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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비타, 그는 성녀인가 마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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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성령 작성일15-10-22 22:26 조회2,71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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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라는 나라를 생각해본다.


그 나라는 地球상 대한민국의 정반대에 위치한다.

그러니까 우리 땅 밑을 垂直으로 뚫으면 그 나라가 나온다.

방향도 반대지만 거리로도 가장 먼 나라다.

우리가 아침 8시면 그곳은 저녁 8시다.

우리가 여름이면 그곳은 겨울이다.

국토 면적은 한반도의 13배 정도인 세계 8위의 大國이다.


16세기에 스페인이 정복하여 언어는 스페인어를 사용하고

종교는 로마카톨릭이 92%, 기독교 2%인 기독교 不毛국가이다.

국토의 60%가 팜파스 平原으로 거대한 牧畜지역이다.

그곳에는 ‘알파파’라는 단백질 함량이

다른 풀에 비하여 2배나 많은 우량 牧草가 자란다.

거기서는 고기가 나물보다도 싸다고 한다.

20세기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세계 5위의 經濟大國이었다.


페론 정권의 내부 核心권력은

다름 아닌 그의 아내 에바 페론에게 있었다.

그녀의 評價는 매우 多樣하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잘 나가던 1流국가가 그녀를 거치면서 2流국가로 轉落한 것이다.

이것을 가정하여 또 다른 생각을 해본다.

만약 그 나라에 카톨릭이 아닌 기독교가 들어갔다면

어떠했을까를 말이다.


에바 페론, 애칭인 ‘에비타’.

그의 모습을 지금부터 살펴본다.


드라마틱한 聖女


에바 페론은 1940년대 중반에

아르헨티나의 대통령 후안 페론과 결혼한 '퍼스트 레이디‘이다.

빈민가의 딸로 태어나 온갖 逆境을 딛고

一國의 퍼스트레이디가 된 그녀의 인생은

그것 자체만으로도 한편의 드라마가 충분하다.

퍼스트레이디가 된 후 남편과 함께 노동자와 서민들을 위해

파격적인 복지정책을 내 놓아

국민들로 부터 '聖女'로 존경을 받는다.

그러나 현실을 고려하지 않고 정권유지를 위한 善心성 정책으로

나라 경제를 파탄으로 인도한 장본인이라는 비판을 받고도 있다.

에바 페론은 아르헨티나의 국민적 영웅이라는 평가와

반대로 아르헨티나 몰락의 단초(端初)를 제공한

너무나 상반된 평가를 받고 있는 傳說적인 인물이다.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주인공


"Don't cry for me Argentina. The truth is I never left you....."

(나를 위해 울지 말아요, 아르헨티나여! 나는 그대를 떠나지 않아요)

이 노래는 1978년 공연된 뮤지컬 <에비타>에서

劇中 여주인공 배우 에비타가 부르는 노래이다.

에비타는 에바 페론의 愛稱이다.

머나먼 南美의 퍼스트레이디를 미국 공연계의 巨匠이 주목한 이유는

그녀가 한 시기를 너무 劇的으로 살았던 여인이며

그의 인생歷程 또한 남 다르기 때문이다.

에바는 시골 빈민층의 私生兒로 태어나 온갖 逆境을 겪은 후

극적으로 국민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퍼스트레이디가 된 인물이다.

선동가로서, 정치가로서, 봉사자로서,

국민들로부터 ‘성녀’라 불리며 당대의 최고의 인기를 누렸지만,

그러나 너무 극적으로 30대 초반의 짧은 생애를 마감했다.

그녀의 이러한 드라마틱한 인생의 배경에는

20세기 初中盤 아르헨티나의 현대사가

강물 같이 도도하게 흘러가고 있는 것이다.


팜파스의 사생아


에바는 아르헨티나의 드넓은 草原지대 팜파스의

어느 작은 마을에서 사생아로 태어난다.

그녀의 어머니는 農場 주인의 情婦였다.

그녀는 출생부터 불우(不遇)했고

어린 시절부터 가난과 불행의 연속이었다.

현실을 잊기 위해 어린 에바는 대중잡지의 기사를 읽으며

도시로 나가 화려한 俳優가 되는 꿈을 꾸었다.

학교에서는 연극과 연주회 등에서

자신이 가진 재능을 유감 없이 발휘하여 注目을 받았다.

그리고 마침내 15살 무렵,

에바는 家出하여 고향 팜파스의 고난을 뒤로 하고

새로운 세계 아르헨티나의 首都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도착한다.


남자들의 품을 전전하는 삼류배우


그러나 가진 것이란 별로 없는 시골의 소녀가

도시에서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녀는 이때부터 성공을 위해서는

자기가 가진 것을 내놓을 수 밖에 없다는

냉정하고 엄혹(嚴酷)한 현실을 깨닫는다.

그녀, 에바가 유일하게 가지고 있던 것,

그것은 바로 아름다운 몸, 즉 미모(美貌)였다.

에바는 살기 위해 여러 남자들의 품을 轉轉하며

삼류극단의 배우로 서울에서의 고단한 삶을 시작한다.

이 남자 자 남자의 품에 안기는 悲哀 속에서도

에바는 자신을 귀엽고 순진하게 꾸미고 싶었다.

그래서 스스로를 愛稱인 '에비타'라고 불렀다.

에비타는 꼬마 에바라는 뜻이다.

그녀는 삼류 연극배우부터 시작해

영화배우, 라디오聲優 등으로 차츰 영역을 넓혀갔다.

그리고 1940년대에

마침내 에바는 어느 정도 有名 연예인으로

그 이름을 세상에 알릴 수 있게 되었다.


후안 페론과의 운명적 만남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온지 10년 만인 1944년에

드디어 에바는 큰 幸運을 잡는다.

당대 실력자인 <통일 장교단>의 리더 후안 페론을 만난다.

그 해 6천 명 이상이 사망하는 大지진이 일어난다.

당시 노동부 장관이던 후안은

이재민 구호를 위한 基金 마련에 앞장섰다.

바로 이 모금운동에 연예인 資格으로 참여한 자가 에바였다.

에바와 후안은 만나자마자

서로의 利用가치를 본능적으로 感知하였다.

첫 부인을 잃고 獨身으로 지내고 있던 후안은

에바의 젊음과 미모에 푹 빠져들었으며

에바는 페론을 자신의 인생 轉換의 기회로 쓰고자 했다.

두 사람은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아 同居를 시작했다.

당시 후안은 ‘페론주의’라는 새로운 기치(旗幟)를 내 걸고

그의 정치적 立地와 영향력을 다져가고 있었다.

페론주의는 산업의 국유화, 외국 자본의 축출,

노동자 위주의 사회정책 등

사회주의 국가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

페론주의는 겉으로는 참신(斬新)해 보였지만

당시 아르헨티나의 현실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었다.

게다가 군부세력을 배경으로 하는

獨裁로 흐를 가능성이 매우 많았다.

둘이 동거를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후안에게는 정치적 試鍊이 다가온다.

反페론주의자들이 정권을 잡은 후

후안을 구속해버린 것이다.

그러나 이 사건은 뜻밖에도 危機가 機會로 변했다.

에바 자신도 몰랐던 그의 숨겨진 才能이

이를 계기로 한 순간에 發現된 것이다.

단지 아름다운 미모를 가진 연예인으로만 알았던 에바에게

뜻밖에도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非常한 능력이 있었던 것이다.

정치적이며 선동적이고 남을 說得할 줄 아는 그녀의 재능이

후안의 석방운동에서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팜파스의 가난한 딸이라는 그녀의 出身이

서민과 노동자들에게 同質감을 안겨 준 것이다.

에바의 열정적이고 헌신적인 연설은 民衆의 마음을 움직였다.

에바는 拘禁된 후안을 위해

노동자들을 선동하여 총파업을 일으킨다.

그리고 파업 10일 만에 후안은

노동자들의 歡呼를 받으며 전격적으로 釋放된다.

에바의 도움으로 정치적 再起를 이룩한 후안은

이런 선물을 안겨 준 에바에 報答하듯이

1945년 드디어 그녀와 정식으로 결혼을 한다.


에바 페론과 파퓰리즘


파퓰리즘(populism)이라는 말이 있다.

대중에 영합하여 인기 몰이를 하지만

실은 대중을 기만(欺瞞)하고 그 인기를

정치적인 立地 확보에만 이용하는 것을 말한다.

에바와 후안은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파퓰리즘을 적극적으로 이용한 지도자로 評價 받는다.

1946년 대통령 선거에서

에바는 남편 후안의 선거유세에 同行하며

대중으로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얻는다.

그녀의 아름다운 미모와 확신에 찬 演說은

아르헨티나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에비타라는 애칭이

전 아르헨티나 국민들에게 알려진 것도 이 때부터이다.

에바의 인기 덕에

후안은 대통령 선거에서 劇적인 승리를 한다.

대통령이 된 후안은

대중이 좋아할 만한 정책을 내세우며 정권유지를 圖謀했다.

그런 후안의 뒤에는 항상 에바가 있었다.

그의 페론주의는 외국자본의 추방, 기간 산업의 국유화,

노동자의 처우 개선을 위한 노동입법 추진,

여성 노동자의 임금 인상 및 시민적 地位 향상,

親權과 혼인에서 男女 평등의 헌법 보장,

이혼의 권리를 明示한 가족법 추진,

여성의 공무담임권 획득 등

획기적인 정책들이 마구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런 수많은 改革들은

일부는 좋은 평가를 내릴 만 한 것도 있지만

대부분은 大衆의 인기 확보를 위한 것일 뿐

실질적으로 나라의 財政을 생각하지 않은 것들이 많았다.

후안 정권은 겉으로는

노동자와 여성 등 弱者를 위한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 혜택을 받는 국민은 거의 없는

虛勢와 기만(欺瞞)의 정권이었다.

겉으로는 폭발적 인기를 얻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 인기 뒤에는 페론 부부의 失政을 비판하는 세력에 대한

끊임없는 탄압이 숨겨져 있었다.

비판세력의 除去를 계기로 국가는 정치적으로 硬直되었고

후안과 군부의 독재 속에서 부정부패가 만연(蔓延)했다.

한편, 에바는 아르헨티나 全지역을 두루 다니면서

복지사업과 봉사활동을 벌이며 성녀를 自處했지만

실제로 사회적 약자들의 삶은 그다지 나아지지 않았다.

그녀는 그녀만의 정치를 한 것이다.

그것은 페론이 내건 정책들이 기본적인 사회改革이 아니라

대중을 사탕발림으로 마비시킨 후

기존의 지배구조는 그대로 持續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대중적 인기를 더욱 더 이끌어내기 위해

에바는 남편 후안과 자신의 偶像화 작업을 시작했다.

초등학교에서는

페론 부부를 찬양하는 글짓기를 하도록 권장하였으며,

스페인어 수업 시간에는

에바의 자서전 <내 인생의 사명>을

敎材로 채택하는 교육정책을 펼쳤다.

페론정권 시기에

아르헨티나의 경제는 추락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들은 비판세력을 제거하고

나라 돈을 자기 것처럼 마음대로 썼다.

에바의 사치는 極에 달했고

橫領한 많은 돈이 스위스 은행의 비밀계좌에 入金되었다.


에바에 대한 엇갈린 평가


에바는 9년 동안 아르헨티나의 퍼스트레이디였다.

그러나 그녀는 황금 같은 榮華에도 불구하고

1952년, 34세의 꽃다운 젊은 나이로

백혈병과 자궁암으로 세상을 떠난다.

아르헨티나의 大衆은 에바의 죽음을 狂的으로 슬퍼했다.

장례식은 한 달간이나 계속되었으며

그의 棺에는 국민들이 바치는 꽃으로 뒤덮혔다.

그러나 에바의 죽음 이후 그간에 숨겨져 왔던

페론정권의 문제점들이 하나 둘 씩 드러나기 시작했다.

무리한 경제정책은 실패로 돌아갔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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