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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당시 전남도청 보건과 담당공무원의 생생한 증언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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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해머스 작성일20-02-25 21:35 조회320회 댓글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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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당시 전남도청 보건과 담당공무원의 생생한 증언문 !

 

작성자: 正義漢, 작성시간: 19.01.14


출처: 5.18은 폭동이었다! 당시 전남도청 근무 공무원 육성증언 - 5.18 북한군 개입 대국민 공청회 - [뉴스타운TV], (https://youtu.be/entYPrZxYvk, 2019. 1. 19)

 

* 1980년경 광주에서 있었든 5.18관련 실제상황을 제가 보고 겪었던 사실들만을 말씀 드리겠습니다.

 

* 저는 그 당시 30세였고 전남도청 보건과에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 1980년경 광주지역 분위기

- 이름도 생소하였든 전두환씨가 정권을 휘두르고, 광주전남에서는 거의 신격화 되다시피 한 김대중을 내란음모로 사형선고까지 이르게 하는 상황에서 대다수의 광주전남 사람들은 전두환씨에 불편한 감정이 바닥에 깔려 있었고, 대학생들은 날마다 전두환 물러나라고 데모를 하고 있었습니다.

 

* 5.18민주화운동의 단초가 된다고 말할 수 있는 대학생들의 데모는 5월15일경까지 광주시내에서 산발적으로 하고 있었지만, 결코 과격하다거나 폭력적인 데모는 전혀 아니었습니다. 실제 데모에 참가한 대다수의 대학생들은 총학생회간부들이 우격다짐으로 데모를 선동하는 바람에 마지못해 참가한 대학생들이 대부분이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1980년5월16일경부터 5월21경까지의 광주지역 실제 상황

- 광주시내에서 시끄럽게 산발적으로 하고 있던 대학생들의 데모가 5월16일경부터 갑자기 자취를 감추자 매우 낯이 설은 청장년들이 나서서 일반시민들을 선동하여 데모대를 이끄는 듯한 느낌을 받았었고, 이 낯이 설은 청장년들이 주동이 되어 갑작스럽게 일반 시민들이 시내를 몰려다니면서 데모대가 형성되기 시작하였고,

5월18일경부터는 본격적으로 데모가 이루어짐과 동시 매우 과격하고 폭력적으로 변하여 공권력을 거의 마비시켜 버리고, 이때부터 경찰력은 보이지 않고, 시가는 완전히 치안공백 상태가 되고, 그 데모대들의 폭력적인 형태는 걷잡을 수 없게 되어, 광주 인근의 군병력이 투입되기 시작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5월21일경은 5.18사태의 정점이 되는 날로, 데모대들이 탈취한 시내버스와 장갑차를 앞세우고 금남로5가쯤에서부터 금남로1가 끝에 위치한 도청을 향해 몰려오고 있었습니다. 그때 군병력이 도청앞 분수대 앞에서 가로1m, 세로 0.5m쯤 되는 콘크리트 화분대를 엄폐로 데모대를 향해 방어를 하고 있었고, 장갑차를 앞세운 데모대들이 군인들 코앞까지 몰려오자, 군인들은 엎드려 있다가 일어나서 뒤로 물러나기 시작하였고, 군인들 중 2명이 수협 앞에서 장갑차를 피해 뒷걸음을 치다가 그대로 전진해 오는 장갑차에 깔려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하게 시체로 변해 버렸으며, 이것이 5.18사태 중 광주에서 최초로 목격된 사망사고였습니다.

 

* 5월21일 오후 6시경에 도청이 데모대들의 수중에 함락되었습니다. 저는 도청 바로 옆 동명동 동료직원 집에서 숙식을 하고 있었고, 그날 저녁에 대문 앞에서 데모대들의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중 유리창은 하나도 없고 엉망진창이 된 시내버스가 집 앞에 멈추는 것을 보고 차 안을 살펴봤더니 운전은 건장한 청장년이 하고 있고, 뒤에는 중고생들과 몇몇의 시민들이 타고 있었는데, 차 바닥에는 총알이 그득그득 담긴 탄알상자와 수류탄, 총들이 어지럽게 수북이 쌓여 있고, 아이들은 양쪽에 탄알띠를 두르고, 수류탄을 몇 개씩 허리에 차고, 기관총이나 소총들을 메고 있었습니다.

 

저는 무섭기도 하여 얼른 내리려고 하였으나, 차가 그대로 출발해버려 어딘지도 모르고 다니게 되었으며, 얼마나 시간이 되었는지도 모른 채 차가 멈추기에 급히 뛰어 내렸으며, 캄캄한 밤중이라 그곳이 어딘지 분간도 못하고 서있던 중, 시커먼 장갑차가 제 앞에 멈추더군요. 장갑차 문이 열리고 여성이 나와 나보고 왜 여기 서있느냐고 하길래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고 집에를 가려고 하나 갈 방도가 없는 형편이라고 말하니까 타라고 하더라.

 

생전 처음 장갑차에 탔더니 30-40대쯤 돼 보이는 매우 낯설은 인상의 사람이 운전을 하고, 30대여성은 마이크를 잡고, 시민군 홍보 및 선동 방송을 하고 있더라. 아무튼 도청 근방에서 내려주기에 무사히 집에 오게 되었고, 그 동안 집에서는 난리가 났었다고 하였다.

 

* 그날 밤에는 집밖에서 들려오는 발자국 소리와 매캐한 연기 때문에 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하였고, 아침에 나와 보니 집 옆에 있던 세무서가 흔적도 없이 불에 타 버렸고, 엠비시 방송국은 반쯤 탄 채 샷타가 심하게 찌그러져 있었고, 시내는 곳곳에 타이어 등으로 도로를 차단하고 불을 질러 온 시내가 전쟁 직후의 폐허 상태와 같았다.

 

* 도청 앞이나 거리 곳곳에 군용차량들이 즐비하고, 그 위에는 무장 비슷한 옷과 헬멧 등을 쓴 역시 매우 낯이 설은 사람들이 헬멧이나 머리에 흰띠를 두르고, 특이하게도 찔레꽃 같은 것을 꼽고, 무리를 지어 있었다.하루아침에 완전히 딴 세상이 되어 있었으나 평화로운 느낌마저 들 정도로 고요한 분위기였었다.

 

* 5월22일경에는 시내는 교통수단이 없어서 무장 시민군들이 운전하는 군용추럭들이 일반시민들의 운송수단이 되어 있었다. 나도 가족을 데리고 광천동 이모님 댁으로 가기 위해 무장 시민군이 운전하는 추럭을 타고 갔었고, 이모님 집에 있는 동안 이상한 놈들이나 동네에서 도둑질이나 하던 자들이 총까지 휴대하고 집에 들어와 밥을 달라거나, 집안을 살피거나, 매우 위협적인 태도들을 보이는 터라, 이모님은 그들이 주라는 대로 얼른 주고, 돈도 주고 하였는데, 이 자가 내 처를 계속 힐끔힐끔 쳐다보면서 음흉한 눈길을 보내는데 보통 심각한 정도가 아니었다.

 

그후 23일까지 숨죽이며 버티다가 상황이 도저히 힘들어 24일 아침에는 몇 시간을 걸어서 담양 밖까지 가서 시골집 방향으로 가는 차편을 얻어 타고 시골집에 도착하였다. 담양 밖에 오니까 나뿐만 아니라 수많은 피난 행렬이 줄을 서고 있었다.

 

* 5월27일경에 도청이 수복되었다는 방송을 듣고 급히 광주로 내려갔고, 출근을 하였다.

 

* 출근 하자마자 보건과 의료진들과 함께 사망자, 부상자를 파악하고, 부상자 치료 및 시신검안 등을 하라는 임무가 주어졌다.

 

* 우선 도청 중앙 공간 등에 시신들을 쌓아 놓은 곳으로 갔더니 시체 썩는 냄새가 진동을 하였고, 시신들은 일부는 관 안에 들어 있었고, 일부는 비닐 등에 싸여 있었고, 일부는 그대로 노출이 되어 있는 상태였다. 시신들을 살펴보니 황토 땅에 묻혔다가 파온 것처럼 황토 흙투성이였고 시체들의 형체는 말할 수 없이 처참한 상태였다.

 

* 어떤 여성 한 명이 시신들 위에 촛불을 꽂고 있었다.

 

* 시신들이 그렇게 많아도 유가족들은 한명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추럭들은 어디선가 시신들을 계속 싣고 오고 있었는데, 도대체 시신들을 어디서 누가 찾아서 가지고 오는지가 매우 궁금하고 의아했었다. 의료진들이 시신들을 대략 검시하고 시신 숫자를 파악하고, 사무실에 와서는 국군통합병원을 비롯해서 각 병원들로부터 부상자와 사망자 등을 파악하기 시작하였다.

 

* 부상자들을 파악하는데도 애로사항이 많았다. 중복된 환자들이 있었고 경상이나 중상환자들이 서로 겹치고 하여 인원수가 들쭉날쭉하였고 보고를 하고서도 틀린 경우가 많았다.

 

* 부상자들의 인적사항은 파악이 되었지만, 사망자들의 인적사항은 파악하기가 거의 불가하여 시신들을 관에 넣고, 방부제와 탈취제들을 쏟아 붓고, 시신들을 모두 도청 앞 상무관으로 옮겨서 유가족들이 시신들을 확인하도록 하였다.

 

* 시간이 흘러 더 이상 시신이나 부상자들이 나오지 않아 최종 집계를 하였다. 부상자는 437명, 사망자는 121명인 것으로 기억한다.

 

* 이때 가장 특이하고 의아했던 것은 5.18민주화사태는 대학생들의 데모가 단초가 되어 일어난 사건임에도 부상자들이나 사망자들 중 대학생은 단 한 명도 없었고, 소위 민주화운동을 하였다고 한 사람도 없었던 점이다.

 

* 당시 도청에서 부상자나 사망자들을 파악하고 치료 등을 해주는 담당실무자는 나 였으나, 도청 직원들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보건과 직원들조차 거의 관심이 없었고, 과장님과 도지사님만 업무를 챙기신 정도였고, 오로지 저 혼자서 5.18관련 모든 업무를 수행하였다.

 

* 5.18 사태는 처음부터 끝까지 대학생들과 일부 시민들이 데모를 하다 어쩌다가 이런 사태로까지 발전한 것으로 보고, 도청직원들이나 대다수의 시민들은 5.18사태를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었다. 만약 지금 시대에 5.18사태가 일어났다면, 도청직원들. 경찰들, 검찰들, 의원들, 시민 단체들 등이 총동원되어 사건을 수습하였을 것이다.

 

* 그 후 여론들은 사망자가 500명에서 5,000명은 될 것이라는 말이 대세였으나, 저는 그런 여론에 코웃음치고 있었다. 당시 부상자에게는 400만원, 사망자에게는 600만원씩을 무조건 지급하기로 하였고, 또 내 가족이나 친척들이 행방불명이 되었거나 다쳤다면, 신고하거나 찾아나서지 않을 사람들이 어디 있었겠는가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 그 후에 광주시가 광주광역시로 승격되는 바람에 5.18 관련업무가 도청에서 광주광역시로 이관되었고, 5.18사태가 점점 민주화운동으로 변질되고, 광주광역시와 5.18관련단체들과 주로 좌익성향의 유력 정치인들이 합세하여, 부상자들에 대해선 이견이 없었고, 사망자들에 대해서만 당시 행불자들 등을 대상으로 숫자파악에 나섰으나, 순전히 자기들 입맛대로 부풀린 숫자가 154명으로 공식적으로 최종 발표를 하였었다.

 

저는 거기까지 인줄만 알고 있었는데, 2015년경에 우연히 망월동에 있는 5.18국립묘지에 들르게 되었는데, 깜짝 놀라 까무러칠 뻔했다. 5.18유공자 묘기가 무려 824기가 있고, 앞으로도 여기에 들어올 유공자가 약 4천5백여명이 더 있다는 직원의 설명이었다.

 

그래서 저는 유공자외 그 가족들까지도 묻히는 것이냐고 물어봤더니, 그게 아니고, 순수하게 5.18때 다치거나 사망한 본인들만 들어올 수 있다고 하였다. 나는 하도 기가 차서 말문이 막혔다. 그 동안 5.18단체들의 많은 비리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이토록 엄청난 비리를 저지르고 있었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지 못하였다.

 

지금 현재 5.18관련 단체, 부상자, 유가족협회의 회장은 김후식이란 자가 맡고 있다.

김후식은 80년경 나이가 40세쯤으로 광주시내에서 이발소를 하고 있던 이발사였는데, 5.18때 부상자로 접수가 되었던 자이다.

 

그때 처음으로 5.18관련 단체로 5.18관련 부상자 및 유가족협회가 결성되고, 초대회장으로 선임된 자가 김후식이다. 어떤 경로로 부상자가 된 줄은 모르지만,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고 하였다.

 

그 후 계속하여 회장직을 역임해 오다 십여년 전에 유공자 부정지정사건으로 잠시 회장직에서 사퇴하였다가, 그 후 얼마 안가서 다시 회장으로 복귀하여 지금까지 무려 35년여동안 회장을 역임하고 있고, 사실 대한민국에서는 누구도 건들지 못하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지닌 5.18민주화운동 단체의 총 우두머리가 되어 있다.

 

* 5.18관련 단체에 관하여

- 아마도 가장 부패한 자들로만 구성된 단체라고 보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이 단체 회장 김후식은 광주전남에서는 가장 거물급 유력인사이고, 단체 소속된 임원들도 많지만, 이들은 지금까지 어떤 이유에서인지 몰라도 매스컴이나 전면에는 거의 나타나지 않고 있었다.

 

그 까닭은 아마도 그들에 대한 광주전남 시민들의 인식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 전면에 나서지 못하고 있었든 것으로 짐작된다. 하지만, 이들의 각종 이권개입 등은 무서울 정도로 집착하고 따낸다. 예를 들어, 충장로 지하상가는 광주에서 최고로 꼽는 알짜배기 상권인데, 거기에 황금알을 낳는 자판기 사업까지 따내고, 그 외 광주전남 이권개입에는 안 끼는 곳이 없을 정도고, 5.18회관, 국립아세아문화전당, 5.18문화재단 등 수많은 운영매체 등에서 어마어마한 이권을 챙기고, 정부지원자금도 가장 우선적이고, 거의 독식하다시피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또, 호남출신국회의원들이나 유력 인사들은 이들에게 삥을 뜯겨보지 않은 사람들이 없을 정도다.

 

* 이해찬과 김경수가 5.18유공자라는 소문이 있고, 이해찬은 답변으로 자기가 신청도 않했는데, 5.18단체에서 그냥 만들어 준 것이라고 했다고 한다. 아마 이해찬의 답변이 맞을 것이다. 5.18단체에서는 이해찬 뿐만 아니라 많은 국회의원들이나 유력 인사들에게도 방패막으로 5.18유공자증을 만들어준 것으로 충분히 심증이 간다.

 

* 많은 사람들이 광주전남 사람들과 5.18사태 관련 등에 대해서 오해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

 

첫째, 80년대를 겪은 광주전남 사람들은 5.18사태에 대해서 대개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왜냐하면 순수한 민주화운동이 아니란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라 본다.

 

둘째, 5.18관련자들에 대해서 80년대를 겪은 광주전남 사람들은 그들에 대하여 기피증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아예 5.18관련자들 하고는 접촉을 꺼리고, 그들과 연관되는 것을 창피하게 여길 정도다.

 

일반적인 식견을 지닌 사람들은 5.18유공자가 되거나 관련 단체 등과 엮이는 것도 매우 꺼려한다. 지금까지 그들과는 물과 기름 같은 기류가 형성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오일팔에 관련해서는 대다수의 광주전남 사람들은 관심을 갖지 않고, 그들이 무슨 짓을 하든지 거의 상관하지 않는다.

 

* 모든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 하는 것이 5.18사태 주동자 및 시민군의 실체와 시민군 본부, 시민군 본대일 것이다.

 

* 저보다 몇 살 아래인 사람이 20여년전부터 같은 아파트 같은 동에 살면서, 지금까지 매우 친하게 지내오는 사람을 소개한다.

 

- 5.18 당시 부부가 자영업을 하고 있었고, 5.21일경에 시내로 볼 일을 보러 가기 위해 집을 나섰으나, 모든 교통수단이 끊긴 상태라 할 수 없이 소위 시민군이 운행하고 있는 추럭을 탔다. 추럭을 탔지만 운전수가 가는 대로 가다가 적당한 곳에 이르면 내려달라고 할 참이었는데, 운전수는 자기 맘대로 한없이 화순쪽으로 차를 몰아 도착한 곳이 생전 처음 와보는 화순 어느 산골마을이었다.

 

거기에는 이미 몇백명이 와 있었다고 한다. 먼저 와있는 몇백명도 모두 무기를 소지하고 있었다고 하고, 본인도 차에 탔을 때 차안에는 총, 수류탄, 탄알 등이 수북이 쌓여 있어, 일단 호신용으로 총을 들었다고 한다. 마을에 도착하니 처음에는 몰랐지만, 그 마을 이장 가족이 주축이 되어 동네 부인들이 하루 삼시세끼 밥을 계속 해 주었다고 하고, 그곳에서 5월21일부터 5월27일까지 있다가 도청이 수복되었다는 방송을 듣고, 7일만에 광주로 돌아올 수 있었다고 한다.

 

* 그 곳 마을 빈터에서 1주일동안 아무 하는 일 없이 서로 웅크리고 야영을 하였다고 하고, 식사는 끝날 때까지 동네 부인들이 해주었고, 몇백명 중에서 아는 사람은 한명도 없었고, 낯이 설기만 하는 건장한 청장년들이 주로 지휘를 하고 있었다고 하고, 피난민수용소도 아니고, 군대도 아닌 곳에서 1주일을 지냈다고 한다.

 

그 때 20세쯤의 이장 딸이 식사 심부름을 하고 있었는데, 사람들 중 한명이 오발을 하는 바람에 이장 딸이 총을 맞고 그 자리에서 죽었는데, 이장은 그 광경을 목격하고도 눈물도 흘리지 않고, 단지 사람들을 향해 앞으로는 이런 오발사고가 없도록 총기관리를 조심해 주라고만 했다고 한다. 후배는 그 당시 자기 딸이 죽었는데도 울지도 않고 항변도 하지 않은 상황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도,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고 한다.

 

* 당시 화순 주남마을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죽었고, 후배 말로는 시민군들이 사람들을 태우고 주남마을을 통과할 때 주남마을 산 위에 미리 매복하고 있던 자들이 추럭의 바퀴를 중점 총격을 하여, 추럭을 전복시킨 다음, 차에 타고 있던 사람들을 향해 무차별 총격을 가하여, 그 때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고 한다.

 

* 그 당시 주남마을 산에서 매복하고 있던 자들에 의해 군인들도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였다고 한다.

 

* 요약하자면 후배가 머무르고 있던 곳이 시민군 본부요, 시민군 본대였고, 그 곳에 있던 몇백명의 사람들은 본인도 모르는 사이 시민군 아닌 시민군이 되어 있었고, 이들 시민군 아닌 시민군들이 소위 말하는 시민군의 실체였던 것이다. 마을 사람들도 세상이 무법천지가 되고, 어디로 나갈 곳도 없어 하는 수 없이 시민군 아닌 시민군들의 취사병 노릇을 하게 된 것이라고 한다.

 

* 후배가 7일동안 그 곳에 있는 동안, 집에서는 난리가 났었고, 온 가족들이 후배를 찾아 다녔다고 한다.

 

* 5.18이 진압되고 난 후, 후배에게도 시민군으로 본대에 있었으니, 오일팔유공자가 될 수 있다고, 5.18유공자로 신청해보라는 주위의 권고도 있었지만, 본인은 오일팔 민주화운동과는 전혀 관련이 없었기에 양심상 도저히 유공자로 신청할 수가 없었다고 하였다.

 

* 위와 같은 상황을 짐작해 보건대

- 시민군 아닌 시민군을 만들어 놓은 것은 사전에 짜 놓은 치밀한 작전으로 보인다. 시내에서 교통수단을 제공하는 척 하여 사람들을 태우고, 화순 마을로 데리고 오고, 또 미리 무기들을 차 안에 놔두고, 사람들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무기를 들게 하여, 무장을 시키고, 상대편인 계엄군 등과 교전 등이 발생할 시에, 이들 시민군 아닌 시민군들을 투입하여, 총알받이로 이용하고,

 

이들 시민군 아닌 시민군들이 죽으면 죽을수록 계엄군들에 의해 시민군들이 싸우다 죽었다고 하면, 아무 것도 모르는 일반국민들은 무조건 계엄군들에 대한 공분을 일으킬 것이고, 이들 정체불명의 선동집단들은 오히려 일반시민들이나 국민들에게 영웅시 될 것이고, 일반시민들로부터도 동정심 등을 유발케 하는 일거양득이 되는 작전인 셈이 된다.

 

시민군 아닌 시민군들이 많이 죽으면 죽을수록 오히려, 이들 정체불명의 선동집단들에게는 득이 되었을 것이다. 시민군 아닌 시민군들이 많이 죽어 인원이 부족하게 되면, 위와 같은 방법으로 광주시내 등에서 얼마든지 시민군 아닌 시민군들을 조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즉 이들 시민군 아닌 시민군들은 순전히 총알받이요, 소모품에 불과했던 것이다.

 

* 처음 5.18사태의 단초가 된 것은, 대학생들의 데모였고, 또, 데모에 참가한 대학생들이었으나, 지금까지 이들 대학생들 중에서 오일팔 유공자가 되거나 한 대학생은 한 명도 없는 걸로 봐서, 대학생들이 오일팔사태를 주도하여 5.18민주화 운동이 완성되었다는 주장은 전혀 사실무근한 허위주장임이 확실하다.

 

* 당시 계엄군들이나 순수한 일반 시민군들에게 실제로 칼로 찔렸다거나 죽임을 당했다는 사람들이 지금까지 한명도 나타나지 않는 걸로 봐서, 계엄군들이 시민들을 칼로 찔렀다거나 총을 쏴 죽였다고 하는 주장은 전혀 사실무근한 허위주장임이 확실하다.

 

* 당시에 장갑차를 운전한 청장년이나, 시민군의 홍보방송을 하고 다녔던 여성이나, 시민군 차량 등을 운전한 자들이 지금까지 단, 한명도 나타나고 있지 않는 걸로 봐서, 이들이 분명한 정체불명의 선동집단인 것이 확실하다.

 

* 5.18사태 당시 공무원들은 말할 것도 없고, 지식층들이나, 식견을 지닌 광주사람들 대부분은 시위에 참가를 하거나, 시위대들 근처에 가거나, 구경삼아 근처에 가는 것조차도 용납을 하지 못하였었고, 자식들이나 가족들에게도 엄히 타이르곤 하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누가 5.18민주화운동 투쟁을 하였다는 말인가? 그 당시 광주 시민들 대부분은 무서워서 집 밖에 나오지도 못하고, 대문을 꼭꼭 걸어 잠그고 숨죽이며 지내고 있었다.

 

* 저는 그 동안 김대중과 김영삼이가 5.18사태를 민주화운동으로 둔갑시키고, 주로 좌익성향의 정치인들이 합세하여, 5.18사태를 완전한 민주화운동으로 법제화 하여, 허구의 5.18관련 자들이 어마어마한 국고를 빨고 있는 현실을 보면서, 피가 거꾸로 솟는 듯한 감정을 억누르며 지금까지 수십년을 지내왔었다.

 

* 끝으로 지만원씨가 5.18사태가 허구라는 사실을 주장하는 것을 지켜보고 오던 중, 5.18단체들과 광주검찰들이 지만원씨에 대한 무수한 린치를 가하는 것을 보고 치를 떨었고, 저 역시 5.18단체들과 광주 검찰들이 린치를 가해오면 죽기를 각오하고 저의 의지를 만천하에 밝히는 바입니다.

 

댓글목록

wlvudtjs0117님의 댓글

wlvudtjs0117 작성일

정의한님- 1980년 5.18 당시-
전남 도청 구료 담당  공무원의 생생한 증언  다시 보아도!
너무도 진솔한  역사적 사실,
김대중의...
폭동을  민주화로  조작질한    왜곡된  역사
시커먼 양심으로  자유대한민국의 오늘을 만든 자들은  -
 반드시 반드시  준엄한 역사의 심판을  받을 것이다.

jmok님의 댓글

jmok 작성일

잘 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inf247661님의 댓글

inf247661 작성일

진작부터' 5.18 광주사태'는 '북괴특수군'을 주축으로 한; 및 '북괴 군.관.민 합동작전 TF'였음이 분명함! ,,.
 더 이상 '曰可 曰否' 한다는 현상조차가 이미 우스운 짓임1  증거가 다 나와 있는 터에 무슨 놈의,,.  빠 ~ 드드,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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