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모래가 5.18 작년에 올렸던 자료를 상기하는 뜻에서 다시 올려 봅니다. > 자유게시판

본문 바로가기

System Club 시스템클럽

자유게시판 목록

내일 모래가 5.18 작년에 올렸던 자료를 상기하는 뜻에서 다시 올려 봅니다.

페이지 정보

작성자 벤허 작성일18-05-16 14:30 조회312회 댓글2건

본문


요즘 대한민국이 위태로운 시기에 즈음하여 국민들이 태극기들고 왔다갔다

 

할때가 훨씬 지났음을 깊이 께닫기 바란다.

 

과거 각나라 국민 지도자 대부분이 이념전투에서 패배하면

 

망명이냐 아니면 아주 먼곳, 이두곳으로 가야만이

 

국민에 대한 올바른 예의요 진실로 나라 사랑하는 애국자임에 틀림이 없을 것이다.

 

대통령만 그러는게 아니라 대한민국에 호적을 두고 자라온 국민이라면 ,

 

특히 시스템크럼 회원이라면 이념전투에 참패를 당하면

 

이두곳 중에 한곳은 힘들고 아주 먼나라로 떠나야만 한다.

 

이곳도 애국자인척 글들을 써대는데

 

마치 기독교의 참된 목사처럼 글도 써대고 모임도 활동도 잘하지만

 

짐승의 꼬리를 양복으로 가리며 양의 탈을쓴 자들이

 

결국 본색을 들어냈던 이단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

 

이와같은 놈들이 여기에 없다고 누구리 장담하겠는지?

 

 

 

그러나 그 반면에 나라걱정을 하시는 참된 시클 회원님들의

 

수고가 많음을 볼때 감격함을 느끼곤 한다.

 

 

 

이제 한국을 올바로 세울수 있는 길이 있다면

 

오직 5.18에 대한 진실을 밝히는데 국민 모두가 단결하여야 할것이다.

 

특히 시클 회원님들이....

 

나는 5.18 당시에 상황을 아래와 같이 진술하니 참고 하기 바란다.

 

진주만에서

 

 

 

 벤허 불로그   http://blog.daum.net/oldbenhur/8124382

 



아래


당시 해병대 대위 김영빈(벤허)은  중앙정보부 대북공작단에 특수공작관으로 근무중 해병특수수색대를 통제할 수색대장이 필요할 때라  최상급부대에서 긴급 전입명령을 받고 포항 해병특수수색대장으로 전입온지 한달만에 10.26 박정희대통령 서거와 함께  북한군 해상침투  정보에 의해 양남, 감포, 구룡포, 그리고 토함산, 형제산, 팔공산 일대를 일부 헬기로 수색정찰에 박차를 가할 때 소령으로 진급을 하였다. 그 이듬 해 봄 정기적으로 실시하는 해병특수수색훈련에 지친 요원들의 위로를  주고자 우수요원으로 선발된 그들에게 특별휴가를 실시하였는데 그때  4명을 광주와 그 인근지역으로 정기휴가를 보냈다.


그런데 사령부에서 긴급 전화 내용이, 광주지역으로 휴가보낸 요원들과 연락이되는가를 묻는 것이다. 당시에는 휴대전화도 없고 가정형편상 전화 시설을 해논 대원들이 없기 때문에 인접해 있는 파출소로 연락하면 전달이 된다고  하니 즉시 연락을 해보라는 것이다. 그러나 전화가 일체 불통임을 상부에 보고하니 요원들에게 연락이되면 즉시 귀대할것을 지시하라는 것이다.


나는 걱정하지 마십시요, 요원들은 해병특수수색대의 특수훈련을 이수한 정예요원들인 만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반드시 귀대할 것입니다. 드디어 이들은 둘씩 짝을 지어 농꾼복장들을 하고 하루간격을 두고 부대에 무사히 귀대하였을 때 모두들 반겨주였다.


첫날 두명을 내방에 불러놓고 어떻게 된 사건을 문의하였더니 두 요원들의 증언에, 위장복을 보니 특전사 군인들의 만행인 줄 알았으나 탄약고 탈취등 그들의 행동은 매우 민첩하여 민간인으로서는 할수 없는 행동을 하며, 특별히 말투가 이북 사투리를 사용한다는데 침투한  북한 특수군들과  지역에 부식되었는 용공세력들임을 즉시 알수가 있었기에 수색대장님께 전화로 보고를 드리고 대장님 지휘아래 헬기로  2-3개팀 정도 지원을 요청하려고 하였으나 전화는 어디를 가나 모두가 두절된 상태라 보고를 못드렸습니다. 죄송합니다.


증언을 약 20분간 듣던 중 밖 연병장에는 긴급 출동한 헬기가 착륙하여 보안대 요원들이 두대원을 압송하다싶이 헬기에 태우고 어디론가 가버렸다. 그 다음날 역시 두명의 휴가 간 특수요원이 무사히 노동자 차림으로 귀대하여 당시 상황을 보고받았는데  다른점은 공수단 복장을 한 북한 특수공작대원들의 할동은 매우 잔인하고 민첩함으로 아군이 절대로 할수 없는 민간인을 죽이면 무수히 구타하는 장면을 보고 즉시 그자리를 이탈하여 광주를 탈출할 계획을 세워 농꾼으로 변장 새벽 야음을 틈타 둘이서 광주를 떠났습니다.  나머지 보고는 전과 동일하기에 생략한다.

그럼 나의 요원들이 진술한 사건의 전모가 틀린가 맞는가를 아래 북한에서 발행한 신문과 사진을 올려본. 


~~ 이하생략 ~~






                                       포항에서 강릉까지 대관령 설한지 스키 훈련 출발 신고


장거리 (4km) 수영을 마치고 기념으로..

-----------------------------------------------------------------

   

                                       당시에 실세들

     우측 벤허 3번째 특전사 3여단장 장세동 준장 가운데 쌍룡 김석원회장 그다음 정호영 중장



 

      그때그시절 해병특수수색대원들과  청룡제 1진 출항 했던부산 제 4부두에서 기념촬영

      (2010.10.2) 좌 해병특수수색대 총연합회장 임명제, 벤허(흰옷),  해병대 6대 사령관

      해병중장,공정식(해사1기),해병대 제24대 사령관 해병중장 김인식 (해사24기)

     

-----------------------------------------------------------------

5.18 대국민 성명서
http://www.newstown.co.kr/news/articleView.html?idxno=324746


-------------------------------------------------------------------------------------------------------------------------------------------

애국 국민이라면 지금부터 빨리 뛰어야

북한군 끌어들여 대한민국 전복시키려 했던 5.18 내란폭동, 민주화운동이라 포장

 

http://www.newstown.co.kr/news/articleView.html?idxno=281317

  

“10% 가산점에 병역감면까지 받는 금수저-5.18 유공자가 누리는 귀족대우-”

밤과 낮으로 전국을 도배하십시오. 다른 길 없습니다.

빨강사회를 38일 만에 파랗게 바꾸는 방법은

오로지 이 하나의 방법밖에 없습니다.   

파랗게 바꿔야 우익대표가 이깁니다.

설사 좌익대표가 이긴다 해도 파랑사회에서는 맥을 추지 못합니다.

오직 이 한 길 뿐입니다. 이의 달지 마시고 행동하십시오.

애국단체들은 파일을 위에 올려놨으니 스스로 인쇄해서 배포하십시오.   

전단지는 최고급 컬러로 인쇄했습니다. 장당 원가 20원입니다.

단체가 아닌 분들이 무료로 많이 달라 하면 의심부터 듭니다.

그래서 낯선 분들 중, 많이 가져가시는 분들은 원가를 내셔야 합니다.

문방구에서 컬러로 복사하시려면 장당 몇 백 원씩 합니다.

 



5.18 유공자 대대손손 누리는 평생복지
 

  http://m.blog.naver.com/kbiz1009/220974286361


불복하자, 저항하자, 음모론에 매달려 있을 때 아니다. 빨리 뛰어라

우리 운명은 38일 동안 우리가 얼마나 땀을 많이 흘리느냐에 달려 있다.

 탄핵과 관련된 음모론들이 아직도 카톡 공간을 채우고 있다.

불복하자, 저항하자, 이런 사람들 제발 정신 좀 차려라.

지금은 이런 사람들이 빨갱이보다 더 해로운 사람들이다.

누구보다 누가 더 낫다느니 갑론을박 하는 사람들이 있다.

지금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누가 우익의 대표가 되든 우리는 그 대표가 이길 수 있는 국민정서를 만들어 내야 한다.

진보, 민주화, 5.18폭 

곧 빨갱이 정체를 기리기 위한 속임 용 포장용어라는 사실을 국민 모두가 절감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빨갱이=진보=민주화=5.18=사람=주체사상

진보라는 말은 김일성이 남한의 빨갱이에게 붙여준 이름이고,

야당을 정점으로 하여 끝없이 전개되는 민주화 투쟁진보들이 대한민국을 전복하고

적화통일의 교두보를 마련하기 위해 벌이는 빨갱이(진보)들의 전쟁이다.

빨갱이들이 내거는 사람은 북한 사전에 노동자와 농민으로 정의돼 있다.

노동자와 농민이 사람답게 살려면 그들을 착취하는 남한 정부와 자본가를 쳐부수고,

남한을 식민통치하고 있는 미국을 쳐부숴야 한다는 것이 주체사상의 핵심이다

이러한 본질과 정체를 숨기고 그들은 순수한 국민을 속여

민주화군사독재로 부터 국민을 자유롭게 해방시킨 거룩한 운동인 것으로 포장해 왔다.

여기에 빨갱이 신분의 역사 저술가들, 전교조가 선봉에 서 있다.  


- 중략 - 

---------------------------------------------------------------------------------------------------------------------------------------

5 18 團體들 다 죽었는가. ?


 대한민국 호령하던 5.18단체들, 다 죽었는가?

 5.18‘5’자만 건드려도 버스를 타고 올라와 행패를 부리고,

광주지검에 고소 고발 하던 5.18떼거지들아,

   

지금 나는 그들을 국가와 국민을 기만하여 사기를 치고 국가 돈으로

그들 평생, 아이들 평생 호의호식해 왔다고 돌 직구를 날렸다.

 

북한 특수군 600명의 현란한 게릴라전에 현혹되어 소모품 노릇을 한

양아치 급의 천대받던 계급들이 지금의 민주화 열사가 되었다고 적시했다.

이런 말 옛날에 했으면 나는 뼈도 추리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당신들은 이상하게 조용하다.

무엇에 조용한가?

5.18은 북한특수군 600여명이 일으킨 대남 게릴라 전쟁이었고,

이에 광주 양아치 계급들이 부화뇌동했다고 책을 썼는데도 조용하다.

5.18단체들은 북한 특수군에 부역한 주제에 국가와 국민을 34년 동안 속이고,

1990년부터 엄청난 민주화 보상금을 타고 그들은 물론 그들의 자식들까지 국민세금으로

호의호식하고 있는 사기꾼이라고 적시했는데도 고소 고발 하지 못한다.

 

세상 참 많이 변했다.

제발 고소-고발 좀 해보라. 제발 ‘5.18 최종보고서

대해 출판 중지 가처분신청 한번 내봐라.

대한민국 위에 군림하던 그 서슬 퍼렇던 기개는 다 어디다 버리고,

나로부터 무릎 꿇고 빌라는 충고를 묵묵히 받고만 있는가?

당신들의 특기인 소송 좀 해봐라.

대통령, 국회의원, 국방방관에게 달려가

지만원의 입 좀 막아 달라 또 한번 달려가 봐라.

2002북한특수군입에 한번 담았다가

나는 린치당하고 광주교도소에 101일 수감됐다.

또 그런 소리 했다가 당신들로부터 고소당해 5년 동안 재판받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특수군 소리가 아니라 당신들을 사기꾼으로 몰았다.

사기를 안 쳤으면 당연히 고소해야 할 것 아니던가?

600명 북한 특수군에 소모품으로 부역한 반란자들,

북한 특수군에 부역한 양아치들, 개념 없는 부나비들, . .

옛날에 이런 소리 들었다면 당신들은 나를 어떻게 요리했겠는가?

이런 모욕적인 말을 듣고서 어째서 조용한 것인가?

그 성질 다 죽었는가? 당신들에게도 일말의 양심이 있다면 반성하고 사죄하라.

더 버티면 더 비참해 진다.

얼음판에서 중심을 잃으면 즉시 넘어져야 산다. 넘어지지 않으려고

뻐들컹 거리면 이가 여러 개 뽑힌다.

나를 살해할 생각 하지 마라. 그거 쉬운 일 아니다.

나를 살해하면 당신들의 무시 전략이 파괴된다.

그리고 세상은 내게 상을 추서할 것이다.

그것이 당신들에게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알겠는가? 

   

세상 무서운지 모르고 까불던 윤한봉, 정작 계엄이 강화되니 이리저리

숨기 바쁘더라. 이런 치사한 것들이 무슨 민주화를 했다는 것인가?

양아치들의 시체 팔아먹고 사는 인간들의 집합소가 민주화의 성지이더냐?

 지 만 원


------------------------------------------------------------------------------------------------------------------------------


전두환 전대통령 광주는 폭동이야!

광주사태는 총을 들고 일어난 폭동이야 (전두환 증언)
https://youtu.be/fvMmcPu5yOw




 

[레벨:2] 빨갱이즉사

 

 

전두환 !


"단지 광주에서 일어난 폭도들을 진압한 것이지, 사과할것이 뭐가 있느냐?


내가 정당했다는 것을 증명해주기를 기다리겠다. 

폭도와는 타협하지 않는다."


전두환 "광주 사태는 폭동, 사과할 이유 전혀 없다."                      


"단지 광주에서 일어난 폭도들을 진압한 것이지, 사과할 것이 뭐가 있느냐?
내가 정당했다는 것을 증명해주기를 기다리겠다. 폭도와는 타협하지 않는다."



---------------------------------------------------------------------------------------------------------------

...


북한 특수군 장례, 5.22일 목격
https://youtu.be/mG3nfjgU0XM





---------------------------------------------------------------------------------------------------------------------------------



제37광수 박승원 상장 정부 합동심문 조사 완료

▲제37광수 박승원 상장
황장엽 이후 최대 거물로 알려진 북한의 박승원 상장의 귀순이 거의
확실한 것으로 동아일보 등 국내 언론들이 다투어 보도하고 있는데
최근에는 이 박승원 상장이 ‘제37광수’(*제37광수는 5.18 당시
광주 폭동에 참가한 광주 북한 특수군을 말함)소속으로
알려지고 있어 더욱 주목을 받고 있다.

또한 보도된 ‘박승원 상장’의 귀순발표와 함께
공개 기자회견까지 고려 중이라는 일부 언론 보도에
대한 국민적인 관심이 매우 커지고 있다.

최근 아시아뉴스 전문저널 ‘아시아엔(ASIAN)’은 탈북 망명한
‘제37광수 박승원 인민군 상장’에 대하여“이미 한국에 도착 후,
정보기관에서 조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6일 알려졌다.
박승원 상장은 지난 4월 탈북 이후 주 러시아 한국 대사관을
통해 망명을 신청해 현재 국내 정보기관의 심문을
받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정보 당국 관계자는 6일“박 상장은 이미 합심(정보기관 합동심문)
을 거쳐 부처별 개별 조사를 받고 있다”며“국정원의 조사를 토대로
국방부 등 관련 부처에서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박 상장의 경우 김정은 체제의 핵심인물로,
현재 북한 권력구도의 변화에 대해 구체적인 조사가
상당히 진척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특히 국방부 정보본부, 국군 정보사령부 및 통일부 관련 부서의
조사 등이 모두 이뤄지려면 시간이 더 걸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또한 최근 지만원 박사와 뉴스타운이 5.18 역사전쟁을 통해
연구분석 발표 및 보도된 ‘광수(5.18 광주 북한특수군, 현재
90명 광수 발표)’ 중 최근 러시아를 통해 탈북 망명한
‘제37광수 박승원 인민군 상장’에 대하여,
‘제37광수 박승원’이 1980년 5.18 광주에 현역 군인으로
직접 광주에 왔었다는 증언 및 보도와 함께,

현재는 한국에 안전하게 도착하여 국내정보기관에서 이미
위장탈북 등을 점검하는 합심(정보기관 합동심문)을 거쳐 부처별
개별 조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제37광수 박승원 인민군 상장’에 대한 정부의 조사가 모두
끝나면 조만간 공식 공개기자 회견이 예상되고 있어,박승원 상장이
북한에서 가지고온 비밀정보 내용에 따라 한반도는 물론
전 세계에 큰 충격파가 예상되고 있다는 것이다.


기자회견하면 세계적 충격
북한전문지 ‘프리엔케이(Free NK)’에 의하면, 최근 탈북 망명한
‘제37광수 박승원 상장’에 대하여 “1980년 5.18 광주사태시 북한군
대남연락소 전투원 소속으로 남파되어 5.18 광주사태에
시민군으로 참여한 경력도 가지고 있다.”


“또한 1988년 10월 평양에서 열린 ‘대남 영웅 대회’(인민 문화 궁전
지상에서는 ‘전국 영웅대회’가 열렸고 지하에서는 ‘대남 영웅대회’
가 열렸음)에 토론자로 출연하여 5.18 광주사태 참전의
위훈 담을 증언한 적도 있다.”


“그리고 5.18 광주사태 참전 ‘대남 영웅’들을 기리기 위해
김정일의 지시로 제작된 ‘무등산의 진달래’ 노래 제작에도
기여한 바가 있는 인물이다.”라고 보도해,

그동안 지만원 박사가 12년간 연구하여 발표하고,
뉴스타운지가보도한 5.18 광주 북한특수군 600명 참전 내용과 ‘제37광수
박승원 상장’이 5.18 광주 북한특수군 이란 것을
구체적으로 증명 했다는 것이다.

지난 7월 3일과 4일 채널A와 동아일보가 보도한 ‘제37광수 박승원
상장’의 탈북 망명과 신원 들에 대한 내용을 모두 기정 사실화
했으므로, 최근 6월 30일 박근혜 대통령이 국정원을 비공개로
방문한 것도 이 사건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북한 측은 박승원 인민군 상장'의 탈북 망명에 보도에 대해,
7월 9일자로 북한이 대대적으로 나서서 남한의 보도가
“새빨간 거짓말이며, 북한에 대한 모략이라고 발끈하며,
박 상장은 지금도 마식령 스키장 건설을
지휘하고 있다”면서 강력히 반발했다.

위와 같이 북한이 ‘제37광수 박승원 인민군 상장’의 탈북 망명
사실을 반발, 부정하는 이유는, 그가 5.18에 대하여 이미
지만원 박사와 뉴스타운이 발표 및 보도한 내용에 대하여
5.18은 전라도와 북한이 손잡고 일으킨 국가전복 내란
폭동이었다는 사실이 모두 밝혀지기 때문인 것으로
국내 언론은 분석하고 있다.

만약 5.18 광주의 진실이 밝혀지고, 한발 더 나아가 그동안 북한의
모든 대남적화공작의 내용과 진실이 광주에 왔던 북한군
현역장성인 제37광수 박승원에 의해 밝혀진다면, 그 충격은
세계 전체를 핵폭탄처럼 강타할 것이다.

북한은 지금 이것을 무척 겁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북한 김정은이 국제 형사재판소에 서게 되는 수준을 넘어,
북한 현역군인 600명의 반란군 5.18 광주에 선전포고 없이 비밀
침투해 무고한 시민들 수백여 명을 학살 했으므로, 이는 엄격한
국제법 위반으로 1급 전쟁범죄로 국제적 처벌을 받아야 할 것이다.


끝으로 역사에 조금도 부끄럼이 없는 박근혜 정부가 되기를 바라며
그동안 이문제로 옥고까지 치르며 불철주야 수고하신
애국자 지만원 박사님과
시스템크럼 오백만 애국자님들의 노고가 역사에 길이 길이 빛날 것이다.

          -------------------------------------------------------------------------------------------------------------------------------------------------


   북한의 5.18침략 사실에 대한 영상 고발장

 

 

 

지 금까지 한국사회에 인식돼 있는 5.18 광주사태는 1980년 전라남도 광주시민들과 국가 사이에 발생했던 10일간의 무력충돌  사건이었다. 1980년 5월 18일 09:30분경, 250여명의 학생집단이 전남대 정문 앞에 서있던 20명의 공수대원들에게 돌을  던져 7명에 부상을 입힌 순간부터 시작됐고, 5월 27일 새벽 05시 23분 주영복 국방장관이 최규하 대통령에게 광주시가  수복되었음을 보고한 순간에 종결됐다. 1980년 당시의 사람들에게 5.18광주사태는 국가를 상대로 하여 김대중 추종자들이 일으킨  ‘반국가폭동’인 것으로 인식됐고, 당시의 법관들도 그렇게 판결했다.  

 

                   

              우익시대의 폭동사건이 좌익시대에 민주화운동으로 둔갑  

 

대 한민국 사법부는 5.18재판으로 인해 이 국가에 치욕을 안겨주었고, 대한민국 운명에 결정적인 가해행위를 했다. 5.18에 대한  재판은 1980-81년과 1996-97년 두 번 했다. 1981년의 법원은 우익판사들로 구성되었고, 1997년의 법원은  좌익판사들로 구성되었다. 전자는 5.18을 김대중이 일으킨 내란음모 사건이었다고 판결했고, 후자는 5.18을 전두환이 일으킨  내란사건이라고 판결했다. 한 마디로 두 개의 재판 모두 다 정치재판 이념재판을 한 것이다. 


 

전두환 시대의 사법부는 김대중을 때려잡는 데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에 상황일지에 기록돼 있는 자료들이 ‘5.18은 북한특수군 600명이 주도한 침략행위였다’는 것을 웅변해주고 있었는데도 여기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김대중을 제거하는데 필요한 자료들에만 신경을 썼다. 김영삼 시대의 사법부는 오직 전두환을 때려잡는 데 초점을 두었기 때문에 상황일지에 기록돼 있는 자료들이 ‘5.18은 북한특수군 600명이 주도한 침략행위였다’는 것을 웅변해주고 있었는데도 여기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전두환에게 올가미를 씌우는 데 필요한 자료들에만 신경을 썼다.  


 

특 히 김영삼 시대의 사법부는 전두환을 때려잡기 위해 “당시 북한으로부터는 특이한 징후가 전혀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전두환이 최규하를  겁박하기 위해 북한으로부터의 위협을 과대 포장하여 5.17계엄확대 조치를 취했고 민주화의 상징인 김대중 등을 체포했다"며 전두환을  옭아맸다. 600명의 특별한 시위대는 대한민국 헌법을 전두환으로부터 수호하기 위해 결집한 준-헌법기관이라고 판시했고, "이  시위는 전국적으로 빠른 기간에 확산됐었어야 했는데 전두환 등 신군부가 이를 조기에 진압한 것은 내란행위에 해당한다"고 준엄하게  꾸짖었다. 노골적인 이념재판이었던 것이다. 

 

 

1981 년에 이미 대법원 판결이 끝난 5.18사건을 1997년에 다시 재판한 이유는 재심 사유가 발생했기 때문이 아니라 공산세력이  '한국현대사에서 가장 중요한 5.18역사'를 뒤집기 위해 여론몰이로 제정한 '5.18특별법' 때문이었다. 1997년의 재판은  재심재판이 아니라 헌법을 초월하는 이 5.18특별법에 의한 정치재판이었던 것이다. 이 5.18특별법'은 헌법에서 규정한 일사부재리  원칙과 형벌불소급의 원칙을 무시했다. 재심 사유가 없는 5.18사건을 좌익판사들이 다시 판결한 것도 있을 수 없는  사법쿠데타였지만, 재판내용은 그야말로 무법천지 그 자체였다 . 

 

 

검 찰이 작성한 팩트들은 1980년 것이나 1995년 것이나 변함이 없었다. 단지 1996-97년에 재판을 주도한 판사들의 해석이  상식과 논리를 뛰어 넘는 막무가내였다. 증거도 철저히 무시되었고, 헌법도 법률도 무시되었다. 오직 허위사실들로 가득 찬 여론조작에  의한 북한식 인민재판만 있었다. 1996년에 발행된 이 사건 제2심 판결문에는 이런 문장이 있다. “역사바로세우기 재판은 법률도 아니고 헌법도 아닌 '자연법'에 의한다. 자연법이란 국민인식법이다".


1996년에 시작된 5.18재판은 증거재판도 아니고 법률재판도 아닌 인민재판이었다는 뜻이다. 김영삼은 1995년에 시동을 건  제2의 5.18재판을 군사독재를 처단하기 위한 재판이기 때문에 "역사바로세우기 재판”이라 명명했다. 이 재판과정에서 피고인 측  변호인들이 아무리 팩트와 법률조항들로 어필해도 판사와 검사들은 "이 재판은 접근방식이 달라야 한다"는 말만 반복했다. 그리고 "그  접근방식이라는 게 무엇이냐"는 변호인들의 거듭된 질문에는 끝내 답변하지 않았다.  


 

이 로써 한국사회에는 좌익세력과 무산계급이 5.18역사의 주인공으로 등극했다. 대한민국에 반역한 5.18폭동이 갑자기 민주화운동으로  탈바꿈된 것이다. 이로써 예전의 ‘내란세력’이 ‘헌법수호세력’이 됐고, ‘내란’을 진압한 ‘국가’는 ‘내란세력’이 됐다. 국가가  북한에 정복되지 않고서는 있을 수 없는 이변이었다. 5.18폭동에서 사망한 폭도들이 묻힌 곳은 국립묘지가 되었고, 그 묘지를  가려면 길 한 가운데 묻어놓은 전두환의 동상을 지금도 밟고 다녀야 한다. 전두환은 지금도 살아있다. 살아있는 사람의 동상을  5.18묘지 입구에 묻어놓고 오는 사람 가는 사람으로 하여금 짓밟고 다니게 하는 것은 김정은 집단의 잔악성과는 어울려도 거룩하다는  민주화운동과는 어울릴 수 없다.  


 

김 일성을 추종하는 공산주의자들이 충신세력이 되었고, 반공세력이 역적세력으로 내몰렸다. 공산세력이 남한사회의 주인이 된 것이다.  남한이라는 국가가 내용상 북한체제로 체제전환을 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세계 역사에 이렇게 황당하게 뒤집힌 역사는 아마 이것 말고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두 개의 재판 모두가 다 5.18을 북한이 주도한 침략사건이라는 사실은 발견하지 못했다.


  

 

                      5.18판결문은 한국사법부의 주홍글씨, 6개의“사실오인”  

 

5.18 이 일반에 사실과는 정 반대로 잘못 알려진 이유는 두 가지 때문이다. 하나는 5.18의 바이블이라는 황석의 책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라는 책이 북한이 날조한 대남모략용 유언비어를 종합한 것이었는데도 이것이 지금까지 “5.18역사의 바이블”로  널리 읽혀왔다. 하지만 팩트들로 뒷받침되지 않은 이 내용들은 모두 북한의 대남모략용 책자들로부터 나온 것들이라는 것이 최근  밝혀졌다.


다른 하나는 1980년의 수사자료와 1995년의 수사자료를 음미하면, 광주사태는 북한특수군 만이 주도할 수 있었다는  결론을 금방 내릴 수 있었는데, 당시의 수사-재판 과정에 참여한 인물들이 분석의 초점을 오직 정치적 희생양을 찾는 데에만 집중한  관계로 이 중요한 사실에 대한 분석을 도외시했다. 그 결과 개개인 모두가 살인기계요 맥가이버 능력으로 훈련된 북한특수군 만이  이룩할 수 있는 기적적인 작전성과를 놓고 광주대학생 600명이 이룩한 성과인 것으로 사실오인을 하였다.


여기에서 매우 중요한  사실은 광주시민들 중 이 600명에 소속됐던 사람은 단 1명도 없었다는 사실이다. 결론적으로 5.18은 북한의 공작세력이 와서  저지른 침략 및 살인 행위였는데 한국 사법부는 북한의 공작에 말려들어 이를 공수부대의 소행이라고 뒤집어 씌웠다. 이처럼 사실오인된  판결문은 소각 절차를 밟아야 마땅할 것이다. 아래에 5가지 오인된 사실들을 정리한다.


  

사실오인#1: 총상사망자 116명 중 70%가 시민군(북한군)이 무기고에서 탈취한 카빈소총 등에 의해 사망했는데 사법부는 이를 모두 계엄군의 소행인 것으로 사실오인했다. 

 

 

사실오인#2.  5월 18일, 오전 9시, 책가방에 돌멩이를 준비해가지고 전남대에 주둔하는 7공수 33대대를 찾아가 공수대원들에 돌을 던져  7명에 부상을 입히고 금남로 충장로로 달려가 파출소들을 태우고 준비된 유언비어를 살포한 훈련된 250명을 사법부는 학생시민군으로  사실오인했다.

 

 

사실오인#3.  가장 큰 사살오인은 광주에 만능 맥가이버 능력을 가진 학생시위대가 600명씩이나 있었다고 오인한 것이다. 가방에 돌을 넣어 감히  계엄군 집결지를 찾아가 7명의 공수대원에게 부상을 입히고, 공수부대원보다 더 빠른 달리기 속도로 달아나 광주 도심 파출소들을  불태워 시민들을 끌어모으고, 시민들에 준비된 공작용 유언비어를 살포하고, 감히 정규사단의 이동계획을 탐지하여 매복하고 있다가  몽둥이 실력으로 기습을 가하여 사단장용 지프차를 포함 14대의 지프차를 빼앗아 몰고, 아시아자동차 공장으로 직행했다. 이  차량대열을 목격한 군용차 제조공장 사람들은 아연실색 했을 것이다. 당시는 자기용 운전시대가 아니라 지역마다 운전기사가  희소자원이었다.


이런 때에 600명의 맥가이버 집단은 아시아자동차 공장에서 신형장갑차 4대와 군용트럭 374대를 동시에 몰고  전남지역 17개 시군에 비밀규정에 의해 숨겨진 44개 무기고를 털어 5,408정위 총기를 탈취하여 시민들에 나누어주면서 사용법을  교육시켰고, 다이너마이트를 탈취해 도청에 2,100발의 폭탄을 조립해놓고, 4,000명의 공수부대를 포위하여 몰살 상태로까지 몰고  가 공수부대로 하여금 구사일생으로 도망을 치게 했다. 한 두 사람이 맥가이버식 초능력자가 아니라 600명 전체가  맥가이버들이었다. 한국사법부는 이 600명의 초능력자 집단을 광주학생들로 구성된 민주화시위대인 것으로 오인했다. 


 

사실오인#4:  당시는 계엄령이 선포되어 전국의 모든 운동권 지도자들은 물론 대학생들 모두가 경찰 눈에 뜨이지 않기 위해 마음 졸이며 숨을 곳을  찾던 시기였다. 사법부는 이런 때에 세계최정상급 특공부대 이상으로 훈련된 대학생 600명이 광주시민으로 존재했다고  사실오인했다. 


 

사실오인#5: 당시 광주에서 불리던 ‘시민군’은 북한특수군이었다. 그런데 사법부는 이를‘헌법을 수호하기 위해 결집된 민주화 시위대’라 사실오인했다.  

 

가 장 중요한 사실에 대해 오인을 한 판결문은 더 이상의 인권유린 등을 예방하기 위해 즉시 폐기처분돼야 할 것이다. 저자의 경우 이  판결문 내용과 다른 역사관을 표현했다는 이유로 2002년에 5.18단체들로부터 폭력과 린치를 당하고 서울근교에 살면서도 관할지역  재판소에서 재판을 받지 못하고, 광주검찰에 체포, 광주로 압송되어 가면서 6시간 동안 수갑을 뒤로 채인 채, 화장실도  거부당하면서, 아들 벌되는 경찰들로부터 온갖 욕설과 구타를 당했다.


2008년에는 2,270페이지의 5.18역사책을 저술했다는  이유로 또 5.18단체로부터 고소를 당해 5년 동안 재판을 받고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컸다. 이어서  5.18을 북한군이 광주로 침투해서 직접 주도했다는 연구결과를 방송하고 인터넷에 게시하자, 대통령 직속기구인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이  내용들을 검열하고 삭체처분 했다. 이에 법적 소송을 제기하자 대한민국 판사들은 1997년의 대법원 판결만이 정통역사라며 소수의  역사관을 표현하는 것은 반사회적 범죄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저자의 소송을 기각했다. 이처럼 신성불가침으로 신봉돼온 1997년  대법원의 판결은 위와 같이 최소한 5가지 사실에 대해 ‘사실오인’을 범했다.


  

600 명이 수행한 위 핵심 작전 내용들이 수사기록에 명백하게 기록되어 있는데도 당시 판검사들은 이 신출귀몰한 특공작전을 광주대학생들이  주도했는지, 북한특수군이 주도했는지에 대해 추적하지 않았다. 전두환 시대나 김영삼 시대나 다 5월 21일의 적전내용이 무엇인지.  누가 했는지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었다. 사건 발생 35년이 지난 시점에서 저자가 음미해보니 이 600명이 이룩한 업적은 절대로  광주의 개념 없는 10-20대 부나비들이 해낼 수 있는 업적들이 아니었다. 이렇게 저자의 눈에는 보이는 북한군이 어째서  1980년대와 1990년대의 조사관들과 판검사들에게는 보이지 않았는가? 북한군에 대해서는 전두환 시대에도 무시했고, 김영삼  시대에도 무시했다.  


 

               이들 학생시위대 600명이 광주시민이나 학생이 될 수 없는 이유들  

 

1980 년 5월 18일 새벽부터 전국은 계엄령 확대선포와 폭넓은 예비검속으로 인해 전국 그 어느 곳도 안전하지 못했다. 운동권일수록 숨을  곳 찾기에 혈안이 돼 있었다. 1980년 5월의 광주는 서울지역에 비해 시위가 활발하지 못했다. 광주의 학생운동권 지도자는  전남대 총학생회장인 박관현, 축산학과 학생회장인 윤한봉, 38세의 복학생 정동년, 5.18의 영웅이라는 윤상원 정도였다. 그런데  박관현과 윤한봉은 5월 17일 밤부터 도망을 다니며 광주사태에 전혀 나타나지 않았고, 정동년은 5월 17일 자정에 체포됐고,  윤상원은 5월 21일까지도 숨어 있다가 5월 24일 오전까지 도청을 배타적으로 장악했건 북한세력이 안개 같이 사라진 이후  어슬렁거리며 도청에 들어가 5월 25일과 26일, 학생수습위원회 대변인을 했다.

 

 

무 시무시한 계엄령의 선포로 당국에 조금이라도 의심을 받았던 모든 학생과 젊은이들은 모두 숨어 있었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광주에서만은 이렇게 다방면에서 고도로 훈련된 대학생들이 조직을 구성한 상태로  600명씩이나 존재할 수 있었다는 말인가? 이에  대해 의심을 하지 않는 판검사들이 사실오인을 주도한 것이다. 이 600명 작전은 신출귀몰하다는 이스라엘 특공대의 엔테베 작전보다 한  차원 더 높은 고난도의 작전이었다.

세계 군사작전의 역사가 다시 쓰여야 할 엄청난 사건이 지금까지 숨겨져 온 것이다. 그런데 이  나라의 검찰과 판사들은 매우 안이하게도 이러한 고난도 작전을 광주의 대학생 600명이 수행한 것이라고 간주했다. 광주에  600명의 대학생도 거리에 나올 수 없던 시대였고, 설사 나왔다 해도 이런 고난도의 작전을 수행할 대학생 600명 집단이 있다고  상상하는 것은 지극히 비정상이다. 결론적으로 대한민국 검사들과 판사들은 지극히 비정상이었다. 


 

5.18 사태가 종료되었을 때 주동자들이라고 잡힌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사형언도와 무기형을 받은 주동자들 모두가 다 5월 25일 이후  도청에 들어가 우쭐대다가 잡힌 10-20대 부나비들이었다. 5.18이 민주화운동이라며 엄청난 포상금을 주는 세상이 지금의  세상인데, 5월 21일 참가자들은 유공자들 중에 없다. 5월 21일 작전을 주도한 유공자가 있다면 그는 아마 10억 이상의  보상금을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가장 높은 보상금을 받은 유공자는 3억 2천만원, 경찰관 15명을 닭장차에 가둔 전공을 세운  19세의 윤기권이 2억을 받고, 1990년 간첩의 안내로 북한으로 가 대남방송을 하고 강연을 한다. 주동자라고 잡힌 자들 중  ‘대학생’은 5월 25-27일 도청에서 자기들끼리 갑론을박 하던 오직 두 사람뿐이었다. 계엄당국은 5월 21일 활동한 폭도  대학생을 단 1명도 잡지 못했다. 잡기는커녕 그들에 스나이핑 당하지 않으려고 5월 21일 오후 5시 경, 여단장 등이 부하 몇  사람 데리고 무등산으로 줄행랑을 쳤다.  


 

가 장 중요한 5월21일의 번개작전을 누가 수행한 것인지에 대한 조사 없이 무조건 광주학생 시민들이 이룩한 민주화 성과라고 단정해  버린 재판부는 주홍글씨를 달아야 할 존재들이다. 이렇게 엉터리 같은 재판결과를 놓고 무조건 1997년의 재판결과를 존중하라  강요하고 재판결과에 어긋나면 범죄라 하는 이 국가는 참으로 미개한 국가다. 우리 국민은 이제부터 1997년의 역사재판이 가장  중요한 핵심 사실들에 대해 사실오인을 한 것이라는 기막힌 사실을 널리 전파해야 할 것이다.  



 

    5.18광주폭동의 주역이 북한특수군 600명이었다는 사실은 검찰기록에 이미 암시돼 있었다.  

 

검찰과 국정원이 작성한 정부문서들에는 광주의 대학생으로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특공작전’ 내용들이 '대학생 시위대 600명'이 수행한 작전인 것으로 기록돼 있다. 한편으로는 신출귀몰하는 자신들의 날랜  솜씨를 발휘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정치공작을 수행했다. 한국사회에서 천시당하는 전라도와 광주 사람들의 감정을 자극하는  유언비어들을 확산시키고, 잔인한 시체들을 만들어 이를 한국군의 소행으로 뒤집어씌우고, 광주시민들을 등 뒤에서 쏘아 쓰러지게 하는  방법 등으로 광주시민들을 분노케 하여 폭동에 참가시키는 고도의 정치공작을 병행했던 것이다. 이러한 작전내용들은 세계 최고수준의  특수부대만이 이룩할 수 있는 것들이었지만, 당시의 수사관들과 판검사들은 순진하게도 그것을 600여명의 대학생들이 수행한 전과라고  판단했다.  


 

계엄당국이 체포하여 군법회의 제1심에서 유죄로 판결 받은 폭도들의 숫자는 겨우 328명, 이들은 대부분 10대 및 20대의 개념도 조직도 없는 도시근로자들이었다. 살인과 파괴에 적극적으로 동참한 광추출신 폭 도들의 수가 600명이기는커녕 겨우 328명에 불과했던 것이다. 더구나 이때 광주에서는 물론 전국을 통털어서라도 600명이라는  날랜 학생폭력 집단이 형성될 수 없었다. 1980년 5월 17일 자정을 기해 서슬퍼런 계엄령이 선포되면서 광주는 물론 전국의  운동권 출신들과 대학생들은 예비검속을 통해 체포되었거나 공포에 떨며 꼭꼭 숨어 있었다. 따라서 검찰기록에 명시돼 있는 “학생시위대  600명”은 도저히 한국의 대학생들일 수 없었던 것이다. 여기에서 특기해야 할 사실이 있다. 당시 한국군에 의해 체포되어 재판을  받은 328명 중에는 이 600명에 소속된 사람이 단 1명도 없었다는 사실이다.  



 

                  광주에서 촬영된 폭동현장의 얼굴들은 모두 북한의 고관들

  

저 자는 2002년부터 12년 동안 5.18관련 수사기록과 재판기록 18만 페이지, 북한자료, 통일부자료 등을 연구하여 3,300여  페이지에 달하는 8권의 다큐멘터리 역사책을 썼고, 2014년 10월에 마지막으로 “5.18분석 최종보고서”라는 단행본을 통해  결론을 내렸다. “5.18은 북한의 김일성이 600명의 병력을 보내 국가를 전복시키고 적화통일을 이룩하기 위해 일으킨 게릴라 침략이었고, 여기에 김대중을 추종하는 광주의 공산세력이 동조했던 여적사건이었다”  


 

무 려 12년에 걸친 연구를 통해 저자는 단호하고도 똑 부러지는 문장으로 이 결론을 냈다. 이 결론을 가장 축복해 준 존재는  하늘이었다. 2015년 5월 5일부터 위 결론을 사실로 입증하는 증거들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저자가 이끌고 있는 단체에는  영상분석팀과 전략분석팀이 있다. 이들은 1980년 광주에서 촬영된 폭도들의 얼굴이 북한정권의 핵심 얼굴들과 일치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기 시작했다. 이 어찌 기적이 아니겠는가? 모 언론사의 영상데이터베이스로부터는 1980년 광주에서 촬영된 사진들을 획득하고, 통일부 데이터베이스로부터는 북한의 주요인물정보를 획득하여 이들을 대조 분석한 결과였다. 시력을 소진시키는 엄청난 희생을 감수하면서 지금까지 무려 391명의 북한 전쟁범죄자들의 얼굴을 특정해낼 수 있었다. 이러한 결과는 오직 애국을 위한 신념과 극기와 감동적인 열정이 없으면 이룩할 수 없는 땀의 기적이었다. 

 

 

반 면 1980년의 광주 사진들 속에서는 광주사람들을 전혀 찾을 수 없었다. 5.18에 북한군이 관련돼 있지 않다고 강력히 주장하는  광주의 5.18단체들, 광주시장 그리고 한국에서 가장 큰 방송국 3개사가 1999년부터 공개적으로 나서서 1980년 광주에서  촬영된 '5.18의 주역'으로 알려진 4명의 얼굴들과 닮은 사람들을 애타게 찾았지만 한국국민들 중에는 단 한 사람도 나타나지  않았다. 광주에서 찍힌 폭도사진 속의 391명 모두가 북한사람들이고, 이 391명의 얼굴 중, "이 얼굴이 바로 내 얼굴이다" 이렇게 주장하는 광주인이 단 한 명도 나타나지 않은 것이다.



  

         북한군 600명의 지휘자는 3성장군 리을설, 총체적 대남공작 지휘자는 김중린  

 

이  영상 분석에 의해 북한특수군 600명은 당시의 인민군 상장 리을설(1921)이 지휘한 것으로 발견되었다. 이와는 별도의 대규모  행정 엘리트, 예술인, 체육인, 소년단, 유아로 구성된 정치공작팀과 지휘부가 활동했던 사실도 영상분석 결과 발견되었다. 후자의  팀은 대남모략 공작을 위해 필요한 사람들이었고, 대한민국을 접수하기 위해 필요한 엘리트들이었다. 한국을 살인극의 나라로  모략-선전하기 위해 북한은 사진들을 촬영하여 세계에 전파했다. 광주의 전남 도청 일대에 북한사람들로만 남녀노소를 골고루 섞어서  집합시켜놓고, 마치 그들이 광주사람들인 것처럼 위장하여 촬영을 한 것이다. 이 사진들이 이 책에 집중 분석됐다. 결론적으로 북한의  5.18광주작전은 군사작전, 모략작전, 국가접수작전으로 구성되었다. 이 통합작전은 북한판 CIA국장인 김중린(1923)이 총  지휘한 것으로 분석됐다. 



 

               5.18 사진들을 촬영해 국제사회에 전파한 독일인 기자의 정체  

 

“푸른 눈의 목격자"로 알려진 위르겐 힌츠페터(Jürgen Hinzpeter)는 독일 출신으로 당시의 기자로서는 유일하게 광주의 폭도들로부터 융숭한 대접을 받으면서 취재를 했다. 독일인 힌츠페터는 일본특파원이었다. 그는 1980년 5월 20일 광주로 잠입하였다가 21일에 광주를 빠져나가 일본에 가서 취재자료를 독일에 송고했다.  

 

5 월 23일 그는 북한 특수군의 호위를 받으며 계엄군이 없는 비밀 통로를 따라 다시 광주시에 소재한 전남도청으로 직행했다.  도착하자마자 미리 준비돼있던 북한의 연출장면들을 촬영했고, 이 사진자료들은 전 세계에 ‘한국군부가 저지른 살인만행’이라는 내용으로  방송됐다. 힌츠페터가 샛길을 따라 전남도청으로 호위되는 과정을 촬영한 동영상이 있다. 그리고 그의 얼굴은 2015년 10월  10일 장대하게 치러진 북한 노동당창건 제70주년 기념행사장 앞좌석에서 다시 발견됐다. 푸른 눈의 목격자는 북한이 고용한  공작원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세계인들은 힌츠페터가 마련한 보도내용을 북한이 연출한 모략공작이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있다.  

 

              

                  위장탈북자들로 구성된 트로이목마, 그들도 광주에 왔었다  

 

저자측의 전략팀과 영상분석팀은 또 하나의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였다. 391명의 광수들 중 50명은  현재 서울에서 맹활약을 하고 있는 탈북자들이라는 사실이다. 이들은 현재 대한민국 최고 랭킹의 유명인들이 되어 있고, 사회  심층부에 뿌리를 내리고 정치적 파워를 행사하고 있다. 한 개의 사진에 탈북자들을 빼닮은 사람이 50여 명 씩이나 들어있다는 사실은  확률의 결과가 아니라 팩트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 책에서 이들 50명은 '서울광수' 또는 '위장광수'로 명명하고 있다. 

 

 

이 들이 위장간첩으로 의심되는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그들이 직접 광주에 왔으면서도 이 사실을 부정할 뿐만 아니라  5.18에 북한이 연관돼 있다는 근본 사실 자체를 부인하고 있기 때문이고, 또 다른 하나는 그들이 그들의 영상을 공개한 저자에  대해 "정신병자다", "미국대사처럼 칼침을 맞을 것이다" "납치하여 가두겠다"는 등 북한식의 험한 표현으로 협박을 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화보를 제작한 목적  

 

이  화보의 내용은 2015년 5월 5일부터 인터넷에 공개됐고, 3차례에 걸친 8쪽 분량의 호외신문과 각종 인쇄물을 통해 대한민국  곳곳에 전달됐다. 그 결과 아마도 국민의 60% 이상이 5.18의 진실에 대해 알고 있을 것으로 추측한다. 진실을 알게 된 많은  국민들은 그동안 속아 온 사실에 경악을 금치 못하면서 이에 침묵하는 정부와 언론에 대해 분노하고 있다. "한 애국단체가 공산주의로부터 국가의 안녕과 평화를 지키기 위해 이 정도의 결과를 내놓았으면 당연히 국가가 나서서 규명을 해야 하는데 도대체 정부와 언론은 어째서 이토록 무관심하고 냉담할 수 있느냐?"  


 

당 연히 정부가 나서야 할 엄중한 국가적 이슈이건만, 매우 기이하게도 오히려 현 정부는 이러한 결과가 방송과 인터넷을 통해 확산되는  것을 공권력으로 저지하고 있다.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매우 이상한 상태에 있는 것이다. 이 화보집은 언론들의 냉담한 태도와 국가의  방해 속에서 수많은 애국국민들의 격려와 성금으로 제작되었다. 그리고 세 가지 목적을 위해 무료로 배포된다. 


 

첫째, 1980 년 5월, 북한은 살인기계요 맥가이버로 특별히 훈련된 600명의 특수군과 또 다른 전문 엘리트 및 꿈나무 공작원들을 광주로 보내  대한민국을 전복한 후, 남침으로 연결시킬 목적을 가지고, 선전포고 없이 한국영토에 비밀 침투하여 국가전복 활동을 수행했고, 수많은  광주시민들을 잔인한 모습으로 살해해놓고 이를 한국군의 만행으로 뒤집어씌웠다. 북한의 이러한 침략행위 양민학살 행위를 국제사회에  고발하고자 한다.

둘째,  1980년 북한이 광주에 데려왔던 북한의 10대 소년들이 김대중 정권 시절에 주로 탈북하여 지금은 수많은 방송국에 고정출연하여  엄청난 인기를 누리고, 상당한 규모의 팬-그룹을 키우면서 통일정책을 좌지우지하는 정치세력으로 성장하여 스스로를 가장 훌륭한  애국세력이라고 자가선전하고 있다. 매우 위험한 이 트로이목마의 존재를 고발하고자 한다. 


 

셋째,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5.18역사가 온갖 허위사실들로 포장되어 국가정체성이 북한에 있는 것으로 확산 교육되고 있다. 이런 교육을 받은 학생들과 국민들은 대한민국을 증오한다. 이 위험한 현실을 고발한다. 


 

세 계에 유례가 없을 이 영상고발장에, 대한민국 국민들은 물론 모든 세계인들의 관심을 초대한다. 북한의 이 잔인무도한 악행과 세계를  속이는 허위선전 행위는, 세계평화와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보호하기 위해, UN을 포함한 세계의 모든 역량들이 일치단결하여 응징해야  할 인류 공동의 적인 것이다.

 

 

 

2016.3.26. 지만원
http://systemclub.co.kr/


--------------------------------------------------------------------------------------------------------------



아래 2곳을 들어가서 보고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http://youtu.be/OTdAmrrCes0



http://youtu.be/kPbP1IsRe6U





501f305f4f125e6c9670b3b3b4b044d3.jpg 

                 5.18 남침사건 프로필 
 

 

세기의 여적사건, 1980년 5.18 광주폭동
그것은 김일성과 김대중이 손잡고 남한을 침공한 내란이었다.
하지만 한국이라는 국가는 이를 세계에 빛나는 민주화운동이라며
해마다 기념하고,
교과서를 통해 교육하고,
적과 손을 잡고 국가에 항적한 반란자들에게
개국공신에 해당하는 연금과 일시금과
옛날 귀족이나 누릴 수 있었던 특혜들을 부여하고 있다.  

 

이들은 매년 수만의 젊은이들에
민주화교육을 한다면서 국가에 대한 적개심을 키워왔다.
나는 이런 나라 이해할 수 없다.
나는 한국의 한 애국단체를 결성하여 
36년 만
에 이 사기극의 진실을 밝혀냈지만
국가는 이를 반기기는커녕 철저히 외면하고
그것도 모자라 방송, 인터넷, 신문 호외지에 표현하는 것을
금지시키고 처벌하고 있다.
5.18소요사태에 북한이 개입했다는 사실을 공론화의 공간에
올라오지 못하도록 차단하고 있다. 
 

 

북한 김일성이 그의 적국인 남한에 1,200여명의 작전집단을 보내
광주시민을 살해 해놓고
이를 남한의 공수부대의 행위라고 뒤집어씌운 것도 기적이고,
북한정권을 위해 일생을 살아온 간첩 김대중에게 적장과 손을 잡았다며
노벨상이 주어진 것도 기적이고
한 작은 애국단체가 13년 동안 국가로부터 온갖 박해를 받으며
이 사기극을 추적하여 과학으로 증명해 낸 것도 기적이다.
5.18의 진실은 여러 개의 기적들로 이루어진 세계적인 낭중지추다.
이를 외면하는 한국이라는 국가와 언론들은 세계의 불가사의다.  

 

전 세계에 민주화운동으로 선전된 1980년 5월 광주폭동,
13년의 분석결과 북한특수군 600명과 
또 다른 600여명의 행정 및 대남공작 엘리트 집단이
주도한 사기극이었음이 36년 만에 증명되었다
남한 땅 서남쪽 광주에서 600명의 북한군을 총지휘한 사령관은
3성장군인 리을설 상장
그는 광주에서 여장으로 변장한 채 남북한 반역집단을 지휘했고,
그 후 전설의 화신이 되어 95세로 인민군원수를 달고 있다가
2015년 11월 사망했다.  

 

당시 북한의 대남공작 총 사령관인 김중린은
광주에서 1,200여명의 대남공작 집단만 지휘한 것이 아니라
남한에 파견된 수많은 고정간첩들과
김대중을 추종하는 전라도 주민들을 간접 지휘했다.
1980년 5월 18일, 내란사건 발발 이전 수개월 전부터
광주일원의 사찰, 호텔, 여관, 개인주택 등 수많은 숙박수단들이
이미 북한집단과 간첩들에 제공되었고
이들은 광주 등 전남지역 일대의 지형과 지형지물들을 부지런히
정찰하여 익숙시켰다.
이런 사실을 수많은 광주인들과 전라인들이 알고 있었다.  

 

1980년 4월 초부터 김대중은 전국 대학생들의 시위를 배후조종하였고,
북악파크호텔에서 4차례 비밀모임을 주도하여 국가전복이
성공했을 때 가동시킬 24명 내각명단을 작성하였다.
5월 16일에는 국가를 향해 최후통첩을 발표했다.
“5월 19일까지 내각이 총사퇴하고 계엄령을 철폐하라,
이에 응하지 않으면 전국봉기를 강행할 것이다” 
정당도 갖지 못한 한 정치꾼의 이런 당돌 무쌍한 행동은
어떤 힘에서 유래 했는가
김대중은 이때 이미 광주에 여적사건이 곧 발발하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김대중은 1981년 4월 1일 대법원에서
내란죄 및 반국가단체 구성죄로 사형을 언도받았다.  

 

10일 동안 진행됐던 광주폭동은
처음 4일 동안의 폭동과 나중 6일 동안의 사태수습기간으로 분해된다.
처음 4일은 북한특수군이 주도한 전광석화와 같은 도깨비 작전이었고
그 다음 2일간은 북한 원정대에 의한 대남모략용 사진찍기 작전이었고, 
나머지 4일간은 개념 없는 10대 및 20대들이
전라남도 도청 안에 모여들어 자기들끼리 갑론을박하며 싸운 기간이었다.  

 

5월 21일 오후 계엄군은 북한특수군의 작전에 밀려
구사일생으로 목숨만 부지한 채 시외곽으로 탈출했다
적을 잃은 북한군은 자기들의 정체를 숨기기 위해 복면들을 하고
그들을 염탐할 수 있는 젊은 광주인들을 잡아다 살해했다.
철학자로 위장한 황장엽이 그 대장이었다
알고 보니 황장엽은 나치의 헤스 같은 존재였고,
대남선전선동을 담당했던 인물이었다. 

 

광주의 유지들이 전남도청에 모여 수습방안을 논의했다.
수습방안이란 총기를 먼저 반납하자는 것이었다.
어른들은 총기를 반납하자 하고
20대 막노동자들은 북한 공작조의 영향을 받아 이에 저항했다.
이처럼 광주인들은 모이면 의견충돌로 날을 지샜다.
말싸움이 고질화된 이런 광주인들이
처음 4일 동안 북한군이 이룩했던
특공작전을 수행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북한특수군이 처음 4일간 수행한 특공작전,
제20사단 지휘부 차량이 5월 21일 08시에 광주톨게이트를 통과한다는
극비정보를 알아가지고 매복해 있다가
사단장 차를 포함한 지프차 14대를 탈취해가지고
이를 군용차 생산공장으로 몰고 가 위세를 자랑했다
위세에 눌린 공장간부들은 장갑차 4대와 군용트럭 374대에 열쇠를 꽂아주었다
북한군 600명은 여기에서 차량들을 몰고 전남지역 44개소에 숨어 있는 무기고를
공격해 5,408정의 총기와 다이너마이트를 불과 4시간 만에 탈취했다
그리고 다이너마이트 2,100발을 조립해놓고
광주시를 날려버리겠다 계엄군을 협박했다.
2,700명이 수용된 광주교도소를 6회 공격했다,  

 

5월 26일 아침이었다.
일부 개념 없는 10-20대들이 온건파를 몰아내고
끝까지 계엄군에 맞서 싸울 것을 선포했다.
이것이 계엄군의 진압작전을 초대했다.
당시 사형 및 무기 징역을 선고받은 폭동의 중범죄자들은
바로 이들 10대와 20대였다  

 

북한특수군 여러 명이 계엄군에 잡혔지만 간첩들의 역할로 즉시 풀려났다.
북한특수군은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의 활동사실은 그로부터 36년 동안 발견되지 못했다.
그리고 1980년 군사재판과 대법원은 5월 26일 하루 동안
광주시 중앙에 소재한 전남도청을 지배했던 10-20대 막노동꾼들만
내란 폭동의 주범들로 처벌하고 말았다
대한민국은 수적으로 엄청난 정보기관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1,200여명으로 추산되는 북한의 주동자들은 단 1명도 잡지 못하고
넝마주이 10대 및 20대의 계급들만 붙잡아 사형 및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당시의 정보분석자들, 검사, 판사들이 참으로 한심한 수준의 사람들이었다.

 

1980-90년대에는 북한과 내통하는 젊은 세대들이
‘민주화’라는 단어를 선점했다.
그리고 정말로 민주화를 갈망하던 국민들을 속여 세상 여론을 장악했다.
그들은 국민여론을 등에 업고 “독재자”(?) 전두환을 심판하기를 원했고,
전두환을 심판하기 위해서는
그가 주도했다는 5.18폭동 진압 사실을 심판해야했다. 

 

1997년의 한국 대법원은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일사부재리원칙을 무시하고
"5.18은 김대중이 배후 지휘한 폭동이었다”는
1981년의 대법원 판결을 뒤집었다.
북한에서 온 위장 특수군과 그들을 추수하여 여적죄를 저지른
광주의 부나비들을 헌법수호세력으로 판결했고,
이를 진압한 정부군을 폭도로 판결했다
그리고 대한민국 역사는 뒤집힌 판결 그대로 기록됐고
오늘도 학생들은 교과서를 배우며
대한민국에 대한 적개심을 합법적으로 키우고 있다
국가가 북한에 점령되지 않고서는 발생할 수 없는 기막힌 기현상이다.  

 

5.18은 민주화운동으로 신격화되어
난공불락의 철옹성으로 군림했다.
누구든 5.18이 민주화운동이 아니라고 말하면
법관들은 그를 끌어다 감옥에 넣었고
5.18성역을 지키는 광주의 어깨들은
그 사람을 데려다 린치하고 생활근거를 파괴했다.  

 

말로는 민주화라 하지만 사실은
지금 이순간의 한국은 요덕수용소처럼 무시무시한 공포가 지배한다
5.18에 관한한, 한국 땅 전체가 요덕수용소였다.
광주의 5.18은 대한민국 민주화의 성전이었고
‘5.18’과 ‘민주화‘라는 단어만 내세우면
국가도 논리도 정의도 부정돼 왔다.
민주화의 성지 ‘5.18’은 대한민국을 지배하는
폭군 그 자체였다.

 

  1997년 대법원 판결로부터 18년만인 2014년 10월,
작은 한 애국단체 “대한민국대청소500만야전군‘이
삼엄하게 호위되던 판도라 상자의 뚜껑을 열어 젖혔다.
열고 보니 5.18은 남북한 공산주의자들이 쌓아올린 사기극의 성전이었다. 
미해군대학원 석사 및 박사 과정에서 분석학을 전공한
수리공학자가 13년 동안 18만 쪽에 달하는 5.18재판기록을 정리하고,
북한책과 정부보고서 등을 총정리하여
3,500 페이지의 책 8권을 냈다.
그 8번째 책의 결론에는
수학적 증명의 상징인 Q.E.D. 식 결론이 내려졌다.  

 

5.18광주민주화는 김일성과 김대중의 야합한 사기극이었고
살인과 모략공작을 전문으로 하는 북한군 600명과 공작단 600명이
1979년 10월 박정희 시해사건 직후부터 축차로 침투하여 일으킨
내란폭동이었다 결론지은 것이다.
2015년 5월 5일부터 4개월 동안, 북한정보를 전공한 전문팀,
최신영상분석 기술을 구사하는 기술팀이 여기에 참여했다.  

 

1980년 광주에서 찍힌 얼굴들과
지금 평양의 김정은 권력 핵심인물들의 얼굴을 비교분석한 결과
477명의 평양얼굴들이 광주얼굴들과 일치함을 증명하였다.
분석팀은 영상분석과정을 낱낱이 공개하였고,
국제사회의 검증을 환영하면서
이 화보판 내용들을 능동적으로 널리 공개하고 있다.  

 

이 결론들은 한국사회의 인터넷 공간을 압도할 만큼 널리 확산되었고,
각 지역에서 수많은 애국국민들이 1인시위를 벌이고 나섰다.
일간지 신문 사이즈 4개면 분량으로
인터넷 신문 뉴스타운이 호외지 1호, 2호, 3호를 각 10만부씩 발간했다.
전국에 분포돼있는 애국국민들이 이를 온 국민에 전파하느라
땀과 눈물을 흘렸다.  

 

대통령, 국무총리, 국정원장, 국방장관, 청와대참모,
대법원장, 검찰총장, 국회의장, 국회의원들에
“내우외환죄 신고서” 형태로
이 증명된 사실을 범죄신고 타이틀로 신고했지만
신고된 지 16개월이 되도록 철저히 무시되고 있다.
웬 일인지 한국의 그 어느 주요 언론들도 이를 애써 외면하고 있다.
이는 정상적인 국가가 아니다.
1807년 독일의 피히테가 묘사한
독일인들의 부패상보다 더 악화돼 있다  

 

5.18역사를 바로 잡는다는 것은
첫째, 선전포고 없이
한국을 침략하여 무고한 생명을 희생시킨 북한을
전쟁범죄자로 UN에 신고하여 처벌하는 것이고
둘째, 북한군을 광주로 끌어들여
이들과 함께 국가에 항적한 광주시민들을
여적죄로 처벌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엄청난 일을 하기에는
박근혜 대통령이 너무 약하다고 국민들은 우려한다.
더욱 우려하는 것은 박근혜 대통령이 여적의 수괴로 판명된
김대중을 처벌할 수 없다는 우려다.  

 

박근혜 대통령은 2002년 북한 김정일을 찾아가
3박4일 동안 최고급의 대접을 받았고,
그와 손가락을 걸고 사실상의 적화통일인 연방제통일을 약속하였다.
그 후부터 박근혜는 김대중을 숭상함과 동시에
그의 친부 박정희를 김대중 학대자로 선언함으로써
혈육을 버리고 공산주의 이념을 선택하였다.
박근혜정부가 아무런 개념 설명 없이
대대적으로 선동하는 통일대박은
사실상 적화통일대박이라는 것이 많은 국민들의 생각이다,  

 

박근혜 정부
여적의 편에 서느냐,
아니면 여적죄를 다스리느냐,
그 자신의 운명도 국가의 운명도 이 하나의 선택에 달려 있다.
만일 박근혜 정부가 여적의 편에 선다면
이는 대한민국 운명에 빨간 SOS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하기에 우리 ‘대한민국대청소500만야전군’은
국가를 구하고 5천만 국민을 구하기 위해
미국 등 우방국들과 UN 등에
이 위급사항을 알리고 구원을 청하기에 이른 것이다.

 

 

 

2016.7.10. 지만원
http://www.systemclub.co.kr/

 
 

대한민국의 에스더.  쟌다르크. 지여사.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국민들에게 호소.   


국민여러분, 저는 오늘, 저들이 말하는 ‘5.18광주민주화운동’이 세기의 화려한 사기극이었다는, 엄청난 사실을 밝히려고 이 자리에 섰습니다. 

5.18은 민주화가 아니라 대한민국을 전복시키기 위해 북한공산당과 남한빨갱이들이 짜고 일으킨 내란목적의 폭동이었습니다. 그리고 남북한 빨갱이들이 짜고 그 폭동을 민주화운동이라고 사기극을 꾸며, 국민과 세계를 감쪽같이 속여왔습니다. 저는 오늘 이 기막히고 치 떨리는 사실을 널리 알리기 위해 이 자리에 선 것입니다.  


5.18은 광주사람들이 일으킨 것이 아니라 북한사람들이 와서 일으킨 게릴라 작전이었습니다. 김경희와 장성택을 포함한 북한의 로열패밀리가 8명씩이나 광주에 왔습니다. 북한에서 최고위층으로 출세한 1,200여 명의 인물들이 광주에 왔습니다. 지금 ‘이제 만나러갑시다’, ‘남남북녀’ ‘잘살아보세’ 등 TV 프로에서 연예인 못지않게 인기를 누리고 있는 탈북자들이 있습니다. 이들 중 50여명이 10세 전후의 나이에 꿈나무로 광주 현장에 왔습니다. 이들은 북한에서 30년 정도 말재간을 훈련받아 TV에서 그리고 사회 각 분야에서 엄청난 포섭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지금 똘똘 뭉쳐 빨갱이 후보를 띄우는데 혈안이 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남북한 공산주의자들이 꾸미고 있는 국가전복 작전인 것입니다.  

연구결과를  보니 광주 현장에서 촬영된 수백 개의 사진 속 인물들 중 무려 478명이 북한 최고위층 인물들이었습니다. 국민 여러분, 5.18  폭동에서 사망한 광주시민이 몇 명인지 아십니까? 155명입니다. 세월호 사망자 304명의 절반 숫자입니다. 그 155명 중  80%인 120여명이 계엄군에 의해서가 아니라 북한특수군에 의해 사망했다 합니다. 당시 광주의 모든 전문가들과 유지들이 직접  참여해 시체들을 검시한 결과 155명중 무려 75%인 116명이 총에 맞아 사망했고, 그 총상 사망자 116명중 다시 75%인  85명이 카빙총 등 북한군이 무기고에서 탈취한 총기들에 의해 사망했다 합니다. 계엄군이 없었던 장소들에서 수많은 광주사람들이 목이  잘리고, 얼굴이 톱으로 잘려지는 등 잔인한 방법으로 죽어 있었다 합니다. 잔인한  모습으로 살해하는 이런 방법은 1946년 대구 폭동과 1948년 제주 4.3사건 때, 공산 빨갱이들이 살해한 방법과 똑 같다  합니다. 계엄군이 없는 장소들에서 북한 공산당 수법으로 살해당한 광주인들은 계엄군이 살해한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북한군은 왜 이렇게 광주시민을 계엄군이 없는 외진 곳들에서 처참한 모습으로 살해한 것입니까? 살인행위를 공수부대에 뒤집어씌워 광주사람들로 하여금 공수부대를 증오하게 만들기 위해서였습니다. 전라도 주민 모두를 국가와 대적해 싸우도록 만들기 위해 기획한 모략작전이 바로 5.18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국민 여러분, 북한의 이 작전은 기막히게 성공했습니다. 지금도 전라도는 대한민국을 적으로 생각하고 대한민국에 대해 한과 적개심을 쌓고 있는 것입니다. 수많은 민족통일학교를 만들어 전라도 아이들, 전라도 어른들을 데려다 붉은 반역자들로 변화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전라도는 지금 대한민국이 아닙니다. 

국민 여러분, 이런  적화자금은 어디에서 나오는 줄 아십니까? 국민세금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전라도를 붉은 성역의 공산기지로 만들기 위해 ‘아문법’이  집행되고 있습니다. 전라도 전체에 김대중을 우상화하는 궁전들을 건설하기 위해 국민세금 6조원을  퍼붓고 있는 것입니다. 이를 운영하고 유지하기 위해 해마다 800억원을 전라도에 퍼줍니다. 제도적으로 전라도는 대한민국 위에 군림하고 있는 것이며, 국민은 돈을 벌어 전라도에 꼬박 꼬박 바치고 있는 것입니다. 국민 여러분, 우리는 이제까지 전라도를 상전으로 모시면서 전라도의 종으로 살아왔던 것입니다.  

광주폭동에서 죽은 광주사람들, 그 80%를 북한군이 죽인 것이 사실로 드러났는데, 어째서 광주사람들과 언론들은 떼를 지어 나서서 계엄군이 죽였다고 고집을 부리는 것입니까? 이들이  종북주의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계엄군이 광주사람을 죽였다는 주장에는 팩트가 없습니다. 하지만 그 대부분을 북한군이 사살했다는 데  대한 증거는 차고 넘칩니다. 5.18이 민주화운동이라는 것을 증명할 증거는 단 한 개도 없습니다. 그러나 5.18을 북한군이  일으켰다는 데 대한 과학적 증거는 차고 넘칩니다. 이렇게  증거를 찾아내 주었는데도 어째서 광주사람들과 언론들은 광주의 희생이 계엄군에 의해 발생했다고 해야 좋아하고, 북한군에 의해  저질러졌다고 하면 욕설을 퍼붓고, 집단폭행을 하고, 허위방송들을 해대고 있는 것인지 도저히 이해되지 않습니다.  

국민여러분, 5.18은 지금까지 화려한 민주화운동인 것으로 공식화돼 있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것이 있습니다. 그 거룩한 운동을 지휘한 영웅이 이 대한민국에는 단 한 명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전라남도 전체에서 20만 명이나 동원됐다고 하는 이 엄청난 규모의 폭동에 지휘자가 대한민국 사람들 중에 단 한 사람도 없다는 것이 도대체 말이나 되는 것입니까?  


5.18 최고 유공자들이 쓴 수기들이 있습니다. 그것을 읽으면 5.18 최상의 유공자들은 모두 5월 21일 밤까지 도망다니면서 꼭꼭 숨어있었습니다. 5월 21일 오후 5시경, 전남도청이 북한군에 의해 함락되었습니다. 그리고 북한군은 5월 21일 밤 교소소를 공격하다가 병력 대부분을 잃고 5월 24일 오전에 일제히 사라졌다 합니다. 교도소를 공격하다가 대량으로 사살당한 북한군 시체가 지난 2014년 청주유골 430구로 발견되었던 것입니다.  

북한군이  사라지자 5월 25일부터 광주의 10대 20대 아이들이 한 사람씩 전남도청으로 들어갔다 합니다. 이렇게 모인 10대 20대의  개념 없는 아이들이 군사재판에서 사형과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았다 합니다. 이 아이들이 대한민국 최상의 유공자로 올라가 있는  것입니다. 거창하게 불렸던 시민군 기동타격대, 알고 보니 그 기동타격대장이 불과 19세인 윤석류, 구두공이었다 합니다. 그  19세의 아이가 사형선고를 받았고, 빨갱이 세상이 오자 최고의 유공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광주  폭동에는 영웅이 없습니다. 5.18영화는 북한도 만들었고 남한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매우 이상한 것은 남북한 영화 모두에  5.18영웅이 단 1명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어마어마한 폭동은 있었지만, 폭동을 지휘한 영웅이 없다는 이 기막힌 사실,  국민 여러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북한이 만든 영화 “님을 위한 교향시”는 폭동기간 내내 도망 가 있었던 전남대 총학생회장  박관현을 영웅으로 각색했습니다. 그는 도망자 비겁자라며 광주인들로부터 손가락질 받았습니다. 그것이 괴로워 그는 교도소에서 단식하다  굶어 죽었습니다. 북한 영화는 그런 박관현을 ‘전두환이 임명한 광주교도소장’과 싸운 영웅이라고 묘사한 것입니다.

지나가던 소가 웃고 갈 일이 아닙니까?  

그러면  남한이 만든 5.18영화 ‘화려한 휴가’에는 누가 주인공입니까? 참으로 포복 졸도할 일입니다. 공수부대 대령 출신이  시민군사령관이라는 것입니다. 그 공수부대출신 예비역 대령은 실존했던 인물이 아니라, 궁색하게도 군 계급을 도둑질 해 만들어낸  가공의 인물입니다. 실존하는 민주화 지도자가 전혀 없는 것입니다. 북한이나 남한이나 5.18영화를 만들 때, 얼마나 괴롭고  난감했겠습니까? 이 세상에 지도자 없고, 지휘자 없는 ‘20만의 시위’가 ‘화려한 민주화운동’이 어떻게 가능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두 말할 나위 없이 지휘자 없는 시위는 그 자체로 사기극인 것입니다. 광주폭동의 지휘자는 바로 북한의 3성장군 리을설이었던 것입니다.  

국민  여러분, 이 무슨 해괴한 코미디입니까? 영웅 없는 민주화운동, 지휘자 없는 폭동이 이 세상, 광주에 말고 어디에 또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5.18은 있는데 5.18을 지휘한 사람이 이 대한민국 땅에 없다는 이 가막힌 사실, 어째서 국민은 따지지도 않고 묵묵히 벙어리처럼 살아온 것입니까?  

전두환  전 대통령이 세권짜리 회고록을 내셨습니다. 그 제1권 405-407쪽에는 5.18의 진실이 담겨 있습니다. 광주 최고급  유공자들은 5월 25일부터 도청에 콩가루처럼 슬러퍼 찍찍 끌고 들어간 10-20대들입니다. 이들의 직업은 구두닦이, 넝마주이,  껌팔이, 구두공, 석공, 철공, 목공, 식당 종업원 등 광주에서 뿔뿔이 흩어져 천대받던 하층계급들이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어쩌다  불량 선동꾼들에 말려들어 계엄군과 맞서 최후의 결전을 벌이겠다고 선포했다가 사형과 무기징역형을 받은 것입니다. 형량이 높을수록  유공 급수도 높은 것입니다. 반역을 더 많이  할수록 더 높은 유공자 급수를 받는 것이 5.18유공자 시스템인 것입니다. 국민여러분, 우리는 누가 무슨 이유로 5.18유공자가  되었는지 낱낱이 알아야 합니다. 각 유공자의 공적 내용들이 밝혀지면 이 땅의 빨갱이들은 분노한 국민 앞에 얼굴은 들지 못할 것입니다. 이것을 밝히는 것이 대한민국을 빨갱이 세도로부터 해방시키는 길입니다.  

5.18  폭동의 화려한 작전은 5월 21일의 작전이었습니다. 그런데 5월 21일의 그 화려했던 군사작전으로 유공자 된 사람, 광주에는 단  1명도 없습니다. 그러면 5월 21일에 무슨 작전이 있었는지 잠시 살펴보겠습니다. 1995년 7월 18일, 검찰이 작성한  수사기록에는 각자가 맥가이버 능력으로 훈련된  600명의 존재가 기록돼 있었고, 그 600명이 수행한 세계 최고 수준의 작전내용이 기록돼 있습니다. 이들 600명은 공격도  잘하고, 몽둥이질도 잘하고, 운전도 잘하고, 무기고도 잘 부수고, 게릴라 작전 솜씨도 뛰어나고, 모략도 잘 꾸미고, 선동도 잘  하고, 깡패들도 잘 부려먹고, 날랜 솜씨로 TNT를 폭탄으로 조립하기도 했습니다.  

이들 600명은 정예부대의 하나인 제20사단 지휘부 차량부대가 광주 톨게이트를 5월 21일 08시에 통과한다는 극비정보를 알아가지고 몽둥이 화염병 등을 소지한 채 매복해 있다가 08시가 되자 통과하는 차량부대를 기습했습니다. 사단장 지프차를 포함해 14대의 지프차를 털어가지고 군납업체인 아시아자동차 공장으로 달려갔습니다. 09시, 이 차량대열을 마주한 군납업체 사람들이 놀라서 신형 장갑차 4대와 군용트럭 374대에 열쇠를 꽂아주었습니다.  

600명은 전라남도 17개 시-군에 꼭꼭 숨겨져 있는 44개 무기고를 향해 쏜살같이 달려갔습니다. 훈련된 솜씨로 무기고 문을 부수고 12시부터 불과 4시간 만에 무려 5,403정의 총기를 털었습니다. 이 600명은 이 엄청난 총기를 광주공원과 학운동에 쌓아놓고, 총기사용 교육을 실시했다합니다. 폭도들은 다이너마이트와 뇌관 등을 탈취해 도청 지하실에 2,100개의 폭탄으로 조립해놓고 이를 폭발시켜 광주시 전체를 날려버리겠다고 협박했다합니다. 폭탄 조립,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합니다. 전라도 계엄군에는 폭탄조립-해체 기술자가 단 1명밖에 없었다 합니다.  

국민여러분께 묻고 싶습니다. 광주 바닥의 이런 최하층 계급의 부나비들이 대한민국에서 최고의 정예부대로 훈련된 공수부대 4,000여명을 광주시에서 몰살상태로 몰아넣을 수 있는 것입니까? 대한민국  최정예 부대인 공수부대를 광주시에서 몰아낼 수 있는 것입니까? 이들은 또 170여명의 간첩들이 들어 있고, 2,700여 명이  수용돼 있는 재소자들을 해방시켜 폭동세력으로 이용하기 위해 무려 여섯 차례나 광주교도소를 공격했다합니다. 국민 여러분, 이런  작전을 감히 광주의 부나비들이 펼칠 수 있는 작전입니까? 오로지 북한특수군만이 수행할 수 있는 고도의 전문적인 군사작전이라는 생각 드시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1997년 4월 17일의 대법원은 이 작전을 광주시민군이 수행한 민주화운동이었다고 판결했고, 이 폭도들을 헌법을 수호하기 위해 결집된 준-헌법기관이라고 판결했던 것입니다.  이 폭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됐어야 했는데 군이 이를 조기에 진압한 것이 내란행위라는 판결문을 썼습니다. 폭동을 진압한 계엄군이  내란군이라는 판사들의 판결문이 바로 1997년 4월 17일 붉게 물든 대법원이 쓴 판결문인 것입니다. 국가가 적의 수중에 들어가지 않고서는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엄청난 사기극이 눈을 뻔히 뜨고 있는 5천만 국민 앞에서 벌어졌던 것입니다.  

국민 여러분, 이런 판결을 했던 판사들이 과연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판사들일 수 있는 것입니까? 이 판사들은 분명 북한의 앞잡이였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광주사람들과 언론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이 빨갱이 판사들이 쓴 반역의 판결문을 흔들어 대면서 5.18은  민주화운동이라고 우기고, 전두환 전대통령을 반역자라며 증오하고 있는 것입니다. 국민 여러분, 전두환 전 대통령은 반역자가 아니라  애국자였습니다.  

국민여러분,  결론적으로 광주폭동현장에는 김대중을 따르는 소수의 반역자들과 개념 없는 어린 애들만 있었습니다. 사망자 155명 중 33명이  초중생이었다는 사실만 보아도 5.18 희생자들 대부분이 개념 없는 아이들이었다는 사실을 충분히 짐작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또  하나의 기막힌 사실이 있습니다. 광주폭동에서 탄생한 유공자가 두 가지라는 사실입니다. 국가에 대해 총질을 한 반역자도 유공자,  이를 진압하다 전사한 계엄군도 유공자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폭동을 일으킨 반역자들은 높은 보상을 받는 유공자가 되어 있고, 폭도를 진압한 공수부대 전사자들은 형편없이 낮은 수준의 유공자가 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세상에 뭐 이런 더러운 국가가 다 있는 것입니까?  

이런 반역자들이 국가고시, 임용고시 등에 10% 가산점을 받고 있습니다. 양자에게도 5% 가산점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최근 양자 장사가 짭짤하다는 소문들이 파다합니다. 1억5천만 원이 공정가격이라는  소문이 파다합니다. 여기 에 “10% 가산점 받는 금수저”라는 제목으로 쓰인 전단지가 있습니다. 이 전단지는 지금 대한민국 전  국토를 도배하고 있습니다. 빨갱이들이 다급해 졌습니다. 빨갱이 언론들이 들고 일어났습니다. 이 전단지가 “가짜”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전단지 내용에는 가짜가 없습니다. 모두가 진실입니다.  

유공자에는  독립유공자, 6.25유공자, 4.19 유공자, 베트남전유공자, 5.18유공자가 있습니다. 그런데 5.18유공자 말고는 모든  유공자 자손들이 나이가 너무 많아졌습니다. 10%, 5% 가산점을 받을 자격은 있지만 모두 늙어서 혜택을 받을 사람이 전혀 없는  것입니다. 오로지 5.18유공자들만이 국가고사, 임용고시, 좋은 일자리 싹쓸이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5.18유공자들은 지금의 화폐단위로 수십억 원의 일시금을 받았고, 매월 최고 430만원의 연금을 받고, 거의 모든 분야에서 공짜를 누리고 있습니다. 이런 유공자는 대한민국에서 오로지 5.18유공자들뿐입니다.  

SBS는 ‘그것이 알고 싶다’는 프로를 만들어 전두환 대통령의 회고록과 여기 이 ‘미니화보 5.18영상고발’ 내용이 가짜라고 방송했습니다. 하지만 그 방송은 전라도 사람들만의 사투리 굿판이었습니다. 오히려 그 방송을 시청한 국민들은 5.18을 북한의의 전설 리을설 원수가 내려와 여장을 하고 지휘한 침략 적전이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을 것입니다.



                          
 

 

 
국가유공자와   5.18유공자'
 
 
 
 
 
군인과 경찰들을 쏘아 죽이고
 
 
 
그 죄값으로 국가유공자가 되는 나라가 지구상에 있을까?
 
 
 
신나로 경찰들을 불태워 죽여도
 
 
 
살인자가 되기보다는 민주화유공자가 되는 나라는
 
 
 
지구상에 단 하나밖에 없다.
 
 
 
대한민국에서 '민주'라는 단어는 불가사의한 단어다.
 
어떤 용어에 민주라는 말이 붙게 되면
 
거기에는 더 이상 이성과 상식이 사라지게 된다.
  
 
 
    

5.18유공자법이라는 희한한 법이 있다.
 
살인과 방화, 약탈과 폭동의 주범들을 국가유공자로 만들어준 법이다.
 
가에 공을 세운 사람들에게는 국가유공자법으로 국가가 혜택을 부여한다.
 
 
 
그런데 따로 5.18유공자법을 만들었다. 이것은 당연하게도 국가를 향한 폭동 5.18의 주범들이 국가유공자가 되기에는 상식적으로 불합격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편법으로 탄생한 것이 5.18유공자법(5․18민주유공자예우에 관한 법률)이었다.
  
   
5.18의 진상을 첨삭하여 5.18단체에서 스스로 유네스코에 등록시켰던 것처럼, 5.18유공자법도 좌익정권에서 스스로 만들어 그들의 지지 세력을 위한 또 하나의 퍼주기법이었다.
 
5.18유공자에 대한 혜택은 국가유공자나 6.25참전유공자를 훨씬 능가한다.
 
이법을 만든 자들은 국가수호를 위해 적군과 싸우던 총보다는 무기고를 털어 군경들을 죽이던 총을 더욱 가치 있는 총으로 규정한 것이다.
 


 
 
   
국가유공자나 6.25참전용사들은 매월 수당을 받는다.
 
그러나 5.18유공자들은 일거에 돈벼락을 맞았다. 
 
 
 
 
 
5.18보상금을 받고 북한으로 월북한 5.18유공자 윤기권이 받은 보상금이 2억 이었다.
 
그러나 김대중 정권 시절의 한 국가유공자는 30년 동안 받은 연금이 3천만 원도 되지 않는다며 5.18 보상금 퍼주기에 분통을 터뜨렸다.
   
5.18유공자가 5,700여 명이나 된다고 한다.
 
 
 
5.18 당시 사법 처리된 인원은 486명, 그 열배나 넘는 숫자가 유공자라고 하니, 이 정도면 개나 소나 5.18유공자가 되었다는 소리다.
 
6.25에 참전해서 총을 맞았어도 부상이 심하지 않으면 국가유공자가 될 수 없고, 일제에 구금을 당해도 기간이 1년을 넘지 못하면 독립유공자가 될 수 없다.
 
 
   
그러나 5.18유공자들은 5.18 당시 경찰서에 5분만 연행 되었어도 무조건 유공자로 인정했다.
 
단지 연행되었다는 이유만으로 국가유공자를 만드는 이유가 광주 스타일이었다.
 
연행된 후에는 반드시 구타와 폭행을 당한 것으로 간주 했다나,
 
 대한민국 파출소 5분을 일제의 감옥 1년보다 더 가치 있는 이유라니, 거룩하신 동네의 투사님들인 모양이다.
   
북한의 남침에 맞서 국가를 수호한 3년의 세월을, 무기고를 털어 난장판을 벌인 광주의 10일보다 가치가 없다니,
  
5.18유공자법을 만든 자들은 개새끼들틀림없다.
 
 
 
폭도1
 
 
 
6.25참전유공자들이 꿈도 꾸지 못하는 혜택을 5.18유공자들에게는
 
퍼주었다.
 
5.18유공자들은 수업료와 병원비, TV수신료가 면제되고, 자녀
 
3명까지는 취업에서 특별고용의 혜택을 누릴 수 있다.
   
그 외에도 가스비, 전기세, 통신요금, 항공료가 할인되고, 최대 3천만원까지 대출 특혜가 있고, 특히 자녀들은 취업에서 최대 10%의 가산점을 받을 수 있고, 대학입학 시험에서도 5.18유공자의 자녀들은
 
가산점을 받는다.
 
 
 
5.18유공자 자녀들의 입학이나 취업에 대한 가산점은
 
청년층의 취업이 좁은문이라는 현 상황에서 불공평하고 불평등한 악법이다.
   
 
 
5.18유공자법은 국가유공자나 6.25참전유공자에 비해서도 불평등하고 비민주적 악법이기도 하지만, 유공자 자격이 남발되었다는 것이
 
 명백하게 밝혀진 이상 박근혜 정권은
 
5.18유공자법을 대대적으로 손질하고, 기존의 5.18유공자들을 정밀조사하여 '나이롱유공자'들을 색출하여 엄단하여야 할 것이다.
 
 
   
5.18유공자에 대한 미화와 퍼주기는 대한민국에 대한 애국심보다는 증오심을 갖게 했고, 5.18폭동범들을 유공자로 호칭하는 것은 준법보다는 불법을 가치있는 것으로 만드는 부작용을 가져왔다.
 
 
 

 
 
5.18의 이념 색깔이 반정부, 반국가적이라는 점에서 5.18폭동 미화는 국가의 미래를 어둡게 하고 국격을 추락시키고 있다.
 
대한민국은 더 이상 5.18에 대한 미화를 멈춰야 한다.
 
 
   
계엄군이 김대중을 연행하는 것에 대항하다 계엄군에게 얻어맞었다는 이유로 김대중아들 김홍일의 운전기사가 5.18유공자로 인정해 달라는 소송을 걸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초등학교 1학년 여학생을 성추행한 40대 후반의 5.18유공자가 미성년 성추행 상습범이었지만 5.18 때문에 정신분열을 앓고 있다는 이유로 불구속 되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5.18만화경의 한 장면들이다.
   
 
 
5.18보상금은 도대체 얼마나 퍼준 것일까. 2011년에 6차까지 보상이 진행 중이었고, 8.721명의 5.18 희생자와 유족이 보상을 신청해 5.330명이 5.18 보상을 받았고,
 
총 보상액은 2천 356억 3천 5백만원에 달한다고 한다.
 
 
 
6.25참전유공자들은 몇 만원의 노령연금을 받으며 빈곤에 시달리는데, 5.18유공자에는 돈벼락이 내리치고 있다.
 
더 이상 눈을 뜨고 볼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김대중이 5.18폭도들에게 돈벼락을 내렸다면 박근혜는 6.25참전유공자들에게 정당한 대우를 해줘야 한다.
 
그리고 혼자 잘먹고 잘살겠다는 염치없는 5.18유공자법에 대해서도 철퇴를 내려야 한다.
 
   
 
 
 
국가유공자라는 것은 국가에 대해 공을 세운 사람에게만 부여하는 영광스러운 이름이 되어야 한다.
  
 
추천 : 114
 
 


광주 무장반란 주도한 외지인의 정체 실마리가 담긴

뉴욕타임즈 사진


 

1980년 5월 21일 오전 8시에 낫으로 무장하고 광주 톨게이트 인근에 매복하고 있다가 20사단 인솔대를 습격하여

지프차 14대를 탈취한 농민들은 누구였는가? 사진이 없기 때문에 그들이 누군지 알아내는 것이 영영 불가능한가? 


그러나 몇 시간 후에 다른 곳에서 그들의 모습이 찍힌 사진이 분명 있었을 것이다. 

오전 8시에 낫 들고 지프차 14대를 탈취한 괴한들이 9시에는 600 명을 인솔하고 아세아자동차공장을 습격하여

군용트럭 등 수백 대의 차량을 탈취하였으며, 


10시에는 그 차량들을 몰고 다니며 전라도 44개 무기고에서 무기를 탈취하고,

정오 무렵에는 전남도청 및 전남대 인근에서 무장폭동을 주도하였다.

그 중 다행히도 정오 무렵 상황을 보여주는 사진들이 있었다.

그 사진의 두 가지 단서는 지프차 탈취범들이 그 날 타고 다니던 20사 지프차 및 낫으로 20사 인솔대 장병들 몸을 찍고 강탈하여 쓰고 다니는 철모 화이버일 것이다.


 

무장봉기 주동자들 외에는 아무도 그 날 정오 무렵 금남로에서 엄청난 무장반란이 일어날 상황을 예상하지 못했다.

주동자들은 각 무기고에서 탈취한 총과 실탄이 도착할 때까지 시간을 벌기 위하여

오전 9시 반부터 전옥주 일행을 도청으로 들여보내며 장형태 도지사와 협상 제스처를 썼는데, 국내 기자들은 모두 이 속임수에 속아 도청 안에 들어가 장 도지사 동정만 살피고 있었다.

그러나 관광호텔에 있던 몇 명의 외신기자들은 금남로에서 무장반란이 시작되는 순간을 카메라로 포착할 수 있었다.  

 

 

1980 년 5월 21일 도대체 광주에서는 어떤 일이 있었는가? 아래 사진은 5월 21일 오전 11시경 노동청 쪽의 풍경이다. 전  날 밤 시위대가 버스로 순경 4명을 압사시킨 곳에서는 또 다른 차량 잔해들이 널려 있었다.

20일 오후 시위대는 광주에서 눈에 띄는 대로 차량 징발을 하여 차량 돌격이라는 도시 게릴라 방법에 사용하였다.

  즉, 도청 주변 군경 저지선을 돌파하기 위해 차에 시동을 걸어 전경과 군인들 쪽으로 전속력으로 달리게 하는 것이 그  방법이었다. 군경 편에서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하게 한 도시 게릴라전 현장에는 마치 쓰나미가 할퀴고 간 듯이 박살 난 차량  잔해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다.

광주폭동 현장

사납게 달려드는 차에 깔리면 죽는데 누가 막아낼 수 있었겠는가?

더구나 순경 4명이 깔려죽고 여러 명이 중상을 당한 후에 겁이 나서 누가 막을 수 있었겠는가?

21일 새벽이 오기 전에 군경 저지선은 모두 시위대에 의해 돌파되었다.

군경저지선 돌파의 목적은 그 다음 수순인 군사작전이었다.

군용차량을 탄 무장폭도들의 군사작전이 시작되는 순간이 광주사태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인데,

이 순간을 포착한 국내기자가 없어서 한국인은 이 순간을 보지 못했었다.

5.18특별법이 제정되고, 5.18 재판이 열렸을 만큼 지난 34년간 한국 사람들이 요란스럽게

5.18에 대하여 떠들어댔지만 정작 이 중요한 순간을 포착한 사진이 없었던 것이다.

 

놀랍게도 그 순간을 포착한 사진이 바로 그 다음 날짜 뉴욕타임즈지에 실렸었으나,

그 사진 한 장만으로는 외국인들이 그 무장폭도들의 정체를 전혀 알 수 없었다. 

놀랍게도 그 순간을 포착한 사진이 바로 그 다음 날짜 뉴욕타임즈지에 실렸었으나,

그 사진 한 장만으로는 외국인들이 그 무장폭도들의 정체를 전혀 알 수 없었다.

지프차 탄 복면

무장폭도들의 정체는 바로 서너 시간 전에 20사단 인솔대를 습격하여 지프차 14대를 탈취한 괴한들이었다.

뉴욕타임즈 광주사태 사진

<역사로서의 5.18> 2권 193쪽부터 204쪽에는 농민 50 여명이 오전 8시에 광주 톨게이트 인근에서 낫 들고

20사단 인솔대를 습격하여 지프차 14대를 탈취한 사실이 상술되어 있는바, 위의 귀중한 사진에 담겨있는 소중한 단서를 해독하려면 먼저 이 사건을 알아야 한다.


지프차에 탄 폭도들이 쓰고 있는 20사단 철모 화이버가 이 폭도들이 어디서 그 화이버를 구했으며,

네 시간 동안 어디서 무엇을 하였는 지에 대한 결정적인 단서이기 때문이다.


 

아래 사진에서 21사단 인솔대로부터 지프차 14대를 탈취한 농민들이 11시경에 어디론가로 이동하고 있다.

지프차에 탑승해 서있거나 앉아있는 네 명의 폭도의 상의는 같은 무늬 계열의 상의,

똑같은 공장에서 제조된 상의이다.

만약 이들이 진짜 농민들이었다면 민간인 개성에 따라 복장이 다양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군복처럼 복장이 통일되어 있을 때 이것은 군복처럼 일종의 단체복이다


옷의 상태를 보아도 동시에 지급된 단체복이요,

머리에 백색 수건으로 띠를 띤 것도 통일되어 있다.


(5월 21일 오전에 머리에 백색 띠를 두르고 있었던 괴한들은 20일 광주로 침투한 목포의 김대중 계열의 깡패조직이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힌츠페터와 김영택이 목격한 목포 별동대가 광주에서 무기 분배 를 클릭하면 자세히 확인할 수 있음.) 


도대체 남한 어느 동네 농민 복장이 저렇게 통일되어 있었다는 것인지 참으로 이상하지 아니한가?

탈취된 20사단 지프차

동아일보 광주주재 사진기자가 찍은 아래 사진에서 20사로부터 탈취한 지프차를 탄 농민들이 이동하고 있다.

20사단 9번 지프차에는 낫으로 9번 지프차 운전병에게 상처를 입히고 빼앗은 철모 화이버를 쓴 폭도가 서 있다.

운전석에 앉아 운전하는 농사꾼 역시 철모 화이버를 쓰고 있다.

도대체 낫 든 농민으로 위장한 폭도들에게 태극기가 무엇을 의미하였기에 지프차 위에 태극기를 세워 두었을까?

이 경우 폭도들의 태극기는 정체 위장용이었으며, 태극기를 꽂은 지프차가 폭도들의 지휘 차량이기도 하였다


동아일보 기자가 찍은 폭도들의 지프차

그러면 국군 철모 화이버를 쓰고 서 있는 폭도의 면상을 사진 크기를 줄이지 않고 관찰해 보자.

어느샌간 지프차를 탈취한 농사꾼들의 복장이 바뀌어 있다.

이 폭도의 경우에도 멀리서 일반의 눈에는 공수부대 군복과 식별이 안되는 얼룩무늬 제목을 입고 있다.

목에는 언제고 복면을 할 수 있는 수건을 두르고 있다.

철모 화이버 쓴 폭도

. 바로 이 폭도가 1980년 5월 22일 뉴욕타임즈 대문기사 사진 맨 앞의 폭도이다.


정체 위장용 및 폭도들의 지휘차량 표시로서 태극기가 걸려 있는 똑같은 지프차를 타고 있는 동일인물이다.

그때는 폭도가 태극기로 정체를 위장할 수 있었다.

그러나 폭도의 철모 화이버가 결정적인 단서가 되어 광주사태 34 주년에 폭도의 정체가 드러났다.

지프차를 탄 이 폭도 일행이 바로 오전 8시에 낫 들고 21사단 인솔대를 습격하여 지프차 14대를 탈취한 농사꾼들이었다.

농사꾼은커녕 일반 시민들도 달리는 지프차 본넷 위에 유유히 앉아있지 못할 것이다.

보통 사람에게는 달리는 지프차 본넷 위에서 당황하여 중심을 잡지 못하면 옆으로 굴러 떨어져

생명을 잃을 수 있는 모험인 것이다. 

뉴욕타임즈 5월 22일 기사 사진

농민처럼 낫을 든 괴한들이 20사로부터 탈취한 열 네 대의 지프차들 중 위 사진은 도청 함락에 동원된 지프차들이다.

같은 시간에 몇 대의 지프차는 전남대를 함락하기 위해 전남대 인근에 동원되었다.

그 쪽에 있던 아래 지프차가 금남로 쪽에 있던 위 지프차와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범퍼에 역시 20사단에서 갓 탈취한 지프차임을 보여주는 번호 20C가 있고, 역시 정체 위장용 태극기가 걸려 있으며, 

멀리서 보면 군복처럼 보이는 제복을 입은 무장폭도가 달리는 지프차 본넷 위에 능숙하게 앉은 채로 M-16소총을 들고 있다.

이 사진은 시민군이 M-16 으로 무장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강력한 증거물이요, 시민군 중 M-16으로 무장하고 달리는 지프차 본넷 위에서도 능숙하게  M-16을 파지하고 있는 이 복면폭도가 바로 그 날 낮 12시경 전남대 인근 평화시장에서

임산부 최미애씨를 사살한 시민군이다. 21일 민간인 총기 희생자 발생 원인에 대하여 여기서 드러나는 사실은

그 날 오전 8시경 20사로부터 지프차를 탈취한 그 무장세력이 바로 최미애씨 가해자였다는 사실이다.



M16으로 무장한 시민군

5월 21일 광주 시가지에서 M-16을 난사하며 다니던 이 무장폭도의 사진은 아래 사진에서 보이듯 6월 2일자 뉴스위크지에 실렸다. "한국에서 반란이 일어나다"(Rebellion in Korea) 라는 제목의 표지 기사 하단의 복면 무장폭도는 위 사진의 복면 무장폭도와 동일 인물이다. 일간지 뉴욕타임즈 사진처럼  주간지 뉴스위크 표지 사진도 지프차 본넷에 앉아있는 복면 무장폭도들이 뒤를 따르는 무장단체 지휘관들이었음 보여준다. 

80년 6월 2일 뉴스위크

1980 년 5월 21일 정오 무렵 광주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이 두 사진을 한국인들은 전혀 보지  못하고 외신에만 실린 채 오랜 세월 파묻혀 있었다. 5월 22일자 뉴욕타임즈 지에 실린 사진을 일본인 사진기자가 찍은  것으로서 먼저 5월 22일자 마이니치 신문에 실렸다. "폭도들이 광주를 완전 장악했다"(Rioters Take Full  Control Of Kwangju)라는 제목의 이 기사의 존재가 한국인에게 처음 알려지게 된 것은 5월 23일 힌츠페터가  두번째로 광주 방문을 하던 날 일본에서 가져와 시민들에게 보여주고 벽보에 게시된 때부터였다. 광주 시내 벽보에 이  신문이 나붙은 때와 거의 동시에 미국 시간으로 5월 22일 같은 사진이 뉴욕타임즈 지에 게제되었다.

 

 1980년 5월 22일자 마이니치 신문

1980년 5월 22일자 뉴욕타임즈


우리가 지금껏 살폈듯이 5월 21일 오전 농민 복장으로 낫 들고

20사단 인솔대를 습격하여 지프차 14대를 탈취한

무장단체가 정오경부터 금남로 일대와 전남대 인근에서

무장봉기를 총지휘한 세력이었다. 


이 무장폭도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사진이 마이니치 신문과 뉴욕타임즈와 뉴스위크에 박혀 있었으며,

광주사태 34주년 앞 두고 사진 속의 인물들의 실마리가 잡힌 것은 폭도들의 낫으로 내려 찍으며

20사단 인솔대 운전병들에게서 빼앗은 철모 화이버를 쓰고 있는 모습이

1980년 5월 22일 뉴욕타임즈 표지 기사에 박혀 있었기에 가능할 수 있었다.


/a>




눈을 감는다고 세상이 어두워 지는것이 아니듯이


진실은 느리지만 서서히 드러나게 되어 있다!!!


생각 할수록 열받네!!!


518폭동!!!!



태극기  꽃힌 차량이  폭도 지휘부 차량 이라는게


더  열  받는다!~!!


  ----------------------------------------------------------------------------------------------------------------------

계엄군과 대치하고있는 북괴의 무장세력들


5.18 광주 사태 때, 계엄군을3.jpg31.jpg32.jpgimg0089_518photoclub.jpg

깔아뭉갠 사람들은 누구인가? 

 
   

 

 

문 제의 첫 발포가 있었던 시간은 1980년 5월 21일이었다. 당시 시민군의 공격으로부터 전남도청을 경비하는 임무를 맡은 계엄군의  수는 200명도 안 되었고, 이들에게는 공포탄조차 지급되지 않았었다. 그러나 시민군의 수는 천 배가 넘는 약 20만 명이었고,  실탄이 장비된 총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이들이 순수한 민주화 운동가라면, 죄수 3000명이 있는 광주교도소를 21일~23일까지 습격한 이유는 무엇인가? 

 

 

이 들이 장갑차로 계엄군을 압사시킴에 따라 공포에 휩싸인 군인들은 공포탄을 발포했다. 그 목적은 광주시에서 퇴로(빠져나갈 길)를 열기  위해서였다. 전민련 중앙위원으로써 광주 사태를 계획하고 주도했던 윤상원의 동생 윤기권은 광주 사태 당시에 경찰 15명을 인질로  잡은 것으로 유명하다. 1992년 3월에 그가 보상금 2억 원을 들고 월북한 것을 보면, 광주 사태는 순수한 민주화 운동만으로  보기 어렵다(독재정권에 항거한 시민들이 있었더라도). 

 

 

이제 국민들은 좀 더 심층적 및 객관적으로 광주 사태의 진실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5.18 광주 사태 당사자들이 다 죽고 나면, 광주 사태에 대해 보다 면밀한 연구와 분석이 이뤄질 것이다.  

 

 

1084975378560_jeep_gun.jpg

시민군 중 다수가 군복을 입고 지프차를 타고 있었기에 광주 시민들은 군인과 시민군을 구분하기 어려웠다.

 

 

street_cleaning.jpg

1980년 5월 27일 광주시를 평정한 계엄군이 제일 먼저 한 일은 청소였다. 계엄군의 삽질 실력 ㅅㅌㅊ?

 

 

 

rice_giving.jpg

5월 27일에 광주시를 깨끗하게 청소한 계엄군이 생필품 부족에 시달리던 광주시민들에게 쌀을 배급하고 있다.

 

 

 

 

특전사 11여단소속 통신병 경기만씨의 증언―.

『우 리 등뒤에 있던 APC에 누가 화염병을 던졌는지 불에 타기 시작했다. 우리 대열은 불을 끄려고 뒤로 물러났다. 이때를 틈타  시민측에서 장갑차와 버스를 앞세우고 돌진해 왔다. 우리는 도청 쪽으로 달아났다. 실탄이 없었기에 달아나는 수밖에 없었다.  달아나면서 보니까 시민측의 장갑차 한대가 우리 공수부대 대열에 돌진, 두명이 깔리는 것이었다. 나중에 보니 11여단의 권용문  상병은 머리가 장갑 차 바퀴에 눌려 짓이겨진 채 즉사했고 다른 사병은 가볍게 다쳐 곧 일어나 달아났다』 공수부대 대열의 뒷쪽에  있었던 전투경찰 南東成상경은 이렇게 기억했다. 『장갑차와 함께 버스가 돌진해 왔는 데 한 장교가 권총을 빼들더니 운전사를 향해  사격을 했다. 운전사가 맞았는지 버스는 분수대 근방에서 멈추었다. 공수부대원들이 이 버스를 향해서 사격을 했다. 한 장교는  M16을 들고 나오더니 엎드려 쏴 자세로 사격을 하는 것이었다』

이때 동료가 치어죽는 장면을 목격 한 공수11여단의  한 하사관은 『눈에 아무 것도 안 보이고, 누구든지 죽여야 속이 시원할 것 같은 기분, 무슨 일이라도 저지를 수 있겠다는 기분이  들더라』 고 실토했다. 한 공수부대원도 『동료가 죽고 다치는 것을 보니 내 마음 속에 잠재해 있던 야수성이 되살아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고 했다. 이 차량돌진은 공수부대와 시민측의 총격전이 시작된 계기였다. 공수부대는 이때부터 경계용 실탄을 개인에게  지급하기 시작했고 도청주변의 옥상에 군인들을 올려보내 아래에 있는 시위군중을 견제하게 하였다. 이때도 조준사격이라기보다는 공중을  향해 쏘는 위협용 사격이 주류였다고 한다.

////////////////////////////

위의 것 말고도 몇가지 더 추가하겠습니다.

////////////////////////////

# 5월 21일 상황중 일부 11공수 61대대장 증언중 일부

그  때 61대대와 62대대가 시위대 쪽으로 제일 전면에 나가 있었습니다. 저희 대대에는 장 갑차가 배속되지 않아 전면에 병력들만  시위대와 대치하고 있었습니다. 앞에 시위대의 장갑차와 군용트럭에 탄 시위대가 보였는데 시위대는 얼굴을 수건으로 가리고 흉기를 들고  있었습니다.

  그 때보니 총을 가진 시위대가 군데 군데 눈에 띄기 시작했습니다. 저희 병력의 뒤에는 62대대  뒤에 장갑차가 1대 있었고, 그 장갑차 뒤에 63대대 1개 지역대 병력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시위대가 몰고 나온 장갑차는 광주  군대 무기고에서 탈취한 신형장갑차로서 바퀴가 궤도로 되어 있지 않고 고무타이어로 된 것이었습니다.

13시 경에 이르러 시위대가 장갑차와 차량의 시동을 걸고 "부릉부릉" 거리는 등 살벌한 분위기로 바뀌었습니다. 저는 대대병력들에게 방독면을 착용시켰습니다.

  그 런 뒤 갑자기 장갑차의 빵빵 소리와 함께 시위대로부터 화염병 1개가 날아와 62대대 장갑차 있는 곳에 떨어졌습니다. 우리 장갑차가  화염병을 보고 뒤로 빠졌으며 그와 동시에 시위대 전열에 서 있던 시위대 장갑차와 5톤 트럭이 계엄군 쪽을 향해 돌진해  들어왔습니다.

  우리는 그 차량을 막을 재간이 없어 도청을 향해 병력들이 뛰기 시작했습니다. 만약 시위대 차량이  빠른 속도로 저희 병력을 향해 들어왔더라면 많은 병력이 깔려 죽었을 것입니다. 다행히 장갑차 1대만 빠른 속력으로 도망가는  계엄군을 향해 돌진하여 계엄군 1명이 깔려 죽었습니다. 그 장갑차는 분수대를 돌아 충장로 쪽으로 갔습니다. 시위대 장갑차가 돌진해  들어옴과 동시에 시위대 쪽에서 총소리가 연발로 났습니다.

- 시위대 장갑차가 돌진하고 나간 뒤 저의 대대  정보장교인 장두혁 대위로부터 62대대 이창호 대위가 얼굴에 약간 스칠 정도로 총알을 맞아 비틀비틀 하길래 자기가 부축해 주었다는  말을 나중에 들었습니다. 그 뒤 도망을 가 분수대에 도착한 후 전부 피곤한 상태였기 때문에 4개 대대병력이 서로 뒤섞인 상태에서  휴식을 취했습니다. 시위대도 더 이상 분수대 쪽으로 돌진하지 않았습니다.

//////////

이외에도 사상한 군인들에 대한 내용을 몇가지 더 첨부 하겠습니다.

//////////

20일의 사망자 육군상사 정관철은 제3여단 16대대 소속으로서 20일밤
10시10분쯤 전남대학교 앞에서 시위대가 몰고 돌진해온 차량에 깔려
죽었다.

공수11여단 이상수 병장등 21일과 22일의 사망자 6명은 3개 공수여단
병력이 광주시내를 철수할 때 무장 시위대의 발포에 걸려 죽은 이들이다.
공수 11여단의 차정환 소령 등 24일과 25일의 사망자 12명은 11공수
여단과 광주보병학교 교도대, 제31사단과 광주기갑학교 하사관 생도들
사이에서 벌어졌던 두 차례의 오인사격에 의한 피살자들이다.



전남대 입구를 지키던. 3여단 16대대가 출동했다. 차량 시위대가 진중으로 돌진하여

사병 한 명이 깔려 죽었다.



 

이름 : 김도희 [KDHDOLF]

공수부대 23기 중사 5공수입니다. 오늘 티비 보고서

악플  예상합니다.

저는 92년에  공수부대 입대하였습니다..
광주사태를 따진다면 12년 후죠.

공수부대에 입대하여 4년 6개월동안 근무하였습니다.

드라마보니까.... 여자가 선두에 나와서 뭐, 하더군요.....

드라마 내내 따라다니면서 두드려 패고....

물론 군의 개입은 잘못된겁니다,,허나

제 선배님이 "준위"였습니다. 광주사태때는 하사관이셨죠.
그분말로는 최초 민간인이 관공서의 총기를 탈취하여,
공수부대투입시에 공수부대는 탄약을 공급받지않않습니다.....
민간인들의 사격에  줄곧 피하는상황이었고, 최초 사망자는 
민간인이아니라 공수부대였습니다.불붙은 차량을 군에 진입시켜
군이 먼저 사망하여습니다...
나중에 실탄이 지급되었습니다.

제 최초의 선임하사님은 광주의 토박이셨고, 현재공수부대의 3분의 1은 전라도 분이시라고 이해하시면 되겠습니다......

공수부대 사람들....지역감정없습니다....
정부가 그렇게 만들고 이넘의 드라마가 그렇게 만들고
있습니다......

지금 15년이 지났습니다..
지금도 후배들 계속 자원입대하고있습니다.
그사람들이 무슨 죄 가있습니까??

전경들..전투경찰. 다 대학생입니다.
선 후배 들끼리 싸우는 겁니다.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조금더 생각을 하시기바랍니다...

 

5.18 때 직접 보셨으면 저한테 증언하시죠.

011-244-5216 김도희 입니다.

공수특전단 23기 88차입니다.중사로 전역하였고,

96년 강릉에 잠수함 넘어왔을때는 강원도에 예비역들 출석률
10퍼센트 였을때 저희들 작전에 참가하였습니다.
제대 한달 남았을 때였죠.
9시 뉴스 같이 나오시죠.

 


 

 


제 목
  광주 5.18 특별법 초안 기안을 후회하면서

글쓴이
  참 숯
작성일
  2005-04-03

조회수
  16.673
추천수



과거사 진상규명 이란 미명 아래 5.18 광주 내란 음모를 과거사 진실을 위해 규명 한다는 것은 이 특별법 법안을 왜 무엇 때문에 만들어야 했는지를 알아야 한다. 


필자는 당시 김영삼 정부 시절 광주 특별법 초안 작성자였다. 이 사태의 발단이 어떻게 되었건 유혈 충돌이 있었건 간에 김영삼 정권은 민주화 운동 동지 관계였던 김대중을 두고만 볼 수 없었던 상황이었다.

5.18 광주사태 당시 필자 역시 광주에 있었다.
광주사태가 5월 15일의 서울역 집회 연속이란 주장은 맞는 말이다. 


당시 5월 15일 서울역 집회가 없었다면 광주사태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고 이 집회를 악용한 세력인 김대중 일파가 아니었다면 그리고 그 날 이후 유언비어만 아니었더라도 광주 내란 음모는 발생하지 않았다.

서울 역 시위대들이 경찰을 죽여가면서 까지 광주로 내려간 시각은 16일이었고 이때는 이미 전남도민 400만명을 학살한다는 유언비어가 광주 전역을 휩쓸 때였다.
과연 누가 무엇때문에 이렇게 유언비어를 조작하여 광주사태를 일으켰는지 알아야 한다.

당시 전두환 쿠데타라는 이 유언비어는 서울대를 비롯한 각 대학에 하달되었고 여기에 더하여 전남도민 400만 학살지령 유언비어는 사실인양 광주 충장로 일대에서 그리고 각 지역으로 퍼져났다.


이에 앞서 5월 16일 이화여대에서 긴급 체포된바 있는 김대중 세력들은 자신들이 살아 남기 위해 광주로 피신하여 거사를 일으켜야 한다는데 의견을 모으고 이들은 5.18광주사태 거사 계획을 위하여 이른바 민주항쟁, 혹은 민주화운동이라 부르자며 김대중으로 부터 거사 자금을 지원 받기에 이른다.

정치적으로 살아 남기 위한 김대중 일당들은 지역 기반인 전라도에서 경상도 사람들을 모함하거나 유언비어를 날조하기란 쉬운 일이었다. 당시 계엄군의 과잉 진압은 거짓말이다.
그런데 왜 광주사태가 유혈 충돌을 피할 수 없었느냐 하면 치밀하게 계산된 폭도들이 도청을 점령하려 하였으며, 계엄군은 결사적으로 도청을 지키려 하는데서 발단되었다.

총검과 수류탄과 장갑차로 무장한 폭도들이 또한 칼과 낫으로 무장한 시민군까지 합친 수십만명이고작 200명 미만의 군인들이 지키는 도청으로 쳐들어가며 장갑차로 군인들을 깔아죽여야 했던 것은 어떤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무엇 때문에 그 폭도들은 광주 방송국과 세무소를 불태우고
교도소를 습격하면서 시민군을 만들어야 했던 것일까?

필자는 5월 18일 부터 26일까지 광주에 있었다.
군인들이 도청과 공공시설을 보호하고 지켜야 했던 상황에서 시민군의 기관총 공격에 밀린 계엄군들이 처음으로 살아 남기 위한 수단 방법으로 공포탄을 쏜 것이 계엄군의 발포였다고 억지 주장을 하는 이른바 광주 내란 음모는 김대중의 지시에 의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필자가 5월 21일 밤 시민군의 광주 해방구 설치를 목격하면서 22일 광주를 벗어날 수 있었던 것도 폭도들에 의해 무법천지가 된 상황이었고 더 이상 광주는 군인들이 아니라면 억제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5월 22일 민중봉기를 준비하고 있었던 김대중 세력들이 강행한 것은 파출소를 파괴하고 무기를 탈취하는 일이었으며 그들은 결국 도청을 경비하는 군인들을 공격하고 도청을 정복하여 궐기대회를 열었으며, 전국적으로 민중봉기를 확대시키는 작전을 시도했다.


이 작전에 휘말린 계엄군들과 그리고 폭도들에 의하여 살해된 사람들이 다름 아닌 광주 시민들이었다.

광주사태는 그 배후에 분명 북한 세력이 있었다는 사실도 맞는 말이었다. 


그 한 예가 시민군이 도청을 점령하자마자 정체 불명의 사람들이 도청 지하창고에 순식간에 광주를 불바다로 만들 수 있는 다이너마이트와 TNT를 설치했고 만일 간첩이나 폭도가 폭파시키기 직전 이 사실을 전달 받은 계엄군이 5월 26일 폭약 뇌관을 분리시키지 않았더라면 광주시는 언제 사라져버릴지 모르는 운명이었다.


광주시민이 혹은 민주화운동가가 전남도청에 다이너마이트 폭발 장치를 설치하였는가.
아니다. 광주 사태 배후에 북한 세력이 분명하게 있었다.

광주에서 시민군이 조직되고 나서 또 다른 시민군으로 위장한 조직들이 나주에 침투하여 예비군 무기고에서 2000 여정의 총기류와 중화기 수류탄등을 강탈해 갔다.
아직 광주 사태 희생자가 없는 때 였는데 도대체 이들이 무엇을 위하여


수천 정의 총기류가 필요하였단 말인가?
필자는 그 시민군이 광주 시민이 아니라고 단정할 수 있다.
광주 도청 경비 작전에 동원되고 없는 틈을 타서 무기고를 강탈한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당시 나주 채석장에는 다이너마이트가 보관되어있었고 이러한 사실은 현지 주민들도 모르던 비밀이었는데 폭도들이 알고 있었을 뿐 아니라,
이 폭약이 도청에 도착하기 무섭게 폭파 장치를 했다는 사실은 또 무엇을 뜻하는가

필자가 알기로는 당시 광주 시민 대다수가 무기 반납을 원했는데 폭도들은 총기로 위협하며 무기 반납을 막았다.

필자가 이러한 전후 사정을 알면서 까지 왜 무엇때문에 광주 5.18 특벼럽 초안을 만들어야 했는가 하면 그것은 다름이 아니었다.


폭도들인 강경파의 갖은 위협과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면서
강경파와 싸우며 광주사태 확산을 저지하였던 용감한 시민들과 광주시를 지키기 위해 희생되어야 했던 진정한 용기의 광주 시민들을 위함이었다.


진정한 용기로 강경파와 싸웠던 온건파 시민들의 희생을 그나마 기념하기 위함이었는데 이것이 오히려 잘못 전이되어 폭도들을 위한 정치적 산물이 되고 말았다.

광주 시민들 중 그 누구도 총을 든 폭도들이 지배하는 무법천지가 되기를 원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그 무엇이 그토록 대담한 행동을 하게 하였을까?
유언비어 가운데 서남부지역 에서 나도는 내용중 하나가 광주 민중봉기가 성공하면 김대중 씨를 추종하던 사람들은 시장 군수를 할수있다는 유언비어도 있었고 이 유언비어를 뒷받침하는 것이 김대중의 예비내각 명단이 기록된 문서였다.
당시 광주에는 혁명을 공연하는 극단이 있었고 혁명 분위기에 들뜬 사람들도 있었다.

광주 사람들은 철저하게 김대중 조직세력들에게 이용만 당한 셈이었다.


그것은 필자가 어렵게 5.18 특별법 초안을 만들었지만
이 법안을 기안한 필자에 대한 문의가 단 한번도 없었고
특히 광주 지역 사람들과 그리고 5.18 기념 사업회 조차도 이러한 일련의 작업을 쉬쉬하고 있는데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폭도는 폭도이다. 언제인가 역사는 이들 폭도들에 대한
응분의 역사적 심판이 분명하게 가해질 일이다.
과거사가 아닌 현재 진행형을 가지고 과거사 운운 하고 있는
부정한 노무현의 무지와 무식을 개탄한다.

=============================================================================================


5.18 광주사태 진실 알리기 전국 알리기 발대식 동영상  

 

  
 
 
    
 

5.18 광주사태 진실 알리기 전국 알리기 발대식 동영상 (1편)

 

http://www.youtube.com/watch?feature=player_embedded&v=U_n3p5ykgak

 

 

 

5.18 광주사태 진실 알리기 전국 알리기 발대식 동영상 (2편)

 

http://www.youtube.com/watch?v=xxMCDChwwPE&feature=player_embedded

 

 

 

5.18 광주사태 진실 알리기 전국 알리기 발대식 동영상 (3편)

 

http://www.youtube.com/watch?v=p_ijwhZTZLk&feature=player_embedded

 

 

 

5.18 광주사태 진실 알리기 전국 알리기 발대식 동영상 (4편)

 

http://www.youtube.com/watch?feature=player_embedded&v=msh5To3jzzc

 

-------------------------------------------------



 

 

 

 

 

이 사진은 북한이 5.18을 선전하는 책에 나온 잔혹한 사진들이다.

 

북한은 이짓을 남한의 공수부대원들이 했다고 한다.

 

무리를 이루고 전선을 형성하고,

 

부대단위 또는 소대 분대 단위로 단체로 행동하는 공수부대들은 단독 행동을 할수없다.

 

지시명령 통제 작전에 따라 단체로 움직인다.

 

햇다면 공수부대원들이 단체로 상부의 명령을 받아 작전에 의해서 이런 짓을해야 가능하다.

 

 

 

광주는 답해라. 너희가 진짜 이런 잔혹산 짓을 한국의 공수부대원들이 햇다고 믿느냐???

 

공수부대에는 광주사람들 전라도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그리고 이런 일, 다시말하면, 잔혹한 살육질은 북한이 하고, 그 누명은 한국이 뒤집어 쓰는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할까?

 

 

 

그것은 한국 언론, 국회, 청와대, 군대=똥별 이것들이, 북한의 간첩무리라는, 너무나큰 증거이다.

 

 

 

6.25남침 당시에도, 한국의 주요 권력가들은 북한간첩들이 많았다. 그래서 남침이 가능했던 것이다.

 

 

 

 

 

지금도 북한 김정은이는 남한의 간첩들을 믿고 내려올수 있다. 너희 광주사람들이 나서서, 언론 국회 청와대 군대=똥별들 간첩들을 때려잡지 않으면 광주사태보다 저 처참한 대 살육전이 수백만면 수천만명의 대 살육전이 일어날 것이다.

 

 

 

일어날수박애 없다. 이것이 남과 북한의 현실이다. 광주는 우향우하고 유공자패 다 반납하고 유공자 돈 이제 그만 받고

 

모든 사실들을 다 뒤짚어라.

 


 

하지만, 인간이이게 인간에게 말로 한다. 말로하면 인간을 귀로 듣고 마음으로 생각하고, 머리로 판단한다. 그리고는 행동하는 것이다.

 

광주사람들은 인간들이다. 그래서 사람말을 듣는다. 그리고 행동한다.

 

하지만 높은것들, 잘난것들은, 벌을받고 고생을 해봐야 그재서야 안다.

 

 

 

광주는 우향우 해라. 모든 민주화 유공자들은 모든 직과 특혜와 지원금과 기타 거짓된 잘못된 국가로부터 받은 것은 하나도 빠짐없이 다 토해내라!!!

 

 

 

 

 

그리고는 한국을 진짜로 뒤집어서 북한의 재물로 바칠 진짜 역적들을, 광화문에 목을 매달자. 그래야 한국이 산다.

 

그렇지 않으면 한국을 얼마안가, 수백만 수천만이 길바닥에서 되저 석어가는 그런 가장 저주받은 땅이 된다.

 

 

 

지만원 박사의 진심을 광주사람들은, 관광해라.

 

옛날 임금의 얼굴을 보러 구경을 가는 것을, 관광이라 햇다. 임금의 얼굴에서는 빛이 난다고 알앗기 때문이다.

 

종교적 의미의 아주 고대때부터 내려오는, 임금과 왕에 대한, 백성들의 착한마음으로부터의 존경과 사랑이 만들어낸 구전인 것같다.

 

얼굴에 빛이나는 존재. 구전이긴 해도 우화는 아니다.

 

그런 존재로서 지만원 박사의 연구 결과물을 광주는 먹고 마시고 옷입고 거주하고 누리면서 즐거워 해라.

 

 

 

광주가 우향우 하지 않는다면, 남북간의 대결에서 남한은 끝내 패배자가 된다.

 

광주가 반공 간첩척살의 특공 부대가 되어, 선봉에서 서울과 남한의 빨갱이들 척살을 해야 한다.

 

 


  [출처] 이걸 누가 한 짓이냐? 광주는 답해라. 북한 특수부대가 한 것이라고 답해라!!!
-------------------------------------------------------------------------------------------




폭동8.jpg폭동7.jpg광주시민으로 보기엔 포스가;;;;;;폭동6.jpg 중화기 기관총에 탄띄 두른건 사격 일보직전폭동5.jpg폭동4.jpg폭동3.jpg 광주 민간인 통제 능숙하다.....폭동2.jpg폭동1.jpg통수.jpg 이새끼 고단수였네~~~^^고생했다!!!김대중.jpg 북한 AN-2기 13대로 강하 남파 북한 특작부대 320명...

일부는 서울에서 왔다면서 광주시민들 선동시작!!!!!

나머지 전투요원들 경찰서와 파출소 군부대 습격!!!!!

경찰과 군복으로 환복하고 민간인 사살 및 임산부에게 몹쓸짓......

선동질 극에 달함.........

광주는 북한 특작부대 작전에 제대로 먹힘.........

무지하고 가난했던 그들은 북한특작부대 작전에.........

그냥 홀랑 넘어가서 인간방패가 되어 버린다.........

하지만 지금도 대한민국에 스며든 그잔당들의 선동질로.........

전라도는 지금도 지옥이다.........

알지도 못하는 양반과상놈 남인서인을 따지며 신라 고구려 백제를 운운하며 너희들의 조상과 부모는

조정과 정부가 너희들을 가난하게만들고 핏박했다며 선동했다.......

여기서 양반과 상놈은 조선시대 양반은 5%도 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대한민국 국민전부 100% 조상은 양반이다.....

아픈곳을 보듬어주는척하며 접근한 남파간첩들에게서 벗어나지 못하는 전라도.........

그 무지했던 사람들의 밥상머리교육과 이상한 논리로 대한민국 국적을 가지고 있으면서...........

거짓북한을 추종하는 세력이 많은 전라도........

왜!!!!게릴라들이 전라도를 택했냐!!!!

섬으로 많이 이루어져 연락과 소통이 잘 되지않았다.....

북에서 남으로 가장 침투하기 수월했던곳도 남동쪽이다......중국해로......

김일성은 마르크스의 사상을 추종했지만 그 종주국과 중국 사회주의국가들은 몰락했다......


여기서 필자는 북한인민이 싫은게 아니다!!!!!!!!

현재 북한인민은 대한민국의 1960대 삶을 살고있다.......

총칼과 독재에 억압된건 북한이다.......

막강한 독재체제에 억압받는건 북한인민이다.......

그 진실을 전라도와 종북세력들은 알면서도 모른척하는게 제일 큰 잘못이다!!!!!!!!

이제 진짜 좀 솔직해지자!!!!!!!!!!!  



----------------------------------------------------------------------------------------


af6cf3d6c6e04dd31db93fb3e430e72e.jpg 

 1. 8톤 트럭분의 TNT 폭탄으로 조립해놓고 협박한 사실(전교사의 배승일 문관이 5월 25~26일, 2일 동안 해체) 

2. 5월 21일 이전에는 북한군의 번개작전, 계엄군이 철수한 22일부터는 광주시민에 의한 수습 및 무기반납. 번개부대 사라지고 눈에 뜨이지 않았다. 

3. 교도소 공격 6회(주로 5월 21일 밤~22일 새벽 사이) 

4. 양아치급 광주시민이 장갑차 4대를 동시에 운전해가고, 군용트럭 370여 대를 동시에 몰고 나간다는 것은 불가능 

5. 군법회의에서 최고의 형을 받은 사람들은 모두 20대 콩가루 소외계층, 5월 18~21일의 번개작전 수행한 자들은 단 1명도 잡지 못해 

6. 총상 사망자 116명 중 70~75%가 무기고 총에 의해 사망 

7. 북한과의 연계성 : 황석영 책, 천주교정의평화위원회 북한과 분명한 연동('찢어진 깃폭', 10개의 시체 사진) 

8. 사진들의 영상들은 콩가루 소외계층이나 일반 시민들의 것으로 볼 수 없다. 

9. 계엄군의 파괴된 잔해 청소 40일간 

10. 신원불상의 시체 12구 

11. 황장엽, 김덕홍의 증언(월간조선 2013년 6월호, TV조선 출연(2013. 3. 15) 

12. 가명 김명국, 특수군 신분으로 광주작전 참전, TV에 공개(2013. 4. 22) 

13. '화려한 사기극의 실체 5⋅18'. 거의 모든 내용, 조사 결과와 일치 

14. 북한의 대남공작 역사책 2권, 현장에 있지 않으면 쓸 수 없는 자세한 내용들 

15. 번개작전 참여자 600명은 팔자를 고칠 수 있는 수억ᐨ수십억에 해당하는 보상금 및 연금 수령자에 해당하지만 신청한 사람 없다. 

16. 번개작전에 참가한 사람, 잡힌 사람 없고 처벌받은 사람 없다. 

17. '5⋅18 기념재단' 홈페이지 조작 "22일 15:08분 서울대학생 500여 명 환영대회 거행" 표현 사라졌다. 

18. 북한에서 최고인 것에 5⋅18 호칭 하사 

19. 해마다 북한 전역에서 여러 날 동안 5⋅18 행사 성대히 거행(당ᐨ정 최고자 참석) 

20. 북한의 5⋅18 영화 '님을 위한 교향시' 김일성이 직접 황석영, 윤이상 불러 엄청난 상금 주고 제작(윤이상에는 저택과 15층짜리 윤이상 음악당, 황석영에는 25만 달러) 

21. 유언비어 북한이 작성(천주교 정의평화 단체) ᐨ '찢어진 깃폭' ᐨ 

22. 광주인 지휘자 전무 

23. 상황 기록은 북한이 더 자세하고 전술도 기재돼 있다. 현장에 없었다면, 지휘를 안 했다면 그런 기록 불가 

24. 북한이 발행한 두 개의 5⋅18관련 책, "5⋅18은 대남공작 역사의 최고봉"이라 표현 

25. 1990년 19세의 윤기권, 2억원 보상 받고 1991년 3월 월북하여 강연자로 활동(광주일보, 월간말)


출처:http://m.newstown.co.kr/news/articleView.html?idxno=198267


-------------------------------------------------------------------------------------------


제2의'광수''광수''제3의'광수'가 평양의 5.18 '광주인민봉기' 기념식장에서 가장 비중있는 
제일 앞 로얄석에 앉아있는 이유를 사진자료분석을 통해 추론해 보았다.

운동이라고 하면 3.1 운동,6월 항쟁,부마항쟁 같은 경우는 비폭력으로 일어났다는 것이 중요하겠죠.

 

그에비해 5.18 광주 사태는 무기고를 습격하고,도청에 다이나마이트를 설치하고 교도소를 습격하는 등.

 

실상은 무장반란테러입니다.

--------------------------------------------------------------

 북한군 남파 사실 밝혀져

 http://www.newstown.co.kr/news/articleView.html?idxno=131477



  

---------------------------------------------------------------------------------------------


5.18 당시 특전사 군수참모 (당시 대령)이상한 장군 증언 

https://www.youtube.com/watch?v=cDoOX83Ixs8


----------------------------------------------------------------------------------------------

d0065056_4bf76c50c0c05.jpg 5-21yeonggang.jpg 518young.jpg 2014091153099229.jpg images.jpg 

세명광수 에다가 이런 빼도 박도 못하는 증거들을...



 http://youtu.be/ngc1Yzb9bk0
   (무기 탈취 참여자 증언}


http://youtu.be/3KRmKnBApmQ

  (북한특수군투입)


http://youtu.be/kPbP1IsRe6U

  (북한군 투입)

       
 

 
 
 

 
 

오씨팔은 사기극임을 설명한다

 

http://www.ilbe.com/7539311357

 


 


 

서술적설명은 아래...

 


 

나. 현실묘사에는 설명력이 있어야 하며, 자연과학이론에는 설명력과 예측력이 있어야 한다.

 


 

에 있다.

 


 


 


 

가. 오씨팔무장반란에 개입한 김씨조선에서 온 북괴특수군민들의 공작수행의 풍경들

 


 

 

 


 


 

나. 현실묘사에는 설명력이 있어야 하며, 자연과학이론에는 설명력과 예측력이 있어야 한다.

 


 


 

그때 그장소에서 너가 라면 먹는거로 사진에는 찍혔다<-시각적자료

 


 


 

너가 서술적자료로 기술하든 말로 하는 증언을 하든 기록으로 씨부리기로...

 


 


 

그때 그장소에서 컴퓨터좌판 두드렸다고 하였다<-서술적자료

 


 

라고 주장하면...

 


 


 

위 시각적자료와 서술적자료를 각각 분석하고 서로 교차하여 분석한다.

 


 

즉...

 

이 경우에 있어서는...

 

시각적자료의 설명력과 서술적자료의 설명력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분석하여 규명한다.

 


 


 


 

6하원칙에서 우선 5원칙을 살펴본다.

 

1. 시각적자료인 사진에서 보이는 도형들의 모습에서 대상과 배경을 구별하여 분석하면...

 


 

누가: 너가

 

언제: 그때

 

어디서: 그장소에서

 

무엇을: 라면을 먹는다

 

어떻게: 훌훌 불면서

 


 


 

그런데...

 


 

2. 서술적자료인 기록에서 보이는 서술의 모습에서 대상과 배경을 구별하여 분석하면...

 


 

누가: 너가

 

언제: 그때

 

어디서: 그장소에서

 

무엇을: 컴퓨터좌판을 두드린다

 

어떻게: 열나게 어깨쭉지가 깨지듯이

 


 


 

3.시각적자료와 서술적자료를 서로 교차 비교하여 분석한다.

 

6하원칙중 5하원칙의 내용이 동일하지 않다.

 

즉, 시각적자료의 설명력과 서술적자료의 설명력이 동일하지 않다.

 


 


 


 

4. 결론을 도출한다.

 

4.1 너가 거짓말을 한 것이거나,

 

4.2 치매증에 걸려 거짓을 말한 것이다...

 


 


 

다음으로...

 

5. 인간의 행동의 유발원인을 규명하기 위한 의도해석을 한다

 


 

이것이...

 

왜...

 

6하원칙의 마지막으로 남아있는 의도해석용 원칙이다.

  


 

의도해석을 하면...

 

6.1 거짓말은 책임회피, 정신적 물질적 이익보기, 제3자 보호 등등...

 

6.2 치매증인가 아니면 치매증을 가장한 거짓말을 한 것인가? 즉 이중거짓말을 한 것인가?

 

...

 


 


 

이것이 과학이다.

 

이것이 사실에서 진실을 규명하는 방법이다

 

이것이 현실묘사이든 이론구성에서든 반드시 확보하여야 할 대응관계이다

 


 


 

대응관계에 대한 소략하나 핵심적 설명은 아래 링크를 보라

 


 

5.18 무장반란의 증거

 

http://www.ilbe.com/7302245673

 


 


 


 

오씨팔무장반란에는...

 

시각적자료의 설명력과 서술적자료의 설명력이 서로 같지 않다.

 


 

주도적, 적극적, 능동적, 역동적... 역활을 한 인간 인간집단을 묘사한 사진의 설명력이...

 

오씨팔사기단체 구라단체가 서술하는 서술적자료의 설명력과 서로 같지 않다.

 


 


 

기타 지적능력을 향상시키는 링크는...

 


 

판단의 요령(실전원칙)

 

http://www.ilbe.com/7533263794

 


 

오씨팔 이해를 위한 사실진실체계의 지성을 키우는 방법

 

http://www.ilbe.com/7072312607

 

 

역사에서 인간집단을 융성발전시키는 정의를 수호하는 사내의 길이란...

 

http://www.ilbe.com/7299155837

 


 

정신의식적 추상성과 물리현상적 구체성을 거리를 예로서 알아본다.

 

http://www.ilbe.com/7464619511

 

 

 
구체적으로 대응관계와 6하원칙... 지적능력을 적용한 링크는...
 

 

1 2 3 광수 이상 나가지 마라고? 이 본글에 논박해 볼래...

 

http://www.ilbe.com/7515553446

 

 

 

 

결론:

 


 

오씨팔은 사기극이다.

 


 


 


 


 

제주4.3은 무장반란이다.

 


 

오씨팔은 무장반란이다.

 

오씨팔은 사변이다.

 

오씨팔은 여적사변이다.

 


 

http://www.systemclub.co.kr

 


 

http://www.study21.org/518/

 

https://www.facebook.com/media/set/?set=a.226095900736993.67888.100000097536812&l=af972f6020

 

http://www.leejucheon.com/

 


 

http://mausk.tistory.com/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려라.

 
 

        
 
추천 : 49
 
 
      
                

                            

 

 
 
  만토스  16-02-18 06:57
 
    
 
    
  수학선생님, 수고하셨습니다. 사진 자료를 잘 정리하셨군요. 충성!
         

  
         

                            

 

 
 
  수학선생  16-02-18 07:06
 
    
 
    
  선배회원님...  
 
좋은 글 많이 적어 올려주세요...  
정신건강이 허락하는 한요...  
 
부지런히 져 나르겠습니다...  
 
아름다운 이 강산을 지키는 우리...  
충성입니다...
         

  
         

                            

 

 
 
  만토스  16-02-18 07:28
 
    
 
    
  제가 보기에는 사진 속 배경과 인물들이 주로 "공작조"이군요. 전투조 사진도 정리가 되면 좋겠습니다.
         

  
         

                            

 

 
 
  노숙자담요  16-02-18 11:44
 
    
 
    
  애국자 '수학선생'님의 불의에 맞선 정의감과 애국심을 높이 평가하며 경의를 표합니다. 
또한 수학선생님의 분석의 수학적 정밀함과 예리함 그리고 논리적 공격력은 적을 무찌르는데  
대단히 큰 힘이 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가족들과 제자학생들이 수학선생님의 애국심을  
크게 자랑스러워하게 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빨갱이소탕  16-02-18 14:56
 
    
 
    
  매우 정리가 잘된 광주518사기극의 실체적 모습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여러 곳에 퍼날라야 겠습니다
                          
 

----------------------------------------------------------------------------------------------------------------------------------

청주 유골 사진

북한식 매장 방법 (일반 주민들 경우, 아래 1번 사진 참조요망)

북한식  매장 방법은 그냥 달랑 판자에 시신을 눕히고 흰 광목으로 시신을 덮습니다. 그리고 묻습니다. 관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관은 운반시에 동네에서 공동으로 사용합니다. 관 하나만 가지고 동네 주민들이 돌려가며 사용합니다 (물자와 나무 부족으로 추정).

좀 잘 사는 집은 삼베를 사용하는데, 통상적으로 시신을 관에 넣어서 매장하지 않고 그냥 나무 판에 눕힌 채로 흰 광목을 덮어 그대로 매장합니다. 일반 주민이나 대량의 단체 희생자도 관없이 나무판에 눕히고 매장합니다.

바로 청주 유골이 관을 사용하지 않은 나무판에 눕혀서 매장했습니다. 다른 것은 흰 광목 대신에 비닐로 감싼 것입니다.
( 2번 사진 은 5.18 당시 비닐로 감싼 사진)




북한 장례 풍습

초상이 나면 가장의 소속 직장에서 사람들이 나와 염습에서부터 입관·운구·매장에 이르기까지 일체의 장례를 책임지고 맡아 치러준다. 과거에는 시·군 인민위원회 산하 도시경영사업소에 신청하면 관이 나왔지만  일반주민들의 경우 나무판자에 시신을 뉘고 헝겊으로 싸는 것으로 관을 대신한다. 수의는 대개 광목을 쓴다. 일부 고위층이나 돈 있는 사람들은 전통적으로 써 온 삼베로 수의를 입히기도 한다.

상주는 굴건제복을 하지 않고 평상복에 검은 완장을 두르며, 여자는 머리에 흰 리본을 단다.

빈소는 집안에서 비교적 깨끗한 곳을 골라 설치한다. 김일성·김정일 초상화가 걸려 있지 않은 벽 쪽을 향해 흰 천으로 두르고 상을 차린 다음 영정사진 하나 거는 것이 전부이다. 향촉이나 지방 등은 사라진 지 오래라고 한다.

......................................................

( 사진 1)  북한 신천 박물관 단체 매장 방식 사진




---------------------

(사진 2)    5.18 당시 비닐에 넣은 사진









https://www.youtube.com/watch?v=75p8T_XHbJo

                      

댓글목록

inf247661님의 댓글

inf247661 작성일

'진실'은 감출 수 없! 송곳이나 밤톨은 주머니에 넣아고 밖으로 대구민 삐쳐 나온다. ,,. 광주사태 때 송장들 얘기가 전남 돛ㅓㅇ에서의! ,,. http://v.media.daum.net/v/20180516162216708?rcmd=rn //// 좋은 현상임! ,,/. //////////////

위든리버님의 댓글

위든리버 작성일

문재앙은 518 반역폭도 광주묘역으로
이 나라의 실체요 주체 인 일반시민은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으로 간다

내일 모래 각자 도시락 지참하시고 만나요

자유게시판 목록

Total 21,846건 1 페이지
자유게시판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추천
공지 Paypal 후원 계좌, 해외 송금 방법 관리자 2016-12-30 20881 95
공지 [공지]가장최근에 업데이트된 자료가 수정본입니다(참고사… 댓글(7) 노숙자담요 2016-04-04 37254 270
공지 글쓰기 회원 가입 및 주의사항 (휴대폰 본인인증) 댓글(9) 관리자 2015-09-21 44865 246
21843 미국의 소리 "김정은, 마지막 생사의 기로에 서다" 새글 현우 2018-05-26 9 0
21842 성주 사드기지 공사 잘 되고 있답니다 댓글(1) 새글 김철수 2018-05-26 30 5
21841 서울대 트루스포럼 시국대자보 전문! 새글 현우 2018-05-26 19 1
21840 시간이 다됐다 The time near to end 댓글(1) 새글 김철수 2018-05-26 77 13
21839 어느 보수단체장이라는 분의 이해할 수 없는 말씀을 접하… 새글 바람이불어도 2018-05-26 109 23
21838 망국의 전조증(前兆症)들 댓글(4) 새글 청원 2018-05-26 139 27
21837 회담파기와 예방전쟁의 시작 댓글(1) 새글 진리true 2018-05-25 408 43
21836 2018년 한국,2개의 5.18 행사 댓글(2) 새글 대한민국수호 2018-05-25 347 52
21835 미국의 소리! "백악관앞에서의 성난 한인들" 댓글(1) 새글 현우 2018-05-25 525 80
21834 이 사진 한 장에서 답 나옴!! 댓글(6) 새글 mozilla 2018-05-25 749 101
21833 전두환이 내란 수괴라면, 김대중과 김일성은 내란을 진압… 댓글(1) 새글 청원 2018-05-25 322 57
21832 [5.18역사전쟁] 주남마을전투를 학살로 조작 댓글(1) 새글 김제갈윤 2018-05-25 295 48
21831 트럼프 대통령의 1타 3피 고스톱 전법! 댓글(7) 새글 현우 2018-05-25 519 69
21830 미국의 소리! 北정은 南재인 동반 몰락이 다가오고 있다 댓글(2) 새글 현우 2018-05-25 651 83
21829 77일 만에 북한심판의 통보 댓글(2) 새글 진리true 2018-05-25 509 57
21828 [충격] 북미정상회담취소를 남한정부와 상의했냐는 질문에… 댓글(5) 새글 Samuel 2018-05-25 644 53
21827 한거레 서정갑 기사 “애국 앵벌이 행위를 중단하라” 새글 김제갈윤 2018-05-25 246 31
21826 서정갑, 과연 우파가 맞는가? 댓글(1) 새글 김제갈윤 2018-05-25 201 41
21825 트럼프가 김정은에게 보낸 북미정상회담 취소 서신 번역 … 댓글(1) 새글 Samuel 2018-05-25 319 33
21824 [미북정상회담 전격 결렬] 트럼프 백악관 기자회견 실황… 댓글(1) 새글 Samuel 2018-05-25 247 29
21823 중국 제외한 환태평양 해군 합동훈련. 댓글(1) 용바우 2018-05-25 437 92
21822 이게 바로 부끄럼을 모른다는 조선에 미친개 댓글(2) 봄맞이 2018-05-25 561 41
21821 문재인 폐기처단,화급을 다툰다 댓글(2) 우짜노 2018-05-25 564 84
21820 트럼프의 선전포고 댓글(1) 랜디존슨 2018-05-25 596 96
21819 한국에는 대통령이란 사람 없나. 댓글(4) 봄맞이 2018-05-25 423 44
21818 가짜 대통령 문재인씨 목슴은 살려줄테니 내려오시오! 댓글(1) 비전원 2018-05-25 589 80
21817 트럼프 북폭 임박했다. 힘내자 댓글(1) 야기분조타 2018-05-25 583 51
게시물 검색

개인정보취급방침 서비스이용약관

지만원의 시스템클럽 | 대표자 : 지만원 | Tel : 02-595-2563 | Fax : 02-595-2594
E-mail : j-m-y8282@hanmail.net / jmw327@gmail.com
Copyright © 지만원의 시스템클럽. All rights reserved.  [ 관리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