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역시 소탕작전에 앞서 민심작전을 우선시했다. 무의촌에 의무대를 보내고 순회 진료를 전개했다. 도로와 하수도 공사, 농번기에는 대민지원을 제공했으며, 순회강연을 통해 주민들을 계몽했다. 이에 주민들은 군에 대한 공포심을 접고 신뢰하게 되었다. 이런 과정을 통해 공비들에 대한 정보를 입수한 다음 해병대 역시 1950년 2~5월까지, 5개월간 한라산 공비토벌작전을 과감하게 전개했다. 수많은 교전을 통해 공비를 사살했고 공비의 야전병원을 찾아내 소탕 했다.
6·25 전쟁이 발발하여 전국에 계엄령이 선포되자 해병사령관이 제주도지구 계엄사령관에 임명되었지만, 북한군의 남하 속도가 빨라지면서 해병대 사령부의 1개 대대(고길훈 소령)가 군산-장항지구에 투입됐다. 축소된 해병대 사령부는 제주도에서 신병 3,000명을 훈련시켜 증편한 다음, 9월 6일 부산으로 이동했다가 곧바로 인천상륙작전에 참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