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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QC, 미국이 일본에서 다시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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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9-11-19 17:13 조회7,36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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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QC라는 용어는 미국의 피겐바움 박사(Dr. A. V. Fiegenbaum)가 창안하였다. 최초에는 1956년 11월호~12월호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지에 실은 기고문을 통해, 그 다음에는 1961년에 단행본으로 낸 ‘TQC, 설계와 경영’(Total Quality Control, Engineering & Management, McGraw Hill)을 통해 세상에 소개되기 시작했다. 비록 TQC라는 용어는 피겐바움이 만들어 냈으나 이는 기라성 같은 선배 대가들의 품질관리 이론들을 그 나름대로 정리한 성격의 것이었다. 그의 선배들은 슈하트 박사, 쥬란 박사, 데밍 박사로 이어지는 품질 관리 이론의 선구자들이었다.


미국의 선구자들이 제시한 TQC는 테일러의 대량생산 방법에 기초를 둔 것이었다. 테일러 방법을 실천한 최초의 선구자는 헨리 포드였다. 헨리 포드는 자동차의 생산 방법을 180도로 바꿔 놓은 사람이다. 전자의 방법은 고정된 선반에 차체를 올려놓고 작업자들이 부품들을 가져다가 차량을 완성시켜 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헨리 포드는 사람과 부품이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차체를 이동시켰다. 컨베이어 시스템이었던 것이다.


테일러 식 생산 방법은 X 이론의 상징이었다. 사람은 게으르기 때문에 위협과 공포 분위기로 몰아붙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소수의 설계자들이 작업 방법을 표준화시켜 놓으면 근로자는 지시된 동작만 기계처럼 반복하면 되는 것이었다. “경영자는 경영을, 근로자는 작업을”(Management manages & Workers do)이라는 말이 테일러리즘을 상징적으로 표현했다. 이는 오늘날 한국 공장의 모습과도 유사한 것이다. 컨베이어벨트 시스템 아래서는 장인정신이나 작업자의 판단이 조금도 인정되지 못했다.


작업자는 오직 자기 앞을 지나가는 차체에 그의 동작을 보태기만 하면 되었으며 한 순간도 한눈을 팔거나 이동하는 벨트를 멈추게 할 수는 없었다. 동작은 단순했지만 스트레스는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공정이 너무 빨리 지나가기 때문에 미처 조이지 못한 볼트가 나왔고, 부품간의 정렬을 미처 다 마치지 못한 경우도 생겼으며, 부품을 끼워 넣지 못한 채 컨베이어벨트가 지나가 버리기도 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공장 근로자와는 별도의 검사자들을 필요로 했다. 이것이 품질검사의 시초였다. 이러한 검사자가 발견해 내는 하자품 수는 전체 하자품 수의 10%에 불과했다. 더 많은 검사자를 투입하면 할수록 원가만 더 상승할 뿐 이미 투입된 원가는 회복시킬 수 없었다. 이러한 인식에 따라 문제를 가급적 초기에 발견하려는 노력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문제를 초기 공정에서 빨리 발견해 낼수록 유실액을 예방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은 테일러 시스템을 벗어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추구됐다.


이를 위해 통계학자로 웨스턴 전기회사에서 품질 관리 업무를 지휘하던 슈하트 박사(Dr.Walter Shewhart)가 ‘슈하트 컨트롤 차트’를 고안했던 것이다. 슈하트 차트는 검사자에게 허용 오차의 상하한선을 지정해 주기 위해 고안됐다. 이 차트 덕분으로 불합격품이 초기 공정에서 발견될 수 있었고 불량품에 대한 색출 확률도 높일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차트를 최초로 제조 공정 자체에 응용한 사람은 그의 참모였던 쥬란 박사(Dr. Juran)였다. 아무튼 미국인들은 테일러 방법을 최고의 과학적 생산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이렇듯 미국인들이 테일러리즘에 빠져 있는 동안 일본은 미국보다 한 발 앞서 미국이 낳은 세계적인 품질 이론 대가들을 모셔다가 강의도 받고 자문도 받았다.


1954년 JUSE가 초청한 쥬란 박사는 그때까지 공장 내부에서만 강조되던 QC를 전체 경영자의 관심사로 전환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1957년 NHK방송은 근로자를 위한 QC 교육을 방송했다. 회사의 간부와 기술자들에게는 강의와 세미나 등의 수단을 통해 QC 교육을 실시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근로자에게는 간부나 기술자와 똑같은 교육 방법을 적용할 수는 없었다. NHK 방송은 근로자와 모든 사회인에게 QC 교육을 확산시키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1960년 JUSE는 ‘작업 반장을 위한 QC 교과서’를 발간했고, 같은 해 3월에는 ‘통계적 품질 관리’(SQC)라는 학술지 출판사가 세 권의 단행본을 발간했다. 작업반장, 소비자 그리고 학교 선생님 들을 위한 것들이었다.


재주는 미국이 부리고 돈은 일본이 번다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 미국이 많은 돈을 들여 연구 개발해 놓으면 일본은 그것을 소화해서 미국보다 더 좋은 상품을 만들어 미국보다 한 발 앞서 돈을 번다는 사실을 놓고 하는 말이었다. 미국의 연구 개발 노력은 지면에 담겨진 기술(Paper Technology)이며, 일본의 기술은 공장에 담겨진 기술(Production Technology)이라고 표현되어 왔다. 같은 현상이 QC 분야에서도 발생했다.


미국은 QC이론의 세계적인 선구자들을 배출했으면서도 정작 그들을 데려다 쓴 곳은 일본이었다. 미국은 1980년대에 와서야 일본의 우수성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렇게 외쳤다. “일본인이 하는데 왜 우리가 못하는가?”(If Japan can, why can't we?) 이 말은 미국의 품질이 일본의 품질에 비해 얼마나 뒤져 있는지 상징적으로 표현해 준 말이었다. 1987년, 미국은 비로소 일본의 데밍 상과 유사한 품질 상, ‘말콤 발드리지 상’(Malcolm Baldridge Award)을 제정했다. 이는 1981년에서 1987년까지 미 상무장관에 재직하다가 순직한 말콤 발드리지 장관의 이름을 따서 만든 상이다. 발드리지 상 역시 매우 엄격해서 1990년 이전까지는 아무에게도 수여되지 못했다. 점수는 데밍 상과 같이 1,000점 만점으로 되어 있으며 평가 기준은 도전적인 품질 목표, 고객 의견 수렴 시스템, 수리적 접근 방법 그리고 인간 능력의 개발 등으로 정해져 있다. 참고로 ISO 9000은 데밍상의 1,000점 만점 중에서 300점 만점으로만 구성돼 있다. 


유럽 QC 분야에서는 영국이 비교적 앞서 있으며 영국 품질협회(BQA)가 가장 큰 활동을 하고 있다. 그러나 영국의 BQA나 미국의 ASQC도 일본의 JUSE의 상대는 못 된다. 같은 TQC라 해도 일본의 것은 서구의 것과 다르며, 같은 QCC(분임토의)라도 일본의 것은 서구의 것과 사뭇 다르다. 일본의 QCC, SPC(통계적 공정관리) 그리고 JIT(적시 생산) 기법들은 여타 국가가 지금까지 가장 배우고 싶어 하는 일본 고유의 것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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