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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천용씨는 5/18 규명전쟁에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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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진리true 작성일18-07-13 02:16 조회443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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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갑제 대표는 귀신 앞에 머리 풀지 말라!

(“북한특수부대의 광주개입은 믿을 수 없다”는 조갑제씨의 주장에 대한 자유북한군인연합의 공개답변)

조갑제씨는 대한민국보수언론계에서 간판논객의 한사람으로 사리와 판단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만큼 어느 정도 세간에 알려져 있고, 부분적인 우파진영의 인정을 받아온 사람이다. 

서두에 다시 한 번 분명히 말해둘 것은 조갑제씨의 인지도나 영향력이 어느 범위까지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와는 아무상관이 없고, 흥미 또한 없다는 것을 미리 밝히는 바이다.

그러나 국가의 안보와 국민의 운명이 걸린 문제를 일개언론인의 신분을 내세워서

추측과 타산을 가지고 함부로 장난하면 나중에 그에 따른 책임을 반드시 피해가지 못한다는 것을

사전에 분명하게 지적해주고 싶다.
 
2008년 11월 8일에 본내용과 유사한 내용을 공개했다가 뭇매를 맞은바 있는 조갑제씨가

정신을 못 차리고 이번에 또다시, 그것도 5.18광주사태 30주기가 며칠 남지 않은 시기에

국민들의 지탄을 받을 엉터리 같은 주장을 재 반복했다는 것은

일반적인 상식을 가지고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일이다.
 
더구나 북한의 공격으로 천안함의 침몰과 함께 46명 국군장병들이 희생되는 엄청난 사건을 당한 시기이고

친북좌파세력들은 이 비극적인 사건을 북한의 소행이 아니라고 유언비어를 만들고

국론분열을 꾀하고 있는 복잡한 시점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5.18광주사태의 북한군침투에 대한 조갑제씨의 주장에 별도의 다른 의도가 깔려있음을 볼 수 있다.
 
조갑제씨의 발언에 대한 답변 

1. 조갑제씨는

“광주사태을 취재했던 수백 명의 기자 중 그런 의심을 한 사람을 만난 적이 없으며

대대규모의 북한군이 등장할 무대가 없었다.

2년 전부터 한 탈북자가 광주사태에 북한특수부대가 개입했다는 주장을 하고 있고,

일부 애국단체에서 이에 동조하고 있다”라고 서두를 떼고 있다.
 
답 : 우리가 알건대 기자는 어떤 임의의 문제를 개인적인 판단이나 육감에 따라 상상력을 동원해서

언론 화하는 것이 본연의 직업이 아니라 사건과 내용에 대한 취재를 통해서 본질을 숙지하고

사실에 기초해서 기사내용을 만드는 것이 업무이고 직업이라고 알고 있다.

조갑제씨는 2년 전부터 탈북자 한사람이 등장해서 광주사태에 북한군특수부대가 개입했다고

주장한다고 했는데

 2006년 12월 20일 서울정동세실레스토랑에서 최초로 진행된 자유북한군인연합의 기자회견은

광주사태에 북한군이 침투했음을 고백하는 첫 기자회견이었으며

이때에 토론자는 8명으로 되어 있었지만,

 3명이 정부의 압력으로 나오지 못하고, 5명이 나와서 양심선언하였다.
 
탈북자 한사람이 2년 전부터 말을 들고 다닌다는 소리는 무슨 잠꼬대같은 소린지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다.

조갑제씨는 그때 기자회견장소에 집적 나와서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그런 엉터리같은 소리를 하는가?

우리가 알건대 당신은 기자회견장소에 나오지 않았던 사람이다.
 
또한 대대규모가 내려왔었다고 우리가 확정적으로 주장한 것처럼 말을 하고 있는데

우리는 대대규모가 내려왔었다고 공개적으로 말한 적도 없으며,

이와 비슷한 말을 했다면,

광주에 내려왔던 증인들이 자기가 소속되어 활동한 조 외에 다른 조들이 활동한 내용을 말하는 과정에서

"일개대대 역량을 되지 않겠느냐?" 의 발언을 했고,

사실이 이렇다는 우리의 양심선언이 몇 백 명이라는 숫자로 불어나서 그것이 언론에 회자되면서,

사실인 것처럼 사회전반에 확산되었던 것이다.
 
북한특수부대 인원규모가 백 명 정도인지, 아니면 그 이상 어느 숫자인지는,

우리는 물론 내려왔던 당사자들도 모르게 되어 있고 또 모르고 있다는 것은 과학이다.

그러나 살았던 죽었던 몇 명이 내려왔었던 간에, 광주사건과 관련된 공화국영웅 62명확실하다.
 
2. 함경남도에 위치해 있던 특수부대에서 정치장교로 복무한 최중현(대위)의 양심선언대해서,

개연성이나 증거가 없고, 사실이 아니라고 단정함이 타당할 것이라고 일축하면서,

몇 가지 실례로 그 이유를 들고 있다.
 
질문 1) 수십만 명의 광주시민 목격자와 현장을 취재하던 수 백 명의 기자,

그 외 외국기자 다수도 북한군을 못 봤고,

또한 현장에 있던 조갑제씨의 눈에도 북한특수부대요원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 증거라고 하는데?
 
답 : 조갑제씨가 언론인이라는 특정인의 신분을 떠나서 상식이 있는 사람인지 되묻고 싶은 부분이다.

전시상황에서의 특수전과 비 전시 상황에서,

전복 및 교란을 목적으로 하는 특수전은 사실상 완전히 다른 양상과 흐름으로 전개된다.

작전 중에 희생된 아군의 시체까지도 적에게 내어주지 않는 것이 비 전시 상황에서의 특수전의 규칙이며

규정이라는 것을 조갑제씨가 알고 있는지 묻고 싶다.
 
조갑제씨는 기자들의 판단능력과 식별감각을 전문수사관 이상으로 착각하는 것 같은데,

가령 수사관이상의 투시력이 있다 해도 기자들의 눈이 가려낼 정도의 특수전이면,

말 바른대로 그건 벌써 특수전이 아니다.

눈에 뜨이는 간첩이 없었다는 소위‘물증의 부재'가 북한군특수부대의 광주사태 개입을 일축할 수 있는

결정적 증거라고 생각하는 조갑제씨의 논리가 참으로 불쌍하고 없어 보일 정도다.
 
질문 2). 광주사태에 개입한 북한군이 대대규모, 즉 수 백 명이라는데, 이들을 상대로 전투를 벌였을 당시

진압군의 장교들 중 어느 한 사람도 북한군의 출현에 대해서 보고하거나 주장한 사람이 없다.

또한 전체 사망자-193명, 이들 중 군인-23명, 그 중 진압군끼리의 오인사격으로 13명 사망?,

무장시민들에 의한 군인사망자-7명, 북한군이 개입했다면 국군사망자가 이 정도에 그칠리가 없다?

답 : 광주사태에 개입했던 북한군이 한명이던 수 백 명이던,
그들이 애초부터 대한민국국군을 상대하려고

내려온 사람들이고, 진압군을 죽이고 광주를 해방하려는 것이 임무였다면,

그것은 벌써 특수전의 개념에서 벗어날 뿐만 아니라, 배후교란작전은 둘째 치고,

전쟁을 일으키려고 공개적으로 광주에 내려왔다고 분석해야 된다.
 
조갑제씨의 말을 빌리면 수백 명의 특수부대원들이 내려왔는데 진압군의 희생자 수가

왜 그렇게 적었느냐고 순진한 아동들의 세계에서나 나올 법한 소리를 하고 있는데,

특수전의 의미가 무엇인지부터 열심히 배우고 이런 문제에 접근하면 좋을 듯싶다.
 
철없는 애들의 군사놀이 같은 상식으로 판단을 하고 잣대를 들이대기 전에,

광주사태 전후부터 조성되고 전개된 남한의 정치상황과 광주사태의 발단, 진행과정의 성격,

북한군이 여기서 노릴 수 있는 여지와 방법 등을 면밀히 재 관찰하고,

당시의 시대적상황과 조갑제씨의 생각에서 어떤 대조되는 모순점이 있는가를 따지고 재고할 것은

재고해야 한다.
 
적당히 죽여서 진압군들이 긴장을 풀지 않을 정도로만 만들어 놓으면 될 일이었고

무리수를 둬가면서까지 굳이 다수의 진압군을 죽일 필요가 없었다.

가치로 따진다면 진압군 열 명을 죽이면서 위험을 감수하는 것보다,

시민군 한두 명을 죽이고 현장을 조작하여 그들을 자극시키는 것이 더 효과적이고 생산적인 방법이었다.
 
북한군특수부대가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고 소부대 전법에 능통하다고 해도,

후방도 없는 고작 몇 백 명의 제한된 전투능력이 일개국가의 정규군을 상대로 전면전을 시도하였다면,

그들이 얼마동안 버틸 것이며 진압군을 죽이면 또 얼마나 죽이겠는가?

조갑제씨의 질문이 장난같은 느낌이 든다.
 
질문 3). 당시는 계엄령상태. 해안과 항만은 철저히 봉쇄되었고 공중감시도 정밀했다.

대대규모의 북한군이 어떻게 침투한단 말인가?

침투병력 중 3분의2가 희생되었다는데 사실이면 이들을 섬멸한 국군이 있을 것이며

무장간첩한명만 사살해도 부대표창을 받는데 수백 명을 사살한 국군 부대가 이 자랑스러운 사실을

숨겼단 말인가?
 
답 : 조갑제씨의 말대로 당시 한국에 계엄령상태가 조성되고,

 해안과 항만이 봉쇄되고, 공중감시도 철저했다고 들었다.(남한에 와서)

우리의 짐작대로라면

군사분계선도(우둔하게 군사분계선으로 오지도 않지만) 분명 2,3중으로 감시가 철저했을 것이다.

우리가 북쪽에서 파악한데 의하면, 대부분이 해상경로를 통해서 침투하였다고 증언하였다.
 
다른 부대관계자들에게서 나온 별도의 증언에 따르면,

한 팀은 해상을 이용했고 ,

다른 한 팀은 강원도 중부전선 쪽으로 트럭을 이용애서 움직였으며,

해상이 아닌 다른 경로를 이용했다고 한다.

그 루트가 어떤 것인지 밝혀지지 않은 이상,

당사자들만 아는 내용이고 땅굴을 이용했다는 설도 있지만 사실관계를 정확히 입증할 수 없어,

그 부분에 대해서는 우리자신도 철저히 함구하고 있는 상태이다.

철저한 봉쇄로 개미 한 마리도 쉽게 들어올 수 없는 당시에 북한군이 무슨 재주로 들어왔느냐고 물으면,

이에 정확히 답변할 사람들은 아마 광주현장에 내려왔던 사람들이 아닌가 싶다.
 
3분의 2가 죽었다는 내용은 북한쪽에서 분명히 시인하고 증언하는 문제이다.

5~6백 명이 내려왔다는 설을 토대로 그 중의 3분의2의 사망수자를 계산한다면,

조갑제씨가 제기하는 의문이 빗나간다고 볼 수 없다.

그러나 위에서도 말했지만 각기 임무사항에 따라 별도의 조에서 움직였고,

자기 팀의 사망수자를 기준으로 다른 팀의 사망수자를 일괄적으로 계산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백 명이 내려와서 3분의2가 죽었는지, 이백 명이 내려와서 3분의2가 죽었는지,

통일되기 전까지는 그 진의를 파악할 수 없다.

이런 부분에서 매끄럽지 못한 점이 있다는 것을 충분히 이해하지만,

북한의 대남사적관에 보관된 자료에 의하면,

‘남조선해방을 위하여 광주항쟁에 참가했다가 당과 수령을 위해 용감하게 전사한 영웅들이

남조선의 이름 없는 산야에 뭍혀 있다.

조국이 통일되면 영웅들의 유해를 찾아 내여 후손만대에 이름을 빛내도록 해야 한다’고 분명한 기록이

남아 있다.
 
질문 4). 전두환정권에서 광주사태에 북한군이 개입했다는 단서가 나오면 이를 반드시 확인했을 것이다.

그런 움직임이 없었다?
 
답 : 그 질문은 우리한테 묻지 말고 전두환 전 대통령 쪽에 물으면 된다.

우리가 해명할 사안이 아니라 남쪽의 몫이다.

2006년12월20일 기자회견 당시 우리는 북한쪽의 자료에만 근거하며,

남한 쪽의 자료는 확인차원에서 부차적으로 이용한다고 분명히 밝힌바 있다.

다시 말하면 자유북한군인연합의 광주사건 기자회견은 북쪽의 증인들과 자료들을 토대로한 양심선언이었지,

남쪽의 자료까지 한데 버무린 기자회견이 아니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분명하게 말해둔다.
 
질문 5). 탈북자의 증언은 추측에 불과하다.

“내가 광주에 내려왔었다”고 나서도 믿기 힘든 판에 “카더라”란 이야기를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여선

곤란하다?
 
답 : 조갑제씨는 2008년 11월,
어느 어느 모 호텔에서 아침시간에 자유북한군인연합 회장 임천용,

당시 재향군인회 회장이었던 박세직을 포함하여, 지인 몇 명과 함께 광주문제로 마주앉았던 일이 있다.

그때 조갑제씨는 광주현장에 기자로 참가했던 당시의 상황을 설명하면서,

북한특수부대가 절대로 올 수가 없었으며, 광주에서 자기 눈으로 북한군의 개입이 없었음을

직접 확인했다고 말했다.
 
그때 그 장소에서 어느 목사님이 북한통일전선부에서 근무하다가 내려온 아무개만나보았고,

광주사건자료가 통전부에 전시되어 있다는 구체적인 증인을 들었다고 말하면서,

"광주에서 임산부의 배를 가르고 여자들의 목을 자른 게 누구냐?"고 되묻자,

"그런 상황은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얼버무리면서 일이 있다고 도중에 피해버렸다.
 
조갑제씨를 비롯한 기자들이 눈을 비비고 봐도 광주현장에서 북한특수부대요원들은 보이지 않았다고

말하는데,

그렇다면 북한군개입설을 주장하는 다수의 탈북자들은 전부 다 사기꾼이고,

배후세력의 사주를 받는 사람들이라고 보는가?
 
오만한 것도 어느 정도지 사람의 지능수치를 벗어나면서 까지 이렇게 오만할 수가 없는 일이다.

한 두 사람의 탈북자가 입을 맞추는 것도 아니고 수 천 명의 탈북자들이 일사불란하게 인정하고 증언하는

내용임이 분명한데도 보수논객이라는 사람이 중뿔나게 나서서 제동을 걸고나서는 이유가 먼지 의심스럽다.

논리가 인정되지 않는 내용을 가지고 왈가왈부하기 전에,

지성인의 진지한 사고력을 가지고 사려 깊은 판단을 해볼 것을 권고한다.
 
질문 6). 5월21일 계엄군은 광주시내에서 철수, 외곽을 포위했다.

이때 빠져나가던 시민들이 매복하고 있던 계엄군의 총격을 받아 죽기도 했다.

대대규모의 북한군이 이런 상황에서 광주로 잠입했다면 국군과 대규모 전투가 발생했을 것이다.

정규군끼리의 충돌은 한 건도 없었다.

김일성(또는 김정일)이 5월18일 광주상황 보고를 받고 특수부대의 출동을 명령했다고 해도,

그 부대가 광주 부근에 나타나려면 빨라도 20일 이후일 것이다.

그때는 이미 광주가 철통같이 포위도어 있을 때였다. 수백 명의 북한군이 등장할 무대는 없었다?
 
답 : 조갑제씨가 쓴 글을 보면 말하고자 하는 내용이 선명하지 못하고 두리 뭉실하게 얼버무리는 것이

참으로 가관이고 일품이다.
도대체 무슨 의도를 가지고 어떤 목적으로 도발적으로 나서는지 내용을 봐서는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다.
 
위에서 말한 내용들을 무엇 때문에 두 세 번씩 앞뒤 문장도 맞지 않게 반복하는가?

에서 조갑제씨가 언급한 부분에서

군인사망자가-23명중에 13명은 공수부대에 대한 국군교도대의 오인사격 등

진압군끼리의 충돌에 의한 사상자라고 분명히 말했었다.

국군교도대가 정규군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같은 진압군이라면 서로 아군이 아닌가?

 북한이 말하는 대로 환각제를 먹고 현장에 투입되지 않았다면,

아군끼리의 교전에서 어떻게 13명씩이나 사상자를 낼 수가 있으며,

그 정도의 사상자가 날 정도의 교전이라면, 상당한 시간이 소요됐다는 소린데,

쌍방이 그렇게도 서로를 판단하지 못할 정도로 무감각했다면 ,

광주현장의 분위기는 능히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13명씩이나 죽도록 서로의 정체를 파악하지 못하고 제 편끼리 맞불질을 해대면서 죽일 내기했는데,

북한특수부대요원들이 보일수가 있겠는가?

현장에서 혹시 보았다 해도 보았다는 그 자체가 더 말이 안 되는 것이다.
 
북한수뇌부가 5월18일 광주상황보고를 받고 특수부대의 출동을 명령했다고 해도,

광주에 나타나려면 빨라도 20일 이후일 것이라고 날짜계산을 해가면서 머리를 갸우뚱 하는데,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조갑제씨의 영특한 판단이 무색할 정도로,

북한수뇌부는 5.18 벌써 이전에 광주사건이 터진다는 것을 감지하고 있었고,

특수부대 개입에 대한 구체적인 작전내용이 김일성의 테이블 위에 놓여 있었다.
 
질문 7). 광주 사망자가 2000명이나 된다는 주장이 있다.

또한 영화‘화려한 휴가’에서 나오는 학살 장면이다.

5월21일 정오 전남도청 앞에서 애국가를 부르는 비무장 시민들에게 사격하여 수백 명을 다치게 하는

장면은 조작이다. 그런 학살도, 사격명령도 없었다. ,,,,,,

이런 미신에 북한군 개입이란 또 다른 ‘미신’을 추가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정도는 진실에 기초해야 한다?
 
답 : 광주사건을 다룬 영화 “화려한 휴가”는

자유북한군인연합이 광주사건에 대한 양심선언 기자회견을 한 이후에,

이에 대한 대응 차원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알고 있다.

‘화려한 휴가’를 두리 뭉실하게 미신이라고 표현하기보다는 북한정권의 사주를 받은 친북세력들이

의기투합해서, 만들어낸 광주사건에 대한 날조와 조작의 산물이라고 평가하는 것이 옳다.
 
조갑제씨는 영화 ‘화려한 휴가’와 함께 북한특수부대의 개입도 미신이라고,

자신만만하고 당당하게 선전하고 있는데 본인의 의중이 정 그렇다면,

광주사태 와중에 나타났던 민감한 문제들에 대한 우리의 질문을 피하지 말고 정확하게 대답을 하라.
 
첫째 : 방산업체에서 장갑차를 비롯해서 수백 대의 트럭이 한 순간에 털렸고,

보안 속에 있던 전라도 지역의 38개 무기고가 단시간 내에 털렸다.

38개의 무기고를 동시에 털만한 정보는 어떻게 얻었고 주도한 세력은 누구인가.
 
둘째 : 광주봉기군이 교도소에 대한 습격을 6차례나 시도했었다.

민주화를 요구하는 선량한 시위자들이 교도소를 습격해서 죄수들을 구출해야 할 이유가

무엇이었다고 생각하는가?

 조갑제씨는 이 사건을 어떤 각도에서 분석하는지 국민들 앞에서 대답하라.
 
셋째 : 머리가 장발(절대로 군인이 아니다)인 사람 7-8명이 군인복장을 하고

 시위대 여러 명을 일 열로 꿀려앉히고 칼빈총을 들이대고 있다.

기자가 순간적으로 카메라에 담은 현장 상황이 아니라 준비된 포즈에 가까운 사진이다.

시위대가 무엇 때문에 군인복장을 하고 이런 장면을 연출해야 했는지 말해보라.
 
넷째 : 여성의 온 몸을 발가벗기고 두개골을 톱질하고 팔을 자른 사진과 여성의 목을 자르고

은밀한 부위가 그대로 노출된 사진있다.

5.18관련 단체들은 우리가 이런 사진을 공개하자, 자기들은 국민들이 경악해 할까봐 감히 엄두도 내지

못했다고 앞뒤가 안 맞는 소리를 한 적이 있다.

조갑제씨의 주장대로 북한특수부대의 개입설이 미신이라면,

어느 쪽이던 내부의 소행이라고 믿어야 되는데 진압군이 했다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봉기군의 자작극이라고 생각하는가?
 
다섯째 : 망월동 묘지에 신원미상 자가 상당수 있다.

2002년에 몇 명의 신원이 확인되었다고 5.18-측에서 말하고 있지만 그에 대한 정확한 자료는

근거적으로 확실하게 나와 있는 것이 없다.

이 사람들을 북한 측이 당시 현장에서 미처 회수하지 못한 시신들이라고 단정하기에도 현재까지는

무리가 있다.

왜 이런 현상이 있어야 하며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여섯째 : 광주사건 사망자 중에 M16보다 칼빈에 맞아 죽은 사람이 60% 이상을 웃돌 정도로 의외로 많다.

이 부분은 광주에 내려왔던 북한당사자들의 증언에도 나와 있다.

북쪽의 증언과 남쪽의 자료가 서로 아귀가 맞는다고 봐야 한다.

칼빈은 봉기군이 들고 있었는데, 오발사고에 의한 것이라면

제한된 인원은 벗어나지 말아야 되는 것이 정상이다.

한 둘도 아니고 많은 사람들이 무엇 때문에 칼빈에 맞아 죽었다고 생각하는가?
 
일곱째 :1980년5월16일 전남 보성군 득양면으로 침투한 간첩 이창룡

당시 남대문 경찰서 경장 한규용이 5월23일 주민의 신고를 받고 체포사실이 있다.

이창룡은 광주에서 서울로 왔다가, 다시 광주로 가는 도중에 잡혔고

그의 몸에서는 현금1.935.000원, 난수표 3매, 무전기 1대, 독침 1개, 위장 주민등록증 2개,

환각제 22종 총 339점이 발견되었다.

조갑제씨는 계엄이 선포되었기 때문에 북한쪽에서 들어올 통로가 없다고 주장하였지만,

분명히 들어온 것은 사실이다.

한 명이 들어왔으면 백 명도 가능하다는 소리가 된다. 반박할만한 자신이 있는가?
 
광주사태에 북한군특수부대가 개입했던 사실은 한 치의 오차도 없는 과학적인 사실이며 진실이다.

5.18광주사태 당시에 북한군특수부대의 일원으로 광주현장에 침투했다가 북한으로 돌아가서,

북한정권으로부터 국기훈장 1급을 두 개씩이나 받은 당사자가 현재 남한에 내려와 있다는 사실과

그가 직접 증인으로 나서서 북한군특수부대의 개입내용에 대해서 발언하는 상황이 만들어 진다면,

조갑제씨가 과연 어떻게 반응할지 두고 볼 일이다.
 
천안함 사건이 누구들의 소행인지만 봐도,

5.18광주사태의 진실에 대한 답은 어렵지 않게 나온다고 볼 수 있다.

광주문제를 사실에 기초해서 재조명하고 어두운 밑바닥을 가리고 있는 베일을 벗겨야 되는 것은

보수정권의 존재여부를 떠나서 국익의 관점에서 불가피한 정도가 아니라 필연적인 과제이다.

좌파, 우파의 개념이라든가 좌우의 이념적인 가치관역시도 어떤 형태로든 광주사태를 재평가하는

문제의 범위 안에는 절대로 개입될 수 없다.
 
조갑제씨는 자신이 저지른 행위가 얼마나 비굴한 것인지, 그 댓가에 대해서 반드시 책임질 날이

온다는 것을 반드시 명심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조갑제씨가 주장하는 내용의 본질은 여자들만을 선정해서 발가벗기고 목과 팔을 잘라내고,

어린 처녀들의 가슴을 도려내는 등 광주현장에서 벌어졌던 야만적인 행위의 당사자가

북한특수부대의 교란작전이 아니라, 친북좌파세력들이 말처럼 대한민국국군의 짓이라는 뜻이다.


 2010년 5월 13일 자유북한군인연합 대표 임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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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특수부대의 광주개입" 주장은 믿을 수 없다! (조갑제 대표)
 

광주사태를 취재했던 수백 명의 기자중 그런 의심을 한 사람을 만난 적이 없다.

대대규모의 북한군이 등장할 무대가 없었다. 

 4년 전부터 한 탈북자가 "광주사태에 북한 특수부대가 개입했다"는 주장을 하고,

일부 애국단체에서 이에 동조하고 있다. 이 탈북자는 이렇게 주장했다.
 
  <5.18사태 당시 함경남도에 위치해 있던 우리 부대는 전투동원상태에 진입하라는

참모부의 명령을 받고 완전 무장한 상태에서 신발도 벗지 못한 채 24시간 진지를 차지하고

 광주사태에 대해 긴급속보로 전해 들으면서, 20여일 이상 출전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정치부 비 편제 서기로 자주 동원됐던 나는 나중에야 당시 제10군단장이었던 여병남과

7군단 참모장이었던 김두산의 대화를 통해,

특수부대 1개 대대가 광주에 침투했었고 희생도 많았지만 공로가 컸다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그로부터 얼마 후 북한군 특수부대 지휘관들 사이에서는 광주에 특수부대가 침투 했었다는 말이

공공연한 비밀로 나 돌았다.

특수부대들에서 선발한 최정예 전투원 1개 대대가 해상을 통해 남파됐으며,

그중 3분의 2가 희생되고나머지 인원이 모두 귀대 했다는 것이다.>
  
 이 주장은 개연성이나 증거가 없다. 사실이 아니라고 단정함이 타당할 것이다. 그 이유는 이렇다. 
  
 1. 광주사태는 목격자가 많은 사건이다.

광주시민 수십 만 명과 진압군이 목격자이고, 수백 명의 직업적 구경꾼들, 즉 기자들이 취재했다.

외국 기자들도 많았다. 공개리에 일어나고 공개적으로 취재된 사건이다.

광주사태를 취재했던 나를 포함한 어느 기자도 북한군 부대가 개입했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2. 광주사태에 개입한 북한군이 대대규모, 즉 수백 명이라는데,

이들을 상대로 전투를 벌였을 당시 진압군(계엄군)의 장교들 중 어느 한 사람도

북한군의 출현에 대해서 보고하거나 주장한 사람이 없다. 
  
 3. 광주사태 사망자는 국방부 조사에 따르면 193명이다.

이들중 군인은 23명이고 경찰관이 4명이다.

군인 사망자 23명 중 13명은 공수부대에 대한 국군 교도대의 오인 사격 등 진압군끼리의

충돌로 죽었다.

5월27일 광주수복을 위해 계엄군이 진입할 때 국군 3명이 죽었다.

나머지 7명의 군인들이 무장시민들에 의해 죽은 셈이다.

대대 규모의 북한군이 개입했다면 국군 사망자가 이 정도에 그칠 리가 없다. 
  
 4. 당시는 계엄령이 펴진 상태였다.

해안과 항만은 철저히 봉쇄되었고 공중감시도 정밀했다.

대대규모의 북한군이 어떻게 침투한단 말인가?

침투병력중 3분의 2가 희생되었다는데 이게 사실이라면 이들을 섬멸한 국군이 있을 것 아닌가?

무장간첩 한 명만 사살해도 부대 표창을 받는데 수백 명을 사살한 국군 부대가

이 자랑스런 사실을 숨겼단 말인가?
  
 5. 全斗煥 정권하에서는 광주사태에 북한군이 개입했다는 단서가 나오면,

이를 반드시 확인했을 것이다. 전혀 그런 움직임이 없었다. 
  
 6. 탈북자의 증언은 傳言에 불과하다.

"내가 광주에 내려왔었다"고 나서도 믿기 힘든 판에 "카더라"란 이야기를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여선 곤란하다. 
  
 7. 광주사태는 1980년 5월18일부터 시작되었다.

그 직후 광주 일원은 봉쇄되었다.

5월21일 계엄군은 광주시내에서 철수, 외곽을 포위했다.

이때 市外로 빠져나가던 시민들이 매복하고 있던 계엄군의 총격을 받아 죽기도 했다.

대대규모의 북한군이 이런 상황에서 광주로 잠입했다면 국군과 대규모 전투가 발생했을 것이다.

정규군끼리의 충돌은 한 건도 없었다.

김일성(또는 김정일)이 5월18일 광주 상황 보고를 받고 특수부대의 출동을 명령했다고 해도

그 부대가 광주 부근에 나타나려면 빨라도 20일 이후일 것이다.

그때는 이미 광주가 철통같이 포위되어 있을 때였다. 수백 명의 북한군이 등장할 무대는 없었다. 
  
 6. 광주發 과장이 두 개 있다. 하나는 사망자가 2000명이나 된다는 주장이었다.

이는 수 차례의 정부 조사로 부정되었다.

또 하나는 영화 '화려한 휴가'에 나오는 학살장면이다.

5월21일 정오 무렵 전남도청 앞에서 애국가를 부르는 비무장 시민들을 향하여

공수부대원들이 명령 일하에 일제 사격을 하여 수백 명을 죽이고 다치게 하는 장면은

악랄한 空想이고 조작이다. 그런 학살도, 그런 사격명령도 없었다.

시민들이 차량을 탈취하여 공수부대원들을 덮쳤고, 현장에서 군인 한 명이 깔려 숨지자,

군인들이 버스를 향하여 발포한 것이 본격적인 총격전의 시작이었다.

이런 미신에 북한군 개입이란 또 다른 미신을 추가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正義는 진실에 기초해야 한다. 
  
 7. 애국단체들이 북한군 개입 주장에 동조하는 것은 위험하다.

진실에 대한 확신이 없는 상태에서 희망적 기대를 갖고 근거가 약한 의혹 수준의 첩보에

근거해서 행동하면 逆攻을 당할 것이다.
 
  *********************************************************************************************

 "북한군 특수부대 광주사태 개입했다" 
 

-자유북한군인연합 대표 임천용씨 공개증언 -  프리존뉴스(2006년) 

북한군 특수부대 출신의 탈북자 모임 ‘자유북한군인연합’(대표 임천용·전 교도지도국 19여단 2대대· 계급 상위)은

20일 오전 서울 정동 세실레스토랑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지난 80년 발생한 5.18 광주사태 당시 북한군이 개입했다고 주장했다.

아래는 이날 기자회견을 주최한 임천용 씨의 증언을 요약한 것이다. <편집자 주>
  
김일성, 김정일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심복들에게,

“연방제 통일은 평화적 방법으로 가능할지 모르나, 남조선 혁명은 폭력적 방법이 아니고는

불가능하다. 평화적 방법은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고 강조해왔다. 
  
남한 내 친북세력들이 미군 기지를 공격하며 미군철수를 주장하는 집회나,

4.19나 광주봉기처럼 민주·평화·자주를 외치는 격렬한 시위가 전국을 뒤 덮을 때,

민주·애국투사들을 구한다는 명분으로 무력 개입한다는 전략이다. 

남한에서 벌어진 크고 작은 불행한 사건들에는 빠짐없이 북한이 직·간접적으로 개입해왔다.
 
  “북한군 특수부대 광주사태 개입 공공연한 비밀” 

다른 것은 접어 두고라도 한국 민주화운동의 상징인 5.18광주민중항쟁의 경우에도

현역 북한군 출신들, 특히 특수부대 출신들은 북한군 정예 특수부대가 투입됐다는 정도는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다음은 김일성이 76년 8월, 그리고 80년 5월 대남공작원들에게 내린 비밀지령의 전문이다.
  
 [비밀지령1] “남조선에서 노동자들이 드디어 들고 일어났습니다.

사북 탄광의 유혈사태는 반세기에 걸친 식민지 통치의 필연적 산물이며

인간 이하의 천대와 멸시 속에서 신음하던 노동자들의 쌓이고 쌓인 울분의 폭발입니다.

남조선 혁명가들과 지하혁명 조직들은 이번 사북 사태가 전국으로 확산되도록 적극 불을 붙이고,

청년학생들과 도시 빈민 등 각계각층의 광범한 민중들의 연대 투쟁을 조직 전개해,

더 격렬한 전민 항쟁으로 끌어올려야 합니다.”
  
 
[비밀지령2] “결정적 시기가 포착되면 지체 없이 총 공격을 개시해야 합니다.

전국적인 총파업과 동시에 전략적 요충지대 곳곳에서,무장봉기를 일으켜,

전신 전화국, 변전소, 방송국 등 중요 공공시설들을 점거하는 동시에,

단전과 함께 통신 교통망을 마비시키고 임시혁명정부의 이름으로 북에 지원을 요청하는

전파를 날려야 합니다.

그래야 남과 북의 전략적 배합으로 혁명적 대 사변을 주동적으로 앞당길 수 있습니다.”
 
  “북한군 특수부대 5.18 당시 ‘완전 무장’ 상태로 대기”

김일성의 이 같은 비밀지령과 80년 5월을 전후한 북한군의 움직임 등 제반 상황은

광주사태에 분명히 북한군이 개입됐음을 보여준다. 
  
5.18사태 당시 함경남도에 위치해 있던 우리 부대는

전투동원상태에 진입하라는 참모부의 명령을 받고 완전 무장한 상태에서

신발도 벗지 못한 채 24시간 진지를 차지하고 광주사태에 대해 긴급속보로 전해 들으면서

20여일 이상 출전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정치부 비 편제 서기로 자주 동원됐던 나는 나중에야 당시 제10군단장이었던 여병남

7군단 참모장이었던 김두산의 대화를 통해, 특수부대 1개 대대가 광주에 침투했었고

희생도 많았지만 공로가 컸다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그로부터 얼마 후 북한군 특수부대 지휘관들 사이에서는 광주에 특수부대 침투 했었다는 말이

공공연한 비밀로 나돌았다. 
  
또 북한군 4군단 70정찰대대 전투원으로 복무했던 이덕선 씨로부터

당시 정찰국 소속 정찰대대원들의 광주 침투 상황에 대해 비교적 상세한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특수부대 1개 대대 해상 통해 남파, 3분의 2가 희생”  
이덕선 씨에 따르면 광주봉기 당시 2군단 정찰대대를 모토(motto)로 하고,

각 특수부대들에서 선발한 최정예 전투원 1개 대대가 해상을 통해 남파됐으며,

그중 3분의 2가 희생되고나머지 인원이 모두 귀대 했다는 것이다. 
  
 이덕선 씨가 알고 있는 광주봉기 침투자는,

조장이었던 4군단 70정찰대대 상좌 황종인, 부조장이었던 4군단 33사단 중좌,

조원으로 침투했던 4군단 정찰대대 작전집체조의 홍씨 성을 가진 참모였다고 한다. 
  
통상 북한 당국은 남파돼서 임무를 수행하고 귀대하거나 임무수행 중 사망한 공작원 또는 전투원에게

공화국 영웅 칭호와 함께 각종 훈장을 수여하는데,

그 수는 1년에 불과 열손가락 안에 꼽히는 정도였다. 
  
 이덕선 씨에 따르면, 1980년에 2군단 75정찰대대에서만 41명의 공화국 영웅이 배출됐고,

타 부대들에서 21명, 도합 62명의 영웅이 나왔다한다.

북한의 경우 평화시기에는 남파간첩이나 전투원이 아니면,

공화국 영웅 칭호를 받는 일이 거의 없음을 감안할 때,

한 해 동안에 62명의 전투영웅이 탄생했다는 것은 대남침투관련 거대 작전이 있었음

보여주는 것이다.
 
  “북한군 광주사태 개입확신, 진상 반드시 밝혀야” 

이외에도 당시에는 국군에 없었던 카빈 소총이나 M1 소총에 맞은 시신이 수십 여구라던가,

봉기자(시민군)들이 정부군의 탱크와 장갑차를 탈취해 진압군을 공격했다든가,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시신이 있는 등 아직 밝혀지지 않은 문제들이 너무나도 많다. 
  
북한에서의 체험과 이상의 근거들만 가지고도

광주민주항쟁에는 분명히 북한군이 개입됐다고 확신한다.

대남적화통일 야망을 실현하기 위해 신성한 민주시위를 유혈 폭동으로 몰아간,

김일성·김정일 부자의 제물로 바쳐졌을지도 모르는 5.18광주 민주화 영령들에게,

심심한 애도의 뜻을 표하면서, 광주 사태의 진상은 반드시 밝혀져야한다고 생각한다. 
  
  정리 김필재 기자 spooner1@freezonenews.com (기사출처: 프리존뉴스)  2010/05/13

댓글목록

각성님의 댓글

각성 작성일

2014/02/23 10:36 북한 기자 “간첩 50명보다 조갑제 한 명이 더 낫더라” koreadaily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2351844
http://www.systemclub.co.kr/board/bbs/board.php?bo_table=board02&wr_id=110263
2015.07.15  11:19:09  조갑제는 결정적인 순간에 반역한다 조갑제는 1989년 3월 "이수근은 간첩이 아니었다"고 강변했다 newstown
http://www.newstown.co.kr/news/articleView.html?idxno=213782

2017. 12. 20. 5-18 광주 남침 북한군 전사자 명부 및 전투기록장 입수 (김주호 박사팀)
https://youtu.be/FDaZxvwTHCo
https://www.youtube.com/watch?v=FDaZxvwTHCo&feature=youtu.be

2018.05.28 [13:03] 北韓교과서 "남한 민주화←김일성 교시" "5·18 광주인민봉기는 가장 성공한 인민혁명 사건" allinkorea
http://allinkorea.net/sub_read.html?uid=32816
2015-10-14 18:50 北교과서 "南 민주화운동은 모두 김일성 교시 따른 것" naver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7918043
2015.04.04  22:13:34  황장엽-김덕홍-김명국-북 여교사 증언, 연구결과와 일치 북한은 5.18의 정당성과 계승성을 광범위하게 선전하고 대중사회에 의식화 하였다 북한의 '5.18 무사고정시견인운동' 1만 톤 대형프레스 '5.18 청년호', 제철소'5.18 청년제철소', 탱크5.18 전진호'  newstown
http://www.newstown.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1863

2012. 12. 24. 납북여배우 최은희 광주폭동 증언 ilbe pol
https://youtu.be/C7wQ7Kh3gYk
https://www.youtube.com/watch?v=C7wQ7Kh3gYk
탈북자들의 5.18 증언을 입증하는 CIA 문건
https://www.bookstore21.net/english/north-korea-evidence.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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