 이재의로부터 황석영에게 넘어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5.18역사는 광주사람들이 쓴 게 아니라 북한이 써서 광주사람의 손에 쥐어주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광주사태 10일을 쪼개보는 3개 국면
 

광주사태는 5월 18일 오전 9시 30분 전남대 앞에서 학생신분을 가장한 250명 정도의 조직화된 시위꾼들의 돌멩이 공격으로 촉발되었고, 5월 27일 새벽 5시 23분 국방장관 주영복이 최규하 대통령에 광주진압 작전이 완료되었음을 보고하는 순간에 마감됐다.  

이 10일간의 광주소요는 그 성격상 3개 국면으로 구분될 수 있다.  

제1국면: 전문 게릴라 작전(18일-21일) : 북한특수군이 수행 

제2국면: 개념 없는 온건파 뜨내기들에 의한 총기반납 등 사태수습 국면(22일-25일): 온건파 학생 김찰길이 주도.  

제3국면: 어설픈 망상에 사로잡힌 무개념 강경파 애송이들에 의한 투쟁선포와 진압적전 국면(26일-27일): 강경파 애송이 김종배가 주도


                     광주폭동을 일으킨 공식적 주범들은 누구인가? 
 

1980년 1심 재판은 광주폭동의 주범을 김대중, 정동년으로 규정했고, 그들의 배후조종으로 폭동을 실현한 범인들을 252명으로 정의했다. 이들 중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은 5명, 무기징역형을 받은 사람은 7명이며 그 명단은 다음과 같다.  

사형: 정동년(37, 복학생), 배용수(34,운전수), 박노정(28,인쇄업), 박남선(26, 트럭운전수 운수업), 김종배(26,학생) 

무기징역형: 윤석루(20,구두공) 허규정(27,학생) 정상용(30,회사원) 하영열(31,공원) 윤재근(28,공원) 서만석(36,상업)  

복학생인 정동년이 김상현을 통해 김대중의 자금 500만원을 폭동자금으로 건네받았고, 정동년은 이 500만원 중 300만원은 전남대 총학생회장 박관현에게, 200만원은 전남대 축산과 학생회장인 윤한봉에게 나누어주면서 폭동을 실현하라 사주했다는 것이 전체적인 지휘체계의 맥락이다.

 

                                        의 문 점 

그런데 여기에는 몇 개의 의문점이 있다. 

김대중과 정동년은 5월 17일 밤중에 체포되어, 광주폭동 기간 내내 감옥에 있었고, 300만원을 받았다는 전남대 총학생회장 박관현은 폭동기간 내내 도망가서 꼭꼭 숨어 있었고, 200만원을 받았다는 윤한봉 역시 폭동기간은 물론 그 후 1년 동안 꼭꼭 숨어 있다가 미국으로 밀항했다. 김대중 및 그의 자금을 받은 세 사람이 모두 폭동기간 내내 감옥에 있거나 체포망을 피해 도피해 있었기 때문에 폭동을 지휘할 수 없었다. 이들이 미리 짜놓은 시나리오에 의해 최소한 12명의 사형 및 종신형을 선고받은 사람들이 10일간의 폭동을 일선지휘 했다는 것이 판결의 요지다.  

그런데 5.18기념재단이 마련한 “5.18의 기억과 역사” 그리고 “5.18항쟁 증언자료집” 에 실린 이들의 증언 의하면 1) 광주의 운동권 인물들은 모두 예비검속을 통해 5월 18이전에 체포되었고 2) 대학생들은 거의 다 도망을 갔고, 얼굴 모르는 뜨내기들, 양아치 등 개념 없는 하층계급들이 이리저리 휩쓸려 다니다가 5월 22일부터 도청으로 모여들었고, 3) 사형 및 종신형을 선고받은 사람들도 서로 얼굴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었고, 4) 도청을 장악한 세력은 따로 있고, 자기들은 장악된 도청에 들어가 무기반납과 시체처리, 질서유지 등 사태를 수습하는 일에서부터 참여했다고 증언한다.  

위 증언록들을 보면 5월 26일 오전부터 계엄군과의 투쟁을 선포한 자칭 ‘투쟁위원회’ 또는 ’항쟁지도부‘의 총사령관이라는 김종배(26세 학생), 5.18의 전설이라는 윤상원(31세 책방점원), 외무위원장이라는 정상용(30세 회사원), 내무위원장이라는 허규정(27세 학생), 상황실장이라는 박남선(26세, 공재채취운전수), 기동타격대장이라는 윤석루(20세 구도공원)는 서로 생면부지의 처지였고, 도청에서 생전 처음 만난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들이 사형 및 종신형을 선고받은 폭동의 주범들로 처벌 받은 것이다.  

그들의 증언에 의하면 이들 폭동의 주범들은 5월 18일부터 21일 도청을 장악한 시점에 이르기까지 숨어 다녔고, 총소리가 나면 도망쳤고, 차량이 몰려온다는 소리만 들어도 도망을 쳤다고 실토한 사람들이었다.  

그러면 300명 단위로 형성된 2개 팀 600명 조직은 어떤 광주사람들이 만들었다는 것이며, 이들이 벌인 화려한 게릴라 작전은 누가 주도-실행했다는 말인가? 5.18기념재단은 5월 18일부터 21알까지의 폭동작전을 어떤 사람들이 주도했는지 그 증언자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사형 및 무기징역을 받은 사람들의 나이와 직업, 또한 1심에서 유죄를 받은 252명의 나이와 직업을 보면 이들은 300명씩 2개 팀을 만들어 신출귀몰한 게릴라 작전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며, 5월 18일 아침 9시 30분에 전남대학 정문 앞에 ‘250명으로 추산되는 학생집단’으로 인식될만한 조직을 꾸릴 수도 없고, 순식간에 7명의 공수대원에 부상을 입힐 정도의 투석능력을 갖기도 어려웠다는 생각이 든다.  

세상에서는 윤한봉을 5.18의 귀재 정도로 숭상한다. 그러나 윤한봉은 대학생 정도의 사고방식에 포로 돼 있었고, 졸병 성향의 소영웅주의에 사로 잡혀 사회를 교란시킨 문제아에 불과했다. 그리고 그는 폭동기간 내내 서울 이철용이 사는 빈민가에 숨어 있다고 미국으로 밀항했다.

 

                                         결 론  

결론적으,로 5.18에 한국 측 영웅은 없다. 영웅은 북한에서 왔다. 20사단 지휘부가 광주 톨게이트를 아침 8시에 통과한다는 정보를 입수한 존재는 광주에 사는 5.18영웅들 중에 없다. 300명 정예 공격부대를 형성하여 20사단 사단 본부를 공격한 최정예 작전요원들도 한국의 광주에 사는 5.18영웅들 중에 없었다. 윤상원? 정동년? 윤한봉? 다른 양아치 계급들? 어림도 없다.  

600명이 아시아 자동차에 모여 차량들을 탈취해 가지고, 4시간 동안 18개 시군에 산재한 44개 무기고를 턴 지휘자도 광주의 5.18영웅들 중에 없었다. 6회에 걸친 교도소 공격을 지휘한 영웅도 '5.18기념재단‘이 내세운 영웅들 중에는 없다.  

제1심 피고인 수는 모두 357명, 이중 252명만이 집행유예 이상의 형을 받았다. 그런데 이 357명을 연령별로 보면 10대가 71명으로 20%, 20대가 216명으로 61%를 차지했다. 10-20대가 81%를 차지한 것이다. 나머지는 30대 36명, 40대 23명, 50대 6명, 60대 5명으로 집계된다. 이들 357명중 학생은 80명으로 23%에 해당했다. 학생 80명을 뜯어보면 10대 고교생이 16명, 20대 대학생이 60명, 30대 복학생이 4명이었다. 학생을 제외한 나머지 피고인들의 직업을 보면 자개공, 제화공, 목공, 석공, 식당 종업원, 껌팔이, 넝마주이, 일용잡급, 운전수, 구두닦이 등 무려 57종에 달한다. 

당시 30세 회사원으로 우연히 도청에 갔다가 강경파 주역으로 참가한 정상용은 이렇게 증언했다.  

“5.18의 기동타격대 구성원은 그 80%가 17살에서 22살 사이의 청년이었고, 대부분이 학생이 아닌 도시근로자, 노동자, 점원, 실직자, 구두닦이, 품팔이, 식당 종업원 등 소외받고 억눌려왔던 기층민중이며 이들이 가장 적극적으로 싸웠다. 지금까지는 광주민중항쟁이라는 말을 썼지만 나는 5월혁명이라고 부르고 싶다”  

세상 한번 뒤집어보자고 부나비처럼 설친 구두닦이 양아치들의 잔치가 혁명이라 하는 것이다. 이들 광주 양아치 계급들은 북한특수군이 저지른 전과를 자기들이 이룩해낸 민주화전과라며 자자손손 국민세금으로 잘 먹고 출세하고 세도가로 행세하는 것이다.

 

2014.8.13.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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