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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갑제기자글에 100% 지만원박사 지지하는 댓글 행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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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비전원 작성일10-05-13 18:05 조회4,120회 댓글8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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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특수부대의 광주개입" 주장은 믿을 수 없다! 

 광주사태를 취재했던 수백 명의 기자중 그런 의심을 한 사람을 만난 적이 없다. 대대규모의 북한군이 등장할 무대가 없었다. 

趙甲濟

  

 

  4년 전부터 한 탈북자가 "광주사태에 북한 특수부대가 개입했다"는 주장을 하고 일부 애국단체에서 이에 동조하고 있다. 이 탈북자는 이렇게 주장했다.

 

  <5.18사태 당시 함경남도에 위치해 있던 우리 부대는 전투동원상태에 진입하라는 참모부의 명령을 받고 완전 무장한 상태에서 신발도 벗지 못한 채 24시간 진지를 차지하고 광주사태에 대해 긴급속보로 전해 들으면서 20여일 이상 출전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정치부 비 편제 서기로 자주 동원됐던 나는 나중에야 당시 제10군단장이었던 여병남과 7군단 참모장이었던 김두산의 대화를 통해 특수부대 1개 대대가 광주에 침투했었고 희생도 많았지만 공로가 컸다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그로부터 얼마 후 북한군 특수부대 지휘관들 사이에서는 광주에 특수부대가 침투 했었다는 말이 공공연한 비밀로 나 돌았다. 특수부대들에서 선발한 최정예 전투원 1개 대대가 해상을 통해 남파됐으며 그중 3분의 2가 희생되고 나머지 인원이 모두 귀대 했다는 것이다.>

 

  이 주장은 개연성이나 증거가 없다. 사실이 아니라고 단정함이 타당할 것이다. 그 이유는 이렇다.

 

  1. 광주사태는 목격자가 많은 사건이다. 광주시민 수십 만 명과 진압군이 목격자이고, 수백 명의 직업적 구경꾼들, 즉 기자들이 취재했다. 외국 기자들도 많았다. 공개리에 일어나고 공개적으로 취재된 사건이다. 광주사태를 취재했던 나를 포함한 어느 기자도 북한군 부대가 개입했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2. 광주사태에 개입한 북한군이 대대규모, 즉 수백 명이라는데, 이들을 상대로 전투를 벌였을 당시 진압군(계엄군)의 장교들 중 어느 한 사람도 북한군의 출현에 대해서 보고하거나 주장한 사람이 없다.

 

  3. 광주사태 사망자는 국방부 조사에 따르면 193명이다. 이들중 군인은 23명이고 경찰관이 4명이다. 군인 사망자 23명 중 13명은 공수부대에 대한 국군 교도대의 오인 사격 등 진압군끼리의 충돌로 죽었다. 527일 광주수복을 위해 계엄군이 진입할 때 국군 3명이 죽었다. 나머지 7명의 군인들이 무장시민들에 의해 죽은 셈이다. 대대 규모의 북한군이 개입했다면 국군 사망자가 이 정도에 그칠 리가 없다.

 

  4. 당시는 계엄령이 펴진 상태였다. 해안과 항만은 철저히 봉쇄되었고 공중감시도 정밀했다. 대대규모의 북한군이 어떻게 침투한단 말인가? 침투병력중 3분의 2가 희생되었다는데 이게 사실이라면 이들을 섬멸한 국군이 있을 것 아닌가? 무장간첩 한 명만 사살해도 부대 표창을 받는데 수백 명을 사살한 국군 부대가 이 자랑스런 사실을 숨겼단 말인가?

 

  5. 全斗煥 정권하에서는 광주사태에 북한군이 개입했다는 단서가 나오면 이를 반드시 확인했을 것이다. 전혀 그런 움직임이 없었다.

 

  6. 탈북자의 증언은 傳言에 불과하다. "내가 광주에 내려왔었다"고 나서도 믿기 힘든 판에 "카더라"란 이야기를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여선 곤란하다.

 

  7. 광주사태는 1980 518일부터 시작되었다. 그 직후 광주 일원은 봉쇄되었다. 521일 계엄군은 광주시내에서 철수, 외곽을 포위했다. 이때 市外로 빠져나가던 시민들이 매복하고 있던 계엄군의 총격을 받아 죽기도 했다. 대대규모의 북한군이 이런 상황에서 광주로 잠입했다면 국군과 대규모 전투가 발생했을 것이다. 정규군끼리의 충돌은 한 건도 없었다. 김일성(또는 김정일) 518일 광주 상황 보고를 받고 특수부대의 출동을 명령했다고 해도 그 부대가 광주 부근에 나타나려면 빨라도 20일 이후일 것이다. 그때는 이미 광주가 철통같이 포위되어 있을 때였다. 수백 명의 북한군이 등장할 무대는 없었다.

 

  6. 광주發 과장이 두 개 있다. 하나는 사망자가 2000명이나 된다는 주장이었다. 이는 수 차례의 정부 조사로 부정되었다. 또 하나는 영화 '화려한 휴가'에 나오는 학살장면이다. 521일 정오 무렵 전남도청 앞에서 애국가를 부르는 비무장 시민들을 향하여 공수부대원들이 명령 일하에 일제 사격을 하여 수백 명을 죽이고 다치게 하는 장면은 악랄한 空想이고 조작이다. 그런 학살도, 그런 사격명령도 없었다. 시민들이 차량을 탈취하여 공수부대원들을 덮쳤고, 현장에서 군인 한 명이 깔려 숨지자 군인들이 버스를 향하여 발포한 것이 본격적인 총격전의 시작이었다. 이런 미신에 북한군 개입이란 또 다른 미신을 추가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正義는 진실에 기초해야 한다.

 

  7. 애국단체들이 북한군 개입 주장에 동조하는 것은 위험하다. 진실에 대한 확신이 없는 상태에서 희망적 기대를 갖고 근거가 약한 의혹 수준의 첩보에 근거해서 행동하면 逆攻을 당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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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군 특수부대 광주사태 개입했다"

  -자유북한군인연합 대표 임천용씨 공개증언

  프리존뉴스(2006)

 

  북한군 특수부대 출신의 탈북자 모임인 ‘자유북한군인연합’(대표 임천용·전 교도지도국 19여단 2대대· 계급 상위) 20일 오전 서울 정동 세실레스토랑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지난 80년 발생한 5.18 광주사태 당시 북한군이 개입했다고 주장했다. 아래는 이날 기자회견을 주최한 임천용 씨의 증언을 요약한 것이다. <편집자 주>

 

  김일성, 김정일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심복들에게 “연방제 통일은 평화적 방법으로 가능할지 모르나 남조선 혁명은 폭력적 방법이 아니고는 불가능하다. 평화적 방법은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고 강조해왔다.

 

  남한 내 친북세력들이 미군 기지를 공격하며 미군철수를 주장하는 집회나 4.19나 광주봉기처럼 민주·평화·자주를 외치는 격렬한 시위가 전국을 뒤 덮을 때 민주·애국투사들을 구한다는 명분으로 무력 개입한다는 전략이다.

 

  역대 남한에서 벌어진 크고 작은 불행한 사건들에는 빠짐없이 북한이 직·간접적으로 개입해왔다.

 

  “북한군 특수부대 광주사태 개입 공공연한 비밀”

 

  다른 것은 접어 두고라도 한국 민주화운동의 상징인 5.18광주민중항쟁의 경우에도 현역 북한군 출신들, 특히 특수부대 출신들은 북한군 정예 특수부대가 투입됐다는 정도는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다음은 김일성이 76 8, 그리고 80 5월 대남공작원들에게 내린 비밀지령의 전문이다.

 

  [비밀지령1] “남조선에서 노동자들이 드디어 들고 일어났습니다. 사북 탄광의 유혈사태는 반세기에 걸친 식민지 통치의 필연적 산물이며 인간 이하의 천대와 멸시 속에서 신음하던 노동자들의 쌓이고 쌓인 울분의 폭발입니다. 남조선 혁명가들과 지하혁명 조직들은 이번 사북 사태가 전국으로 확산되도록 적극 불을 붙이고 청년학생들과 도시 빈민 등 각계각층의 광범한 민중들의 연대 투쟁을 조직 전개해 더 격렬한 전민 항쟁으로 끌어올려야 합니다.

 

  [비밀지령2] “결정적 시기가 포착되면 지체 없이 총 공격을 개시해야 합니다. 전국적인 총파업과 동시에 전략적 요충지대 곳곳에서 무장봉기를 일으켜 전신 전화국, 변전소, 방송국 등 중요 공공시설들을 점거하는 동시에 단전과 함께 통신 교통망을 마비시키고 임시혁명정부의 이름으로 북에 지원을 요청하는 전파를 날려야 합니다. 그래야 남과 북의 전략적 배합으로 혁명적 대 사변을 주동적으로 앞당길 수 있습니다.

 

  “북한군 특수부대 5.18 당시 ‘완전 무장’ 상태로 대기”

 

  김일성의 이 같은 비밀지령과 80 5월을 전후한 북한군의 움직임 등 제반 상황은 광주사태에 분명히 북한군이 개입됐음을 보여준다.

 

  5.18사태 당시 함경남도에 위치해 있던 우리 부대는 전투동원상태에 진입하라는 참모부의 명령을 받고 완전 무장한 상태에서 신발도 벗지 못한 채 24시간 진지를 차지하고 광주사태에 대해 긴급속보로 전해 들으면서 20여일 이상 출전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정치부 비 편제 서기로 자주 동원됐던 나는 나중에야 당시 제10군단장이었던 여병남과 7군단 참모장이었던 김두산의 대화를 통해 특수부대 1개 대대가 광주에 침투했었고 희생도 많았지만 공로가 컸다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그로부터 얼마 후 북한군 특수부대 지휘관들 사이에서는 광주에 특수부대 침투 했었다는 말이 공공연한 비밀로 나 돌았다.

 

  또 북한군 4군단 70정찰대대 전투원으로 복무했던 이덕선 씨로부터 당시 정찰국 소속 정찰대대원들의 광주 침투 상황에 대해 비교적 상세한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특수부대 1개 대대 해상 통해 남파, 3분의 2가 희생”

 

  이덕선 씨에 따르면 광주봉기 당시 2군단 정찰대대를 모토(motto)로 하고 각 특수부대들에서 선발한 최정예 전투원 1개 대대가 해상을 통해 남파됐으며 그중 3분의 2가 희생되고 나머지 인원이 모두 귀대 했다는 것이다.

 

  이덕선 씨가 알고 있는 광주봉기 침투자는 조장이었던 4군단 70정찰대대 상좌 황종인, 부조장이었던 4군단 33사단 중좌, 조원으로 침투했던 4군단 정찰대대 작전집체조의 홍씨 성을 가진 참모였다고 한다.

 

  통상 북한 당국은 남파돼서 임무를 수행하고 귀대하거나 임무수행 중 사망한 공작원 또는 전투원에게 공화국 영웅 칭호와 함께 각종 훈장을 수여하는데 그 수는 1년에 불과 열손가락 안에 꼽히는 정도였다.

 

  이덕선 씨에 따르면 80년에 2군단 75정찰대대에서만 41명의 공화국 영웅이 배출됐고 타 부대들에서 21, 도합 62명의 영웅이 나왔다고 한다. 북한의 경우 평화시기에는 남파간첩이나 전투원이 아니면 공화국 영웅 칭호를 받는 일이 거의 없음을 감안할 때 한 해 동안에 62명의 전투영웅이 탄생했다는 것은 대남침투관련 거대 작전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북한군 광주사태 개입 확신, 진상 반드시 밝혀야”

 

  이외에도 당시에는 국군에 없었던 카빈 소총이나 M1 소총에 맞은 시신이 수십 여구라던가, 봉기자(시민군)들이 정부군의 탱크와 장갑차를 탈취해 진압군을 공격했다든가,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시신이 있는 등 아직 밝혀지지 않은 문제들이 너무나도 많다.

 

  북한에서의 체험과 이상의 근거들만 가지고도 광주민주항쟁에는 분명히 북한군이 개입됐다고 확신한다. 대남적화통일 야망을 실현하기 위해 신성한 민주시위를 유혈 폭동으로 몰아간 김일성·김정일 부자의 제물로 바쳐졌을지도 모르는 5.18광주 민주화 영령들에게 심심한 애도의 뜻을 표하면서 광주 사태의 진상은 반드시 밝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리 김필재 기자 spooner1@freezonenews.com (기사출처: 프리존뉴스)

 

 

 

[ 2010-05-13, 02:54 ]

www.chogabj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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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one   2010-05-13 오후 3:30

"화려한 사기극의 실체"란 책을 한 번 읽어보기 바란다. 임천용 혼자서 증언한것이 아니라 '증언 16'까지 나온다. 이 책을 읽으면서 긍정적으로 보면서 읽지않았고, 가장 부정적으로 생각하면서 책을 읽었으나 소설은 아니란 결론을 내렸 다.

나 자신도 전두환이 살인마라고 나도 모르게 세뇌되었던 사람이었고, 이와

관련된 책을 집필 중이기에 당시에 신문과 자료를 모두 검색하여 본 결과 이것 은 자생적으로 발생된 민주화운동이 아니며, 철저하게 계획된 전두환 죽이기를 포함한 참으로 악랄한 자들의 소행임을 확신하게 되었다. 내가 보지 못한 것은 사실이 아니다라는 생각은 참으로 위험한 생각이다.

모두가 보지 못했다고 말하 는 것도 오만이다. 그 누구도 당시로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엄청난 사건이 다.

나는 경상도 대구에 사는 사람이나 전라도에 대해서 지역 감정은 없다. 5.

 

18로 시꺼러워지니까 지역 감정이 생긴다. 대한민국의 군인이 여학생의 유방을 대검으로 도려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임산부의 배를 가르고 아이를 꺼내 던 질 군인은 없다. 군을 모함하려는 자들의 장난이다.

신원미상의 시신은 대한민 국에서는 나올 수가 없다. 조갑제 기자는 겸손하기 바란다.

본인은 지만원과 법 정 다툼까지 한 사람이나 이번에 그가 밝힌 사실에 대해서는 찬사를 보낸다.

5. 18관련단체들의 주장에 의하면 신원미상자가 12명이었으나 2002 6명의 신 원이 밝혀졌다. 1년만에 6명의 신원이 밝혀졌다. 그 해에 지만원은 집행유예 를 선고 받았다. 그 후에는 한 명의 신원도 추가로 밝혀지지 않고 있다.

당시 사진들을 보면 복면부대가 보인다. 조갑제 기자는 복면을 한 자가 누군지 아는 가를 묻고 싶다. 절대로 모를 것이다. 당시로 돌아가서 다시 자료들을 살펴보 면 뭔가를 알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국제신사   2010-05-13 오후 2:06

극도로 혼란하였던 당시 상황에서 취재기자들이나 진압군인들이 시민군으로 위장하여 시위에 참여한 북한공작원 또는 잠입활동중이던 간첩들의 개입을 눈으로 확인한다는 것은 쉬운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기자들이 눈으로 보지 못했고 군에서도 그런 상황을 포착하지 못했다는 것만으로 절대 그런일이 없었다고 단정하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됩니다. 본인도 처음 그런 이야기를 듣고 그럴리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지만원박사께서 오랬동안 연구하여 발표한 자료를 살펴보면 막연한 추측만 가지고 절대 그런일이 없었다고 주장하는것도 위험하다는 생각입니다. 너무나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함부로 말을 해서는 안되겠지만 당시에는 몰랐다고 하더라도 새로운 정황이나 사실들이 드러나는 경우 선입관을 배제하고 면밀하게 재조사하는 것이 타당하지 않을가요. 30년이나 지난 역사이기 때문에 어느편의 유불리를 떠나서 역사적 사실을 정확히 규명하는 차원의 객관적 재조사가 있어야 이 문제가 종결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조대표님께서도 백지상태에서 다시 한번 모든 정황을 살펴보시는 것이 좋을듯 합니다. 역공이 두려워 의혹이 있다는 것을 그냥 넘기라고 해서야 되겠습니까. 자기가 못 보았기 때문에 사실이 아니라는 주장은 여러가지로 설득력이 부족해 보입니다

 

 

  none   2010-05-13 오후 1:24

사람은 실수를 할 수도 있고 오류를 범할 수도 있다. 가장 큰 잘못은 자신의 잘 못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박정희 전기를 읽으면 박정희가 巳時에 태어난 것 으로 소설이 나온다. 박정희는 寅時에 태어났다. 한 사람과의 인터뷰에서 모든 것이 사실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미련한 생각이다.

북괴군과 고정간첩이 이마에 다 자신의 신분을 적지 않은 한 알 수가 없는 것이다. 당시에 현장에서 취재를 했다고 해서 모든 것을 판단할 수는 없는 것이다. 100명이 취재를 해도 상상도 못할 일을 알 수는 없는 것이다. 아무도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 생겼던 것이다. 이제 전두환 대통령의 누명을 벗겨 드릴 때가 된 것 같다.

사전에 치밀하 게 계획된 일이다. 이번에 천안함과 같이 말이다. 천안함의 진로를 가르켜 준 간첩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잠수함은 장시간 잠수를 할 수 없으며, 그 넓은 바 다에서 천안함의 항로를 알지 못하고는 격침시킬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 이다. 

 

 

  lkh1969   2010-05-13 오후 1:22

광주사태 당시 연고대연합 수백명의 학생들이 설치고 돌아다닌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그런데 연고대를 방문해서 아무리 조사해봐도 그 당시 광주사태에 참여해 활동했다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리고 민주화운동으로 인정해 보상금을 줄때도 당시 연고대연합 학생이었다는 사람이 한명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누구입니까?

당시 동아일보 기자도 이들을 수상하게 여겼다는 증언은 동영상이나 신문기사에도 나와 있습니다.(역사학도의 블로그 참조)

몇십명만 참여했어도 소문이 날텐데 삼백명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많은 사람들이 지금은 단 한명도 나타나지 않고 있습니다.

저는 이들에 대한 의문이 풀리기전엔 조선생님 주장을 믿을 수 없습니다.

 

 

  none   2010-05-13 오후 1:15

탈북자들의 증언들을 그대로 믿을 수는 없다. 조갑제 기자의 주장은 더 더욱 황 당하다. 변복을 하고 온 군대와 내부에서 동조한 빨갱이들을 어떻게 육안으로 구별 할 수 있는가? 북괴들이 하는 주장과 한국의 빨갱이들의 주장이 어떻게 정 확하게 일치할 수 있는가?

지만원 대표의 주장은 합리적이고 증거가 확실하다. 재판기록을 일일이 검토하여 작성하였고, 비합리적인 부분은 일체 없었다. 나 도 최근 당시의 신문기록들을 검토하면서 지만원의 주장에 오류가 있는지 없는 지 세심하게 검토하였다. 역사가 이제 바로 잡히게 될 것이다.

기자가 봐서 알 정도로 엉성하게 변장하지는 않는다. 현장에 있었다고 해도 알 수도 없다. 교도 소를 6차례나 습격하였다. 이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고정간첩과 북에서 내 려온 특수부대의 합작품이라 확신한다. 천안함이 어뢰 한 방에 두 토막이 났 다. 비상이 아니라 특별비상이라도 구멍은 수없이 많다. 잠수함을 발견할 수 있는 확률은 거의 제로이다.

"화려한 사기극의 실체"부터 관련된 여러 자료들을 분석해 보건데 이는 단순한 폭동은 아니었다. 조갑제 기자는 당시 광주에서 북 괴군을 보지 못했다는 말을 함부로 하시지 말기 바란다.

그리고 당시 전두환은 계엄사령관이 아니었고, 이희성이 계엄사령관이었다. 참으로 "화려한 사기극"이 었다. 

 

 

  투시력   2010-05-13 오후 12:31

광주사태의 주동자들과 탈북군인협회 임천용을 동급으로 취급하는 것은 무리가 있고. 시시한 정보를 흘리는 황장엽을 넘어서는 임천용 회장의 주장을 짓밟는 논설은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황장엽은 문제의 핵심을 찌르지 못 합니다. 북한과 중국에 대한 거짓 정보와 판단을 우익진영의 핵심부에 주입시킨 황장엽 수준의 정보게임에 놀아나면 북한과 100%의 효율적 싸움을 하지 못 합니다. 천안함 피격에 대한 북괴의 정보도 우리가 미리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북괴군의 광주사태 개입 가능성은 불개입 가능성보다 훨씬 높다고 봅니다. 그 가능성을 닫아버리는 것은 사실의 측면에서 정확하지 못하고 전략적 측면에서도 지혜로운 것은 아닙니다. 북괴군이 북괴군복을 입고 기자들 눈에 띄일 정도로 왔다갔다 했겠습니까? 100명의 경찰이 1명의 도둑을 발견하기 힘듭니다. 북괴군 개입을 쉽게 무시할 사항은 아니라고 봅니다. 광주사태에 북괴군 개입 문제는 임천용의 주장이 황장엽의 주장보다 더 신뢰성이 높고, 지금까지 아무도 임천용을 논리와 증거로 무시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광주사태는 김대중과 김정일의 공동작품일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lexrota   2010-05-13 오전 11:49

복장이나 두발 상태는 미리 민간인으로 위장 가능

위 대기부대는 추가예비대 역할이고, 실 투입부대는 520일 이전에 이미 잠입완료 가능,특히 목포지역에서 이전에 활약추정

북한군이 남한군에 대한 전투임무가 아니라, 시민과 군의 이간질 활동의 일환으로 공격이 용이한 시민에 대한 살상으로 국군의 짓으로 오인하도록 역할.

북한군의 정확한 사망자수는 전하는 말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

<

댓글목록

흐훗님의 댓글

흐훗 작성일

전옥주가 연대생이 올 것이라고 방송하고 다녔다고 합니다. 그 연대생들은 진짜 연대생들이 아니고 불순세력이었겠지요. 마스크 부대는 말할 것도 없고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들 중에도 의심스런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보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보이나 보려고 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다.

inf247661님의 댓글

inf247661 작성일

★1 ~ 7 까지의 주장 및 의문 제기 사항을 대충 보건데 '조 갑제'기자님은;
₁. 너무 자기를 과신하는군요. 군부 생활을 20년 한 나도 잘 모르는데 ,,. 더우기 광주사태는 고급사령부 상황보다는 사단.연대급 전술적.교리분야의 세부 지식을 필요로 하는 건데, '조 갑제'기자가 '사단.연대급 이하' 군부 교리 사항을 알면 얼마나 안다고 저런 오만(?)한 내용이라고 제3자가 느끼게 할 표현들을 했는지 섭섭하면서도 일면 경솔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 제발 좀 빨리 변하세요!

₂.아마도(?), 추후 수정 및 번복할 자료를 얻으려고, 저렇듯 격분(?)시키는 글을 써서 은근 슬쩍 지식 도둑질(?)을 하려고 하는 건지,,. 훔칠 것도 없고, 감출 것도 없겠지만, 상식으로 보편 타당하게 세상을 판단하면서 살아야 하거늘,,. '조 갑제'기자님은 1980.5.18 광주 사태 벽보 '龍歌體(용가체) 활자체' 및 선조 임금 때 강원도 회양 군수를 지낸  '梁 士彦(양 사언)'이가 금강산 내금강 암벽에 음각하여 새긴 붓글씨체를 북괴가 흉내내서 새긴 체제 찬양 글씨체를 대조.확인했고, 알기나 했었는지,,.

₃.광주사태 때 북괴군 특수부대 및 북괴 심리전부대 요원들과가 상호 긴밀한 협동작전을 실시한 '상황 증거'가 너무나도 뜨렷하거늘,,. 솔직히 '특수부대' 그 자체는 '심리전'을 할 실력이 없으며, 단지 '시라손', '김 두한', 이 정재'들처럼(?) 단순한 戰士(전사)에 불과하다고 보며, 따라서 고도의 '心理戰'까지 펼 능력도 여력도 상정상 모두 없고, 따라서 북괴 '심리전'요원들에 의한 전담 작전에 의했었음이 타당하거늘,,.! '협동 작전 ㅡ 합동작전 ㅡ 연합작전!' ,,. 술어도 매우 중요. 무엇이나 기초가 완벽하게, 다부러지게 탄탄해야만 합니다요. ,,.

⁴.아군 특수부대도 그렇지만, 북괴특수부대도 1개대대라야 정작 작전 출동 실제 병력은, 약 50여명 내외(?) ,,. 고로 2개대대라야 약 100여명(±) 정도로 보며, 또 광주사태는 '금 뒈즁'롬이 선동하면서 미리 남한 간첩들과 긴밀한 사전 준비가 되엇을 터이니 사전 서해 및 동해로 해상 침투 및 기타 별도의 또 다른 후방지역 교란부대들은 '땅굴'로 지하 침투했다는 驚愕할 탈북자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증언 내용을 確度(확도) A-1로 보시고, 전면 대대적인 재 수정 판단을 할 것을 바랍니다. 이런 식으로 나오면 '조 갑제'기자님의 이적지 명예 및 기존 권위는 일순간에 문허질 것이 안타깝읍니다. ,,. 판단은 고정된 것은 결코 아니며, 정확한 정보가 없을 때는 '假定(가정, assumption)'을 정보 판단/계획 수립등에 적용, 기존의 판단.계획등을 수정.보완.전파함은 고군반 장교들도 다 압니다. ,,.

심심도사님의 댓글

심심도사 작성일

저는 윗 글 아랬글에 대한 댓글에 대해서만 추천을 올려 드리겠습니다
이상하게도 비전원님의 글은 안보이는 것 같기에....
감히!!!1

inf247661님의 댓글

inf247661 작성일

*끝으로; 광주 사태 때, 북괴군 특수부대가 참전햇름을 그 아무구도, 그 누구도 예상치 못! /// 심지어는 고 '강 재구'대위님(소령 추서)의 대대장을 지내신 '박 경석' 준장{육사 # 10.5기생, 생도 #2기생}님도 몰랐고 치렬한 시가지 전투를 한 我 空輸部隊員들에게 무공훈장 수훈이 불가하며 타 훈장을 수훈케해야한다고 주장타가 당시 총장과 다투고 육본 인사참모부 사제상전장교를 끝으로 예편,,.{'녹쓴 훈장'에서 거론된 사항}. ,,. '조 갑제'기자님께선 더욱 勉强(면강)하셔서 더 세밀하고 광범위한 군사지식을 더 습득, 새롭게 거듭나셔야만 합니다. 軍事 背景 知識이 결여되면 훌룽한 평론도 의견 개진도, 어렵고 발전도 더 이상 불가능함을 아십시요. ,,. 不然이면, 경솔한 주장은, 이적지까지의 공로가 무너집ㄴ,,. 餘 不備 禮. 悤悤

inf247661님의 댓글

inf247661 작성일

項目別 反駁 內容 ↙
₁.전방에서 연대훈련 시험, 또는 보병 대대 훈련 시험을 하면 통상 대대당 검열관 동 계급인 중령1명 + 소령 1 + 대위 ㅁ명이 검열관으로 배치되고, 연대장 검열관은 동계급인 대령 1명 + (보좌관 중령 1명) + 소령 4명이 배치되는데; 실력이 없으면 착안을 못.않해서 중요한 내용을 놓치는 경우가 허다함! ,. 그래서 미리 미리 무엇을 점검할 것이며 점수를 매길 것인지 chevklist 를 작성해서 검열에 임해도 노상 빠트려서 훈련 종료 후 강평/채점시에 큰 애를 먹고 훈련 통제부로부터 질책 당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한데; 이때 유능한 검열관은 본떼있게 적발을 해내서 피검부대들을 두려움에 빠트리죠. ,,. 대개 검열관으로 나가는 장교들은 부연대장, 부사단장급들 및 부대에서 무능(?)한 장교들이 차출되어 나가는 경우가 솔직히 많음! ,,. 솔직히 저는 원주 제38사단 예비군대대 정작장교로 근무 중 제27사단{이기자 부대} 모 연대 RCT 대대장 검열관에 편성되어 나간 적 있었는데 소령은 중령에게 크게 찜빠를 먹,,. 난 필수 착안.점검사항을 기습적으로 확인, 장점.단점을 발굴, 강평 자료를 잘 제시하여 칭찬을 받았,,. 아무리 광주 사태때 종군했기로 '마음에 없으면 뵈지도 들리지도 못.않음! ,,. 스스로 무능.결핍했었던 것을 자인하시는 겁니다. 우리들조차도 북괴군 특수부대 와 심리전부대 와 협동작전임을 상상조차도 못했었죠. 이게 다 평소에 무능.부족한 장교였다는 것에 수치를 느낍니다. 이토록 북괴는 기습을 달성했었던 거죠, 광주사태 때! ,,.
'기습{surprise, 기습}'이란 ? → 적이 꼭 미리 알아채지 못하도록함만은 아니라, 설령 사전에 알아챘더라도 그에 충분히 대응키에는 이미 너무 늦어버리도록 하는 일! ,,. ∴ ',,, 생각지 않았다/(X) ',,, 생각치를 못했었다!(O)

₂.진압군 부대 가온 데 공수단 예하대들은 당시 너무나도 데모가 흔해서 차마 북괴군부대들이 참가햇을 줄은 상상조차도 못했! !! ㅉ또, 제20사단도 마찬가지. 왜냐면, 그들은 경기도 양평에서 군사령부 직할대로 훈련만 하는 부대엿는데 그들도 마찬가지! 도 위수지구부대인 제31사단은 솔직히 형편없는 사단임. 그런 사단에 근무하면 가ㅣ록카드 버린다고 제대로 된 장교들은 극력 기피하는 부대인데 거기 있었던 장교들이 ,,. 죄송합니다. 31사 출신들에게는요. ,,. 그리고 전교사 예하 보별학교.기갑학교는 전쟁이나도 싸우지 않는 부대예요. 그들은 피교육자 장교.부사관들 교육 지원에 전문 종사하는 敎導大隊(교도대대)들 각 1~ 2개대대 주력인데 그들도 차마 북괴군이 참가했으리라곤 순진(?)하게도 착안치 못! ,,. 제가 전역무렵에 상무대 육군전투병과학교{보교 + 포교 + 기교 + 화학교; 4개학교를 통합 창설}의 敎導聯隊(교도연대) 정보작전주임을 해서 조곰 압니다. 그 전투교 교도연대장은 衛守부대인 제31사단의 예하 연대 일부 대대들을 지휘.통제장악하는,,. 생략{비밀 사항}

₃.북괴군들은 아군과의 교전도 목적이기야 하겠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부차적임 목표임! ∵아군과의 교전은 일부러 극력 회피함이 전술임! 아군과 사우면 남의 땅에 들어와서 크게 불리! ∴민간인들을 닥치는대로 잔혹하게 - - -  1968. 9월 강원도 울진.삼척 130명 상륙, 강원도 평창으로 도주시 진부면 속사라 '이 승복'군의 입을 찢,,. 일부러 상상을 초월하는 잔혹 행위.만횅을 저질러 민간인 주민들에게 극단적인 증오심.적개심으로 전환토록하여 이이제이 수법으로 이기게 하는 방책을 택함이 쟤들의 後方 地域 작전 軍事 敎理(교리)임을 아시기요! ,,.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외까? !! ,,,.

⁴.해안.해상은 아직도 허술하거늘! ,,. 하물며 30여년 전인 1980.5.18 그 당시에야 풀방구리에 쥐 들락거리듯 했었을 낀데,,. 또; 무슨 수백명을 사살했다는 겁니까요? ,,.

5. 바빠서ㅗ

inf247661님의 댓글

inf247661 작성일

5.'전 두환' 집권 시에서 조차도, 차마, 북괴군들이 개입했으리라는 상상조차도 감히 못.않했었을 정도의 奇襲이었다고 볾! ,,. 이런 점에서 추궁해 본다면도 軍部에서는 관련 정보.첩보 분야를 책임지는 장군들이 있어야 할 것으로 사료되며, 이제라도 사죄성 대국민 회고.증언을 해야만 하지 않을까? ,,.

6.【탈북자들의 증언은 傳言(전언)에 불과하다. "내가 광주에 내려왓었다"고 나서도 믿기 힘든 판에, "~카더라."란 이야기를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여선 곤란하다.’】(X) → ∵그러면 '황 장엽'씨의 말은 어떻게 믿는냐? ,,.
육군정보학교에 가면 '訊問 장교반{신문 장교반. 審問(심문) (X) 訊問(O)}'이라는 교육 과정이 있는 바, 저야 받은 적 없지만, 대신 '전투서열반{Order Battle, 戰鬪 序列班}' 과정을 받았는데; 여기서는 '訊問' 과목을, 세부적으로 파고드는 전문적이지야 않치만, 교육받읍니다. ,,.
또; 정보판단에는 첩보 수집.처리.해석.전파 및 사용' 등 정보 순환 단계가 있으며; 여기서 諜報(첩보) '確度(확도)' 라는 것이 있죠. ,,.
'첩보 출처 수집 기관의 신뢰도{A, B, C, D, E, F} 및 첩보 내용의 진실성{1, 2, 3, 4, 5, 6}' 를 결합하여, 마치 經理 複式 簿記 - 회계학에서의 '자산증가, 감소; 자본증가, 감소; 부채 감소, 증가; 수익,비용발생'등이 서로 결합; 16가지 경우의 수가 형성되듯, 諜報 確度 또한 마찬가지! ,,.
탈북 군관.부사관.민간인들의 처절한 증언을 믿지 못한다면, '금 일쎄이 - 개정일'롬의 말은 믿겠외깝쇼? ?? ,,. 쟤들은 항상 우리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일을 다반사로 진행해왔었고 있음을 잘 아시면서도 어찌하여 이렁구시는다? ,,.
∴ 탈북자님들의 증언 책자 - - - '화려한 사기극의 실체<sup>5.18</sup> 를 심각하게 수용해야만 합니다.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다!' 임진 왜란! ,,.

7. 그런데 '비전원'님! 번호가 6번 7번이 또 잇는데 수정 요! ,,.

inf247661님의 댓글

inf247661 작성일

7.北傀 特殊戰부대원들의 행동이 民間人들처럼 그렇게 허수룩한 줄 이시외까? ,,. 바보도 아니고 무슨 말을 그리 하시오는지,,. 전문적으로 침투.잠입을 직업적으로 교육받은 부대가 민간인들처럼 발각되어져 본연의 임무 수행도 못.않하고 中間地에서 我軍과 交戰한다? ?? ??? 예라이 썅{夜來香(야래향)}! ,,.
'조 갑제'님은 바보유, 순진이요? ,,. 정신 차리시기요! ///
실제 출동한 북괴 특수전 개입 1개대대를 약 50명(±) 정도로 볼 때, 10명 단위로 침투 종대를 시간차로 병렬 행군하면 발각되지 않음. 더우기 간첩들을 嚮導(향도)삼아, 앞잡이시켜서, 野地.山嶽(야지.산악) 침투 행군하는데, 결코, 그토록 만만하게 발각될 리는 없외다! ///
"철통같은 포위?" '조 갑제'님! 前線의 GOP 鐵柵線 뚫고 南下하는 걸 보슈, 좀! ,,. 맹탕같은 말씀은 좀 이제 그만 두세유, 제발! ,,.

8.'광주 發 과장 2개' ,,. 기만.기습.양공.양동.계략.허식.모의.가장.연출! ,,.흑색선전.회색선전.선동.백색선전! ,,,.피아(彼我) 공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음! ,,. 위 술어들을, 毋論(무론), 모두 잘 아시겠죠? ,,.

inf247661님의 댓글

inf247661 작성일

★ 9'.眞實'을 萬人들에게 보편타당토록 수긍.인정받으려면? →그럴 만한 決定的인 과학적 증빙 자료를 제시해야만 함! 예를 든다면; 1980.5.18 광주 사태 때! 死亡者들로써 관련 유족들이 전혀 나타나지 아니하는, 所謂(소위), 이른 바,  '身元 不詳者(신원 불상자)'들의 유해를 무덤에서 꺼내, 국방과학수사연구소에 DNA 검서를 실시, 광주사태 失踪者(실종자) 유족들들의 DNA 와의 관련성 유무를 대조.비교한다면, 쟤들의 介入(개입) 여부 쯤이야 단박 알아낼 수 있거늘, 왜, 무엇이 두려워 그걸 기피하느뇨? 국민들에게 무엇을 숨기고 싶은 거죠, 광주사태 피해자 간부들은요? ?? ??? ,,.
'조 갑제'님은 광주사태 失踪者 유족들 및 사망자로 망할동 무덤에 묻힌 신원 미연고자들이 '신원 불상자'들인만큼, 이들을 DNA검사를 실시하여 연고자 유무를 당장 실시토록 촉구해야만 하며, 그런 조치가 아직도 30여 星霜(성상)이 경과토록 없는 이런 한심하고도 어처구니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무슨 근거로 '眞實'운운하시는지 오히려 내가 묻겟외다요! ,,.

參考로요; '괴 무현'놈 후깅에 발생한 수학박사 '김 명호'교수의 '石弓 事件!' ,,.
석궁을 일부러 쏘지도 않았고, 뱃떼기에 맞지도 않앗는데도; 살인 의도로 석궁을 쏘았으며, 뱃떼기에 맞았다면서 증거로 제시한 피묻은 와이샤츠! ,,.

₁.뱃떼지에 石弓 화살을 피격당했다면, 당연히 뱃떼기 살에 닿은 런닝구에 갖장 먼저 피가 흥건히 묻고, 그 런닝구 겉의 와이샤쓰에는 오히려 적게 묻혀야하미 자연 현상에 부합되거늘,,.
이건 정반대로, 뱃떼지에 닿는 런닝구에는 피가 않 묻고, 그 런닝구 겉의 와이샤쓰에는 피가 흥건히 묻었다고 주장햇는데,,.
'김 명호'수학 박사가 그 와이샤쓰의 피가, 정말 피격당했다고 주장하는 '박 홍우' 고등법원 판사놈의 진짜 피인지의 여부를 DNA 검사 요구했지만, 이적지까지도 거부코 있음과 꼭같음! ,,. 이게 바로 우익 교수를 탄압하는 빨갱이 정권의 좌익 판사롬의 천인 공로할 범죄행각인 것이다! ,,. cafe.daum.net/myunghinimsarang

광주 망월동 모이 무덤에 묻힌 '未 緣故者(미 연고자).身元 不詳者(신원 불상자)'들에 대한 DNA 검사를 실시하자고 '광주사태 유족'들에게 종용해주십사! ,,. 믿을 수 없는 건, 어리둥절하고있는, 대다수 국민들임을 直視하십시요! ,,. 餘 不備 禮, 悤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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