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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은 순전히 "북한특수군 작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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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14-09-01 17:43 조회10,04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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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18은 순전히 "북한특수군 작전"이었다           


전에 나는
“5.18에 북한특수군 확실히 왔다”는 결론을 냈다. 그러나 어제(8월 31일) 나는 기록들을 정리하면서 한 단계 더 나아가 “5.18은 순전히 북한특수군의 작전”이었다는 결론을 얻게 되었다. 북한특수군이 광주민주화운동에 끼어들어 모략작전을 수행한 것이 아니라, 북한특수군의 작전에 광주인들이 부나비처럼 개인단위로 놀아난 것이었다. 광주인들은 북한특수군 작전에 이용된 소모품에 불과했다. 광주인들이 기획하고 광주인들이 지휘한 광주민주화운동은 아예 없었다. 5월 18일부터 시위를 지휘한 광주인은 단 1명도 없다. 이것이 5.18기념재단이 마련한 광주인들의 고백이었다.
 
5.18은 처음부터 북한특수군이 수행한 작전이었다. 그리고 그 작전은 사실상 5월 18일에 시작되어 5월 21일에 종결된 작전이었다. 22일부터 25일까지는 광주사람들이 주도하는 무기반납기간이었고, 26일과 27일 새벽 1시까지는 화물차 운전수, 구두공 등 지각없는 부나비들이, 쏟아져나온 총을 가지고 끝까지 결사항전하자고 선포했다가 계엄군의 공격을 받아 항복한 경거망동의 시간이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5.18 폭동의 광추측 지휘자가 단 한 사람도 없다는 사실이다. 지휘자 없는 대규모 시위가 어디 있는가? 광주폭동에 참여했단 사람들은 대부분 북한특수군 작전에 부하뇌동한 광주의 천덕꾸러기들이었고, 사망한 사람들의 대부분은 북한특수군이 죽였다. 총기사망자의 70%정도를 북한군이 죽였다.

5.18판결문은 2개 존재한다. 1981년 4월 1일의 것과 1997년 4월 17일의 것이다. 전자의 판결문은 불완전한 것이고, 후자의 판결문은 북한의 판사나 쓸 수 있는 이적의 판결문이다.  

1981년 5.18판결의 핵심은 김대중이 김상현을 통해 500만원을 정동년에게 주면서 불법시위를 사주했고, 정동녕은 이중 300만원을 전남대 총학생회장인 박관현에게, 200만원은 축산학과 학생회장 윤한봉에게 주어 시위를 조종했고, 홍남순, 김성용 송기숙 등은 학생시위에 편승하여 김대중을 수반으로 하는 과도연립정부를 수립하기로 하고 김종배, 배용수 등 과격 광폭한 폭도들을 더욱 광폭해지도록 사주하였다는 것이었다.

나는 이 판결이 5.18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내린 판결이라는 결론을 어제(2014.8.31) 얻었다. 판결문은 5월 26일부터 25시간 동안 경거망동한 최하층 노농자들을 주범들로 인정했다. 20사단 지휘부를 습격한 300명, 전남대 정문에서 돌을 던지고 수많은 파출소를 소각시킨 250명, mbc를 소각한 사람, 장갑차를 몰고 나간 사람들,  군용트럭을 몰고 무기고로 간 600명에 대해서는 그 존재조차 기록하지 않았다. TNT를 무기로 조립해놓은 사람들도 잡지 못했다.  

1997년 5.18판결문의 핵심은 이러했다. 광주시위대는 신군부로부터 헌법을 수호하기 위해 결집된 의로운 준-헌법기관이다. 이 시위가 빠른 시일 내에 전국으로 확산됐어야 했는데 신군부가 최규하 대통령을 무력하게 만들어 놓고 직접 나서서 무력으로 탄압한 행위는 분명한 내란이라는 것이었다.

남한을 점령한 인민군 판사나 쓸 수 있는 이적의 판결문인 것이다. 
 

결론적으로 두 개의 5.18판결문이 다 존중받을 수 없는 판결문이다. 때문에 5.18역사는 학문적으로 다시 접근돼야 한다. 5.18의 진실에 대한 새로운 결론 즉 “518은 북한특수군 작전”이라는 결론을 내리기 위해 아래의 사실들을 열거한다.

 

     “5.18이 북한특수군 작전”이라는 진실을 밝히기 위한 중요 사실들 

1. 1980년 4월 초부터 전국적으로 발생한 시위는 남한 학생들만의 조직력과 리더십으로 발전-확대될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었다. 북한 노동당이 발간한 두 개의 책에는 남한 학생시위의 전략과 전술이 수록돼 있고, 남한의 학생시위는 이 전략과 전술대로 수행됐다  

2. 김대중은 4월 10일, 5월 1일, 5월 10일 3회에 걸쳐 북악파크 비밀회동을 통해 자기를 새로운 국가수반으로 하는 혁명내각까지 편성해 놓고(김대중 내란음모사건), 5월 16일 최후통첩을 발표했다. “5월 19일까지 최규하 내각이 총 사퇴하고 계엄령을 철회하지 않으면 5월 22일을 기해 전국적 봉기를 감행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믿는 구석 없이 ‘정부를 상대로 전쟁을 하겠다’고 선언하는 것은 정신병자가 아니고서는 할 수 없는 망동이었다. 도대체 무얼 믿고 이랬을까?  

3. 당시 김일성은 간첩들에게 남한의 “전민봉기”(전국봉기)를 일으키라고 다그쳤다.  

4. 당시 보도들에는 북한이 게릴라 부대를 남파할 것이라는 내용들이 기사화돼 있었다.  

5. 5.17 비상조치로 그날 밤 전국의 모든 운동권은 예비검속에 의해 거의 다 체포되었고. 일부는 장기간 도망하고 잠적했다. 이로부터 한동안 남한에서는 운동권이 준동할 수 없었다.  

6. 광주사건의 두목으로 알려진 정동년은 5월 17일 자정 집에서 체포돼 가서 구속재판을 받느라고 5.18기간 내내 시위를 주도할 수 없었다.  

7. 200만원과 300만원을 받았다는 윤한봉(전대 축산학과 학생회장)과 박관현(전대 총학생회장)은 5월 18일 이전에 이미 도망가 잠적했고, 나머지 운동권 핵심들은 5.18 이전에 체포됐다. 학생들은 시위기간 내내 벌벌 떨며 잠적 은신했고, 교수, 유명 인사들은 소요기간 내내 시위와 거리를 두었다. 따라서 광주에는 소요기간 10일내내 대학생 시위가 있을 수 없었다.(5.18기념재단이 마련한 폭동 핵심 주체들의 증언집에서)  

8. 5월 18일 오전 9:30분, 전대 앞에서 계엄군에 돌멩이를 던져 부상을 입힌 250여명의 유능한 전투집단은 ‘학생’들로 표현돼 왔지만, 학생일 수 없었다. 5.18핵심인물들의 증언에 의하면 당시 대학생들은 공포에 떨며 모두 잠적했다. 5.18영웅으로 알려진 사람들은 차량행열만 보아도 놀래 각자도생하기로 하고 도망들을 갔다.

21일, 오전 8시에 20사던 지휘부 차량부대가 광주 톨게이트를 통과한다는 극비정보를 입수하여 300명 단위로 매복해 있다가 지휘부를 습격하여 14대의 차량을 빼앗아가지고 그 차량들을 아시아지동차 직원을 위압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한 초특급 전략과 무술을 소유한 집단도 대학생일 수 없다. 최하층 계급의 광주 노동자들은 시위기간 내내 단 한번도 10명 이상을 조직해 본 적이 없다. 
 

또 다른 300명이 대형버스들을 몰고 09:00시에 아시아 자동차에 도착했다. 이들 600명은 신형 장갑차 4대를 몰고 나갔고, 군용트럭 370여대를 몰고나가 전남지역에 산재한 44개 무기고를 털어 12시부터 오후 4시 사이에 5,300여 총기를 탈취하고, 다이너마이트 8톤 트럭 분량을 순식간에 폭탄으로 조립하여 도청 지하실에 쌓아놓았다. 폭탄 조립 및 해체 기술은 광주시민에는 없었다.  

이들은 지역감정을 폭발시키는 유언비어를 만들어 살포했고, 군중을 모으는 기술을 발휘했다. 파출소들에 불을 지르면 사람들이 모여들게 돼 있었다. MBC는 광주인들의 실력으로 불태운 게 아니라 얼굴 없는 어느 전기전문가가 변압기를 폭파시켜 불태운 것이다. 이 600명은 무기고 총으로 광주시민을 쏘아 놓고, 몸을 태워놓고, 얼굴을 으깨놓은 후 이를 계엄군에 뒤집어 씌웠다. 총에 맞아 사망한 사람의 70% 정도가 무기고에서 나온 총상을 입었다. 광주시민과 계엄군이 서로 싸우도록 모략작전을 한 것이다.  

9. 21일, 오후 5시 계엄군이 광주시에서 쫓겨나자 22일부터 광주유지들이 모여 시국수습대책위를 만들어 놓고 무기부터 반납하기로 방침을 세웠다. 그리고 앞의 4일동안 전광석화의 동작들을 보인 학생집단을 애타게 찾았지만, 300명, 600명 단위의 학생은 보이지 않고 겨우 22세의 전대 대학생 김창길을 위시한 몇 명이 나타났다. 그리고 김창길이 학생수습위원장이 됐다.  

김창길 등은 22일부터 25일 밤까지 4일간 무기반납운동을 전개해 많은 무기를 수집해 도청에 보관했다. 특히 김창길은 전라도 계엄사에 몰래 찾아가 도청 지하실의 다이너마이트 폭탄을 해체하지 않으면 광주시가 날아간다고 호소했고, 그의 청은 이루어졌다. 전라도 계엄사에서 포탄 해체 기술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오직 5급문관 배승일 뿐이었다. 5.18핵심 인물들은 “갑자기 총기가 쏟아져 나왔다”는 표현들만 반복한다.  

5.18 최고의 영웅이라는 윤상원은 “무기가 갑자가 쏟아져 나오는 순간까지” 계엄군에 던질 무기로 철근 조각과 나사뭉치를 모으고 있었다. 5.18유공자들 중 무기 탈취자, 20사단 지휘부 공격자, 장갑차 운전자는 없다. 당시 연고대생 600명 또는 서울대학생 600명은 광주시의 유행어였고, 5.18기념재단 기록들에는 22일 오후 3:08분에 서울서 온 대학생 500명을 위한 환영식을 했다는 내용이 있다.  

22일부터 25일 밤까지 4일 동안 순수한 광주사람들은 엄청난 무기에 겁을 먹고 반납을 서둘렀다. 자기들이 무기를 탈취해 왔으면 이렇게 무기를 무서워하고 반납하겠다 나서지 않는다. 5.18핵심 인물들 중 무기를 다룰 줄 아는 사람은 불과 몇 명뿐이었다. 오죽 군사경력자가 없으면 결사항쟁의 주역이었던 기동타격대장이 20세에 불과한 구두공이었겠는가(5.18기념재단 증언).  

계엄군이 빠져나간 광주, 대학생들과 지각 있는 청년들이 모두 잠적해 있는 광주는 22일부터 텅 비어 있는 유령의 도시가 됐다. 날렵했던 600명은 무기반납에 열중하는 한심한 광주시민들에 실망했겠지만, 얼굴이 노출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복면을 쓰고 총을 들고 거리를 질주하면서 우리가 있으니 무기를 반납하지 말라고 선동했다. 22일부터 25일 밤중까지는, 무기를 반납하자는 광주시민과 ‘반납하지 말라. 우리가 있다’ 하는 식으로 위력시위를 벌이는 한편 교도소를 여러 차례 공격한 600명이 공존해 있었다. 교도소 공격이 성공했더라면 시위는 수감자들에 의해 확대될 수 있었지만, 그것이 실패하는 바람에 북한군은 작전을 접었다.  

10. 5.18사건 재판에서 사형과 무기징역을 받은 사람들은 대학생들이 아니라 서로 얼굴 한번 본 적이 없는 생면부지의 노동자들이었다. 제1심에서 사형을 받은 사람정동년(37, 복학생), 배용수(34,운전수), 박노정(28,인쇄업), 박남선(26, 트럭운전수 운수업), 김종배(26,학생)이고, 무기징역을 받은 사람은 윤석루(20,구두공) 허규정(27,학생) 정상용(30,회사원) 하영열(31,공원) 윤재근(28,공원) 서만석(36,상업) 홍남순(67,변호사)였다. 이들은 과격파들로, 25일 밤중에 온건주의 학생인 김창길과 지역유지들을 권총으로 협박한 후 내쫓고 결사항전을 선언했다.  

이들 과격파 청년들은 모두 호기심과 의협심으로 도청에 들렸다. 이들은 자존심 상 서로 눈치만 보면서 시간을 끌다가 27일 새벽 계엄군의 재진입 작전을 맞아 그중 17명이 사망했다. 1980년의 1심 재판부는 바로 26일 새벽으로부터 27일 01시까지 불과 25시간 동안 도청을 장악해 소영웅심으로 결사항전을 외치던 나이 어리고 사리 분별력 없는 빈민 청년들만 5.18주동자들로 정의했고, 250명 단위의 대학생, 300명 단위의 대학생, 600명 단위의 대학생에 대해서는 그 존재사실 조차 인식하지 못했다.

 

                                             결 론  

1. 광주의 운동권은 미리 잡혀갔고, 대학생, 지각 있는 시민들은 쥐죽은 듯 숨어 있었다. 김대중의 돈을 받았다는 정동년은 미리 잡혀 갔고, 윤한봉, 박관현은 5.18 기간 내내 멀리 도주해 숨어있었다. 광주사람, 전남사람으로 시위를 지휘한 사람이 전혀 없었다. 

2. 광주폭동의 주범은 남북한 자료 공히 600명으로 표현한 북한특수군이었다.  

3. 1980년의 재판부가 지목한 주동자들은 26일로부터 불과 25시간 동안 도청을 장악하고, 결사항전을 외쳤던 지각없는 부나비들이었다.  

4. 1980년 당시 누군가가 상황기록만 자세히 분석했더라면 그 당시에도 북한 특수군 600명의 존재를 의심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보안사와 중정 정보를 다 함께 관장했던 이학봉에 확인한 바로는 이학봉은 북한특수군 개입에 대한 개념조차 갖고 있지 않았다.  

5. 마지막으로 남는 의문이 있다. 정부를 상대로 선전포고를 하면 분명히 5월 19일 이전에 잡혀 갈 줄 알았을 터인데, 김대중은 어떤 믿을 구석이 있었기에 5월 16일, 정부를 상대로 감히 전면전을 선포했을까? 혹시 북한 특수군이 곧 참전할 것이라는 계획을 알았고, 또 그것이 성공하여 남한정부가 전복될 것이라는 데 대한 확실한 믿음을 갖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이런 의문인 것이다.  

 

2014.9.1.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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