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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캡슐(Capsule)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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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미스터korea 작성일19-03-15 04:39 조회286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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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캡슐(Capsule) 여행

 

 

 

발단: 박정희 대통령 서거(1979. 10.26)

 

이 부분에 대해서는 필자가 올린 2016년 5월 9일 자 칼럼에 자세히 기록돼 있다.

 

#5.18의 단초를 제공한 3총사(김재규-김계원-정승화)/ http://blog.daum.net/02mrkorea/650

 

 

김대중의 북한군 요청

 

이제부터는 필자가 2017년 12월 1일과 2019년 2월 25일 자에 올렸던 아래의 칼럼을 주목해주시기 바랍니다.

 

#1.'5.18작전'이 김일성 부자와 김대중의 합작품인 증거들/ http://blog.daum.net/02mrkorea/773

 

#2. 5.18의 알파와 진실과 오메가/ http://blog.daum.net/02mrkorea/800

 

위 칼럼 1-3항과 1-5항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들어있다.

 

 

"전라도는 김대중의 고향이야. 그가 정치적 기반을 두고 있는 곳이기도 해. 원래 전라도는 봉건시대부터 반란, 폭동을 많이 일으켜온 지역이야. 그 지역 백성 놈들의 민심을 잘 이용하라. 그러면 남북통일을 만들어내는 데 커다란 도움이 될 수 있어. 현 정세에 맞게 남조선 혁명가들과 합심하여 전라도 광주에서 폭동을 일으킬 결정적인 계기를 만들어야 해. 김대중은 나에게 그런 계기를 만들어 주겠다는 연락을 보내왔어. 한 마디로 광주에서 시위가 일어나면 폭동으로 확대시켜 남조선 괴뢰정권을 전복시킬 군사작전 계획을 세워 달라는 거야. 그래서 내가 몇 달 전부터 동무들한테 작전계획을 만들라고 지시했던 거야. 계획대로 폭동이 일어나면 전라도뿐 아니라 남조선 전역으로 퍼져나가도록 구체적인 작전계획을 만들어 보라. 주도세밀하고 가능성이 있는 계획은 작전 승리의 열쇠야. 청와대가 있는 서울과 남조선 전 지역으로 폭동이 확대되게 하라. 괴뢰정부 기능이 마비되면 우리는 피를 흘리지 않고도 남조선을 타고 앉을 수가 있어."(보랏빛 호수/P103)

 

"그리고 말이야 김대중이 보냈다는 소식을 다시 한 번 말해보라." "네. 수령님, 김대중 선생이 보낸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이번 광주작전에 대한 모든 준비가 끝났다고 합니다." "그럼 김대중이 우리한테 요구하는 것은 없어?" "그쪽에서 우리에게 요구한 것은 북조선에서 조선인민군 부대들을 남조선에 파견하여 시위를 폭동으로 만들어 달라는 요구입니다." "폭동이면 무장이 있어야 할 거 아니야?" "옳은 말씀입니다. 그래서 저희 공작조들이 김대중 선생의 지시를 받고 온 사람들과 전라도 지역에 산개해 있는 무기고, 교도소, 아시아자동차에 대한 습격 작전 계획을 완성해 놓았습니다." "그 작전안은 누가 계획했어?" "문제심 소장이 제출한 작전안을 작전조에서 검토했습니다.(보랏빛 호수/P105)

 

 

김일성의 남침야욕과 지령

 

1. 김일성이 조선노동당 군사위원들과 대남정책 관련 담당자들 앞에서 한 말

 

  "지금까지 남조선 해방을 위해 얼마나 많은 대가를 치렀는지 동무들은 잘 알 거야. 우리는 수백만 명의 사상자를 내는 전쟁까지 했지만 남북 분단은 오늘까지 지속되고 있어. 지금은 일방적으로 밀고 나가는 방법으로는 통일을 할 수가 없어. 이제는 전략, 전술을 현시대에 맞게 바꿔야 해. 그래서 허리띠를 졸라매고 남조선 혁명가들에게 통일 자금을 보내주었어. 내가 돈이 남아돌아서 그렇게 한 줄 알아? 그들과 함께 남조선 괴뢰정부를 뒤엎을 결정적인 시기를 마련하기 위해서야."

 

  "박정희가 김재규의 총에 맞아 죽고 나서 괴뢰정권 치안이 밑뿌리채 흔들리고 있어. 남조선 내부가 크게 혼란에 빠진 지금이야말로 우리가 남조선을 해방시킬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해야 돼.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영원히 남조선을 미국놈들의 손아귀에서 해방시킬 수 없으며, 통일은 먼 훗날의 이야기로 될 거야."(보랏빛 호수/P102)

 

2. 작전이 실패하면, 김대중을 남조선 대통령으로 만들라!

 

  "내가 그래서 이런 일을 미리 내다보고 김대중을 비롯한 남조선 혁명가들과 민주인사들에게 많은 투자를 해왔어. 우리가 남조선을 타고 앉든가 그렇게 안 되면 김대중을 남조선 대통령으로 만들어 내야 돼. 김대중이 대통령이 되면 연방제식 통일국가를 만들 수가 있어. 그것이 내가 구상하고 있는 통일국가를 만들기 위한 전략이야. 김대중이 우리 말을 듣지 않을 수 없도록 내가 물심양면의 많은 지원을 해놓았어."

 

 

김일성의 지령에 의한 문제심의 5.18 PLAN

 

1. 아래는 문제심이 작성한 5.18작전 기획안이다

 

첫째 : 교도지도국[대남연락소, 해상-육상 저격부대와 경보병, 항공육전대, 군단정찰]에서 남조선 광주 현지에 파견할 군인들을 정치-사상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준비된 25세 이하 모범 군인들로 인원을 선발하려고 합니다.

 

둘째 : 아시아자동차 공장을 습격하여 트럭과 장갑차를 노획하려고 합니다. 트럭과 장갑차를 이용함으로써 폭동에 필요한 인원과 물자를 이동시키려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광주와 전라도 나아가 남조선 전역에 폭동을 확대시킬 수 있는 보다 쉽고 효율적인 성과를 가져올 것입니다.

 

셋째 : 전라도 전 지역에 있는 무기고를 습격 탈취하여 폭동군을 무장시키려 합니다. 이미 구체적인 계획안과 남조선 광주지역 조사를 끝냈으며 현지에 파견되어 활동하고 있는 공작조들이 행동으로 옮길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넷째 : 광주 폭동에 파견하는 조선 인민 특수부대원들을 괴뢰군으로 가장시켜 침투시키려고 합니다. 그들이 시위에 참가한 광주시민들에게 총격을 가하고 유언비어를 비롯한 각종 심리전을 벌이려고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광주와 전라도 나아가 남조선 인민들을 극도로 자극하여 시위 진압군과 괴뢰군부세력에 대한 분노를 유발케 하여 폭동에 합류시킬 계획입니다.

 

다섯째 : 우리 군인들을 대학생 또는 시민으로 위장 침투시켜 폭동진압 괴뢰군들에게 사격을 하려는 계획입니다. 남조선 군부와 군인들 쪽에서 사상자가 나오면 그들을 자제력을 상실하데 될 것입니다. 무차별 사격과 진압을 유도하여 양측에서 더 많은 희생자가 발생한다면 그만큼 폭동을 확대시키는 데 있어 우리에게 유리한 환경이 조성될 것입니다.

 

여섯째 : 남조선, 특히 전라도 말과 억양에 능숙해야 하는 관계로 언어 교육을 남조선에 침투하는 그날까지 집중적으로 하려고 합니다.

 

일곱째 : 남조선 대학생들이나 사회 청년들을 비롯한 현지인들과 복장 및 모습이 같아야 하는 관계로 머리를 장발로 길러 활동하는 데 유리한 환경을 만들려고 합니다. 

 

여덟째 : 폭동 성공 가능성입니다. 박정희가 사살된 지금의 정세는 우리가 남조선 괴뢰정부를 무너뜨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보입니다.특히 김대중을 미친 듯이 섬기고 있는 전라도민들, 특히 광주의 민심은 터지기 직전의 화약고라는 소식들이 현지에서 들어오고 있습니다. 작은 사건이라도 지역감정을 건드리는 기폭제 같은 사건을 만들어 낸다면 그들은 불나방이 되는 줄 알면서도 들고일어날 것입니다. 이런 지역감정들을 폭동에 이용한다면 보다 손쉽게 목적을 달성할 수 있으리라 봅니다.

 

아홉째 : 폭동이 일어나면 그곳 현지 상황에 대한 중계를 구체적이고 신속하게 보도할 종군기자들을 현지에 파견하는 문제들에 대한 대책이 요구됩니다. 국내외 폭동현장을 현지 중계함으로써 남조선 인민들로 하여금 괴뢰군에 대한 분노를 야기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는 것입니다. 이로싸 전국적인 폭동을 유도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려고 합니다.

 

열째 : 광주폭동에 참가한 전 조선인민군 특수부대원들의 신분이 노출되면 안 된다는 점을 고려하여 모든 군인들이 마스크 또는 복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작전에 참가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려고 합니다.

 

무엇인가를 골똘히 생각하던 김일성은 문제심이 제출한 작전계획안에 휘갈겨 사인을 해주고 일어섰다. 또 담배를 꼬나물고 창문가에 다가서서 창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여기까지만 보아도 5.18은 북한의 작전임을 알 수 있다. 남한에 이런 작전계획안을 짠 인물 있는가?

 

위의 10개 항을 필자가 부연해서 설명하면,

1항은, 교도지도국 소속으로 고도로 훈련된 25세 이하 특수군을 선발한다.

2항은, 아시아자동차 공장을 습격하여 트럭과 장갑차를 탈취한다.

3항은, 무기고를 습격 탈취하여 폭동군을 무장시키려 한다. 이미 구체적인 계획안과 남조선 광주지역 조사를 끝냈다.

4, 5항은, 북한특수군을 괴뢰군과 시민군으로 위장 침투시켜 양측에서 더 많은 희생자를 발생토록 한다.

6, 7항은, 위장을 쉽게하기 위하여 전라도 말과 억양을 교육시키고, 머리를 장발로 기르게 한다.

8항은, 지역감정을 폭동에 이용한다면 보다 손쉽게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9항은, 현지 상황을 중계할 종군기자들을 파견하는 대책이 요구된다.

10항은, 신분의 노출을 감안해 마스크 또는 복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작전에 참가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실제로 젊은 장발족들이 많이 보였으며, 말투와 억양이 달라 자신들의 신분이 노출되기도 하였다. 아시아자동차공장과 44개 무기고들이 습격을 받았으며, 그들은 괴뢰군과 시민군으로 위장해 작전하였고, 각종 유언비어를 유포해 이간질을 했다. 그리고 계엄군이 시외곽으로 쫒겨간 후에는 마스크와 복면을 쓰고 활동하기도 했다. 또한 북한에서는 광주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실시간 중계했다. 제8항은 폭동의 성공가능성을 낙관적으로 보았는데, 상황이 좋지 않차 <교도소공격>이라는 극약지령이 떨어졌던 것이다.

 

 2.문제심, 그는  누구인가?

 

그는 1010군부대 부대장(중앙당연락소 소장)이며, 당시 현역 중장(별 2)이었다. 한국의 소장에 해당된다.(P101)

 

중앙당연락소장, 문제심은 대남작전을 기획하고 수행함에 있어 중추를 이루는 요직 인물이었다. 그는 지난 기간 남조선과 일본, 중국, 동남아를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들에 수백여 명의 간첩들을 교육, 훈련, 침투시키고 정보수집, 현지인 납치, 암살 등을 비롯한 첩보활동을 총괄한 인물이었다.

 

문제심은 김일성의 명령에 따라 '5.18작전'을 직접 기획했으며, 북한군 50명을 직접 인솔하고 광주에 침투해서 작전을 지휘감독하고 돌아가 당시 '국방차관급'까지 출세한 인물이다.

 

 

북한특수군 및 공작조 축차적 침투/다양한 남침 루트들

 

임천용 회장을 비롯한 탈북군인연합회 회원 16명의 수기집 <화려한 사기극의 실체 5.18>에서 중요한 사항만 발췌했다.

 

#증언 1. 교육자의 시각에서 본 5.18사건/전 함경남도 금야군 고등중학교 교원

1나는 1981년 4월, 생활총화에 다녀오신 아버지로부터 다음과 같은 깜짝 놀랄 이야기를 들었다

"작년 5월달에 남조선에서 일어났던 광주인민봉기 때 누가 남조선괴뢰군들 하고 싸웠는지 모르지? 우리 쪽의 특수부대 군인들이 파견되서 직접 싸운거야. 오늘 군당 조직비서가 와서 그 얘기를 한 시간이 넘도록 했어.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가 정말 대단해. 남조선 놈들 아무리 까불어도 우리하고는 대상이 안 되지. 우리 군대가 세계 최강이야. 그런데 광주에 가서 죽은 사람들도 많은가 봐. 조직비서 동지가 말하는데 친애하는 지도자 동지께서 광주인민봉기에 내려갔던 사람들을 국가가 영원히 책임지고 돌봐주라고 말씀하셨대"

 

2) 북한의 살인기계 양성소

"1970년대 중반에 평안북도 정주, 동림 일대에 남조선 종심에 대한 작전을 전문적으로 수행하는 정예특수부대인 일명 자살부대라고도 불리던 '당원사단'이라는 최정예부대를 새롭게 만들었다. 그는 13살이 되던 해인 1966년 가을에 자살부대나 다름없는 국가보위부 소속 첩보훈련소에 모집되어갔다. 그가 간 곳은 서해 바닷가의 어느 이름 없는 섬이었고 그곳에서 그는 백여 명의 같은 또래 어린 동료들과 함께 고된 훈련을 받았다. 그곳에는 아직도 세상에 공개되지 않은 채 극비에 은폐되어 있는 생체실험장도 있다고 한다. 정신훈련교육은 처음부터 조국을 위해서는 필요하면 부모와 처자식도 죽여야 하고 친구도 무조건 죽여야 된다는 내용이었다. 생전처음 보는 코가 큰 사람들이 와서 미국말을 가르치고 일본에서 납치되어 온 사람들과 남조선에서 온 사람들이 각기 자기나라의 말들을 어린 훈련병들에게 체계적으로 교육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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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체 외부와는 접촉할 수 없는 무인도에서 11년 동안의 훈련을 마치고 1977년 여름에 새롭게 배치되어간 부대는 함경남도 덕성군의 아찔한 골짜기에 주둔해 있는 '534'라고 하는 특수부대였다. 대위의 군사칭호를 달고 타격대장으로 임명되어간 그는 날아가는 까마귀도 단도 한번 날려서 떨어뜨린다는 유명한 부대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사살당할 때까지 근 2년 동안 대원들에게 살인적인 훈련을 가르쳤다"(화려한 사기극의 실체 5.18/P73)

 

3) 잠수함으로 마양도 해군기지에서 목포로 이동

 "그들을 태운 잠수함은 바다 밑으로 깊숙이 잠수하여 마양도 해군기지를 출발하였다. 3일째 되던 날 안내요원이 나타나서 지금 잠수함의 위치가 남조선 전라도 쪽의 해상이라고 전달해 주었다. 안내요원이 들고 온 지휘부의 명령서에는 소부대 인원들을 지휘하여 남조선의 후방에 침투해서 현지에서 차후명령을 전달받고 수행하라는 임무였다. 지역은 전라남도 일대이고 육지에 상륙하여 도착장소까지의 안내과정은 별도의 인원들이 맡아서 수행한다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었다"

 

"11명의 침투요원들은 잠수함에서 내리기 전에 당과 수령, 조국과 인민을 위해서 최후의 한명이 남을 때까지 목숨을 바치며 적들의 손에 잡히면 무조건 자폭을 한다는 서약서에 서명을 하였다고 한다. 잠수함에서 하선하여 남쪽의 안내원을 따라 도착한 곳은 목포라는 해안가 도시의 작은 상점가게 안방이었다. 침투인원들은 그곳에서 7명의 현지 북한요원들을 만났고 그들을 통해서 앞으로 전라도 지역에서 계획하고 있는 작전내용과 이를 위한 사전준비 작업이 무엇인지에 대한 임무사항을 전달받았다. 먼저 내러 온 7명의 북한요원들은 부마항쟁을 배후조종하기 위해서 파견된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처음으로 착수한 일은 무장폭동을 준비하는데 관건인 무기를 확보하기 위한 사업이었다. 북한의 원래 계획 날자는 1980년 3월경이었다고 한다.안창식을 비롯한 18명은 여러 개의 소조로 분산되어 북한의 지령을 받고 움직이는 조직들이 사전에 확보해 놓은 무기고들의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서 3개월여 동안 전라도 전 지역에 대한 정찰을 이 잡듯이 샅샅이 진행하였다고 한다. 2월말을 넘기면서 전라도 지역에 포진되어 있는 무기고들에 대한 사전파악과 요해사업(상황판단)이 성과적으로 마무리 되었다"

 

4) 광주 조력자들의 정신무장 상태는 마치 북한의 조선노동당원들을 방불케 했다

"광주를 비롯한 전라도 지역에 포진되어 있는 숨은 지하조직들을 알아가는 과정에서 침투조 인원들이 직접 목격한 일이지만 그들의 조직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잘 정비되어 있었다는 것이었다. 질적으로 짜여있는 북한의 당 조직과도 별로 차이가 나지 않을 정도로 체계적인 조직구성과 집단화된 규율을 가지고 있었고 정신적인 무장상태나 각오 정도에서도 북한의 조선노동당원들의 수준 이상이었다고 한다. 그들의 지휘부 형태로 사용하는 공간에도 김일성의 초상화는 물론 김정일의 초상화까지 걸려있었고, 김일성선집이라든가 김정일의 주체철학 등 북한에서나 볼 수 있는 사회주의 내용의 북한용 정치서적들이 대거 비치되어 있어 마치도 북한 땅에 있는 어느 박사의 사무실을 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5) 남한 측 여자 정보원을 살해 함

"북한은 5.18사건을 배후에서 계획하면서 두 가지 목적을 노렸다고 한다. 하나는 남조선사회를 북한체제가 합법적으로 통치할 수 있는 국가전복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전라도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믿음직하고 충실한 친북정권 수립이었다"

 

"소부대작전에서 특이한 것은 죽은 시체도 적에게 내어주지 않는 것이 엄격한 원칙이고 각기 자기 분야에특수하게 부여된 임무에만 충실하고 작전내용에 대해서는 마지막까지 비밀을 사수하는 것이 기본적인 룰이라는 것이었다. 따라서 안창식을 비롯한 일행 18명은 교전중에 총상을 입고 사망한 대원을 병원까지 쫒아가 그 시신을 사진 찍던 남한 측 여자 정보요원을 추적하여 살해하고 그 시신을 빼돌렸다"

 

6) 안창식 일행, 무려 7개월 반이나 광주 아지트에서 활동했다

 "안창식은 교전 중에 무릎 바로 아래에 관통상을 입고 광주폭동이 끝나기 2~3일 전쯤 목포의 아지트로 이동해서 치료를 받다가 14명의 대원들과 함께 그해 7월 중순경에 강원도 동해안으로 이동하였고 북한에서 내려온 잠수함을 타고 철수하였다고 한다. 안창식을 포함한 11명 중에 한 명이 숨지고 4명이 부상을 당했으며, 부마폭동에 참여했던 7명 중에 3명은 행방불명이 되어 북한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광주에 파견되어 내려왔다가 행방불명이 된 사람들에 대해서는 북한정권으로부터 영웅칭호가 배려되지 않았고, 국기훈장 1급만 가족들에게 수여하였다고 한다"

 

#증언 2. 북한군 건설여단 33명의 떼죽음 속에 숨겨진 광주의 비밀/전 함경북도 무산군 도시건설사업소 노동자( 제대군인)

 

 

 

1) 장중한은 공화국 2중 영웅

 

 

"나는 당중앙위원회의 위임을 직접 받고 내려온 사람이야. 네놈들이 어제 도끼로 죽인 그 사람이 누군지 알고 있어? 여기 있는 너희들 여단전체를 주고도 바꾸지 못할 사람이었어. 그 사람은 수십 번을 적후에 드나들면서도 머리털 한 오리 다치지 않던 사람이야. 남조선의 광주에서 적들과 힘들게 싸우면소도 조국이 준 임무를 훌륭하게 수행하고 돌아온 영웅이란 말이야 이놈들아. 네놈들이 저지른 죄가 얼마나 크고 그후과가 막대한지 너희 부모들과 친척들이 평생 살 동안 고통을 느끼면서 알게 될 것이다. 나는 당중앙위원회의 위임에 의하여 오늘 이 자리에서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의 이름으로 너희들을 모조리 처단한다"

 

그 말이 끝나기가 바쁘게 권총을 꺼내 대대장과 중대장을 향해서 분노를 폭발하듯 공격적으로 탄창 하나를 다 발사하였다. 나머지 열 명에게는 무장한 보위소대원들 20명이 귀가 따갑게 총탄세례를 퍼부어 댔다. 남조선을 수십 차례씩이나 드나들면서 공을 세웠던 광주의 영웅은 이런 불우한 운명으로 해서 어릴 적 나이에 집을 떠나서 27년 만에 처음으로 밟아보는 고향 길을 끝으로 아쉽게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시멘트 콘크리트로 포장한 묘지의 높이는 1.5미터가 넘어보였고 묘지의 앞에 서있는 비석에는 중앙당에서 직접 새긴 문구가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공화국 2중 영웅 고 장중한 동지는 1980년 5.18일, 남조선의 광주인민항쟁을 비롯해서 살아생전 당과 수령, 남조선 혁명과 조국통일을 위해서 헌신적으로 싸우다가 애석하게 전사하였다. 조국을 위해서 젊음을 바친 고 장중한 동지의 투철하고 고귀한 혁명업적은 조국의 미래와 더불어 후손만대에 영원히 전해질 것이다. 애석하게 전사한 장중한 동지에게 영광이 있으라!"

 

 

 

#증언 5. 5.18에 숨겨진 진실/박행운 전 북한군 하사관, 전 북-중 국경세관 검사

 

 

1) 남조선으로 드나들 수 있는 루트는 해상뿐만이 아니라 육지 쪽으로도 정교하게 조성되어 있었다

 

 "광주사태 때 전쟁이 날 뻔 했다. 김일성의 지시로 본격적으로 밀고 내려갈 준비를 하고 있었고, 그런 시점에서 광주사태는 중요했고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것이 원칙이었다. 당시 인민군대는 광주와 남조선의 전역에서 신호가 오면 즉시 무력을 동원하여 전쟁을 하려고 계획했었다. 그러나 당시 전두환 군부가 우리의 활동에 대해서는 눈치를 못 채고 있었지만 공수부대들을 진압군으로 대거 투입하는 바람에 무장폭동을 전국으로 확대하는 문제가 생각외로 불가능해 졌다. 남조선으로 드나들 수 있는 루트는 해상뿐만이 아니라 육지 쪽으로도 정교하게 조성되어 있었기 때문에 오고가는 데에는 큰 지장이 없었다. 광주에서 대학생들의 소요가 일어나기 이전부터 우리 쪽에서 남조선에 나가서 활동하는 특수부대 사람들이 꽤나 많이 있었다고 보면 된다. 남조선에 침투하여 단기 소부대작전을 하던 사람들은 게릴라전의 전문가들이라고 말할 수 있고 광주에서 장갑차를 탈취하고 무기고를 습격한 것은 남조선 시민들이 아니라 다 우리가 한 일이었다."

 

 

2) 61저격여단의 소부대를 이끌었던대대장 이봉원은귀대하여 <태천군관학교> 소장으로 승진했다 

 

 

"또한 그는 광주사태가 일어나기 훨씬 전에 북한군 특수부대인 60,61,62저격 여단에서 상당수의 소부대들이 남조선에 파견되어 있었고 61저격여단의 소부대를 인솔한 사람은 대대장 이봉원이라고 까지 구체적으로 증언하였다.  광주사건에 남파되었다가 사망한 사람들의 비석은 강원도 김화(북한군 5군단 지역) 인근에 안치되어 있고,61저격여단의 소부대를 책임지고 남파되었던 대대장 이봉원은 광주사건 이후 북한으로 귀대하여 김일성으로부터 공화국영웅칭호와 함께 '일당백'이라는 별도의 칭호를 받았으며 <태천 군관학교> 소장으로 승진했다고 하였다.한편, 또 다른 지휘관은 개성에서 잠수함으로 서해안까지 와서 서울의 삼각산까지 도보로 6시간 20분 만에 침투한 기록을 가지고 있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광주사건에 참가하였던 '534와 신천복수여단' 등 부대들은 그때 당시에 북한군 특수부대들 중에서 가장 악명이 높았고 능력이 신비할 정도로 인정받는 최정예 게릴라 부대이기도 하였다고 밝혔다. 본인의 생각이지만 한국군이 광주의 무장폭동을 조기에 무력으로 진압하지 않고 방심하였더라면 광주사태는 전국적으로 확대되어 남조선정권은 무너지고 국가는 전복되어 북한의 수중에 들어갔을 것이다."

 

#증언 7. 5.18광주사건과 북한군 특수부대 개입/전 북한군 서해안 방어부대 군관, 중위

 

 

1) 나는 북한군 제3군단 86여단 1대대에서 14년간 군복무를 하였다.아래는 군단 조직부 지도원의 말이다.

 

 

 "'북한전투원'은 북한의 명령에 따라서 처음에 광주시에 들어가서 대학생들의 시위만 지켜볼 뿐 며칠 동안 전투에 가담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처음부터 주동적으로 나서서 과격하게 이끌어 가면 단번에 정체가 노출될 수 있는 위험성이 있었던 것이 이유라고 한다. 광주시내가 해방되기 전까지는 뒤에서 조종을 하면서 광주시민들을 거리로 불러내는 작전을 수행하였고 광주가 해방된 다음부터 복면을 하고 주동적으로 개입을 시도했다는 것이다. 그들은 자기들이 직접 국군의 장갑차와 중무기들을 노획하여 봉기군들에게 나눠주기도 하였으며 무기와 각종장비들을 다루는 방법을 가르치기도 하면서 시가전에 맞게 주요전투들을 조직하였다고 했다. 만일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이 당사자 본인의 설명이었다. 대학생들과 시민들은 능력적으로 완전무장한 정규군과는 절대로 상대가 될 수 없는 상황에서도 희생을 무릅쓰고 항쟁에 참가할 수 있었던 것도 자기들이 국군복장을 하고 배후에서 시민군을 죽이고 시민군과 국군 사이릉 철저하게 교란한 작전이라는 것이었다."

 

만일 광주작전을 남조선정권과 군부가 조기에 단호하게 대처하지 못했더라면 북한의 작전대로 전국적인 반란으로 확대돼서 국가를 위협할 수 있는 위험이 있었고, 만약 이런 기회를 이용하여 북한이 남으로 밀고 내려왔다면 제2의 6.25동란이 재현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2) 다음은 광주작전에 참여했던 정찰부장의 말이다

"5.18광주항쟁이 일어났을 때 나는 남조선의 서울에서 작은 상인으로 위장하여 활동하고 있었다. 서울에서 광주까지는 너무 먼 거리였고 남조선 언론 일체가 군사정권에 의해서 철저하게 통제되고 있었기 때문에 광주에서 그런 사건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정말 모르고 있었다. 나도 모르고 있었지만 서울사람들 전체가 모르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내가 그 사건을 알게 된 것은 광주 시내가 시민군에 의해서 장악된 뒤였다.평양에서 지시가 내려왔는데 광주항쟁이 수일 안에 전국적인 무장봉기로 확산될 것을 대비하여 서울에서도 철저히 준비하고 있으라는 지시였다. 그때 우리는 남조선정권은 반드시 무너질 것이고 통일은 어떤방법으로든 멀지 않았다는 쪽으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적후에 오래 살면서 그때만큼 긍지를 가져 본적이 없었다."

 

 

 

당시만 해도 북한사회에서 김대중의 몸값은 '선생님'이라는 칭호와 함께 통일혁명당의 수괴였던 김종태, 차영도 등과 함께 조국통일과 남조선혁명을 위해서 가장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영웅'으로 취급되고 있는 현실이었다. 5.18광주사태는 철저하게 북한의 모략과 남한 내의 불순분자들에 의해서 만들어진, 국가전복을 위한 위험천만하고 비극적인 사건이었다.

 

 

 

증언 8) 광주의 살인자는 북한군이예요/전 함북 청진시, 가정주부

2005년 1월 21일 북한을 탈출해 2007년 여름에 대한민국으로 내려온 30대 후반의 여성이다.

 

 

 

1) 5.18의 목적

북한은 해방 이후부터 언제나 대남작전에 사용해 왔듯이 치밀하게 계산된 군사적 목적을 바탕으로 조작과 파괴 ,군중혼란과 혼선을 통한 이간질을 교묘하게 적용하여 세상물정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공산주의에 대한 방어장치가 없는 젊은 대학생들과 청년들을 돌격대로 내세워서 반정부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무장폭동의 방법으로 남한사회의 민주국가를 전복시키며 김대중을 위수로 하는 친북정권을 만드는데그 목적이 있다.

 

2) 마화숙은 일본인을 가장한 첩보요원

 

 

나의 외숙모는 15살에 당 기관에서 나온 두 명의 낯선 사람에게 훈련소로 끌려가 일본에서 온 사람들로부터 전문적으로 일본말과 그들의 생활습성에 대해서만 교육받으면서 전문적인 일본담당 첩보원으로 길들여졌다.훈련소에서 여성간첩 한 명을 키워내는 품은 남성 10명을 키워내는 것과 맞먹는 비용이 들어갈 정도로 그만큼 댓가가 크다고 하였다.

 

"오늘 아침에 발생한 사건에 대하여 사죄드립니다. --생략--

 

 

며느리가 될 마화숙 동무는 우리 조국이 가장 사랑하는 전사이며 어버이 수령님의 충직한 딸입니다."

 

외숙모는 결혼하고 한 달만에 평양으로 올라가 1978년에 대성무역상사 일본지사에 편입되 일본으로 건너갔다. 그녀는 1981년 일본에서 귀국할 때까지 남조선에 일본인 신분으로 세 번 정도를 직접 다녀왔으며 조총련과 연계하여 남조선의 지하조직들에 일본으로부터 자금을 지원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증언 9. 5.18은 북한의 투쟁구호/전 문천제련소 노동자

 

1) 북한에서 최고인 것에는 명예의 '5.18칭호' 하사

 

 

'무사고정시견인초과운동'은 기관차, 화차의 정비 및 화물의 상차와 하차시간, 역들에서 정차시간 단축 등을 통해 무사고로 더 많은 화물을 수송하자는데 목적이 있었으며 북한철도수송의 혁신운동이라 할 수 있다. 룡성기계연합소에서 만든 1만 톤 프레스를 '5.18청년호'로 부르는 것은 물론 탱크에다가도 '5.18전진호', 어느 일 잘하는 생산직장에는 '영예의 5.18청년직장'이라는 칭호가 하사되었다.

 

 

2) 북한은 해마다 5월이 되면 전국적으로 수많은 행사와 집회들을 조직적으로 개최한

3) 문신 비표

언제 한 번은 직장의 부기원 처녀가 당위원회 지도원의 팔목에 새겨져 있는 문신을 가리키면서 무엇 때문에 그런 것을 하고 다니는지 묻자 "전쟁이 일어나거나 전투 도중에 죽거나 혹은 남조선에 파견되어 나가서 싸우다가 사망하면 팔목에 새겨져 있는 문신이 자기라는 것을 증명해 줄 수 있는 유일한 증거"라고 대답을 하는 것이었다.

 

 

 

4) 대원열두 명 중 두 명은 죽고, 세 명은 행방불명 됐다

 

 

 

 

#증언 10.위부 반탐과장의/전 러시아 벌목공

 

1) 창고장 일행 12명 4월 말경 잠수함으로 남포항을 출발해 서해안에 상륙, 귀국은 백령도 경유

 

창고장은 북한에서 1970년대 말에 극비밀리에 조직한 특수부대인 당원사단 출신이었다. 그들 조는 1980년 3월 말경에 남조선으로 침투할 임무를 부여받고 한 달 정도의 가상훈련을 집중적으로 받은 다음 1980년 4월 말경에 잠수함으로 남포항을 출발해 서해안에 상륙하여 서울시내로 침투하였다. 그의 일행은 총 12명이었다. 그들이 가장 집중적으로 받은 훈련은 '자폭훈련'이었다. 부득이한 경우에 적들에게 잡힐상황이 조성되었거나 잡히면 신분을 노출시키지 말고 무조건 자폭해서 시체도 남기지 말라는 것이 첫 번째 임무사항이라 하였다. 그들이 은신한 아지트는 2층으로 지어진 단독주택 지하방이었다. 그 집의 주인은 고정간첩이었다.

 

 

 

창고장 일행은 광주 인근지역에 있는 군수풍고장을 습격해서 장갑차와 군용트럭들을 탈취할 때 북한에서 파견되어 나간 알 만한 사람들의 얼굴들을 적지 않게 보았으나 적후활동에서 지켜야 할 엄격한 준수사항이 있는 관계로 서로 침묵 속에 무언의 대화만 나누었다고 한다.탈취한  장갑차는 특수부대요원들의 몫이었고, 군용트럭들도 일부는 북한요원들이 사용하면서 대부분은 시민군에게 나누어주었다.

 

 

 

2) 총상 당한 대원을 수류탄으로 폭파시키고 탈출 해

빠져나오는 과정에서 불의의 기습을 받아 신의주출신 외아들이 복부에 총상을 당했다. 각자가 휴대하고 있던 수류탄을 목숨 시퍼렇게 붙어있는 전우의 목에 매달아 놓고 현장을 탈출하였다. 독자 외아들은 북한의 잔인한 '당과 수령'을 위해서 뼈 조각 하나도 제대로 남기지 못하고 26살 젊은 나이에 남조선 땅에서 사라졌다는 것이다. 고장 일행은 백령도로 건너가서 며칠 동안 잠복해 있다가  대남연락소 소속 잠수정에 의해서 남조선을 빠져나갔다고 하였다.

 

 

 

#증언 11. 5.18광주와 북한/전 조선동맹 작가

1) 김형철 일행 23명, 강원도 철원에서 충청도까지 땅굴로 침투했다 지령받고 철수

 

 

내가 살던 고향에는 내가 가장 친하게 '형'이라고 부르던 김형철이라고 불리는 이상친구 형이 한 명 있었다. 그 사람이 바로 1980년 5.18광주사건 때 남조선에 직접 내려왔던 사람이다. 그는 광주현장에 직접 참가해서 싸운 사람이 아니고 광주폭동을 전국적으로 확대시키려 했던 북한의 의도에 따라 싸움이 한창일 때 지원작전을 위해서 도중에 파견되었던 사람이다. 광주에 들어갈 사람들은 광주사태가 일어나기 전에 이미 광주에 투입됐다는 것이었다.

 

 

 

 

그들 23명 일행은 진압군과 시민군이 가장 치열하게 교전을 벌이던 날(5/21) 강원도 철원 쪽에서 땅굴로 내려왔다고하였다.남쪽 갱도 입구에서 그들을 마중한 사람은 두 늙은 내외라고 하였다. 위치는 한밤중이라 알수 없었지만, 충남(?)의 주위가 한산한 농촌마을이었다 한다. 그들은 여러 개 조로 분산해서 전라북도 지역으로 출발하였다고 한다. 그들의 일차 타격목표는 전라북도 지역에 있는 군사시설 및 정부기관들이라고 하였다. 임무 대상이 코앞에 있었지만 상부의 명령에 따라 어쩔 수 없이 도중에 발걸음을 돌리게 되었다 한다.

 

 

 

2) 신분 노출되자 쫒아가 두 남녀를 총으로 살해 해

한 번은 무기고에서 탈취한 무기를 나눠주는 과정에서 실수로 20대 중반의 여성에게 정체가 노출될 뻔한 위허만 일을 당한 적이 있었다. "이 쌍간나새끼 괴뢰군 새끼들 몰려오는데 총안잡고 뭐하고 서 있니?" "아저씨 광주사람이 아닌 것 같은데 어디서 오셨나요?"그는 무기를 나눠주다 말고 그 여자의 뒤를 쫒아가 그녀와 그녀의 남자친구를 총으로 감쪽같이 죽여버렸다. 그는 자신의 정체가 노출되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증언 13. 5.18광주폭동의 살인마는 김정일이다/전 북한 3.13공장 지배인

1) 탈북 동기

 

북한에서의 신분이 있음에도 내가 남조선으로의 탈북을 결심하게 된 동기는 나의친구가 가져다 준 라디오를 들으면서 세상을 알고 김일성 부자의 독재체제에 대한 회의감을 느꼈던 것이 거의 동기였다.

 

 

2) 공화국영웅의 곤조

"네가 뭔데 남의 일에 참견이야. 지금 네가 앉아 있는 자리가 그렇게 높아 보여? 너 내가 누군지 알아? 나한테 한 번 죽어볼래?" "야, 내가 왜 너한테 죽어야 되냐. 그깟 영웅이면 다냐? 조선에 영웅이 너 하나가 아니야. 나도 시켜주면 얼마든지 너 처럼 영웅이 돼" "이 새끼가 정말 죽고 싶어서 환장을 했나. 너 정말 세상물정 모르는 놈이로구나. 내가 바로 광주인민봉기에 내려갔다가 괴뢰군 새끼들 죽이고온 사람이야. 집안구석에 틀어박혀서 밥 숟갈질이나 하던 것들이 뭘 얼마나 알아서 주둥아리 질이야?"

 

 

 

중앙당에서 내려온 지도검열부장은 광주인민봉기는 남조선을 해방하고 조국을 통일하기 위한 확실한 계획에 따라 김일성과 김정일이 대남연락소가 아닌 조선인민군 정찰국과 특수부대들을 비롯한 전투무력들을 직접 광주에 파견하여 남조선인민들의 투쟁을 도운 것에 대해서 특별히 지시하고 진두지휘까지 했다고 하였다.

 

 

 

그 공화국영웅은 제대하기 전까지 남조선에 세 번씩이나 침투해서 작전에 참가한 경력이 있는 사람이라고 한다. 광주인민봉기에는 그 사람도 알 수 없을 정도로 많은 특수부대 전투원들이 참가했는데, 그 사람들은 광주인민봉기가 일어나기 전에 이미 남조선에 침투되어 들어가서 사전 준비작업을 했었다고 했다. 그들은 임무가 서로 달랐는데 남조선인민들을 자극시켜서 봉기에 자각적으로 참가하게 하는 특수 교란작전이라고 했다. 즉 배후에서 조종하면서 전국적으로 광주인민항쟁의 여파가 퍼져나가게 만드는 것이 북한에서 파견된 사람들의 임무였지만 생각처럼 사건이 번지지 않자 북한에서는 현장에 파견된 특수부대 요원들에게 될수록 정체를 노출시키지 말고 주도적으로 폭동을 유도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고 하였다.

 

북한으로부터 새로운 지시가 떨어지면서 특수작전요원들은 시민들 속에 위장 침투하여 본격적인 살인 파괴활동을 조작하면서 광주시민들을 자극하는데 총력을 기울였다고 한다. 광주인민봉기에서 죽은 사람들 중에 실제로 진압군에 맞아 죽은 사람은 얼마되지 않고, 대부분의 시민들은 북한에서 파견된 특수부대요원들에 의해서 무참하게 죽었다고 하였다. 또한 그들의 정체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눈치를 채거나 이상한 기미를 보이기만 하면 그들은 두말없이 즉석에서 시체가 되어 처리되었다고 하였다.

 

 

 

3) 시신 처리

공화국영웅의 말에 의하면 많은 사람이 죽었지만 시체로 돌아온 사람은 한 사람도 없고, 대부분 전투현장에서 죽은 즉시로 남조선 사람들이 눈치 채지 못하게 처리되었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증언 14. 천마산에 시체도 없이 만들어진 광주 영웅들의 묘지/전 북한농촌관리위원회 부위원장

 

 

5.18광주사태 당시에는 북한군 전 부대가 전쟁상태에 돌입해 있었고 우리부대도 진지에 나가서 전투식량으로 끼니를 떼우면서 신발도 못 벗고 대기상태에 있었다.

 

 

 

1) 신천박물관

 

 

북한에는 광주사태에 참가했다가 돌아가서 공화국영웅칭호를 받은 사람들이 많이 생존해 있고, 제가 살던 곳에는 광주에서 죽고 북한으로 돌아가지 못한 사람들을 추모하는 영웅묘지가 있다. 현재 함경북도 청진시 천마산 마루에는 대남작전에 참가하였다가 사망한 전투영웅들의 묘지가 있다. 묘지 비문에는 "여기에 누워 있는 동지들은 1980년 5월, 남조선에 파견되어 남조선혁명과 조국통일을 위해서 영웅적으로 싸우다가 산화하였다"는 식으로 내용이 적혀 있다.

 

 

 

노동지도원의 동생은 일본에서 제일교포 신분으로 남조선의 남쪽에 있는 지방대학에 유학생으로 위장침투해서 공부를 하면서 북한임무를 수행했다고 한다.

 

 

 

#관련기사 보기: "화려한 사기극의 실체 5.18"의 재구성/ http://blog.daum.net/02mrkorea/526

 

                

#다음은 탈북작가 이주성씨가 펴낸 <보랏빛 호수/비봉출판사>에서 중요한 사항만 추려 발췌했다.

 

 

문제심 일행의 광주 침투 및 철수작전(보랏빛 호수/P113~133)

 

 

1. 침투조 편성

문제심은  부대로 돌아오는 즉시 작전회의를 소집했다. 다시 한 번 남조선 전문가들과 머리를 맞대고 앉았다.

 

 

 

"동무들, 내일이면 광주로 출발해야 하오. 전라도 백성놈들과 괴뢰군이 어떻게 하면 미친개처럼 악을 쓰며 싸우도록 할 것인가 하는 동무들의 의견을 말해 보시오."

 

 

문제심은 그들의 의견을 종합해 보았다. '전라도와 경상도 지역갈등의 핵심이 무엇인가.' 그중에서 몇 개의 안을 모아 정리했다. "광주시민 70%는 죽여도 좋다." "전두환을 찢어 죽여라." 등 등. '유언비어는 퍼뜨리는 시기를 잘 골라야 한다.(P113)

 

 

5월 19일 오전 10시, 비상소집 나팔소리가 울려 퍼지자 연락소 앞 운동장에는 50여 명의 전투 인원이 위장복 차림으로 모였다.

 

 

 

"이제부터 내 말을 명심해 들으시오. 1010부대는 최고사령관동지의 작전 방침에 따라 이동훈련에 돌입한다. 모든 전투원들은 각 조장의 지시에 따른다. 각 조는 전투단위로 움직일 것!"(P114~123)

 

 

1010부대는 1분견대와 2분견대, 그리고 직속부대로 편성돼 있었다. 정순성이 속한 조는 12명으로 구성되어 있는 직속부대 산하였다. 그 구성원의 명단은 다음과 같다.

 

  조   장: 리상국 중위(23세)

  부조장: 한광호 소위(22세)

  대   원: 김일룡(21세), 한철수(21세), 황보석(21세), 최길산(20세),---, 그리고 막내 주인공/정순성 상사(19세)

 

이들에게 지급된 보급품은 아래와 같다.

전투원 한 사람당 총탄 300발, 수류탄 2발, 권총 1정, 카빈총 1정, 단도, 포승줄, 구급 치료약을 배정받았다.

식량은 미숫가루 6일분, 말린 건쌀(물을 넣으면 먹을 수 있게 된 식량) 3일분, 영양 알약(비상용 전투식량) 1개월분이었다.

피복은 잠바 형식으로 색상은 여러가지였다. 바지는 청바지를 비롯해 몇 가지와 신발은 운동화였다.

 

순성의 조는 연락소 소장(파견대장)을 호위하는 임무를 맡은 직속부대였다. 파견대장은 문제심 소장이었다.

다음은 조장의 말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훈련 임무는 파견대장 동지의 신변을 안전하게 호위하는 것이다. 사소한 실수나 잘못으로 파견대장 동지의 신변에 조금이라도 위험이 발생하고 다치는 일이 있다면 우리 모두는 존재할 이유가 없다. 파견대장 동지의 신변이 곧 우리의 생명이라는 것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된다."

 

 

2. 출발

 

대양리를 떠나 5월 19일 저녁 9시경, 순성 일행은 황해남도 장연군 장산곶 바닷가에 도착했다. 조원들은 차에서 내리는 순서대로 배에 올라탔다. 그들이 탄 배는 길이 20m의 남조선 일반 어선과 같은 구조로 만든 배였다. 고속엔진 4대를 가동하면 시속 100km 이상의 속도를 낼 수 있는 고속 어선이었다. 불가피한 상황이 발생하면 자폭할 수 있도록 수백 kg의 고성능 다이너마이트도 설치되 있었다. 기관포와 자동총으로 완전무장하고 공작원들을 실어나르는 북한에서 특수 제작된 간첩선이었다.

 

 

 

"전투 장비를 착용하고 갑판으로 오르라." 조장의 명령이 떨어졌다. "육지로 오르라." 조장의 지시에 따라 조원들은 뭍을 향해 헤엄치기 시작했다. 배에서 기슭까지는 100m는 넘을 듯 싶었다. 그날이 5월 21일, 밤 12시경이었다. 꼬박 2일이 걸렸다.

 

 

1) 문제심, 선발대로부터 첫 번째 상황보고 받다

 

바닷가에서 조금 떨어진 야산에서 일행은 멈췄다. 3명씩 한 조가 되어 지시가 있을 때까지 은폐해 있으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잠시 후 대여섯으로 보이는 검은 물체들이 나타나 거침없이 대장이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문 대장은 조장들을 불러 모았다.

 

 

 

"안녕하십니까. 상위 000입니다." 그들은 차례로 대장에게 보고를 했다. "동무들, 정말 큰일을 했어. 최고사령부에서는 동무들의 전투성과를 높이 평가한다고 하시면서 나에게 직접 최고사령관의 이름으로 감사를 전달하라는 지시가 있었소." "위대한 수령님과 친애하는 김정일 동지를 위하여 복무함!" "그래 지금 남조선 정세와 광주폭동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어? 1타격대부터 보고하라." "알겠습니다." 상황보고는 30분이 넘게 이어졌다. 아시아자동차 공장과 무기고, 경찰서를 습격해 무기와 장갑차, 트럭 등을 노획했다는 말 같았다.

 

 

리상국 조장이 조원들에게 격앙된 어조로 말을 시작했다.

 

 

"지금 우리는 남조선 광주에서 멀지 않은 곳에 와 있다. 광주에서는 최고사령관 김일성 동지의 대남 통일전략과 작전 구상에따라 폭동이 일어난 지 6일이 되었다. 이미 광주폭동에는 우리 조선인민군 타격대들이 남조선 동지들과 함류하여 광주를 장악했다." "우리에게는 최고사령관 동지의 명령을 받들고 광주폭동을 직접 지휘해야 하는 중대한 임무를 받고 파견된 대장 동지를 목숨으로 보위해야 하는 임무가 맡겨졌다---. 지금부터 전투행동으로 넘어간다." 여기서 조장이 말하는 '전투행동'은 우리가 가는 노상에서 만나는 누구든 남녀노소 가리지 말고 처리해 버려야 함(죽여서 땅에 묻는 것)을 말한다.

 

 

3. 간첩 손성모, 증심사 스님 역할하며 북한군 길 안내하고 광주작전 지휘했다(P124~133)

 

순성이네들이 가고 있는 방향 멀리쯤에 옛 기와 건물이 나타났다. 순성은 문득 황해도 구월산에서 보았던 중들이 살고 있는 절간 생각이 떠올랐다.

 

 

 

"조장 동지! 저 집이 무슨 집입니까?" "응. 여기가 광주 무등산 '증심사'라는 절간이야." 잠시 사방으로 둘러싸인 알록달록 도색한 건물을 보고 있는데 출입문이 열리고 까가머리의 중 한 사람이 나왔다.

 

 

 

"소장 동지, 먼 길 오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이미 안면이 있는 것 같았다. 그는 문제심 대장에게 머리를 깊이 숙여 인사를 했다. 그리고는 이내 두 손을 내밀어 대장의 오른손을 감싸 쥐고는 연신 허리를 굽신거렸다. 문제심은 중의 머리를 품에 끌어안고 뜨겁게 포옹을 했다. 그는 절간 구석진 곳에 있는 어느 한 건물로 대장을 안내해 들어갔다.

 

 

 

"7번 동무, 그동안 정말 수고 많았소. 당에서는 동무의 전투성과를 높이 평가하고 있소. 그리고 최고사령관 김일성 동지께서 는 동무에게 공화국 공민의 최고 영예인 공화국영웅 칭호를 수여하도록 크나큰 영광을 안겨 주시었소." "아니 저에게 공화국영웅 칭호를 말입니까? ----. 소장 동지,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와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 동지를 위하여 목숨바쳐 임무를 완수하고 본부로 돌아가겠습니다."

 

 

 

"당에서는 동무가 파견된 지 몇 달 안 되는 기간에 정말 많은 임무를 수행했다고 높이 평가하였소. 동무 고향이 광주 가까운 곳이고 이곳 지형을 손금 보듯 하고 있으니까 가능한 일이라고 보오. 이번 광주폭동에 침투하여 맹활약을 하고 있는 우리 군인들의 길 안내를 동무가 잘 해주었기에 커다란 성과를 거둘 수 있었소."

 

 

 

4. 아시아자동차 공장과 38개 무기고를 털고, 교도소를 습격한 것은 북한특수군의 소행

"소장 동지, 이번 광주폭동과 관련해 저희가 진행한 전투성과를 보고하겠습니다. 이번 전라남도 각 지역에 있는 경찰서를 습격하여 총을 5,400여 정을 노획하여 광주폭동 시민군을 무장시켰습니다. 그리고 아시아자동차 공장을 습격하여 장갑차 4대와 군용트럭, 대형버스 등 300여 대를 노획하였습니다. 또한 폭약 저장소들을 습격하여 10톤에 가까운 폭약과 4만 미터에 달하는 도화선과 35만 개의 뇌관을 탈취하였습니다. 소장 동지, 한 가지 아쉬운 것은 교도소 습격이 실패한 것입니다. 적들이 3m가 넘는 견고한 콘크리트 담벼락에 의지하여 저항하는 바람에 우리 쪽에서 희생자가 많이 났고, 시간이 너무 지체되어 부득이 철수하였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북한군이 아시아자동차 공장과 44개 무기고와 교도소를 습격한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21일 08시에 광주 톨게이트를 지나는 20사단을 공격한 것도 전후 사정을 보면 이들의 소행인 것을 알 수 있다.

 

5. 교도소를 습격하다 숨진 자들의 시신은 어떻게 처리했나?

 

"전사한 동무들의 시신은 어떻게 처리했소?" "한 명도 빠짐없이 우리만 알 수 있는 곳에 묻었습니다. 저에게 그들이 묻힌 곳을 표시한 약도가 있습니다." "조국이 통일되면 우리가 다시 그 동무들의시신을 찾아내어 잘 안치해야 하오. 그러므로 그들이 묻혀있는 위치를 잘 기억해 두어야 하오. 이번에 그 약도를 사진 찍어서 나에게 주시오. 당 중앙에 보고하고 기록에 남겨야겠소." "알겠습니다."

 

#청주 흥덕지구에서 발굴된 무연고 유골 430구의 단서(비밀)가 여기에 있다.

 

 

6. 그 당시 한국정부의 군부나 정보기관들은 북한군의 개입사실 몰랐다

 

"남조선 괴뢰정부나 군부, 안기부 쪽에서 우리가 이번 광주사건에 개입했다는 사실을 포착하거나 알고 있다는 정황은 없소?" "지금까지 별다른 기미가 없는 것으로 봐서는 아직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남조선 괴뢰들도 머저리가 아니오. 그러니 매사에 신중하게 일처리 해주오. 특히 동무는 적후에서 활동하고 있는 만큼 자신의 신변 안전에 각별히 주의를 돌려야겠소. 건강한 몸으로 무사히 임무를 완수하고 본부에 돌아오길 바라오." 파견대장과 까까머리 중의 대화는 한 시간 넘게 진행되었다. 남파된 북한 특수부대원들을 시민군과 진압군 두 부류로 나누어 침투했다는 것과 , 상대방 진영에 총격을 가해 폭동으로 발전시켰다는 사실도 순성은 그때 알게 되었다.

 

#이것은 한국군에게 있어 매우 중요한 정보다.

 

 

 

"조장, 대원들을 식사시켜야지." "네." 대나무 다다미를 반듯하게 깔아놓은 방바닥 위의 긴 나무 밥상에는 순성으로서는 머리털이 돋은 후 처음 보는 음식들이 놓여 있었다. "진수성찬을 차렸구만! 고맙소. 손 동무. 잊지 않겠소.조국에 돌아오면 그때 내가 한 턱 내겠소, 아니 한 턱이 아니라 열 턱도 더 내야지---." "소장 동지 마음뿐입니다. 많이 드십시오."

 

 

 

"손 동무, 신변에 각별히 주의하여 임무를 마치고 돌아오길 바라오." "소장 동지, 최고사령관 김일성 동지와 친애하는 지도자 동지께 저의 목숨이 다하는 순간까지 조국에서 준 임무를 꼭 수행하겠다고 하더란 보고를 올려주시기 바랍니다.--- 소장 동지, 안녕히 가십시오." 대장은 거수경례를 하는 까까머리 중을 향해 어서 들어가라며 손짓을 하고는 발길을 돌렸다.

 

 

 

"출발, 017, 019번 앞서 걸으며 전방을 잘 감시하라." 조장의 명령이 떨어졌다.

 

 

1) 나물 뜯던 두 아낙네, 발각 즉시 살해 돼

 

오후 3시경, 절간을 출발해서 오던 길과는 다른 곳으로 들어섰다. 광주를 향해 출발할때 8명이었던 일행은 돌아갈 때는 대장까지 6명이었다. 맨 앞에서 걷고 있는 장발머리 청년은 까까머리 중이 대장 일행의 길안내를 위해 파견한 부하인 것 같았다. 순성 일행은 이내 계곡을 가로질러 산으로 올랐다. 그 과정에 허름한 민가도 보았고, 일행이 콩밭을 지나다가 나물뜯던 두 아낙네에 노출되기도 하였다. "서라!" 조장의 야무진 소리와 함께 대오가 멈춰 섰다. "017번, 이 동무와 함께 저것들을 처리해 버리라. 우리는 산 능선에 올라가 있겠다." "알았습니다." 동무라고 부른 사람은 조장이 이미 알고 있는 까까머리 중이 붙여 준 길 안내자였다.

 

 

 

"조장 동지, 흔적도 없이 처리했습니다." "또 다른 정황은 없었어?" "없었습니다." "시체는?" "막에서 300m 떨어진 풀숲에 땅을 파고 묻었습니다." "피를 흘리거나 흔적 같은 건 남기지 않았지?" "한 방울도 흘리지 않았습니다. 주먹으로 급소를 친 다음 목을 꺾어 묻었습니다." "잘 했어. 출발하라!" 그들이 부대원들이 있는 곳에 도착한 것은 오후 6시가 넘어서였다.

 

 

 

광주에 남파 돼 아시아자동차 공장, 무기고들과 교도소를 습격할 때 길 안내를 맡았던 주인공, 그 작전을 조직-지휘했던 무등산 증심사 절간의 까까머리 중은 바로 간첩, '손성모'였다. 그는 그 후 1981년 문경에서 체포되어 19년간 감옥살이를 했고,1999년 김대중의 특사로 풀려나 2000년 '비전향장기수'로 북조선 땅을 밟았다. 김정일은 손성모가 1980년 5월 광주폭동에서 세운 골로를 높이 평가하여 그에게 '조국통일상과 공화국영웅 칭호'를 수여하도록 직접 지시했다.

 

 

7.문제심 일행, 23일 오전 전남도청에 입성(P134~136)

증심사에서 나와 광주시 쪽으로 방향을 틀어 행군을 계속하다 산속에서 일박을 한 다음 날 아침이었다. "조원 전체 모엿!" 조장의 명령이 떨어지자 순성을 비롯한 직속부대 호위원들은 전투장비를 갖추고 은폐호 밖으로 뛰쳐나와 일렬횡대로 한 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문제심 파견대장의 신변호위를 맡은 12명의 조원들밖에 안 보였다. "지금부터 전체 호위원들은 전투에 진입한다." 한동안 계속 걸었다. 1km 전방에 2~3층 붉은색 건물들이 눈에 들어왔다. 조장이 맨 앞에 서고 문제심 대장이 그 뒤를 따랐다. 차도를 몇 번 건너 넓은 광장 한 복판에 자리 잡은 4층 건물이 있는 곳으로 곧바로 향했다.

 

 

 

1) 문제심, 광주도청에서 북한군 지휘관들로부터 세 번째 상황보고 받다

 

모래를 담은 아마직 포대로 바리케이드를 쌓아놓은 곳에 총을 잡고 있는, 사복과 얼룩달룩한 위장복을 입은 수십 명의 젊은 사람들이 건물 주위에서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건물을 지키는 청년들인 것 같았다. 건물 입구로 대장과 호위원 일행이 다가가는데 젊은 청년 몇 명이 뛰어나왔다. "대장 동지, 안녕하십니까!" 문제심 대장에게 머리를 장발로 기른 청년들이 거수경례를 했다. "동무들, 수고 많소." 문제심은 그들의 손을 일일이 잡아주었다. 마중을 나온 청년들이 앞 건물 안으로 들어가고 대장과 직속부대 대원 5명이 그 뒤를 따랐다. "021번, 019번은 여기 남아서 주변 상황을 살피라." 조장은 지시를 내리고 곧바로 지하로 사라졌다. 10분에 한 번꼴로 017번이 지하에서 나와 밖의 상황을 살폈다. 이따금 어디선가 총소리가 울리곤 했다.

 

 

 

광주도청 지하실에 모인 청년들은 이번 광주폭동에 남파된 조선인민군 타격대 지휘관들이었다. 현지 상황보고를 받고 난 문제심은 명령을 하달했다. "1타격대는 공수부대 군인들을 향해, 2타격대는 시민군 쪽을 향해 사격을 하라. 두 쪽에서 사망자가 나오게 정확히 쏴야 한다. 동시에 유언비어를 퍼뜨리도록 하라." 문제심의 작전계획은 기가 막히게 들어맞았다. 그 몇 마디 명령 때문에 광주는 골육상쟁의 마당으로 번졌다. "경상도 출신의 전두환이 전라도 광주시민 70%를 죽여도 좋다고 했다"는 유언비어는 광주사람들의 감정을 자극하고 폭발시킨 기폭제 역할을 톡톡히 했다. 또한 광주폭동 현장에 시민군으로 활약하던 북한 군인들을 시켜서 "전두환을 찢어 죽여라!"란 플레카드를 만들어 거리 곳곳에 내걸도록 지시했다. 대성공이었다. 붙는 불에 기름을 부은 격으로 폭동은 번져갔다. 문제심은 자신이 창안해 낸 전략이 이렇게까지 엄청난 효과를 가져올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대장 일행이 지하에서 나온 것은 2시간이 넘었을 때였다.

 

 

2) 깡마른 노숙자, 문 대장에 구걸하다가 그 즉시 살해 돼

 

"다른 일은 없었어?" "네, 별다른 정황이 없습니다." "수고했어." 직속부대 대원이 아닌 청년 몇 명이 먼저 건물 밖으로 나가고 조장이 대장 앞에서 밖으로 나섰다. 항상 그랬듯이 순성과 019번은 맨 뒤에 섰다. 대원 일행이 지하실에서 나와 도심의 한 골목길을 돌 때, 장신의 깡마른 노숙자 한 명이 문 대장을 가로막고 구걸을 했다가 3명의 대원들에 의해서 그 길로 황천길로 사라졌다. 

 

 

3) 문제심,  전남대총학생회 간부와 1시간 동안 접선

 

오후 2시가 지날쯤, 조장이 배낭에 짐을 가득 지고 장발족 한 명을 데리고 지휘부로 돌아왔다. 그는 전남대 총학생회 간부라고 하였다. 문제심은 그 청년의 손을 잡아 악수를 하고 자리를 옮겨, 1시간이 넘도록 문답식으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015번, 021번, 이 동무를 차도까지 모셔다드리고 오라." 차도까지는 대략 3km 가량 되었다. 그 학생은 사례비조로 100달러짜리 지폐 두 장을 내놓았으나 그들은 그것이 무엇인 지도 모르고 받아들었다. 조장에게 보고하니 함구령이 떨어졌다.

 

 

 

잠시 후, 배낭을 들고 온 조장이 말했다. "오늘 저녁 식사는 모여서 한다." 조장은 소담한 잔디가 덮인 평평한 곳을 골라 자리를 잡으라고 했다. 그리고 빵, 주스, 통조림이며 쌀밥 도시락, 당과류가 담긴 배낭을 헤쳐 놓았다. '와! 남조선이 잘 살긴 잘 사는구나--' 순성은 속으로 환호를 질렀다. "동무들, 이 음식들은 우리가 남조선 해방을 위해 수고한다고 동지들이 보내준 음식이야. 배부르게 먹고 힘을 내서 잘 싸워야 해." "알았습니다."

                                                             

#관련 동영상 보기/ 5.18남파되었던 김명국 동영상 (채널A 탕탕평평)

 

'광주작전(폭풍 1호작전)'은 누가 실행했나?

 

 

 

광주작전은 물론 작전초기에는 광주사람들을 자극하기 위해서 광주사람을 여러가지 험악한 형태로 죽여, 그것을 계엄군의 소행으로 뒤집어 씌우는 각종 모략전을 펼쳤다. 또한 초기에는 각종 유언비어를 만들어 유포하고, 시가전을 전개했다. 그러나 실제로 5.18작전의 하이라이트는 21일 하루 동안에 이루어진 다음의 4가지 작전으로 압축할 수 있다. 하나는 21일 08시에, 톨게이트를 지나는20사단을 습격해 차량과 무기들을 획득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 획득한 지프차들을 몰고 아시아자동차 공장을 습격한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거기서 빼앗은 차량들을 몰고 17개 시-군에 산재한 38개 무기고를 습격한것이다.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수많은 재소자들을 수용하고 있는 광주교도소를 공격한것이다. 위에 열거한 4개의 작전은 일반 시민 이나 대학생들로서는 감히 생각조차 할 수 없는, 고도로 훈련된 특수군 만이 할 수 있는 작전들인 것이다. 그럼, 저들이 광주시민이 아니라면 누가 이 작전들을 수행했는가? 북한의 기록에 의하면, '5.18작전'은 김일성 자신이 지시했다고 자백하고 있다.

 

 

 

위에 열거한 4개의 작전은 모두가 연관성이 있으며, 21일 하루 동안에 일목요연하게 진행되었다. 이 사실들을 문제심 대장은 22일 새벽, 선발대로 온 핵심요원들로부터 야산에서 접선하여 첫 번째 보고를 받았고, 그날 오전에는 무등산 증심사로 가서 간첩 손성모와 접선하여 한 시간 남짓 그와 같은 정세보고를 받았다. 이들 4개의 중요한 작전들은 문제심 일행이 광주에 오기 전에 이미 선발대들에 의해서 실행되었다. 따라서 '공작의 달인', 문제심은 사실상 작전 마지막이라 할 수 있는 23일 도청 지하실에 들러 북한군 간부들과 2시간 남짓 정세 전반의 브리핑을 받고 '간'만 보고, '패배의 쓴잔'을 들고 쓸쓸히 돌아간 꼴이 되었다.

 

 

 

 

#관련기사 보기: 광주, 10일간의 '5.18작전' 再構成("12와 5.18 상"/지만원 저/도서출판 시스템 P365~417)

 

 

1. 광주톨게이트 지나는 20사단 습격사건

 

 

08:00시, 어떻게 정보가 새어나갔는지 시위대는 광주 톨게이트에 대거 운집해 있다가 육로로 광주에 출동 중이던 20사단 지휘부를 막대기와 화염병으로 공격하여 지휘용 지프차 14대와 4정의 M-16 및 탑재된 무기를 탈취했다. 사병 1명이 실종됐다가 나중에 복귀했고 2명이 부상을 입었다.

 

 

#아래에 나오는 <아시아자동차-무기고-교도소> 습격작전은 이미 문제심이 작성한 '5.18 PLAN'에 나와 있으며, 또한 '5.18 총화'에도 나온다. 따라서 '20사단 습격' 문제만 증명하면 게임은 끝난다. 오전 8시에 20사단이 광주 톨게이트를 통과한다는 극비정보를 알고 연도에 나와있는 환영인파 뒤에 300명이 잠복(숨어 있음)해 있다가 급습해 사단장 지프차를 비롯해 지프차 14대를 빼앗아 곧바로 아시아자동차 공장으로 직행했다. 오전 9시에는 또 다른 300명과 합세해서 아시아자동차 공장을 급습했다.

 

#이른 아침에 광주시민이 연도에 나올 이유가 없고, 300명이 환영나온 인파 뒤에 숨었었다면 그들은 한 통속인 것이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유추해 볼 수가 있다. 이 작전은 사전에 예측할 수 있는 일이 아니며, 북한특수군 300명을 숨겨준 인파는 아마도 그들과 함께 침투한 900여 명의 공작조일 것이다. 최소한 그정도는 되어야 300명을 가려줄 수 있기 때문이다. 나머지 공격이 모두 북한군의 작전이었다고 자백하였으니, 전후 맥락으로 보면 이 또한 저들의 작전임이 틀림없다.

 

 

    

 

2. 아시아자동차 공장과 전남 17개 시-군에 산재한 44개 무기고 습격사건 

 

 

09:00시, 20사단 지휘차량을 타고 온 시위대 300여 명과 고속버스 5대를 타고 온 또 다른 시위대 300여 명이 아시아자동차를 점거하여 장갑차 4대와 군용트럭 374대를 탈취했다. 이어서 전남지역 17개 시-군에 산재한 38개 무기고를 12시부터 16시까지 불과 4시간만에 다 털었다. 2개 연대 분의 무기였다.

 

 

 

 

3. 2700여 명의 죄수들이 수감된 광주교도소 습격사건

광주교도소에 대한 무장시위대의 무력공격은 5월 21일을 전후하여 6차례나 감행되었다. 교도소를 점령하여 2,700여 명의 수용자와 170여 명의 좌익수를 해방시킨다는 것은 광주 항쟁을 순수한 민주화 운동으로만 보기 어렵다는 시각에 일조하는 매우 중요한 대목이 아닐 수 없다.

 

 

4. 북한특수군, 무리하게 교도소 공격하다 약 500여 명 사망

 

광주시민들이 폭동에 적극적으로 가담하지 않자 죄수들을 풀어 폭동의 동력으로 삼고자 교도소를 무리하게 6회나 공격했다.

2014년 5월 13일, 청주 흥덕지구에서 발굴된 무연고 시신 430구와 북한의 신천박물관에 설치된 '2기의 가묘와 추념비'가 이를 입증해주고 있다.

#관련기사 보기

5.18사건시 북한군 개입근거 기자회견/ http://blog.daum.net/02mrkorea/593

    

 

 

북한의 5.18作戰 자체평가      

 

 

 

본진보다 뒤늦게 광주에 온 문제심은 22일 오전 무등산 '증심사'에서 가짜 중(간첩), 손성모를 통해서 1시간 남짓 광주현황을 보고받았으며, 광주작전이 거의끝나는 시점인 23일 오전에야 그는 북한군이 접수한 도청까지 가서, 북한군 현지 지휘관들부터 2시간 남짓 자세한 보고를 받고 각종 지시를 할 수 있었다. 그는 촉과 감이 남달리 빨라 광주에 온지 불과 사흘만에 광주작전이 여의치 않음을 상부에 보고하고, 27일까지 전원 철수하라는 지령을 받는다.

 

 

        

 

1. 5월 25일 새벽 5시, 광주시 외곽 야산에서 북한군 사령부 앞으로 전파가 날아가고 있었다 

 

 

 

[묘향산 앞--- 전두환이 지휘하는 제11공수특전대가 광주시 전체를 포위했다. 괴뢰군 공수특전사와 교전으로 아군에서 많은 희생자가 발생했다. 광주폭동에 참가한 시민들이 앞다투어 진압군에 투항하고 있어 폭동은 실패로 끝나고 있다. 차후 아군의 작전계획에 대한 명령을 기다린다.](P143)

 

 

#이것만 보아도 전두환과 계엄군은 북한군을 제압한(물리친) 영웅들이다.

2. 아침 6시, 북한 최고사령부로부터 긴급 무전이 날아들었다.

[불새 앞-- 동무들의 전투성과를 축하한다. 최고사령부는 5월 27일까지 '폭풍 1호작전'에 참가했던 조선인민군 타격대들이 한 명의 낙오자도 없이 모두 철수하여 무사히 본부로 돌아올 것을 명령한다--- ]

 

 

 

 

3. 문제심, 긴급 지휘관 작전회의 소집

 

 

해가 하늘 중천에 가까이 하고 있었다. 폭동 전반 사태를 주시해오던 문제심은 급히 북한 게릴라 지휘관 작전회의를 소집하기로 결심했다. 문제심은 광주 시내 도처에서 시가전을 벌이는 분견대장들과 조장들에게 긴급 호출을 명령했다. 5명의 직속부대 전투원들을 광주폭동 현장에 급파했다.  호출명령을 전달할 임무를 받고 나갔던 마지막인원이 점심시간이 다 되어서야 지휘부에 도착했다. 서북쪽에 위치한 야산 소나무와 잡관목이 우거진 수풀 속에 지휘본부가 자리잡고 있었다.

 

 

 

회의 시간이 다가오자 멀리서부터 '자박, 자박' 낙엽 밟는 소리가 들렸다. 시민복 차림의 사람, 때로는 국군복 차림을 한 사람들이 하나, 둘 모습을 드러냈다. 하나 같이 20대 중반의 청년들이었다. 묻는 암호에 대답해야만 통과가 허락되었다. 그들은 광주시내와 외곽 곳곳에서 국군과 시민군으로 활동하던 1, 2타격대 소속 1, 2분견대 대장과 조장들이었다.

 

 

"수고했소. 정말 수고했소. 동무들은 모두 영웅들이야." 문제심은 그들의 손을 일일이 잡아주며 전투성과를 축하했다. 잠시  후, 30여 명의 군인들은 자리를 잡고 앉았다. 갑자기 문제심이 자리에서 일어서니 주변의 군인들이 모두 따라 일어섰다. "동무들, 최고사령관 김일성 동지의 남조선 해방작전 명령을 받들고 광주에 파견되어 영웅적으로 싸우다 희생된 혁명동지들을 위해 묵념합시다!" 문제심이 잠시 광주시내 쪽을 향해 머리를 숙였다. 그러자 그 자리에 모인 북한군 지휘성원들도 일제히 머리를 숙였다. 주섬주섬 자리를 잡고 앉는 산하 지휘관들을 바라보던 문제심이 말을 시작했다.

 

 

"최고사령관 동지께서는 동무들이 당과 조국을 위해 목숨 바쳐 싸우고 있는 데 대해 전투성과를 높이 평가하시였다---. 지금 광주폭동이 우리의 작전계획과는 다르게 어려운 싸움으로 번지고 있다.---""그동안 동무들은 적들을 전율과 공포로 몰아넣는 혁혁한 전투성과를 이룩했다. 그런데 동묻들도 보다시피 광주시는 적들에 완전히 포위됐다. 이제부터 내 말을 명심해 들으라.최고사령부에서는 우리가 처한 상황을 보고받고 철수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1, 2타격대는 모든 작전계획을 취소하고 뒷일을 깨끗이 마무리한 다음 내일부터 신속하게 철수를 시작하라. 직속부대는 나와 함께 움직인다. 특별히 강조할 것은 지금까지의 정황으로 볼 때 적들은 지금껏 우리가 남한에 침투하여 작전을 벌인 것을 눈치채지 못한 것 같다. 이제부터 될수록 접전을 피하고 흔적을 남기지 말라. 부득이한 경우 교전을 한다고 해도 최소한 인명 피해는 없어야 한다. 만약 전우가 총탄에 맞아 전사하거나 그 외의 상황이 벌어질 경우에는 교전규칙대로 행동하라."

 

 

 

 

문제심의 1010군부대 교전규칙에는 다음과 같은 규정들이 들어있었다. "전투에서 적군의 총에 맞아 전사하는 경우 시신을 노출시키지 말아야 한다. 또한 교전 중에 적군의 총탄에 맞아 심하게 부상을 당해 움직일 수 없거나 아군의 전투 행동에 지장을 줄 경우에는 자폭을 해야 한다."

 

 

 

 

작전회의가 끝나자 타격대 소속 지휘관들은 각각 담당부대로 돌아가고 직속부대원들만 남았다.

 

 

 

"조원들 모엿!" "동무들! 내일 새벽에 철수를 시작한다. 우리가 맡은 임무는 대장 동지의 신변을 목숨으로 보위하는 것이다. 사소한 실수라도 있어서는 절대로 안 된다. 만약의 경우 적들과 전투를 할 수 있다. 그러나 살아서 적들에게 붙잡히는 일만은 없어야 한다. 고향에 계시는 부모님들과 형제들을 생각해서라도 최고사령관 김일성 동지의 전사답게 싸우다가 죽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기 바란다. 지금 형편을 보니 우리가 반드시 살아서 동아갈 수 있다는 담보가 없다. 광주 봉기자들의 대열에서 동요가 일어나고 싸움을 포기하고 도망치기 시작하였다. 상황이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고, 함께 움직이지 못하고 흩어질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모두가 각자 맡은 임무대로 행동해야 한다. 우리는 북한에 두고 온 부모와 형제들을 생각해서라도 잡히거나 변절자가 되지말자!---"(P149)

 

 

 

 

 

철수(퇴각) 작전

 

 

 

 

작전회의가 끝나자 조원들은 헤어져서 각자 맡은 위치로 돌아갔다. 순성과 015번은 밤 12시부터 새벽 3시까지 문제심이 있는 본부로부터 100m 떨어져 있는 곳에서 잠복근무를 서야 했다. 모기들이 달려들어 얼굴이며 손을 사정없이 쏘아댔다. 순성은 조장의 나지막한 외침에 깊은 잠에서 벌떡 일어났다. 시계바늘은 5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드디어 철수를 시작하는구나.' 잠시 후, 총을 맨 11명의 호위병들이 전투장비를 갖추고 조장 앞에 한 줄로 정렬했다. "부조장은 문경 고개 쪽으로 방향을 잡으라. 될수록 8부 능선을 따라 행군하라." 조장의 말이 끝나자 문제심은 조원 한 사람씩 악수를 끝내고 출발 명령을 내렸다. 몇 미터 간격으로 대원 간에 거리를 두고 일행은 북으로 행군을 시작했다.

 

 

 

1. 철수 중 시민군과 조우

 

순성 일행이 행군을 시작한 지 한 시간이 조금 넘었을 때, 총을 소지한 한 무리의 시민군과 마주쳤다. 문제심이 먼저 다가가 그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선생님들은 언제 이곳에 올라왔어요?" "어제 저녁에 올라왔는데 아무래도 다시 내려가야 할 것 같아요." "시내에는 공수부대가 들어왔는데 내려가면 잡히지 않습니까?" "우리가 이런다고 무엇이 달라지겠어요. 우린 집으로 돌아가려고 해요. 아무래도 승산이 보이지 않는데 산속에 숨어 있다가 잡히는 날에는 교도소에 가는 수밖에 없잖아요." 시민들 일행 중 수염이 더부룩한 중년 남성이 이야기했다. "우린 산속에 들어가서 마지막까지 싸울 겁니다." 문제심이 그들의 생각을 떠보느라 하는 말 같았다. "댁들은 그렇게 하시든가요. 우리 일은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 관심 끄시고 이래라저래라 하지 마세요." 일행 중 한 사람이 짜증이 가득 섞인 말투로 대꾸했다. "그럼, 수고 많이 하세요." 대장이 먼저 인사를 하더니 조용히 물러나 걷기 시작했다. 순성은 어제 대장이 했던 말이 생각났다. '저런 오합지졸 같은 것들을 믿고 뭘 하겠다고 한 우리가 어리석었구나.' 일행은 시민들을 뒤로하고 다시 행군을 시작했다. 그들은 우리가 누군지 관심도 없는 모양이었다.

 

 

 

 

2. 국군과 교전 중 대원 1명 희생

 

골짜기 계곡을 타고 넘자 갈대가 무성한 공지가 나왔다. "엎드려라!" 조장의 다급한 외침 소리가 들렸다. "대장 동지, 적입니다." 조장이 가리키는 곳을 보니 수십 명의 병사들이 200m 떨어진 곳에서 산개하여 움직이고 있는 것이 보였다. "대장 동지, 우리를 포위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니야. 아직 우리를 발견하지 못했어. 빨리 이동해서 저놈들보다 위쪽을 차지해야 한다." 대장의 뒤를 따라 순성 일행은 달리기 시작했다. 몇 분간을 정신없이 달리고 있을 때였다. 고함 소리가 울려왔다.우리를 발견한 국군이 추격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부조장! 적들을 차단하라. 한 시간 뒤 저 건너편 산봉우리에서 만나자."

 

 

 

 

부조장이 인솔하는 순성을 비롯한 엄호조 6명은 국군이 올라오는 곳을 향해 사격자세를 취했다. 조장이 인솔한 나머지 성원들은 문제심 대장을 호위하여 건너편 산을 향해 사라져버렸다. "사격 준비!" 부조장의 나지막한 명령이 떨어졌다. "총알을 아껴라. 점발로 사격하라." 국군과의 거리가 점점 가까워 오고 있었다. 100m 가량 되었을 때였다. "사격!" 명령이 떨어지기가 바쁘게 야무진 총소리가 조용한 아침 공기를 가르며 울려 퍼졌다. 그 순간 몇 명의 국군이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순성은 심호흡을 한 번 하고 방아쇠를 당겼다. 국군 병사 하나가 주저앉는 것이 보였다. 내 주변에도 총알이 픽픽 박혔다. 저 쪽에서도 대응사격을 한 것이다. 위치는 순성이네 쪽이 훨씬 유리했다. 저 쪽은 공지를 벗어나지 못한 체 대열이 완전히 노출돼 있었다. 순성이 세 번째 점발로 또 한 명을 쓰러뜨렸다. 

 

 

 

"사격 중지! 철수하라." 부조장의 구령 소리가 떨어졌다. 순성은 일어서서 다른 조원들과 함께 달리기 시작했다.순성의 뒤를 따라오던 대원이 '욱', 소리를 내며 쓰러졌다. 뒤를 돌아보니 013번이 국군의 총에 다리를 맞은 것 같았다. "부조장 동지, 013번 동지가 맞았습니다." 순성은 수 미터 앞서 나간 부조장에게 소리쳤다. 다시 돌아온 부조장은 순성에게 소리쳤다. "019번, 너는 빨리 대오를 따르라." "알았습니다." 순성이 대답을 마치고 돌아설 때였다. "땅!" 소리에 돌아보니, 부조장이 '교전규칙'대로 013번을 처리한 것이다. 부조장은 급히 그의 옷을 뒤져 고성능 폭탄을 꺼내 그의 머리 밑에 놓고 10여 미터 밖에서 폭파해 그의 흔적을 없애버렸다.

 

 

 

"나를 따르라." 일행은 산봉우리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일행은 국군으로부터 30분 가량의 총격을 더 받고서야 문제심 대장 일행과 합류했다. 해가 한 낮을 가리키고 있었다. "조금 전 우리와 조우했던 놈들은 11공수특전사야.지금 광주는 완전히 포위됐어. 이곳에서 빨리 벗어나야 해. 행군 속도를 높이라." 조장이 맨 앞에 섰다. 문제심과 호위원들은 또 다시 북쪽을 향해 이동하기 시작했다.(P155)

 

 

 

3. 철수 중 10대 남매에 발각돼 살해 함

 

지금껏 하루에 겨우 서너 시간쯤 눈을 붙이면서 3일 동안 줄곧 강행군을 해왔다. 오늘은 5월 30일, 현재 시각은 오전 7시경이다. 문경새재의 어느 골짜기에서 아침식사를 할 때, 어디선가 새소리가 들려왔다. 그러자 조장도 새소리로 맞대응을 했다. 암호를 주고받은 것이다. 밤에 보이지 않던 부조장이 015번, 017번과 함께 나타났다. "조장 동지, 우리가 지금 민가와 너무 가까운 곳에 있지 않습니까?" ". 우리는 규정대로 8부 능선을 따라가고 있어." "그런데 저쪽 산 아래에 무슨 여자애와 동생으로 보이는 남자애가 같이 있었습니다." "여자애가?" "여자애는 열댓 살 먹은 것 같았습니다." "어떻게 했어?" "땅에 묻어버렸습니다." "둘 다? 수고했어. 흔적을 남기거나 발각되지 말아야 해. 남조선 거머리들에 걸리면 빠져나가기 힘들어." 남조선 거머리는 국군 수색대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무전병이 문제심 대장과 무전기를 마주하고 최고사령부와 교신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식사를 마치자 대장이 모이라는 지시를 내렸다. "동무들, 우리는 6월 2일 낮 12시까지 휴전선에 도착해야 한다. 우리를 안내할 전문가들을 파견한다는 소식이 왔어. 행군속도를 높이라." 일행은 다시 출발했다. 6월 2일 저녁 해가 질 무렵 휴전선 부근에 도착했다. 비무장지대(DMZ)를 넘어가는 것이 문제였다. "조원들은 은폐호를 만들고 지시가 있을 때까지 기다리라." "조장, 무력부에서 정찰총국 친구들을 보냈다고 하는데 조금 늦어지는 것 같아. 어젯밤 잠수정으로 고성 앞바다에서 내려 뭍에 올랐다는 연락이 왔어. 아마 내일쯤 도착할 거야." 

 

 

 

 

4. 휴전선 통과 직후 북한군 포사격 받아 부조장과 대원 1명이 사망하고 순성은 대퇴부 총상

 

6월 3일 새벽, 정찰총국에서 나온 건장한 3명의 길 안내를 받으며 휴전선 철조망을 통과했다. 그러나 지뢰밭을 통과하느라 시간이 많이 걸려 오전 10시경에야 휴전선을 넘는데 성공했다. 30분 휴식 후 행군을 계속해 정오를 넘긴 시각, 운동장 10배가 넘는 공지를 지날 때, 갑자기 "꽝! 꽝! 꽝!"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나더니 포탄이 터지기 시작했다. "모두 흩어져라!" 문제심 대장의 외침 소리가 나는 동시에 순성의 다리에서 선뜻한 느낌이 들었다. 다리를 들여다볼 여유도 없었다. 30분 넘게 포탄이 연이어 작렬했다. 문제심이 망원경을 들고 전방을 살폈다. "조장, 수기 신호를 보내라."

 

얼마 후, 위장복을 입은 군인 몇 명이 산 중턱에서 뛰어내려왔다. 대좌, 상좌 계급장을 단 5명의 군관과 전사들이 사격자세를 취하며 대원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왔다. "손들엇! 움직이면 쏜다." 군인들의 행동을 지켜보던 대장이 말했다."대좌! 총을 거두오. 우리도 조선인민군 군인들이요. 나는 1010군부대 부대장 문제심이요. 남쪽에 파견되어 임무를 수행하고 부대로 돌아가는 길이란 말이요." 울분에 찬 대장의 말소리였다. 대장의 신분증을 확인한 대좌는 거수경례를 하면서 문제심에게 물었다. "아니 그럼? 소장 동지, 저희들은 괴뢰군 군복을 입고 있어서 우리 지역에 침투한 적들인가 했습니다." "적들과의 전투에서도 죽지    않은 대원들이 아군의 포사격에 맞아 죽는다는 게 말이 되는 소리요?"

 

 

 

"휴전선을 아침에 넘었소. 그런데 동무네는 어떻게 되어 오늘 포사격을 하고 있소?" "소장 동지, 오늘 새로 개발한 155mm 박격포탄을 시험하기로 무력부의 명령을 받았습니다." "여기가 어디요?" "강원도 판교군 지하리 무력부 포사격장입니다." "사실 어제 휴전선을 넘어오라는 지시를 받았소. 그런데 일이 있어 늦어지는 바람에 이렇게 되었구만." 문제심은 조장에게 다친 대원들이 없는가 알아보라고 지시했다. 순성을 비롯한 대원들이 급히 주변 수색에 들어갔다.

 

 

 

 

"조장 동지!" "왜?" "빨리 와 보세요." 019번이 서 있는 곳에 머리와 한 쪽 팔이 없는 피범벅이된 시체가 흙에 묻혀 있었다. "누구야?" "모르겠습니다." "대장 동지 못 봤어?" "못 봤습니다." "대장 동지! 어디 계십니까/" 100여 미터 떨어진 곳에 대장이 있었다. "왜 그래?" 대장이 뛰어나왔다. "조장, 대원들을 점검하라." "알았습니다." 5분도 안되서 대원들이 집결했다. "부조장과 017번을 찾으라!" 조장의 명령이 떨어지자 각자 뿔뿔이 흩어져서 시신을 찾기 시작했다. 잠시 후, 017번의 시신을 먼저 찾았다. 그렇다면 머리와 팔이 없는 시신은 부조장이다. "부조장의 머리와 팔을 찾으라."

 

 

 

"조장 동지! 여기에 팔이 있습니다." "머리도 어디 있을 거야. 잘 찾아보라." 풀숲을 뒤지던 순성이 부조장의 머리를 찾아냈다. "조장 동지!" 조장과 다른 대원들이 뛰어왔다. 조장은 부조장의 몸통과 떨어져 나갔던 머리와 팔을 맞추어 놓고, 그옆에 017번의 시신을 가지런히 눕혔다. 문제심은 무력부와 전화통화를 한 후, 조장에게 아래와 같은 지시를 내렸다. "조장, 대원들을 데리고 먼저 부대로 들어가라. 나는 최고사령부에 들렀다 가겠다." 그리고 전사한 부조장과 대원은 임시로 이곳에 묻어야겠어. 최고사령부에서는 이번 5.18광주폭동에서 전사한 대원들을 위한 합장묘를 따로 만들라는 지시야."

 

 

 

대장은 대원들에게 수고했다며 일일이 손을 잡아주고, 부조장과 017번의 시신을 들것에 담아 정찰총국에서 파견되었던 대원들과 함께 차를 타고 떠나갔다. 직속부대는 더 이상 문제심 대장의 신변을 호위하지 않아도 되었다. 조장은 순성의 허벅지에 박힌 파편조각을 단도 끝에 열을 가해 끄집어냈다. 그리고 부대 병원에 임시로 입원시켰다.

 

 

 

5. 정순성, 19세에 노동당원 돼 

 

 

6월 13일 저녁, 순성이 입원해 있는 병원으로 조장이 대원 한 명과 함께 들어섰다. "조장 동지! 안녕하십니까?" "막둥아! 다리 어때? 걸을 수 있겠어?" "네, 걸을 수 있습니다. 훈련도 할 수 있습니다." "군의관은 좀 더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하더라. 보자, 다리 걷어 올려봐." "막둥아! 우린 내일 평양으로 올라간다." "정말입니까?" "응, 정말이야. 6월 15일 평양에서 최고사령관 김일성 동지를 모시고 이번 광주작전 무력부 총화를 한다는 거야. 광주폭동에 파견되었던 조선인민군 군인들을 환영하는 행사를 한다는 소식이 왔어." "조장 동지, 누구누구 올라갑니까?" "우리 부대에서는 광주작전에 참가했던 전투원들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참가하라는 지시가 내려왔어. 그러니 부대로 가서 준비해야 돼." "조장 동지, 저 퇴원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내가 원장에게 말해놨으니까 걱정 안 해도 돼. 퇴원 수속은 후에 해도 되니까 옷을 갈아입고 나가자."

 

퇴원한 그날 저녁, 1010군부대 당위원회에서는 정순성의 조선노동당원의 자격을 심의하고 화선입당을 추천하는 공개 당 총회가 열렸다. "1010군부대 직속부대 상사 정순성 동무는 5.18광주폭동에 참가하여 남조선 해방을 위한 최고사령관 김일성 동지의 명령을 목숨 바쳐 수행하였다. 상사 정순성 동무의 화선입당을 찬성하는 당원 동지들은 손을 들어 주시오." 순성은 1010군부대 당원 모두의 찬성과 축복을 받으며 조선노동당에 입당했다. 19세에 노동당원---? 사회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5.18作戰의 결산 및 기록

 

 

 

 

1. 5.18작전 총화(결산대회) 개최 

 

다음 날 오전 9시, 부대 종합운동장에 광주작전에 참가했던 순성을 비롯한 직속부대 10명의 성원들이 한 줄로 정렬했다. 부조장 한광호와 017번 김일룡의 자리가 비어 있었다. "차렷! 1010군부대 부대장 동지, 리상국과 직속부대 조원들은 최고사령관 동지의 크나큰 배려로 평양에서 열리는 조선인민군 전투 영웅대회에 참가하기 위하여 정렬하였습니다. 상위 이상국!"

 

"최고사령관 동지를 모시고 진행하는 조선인민군 대회에 참가하는 동무들을 축하합니다." "최고사령관 김일성 동지를 위하여 복무함!" 1010군부대 광주작전 참가자들은 세 대의 갱생 지프차에 나눠 타고 평양시 서포구역 기차역을 향해 떠났다.

 

 

 

1980년 6월 15일 오전 10시, 평양시 인민문화궁전에서는 김일성과 김정일이 참석한 가운데 5.18광주폭동에 대한 총화를 진행했다. 주석단에는 무력부장 오진우, 대장 리을설을 비롯한 조선노동당 국방위원회, 인민무력부 최고위 간부들이 앉았다, 또한 문제심을 비롯해 5.18광주작전에 참가했던 조선인민군 교도국 산하 군부대 지휘관들의 얼굴이 보였다. 최고사령부 작전조 성원들, 각 군단장들과 사단장들, 교도지도국 여단장들, 대남훈련소 소장들을 비롯한 조선인민군 지휘관 수백 명이 참가했다. 오진우가 개회를 선언하고, 북조선 국가 연주에 이어 오진우의 추도사 낭독이 이어졌다.

 

 

 

"오늘 조선 인민군 장병들은 우리 당과 우리 인민의 위대한 수령이시며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이신 김일성 동지를 모시고 조선인민군 전투원 대회를  가지게 됩니다. 동지들! 이자리에서 최고사령관 동지의 전투명령을 높이 받들고 조국의 통일과 남조선 해방을 위해 5.18광주폭동 작전에 참가하여 위대한 수령과 당을 위해, 조국과 인민을 위해, 목숨 바쳐 싸우다 전사한 조선인민군 병사들을 추모하여 묵상합시다." 이어서 김일성의 연설이 이어졌다.

 

 

 

2. '5.18작전'은 내가 명령했다

 

 

"-- 우리 당과 정부는 둘로 갈라진 나라의 통일과 남조선 해방을 위해 지금까지 피의 대가를 치르며 투쟁해 왔습니다. 그 길에서 수많은 혁명 동지들과 전우들이 고귀한 생명을 서슴없이 바쳤습니다. 그러나 남조선 괴뢰도당의 반민족적 사대주의 책동으로 말미암아 나라의 절반 땅이 아직도 미제국주의자들의 손아귀에서 해방되지 못하고 식민지로 계속 남아 있습니다. 나는 이번에 남조선 혁명가들, 김대중을 비롯한 애국적인 민주세력과 특수부대를 현지에 파견하여  손잡고 광주시를 중심으로 전라도 곳곳에서 남조선 해방을 위해 무장폭동을 일으킬 것을 명령하였습니다."

 

 

 

 

3. 김일성, "아시아자동차와 무기고를 털어 광주를 '해방구' 만들었다"고 자백

 

"우리는 수백 명에 달하는 조선인민군 특수부대를 현지에 파견하여 폭동 군중을 무장시키고 도청을 비롯한 주요 괴뢰 정부기관을 점거하여 기능을 마비시키는 전투성과를 이룩하였습니다. 또한 도시를 완전히 장악하여 일주일간 광주시를 인민해방구로 만들었으며, 미제 침략자들과 남조선 괴뢰도당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습니다. 광주폭동을 남조선 전역으로 확대시키기 위해 아시아자동차 습격 전투를 벌였습니다. 장갑차, 트럭을 비롯한 운송수단들을 노획하여 폭동을 확대, 전개하는 작전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조선인민군 특수부대들은 경찰서 무기고들을 습격하여 탈취한 무장을 폭동군중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광주는 10여 일간 남조선 괴뢰도당의 파쇼적 통치에 맞서 폭동을 일으켜 인민해방구를 만들었으며, 미제와 전두환 괴뢰도당에게는 공포의 도가니로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광주폭동은 미제의 지시를 받은 전두환 괴뢰도당이 광주시를 포위하고 살육작전을 벌이는 것과 함께 폭동군중의 배신으로 5.18광주폭동은 실패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4. '공화국영웅묘' 만들어 교양자료로 활용하라!

 

"광주폭동에 참가하여 싸우다 전사한 인민군 군인들을 한 사람도 빠짐없이 공화국영웅 칭호를 수여하고 그들의 업적을 조국 청사에 길이 전해야 합니다. 경치 좋은 곳에 광주폭동에서 전사한 인민군 영웅묘를 따로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당과 수령을 위해, 조국과 인민을 위해 싸우다 전사한 인민군 열사들은 죽어서도 영생한다는 것을 자라나는 새 세대들에게 보여주어야 합니다. 이번 광주5.18폭동을 영원히 기념하기 위해 해마다 5.18광주폭동을 기념하는 행사를 전 국가적으로 조직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기념비적 건축물들에 5.18 이름을 달아 모든 인민들이 알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광주 5.18폭동을 조국통일 위업을 끝까지 완수할 수 있는 교양자료로 이용하도록 조직사업을 잘 하여야 하겠습니다."

 

 

 

 

5. 5.18작전 참가자들에게 '공화국영웅 칭호' 수여

 

김일성의 연설이 끝나자 우레와 같은 박수소리가 터졌다. 이어서 조선인민군 무력부장 오진우가 연단에 나섰다. "조선노동당 정치국과 국방위원회는 남조선 해방을 위한 광주 5.18작전에서 커다란 공로를 세운 장병들에게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최고훈장인 '공화국영웅 칭호'를 수여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광주 5,18폭동에 참가하여 영웅적으로 싸웠으며 전투임무를 마치고 무사히 돌아온 조선인민군 장병들에 대한 표창 수야식을 진행하겠습니다." 순성을 비롯해 5.18 광주폭동에 남파되었던 군인들은 대회장 맨 앞자리에 앉았다.

 

 

 

"1010군부대 부대장 중장 문제심, 정찰총국 대좌 김상돈,--- 상위 리상국, --공화국영웅 메달을 달아주었다.- 상사 정순성---" 공화국영웅 칭호를 수여받을 군인들의 이름이 하나, 둘 거명되고 김일성이 앉아 있는 주석단으로 군인들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김일성은 분명히 연설에서 수백 명의 조선인민군 군인들이 이번 광주폭동에 파견되었다고 말했었다. 그런데 대회장에서 영웅 칭호를 받는 군인들은 32명 밖에 보이지 않았다. 순성은 나머지 군인들은 아직 남조선에서 다 돌아오지 못했거나 전사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김일성은 손수 한 사람씩 군인들의 가슴에 공화국영웅 메달을 달아주었다. 순성의 차례가 되었다.

 

 

 

김일성은 순성이 다가서자 영웅 메달을 쥐고는 순성에게 몇 마디 물어보았다.

 

 

 

"너, 몇 살이냐?" "예! 최소사령관 동지, 상등병 정순성 19살입니다." "19살이라, 대단해. 잘 싸웠어. 앞으로도 군사복무를 잘해야 돼." "최고사령관 동지를 위하여 한목숨 바치겠습니다." 순성의 목소리가 대회장에 메아리가 되어 울렸다. 김일성은 순성의 어깨를 두드려주고는 앞가슴에 영웅메달을 달아주었다. 5.18광주폭동에 남파되었던 정순성은 6.25전쟁 이후 최연소 나이에 공화국영웅 칭호를 받은 군인이 되었다. 주석단을 내려와서 자리로 돌아온 순성은 그때서야 조장 리상국의 가슴에 공화국영웅 메달이 2개 달려 있는 것을 보았다. 순성과 함께 5.18광주폭동에 참가했던 1010군부대 조장 7명 이하 조웡들 모두 공화국영웅이 된 것이다.

 

 

 

 

6. 공화국영웅들에 특진 주어져

 

분견대 대장 2명은 승진해서 조선인민군 교도지도국(특수전사령부) 작전부로 소환되었다.김일성은 소좌급인 분견대장들에게는 대좌의 군사칭호를 수여했다. 살아서 돌아온 조장 7명들은 각 군단 부사령관으로 임명하고 상위급 군사칭호를 상좌로 승격시켰다. 5.18광주폭동을 지휘한 문제심은 조선인민군 무력부 부부장(국방부 차관)으로 임명되었다. 대회에 참가한 1010군부대 군인들 중에는 이미 전 남조선과 해외에 파견되었을 때 세운 공적으로 2중,3중의 공화국영웅 칭호를 받은 군인들도 여러 명 되었다.

 

 

 

 

7.조장 리상국은 3중의 공화국영웅

 

평양에서 내려와 부대에 돌아온 순성은 조장에게 물어보았다.

 

 

"조장 동지, 첫 번째의 공화국영웅 칭호는 무슨 공로를 세워서 받았습니까?" "막둥아, 그것은 남조선 전라도 이리역(익산역) 화약 열차를 폭파시키고 그공로가 인정되어 받은 거야." 훗날 조장 리상국은 또다시 공화국영웅 칭호를 받게되었는데, 세 번째는 버마 랑군(미얀마 아웅산) 폭파사건에 참가하여 남조선 정부요인들을 죽인 공적을 평가받아 3중의 공화국영웅이 되었다.

 

광주에 남파되었다가 돌아오지 못한 시신 없는 묘비가 김일성의 비준을 받아 평안남도 평원군 원하리의 나지막한 야산에 세워졌다. 묘소의 비문에는 다음과 같은 글자가 새겨져 있다.

 

 

 

"최고사령관 김일성 동지의 원대한 조국통일 구상을 받들고 남조선 해방을 위헤 영웅적으로 싸우다 전사한 조선인민군 장병들을 조국은 영원히 잊지 않을 것이다. 인민군 열사들의 업적을 후손만대 전하리라."

 

 

 

8. 북한에서 최고인 것에는 '5.18 명칭' 하사

 

 

김일성의 지시에 따라 5.18광주폭동을 기념하기 위한 사업들이 북조선 각지에서 벌어졌다. 그 후, <5.18기계공장> 정문에는 <5,18기계공장은 나라의 보배 공장입니다>라는 김일성의 말을 붉은 페인트 글씨로 박은 높이 5m, 너비 10m 크기의 화강석 비문이 세워졌다. 김일성은 룡성 기계공장의 1만 톤 프레스를 <5,18프레스>로, 철도 무사고 견인초과운동을 <5.18무사고 견인초과운동>으로, <5.18전기기관차>로--- 가는 곳마다 광주폭동을 기념하는 '5.18'이라는 이름들을 달아놓았다. 

 

또한 해마다 5월 18일이면 평양과 각 시-도-군에 있는 공장기업소, 농장, 대학들은 물론이고 공공기관들에서 당위원회 주체로 5.18광주폭동에서 희생된 영웅들을 추모하는 행사가 진행되고 있다. 이것이 북한의 역사가 아니고 무엇인가?

 

 

 

9. '5.18 사건'은 누가 기록했나?

 

 

문제심이 김일성에게 제출했던 '5.18 계획안' 제9항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들어 있다.

 

 

 

 

"폭동이 일어나면 그곳 현지 상황에 대한 중계를 구체적이고 신속하게 보도할 종군기자들을 현지에 파견하는 문제들에 대한 대책이 요구됩니다. 국내외 폭동 현장을 현지 중계함으로써 남조선 인민들로 하여금 괴뢰군에 대한 분노를 야기 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는 것입니다. 이로써 전국적인 폭동을 유도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려고 합니다."(P111)

 

 

 

위의 요구대로 김일성은 공작조 중에 현지 상황을 기록하고, 중계할 종군기자들을 보내서 북한 방송을 통해 실시간으로 생중계 했었다. 여기까지는 국내용이고, 이와는 별도로 해외에 널리 알리려고 독일인 일본 특파원 기'위르겐 힌츠페터'포섭해 각종 사진과 동영상을 찍게해 국제적으로 활용했다.

 

 

 

"조장, 대원들을 데리고 먼저 부대로 들어가라. 나는 최소사령부에 들렀다 가겠다. 그리고 전사한 부조장과 대원은 임시로 이곳에 묻어야겠어. 최고사령부에서는 이번 5.18광주폭동에서 전사한 대원들을 위한 합장묘를 따로 만들라는 지시야."(P163)

 

 

북한은 이 지시에 따라서 훗날, 신천박물관에 2개의 가묘와 490여 명의 전사자를 기리는 기념비를 세워 '역사의 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2019. 3.15

댓글목록

진리true님의 댓글

진리true 작성일

이 자료는 황교안과 나경원이 읽어야할 "5/18 첩보서"이다.
내용증명으로 자한당 의원실 전원에게 보내서
황교안의 5/18 이념이 무엇인지, 의원전원(113명)의 답변을 받아내야 한다.
앞으로 황교안이 5/18 북한군개입 진상규명 조사위원 선정기준에
누구를 적격자로 선정파견할 것인지 답변을 받고,
언론에 발표하여, 국민에게 5/18 진실을 알려야 한다.
황교안이 답변이 없다면, 자한당은 더이상 애국애민의 당이 아니므로,
국민고발로 낙선운동을 시작해야 한다.
보다더 조리있고 멋있게 글을 정리해주시면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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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글쓰기 회원 가입 및 주의사항 (휴대폰 본인인증) 댓글(13) 관리자 2015-09-21 49723 287
28455 [나도 팩트체크] "과거와 같이 엄격한 경호 필요 없다… 새글 Samuel 2019-03-26 42 3
28454 대검 공수처 설치 결사반대! 댓글(1) 새글 야기분조타 2019-03-25 52 6
28453 북한에 교회개척팀 파송 준비가 필요하다. 댓글(5) 새글 지원군단 2019-03-25 101 9
28452 문재인의 사격명령자 확인은 이번 방송으로 끝냅니다. 새글 빵구 2019-03-25 121 19
28451 기관단총을 드는 것보다 하야가 행복하다 댓글(2) 새글 비바람 2019-03-25 129 32
28450 지만원박사님 웃는 모습이 너무 좋습니다 댓글(1) 새글 지조 2019-03-25 173 48
28449 지만원 티비 효과좋네요 댓글(2) 새글 알리 2019-03-25 228 68
28448 [존 볼턴이 대한민국에 보내는 메시지] 북한 정권 붕괴… 새글 Samuel 2019-03-25 271 48
28447 [5.18역사전쟁]폭도들이 휘두른 대검 새글 김제갈윤 2019-03-25 205 47
28446 황교안은 이번 4.3 재보선에 사활을 걸어라 새글 야기분조타 2019-03-25 105 10
28445 오오 갓교안 일침보소 ㅋㅋ 새글 야기분조타 2019-03-25 169 23
28444 허평환은 왜 친중종북-5/18 역사관을 비판하지 못하는… 새글 진리true 2019-03-25 226 38
28443 서해참사 수호포기와 대구위협 선언일 댓글(1) 새글 진리true 2019-03-25 187 27
28442 난장판 된 뻐꾹이 집(청ㅇ대) 문죄인 물러나라 댓글(1) 새글 wlvudtjs0117 2019-03-25 267 44
28441 역적 문좌인 따라 나라 망치는 좃깝재개쇄! 새글 海眼 2019-03-25 275 61
28440 518, 시민군 무장은 전교사에 의해 댓글(1) 새글 빵구 2019-03-25 227 36
28439 KBS 예능국 PD들아 내가 1박2일 후속 프로그램 기… 댓글(4) 새글 야기분조타 2019-03-25 145 15
28438 어나니머스가 문재앙에게 보내는 경고 새글 M38A1 2019-03-25 377 44
28437 지금 대한민국의 애국심 수준이 북한 마적단의 의리보다 … 새글 굳모닝 2019-03-25 139 39
28436 협상(deal)의 달인 나경원 댓글(1) 새글 야기분조타 2019-03-25 192 12
28435 삼성을 죽이려는 음모, 천인공노, 악폐다,[구국일연] 댓글(1) 새글 제주훈장 2019-03-25 207 43
28434 전라도것들의 지랄발광 댓글(3) 새글 핸섬이 2019-03-25 320 28
28433 노무현과 바보들? ㅋㅋㅋㅋㅋㅋ 새글 야기분조타 2019-03-25 160 13
28432 수도서울 파괴작전 본격시도 새글 진리true 2019-03-25 363 51
28431 윤영찬 씨발새끼야 말은 바로 해야지 댓글(5) 새글 야기분조타 2019-03-25 206 21
28430 이런 건 중국을 배워야 한다 댓글(3) 새글 야기분조타 2019-03-25 166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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