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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의 실현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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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9-11-19 14:13 조회4,98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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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의 실현정책


다수가 살아가는 사회에서는 각자의 이익이 상충하게 된다. 민주주의란 다수의 의견을 수렴하여 공동의 선을 추구해 나가는 사회경영 시스템인 것이다. 공동의 선이 과학적 최선은 아니다. 과학적 최선은 그 사회가 운영하고 있는 과학적 분석 능력에 의해 도출될 수 있다. 최선의 선택과 공동의 선택이 얼마나 가까우냐는 다수의 견해가 얼마나 합리적이냐, 각기의 합리적 견해를 어떤 절차를 거쳐 수렴해 가느냐 하는 시스템에 의해 결정된다. 따라서 민주주의의 질은 다수의 사람들이 공동선에 얼마만큼 관심을 가지고 있느냐, 그리고 그 사회가 얼마나 과학적 의사결정을 해 나가는 시스템과 문화를 가지고 있느냐에 의해 결정된다. 민주주의는 민주주의를 위한 기초교육과 공정한 의견수렴 시스템의 함수인 것이다.

3.1 공동의 선에 무관심한 다수는 민주주의 운영 자격 없어

모든 구성원들이 개인 또는 가족의 이익만을 생각하고, 개인 또는 가족의 이익에 영향을 끼치는 사회적 이슈에 대해 무관심하다면 이들 다수들은 민주주의를 누릴 능력도 없고, 자격도 없다. 공동의 선에 무관심한 다수들은 소수의 불순한 사람들에 의해 속임을 당하거나 지배당할 수밖에 없다. 이런 사람들이 바로 남에 의해 지배를 받을 수밖에 없는 피지배적 속성을 가진 사람들이다. 민주주의의 키워드는 ‘자유’, ‘여론’, ‘공동의 선’이다.

자유는 민주주의의 상징이다. 그러나 대수의 구성원들이 제각기 이기주의적 자유를 누린다면 사회는 무질서가 판을 치고, 야만과 폭력을 가진 사람들의 자유가 그렇지 못한 사람들의 자유를 침해하게 된다.

3.2 이기심에 기초한 배타적 자유로는 공동의 선 추구 못해

무절제한 자유의 남발! 이것이 한국 민주주의의 현실이다. 4천만 국민이 자유를 남발하고, 극히 소수의 경찰이 이를 적발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따라서 자유를 남발하는 사람들의 숫자를 극소화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것이다. 이는 마치 고속도로에서 속도위반을 하는 차량이 많으면 위반자를 찾아내기 어렵지만, 소수이면 위반자를 찾아내기가 쉬운 것과 같은 원리다.

해방 후 한국사회에 범람했던 자유는 “남이야 전봇대를 뽑아 이쑤시개로 사용하든 말든, 네가 무슨 상관이냐”는 식의 무절제하고 배타적인 자유방임주의였다. 이런 자유의 뿌리가 지금까지도 이어져 오고 있다. 내 것만 중요하게 생각하고, 나의 생활과 나의 행복에 영향을 끼치는 사회적 이슈와 사회적 시스템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는 사람들만 모여 사는 사회에는 민주주의가 싹틀 수 없다.
민주주의는 선거권과 여론에 의해 실현된다.

3.3 눈 먼 왕들에게 주어진 선거권은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독약

우리는 국민을 왕이라고 말한다. 국민이 선거권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에서다. 그러나 그 선거권을 행사하는 국민의 대다수는 눈먼 왕이다. 공동의 선을 추구해 가는데 관심이 없고, 이를 위한 소양이 길러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의 일 말고는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선거권은 돈에 의해 매수되거나, 대세에 의해 선점되거나, 속임수에 의해 도둑질 당한다. 이러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선거권은 민주주의를 죽이는 독약이다.

따라서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이러한 사람들의 선거권을 제한하고 사회적 공동선에 대해 관심이 있고, 합리적 견해를 도출할 수 있을 만큼의 교육을 받은 사람들의 선거권을 확장하는 것이 이론상으로는 가장 바람직할 것이다. 그러나 수천만이 살아가는 사회에서 누가 유자격자이고 누가 무자격자인지를 가려낸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여기에 미국에서와 같은 간접민주주의 시스템이 대두되는 것이다. 다수가 소수의 대리인을 뽑고, 그 상대적 소수가 선거권을 행사하는 방법일 것이다.

그러나 한국사회에서는 정규 교육을 많이 받은 사람들이 그 지식과 지혜를 이기주의적으로 남용하는 경우가 매우 많다. 인격과 정서를 형성할 초등학교와 중등학교 교육을 통해 이기주의와 경쟁의식만 키웠고, 이타심과 공동의 선에 대한 교육, 애국에 대한 교육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메마른 가슴을 가진 사람들이 지식과 지혜를 쌓는다는 것은 사회에 더 큰 해악을 저지를 수 있다. 많이 배운 사람들의 이기주의는 덜 배운 사람들의 이기주의보다 더 해로운 것이다. 이러한 한국적 여건 하에서는 그래도 직접선거권을 행사하는 것이 보다 안전한 선택일 수 있다.

6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조선민족에게 권리나 주권은 없었다. 이들은 90% 이상 문맹인 상태에서 왕의 소유물처럼 지배 받아 오다가 5천년 역사상 처음으로 이승만에 의해 자유를 향유할 권리와 선거권을 행사할 권리를 거저 얻게 되었다. 이들에게 주어진 자유와 선거권 행사는 바스티유 감옥에서처럼 피를 흘려 스스로 쟁취한 것이 아니라 저절로 주어진 것이다. 그래서 그 의미와 귀중함을 모르고 함부로 취급해 왔다. 자유는 배타적 이기주의로 인식돼 왔고, 선거는 술대접 받고 금일봉 받고, 관광 대접 받는 대가 정도로 남용돼 왔다.

욕심이 없는 사람은 사기를 당하지 않는다. 이기주의적 욕심이 있을 때 사기와 선동에 넘어가는 것이다. “재벌의 돈을 빼앗아 주겠다”, “마을에 길을 내주고 교량을 놓아주겠다”는 식의 이기주의를 자극하는 사기꾼들의 선동에 넘어가 선거권을 팔아넘기기도 했다. 사회의 구성원 대부분이 이 정도의 사람들이라면 민주주의는 공동의 선을 보장하는 수단이 아니라 소수의 사기꾼들에 의해 악용되어 사회를 퇴화시키는 암적인 존재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3.4 분석되지 않은 여론, 흑색공작에 의해 형성되는 여론은 민주주의의 해악

민주주의는 여론 정치라고 말한다. 다수의 여론, 지배적인 여론을 정책에 반영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여론의 질은 국민의 수준에 의해 결정된다. 수준 낮은 방송, 비논리적 선동, 근거 없는 소문, 흑색 여론조작 등에 의해 형성되는 것이 한국사회 대부분의 여론이다. 더구나 한국의 방송은 정권의 나팔수 역할을 하기 위해 근거 없는 선동을 하게 되고, 대다수 국민들은 아무런 여과과정 없이 질 낮은 여론, 왜곡된 여론을 형성하게 된다.

따라서 여론 형성의 가장 큰 매체인 방송은 공익적 토론의 장이 되어야 하며 건설적인 문화를 창조해가는 수단이 돼야 할 것이다.

방송이 누구에게도 치우치지 않고 객관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방송매체가 독립적 기구로 존재해야 한다. 방송기구를 독립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가장 핵심적인 요건은 정치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이다. 방송기구를 직접 운영하는 이사진과 자문위원회 등은 정치권력으로부터 완전하게 독립된 인격체들로 구성돼야 한다. 대통령도 국회도 이사진에 대한 추천권을 포기해야 한다.

미국이 운영하고 있는 이사진 제도(Board Of Trustees)가 우선은 가장 합리적인 대안으로 고려될 수 있다. 이를 위해 가장 먼저 선결돼야 할 조건은 민주주의 시스템을 업그레이드시킬 의지가 있는 대통령의 출현이다. 방송을 정권의 도구로 이용하지 않겠다는 첫 번째 대통령이 나와야 하는 것이다. 대통령이 정당과 좌익사상에 물들지 않은 사회적 인사들로 ‘지명 위원회’ 같은 것을 구성하고, 그 지명위원회에서 방송운영을 독립적으로 할 수 있는 인재들을 20명 정도 뽑게 하여 이들로 하여금 이사진을 구성토록 해야 한다. 당연직 제도 역시 철폐해야 한다.

이들 20명의 숫자는 야합할 수 없는 다수이며, 방송국 사장은 이들 이사진이 인격적인 방법에 의해 호선하도록 해야 한다. 사장은 이 20명 중에서 뽑아도 좋고, 외부로부터 영입해도 좋다. 이렇게 선출된 사장은 정치권력의 영향력을 받을 필요가 없다. 이들은 방송국의 주요 경영자들을 선발하는 것과 방송 정책 및 운영에 대한 주요 의사를 결정한다. 외부 공인회계 회사를 활용하여 방송국의 경영을 진단케 하고, 방송 전문가들로 구성된 자문위원회로부터 방송의 질과 기여도에 대한 평가를 하도록 한다. 이러한 독립적 이사진 제도는 학교, 병원, 은행 등 공공성을 지닌 모든 사회적 기구에 도입돼야 할 것이다.

3.5 민주주의를 위한 교육

대다수국민은 민주주의에 대한 교육과 훈련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웬만하면 대학교를 나오지 않은 사람이 드물 만큼 고등교육을 받은 국민이라 하지만 민주주의에 대한 교육과 훈련은 참으로 유치하다. 서로 다른 이익과 철학이 부딪힐 수밖에 없는 다양한 사회에서 공동의 선을 모색하려면 다수의 의사를 통합하고 승화시킬 수 있는 토론문화와 시스템이 설치돼 있어야 하고, 구성원들은 상대방을 이해하고 공동의 이익을 이해할 줄 아는 논리를 훈련해야 하며 그것을 효과적으로 반영하기 위한 표현을 훈련해야 한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는 이러한 전제조건들이 결여돼 있다. 그래서 목소리가 큰 집단, 폭력과 세도를 행사하는 세력의 이익만 대변되고, 목소리가 없는 집단의 이익은 짓밟혀 왔다.

민주주의에 대한 이러한 전제조건은 오직 교육이라는 하나의 수단에 의해 충족될 수 있다. 선진국들에서는 초등학교와 중등학교에서 발표력을 길러주고 남을 이해하고 공동생활과 협력에 대한 훈련을 받는다. 타인의 사정과 기분을 배려하고 사회적 봉사와 국가에 대한 애국심이 왜 중요한 것인지에 대해 어려서부터 배우고 익히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는 이게 없다. 타인에 대한 배려가 없고, 남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것이 습관화돼 있다. 이런 곳에서는 이기주의만 있고, 애국심이나 이타심이 자랄 수 없다.

우리나라에서도 교육의 패러다임을 180도 바꾸어야 한다. 어릴 때에는 발표력과 인격과 정서를 기르고, 남을 배려하는 훈련, 협동하는 훈련, 나와 사회, 나와 국가 간의 관계를 정립할 수 있는 교육을 시키고, 대학교에서부터는 지식을 위한 교육을 스파르타식으로 시켜야 한다.

고등학교까지에는 민주주의를 발전시킬 수 있는 소양, 인격, 정서를 함양할 수 있는 교육을 실시하고, 대학교 이상에서는 자기의 적성과 재능에 맞는 특정 분야의 지식을 습득할 수 있도록 전문화시켜야 할 것이다. 우리는 육체적으로 정서적으로 한창 발육할 나이에 벅찬 주입식 교육을 강요함으로써 정서, 인격, 창의력, 건강 모두를 파괴하고 있다. 우리의 현 교육제도는 국가차원의 독약이다. 이런 교육으로는 절대로 민주주의를 향상시킬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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