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민 피로(憐憫疲勞) > 휴게실

본문 바로가기

System Club 시스템클럽

휴게실 목록

연민 피로(憐憫疲勞)

페이지 정보

작성자 Long 작성일19-08-28 02:24 조회184회 댓글0건

본문

연민 피로(憐憫疲勞)
 
"수백억 예금을 한 푼도 쓰지 않던 노인의 돈으로 만들어진 재단은 여러 사람들이 월급을 받아먹는 놀이터가 됐습니다."
 
 

엄상익(변호사)     

     한 노인이 평생 모은 돈을 기부하고 죽었다. 노인의 젊어서의 삶은 비참했다. 저녁 무렵이면 시장바닥에 버려진 배추 줄거리 몇  개를 주워다가 청계천변 어두운 판잣집 안에서 찌그러진 냄비에 된장 한 숟가락을 퍼넣고 국을 끓여 삶은 보리밥을 말아 먹었다. 그는  방바닥 밑에 감추어둔 지폐를 목숨보다 소중히 여겼다. 돈은 절대 쓰지 않았다. 술 한 잔 하고 싶을 때는 음식점에서 사람들이  두고 간 소주병을 가져다가 바닥에 남은 술을 입 속에 털어 넣었다. 
  
  개발시대와  함께 어느 순간 그는 거부(巨富)가 됐다. 6.25 전쟁 때 한강을 헤엄쳐서 건넜던 압구정 마을의 돌짝밭 몇만 평을 사두었던  것이 아파트를 지으면서 천정부지로 값이 오른 것이다. 현대건설의 정주영 회장이 찾아와 땅을 팔라고 사정했다. 그는 땅을 팔았다.  다음에는 사람들이 절대 찾지 않을 나쁜 땅을 찾았다. 교통도 나쁘고 접근하기 힘든 서울의 외진 곳을 찾아다녔다. 그는 대치동에  몇만 평의 땅을 샀다. 그 땅에 작은 집을 지어서 팔고 그렇게 반복했다.
  
  어느새  대치동 땅도 금값이 되었다. 마이더스의 손처럼 그가 하는 사업마다 황금으로 변하는 것 같았다. 자신의 통장 속에 얼마나 돈이  있는지 헤아리기 힘들 정도였다. 그러나 습관화된 그의 삶은 변화가 없었다. 어느 날 폐섬유증이라는 죽음의 사신이 갑자기 그를  데리러 왔다. 모든 게 허망했다.

그는 평생을 우상으로 섬기던 돈에 대해 분노가 치밀었다. 전부 불에 태워 버리거나 바다에  던져버리고 싶었다. 어느 날 병상에서 그는 한 텔레비전을 보다가 불쌍한 사람들이 나오는 걸 보고 전 재산을 그 방송국에 기부했다.  수백억의 현찰과 값비싼 땅이었다. 그의 돈으로 재단이 설립됐다. 그럴듯한 사회 명사가 이사장이 됐다. 어느 날 기부자인 노인의  돈을 담당하던 지점장이 나를 찾아와 이렇게 호소했다.

  
  “그  노인은 수백억 예금을 가지고 있어도 단 한 푼을 꺼내 쓰지 않았습니다. 지점장인 내가 선물로 가지고 간 켄터키 프라이드 치킨을  드시면서 이렇게 맛있는 건 처음 먹어본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뭡니까? 그 돈을 관리한다는 사람들이 최고급 호텔에서 호화파티를  합니다. 그 파티석상에서 죽은 불쌍한 노인의 이름은 한 마디도 나오지 않습니다. 노인의 돈으로 만들어진 재단은 여러 사람들이  월급을 받아먹는 놀이터가 됐습니다. 이래도 되는 겁니까?”
  
  그  지점장은 분노하고 있었다. 그 분노가 내게도 옮겨 붙었다. 사회 명사인 그 이사장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신의를 지키고  성실하게 해야 할 법적 임무를 위배했다는 주장이었다. 재판 도중 나는 이성을 잃고 재단이사장으로 있는 그 명사에게 분노를  터뜨리기도 했다. 그는 마음이 없는 가짜인 것 같았다. 죽은 노인의 혼이 내게 들어온 것 같기도 했다. 소송을 제기하기 전에  쓸쓸한 그 노인의 무덤에 갔었다. 소송에서 졌다. 법원은 총리 물망까지 오른 그 이사장 편이었다. 
  
  변호사의  평생은 그렇게 남과 다투는 일의 연속이었다. 공감을 넘어서 그들의 고통이 나의 내면으로 밀려와 나를 불태울 때가 많았다.  학문적으로는 그걸 ‘연민 피로’라고 하나보다. 분노가 내게 이입된 나에게 법정은 처절한 싸움의 장이었다. 하나하나의 사건을 무심한  남의 일로 생각할 수가 없었다. 
  
  일생을  악취가 가득한 법정에서 지냈다. 정의가 유린되고 불공정한 세상에 분노했었다. 오랜 세월이 흘렀다. 이제 은퇴할 때가 됐다. 분쟁  속에 휘말리지 않고 평화로운 나머지 여생을 보내고 싶다. 요즈음은 어쩌다 법정을 가보면 낯선 풍경을 맞이한다. 검사나 판사가 다  어린아기 같아 보인다. 실제로 친구의 딸이나 아들이 재판장이 되어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경우가 많다.

지금의 대법원장은  사법연수원에서 같이 공부하던 시절 나보고 형이라고 했다. 쉬고 싶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천직인 변호사를 힘이 있을 때 해야 할  것 같기도 하다. 변호에 대한 생각도 달라졌다. 차분한 철학과 인생이 담긴 성실한 변론문을 써내는 게 변호사의 소명이 아닌가  한다. 판사의 마음을 어떻게 움직일지는 하나님의 섭리다.

  
하나님은 재판장 빌라도를 악역으로 쓰기도 했다. 내가 뭔가 바꾸어보겠다고 하면서 분노로 움직였던 행동은 어리석었다. 하나님의 섭리는 연자방아의 맷돌같이 아주 천천히 돌지만 밀가루같이 곱게 불의를 가루로 만들듯이 꼭 심판하시고 만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휴게실 목록

Total 7,835건 4 페이지
휴게실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추천
7745 사랑의 터치 Long 2019-09-02 180 11
7744 젊은남자에게 빠진 아내에게 차원이 다른 복수를 보여준 … 둥이 2019-09-01 197 4
7743 사랑에 병적으로 집착하는 싸이코패스 의사 둥이 2019-09-01 94 0
7742 귀신들린 정신병원에 촬영갔다가 갇혀버린 사람들 둥이 2019-09-01 123 2
7741 신혼부부 집에 수십대의 카메라를 설치한 집주인 둥이 2019-09-01 167 0
7740 아마존으로 2,600억 매출 회사가 되기까지 둥이 2019-09-01 84 0
7739 부자가 되고 싶다면 꼭 봐야할 영상ㅣ그랜트 카돈 둥이 2019-09-01 117 1
7738 주름하나 없는 100살 예쁜 할머니의 비결 둥이 2019-09-01 226 0
7737 29년 동안 꿈을 찾아 헤멘 피터 딘클린지ㅣ동기부여ㅣ한… 둥이 2019-09-01 86 0
7736 타도 미국 외치던 중국에 코스트코가 오픈하자 벌어진 일 둥이 2019-09-01 95 1
7735 먼 미래, 시키면 뭐든지 하는 노예로 만드는 상상도 못… 둥이 2019-09-01 90 0
7734 최근 한국사람들이 일본에 대해 크게 놀라는것 TOP3 둥이 2019-09-01 158 2
7733 인☆그램 팔로워만 38만! 70대 핵인싸 부부 둥이 2019-09-01 76 0
7732 인간들이 불러온 재앙 Long 2019-09-01 176 6
7731 五刑五樂(오형오락) Long 2019-09-01 149 11
7730 사람을 죽이는 끝없는 도로의 정체 둥이 2019-08-31 165 1
7729 인류를 멸망시키는 생체갑옷 외계인의 초고도문명 클라스 둥이 2019-08-31 115 2
7728 인간을 잡아먹는 거대 식인괴물을 죽이는 방법 둥이 2019-08-31 103 3
7727 조회수가 높아질수록 이 남자는 빨리 죽습니다 둥이 2019-08-31 102 2
7726 바람둥이 캡틴 vs 진정한 사랑을 원하는 여자 둥이 2019-08-31 78 2
7725 금년 들어 처음으로 배꼽을 잡고 웃었습니다. newyorker 2019-08-31 230 11
7724 지구 멸망 이후 식량과 장난감으로 전락해버린 인류 둥이 2019-08-31 93 2
7723 식인괴물과 함께 똑같은 하루를 무한반복하는 남자 둥이 2019-08-31 81 1
7722 지금도 어디선가 벌어지고 있을 끔찍한 일 둥이 2019-08-31 104 1
7721 핵폭발로 인류가 멸망한 직후 지하로 대피한 생존자들이 … 둥이 2019-08-31 99 2
7720 미국은 어떻게 탄생한 걸까? newyorker 2019-08-31 161 6
7719 걸어라 걸어 ! Long 2019-08-31 194 21
7718 고령인의 건강관리 Long 2019-08-31 174 17
7717 MV 김완선-삐에로는 우릴 보고 웃지 2019 둥이 2019-08-30 102 3
7716 극한으로 굶기는 싸이코패스에게 잡혀온 커플 둥이 2019-08-30 107 1
게시물 검색

개인정보취급방침 서비스이용약관

지만원의 시스템클럽 | 대표자 : 지만원 | Tel : 02-595-2563 | Fax : 02-595-2594
E-mail : j-m-y8282@hanmail.net / jmw327@gmail.com
Copyright © 지만원의 시스템클럽. All rights reserved.  [ 관리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