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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의 대남공작과 남한 공산당의 뿌리(제주4.3반란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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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15-01-05 17:00 조회3,85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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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장 소련의 대남공작제1부 소련의 대남공작과 남한 공산당의 뿌리
지만원 박사  |  j-m-y828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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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10.03  00:4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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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후 6·25 전쟁 직전까지 남한에서 발생한 광범위하고 복잡한 일련의 파업과 폭동 사건들은 해방 당시 34세에 불과했던 김일성과 그 참모들이 전개하고 지휘할 수 있는 범위를 훨씬 벗어난 사건들이며, 실제로 스티코프 비망록에 의하면 소련은 1946년 전국 규모로 전평(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이 주동이 되어 일으킨 9월 파업과 10월 1일 대구폭동에 각각 일화 200만엔과 300만엔을 지원하고 투쟁방법까지 하달했다. 여러 차례에 걸쳐 박헌영은 스티코프에게 투쟁방법을 질문했고, 스티코프는 이를 스탈린에 물어 대답을 해주
곤 했다. 

1982년 북한의 조국통일사는 “주체의 기치 따라 나아가는 남조선인민들의 투쟁” 이라는 제목의 대남공작사를 썼다. 여기에는 광주의 5.18 역사도 들어 있다. 1985년에는 조선노동당출판사가 “광주의 분노”라는 제목으로 별도의 역사책을 출판했다. 그리고 북한은 1977년 “과학백과사전출판사”를 통해 “전후 남조선 청년학생운동” 이라는 제목의 두꺼운 대남공작사를 썼다. 모함하는 부분을 빼고 객관적인 자료만을 보면 이 역사책들은 상당히 정확하다. 

‘주체의 기치 따라 나아가는 남조선인민들의 투쟁’의 30~31쪽에는 해방직후의 서울의 광경을 소개하는 1945년 12월 16일자 서울신문이 인용돼 있다. 

“김일성 장군 환영준비위원회가 결성되었다. 김일성이 이북에서 건국사업에 매진하고 있지만 곧 서울로 입성하리라는 기꺼운 소식이 전해지고 있다. 이 소식을 접한 서울의 각 정당과 단체들은 일본과 싸운 혁명선배를 전 민족적 감격으로 환영하기 위해 서울시민인민위원회 사무실에서 회합하여 김일성장군 환영준비위원회 결성을 합의했다.” 

“해방된 이튿날인 8월 16일에는 항일의 전설적 영웅이신 김일성 장군님께서 서울에 개선하신다는 소문이 퍼져 수십만의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어 서울역에서는‘절세의 애국자이시며 민족의 영웅이신 우리의 령도자 김일성 장군 만세!”라는 플랑카드가 창공높이 나붓기었다.”

실제 당시의 남한 경제는 북한에 비하면 매우 열악하여 1960년 만 해도 북한의 1인당 GNP는 남한의 2배나 되었다. 당시 이승만에 라이벌 의식을 가지고 있었던 김구는 이승만이 하는 일에 일일이 발목을 잡았고, 그 라이벌 의식에 그만 눈이 멀어 ‘공화국영웅 제1호’ 성시백의 꼬임에 빠져 청년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담을 넘어 김일성에게 달려가 북한정권 수립에 들러리를 서주었다. 이는 1997년 5월 26일 로동신문에 2개 면을 통해 낱낱이 소개돼 있다. 

평양회의는 1948년 4월 19일부터 23일까지 진행됐다. 김구는 “못 가십니다. 가시려면 우리의 배를 지프차로 넘고 가십시오” 줄줄이 누운 학생들을 피해 담장을 몰래 넘어 4월 20일에 평양에 갔지만 4월 22일에야 비로소 회의장에 초대 됐다. 22일 회의에서 김구, 조소앙, 조완구, 홍명희가 북조선 주석단에 보선됐다.

이 자리에서 김구는 이런 축사를 했다. 김구는 북한이 먼저 세운 ‘단정’에는 눈을 감고 북한보다 뒤늦게 추진하는 이승만의 ‘단정’만 물고 늘어졌다. 

“위대한 회합에 참석하여 기쁘게 생각한다. 조국이 없으면 국가가 없으며 국가가 없으면 정당이나 사상도 없을 것이다. 우리의 공동목표는 단선(남조선만의 단독정부수립)을 반대하는 것이어야 한다. 남조선에서 뿐만 아니라 그 어느 곳을 막론하고 그것을 반대하지 않으면 안 된다”(조선일보 1948.4.24)

평양회의에 참석한 소위 남한의 ‘민족주의자’들은 4월 30일 남북요인회담에서 아래와 같이 찬양들을 했다. 남북요인회담이란 ‘전조선정당사회단체대표자연석회의’를 말하며 당시 56개 정당-사회 단체가 참여했지만 남한에서 올라간 단체 간부들은 좌익이거나 함량미달의 부화뇌동자들이었다. 이들이 평양에 가서 무슨 말들을 했는지 양동안의 “1948년 남북협상의 허와 실”에서 발췌해 본다.

김규식 : “조선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소련의 제의가 불가하다고 말한 사람이 없을 것이다. 유엔소총회는 남조선만이라도 단독선거를 실시하자는 비법적 결정을 채택하였다. 나는 오늘 남북협상지지 축하 평양시민을 보고 눈물이 났다. 남조선의 지위를 오늘날의 북조선 지위와 비교한다면 천양지차가 있다. 북조선으로 오니 북조선은 살 토대가 있다. 남쪽은 공장이 없고, 미국차관만 가져오고, 여기 공장은 일하고 있으며 남쪽은 망하는 집안 같고, 여기는 새로 잘 되는 집안 같다”

홍명회(민족자주연맹 부위원장) : “황해제철소를 시찰하고 우리가 하고 있는 건설사업이 세계문화에 기여할 수 있는 명예를 전조선에서 나눠 갖고 싶었다. …나는 25일 평양시민들을 보았는데 남조선의 군중 대회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굉장했다. 이것은 잘 되어 가는 집안과 못 되어 가는 집안을 비교하면 족할 것이다.” 

강순(근로대중당 당수) : “나는 희망에 찬 동포들을 보았다. 나는 북조선을 이렇게 발전시킨 영명한 지도자 김일성 동지에게 경의를 표한다. …북조선인민위원회는 조선통일정부의 기초라고 생각한다”

이민규(여운형의 최측근) : “나는 김일성 대학을 시찰하였다. 그 시설과 과학적인 편성에 감탄하였다. …대학생들은 자유롭게 공부하고 있으며 학원은 민주주의적으로 원활히 운영되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남조선 대학들은 아무런 공부도 되지 않는 형편이다.”

김충규(신진당 선전부장) : “입북하여 가장 감격하게 느낀 것은 북조선에서는 이미 우리 조국의 민주주의 독립의 토대가 튼튼히 세워지고 있다는 것이다. 북조선에서는 정치, 경제 모든 점이 광범한 인민적 기초위에 가장 자유로운 발전방향을 보이고 있다는 것을 공장, 기업소, 학원들을 시찰함으로써 똑똑히 보았다. 이것은 남조선의 형편과 아주 다른 것을 말하는 것이다.”

김성규(민족대동회 위원장) : “남조선에서 미제국주의자가 실시하려고 하는 단독선거, 단독정부를 반대하는 투쟁에 있어서 우리들은 북조선인민의 절대적 원조와 협조 없이는 도저히 승리할 수 없을 것이다. …북조선에 와서 북조선인민들이 실제로 건설해 놓은 업적을 보고 오직 감격했으며 김일성 장군의 훌륭한 영도에 대하야 성심으로 경의를 표하는 바이다.”

당시 평양에 갔다가 돌아오지 않은 사람은 홍명희, 이극로, 이만규, 이용, 권태석, 장권, 손두환, 강순, 김성규 등이다. 더 많은 공산주의자들이 남한에 돌아와 공산화 공작에 참여했다. 1950년 6월 28일, 인민군이 서울에 입성하자 어디에 그렇게 숨어 있었던지 인공기를 들고 나와 김일성 만세, 인민공화국 만세를 부르는 서울시민들이 쏟아져 나왔다. 상당수가 보도연맹 가입자들이었다. 보도연맹이란 반공대열에 서겠다고 서약한 좌익들의 집합체를 말하지만 이들 중에는 속으로는 전향을 하지 않았으면서도 겉으로만 서약한 사람들이 아주 많았다. 1950년 6월 28일 서울에 인민군이 입성하자 이들 전향을 가장했던 보도연맹 가입자들이 완장을 차고 죽창을 들고 다니며 애국자들을 색출해 처단하는 악역을 수행했다. 이를 지켜본 군경들은 급히 부산으로 후퇴하면서 후환을 없애기 위해 보도연맹으로 관리해 오던 좌익들을 집단으로 전격 처단할 수밖에 없었다. 30만 명의 가입자들 중 얼마가 죽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수만 단위로 회자되고 있다.

일본이 본 “한국전쟁”은 전집 10권으로 구성돼 있다. “日本{괱戰史硏究普及會”이 책의 91쪽에는 “인민군이 입성하자 서울시에는 적기를 흔들며 환영하는 인파가 의외로 많았다”고 기술돼 있다. 지금도 이 나라에는 김일성 부자를 찬양하고 북에 충성하는 공산주의자들이 사회에 도배돼 있다. 이런 것들을 참작해 보면 “주체의 기치 따라 나아가는 남조선인민들의 투쟁”의 30쪽에 기술돼 있는 서울시의 모습은 그리 과장된 모습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어서 급히 남쪽으로 퇴각하는 군경이 믿지 못할 보도연맹 가입자들을 집단 처리한 것에도 상당한 이해가 간다. 

위 ‘주체의 기치 따라 나아가는 남조선인민들의 투쟁’48~64쪽에 기록돼 있는 1946년의 남한 사회를 요약해 본다. 

“서울을 비롯한 남조선 각지에서 공산당 단체들이 조직되었으며 지방자치기관들과 지방인민위원회를 엮기 위한 투쟁이 활발히 전개됐다. 1945년 10월말에는 7개 도, 12개 시, 131개 군에 인민위원 조직들이 들어섰다. …8.15이후 몇 해 사이에 노동계급이 줄어들었다. 1944년에는 공장 노동자 수가 25만5천이였는데 1947년 3월에는 12만1천명으로 반 이하로 줄어들었다. …이러한 사정에도 불구하고 남조선 노동계급은 남조선에서 혁명을 영도할 수 있는 유일한 계급이었다. …남조선 농민은 노동계급에 믿음직한 동맹자로써 남조선 혁명에 주력군을 이루었다.” 

“노동자들은 각 산별노조들을 조직했고 이에 기초하여 1945년 11월에는 1,680 여 개의 노동조합들을 16개의 산업별 조직(금속, 출판, 해운, 조선, 일반봉급자, 어업, 통신, 전기, 식료, 목재, 토건, 교통, 철도, 섬유, 화학)에 결속한 전평(노동조합 전국평의회)이 결성되었다. 서울, 인천, 삼척, 부산, 마산, 목포, 군산, 대구, 대전, 광주, 전주 등 11개의 주요산업지구에는 지방평의회가 조직되었다. 전평은 1946년 2월 현재 그 산하에 57만 4천여 명의 조합원을 결속시켰다. 1945년 12월에는 노동조직과는 별개로 ‘남조선 청년단체총연맹’이 결속되고 그해 7월 현재 130여만의 맹원을 확보하고 있었다.”

2011년 4월의 네이버 백과사전에는 ‘전평’에 대해 이렇게 기록돼 있다.

좌우대립의 사상적 혼란기에 노동자·농민을 선동하여 결성한 좌익계의 노동단체로 조선민주청년동맹과 더불어 조선공산당의 양대 세력이었다. 1945년 11월 1일 전평의 지도하에 조선광산노동조합을 비롯하여 금속·철도·교통·토건·어업·전기·통신·섬유·광업 등의 분야에서 16개 산업별 노동조합이 결성되었고, 지부수가 총 1,194개, 조합원 수가 총 50만 명에 이르렀다. 미군정이 조선건국준비위원회의 조선인민공화국 인정을 거부하자, 이에 대한 조직적 대항세력을 확보할 목적으로 결성한 것이다. 최저임금제 확립, 14세 미만의 유아노동 금지, 부인노동자의 산전산후 2개월 유급휴가제 실시 등 19개 항을 일반행정강령으로 채택하였으며, 한국 사회의 모든 부문에서 격화되고 있는 공산진영과 민족진영 간의 대결에서 공산진영의 전위대 역할을 담당하였다. 

북한 자료가 더 정확한 것인지 남한의 자료가 더 정확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남북한 자료는 대동소이하여 격차가 크지 않다. 

이어서 ‘주체의 기치 따라 나아가는 남조선인민들의 투쟁’으로 다시 연결한다.

“1945년 12월에는 민주여성의 대중단체로 ‘남조선 부녀총동맹’이 결성되었다. 1946년 8 월 15일에는 1,140여명의 노동자들과 3만여 군중이 참여한 광주 화순탄광 노동자들의 투쟁이 발생 했고, 같은 시기에 인구 1만의 하의도(필자 주 : 김대중의 고향) 농민들이 여러 날에 걸쳐 폭동을 일으켰다. 9월 총파업이 있었고, 10월 1일의 대구 인민항쟁이 있었다. 1948년에는 2.7 구국투쟁과 이어진 제주4·3인민항쟁이 5·10 단선반대 투쟁으로 이어졌고, 10월 여수 군인폭동이 있었다. 이렇게 연이어 일어난 남조선 인민들의 구국투쟁은 조선인민의 해방투쟁 역사에 빛나는 페이지를 남겨 놓았다 ….

미제는 1945년 5월에 이른바 ‘정판사 위조지폐 사건’ 이라는 날조된 모략극을 꾸며 이를 구실로 공산당 본부를 습격하여 당 기관지 ‘해방일보’를 강제 폐간시켰고 7월 29일에는 허위 날조 된 정판사 사건에 대한 재판 공개를 요구하는 군중들에 발포하여 1명을 학살하고 50명을 검거하는 자행을 자행했다. … 8.15 이후 1946년 8월까지 한 해 동안 남조선에서 일어난 파업 건수는 1,299, 참가인원수는 22만6,998 명에 달하였는데 그 대부분이 1946년 1-8월 사이에 일어난 것이다.”

이 역시 남한의 자료와 일치한다. 이를 보면 해방직후부터 소련이 박헌영을 통해 얼마나 거대한 파괴공작을 했는지 능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시 35세의 애송이에 불과했던 김일성은 자기 앞길 가리느라 천방지축이었을 것이며, 어린 김일성이 북한에서 벌이는 활동 역시 소련이 일일이 지시했을 것이다. 위 사건들 중에서 1946년을 수놓은 정판사 사건, 전국적으로 발생한 9월의 총파업, 10월의 대구폭동에 대해서는 반드시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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