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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 영웅 박정희 -- 박정희의 경제 개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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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유람가세 작성일15-02-23 22:57 조회3,108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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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재 - 민족의 영웅 박정희

                                                       박정희의 경제 개발 (2)

 

                              박정희 경제의 특징 -- 집중과 선택
  
                                                 재벌 중심의 산업구조


박정희 경제의 핵심 철학은 바로 철저한 우선순위에 따른 집중과 선택이었다. 6,70년대 당시 자원과 자본 등 모든 면에서 부족한 한국의 상황에서 그 것을 경제의 모든 분야에 골고루 투자하고 분배한다는 건 불가능했으며 만약에 그렇게 했으면 대한민국의 경제는 이미 6,70년대에 망해서 지금까지도 영원한 후진국으로 남게 되어 이 글을 보는 독자 여러분들도 지금 후진국 수준의 가난한 삶을 이어가고 있을 것이며 민주팔이들이 그렇게도 우선시하는 민주주의라는 것도 지금 전혀 없을 것이다.

후진국 수준의 가난한 삶 하면 연상되는 게 없는가? 바로 내전과 쿠데타의 연속으로 인한 민생의 피폐인데 한국에는 그런 것이 없었다. 왜냐? 영웅 박정희가 단 한 번의 군사혁명으로 18년간 집권하면서 내치를 안정시키고 비약적인 경제발전을 이루어냈기 때문이다. 만약 그런 박정희의 빛나는 5.16 혁명과 10월 유신이 없었다면 한국인들은 아직까지도 후진국 수준의 가난한 삶을 이어가면서 내전과 쿠데타가 연발하는 걸 보게 되었을 것이며 민주팔이들이 그렇게도 외치던 민주주의라는 건 구경도 못해 보고 있을 것이다. 일단 먹고 살만큼 되어야 말할 수 있는 게 바로 민주주의라는 것이다.

6,70년대처럼 모든 게 부족한 상황에서는 자본, 자원, 인재 등 국가의 모든 역량을 끌어 모아 꼭 필요한 곳에 집중해야 하며 그 게 바로 박정희의 경제개발 핵심 전략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자본, 자원, 인재 등을 집중한다는 건 무엇을 말하는가? 바로 재벌로 지칭되는 대기업들을 양성하는 일로 직결되었으니 재벌 중심의 산업구조가 한국에 만들어졌다.

당시 박정희가 그러한 집중과 선택의 전략으로 경제를 운용했기 때문에 지금의 대한민국 경제가 있는 것이다. 비록 1979년 10.26 반란으로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하고 5공 시절을 거쳐 대한민국이 '민주화' 당한 이후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등 민주팔이 정권의 잘못된 경제 정책으로 인해 대한민국 경제가 많은 어려움과 위기를 겪는 바람에 서민들의 생활고가 극심해지기는 했지만 6,70년대에 박정희가 집중과 선택으로 건설해 놓은 경제 바탕과 산업 인프라가 워낙 튼튼했기 때문에 아직도 버티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집중과 선택을 하려면 민주주의는 버리고 독재를 해야 하며 그것은 정당하고 필요한 독재이니 단어 선택을 달리하여 <영도(領導)>라고 불러야 마땅한 것이다. 지난 6,70년대의 한국처럼 산업 기반이 전무한 나라에서 경제와 국방에 대한 건설은 민주주의와 양립할 수 없는 것이었으며 민주주의도 하면서 외세 침략을 막아낼 수 있는 경제와 국방을 동시에 건설하는 일이 불가능한 이유는 바로 이 <집중과 선택>의 문제가 걸려 있기 때문이다.

이는 간단한 삼단논법이다.

1. 산업기반이 전무한 상태에서 경제와 국방을 건설하려면 집중과 선택이 필요하다.
2. 집중과 선택을 하려면 민주주의는 버리고 독재를 해야 한다.
3. 그런 독재는 불가피하고 좋은 독재이니 '영도(領導)'라고 불러야 하며 따라서 박정희는 영도자다.

그럼 1960년대 한국과 같은 나라의 경제개발에서 집중과 선택을 하려면 왜 민주주의를 버리고 독재를 해야만 하는가? 그것은 경제개발에는 20년 이상의 시간이 걸리고 그 동안에 정권이 이리 저리 바뀌면 정책의 연속성과 일관성이 침해받는 게 일쑤이기 때문이다. 바로 포퓰리즘과 중우정치로 흐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박정희가 1972년에 10월 유신을 단행하여 이른 바 '독재'를 하게 된 것이니 그 것은 대한민국에 꼭 필요하고 정당한 '독재'였던 것이다.

특히 박정희가 10월 유신을 단행하여 '독재'를 시작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중화학공업과 방위산업을 육성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한국의 중화학공업 육성은 그야말로 무에서 유를 창조해내는 대 역사(役事)였고 자본과 자원과 기술, 인력, 행정의 엄청난 집중과 <특혜>를 요구하는 일이었으며 이는 필히 사회 각 계층과 집단들 간의 형평성 논란과 이해관계 충돌과 분란을 야기시킬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이른 바 민주주의 제도 하에서는 절대로 실행할 수 없는 일이 바로 박정희 시대의 중화학공업 육성이었던 것이다.

예를 들어 당시 박정희 정부가 기업들로 하여금 중화학공업 분야에 뛰어들게 만들려면 자본과 자원, 인력들을 소수 기업들에게 우선적으로 제공하여 그들을 재벌로 양성할 수밖에 없었으니 이는 민주주의 제도 하에서는 필히 각 기업들 간의 형평성 논란을 불러 일으켜 필연적으로 야당의 정치적 반대에 부딪힐 수밖에 없기에 실행 불가능한 일이었다. 만약에 정권이 바뀌게 되면 이런 저런 '민주적'인 이유로 폐기될 수밖에 없는 게 바로 중화학공업 육성 정책이었던 것이다.

온갖 반대를 무릅쓰고 국가 기간산업을 일으키고 각종 선결 과제들을 추진해 나가야만 했던 당시에 민주주의를 한다는 건 바로 포퓰리즘을 한다는 것에 다름 아니었던 것이다.

게다가 중화학공업 육성은 초기의 시행착오와 얼마 간의 실패도 감수해야만 하는 일이었는데 만약에 박정희가 10월 유신을 단행하지 않았으면 당시 대통령 병에 걸려 사사건건 박정희의 정책에 반대하던 야당 인사들이 그냥 보고만 있었겟는가? 그들은 틀림없이 그 초기의 시행착오와 실패를 감수할 생각은 않고 그 것을 기회로 국민을 선동하여 중화학공업 정책을 폐기하는 일에 앞장섰을 것이고 그러면 모든 게 무산되고 마는 상황이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따라서  박정희 시대 당시에는 굳건한 권력 기반을 만들어서 그 것이 정권교체 없이 장기적으로 유지되어야만 집중과 선택으로 실행할 수 있는 게 바로 중화학공업 육성이었던 것이며 그래서 박정희는 1972년에 10월 유신을 단행한 것이다. 국가와 민족의 발전과 행복을 위해서 말이다.

어느 네티즌(고사연)의 말 대로 모든 것이 다 모자라는 상황에서는 그 중에 있는 것 없는 것 다 끌어모아 가장 절실한 곳에 집중투자하는 것, 이것이 국력 배양의 최선(최고효율)이라는 것을 실제로 보여준 위대한 지도자가 바로 박정희인 것이다.

또 어느 네티즌의 말 대로 그런 집중과 선택의 방법으로 군살이라고는 전혀 없는 완전 근육체질의 국력을 기른, 세계 5대강국(미.일.독.영.불)만이 가진 기간산업을 육성한 위대한 지도자가 바로 박정희인 것이다. 한국의 산업구조를 명실공히 약소국에서 강대국형으로 변모시킨 지도자가 바로 박정희인 것이며 박정희 대통령의 정치철학을 본받아 실천하는 것이 이 나라를 살리는 길이다.

우리 한국인들은 알아야 한다. 6,70년대의 경제적 극빈 상황은 곧 바로 국방력의 결핍으로 연결되고 이는 바로 국가 존립의 절대 위기 상황으로서 미국 등 타국의 힘에 의한 일제의 패망으로 <운 좋게> 얻은 독립이 언제 어떻게 사라질지 모르며 또 언제 어떻게 북괴에 의해 적화될지 모르는 상황이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바로 이 사실에 대한 인식을 제대로 하지 않고 '민주주의'라는 잣대로 박정희를 평가하겠다고 나서는 자들은 너무나 철없고 배은망덕한 자들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즉, 6,70년대 전반을 국가적 비상사태의 시기로 인식해야만 박정희에 대한 올바르고도 공정한 평가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총포 소리만 울리지 않았을 뿐 명백한 비상사태요 위기 상황이었던 것이다. 박정희는 그런 비상사태에서 선택과 집중, 그리고 경제 개발의 일관성 유지를 위해 독재가 필요했고 이는 비상 시기의 정당하고도 필요한 통치 행위였으며 누군가는 그렇게 해야만 대한민국과 국민이 생존할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전장에서 적을 죽인 병사를 두고 '살인자'라고 부르지 않고 '영웅' 내지 '수호자'라고 부른다. 병사가 적을 죽인 행위 자체는 살인이지만 그 누구도 그 병사들을 '살인자'라고 부르지 않는다. "어쨌든 살인을 했으니 살인자"라고 불렀다간 몰매 맞아 죽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박정희는 6,70년대의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나라를 구한 인물이고 그런 위기 상황은 평화 시기의 일반적 절차로는 절대로 타개할 수 없으며 전장에서와 같이 지휘자의 권한이 대폭 강화되어야 하며 그 결과로 나타난 것이 바로 10월 유신이요 이는 정당하고도 필요한 독재였으니 '영도'라고 불러야 마땅한 것이다. 그런 영도자요 민족의 은인인 박정희를 두고 "어쨌든 독재를 했으니 독재자"라고 말하는 배은망덕한 언행을 했다간 몰매 맞아 죽는 때가 빨리 와야 할 것이다.
 
그리고 마침 이상의 집중과 선택 이야기들을 뒷받침할 수 있는 네티즌의 수기가 있어 그 일부를 소개한다.


                   -- 이하 "나에게 朴正熙를 설명해 주는 中國人" 중에서 인용 --


작년 여름이었습니다. 

북경에서 상해를 가는데 기차를 이용했습니다. 저녁 6시부터 시작한 기차여행은 다음날 아침 8시까지 장장 14시간 계속되었습니다. 기차는 같은 칸에 침대가 좌우로 2단씩 4개의 침대가 있었습니다.
북경 역에서 애인과 이별하며 서러워하던 아가씨와 나, 그리고 엉덩이가 내 서너 배는 됨 직한 미국인 한 명, 그리고 젊은 중국 청년 한명이 같이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신화사 통신에 근무한다는 청년이 박정희 대통령에 대해서 제게 물었습니다. 한국의 발전은 박대통령에 의해 그 단초가 제공되었는데, 박대통령의 국가 발전의 핵심 전략이 무엇이었느냐는 것입니다. 남의 나라 기차간에서 박대통령의 국가발전 핵심전략이 뭐였냐는 질문에 진땀이 났습니다.

여러분은 아십니까?

새마을 운동 생각이 나서 그렇게 대충 설명했더니, 그 청년은 내가 무안하게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의 한국 경제발전의 핵심전략은 '집중화(集中化)'라는 것입니다.

60년대 당시 세계 최빈국 가운데 하나였던 한국은 자원도 기술도 전무한 상황이라 경제발전의 단초조차 없었다는 것입니다. 산업이라는 것 자체가 전무라 해도 좋았다는 것이지요.

그는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경제발전이란 눈사람을 만드는 일과 같다. 눈사람을 만들려면 먼저 주먹 만한 눈을 뭉칠 수 있어야 하는데, 이 주먹 만한 눈 뭉치 조차 만들 만한 눈이 한국에는 부족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청년은 눈 뭉치는 시늉까지 내며 내게 설명했습니다. 박대통령은 그래도 한국이 산업국이 되기 위해서는 없는 눈을 만들어서라도 눈사람을 만들어야 한다고 작심했습니다.

청년은 우리의 누나와 어머니들이 머리카락을 잘라 가발을 만들어 수출한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엄마와 누나의 머리카락이 당시의 우리 나라 산업의 기초 원자재였다는 게, 저도 지금은 실감나지 않습니다. 어떻든 박대통령은 동원할 수 있는 국가자원은 모조리 동원했다는 것입니다. 청년은 여기서 박대통령의 능력이 놀랍다고 했습니다. 국가 자원을 총동원한다는 것이 말처럼 그렇게 쉬운 게 아니랍니다. 능력이 없으면 있는 자원을 모으는 것도 불가하다는 것입니다.

그는 현재의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의 예를 들어 박대통령과 비교했습니다. 한국에 비해 자원이 넘치는 이들 나라가 지금은 한국의 반도 못 쫓아가는 건 동원 능력이 없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청년은 당시의 박대통령과 한국민은 동일한 목표의 설정에 성공했고, 그 합의는 "잘 살아 보자."였다는 것입니다.

청년의 설명은 계속됩니다.

이 총동원된 자원은 '재벌'이라는 창고에 쌓아두는 게, 박대통령의 집중화의 핵심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아도 빈약한 자원을 여기저기 분산시키면 힘으로 작용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자원을 모아두는 저수지가 필요했고 그게 바로 '재벌'이라는 것입니다.

박대통령의 계산은 간단했답니다. 저수에 물을 고이게 한다. 그래서 저수지에 물이 고이고 고여 넘치면 아래로 흘러가게 마련이고, 이는 논과 밭으로 가게 마련이다. 그 물이 저수지에 고이는 데 한국은 20년 정도 걸렸답니다. 그리고 그 물이 흘러 넘치기 시작한 게 80년대라고 청년은 설명했습니다. 20년 동안 한국인은 고생했답니다. 노동자가 대가를 제대로 받지 못한 것도 사실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미래를 위한 투자였고, 후세의 지금 당신들이 누리는 세계 10대 경제 대국의 위상이라는 것입니다. 그는 박정희의 개발 독재를 이렇게 평했습니다.

원칙적으로 독재는 나쁘다. 그러나 더 나쁜 것은 원칙을 핑계로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내가 물었습니다.

그럼 과거의 재벌은 나름대로의 기능을 했다고 치면, 현재 한국의 재벌에 대해서는 어떤 평가를 하느냐고 했더니, 그 청년은 그건 한국인이 무엇을 원하느냐에 달렸다고 대답했습니다. 아직도 큰 저수지가 필요하다고 판단하든지 아니면 작은 저수지를 여러 개 파는 게 물의 흐름을 원활하게 할 것이라든지, 한국인이 판단할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는 현재 중국의 경제 발전에 대해서도 말했습니다. 중국이 지금 60년대의 한국과 비슷하다는 것입니다. 국가 자원의 집중화를 위해 재벌과 국가가 정경 유착을 인위적으로 조장하고, 국가는 마스터 플랜을 재벌은 그에 따른 서브프로젝트를 수행하고, 그래서 한국처럼 단기간에 국가 경쟁력을 키운다는 것입니다.

다행스럽게도 중국은 한국에 비해 천연자원과 인적자원이 풍부하여, 한국보다 더 단기간에 경제 대국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있다며, 만약 60년대에 중국에 박대통령 같은 주석이 있었다면 ,지금 미국은 없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 청년은 한국의 민주화에 관해서 이런 평을 했습니다. 한국 민주화의 일등 공신은 박정희다. 경제성장과 정권의 독재는 역방향으로 움직인다. 독재적 경제 대국은 세계 어디에도 없다.

날이 훤히 밝아오고 기차는 아주 긴 철교를 지나고 있었습니다.

정말 박대통령은 무엇을 꿈꾸고 있었을까요? 궁금했습니다.

중국 기차에서 들은 박대통령 이야기

공서환...


                                      -- 인용 끝 --


자, 보았는가? 이렇듯 해외의 외국인들마저도 이미 예전부터 박정희의 위대한 업적에 대해 인정해 왔으며 무엇이 박정희 경제 전략의 핵심이었는지를 알고 있는데 정작 박정희의 조국 대한민국에 사는 한국인들은 어째서 박정희에 대해 이토록 무지한가? 한심하고도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재벌 중심의 산업 구조는 상기한 바와 같은 6,70년대의 시대적 상황 속에서 집중과 선택이라는 필요에 따라 정당하게 생긴 것이니 이를 무슨 정경유착이니 하면서 박정희 비난의 소재로 이용해서는 안되며 오히려 박정희를 칭찬하는 소재로 활용되는 게 마땅한 것이다. 필요한 시기에 꼭 필요한 재벌 중심의 산업구조를 선택한 박정희는 칭찬의 대상인 것이다. 다만 박정희 시대에 그렇게 박정희와 국가의 은덕을 입은 재벌들이 그 것을 망각하고 국가와 국민에 해를 끼치는 짓을 하면 당연히 비판해야겠으니 이는 어디까지나 그 해당 재벌에 대한 비판이지 박정희와 박정희가 선택한 재벌중심체제 자체에 대한 평가와는 무관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럼 박정희의 집중과 선택은 재벌중심체제 이외에도 어떤 식으로 이루어졌는가를 알아봐야 하는데 그 것은 관치금융, 중복투자, 강력한 정부통제 등 계속 이어지는 박정희 경제의 특징을 살펴 보면 자동적으로 알게 될 것이다. 그런 모든 것이 부국강병에 필요한 집중과 선택을 위한 수단으로 기능했지 박정희가 권력 그 자체를 목적으로 했거나 박정희 개인의 사리사욕을 위한 게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박정희라는 위대한 영웅을 두고도 알아보지 못하고 오히려 욕을 하는 배은망덕한 사람들이 많은 한국의 현실은 하루 빨리 고쳐져야 한다.

유람가세, 2015-02-23

위대한 박정희
http://cafe.daum.net/great6070

 

 

 

 

댓글목록

rndpffldi님의 댓글

rndpffldi 작성일

박정희 경제 개발 덕분에 우리집의 주거환경도 눈부시게 발전했다  국민학교 졸업당시 남산밑에서 월세로 살다기  중학교때 순화동에서 전세로 살다가 고등학교 1년때 구의동에 조그만한 단독주택을 장만하셨다. 방하나는 세를 주었고, 나는 동생과 방하나를 공부방으로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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