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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의 팩트? 자기 파괴(우상 제거)로 진리에 도달하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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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진리true 작성일20-01-17 21:24 조회40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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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멜과 호세아(2017. 4. 27.)

예수(유대민족의 메시아)는 '자신을 길'이라고 말한다.

대번에 기독교인은 길이란 것이 무엇인지 궁금해 한다.

많은 설명이 있어왔겠지만, 기독교인들이 예수라는 길을 따라가기에 위해 힘써왔다.

예수라는 길이 예수가 걸어가신 인생사를 '따라사는 걸' 말하는 걸까?

아니면, 예수의 어록 내용을 마음으로 믿고 살아가는 것일까?

참 애석하게도 여러분이 기독교를 접하신 교회에서는

다양한 교육과 성경의 가르침과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는 다짐과  기도와 우리의 찬양과 헌신,

그리고 예배를 빠지지 말고 기어나와서, '설교를 들으셔야 한다' 가르칠 뿐이다.

 

이렇게 누군가의 말을 듣고 잘 따라가는 것이 예수라는 길을 걷는 것이라고 배워왔다.

좀더 공부한 자들은 성경말씀을 삶에 녹여내어 살아가는 것이 예수-길을 쫒는 것이라고 알고있다.

근데 말이다.

우린 예수가 길이라고 들었으면서 그 길만을 걷지 않았고,

예수만 진리라고 들었으면서, 진리로 여기지 않았으며,

예수만 생명이라고 말하면서도, 생명은 개뿔, 한번도 생명으로 여기지 않았다.

그건 그렇다치더라도 예수가 길이라고 말하면서

그 길의 도착지가 어딘지?, 그 길은 어떤 삶인지?, 그 길의 행로는 어떠하며

'어떻게 다른 길과 구별하는지?' 에 대하여 별고민이 없으시다.

그냥 예수만 길인데, 그 길에 부족한 자신이 끌려가고 있는 것이라고 여겨버린다.

열심히 본인의 삶에 필요한 무언가를 얻어내려했던 것을 요구하였고

그렇게 예수께 의지하는 것이 전부인양 생각해 왔다.

그러고는 믿는다고 말한다.

예수가 길이라고 하신 것은 다른 길이 없다는 "배타성과 유일성"을 말하신 것이다.

그 길이란 것은 진리에 이르는 길, 생명에 이르는 길을 의미하는 것이고

여기서 예수는 창세이전부터 마지막날까지 창조하신 분, 그 본체이신 말씀을 의미하는 것이다.

곧 말씀이 '신'이다.

말씀의 자기계시를 통해 예수라는 실체가 드러나게 되는데 그 말씀의 가르침은

다른 것이 아닌 복음의 전부를 의미하는 것이고 그것을 이뤄내는 의지로 인해

그 복음이 완성될 것이라는 현재를 살고, 완료된 계시를 살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설명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은 '예수라는 역사적 대상'을 믿어왔을 것이다.

그 역사속 예수라는 인격체의 어록을 가슴에 담고 그의 말을 믿었으며,

그가 진리이자 그가 참생명이라고 그를 구원자로 메시아로 여겨왔을 것이다.

이제는 우리의 오감으로는 측정되지 않으니, 그의 숨결까지 추상화하고 관념화하여,

'허공의 예수'를 부르짖었을 것이다.

과연 여러분들이 부르고 믿고 찾았던 그 예수가 길이 맞았는가?.

진리가 맞았는가? 생명이 맞았는가?

 

예수라는 길은, 우리가 생명걸고 쫒아갈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니다.

다른 종교 다른 복음을 말하는 이들은 기본적으로 예수라는 배타성과 유일성과는 다른 주장을 한다.

쉽게 말해, 약간의 다른 방법에 기대하고, 나를 인도해줄 다른 길(대안로)이 있을것이라고 여긴다.

사실 이것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있다.

그건 예수라는 길이 선행적으로 우리에게로 '뚫고 들어온다는 사실'을 간과(무시, 착각)한다.

즉 이 선행적으로 밀고 들어오시고, 결국 끌고 가시는 형태로 배타성과 유일성이 완성되는데,

이부분이 없다면?

예수-이름의 이름값을 계속해서 알 수 없게 되어있다.

이 선행적 은혜의 개입을 착각하시는 분들이 많다.

경험 또는 깨달음, 우연과 필연이라고 믿는 어떤 것을 두고 은혜의 개입이라고 여기는 것.

만약 여러분중에 이러한 것을 경험하고 깨달으셨다고 하시는 분이라면?

제일 먼저 튀어나와야 될 것은,

"이제 내가 죽게 되었다!. 내가 망하게 되었다!" 의 존재적 자각부터 시작이 된다.

이 부분을 또 착각하면,

"나는 이미 죽었다, 나는 없음(무)"이니 하는 깨달음(철학)의 자각으로 가게 된다.

말은 이렇게 할 수는 있으나, 자신에게 솔직히 내뱉을 수 있는 말은 아닌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십자가와 함께 죽은 존재이긴 하지만,

지금 현존하는 모습에서 내 스스로, '나를 부인시킬 능력이 없고, 존재를 바꾸어낼 방법따위가 없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선언적 정의를 통해 그 위치에 도달되는 것이 아니라,

은혜의 개입에 따른 피조물의 신앙고백으로 부터 말씀이 분명 개입되어 흘러나오게 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건 일순간에 되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어렵지만, 그렇다고 인생내내 조금씩 바뀌어 간다는 의미도 아니다.

그것이 갈리게 되는 가장 큰 순간이 은혜의 개입에 따른 수혜,

복음의 직접적 대상자로써의 수혜자로 변모되는 것이다.

간혹 성경의 내용을 아주 빡빡하게, 원어부터 탄탄하게 공부하시는 분들도 많고,

그런것까지는 필요없고, 사영리의 복음만 올바로 따르면 된다고 여기시는 분들도 많다.

성경을 잘 알아야 하는 것도 틀리지 않았고,

그렇게까지 자세하게 알 필요는 없다고 주장하시는 분들의 말도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러나, 내가 틀린말은 아니라고 말하는 이유는 위의 선행적 은혜의 개입 위에 자리잡은 것이라면,

상관없다는 의미이지,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말은 아니라는 점이다.

요즘들어 많은 설교자들이 예수만을 가르치고 성경을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 은혜로 귀결시키려는

모든 시도들에 박수를 보낸다.

그러나, 그분들은 설교자로써의 타성에 젖어있는 것이 여간 신경쓰이는게 아니다.

우선 설교자 자신은 스스로 선생이 될 수 없다.

이 대목은 나 자신에게도 늘 경각시키고 있는 부분이긴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을 때가 많다.

글을 쓰건, 설교원고를 작성하건,

성경 내용과 수많은 해설집과 사전을 들고 그 내용을 올바로 전하고자 하는 열심은 틀린 것이 아니다.

그러나, 누구에게 그 성경의 내용을 전하기 위해서는 우선 나 자신이 그 말씀에 노출되어

선행적 은혜의 폭격을 경험하셔야 한다.

성경에 이렇게 나와 있으니까 이렇게 살아야해! 라고 말하는 설교 말미에 예수 그리스도를 가져다 붙인들!

그건 예수 그리스도로 귀결된 것이 아니다.

이 포스트의 제목인 예수라는 길을 말하고 있다는 것은 그 길에 서있는,

'아니 질질 끌려가고 있는 내 모습에서 그 설교원고가 시작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마음 한편에서 양심에 반한 반성을 말하는 것도 아니고,

나의 부족함을 드러내어 듣는자로 하여금 동의를 구하는 것도 아니다.

분명 그 선행적 은혜의 개입에 의해 끌려가시는 분이라면,

해당 설교에서 인용한 성경구절이 어떻게 나에게 폭력적으로 밀고 들어와,

은혜로의 부정, 은혜로의 개입에 대하여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누군가의 설교 원고를 베껴다가 즐비하게 걸어놓는 것도 사실 미친 짓이다.

저는 다 아는 척, 저는 다 이해한척,

저는 누구와 이 대목에서 이야기를 나누어도 할말이 많은 그런 놈으로 성장하였다면?

그분은 은혜의 개입없이,

깨달음(철학)의 향연으로 구축된 자기 진리(자기 망상)를 예수라는 길로 오인하고 있다.

 

예수라는 길은 시청각교보재로 우리에게, '십자가 처형이라는 죽음(형장)을 향한 길'보여주고 있다.

그냥 쉽게 이해하자면, 예수라는 스승을 따라 그의 가르침대로 살았더니,

제자들이, "다, 처참하게 스승과 같이 죽게 되었다!"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게 팩트다.

이 기독교란 종교를 범인들에게 소개할 때에는 이 팩트가 중심에 깔려 있어야 한다.

정작 여러분들의 심중에는 이 팩트가 깔려 있으신가?.

근데 이상하게도 정신병자들처럼, 이 끔찍한 끝을 알고 달려가는 이들이 '신의 영광'을 말하고,

'은혜를 말하면서 좋다고 달려가고 있는 이들이 있다'는 것이다.

 

'좀 속시원하게 폭탄두르고 자결이라도 하는 역할'이라면?

한번 해볼만도 할텐데!

이 예수의 길은,

"낮은 자리에서 병신취급받으면서도 싫다고 한마디 말하지 않게 되며,

빼앗으려는 이들에게 저줘야 하고,

그들의 불행에 가슴아파해야 하는 피멍든 삶속에,

 정작 그들손에 죽어주어야 하는 이 병신 찌질이 같은 삶으로 끌려가야 한다는 것이다.

머릿속으로는 이해가 되실런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심중에,    

 '나는 아닌 것 같은데..,,,,?' 라고 읖조리고 계실지 모르겠다.

사실 이 포스트 전에 살아가야 할 이유를 알기 전에 살아갈 방법을 배운 우리에 대하여,

글을 쓰다가 끝맺지 못했다.

아직 예수라는 길에 대한 이해도 바닥인데, '신의 영광'을 어떻게 설명하겠는가?

당장에 나라는 놈도 걱정하거나 근심하지 말라던 당부를 1초 전에 들은 것 같은데에도,

정작 더많은 걱정과 근심이 요동치고 있음을 내가 매순간 느끼는데,,,,,,,,,,,,,,,,,,,,,,,,,,

아 이놈의 은혜는 어느순간 살아가는 방법을 향한 나의 한걸음을 내딛을때,

내가 나를 위해 살아야 겠다고, "내가 살아가야 할 이유를 내버리는 놈이구나!"를 자각하게 만든다.

 

살라는 것인가? 말라는 것인가?라고 나의 근심이 더 가중될때, 더 단호하게 살아가야 할 이유,

내가 피조물의 자리에서 신의 영광을 위해서라는 은혜의 끌려감을 잊지 못하게 하신다.

함부로 자신의 삶을 주께 맡겼다고 경거망동하지 마시기 바란다.

그깟 몇몇의 인간적 선택따위는 관심하시지도 않으신다.

나는 늘상 은혜의 개입에 대들고 있었고,

그게 싫어서 도망치고 있었으며,

보란듯이 뻘짓을 하고 있었다.

주께 맡겼다고 내 입이 삽질을 할 때에도,

언제나 시험은 정답을 동반한 은혜의 개입에 의해 드러나게 하셨더란 말이다.

어떤 목사들이든지 그들이 설교하는 원고 단 한줄이라도 개입된 은혜에 의해 드러났더라면,

그 설교는 언제나 우리의 유언이 되어야 할 것이다.

십자가의 길로 질질 끌려가는 은혜로의 유언이다.

근데 그런 목사들 보시기 쉽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런 목사들 찾는 것은 포기했는데, 아직 찾고 계신 분들이 많을 줄 안다.

나는 여러분들을 목사에게 데려가지 않고,

여러분을 끌고가실 예수라는 길로 직접 끌려가라고, 계속해서 포스트를 작성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여러분들이 잘 알지도 못하는 천국간다고 사기치지도 않고,

구원받으려면 이래야 한다고 강압하지도 않고,

당장의 삶에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한다고 말하고 있는 이 복음에,

'당연히 모르겠다고, 그럴거면 왜믿냐고 증거를 대라!' 고 하는 여러분의 속내가 정겹기까지 하다.

내가 그랬으니까.

내 착각과 오해와 오인이 만들어낸 것들이 "사망의 향기"라는 것을 증거하고 있음에도,

"모르겠다!"고 하는 고개짓이 당연한 것 아니겠는가?.

여러분이 알고 있는 진리가 어떤 지위나 방법, 설명, 모호함이라면?

나는 그것을 진리라 말하지 않는다.

진리는 예수라는 길의 배타성과 유일성, 그리고 절대 타협될 수 없으며 그것을 끌고가시는 능력으로 발현되며,

우리가 보기에는 구조물이기도 하고 내용이기도 하며,

비어있어 보이기도 하고 설명할 수도 없지만,  '신의 사랑'이라는 사슬로 체결된 것처럼,

이 역사전체가 예수라는 길로 시작되었고 그 길로 끝나는 모형이자 실체이다.

그 진리의 배타성과 유일성으로 인해, 그 진리밖의 다른 것들은 일시적이면서 한시적인 허상이며,

허상(보이는 것들)은 진리를 설명하거나 돋보이게 하는 교보재로 있는 것이다.

 

내가 글로는 이정도의 표현밖에는 못하겠으나 성경전체가 예수라는 길에 담겨있고,

그 길은 신의 사랑으로 거룩하게 체결된 사슬로 묶여 있다.

여기서 우리는 어디 있겠는가?

예수라는 길 위에 있거나, 여타 교보재로 되어있는 것이다.

여러분들이 타종교의 진리관에 대하여 아신다면,

예수라는 진리의 길이 뜻하는 내용이,

"인간과 인간의 의지, 인본과는 전혀 섞일 수 없는 것"이라는 것(배타성)을 알 수 있으실 것이다.

타종교에서는 이 예수라는 길의 배타성과 유일성을 인정할 수 없다.

그들이 인간이라는 자신을 넘은 존재라고 그려놓고 있는 것도, 결국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러분의 수많은 기독교에서의 예수를 바라보는 시각이 '인간'만을 발견해내려고 하는 것이다.

우리의 눈에 보이는 예수는

우리와 같은 인간이신 예수가 신이 되는 현상을 목도하여 가슴속 깊이 꿈틀대는 탐욕을 지워버리고는

그 진리를 강탈(점유)할 날만을 고대하며 방법을 찾고있거나,

찾았다고 외치고 있는 이들을 나는 '기독교계의 해탈'이라고 말하고 있다.

살펴보고 바라보고 점검하고 생각해보시기 바란다.

나는 여러분들을 질타하는 것이 아니다.

왜 내가 여러분들을 질타하겠는가?.

나는 은혜를 전하는 멍청했던 스피커에서, 이젠 은혜로 끌려가는 "곡소리" 정도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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