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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경영을 이런 추잡한 정치꾼에 맡기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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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9-11-18 17:29 조회7,50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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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경영을 이런 추잡한 정치꾼에 맡기다니!
             (마피아 정치인을 뽑을 수밖에 없는 이유)

  한국 정치인들이 보내는 시간의 대부분은 "싸우는 시간", "지역구 관리 시간" 그리고 "검은 돈
모으는 시간"으로 채워진다. 공부를 할 시간도 분석 능력을 기를 시간도 없다. 법을 만들 능력도
시간도 없다. 반면 이들은 그들의 자리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 이권에 개입해 부정을 저지르고 질
서를 어지럽힌다. 이익은 안주고 손해만 끼치는 이런 국회의원들을 왜 가져야 하는가?

한국 정치인들의 실력은 "마피아 실력"이다. 마피아 실력을 가진 사람들만이 국회의원이 될 수 있
다. 서양 개념에 의하면 마피아는 뒷골목에서 비밀리에 힘을 행사하는 사람이다. 첫째, 조직을 관
리할 수 있을 만큼의 돈이 없는 사람은 국회의원이 될 수 없다. 돈을 만들기 위해서는 뒷골목에
서 이권에 개입하고 뒷거래를 해야 한다. 돈을 얻으려면 기업에게 이권을 보장해줘야 한다. 이러
한 관계가 계속되는 한 한국에서는 정경유착이 없어질 수 없다.

4년 동안의 임기 내에 최소한 20억은 벌어야한다는 말이 공공연히 회자되고 있다. 패러다임 측면
에서 보면 한국 선거 시스템은 마피아 양성 시스템인 셈이다. 마피아 실력을 가진 국회의원을 갖
느냐 또는 분석 능력을 가진 깨끗한 국회의원을 뽑느냐는 전적으로 선거 시스템에 달려있다.

한국의 선거 시스템은 첫째, 불량한 의원을 뽑고 둘째, 불량한 의원을 더욱 불량하게 만든다. 뒷
골목에서 돈을 동원할 수 있는 사람이 뽑히고, 일단 뽑히면 패싸움에 동원되고, 지역구를 관리하
고, 뒷돈을 열심히 벌어야 한다. 연구할 시간이 없는 것이다. 이런 생활은 오래 하면 할수록 두뇌
가 퇴화될 수밖에 없다.

당수는 원로 국회의원이다. 마피아 문화권에서 일생을 살아온 사람들이다. 싸우는 생활, 검은 돈
을 관리하는 생활, 공부할 시간을 갖지 못하는 생활로 일생을 보낸 사람들이다. 결국 퇴화된 두뇌
를 가진 마피아의 보스인 셈이다. 이런 정치인이 대통령 후보로 등장하고, 이들 중에서 국가를 경
영하는 대통령을 뽑아야 하는 것이다. 이 얼마나 기막힌 사실인가?

국회의원의 위상에도 문제가 있다. 국회의원들이 도매금으로 손가락질 받고 있다. 분석 능력 있는
집단이 아니라 쌈쟁이 집단으로 전락해 있기 때문이다. 진정한 명예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그런
집단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안들 것이다. 국회가 지금처럼 비생산적이면 생산성 마인드를 가진
사람들은 국회의원 자리를 거저 준다 해도 피할 것이다. 결국 시스템이 바뀌지 않는 한 국회는
양화를 구축하고 악화들만 수용할 것이다.

                    (김대중의 모략 질)

  상대방을 제거하기 위한 김대중의 모략질이 또 시작된 것 같다. 김대중 본인은 정말로 추잡하
고 파렴치하고 전율이 느껴질만한 모략질과 사기행각으로 오늘날 대통령이 돼 있다. 아버지가 대
통령이 되자 그 아들들은 조폭, 브로커들과 어울려 도적질을 해서 돈에 곰팡이가 나고 바퀴가 알
을 가도록 창고에 방치했다. 드디어 김대업이라는 파렴치한 사기범을 앞세워 정적을 죽이기 위해
모략질 하고 있는 모양이다.

  우리는 이회창의 아들, 친척을 종합해 수십명을 군대에 보내지 않았다는 첩보들을 접하고 있다.
이런 사례를 과학적으로 수집하여 통계자료를 보여준다면 국민은 쉽게 이회창을 비난할 것이다.
그러나 김대중은 평생을 사기꾼으로 살아와서 그런지 무조건 모략질부터 생각해 내는 모양이다.

  파렴치범으로 1년 징역형을 받은 범인을 데려다가 전직 병무청장을 조사케 하고도 발뺌을 한
다. 천용택은 지난 해, 간호사관학교를 폐쇄하려다가 사단장 시절에 그가 감싸준 성폭력 문제가
불거지자 폐쇄를 중지시켰다. 이번에는 김대업씨와 야합하여 김대중의 모략질에 앞장 선 모양이
다.  

  김대중의 모략질을 살펴보자. 그는 1960년 7월29일 4·19혁명으로 실시된 국회의원 선거에서
김대중은 강원도 인제군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했다. 이 선거에서는 7명의 후보가 난립, 4·19혁
명으로 쓰러진 자유당의 이름을 내걸고 선전한 전형산씨가 김대중을 누르고 당선됐다. 이렇게 되
자 김대중은 4백 명의 데모대를 조직, 군청개표소에 난입, 투표한 22개중 15개를 강탈한 후 전씨
의 사퇴를 강요하는 연좌데모를 벌이게 했었다. 드디어 분위기가 험악해지자 전씨는 김대중에게
사퇴를 약속했지만 법적인 효력이 없어 전씨의 당선은 보장됐다.

▲자신의 선거참모를 자파 당원으로 하여금 구타하고 상대당원이 테러를 했다고 역선전했으며

▲목포시 만호동 상가주택을 철거한다는 낭설을 퍼뜨려 자기선거운동원을 측량기사로 위장, 주민
의 불안감과 반감을 유발케 했고

▲자신의 선거운동원에게 상대방의 완장을 두르게 하고 고무신을 배급, 유권자의 반감을 불러 일
으켰고

▲상대당원을 가장하여 유권자들에게 회식이 있다고 초청하는 허위선전을 해 상대방후보에 대한
반감과 불신감을 갖게 했으며

▲김대중의 사인을 받아오는 자에게는 돈을 주게 하여 자신의 인기를 조작했다.

1971년 대통령후보로 출마했을 때 그는 단순한 자동차사고를 여당 측의 암살음모라고 떠들어대
큰 물의를 일으킨 적이 있었다.

그러나 사실은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오던 중 운전사의 운전부주의로 김대중이 탄 승용차가 전복
된 것이 조사결과 밝혀져 자동차 사고의 암살음모 주장은 결국 김대중이 조작한 혐의가 짙다는
것으로 끝났다.

* 김대중의 집안에 폭발물을 설치한 세칭 폭발물 자해사건도 발생했다. 이는 대통령후보인 김대
중의 집 앞에 폭발물을 장치, 공화당에서 자신을 암살하려 했다고 주장한 사건이다.

조사결과 이 폭발물은 어린이들의 장난감용 딱총 화약을 은박종이에 싸서 배터리 전지로 폭발할
수 있게 만든 조잡한 것이었다.

김대중 암살용 폭발물이었다면 이같이 조잡하지는 않았을 것이고 결국 김대중이 조카를 시켜 저
지른 조작극으로 밝혀졌었다.


                     (김대중의 사기 행각)


▲우선 1959년 6월 인제 지구 재선거에 출마했을 당시 그의 선거참관인 중 문수룡이 참관도중 급
사하자 민주당에서 조위금으로 보내온 30만원 중 18만원을 횡령 착복했고

▲50-56년 사이의 목포해운회사 경영 중 선원봉급과 배를 판돈 1억 5천만원을 횡령, 도주했다.

▲또 60년 4월~61년 4월까지 민주당 선전부장으로 재직할 때 학원공작구실로 조달한 3천7백만원
중 7백70만원을 횡령, 검찰에 구속 송치됐다.

▲7대의원 당시에는 8대 국회의원 당 공천을 해준다고 속여 박종태로부터 5백만원, 김세종으로부
터 3천8백50만원, 이원형으로부터 1백만원 등 4천4백50만원을 사취했다.

그후에도 국회의원이란 직위를 악용, 호남제분, 동아건설, 대한농산, 삼양수산 대표들로부터 거액
의 정치자금을 받아낸 사실도 밝혀졌다.

1972년 10월 김대중이 일본에 머물고 있을 때 10월 유신으로 계엄령이 선포되고 국회가 해산됐
다. 그러자 김대중은 일본과 미국을 왕래하며 한국에 대한 경제원조와 군사원조의 중단, 망명정부
수립, 김일성 정권과의 접촉시도 등 반국가적 행위를 자행했다.

1973년 4월에는 미국 하버드대 코헨 교수에게 한국의 박정권을 타도하기 위해서 미국이 대한 군
사원조를 중단하고 주한미군을 철수시키도록 미의회 지도자에게 압력을 넣어달라고 호소했다. 또
한 미국에서 북한을 방문한 친북괴 분자들을 만나 반국가 단체를 조직했다.

               (오마이 뉴스가 밝힌 김대업)

1. 김대업시는 전과5범으로 알려졌다.  

2. 김대업 씨는 3번에 걸쳐 실형을 선고받았다. 첫번째는 군 복무중의 병역비리 연루 사건. 그는
당시 신검 부서이기도 한 대구병원 외래과에 파견 근무할 때 병역비리 건으로 남한산성에서 8개
월간 복역했다.

그는 제대 후 택시회사를 운영했고, 의정부 시민병원을 설립하기도 했다. 96년 병원 인수시킨 뒤
미국 LA토렌스에 컴퓨터 자수 공장 설립해 많은 돈을 벌었다는 그는 97년 7월에 ‘협박’ 혐의
로 구속돼 1년 동안 복역했다.

그는 그 이듬해인 98년부터 2년여간 군 검찰과 함께 병역비리 수사팀에 합류해 자료 분석 작업
등을 벌였다. 하지만 수사팀에서 나온 직후인 2001년 3월 또다시 사기혐의로 체포돼 1년여 동안
서울구치소에 수감된 뒤 8개월에 걸쳐 서울지검 특수부에서 활동했다. 그는 아직도 두 번째와 세
번째 구속은 병역비리 수사와 연관된 음해라면서 억울해하고 있다.

             (독립신문이 밝힌 김대업)

  '김대업씨가 의정부 시민병원을 설립했다’시민병원을 설립했었다는 오마이뉴스의 보도는 확인
결과 거짓말이다.  


                    (김길부씨의 증언)

김길부 전 병무청장은 지난 1월 검찰 수사 과정에서 만난 김대업(41)씨를 정식 수사관의 모습으
로 기억했다. 김대업씨는 당시 징역 1년형을 선고받고 서울구치소에서 약 10개월째 복역 중이던
수감자 신분이었다. 김길부씨는 지난 1월 인사청탁 대가로 금품을 받은 혐의로 구속 기소돼 1심
재판 계류 중에 지난달 말 보석으로 석방됐다.

김길부씨는 6일 오전 자택에서 기자들과 만나 검찰 수사 당시의 정황과 김씨의 역할에 대해 설명
하며 “조사를 받을 당시 김대업씨가 수사관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조사 기간에 서울지검 조사실에서 다른 수사관들과 함께 있는 김씨를 수 차례 만났으며,
김씨가 나를 따로 불러 물어보기도 했다”고 전했다. 김길부씨의 이런 말은 김씨가 검찰 주장처
럼 병역기록 등을 분류해주고 하던 단순한 참고인이 아니라 ‘수감자’ 신분으로 수사관 행세와
역할을 했음을 증언하는 것이다.

김길부씨는 “지난 1월 긴급체포된 뒤 조사실에서 조사를 받았는데 수사관 4명의 자리가 있었고
당시 김씨도 그 자리에 있었으며 조사에 참여했다”고 말했다. 그는 “김대업씨가 질문하면서 메
모를 하기도 했고, 다른 수사관이 그 메모를 갖고 조사실 밖으로 나가 타자로 쳤다”고 당시 상
황을 설명했다. 김대업씨 본인도 지난 5일 검찰 출두 당시 “김 전 병무청장의 말을 직접 들었
다”고 말했었다.

김길부씨는 “김대업씨가 느물느물하게 ‘같은 고향 사람(TK)인데 조사 좀 합시다’라고 말하기
도 했다”며 “김씨가 검찰 청사에서 수사관들과 함께 있으면서도 대담했다”고 말했다. 김길부
씨는 “김씨가 다른 수사관 2명이 있을 때 내게 ‘괜찮다’는 말을 하기도 해 김씨가 (수사관
중) 선임자라는 생각도 들었다”고 했다. 김길부씨는 “김씨의 진짜 신분을 지난 5월 ‘오마이뉴
스’ 보도를 보고 처음 알게 됐다”며 “창피하기도 하고 불쾌하다”고 말했다.

김길부씨가 김대업씨를 수사관으로 여길 수밖에 없었던 이유 중 하나는 김대업씨가 사복을 입었
기 때문. 2001년 12월 유죄 확정판결을 받은 김씨는 미결수가 아니라 기결수 신분이라 사복을 착
용할 수 없는 처지였지만 조사 과정에서 만난 김씨는 사복을 입고 있었다고 한다. 김길부씨의 아
들은 “아버지 옷을 드리려고 (검찰청에) 들어갔다가 (김씨가) 파카 차림인 것을 봤다”고 말했
다.

이회창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의 장남 정연씨의 병역 시비의 쟁점 중 하나인 ‘병역비리 은폐 대
책회의’에 대해 김길부씨는 “김대업씨가 조사 말미에 먼저 물어봤다”고 주장했다. 김길부씨는
“김대업씨가 나의 인사청탁 혐의에 대해 조사를 하고, 기타 병역 비리 관련 조사를 하는 듯
‘친한 사람을 적어보라’고 하면서 ‘정치권 인사부터 하자’고 하다가 말미에 ‘대책회의’란
게 있느냐고 물었다”고 밝혔다. 김길부씨는 “그러나 당시 병적 기록 위·변조나 파기에 대해선
김씨가 한마디도 물어보지 않았다”고 말했다.



                       (권력의 시녀, 검찰의 주장)

1. 김대업씨는 서류 분류 등 단순 업무만 도왔을 뿐이다.

2.  국민수(鞠敏秀) 대검 공보관은 “당시 사건을 수사한 노명선 주임검사와 참여계장은 수감자
신분인 김씨가 수사관 자격으로 조사한 사실이 없고 더욱이 단독으로 조사한 경우는 있을 수 없
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김길부씨를 수사했던 박영관(朴榮琯) 특수1부장도 “참고인 자격으로 도
움을 받았을 뿐 김씨가 직접 수사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3. 검찰은 누가 김 전 병무청장 수사에 수감 중인 김씨를 참가시키기로 결정했는가 하는 질문에
대해선 답변을 피하고 있다. 서울지검 고위 관계자는 “한나라당이 김씨가 공무원 자격을 사칭했
다고 고발했으니 김씨를 수사에 참여시킨 결정 과정도 조사 대상”이라고만 했다.


                                  (문제점)

1. 김대업씨가 사복을 입고 있었다는 김길부씨의 주장은 또 다른 문제가 된다. 현행법상 기결수는
사복을 착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김씨는 병역사기 혐의로 2001년 4월 구속 기소돼 징역 1년형이
확정됐었다. 따라서 올 1월 김길부씨에 대한 검찰 수사 당시에는 기결수 신분이었다.

2.  국민수 대검 공보관은 “김씨와 대질 조사를 받는 병역비리 관련자가 거부감을 가질 수 있다
고 판단, 참여계장이 자신의 작업복 바지를 한두 번 입힌 적이 있다고 한다”고, 김씨가 사복을
입은 적이 있음을 시인했다. 김씨의 사복 착용은 검찰이 김씨의 수사관 행세를 묵시적으로 지원
했을 수도 있다는 의혹을 낳고 있다.

3. 김씨는 이날도 녹음테이프를 갖고 오지 않았다.


                             (천용택의 공작설)


서청원대표는 8.6일, “천 의원은 사기전과 5범인 김씨를 자신의 특보로 임명해 추악한 정치공작
을 꾸미려 했다”며 천용택 의원이 6월27일 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 올린 보고서를 증거로 들었
다.

또 김영일 사무총장은 “천 의원 보고서에는 우리측 1,2차 병역문제 대책회의 관계자를 증인으로
확보해 증언하도록 설득하고 있으며, 검찰 수사를 유도한다는 내용이 있다”며 “이런 시나리오
가 모두 현실화하고 있는 걸 우연으로 볼 수 있느냐”고 따져 물었다. “김대업은 천 의원을 포
함한 민주당과 청와대의 사주에 의해 놀아난 꼭두각시”라며 이들의 커넥션 의혹에 대한 검찰수
사를 촉구했다.

남경필 대변인은 1999년 12월, 2000년 1월의 내일신문 보도 내용을 인용, “김씨를 1차 병무비리
수사팀의 일원으로 발령하고 김씨의 비리를 면책해 주겠다고 약속한 사람이 당시 국방장관인 천
의원”이라고 밝혔다. 천 의원이 국방장관 시절부터 검은 유착 관계였다”고 말했다. “천 의원이
지난 6월 김씨를 조사특보로 임명하려 했던 것과 천 의원이 국방장관이던 지난 98년 김씨를 병무
비리수사팀에 발탁하면서 김씨의 병무비리 면책을 약속했다는 일부 언론보도는 두 사람의 밀접한
관계를 증명한다”는 것이다.

  그는 “당시는 권력의 위세가 막강한 정권 출범 초기였음에도 천 의원이 이 보도에 아무런 대
응을 하지 않은 것은 이를 사실로 인정한 것”이라며 “겨우 식사 한번 했다는 사람에게 이런 특
별 대우를 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비난했다. “김씨는 병무비리를 저지르는 과정에서 사기·
사칭·협박 등을 자행했으며 병역면제를 받게 해 준 청년의 누나를 상대로 패륜행위를 저지른 가
정파괴범”이라고 비난했다. 한나라당은 김씨의 전과사실과 파렴치 행각을 상세히 기록한 별도
보도자료를 내기도 했다.

천 의원은 김씨 사주설과 금품 제공설을 제기한 한나라당 서 대표와 남 대변인, 정형근 홍준표
의원 등 4명을 허위사실 유포와 명예훼손 혐의로 금명간 고소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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