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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 영웅 박정희 -- <프레이저 보고서>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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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유람가세 작성일15-09-06 20:44 조회2,17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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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재 - 민족의 영웅 박정희 


                                                     <프레이저 보고서> 비판

 

앞에서는 1978년 미국 하원이 작성한 <프레이저 보고서>를 악용한 자칭 민족문제연구소 작 <프레이저 동영상>을 비판했다. 여기서는 미국 하원이 만든 <프레이저 보고서> 자체의 내용에 대해 조명, 비판해 보며 이는 불순한 분자들의 왜곡과 악용을 막기 위해서다.

우선 한국이 경제적으로 극심하게 어려웠던 1960년대에 미국이 많은 원조를 해 준 데 대해 한국인의 한 사람으로서 깊은 고마움을 표하는 바이며,

전기한 대로 프레이저 보고서(Fraser Report)란 1976년 코리아게이트 사건(일명 박동선 사건)이 터진 후 한미 관계의 전반을 조사하기 위해 미국 하원에서 도널드 맥케이 프레이저 하원의원을 위원장으로 하여 조직된 국제관계위원회 산하 국제기구소위원회(이른 바 프레이저 위원회, 프레이저 소위)가 1978년 10월 31일 미국 의회에 제출한 보고서이다. 전체 분량이 447쪽에 달하는 이 보고서는 1960, 70년대 박정희 시대의 한미관계 전반에 대해 조사, 기록하고 있다.

 

                                ◆ 미국 프레이저 보고서의 주요 부분 조명과 비판


프레이저 보고서에는 1. 박정희 정부의 1차경제개발 당시에는 미국의 역할이 중요하였으며 2. 특히 박정희 정부와 미대사관 및 AID의 협력이 주효하였으며 3. 미국은 선호하는 정책을 밀어붙이기 위해 원조제공을 지렛대로 삼았으며 4. 당시 미국의 정책은 AID 원조를 단계적으로 감축하고 무상공여에서 차관으로 성격변화시키는 쪽으로 이루어졌다는 내용들이 기술되어 있다. (인용)

그리고 바로 이런 류의 내용들이 악의적으로 왜곡되어 자칭 민족문제연구소의 <프레이저 동영상>에 반영된 것 같다. 악용된 것이다. 저런 내용들을 앞뒤 배경과 시대적 상황을 살피지 않고 그대로 봐 버리면 정말로 1960,70년대 한국의 경제개발은 미국이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고 미국의 공적이 가장 크고 박정희의 공적은 하나도 없다는 식으로 왜곡되고 악용되기 쉬운 것이다. 그러나 진정한 연구자들은 그런 잘못된 길로 빠지지 않는다.

우리는 프레이저 보고서가 당시 세계의 지도국임을 자처하던 미국 정부와 미국인들의 시각에서 쓰여졌다는 걸 항상 전제해야 하고 그렇다면 상기한 네 가지 내용들에 대한 분석, 비판과 함께 한국 정부와 한국인들의 입장에서 해석해 볼 필요가 있다.

 

1. 박정희 정부의 1차경제개발 당시에는 미국의 역할이 중요했다는 언급에 관하여

물론 미국의 역할은 당시 한국의 경제개발에서 매우 중요했다. 미국의 지원이 없었으면 박정희 정부는 한강의 기적을 이루지 못했을 것이며 이를 부인할 사람들은 없다고 본다.

그러나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말이 곧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는 말은 아니다. 그런 식으로 말하면 당시 대한민국에 상업차관을 내어 주고 각종 조언을 해 준 독일도 중요한 역할을 했으니 독일이 한국의 경제개발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는 말도 성립하게 된다. 그러나 그 건 아닌 것이다.

당시 미국은 중요한 역할을 하기는 했으나 어디까지나 박정희 정부의 주변 환경 변수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며 모든 건 박정희 정부의 의지와 계획에 따라 수행되어 나간 것이다. 자원과 환경이 중요하다고 해서 그 것이 인간사의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고 말해서는 안되는 것처럼 미국의 역할이 중요했다고 해서 미국이 한국 경제 개발의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고 말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1차경제개발 당시에 미국의 역할이 중요했다고 하더라도 그 것은 주도적인 역할은 아니었으며 주변적이고 보조적이며 환경적인 역할에 그쳤다는 사실을 분명히 해야 한다. 박정희는 당시 미국을 포함한 국제 정치적, 경제적 환경을 최대한 활용하여 한강의 기적을 이루어낸 것으로서 미국 역시 여러 환경 변수들 중의 하나였으며 다만 중요한 역할을 했을 뿐이다.

즉, 1960년대 당시 미국의 역할이 중요했다고 해서 그것이 꼭 한국의 경제개발을 미국이 주도한 것이라는 말이 될 수는 없는즉, 역으로 말하면 박정희 정부가 당시 국제정세를 잘 활용하고 미국과 협상을 잘 해서 미국의 역할을 최대한 이끌어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며 이는 오히려 박정희의 국가지도자로서의 자질과 능력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이미 앞에서 언급한 여러 사실들로도 알 수 있고 무엇보다 1차경제개발5개년 계획도 결국은 박정희의 페이스로 흘러 갔으니까 말이다. 1차경제개발5개년 계획이 미국의 페이스대로 흘러갔다는 건 미국의 착각이거나 자기 위안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경제의 국가주도, 수출주도형, 관치금융, 공업화 등 핵심적인 경제기조 면에서 박정희가 하려던 일들이 박정희의 방식대로 1차경제개발 기간에 하나 하나 준비되고 이루어졌던 것이다. 그 과정에서 미국의 불필요한 간섭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사업규모를 축소하거나 우선순위를 조정하는 일이 벌어지긴 했지만 앞에서도 말했듯이 그 것은 어느 것을 먼저 해도 별 상관이 없는 <시간대칭성>을 띤 것들이었기 때문에 결국은 박정희의 페이스로 흘러 간 것이라고 봐야 하는 것이다.

앞에서 1차5개년계획 원안을 미국의 요구대로 수정하지 않고 그대로 수행했어도 성공했을 것이라고 말한 점을 상기하라. 1차5개년계획 당시의 경제 정책도 박정희 정부가 주도했고 박정희 정부의 방침이 사실상 대부분 관철된 것이라는 사실은 관련 학자들이 증언하고 있다.

구슬이 서말이어도 꿰어야 보배다. 1차5개년계획 기간 당시 미국의 역할, 미국의 원조라는 것도 중요하긴 하지만 그 것은 여러가지 구슬 중의 하나였을 뿐이다. 그런 미국이라는 구슬과 함께 독일의 상업차관과 한일협정을 통한 종자돈 마련, 국내의 인적,·물적 자원 동원과 국력의 조직화, 행정 시스템 개혁, 하면 된다는 신념을 국민들에게 불어 넣는 계몽운동 등 갖가지 필요한 구슬들을 꿰는 작업을 주도하고 지도한 건 바로 박정희였던 것이다.

구슬을 꿴 사람이 주도자인 것이며 박정희는 너무나도 구슬을 잘 꿰어 결국 중화학공업 육성을 통한 강대국형 산업구조를 대한민국에 창조해내는 위대한 업적을 쌓은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정희 시대의 경제개발에는 미국의 원조와 지원이 필수였으므로 박정희의 공적은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자칭 민족문제연구소 부류들이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 말하면 아예 대한민국 정부라는 것은 필요가 없는 것이고 그 정부 요인들의 능력이나 공적을 역사적으로 평가하고 따질 껀덕지가 원천적으로 없어지는 것이다. 이는 이승만 정부나 장면 정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당시 장면 정부가 계속 집권하여 정치를 정말 잘하여 경제를 발전시켰다고 치자. 그러나 그렇게 가정해도 결국은 초기 단계에서 미국의 원조와 지원은 필수였을 것이므로 장면 정부의 공적은 하나도 없다는 말이 되고 마는 것이다. (그런데 자칭 민족문제연구소라는 사람들은 장면 정부에 대해서는 또 다르게 둘러대서 찬양할 자들이다.)

그렇다면 박정희 시대의 경제개발에는 미국의 원조와 지원이 필수였으므로 박정희의 공적은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아예 미국이 한국 땅에 총독부를 세워서 총독을 파견하는 게 더 나았을 것이라고 말하는 게 맞다. 그들의 주장은 한국 정부의 존재 이유 자체를 부정하는 반자주적이고 사대주의적인 언사에 다름아닌 것이다.

우리는 박정희든 장면이든 누구든 당시 한국이 처한 환경에서 그 환경을 얼마나 잘 활용해서 국가와 국민에게 이익이 되게 하였는가를 따지는 것이지, 즉 국가내외적인 환경 활용 능력과 업적을 따져서 평가하는 것이지 그 환경의 구성과 성격 자체를 예찬하는 게 아니다.

미국의 원조와 지원이 필요했던 것도 당시 한국이 처했던 환경의 하나이니 그 환경에 충실하고 최대한 활용하는 것도 엄연한 능력이 아닌가 말이다.

예를 들면 시대는 조금 다르지만 역시 박정희 시대인 1975,6년 경에 벌어진 코리아게이트 사건(일명 박동선 사건)이 있다. 이는 당시 박정희 정부가 미국의 잉여농산물 원조 등 미국으로부터 최대한 많은 원조와 지원을 받아내기 위해 미국 정치인들에 대한 로비, 뇌물 등 온갖 수단방법을 다 동원하는 과정이 드러난 사건인데, 이 사건이야말로 박정희 정부가 대한민국의 국익을 위해 얼마나 치열한 노력을 했는가를 말해주는 것이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그들의 노력을 칭찬해야 하는 것이다.

"프레이저 위원회는 미국의 입장에서 한국정부가 농산물원조를 더 타먹으려고 얼마나 집요하게 굴었으며 이를 공화당 정권의 국방부가 방조했다는 것이 초점이라서 점점 읽으면 한국 정부의 활약(?)에 응원까지 가하게 됩니다. 그런데 (민족문제연구소가) 이 보고서를 가지고 동영상을 작성한 것은 개인적으로 참 황당했습니다." (Santacroce)

그야 말로 박정희 정부가 미국을 등쳐먹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당시 한국 정부의 대미 로비와 활동은 치열하고 적극적인 것이었고 그런 갖가지 노력들의 결과로 오늘의 한국이 있을 수 있는 것이니 이런 그들에게 고마워하지 않는다면 한국인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사정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자칭 민족문제연구소 부류들의 주장대로라면 당시 박정희 정부가 미국으로부터 원조와 지원을 많이 받아낼수록 한국 경제개발에 대한 박정희의 공로는 적어진다는 엉터리 논리가 생겨나고 만다. 그러나 과연 그런가? 박정희 정부가 미국이라는 외부 환경을 최대한 활용하여 미국으로부터 최대한의 원조와 지원을 받아낸 것도 엄연한 능력이요 공적인 것이다.

무릇 사업하는 사람들, 기업을 경영하는 사람들에게는 돈이나 물자를 빌리고 융통하는 것도 엄연한 능력이며 이를 부인할 사람들은 정상인들 가운데는 없을 것이다. 무상원조의 형태로 공짜로 얻을 수 있으면 더 큰 능력이다. 박정희는 그런 능력도 발휘한 것이다.

 

2. 특히 박정희 정부와 미대사관 및 AID의 협력이 주효하였다는 언급에 관하여

박정희 정부와 미대사관 및 AID의 협력이 주효하였다는 내용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그런 협력을 이끌어내고 유지하는 것도 바로 국가지도자로서의 자질이요 능력이 아닐 수 없는 것이며 이는 1960년대 당시는 사실상 미국과 AID의 역할(물론 주도적인 역할은 아니었다)과 협력을 극대화하는 일이 한국의 경제개발에는 필수요건이었음을 알면 수긍이 갈 것이다. 미국의 불필요한 간섭과 딴지라는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박정희는 그런 필수요건들을 이끌어내어 충족시킨 것이다.

그리고 필자는 그런 협력의 주도자는 어디까지나 박정희였으며 박정희는 미국에 끌려다닌 게 아니라 갖가지 구슬을 꿰는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거듭 강조한다. 구슬을 꿰어 결과를 만들어가는 사람이 바로 주도자인 것이다.

박정희를 폄하하는 자들의 주장대로 박정희가 미국에 끌려 다녔다면 어떻게 중화학공업 육성을 통한 강대국형 산업구조 완성이라는 위대한 결과를 낳을 수 있었겠는가. 그런 위대한 업적은 누군가에게 끌려다니는 부류들이 이룰 수 있는 게 절대로 아니라는 점을 상기하라. 이 게 바로 박정희에 대한 평가에서 가장 기본적인 인식 중 하나가 되어야 한다.

조선업의 경우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의 회고에서도 보듯이 박정희의 채근과 추동력이 없었으면 한국에서 지금과 같은 대규모 조선산업은 결코 생겨날 수가 없는 것이었다. 국가에 이익이 된다면 주변이 불가능하다고 하는 일들, 기업들이 꺼려 하는 일들을 강력하게 채근하여 하도록 만들어 성공시킨 게 바로 불멸의 대통령 박정희였던 것이다.

즉, 미국도 반대했던 박정희의 중화학공업 육성과 강대국형 산업구조 완성이라는 위대한 업적과 결과에 비추어 볼 때 박정희는 미국에 끌려다닐 인물이 아니라는 기본적인 인식을 도출할 수 있으니 박정희에 관한 이러한 결과론적인 인식을 편의상 <오메가 인식>이라고 부르기로 한다. 이런 <오메가 인식>으로 60년대 1차경제개발 시기 박정희 정부의 주도성을 <회귀 판단>하는 것도 좋은 방법 중 하나다. (오메가 인식에 바탕하여 회귀 판단하기)

우리는 경부고속도로 건설 과정에서 보여 준 박정희의 탁월한 선견지명들만 보아도 그러한 <오메가 인식>이 얼마나 타당한지를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1960년대 중반에 경부고속도로 건설 부지를 매입할 때 8차선까지 고려하여 매입하도록 지시한 것은 그야말로 당시로서는 다른 누구도 실천할 엄두를 못내는 일이었다. 생각이야 하는 사람들이 있었을지 모르나 실제로 그렇게 과감하게 실천하는 건 아무나 못하는 일이었던 것이다. 이는 창원공단의 진입 도로 확보에 관련해서도 마찬가지이니 이러한 일들은 뛰어난 선견지명과 치밀한 계획, 추진력 없이는 절대로 못하는 일이었던 것이다.

오메가 인식에 의하면 박정희는 절대로 미국이나 누구에게 일방적으로 끌려다닐 인물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리고 중화학공업 육성이라는 위대한 업적을 세운 박정희가 1960년대의 경제개발 초기 단계를 성공시키지 못했을 리는 없는 것이다. 미국의 간섭이 있든 말든, 우여곡절과 시행착오를 겪으면서도 결국은 성공시킬 인물이었던 것이다.

그런 오메가 인식 하에 1차5개년계획 당시의 한미관계를 돌이켜 보면 오히려 미국이 박정희의 의도대로 끌려간 것이며 미국은 그런 줄도 모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말했듯이 당시에 사실상 경제개발 기조 면에서는 박정희가 하고 싶은 건 거의 다 했기 때문이다. 경제의 국가주도, 수출주도형, 관치금융, 공업화(각 사업들 간에 시간대칭성이 있었다) 등 핵심적인 경제기조 면에서 박정희가 하려던 일들이 박정희의 방식대로 1차경제개발 기간에 하나 하나 준비되고 이루어졌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와중에 박정희가 미국의 요구를 수용한 게 있다면 그 것은 어차피 각종 사업들 간의 시간대칭성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미국의 비위나 좀 맞춰 주자"라는 차원에서였을 것이다. 미국이 자신들의 요구를 안 들어주면 원조를 중단하겠다고 협박하니 별 수 있겠는가. 결국 몇 가지는 미국의 요구를 들어 줄 수밖에 없었고 그 부작용이 심각했다는 건 이 책에서도 몇 차례 이야기하고 있다.

 

3. 미국이 선호하는 정책을 밀어붙이기 위해 원조제공을 지렛대로 삼았다는 언급에 관하여

그러한 사실이 있었다는 건 맞으나 해석을 제대로 해야 한다. 당시 박정희 정부로서는 미국이 원조 제공에 이런 저런 조건을 내 거는 행위가 쓸데없이 걸리적거리는 것으로 보았을테고 박정희 정부의 그런 인식은 1. 당시 미국이 선호하여 강요했던 정책들이 빚은 심각한 부작용과 2. 당시 각 사업들 간의 시간대칭성 존재로 보면 타당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프레이저 보고서의 저러한 언급은 경제개발에 대한 강력한 의지와 능력(이는 중화학공업 육성 업적 등으로 결과적으로 증명된 것)이 있는 박정희 앞에서 걸리적거린 미국이 스스로 걸리적거린 줄은 모르고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했다고 자평하고 있는 한심한 모양새인 것이다.

그리고 앞에서 말한 박정희에 대한 결과론적인 인식인 <오메가 인식>에 의하면 당시 박정희 정부는 원조제공을 지렛대로 사용한 미국에 끌려다닌 것이 아니라 "원조 제공을 무기로 간섭하는 미국의 비위나 맞춰 주자"라는 차원에서 적절히 미국을 얼른 것이 되는 것이다.

필자의 이러한 주장, 즉 박정희는 경제개발에 대한 의지와 능력을 다 갖추었으며 미국은 쓸데없는 간섭으로 걸리적거렸다는 주장의 타당성은 2009년 10월 4일자 조선일보에 실린 아래 사실에서도 쉽게 알 수 있다.

가. 1965년 월남전 파병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미국에게서 받은 원조자금 1천만 달러를 부족한 식량 수입에 쓰자는 주변의 이견에도 불구하고 박정희는 그 전액을 이듬해인 1966년의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 설립에 보탠 선견지명을 발휘했으며

나. 당시 농림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홍릉의 임업시험장 38만평을 모두 KIST에 내 주도록 했으며

다. KIST의 예산 확보를 적극 지원했다. (KIST에 첫 예산 10억원을 배정할 때 경제기획원이 예산을 깎으려 하자 "원하는 만큼 다 주라"며 KIST 손을 들어 준 사실)

즉, 그 정도로 과학기술 개발에 대한 의지와 선견지명이 있는 박정희라면 경제개발 전반에 대한 통찰력과 능력도 있는 것으로 판단해야 하는 것이다. 특히 1965년 당시는 식량 수입 등 국가적으로 각 분야마다 쓸 돈이 필요했고 돈은 모자랐는데 그런 상황에서 당시로서는 엄청난 금액인 1천만 달러를 전액 과학기술연구소 설립에 투입하는 우선순위 조정 능력을 발휘하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오직 박정희만이 할 수 있었던 일이었던 것이다.

물론 박정희도 사람인지라 경제개발 초기에 몇몇 시행착오를 하기는 했지만 그 걸로 박정희를 폄하하는 건 졸렬한 짓이다.

시행착오는 누구에게나 있을수 있으며 중요한 것은 이후 박정희 식 통찰력, 박정희 식 전략과 결단에 바탕한 정책들(과학기술 육성, 중화학공업 육성 등)이 경제개발과 국력 향상에 막대한 기여를 하여 초기의 시행착오들을 상쇄시키고도 크게 남는다는 사실이다.

더구나 당시 박정희의 그런 시행착오는 5.16 혁명으로 이제 막 정책 권한을 획득한 후 아직 경제에 대한 경험이나 지식이 부족한 상태에서 나온 것이니 일반적으로 용인할 수 있는 소지가 있는 것이다. 박정희가 그런 시행착오를 겪은 후 경제에 대한 지식과 통찰력을 갈고 닦아서 시행착오를 상쇄시키고도 남는 위대한 업적을 이루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하는 게 바로 진정한 인물평가의 자세인 것이다.

 

4. 냉전 상황에서 미국이 남한 경제를 키워 주는 정책을 썼다는 주장에 대하여

물론 미국이 냉전 상황에서 남한의 공산화를 막기 위해 남한 경제를 발전시키려는 정책을 쓴 건 맞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박정희 시대의 경제 발전에서 미국이 주도적 역할을 했다고 말하는 건 완전히 주객이 전도된 주장이다. 왜냐 하면 미국은 박정희가 한국에 강대국형 산업구조를 장착하기 위해 중화학공업을 육성하려는 계획에는 반대했기 때문이며 미국은 그저 한국이 공산화 되지 않을 정도로 먹고 살만한 나라가 되는 걸 원했을 뿐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한국의 애국자들이 박정희를 그렇게도 칭송하는 건 바로 박정희가 한국에 강대국형 산업구조를 장착시키는 기적을 일구었고 오늘의 한국인들이 그 걸로 먹고 살고 있으며 나라를 지키는 국방력도 그로부터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박정희는 당시 미국의 대 한국 정책을 외부 환경의 하나로 최대한 활용했고 원래 미국 정부가 의도한 바를 훨씬 뛰어 넘어 한강의 기적을 이루었던 것이다. 우리가 박정희를 칭송하는 건 바로 한강의 기적 때문이지 그저 평범한 정도의 경제 발전이었다면 이렇게 칭송할 이유가 없다.

당시 미국이 원래 의도한 바 대로라면 한강의 기적은 나올 수 없었고 오로지 박정희 정부가 미국의 의도와 정책 등을 외부 환경으로 최대한 활용하여 한강의 기적을 이루어 낸 것이다. 한강의 기적은 박정희가 일구어 낸 것이다. 박정희는 국가와 민족을 살린 대영웅인 것이다.


유람가세, 2015-09-06

위대한 박정희
http://cafe.daum.net/great60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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