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최종보고서(요약)
페이지 정보
작성자 지만원 작성일14-09-12 13:32 조회7,603회 댓글0건관련링크
본문
5.18 최종보고서(요약)
김일성은 10.26을 통일의 기회로 판단했다. 광주 폭동을 위해 10.26이후 살인기계로 훈련된 북한특수군을 축차적으로 침투시켰다. 5.18은 이렇게 집결시킨 600명의 특수군이 벌인 광란작전이었다. 광주사람들은 이들을 연고대생 600명이라 불렀다. 살벌했던 5.17계엄이 선포되면서 광주의 운동권 및 대학생들은 잡혀갔거나 사태기간 내내 숨어있었다. 지각없는 10대와 넝마주이, 껌팔이, 철공 등 59개 직종의 개념 없는 사회불만 계급이 부나비 되어 600명이 벌인 작전에 소모품 노릇을 했다. 이것이 광주시위대의 본질이었다.
당시 군법회의에서 사형과 무기형을 받은 12명은 겨우 5월 26일 하루 동안 ‘결사항전’을 선포해 계엄군 작전을 불러들인 ‘무 개념 부나비들’이었다. 1981년의 대법원은 5월 18일부터 21일까지 600명이 저지른 가공스런 살인-파괴 행위에 대해 처벌할 자들을 찾아내지 못했다. 이들은 26일 모두 사라졌다. 1997년 대법원은 이 600명과 이들이 동원한 부나비들을 놓고 헌법을 수호하기 위해 결집된 준-헌법기관이라 규정했고, 시위가 전국적으로 확산되지 못하게 조기에 진압한 전두환 등을 내란범이라 판결했다. 인민군 판사들이었다.
2014.9.12. 지만원
http://www.systemclub.co.kr/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