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사 대기 중{삭제 예정}. {'홍 범도'는 脫營兵, 路上 强盜, 共産主義者.} > 퍼온글

본문 바로가기

System Club 시스템클럽

퍼온글 목록

복사 대기 중{삭제 예정}. {'홍 범도'는 脫營兵, 路上 强盜, 共産主義者.}

페이지 정보

작성자 inf247661 작성일23-09-07 09:36 조회2,758회 댓글0건

본문

'홍 범도'는 탈영병, 노상강도, 공산주의자

                                요약 

'홍 범도'는 조선군에서 상관을 살해 후 탈영해 총으로 사냥을 업으로 삼았다.

일제가 총기 규제를 시행해 생계가 막히자 부하 10여명을 데리고 '산적/노상강도질'을

좀 하다가, 간도로 건너갔다.

 

간도에서는 볼셰비키 공산주의 혁명군(러시아 赤軍)에게 쓰임을 받아, 러시아 白軍(왕당파)에 대항해 싸웠다. 봉오동 전투가 있었다고는 하나 상당히 소규모 충돌이었고 그나마 봉오동은 '최 진동'의 근거지라 '홍 범도'랑은 상관이 없다. 또한 그 이후 전투 기록이 없는 걸로 볼 때 일본군과 자주 싸우진 않은 것으로 판단되고 보통 소련군에 의해 쓰임을 받았다. 

 

소련군에서 조선인 여단 지휘관으로 승진했지만 곧 조선인 배제 정책으로 일반 노동을

하다가 사망했다. 나중에 그는 73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독소 전쟁에 참전을 희망했다

고 전해진다.

 

 

(주요 자료는 네이버 stupa84 블로그 및 전 월간조선 '김 용삼' 기자 방송내용에서

발췌 : 펜앤마이크, '홍 범도' 연표는 '신 인균'의 국방 TV)

 

 '홍 범도'의 조선내 일대기

 

1868년 머슴의 아들로 출생/

조선군 병사로 복무하다가 상관을 살해한 후 탈영/

금강산 신계사로 도주 후 막 출가한 비구니 '이 옥구'를 겁탈해 임신시킴 /

1886년 황해도 제지공장에서 일하다 고용주 살해 후 도주 /

1896년 강원도에서 총을 가지고 사냥꾼 일을 함/

1907년 일제의 총기 단속으로 인해 생계가 막히자 노상강도질


 

총기 소지 금지 때문에 '의병 활동' 시작

 

'홍 범도'가 '의병 활동'을 시작하게 된 최초의 계기는 1907년 9월 3일 일제가 공포한 '총포급화약류단속법(銃砲及火藥類團束法)'의 졸속한 시행에 있었다고 한다. '총포 및 화약류를 판매하는 자는 관찰사의 허가를 얻어야만 한다' 는 법령. (나무위키)

 

포수로 생계를 책임지던 '홍 범도'와 조합원들에게 의병 투쟁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당시 의병은 14명으로 전해지며 대부분 함께 사냥 일을 하던 강원도 산포수들이었다.(나무위키)

 

1918년, 러시아의 공산주의 혁명을 막기 위해 일본을 주축으로 한 연합군이 연해주에 투입되었는데, 이에 따라 '홍 범도' 또한 러시아 백군(왕당파, 자본주의파)과 싸웠다고 한다.

 

  말하자면 '홍 범도'의 부대편성과 간도로의 이동은 이러한 연해주의 정세와 러시아 혁명파의 지원이라는 배경이 있었던 것이다. [* 공산주의 혁명군을 돕기 위해 이동한 것임과 동시에, 생활비 지원을 받기 위한 두 가지 목적]

(아래 기사는 한겨레 신문에서 발췌 편집)

카자흐스탄에서 고려인 작가 '정 장길(鄭 長吉. 65)'씨는 '홍 범도'의 탄생 140주년을 맞아 그간 소장해온 `레닌기치'(현 고려일보 전신. 1938년 창간, 1990년 폐간)의 '홍 범도' 관련기사를 공개했다.

레닌기치 기자로 일했던 '정'씨는 "'홍' 장군이 연해주로 이동한 1921년에는 소련군과 일제 및 러시아 백군(볼셰비키 혁명반대 세력)간에 치열한 전쟁이 벌어지던 있던 시기였다"며 당시 지원세력이 절실했던 `붉은 군대'(소련군)는 홍 장군에게 소련군 편입을 강요했다고 밝혔다.

[* 한인들이 편입을 거부하자 소련군은 1921년 6월28일 `자유시 참변'을 일으켜 독립군(?) 제거에 나섰으며 여기에 협조한 것이 '홍 범도']

'정'씨는 그러면서 '홍' 장군이 1921년말 모스크바에서 열린 '제1차 동방근로자대회'에 초청받아 레닌으로부터 권총 1자루와 금화 100루블을 선물로 받았으며 이후 얼마되지 않아 (소련군) 25군단 조선인 여단 독립대대 지휘관으로 '승진'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소련군의 고려인 배제정책이 노골화되면서 1923년 군복을 벗어야 했다.


]홍 범도'는 이후 연해주 콜호스(집단농장)에서 일하다가 1937년 카자흐스탄 크질 오르다로 강제 이주됐다. 크질 오르다에서는 고려극장의 야간 수위 생활을 했으며, 조국 광복을 이태 앞둔 1943년 눈을 감기 직전엔 정미공장 근로자로 일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레닌기치의 1943년 10월27일자에는 "'홍 범도' 동무가 여러 달 동안 병상에 계시다가 본월 25일 하오 8시에 별세하였기에 그의 친우들에게 부고함. 장례식은 1943년 10월27일 하오 4시에 거행함. 부고자: 크질 오르다 정미공장 일꾼 일동"이라는 부고가 실려 있다. 현재 그의 묘소는 크질 오르다에 있다. (이상 한겨레 신문 2008/8/26)

 

또 우리가 주목해야 할 문제의 하나는 '홍 범도' 부대 병사 및 무기, 장비의 모집과 무장에 대한 국민의회의 핵심멤버로 활동하고 있던 '이 동휘(李 東輝)'가 중요한 역할을 하였을 것이라는 점이다. [* '이 동휘'는 공산주의자이며 기호출신(중부지방, 자유민주주의) 사람들과 대립하였다고 되어 있다 ]

 

홍범도 부대는 간도에서 러시아 적군과 동행하여 백군과 전투

 

'홍 범도'는 그의 부대가 간도로 이동하면서 러시아 적군(赤軍)을 지원하여 10월혁명의 반대세력인 백위파군(白衛派軍)을 타도하는 전투에 동참하였다는 것을 직접 기술하고 있고 또 그 전투 이후 자기부대에 러시아 적군 출신 빨치산 3명 청산리 전투가 벌어지기 얼마전인 1920년 9월까지도 동행하였다고 밝히고 있다. 

 

봉오동 전투란 실제로 있었나?

 

'홍 범도' 개인의 일지에는 아래와 같이 되어 있다.

 

'홍 범도'는 <일지> 22면에서 "‥‥‥군정서가 청산리에 있다 하니까 연합하여 고려(한국)로 나갈까 하고 찾아 가는 길에 어구의 큰 길에 나가 서자마자 보초병이 뒤물러 서면서, 日兵 수천명이 당금 당진하였다 한즉 할 수 없이 고려(에)나가(서) 쓰자고 하던 뿔리묘트(기관총)를 걸고 일병 대부대에다 내두르니 쓰러진 것이 부지기수(不知其數)로 자빠지는 것을 보고 도망하여 오른 길로 산폐로 들어와‥‥‥”라고 쓰고 있다.

 

그러나 일본측 기록(전투상보)에는 경찰 포함 253명이 봉오동에서 싸웠다고 돼 있으니 500-600명은 아니다. 일본측 기록은 전사 1명, 부상 1명, 순사(자연사 또는 부상악화 사망) 1명으로 되어 있다.

 

또한 봉오동이라는 곳은 '홍 범도'가 아니라 '최 진동'의 근거지였다고 한다.

그래서, 싸웠다면, '최 진동'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간도에서 군대 운영 비용은 비싸...

 

간도 노동자의 1년치 임금이 30원이었는데, 총 1자루와 탄환 100발 세트의 가격이 35원이었다고 한다. 도저히 대규모 군대를 구성할 수가 없는 큰 돈이라는 것이다.

 

청산리 대첩이 아니라 청산리 탈출 사건

 

일본군은 중국 군벌 '장 작림'에게 마적단을 소탕해 달라고 부탁했는데, '장 작림'은 조선인 마적단을 토벌하기 싫어서 서신을 보내 일본군 눈에 띄지 말고 산속으로 들어가 있으라고 했다고 한다.

 

이에 마적단을 소탕하기 위해 일본군이 '장 작림'과 함께 대군을 이끌고 청산리를 포위했는데, '김 좌진' 등이 이 포위망에서 탈출한 사건이 청산리 사건이라고 하며, 대첩은 전혀 아니었다.

 

일본군 공식 기록에는 마적 소탕을 못했을 뿐 손실은 경미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다만 '김 좌진' 등은 중국 군벌인 '장 작림' 부대가 포위한 곳을 뚫고 도망쳤다고 한다.

  출처 :

홍범도는 탈영병, 노상강도, 공산주의자 > 자유게시판 | 지만원의 시스템클럽 (systemclub.co.kr){Pathfinder12}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퍼온글 목록

Total 117건 1 페이지
퍼온글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추천
117 (분노) 권력이용해 부동산으로 떼돈 번 '이 해찬!' … 새글 inf247661 2023-09-30 5 0
116 북괴가 가장 두려워하는 건? inf247661 2023-09-29 51 2
115 '死刑囚' 조치 방안.{'허 경녕'식}{삭제예정}/ 外… inf247661 2023-09-25 178 3
114 '醜 未愛; ,,.(削.豫) inf247661 2023-09-22 213 2
113 (削除 豫定)'김 양래!' ,,. 或是 北傀 間諜들에게… inf247661 2023-09-20 253 9
112 고 '채 명신' 장군 사모님 명복이나마 삼가 빕니다. … inf247661 2023-09-11 300 11
111 국힘 성일종에 보내는 강력 경고, 5.18 헌법 개정 댓글(1) 한글말 2023-09-07 317 23
열람중 복사 대기 중{삭제 예정}. {'홍 범도'는 脫營兵, … inf247661 2023-09-07 2759 3
109 (削除 豫定)'로 정희'가 쓴 '불법' 판결문 내용,,… inf247661 2023-09-05 201 3
108 이도형: 5-18 재조명하라 한글말 2023-09-04 251 14
107 복사 준비중, {삭제 예정} '지 만원' 호소문 inf247661 2023-08-28 299 9
106 박정희대통령에 대한 평가 댓글(2) 핸섬이 2023-08-21 389 38
105 '訊問官!' ,,. '감옥에서 각하께!' ,,. 댓글(1) inf247661 2023-08-20 310 13
104 K-POP 공연중계를 본 소감 : {'STALLON"님… inf247661 2023-08-13 375 6
103 판도라의 상자 열렸다...이제 5.18로도 막을 수 없… 댓글(3) 공자정 2023-08-09 558 29
102 탈핵정책이 죽었다고? 웃기는 소리 말어 댓글(1) 한글말 2023-08-04 2109 11
101 5.18은 ‘무장봉기’ 입증 - 주동자가 진상조사위원장 한글말 2023-08-03 336 23
100 '問 罪孕!' 묻는다, 죄를 잉태한 빨개이 ♂에게! … inf247661 2023-07-12 1151 10
99 대법관들이 불법 수당 받아? 그러면서 재판을? 댓글(1) 한글말 2023-07-11 1155 26
98 김대중이 역적인 줄을 왜 모르는가? 댓글(1) aufrhd 2023-07-10 496 24
97 알기 쉬운, '오해 중인 6.25 비화' _ 바로 알기… inf247661 2023-06-29 417 7
96 [단독 인터뷰] 강지원 前 3공수 여단 중사, 5.18… 한글말 2023-06-24 504 27
95 배심원단(陪審員團)재판{국민참여 재판}. ,,. inf247661 2023-06-14 342 5
94 가평 _ '가이사' 고등학교 / 外 1 {삭제 예정) inf247661 2023-06-12 426 11
93 어느 캐나다 참전용사의 이야기 댓글(1) 핸섬이 2023-06-08 477 45
92 윤석열의 5월 정신에 동의 못하는 이유 12개 한글말 2023-05-25 669 24
91 세 영웅 댓글(1) aufrhd 2023-04-27 1190 35
90 현재 대한민국을 보는 새로운 시각 댓글(2) 핸섬이 2023-04-17 1464 34
89 숙명(宿命)의 하이라루. {暗殺당하신 故 '김 창룡'장… inf247661 2023-03-31 3617 10
88 LA교민이 대한민국을 걱정하며 보낸 글 댓글(2) 핸섬이 2023-03-31 1449 49
게시물 검색

개인정보취급방침 서비스이용약관

지만원의 시스템클럽 | 대표자 : 지만원 | Tel : 02-595-2563 | Fax : 02-595-2594
E-mail : j-m-y8282@hanmail.net / jmw327@gmail.com
Copyright © 지만원의 시스템클럽. All rights reserved.  [ 관리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