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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16 혁명 참가 수기(제2회)- '나는 혁명군,선봉부대 소대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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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피터 작성일11-02-18 13:02 조회3,308회 댓글8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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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5 16 혁명군, 선봉 부대 소대장이었다. (두번째 글)

                                                   김 피터 (박사, 교수)

 

                       하나의 가장 길었던 밤 (The Longest Night)

대대본부 상황실에서의 작전 명령 하달을 받고, 중대 본부로 돌아오자 또 중대장으로부터의 중대 행동 계획에 대한 자세한 지시 사항들을 들은후, 소대장들은 각자의 소대 막사로 돌아왔다.  우선 소대원 전원을 비상소집 시켰다.  해병대의 전투 소대는 그당시, 육군 체제보다 수가 많은 43명이 정원이였다. 왜냐하면 해병대는 상륙 공격전을 수행하는 부대로서, 공격 쪽에서는 방어 측 보다 희생이 더 많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소대원들에게, 대대장이 상황실에서 했던 거창한 내용이 아닌, 간단한 혁명 봉기의 당위성과 앞으로의 각 분대 행동지침을 시달하였다. 그리고는 출동 준비에 들어갔다. 각자 총기 점검, 탄환, 수류탄, 건빵 등 필요한 장비, 비품들의 지급 등, , 준비에 만전을 기하기 위해 모두 눈이 돌아갈 정도로 뛰어 다녔다.

 

모든 출동 준비가 끝났다. 철모를 쓰고 권총을 차고, 완전 무장한 소대원들과 함께 배당된 트럭에 올랐다. 굳게 입을 다문 소대원들의 사기는 충천해 보였다.  드디어 누란의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하기 위한 우리 해병 혁명군을 실은 긴 차량 행렬이 수도 서울을 향하여 김포 반도 지역을 서서히 빠져 나가고 있었다.

 

                           5 16 혁명군 해병 부대 지휘관들                         

 그때 우리 5 16 혁명군, 해병부대의 총지휘관은 해병 제1여단장인 김 윤근 준장(당시)이였다. 그는 강직하고, 부정을 모르며, 욕심이 없는 청렴한 전형적인 군인이다. 그는 만주 신경 군관학교 제 6기생 출신인데, 그의 선배로 같은 군관학교 1기생 출신인 김동하 해병 소장이 있다.

 김동하 소장은 6 25전쟁때, 저 유명한 펀치볼 전투에서의 승리 등 수많은 전투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웠던 역전의 용사이다.(그는 516 혁명후에, 군의 원대복귀 , 김종필의 권력 견제등을 강하게 주장하기도 했었다. 그러다가 그는 이른바 알라스카 토벌 작전의 희생자가 되어 감옥에서 고생하기도 했었다.  말년에 그는, 해병대 사령부가 결국 박정희의 육군측에 의해 해산되었다고 생각해, 해병대를 5 16 혁명에 끌어 드린것에 대해 후회를 많이 했다고 한다.)

 김동하 소장은, 같은 군관학교 후배인 박정희 소장(2)과 국가를 구하기 위하여 군이 궐기해야 된다는 것에 대한 뜻을 같이 하고 있었었다. 같은 군관하교 출신이며 해병대 후배인 김윤근 준장이 김동하 소장 집에서 역시 군관학교 선배인 박정희 소장을 만나게 된 것은 우연 만은 아니다., 바로 이 세사람의 만남이 결국 후일 대한민국 역사를 바꾸는 운명의 만남이 된것이다.

 그런데 여기 주목할것이 하나 있다.  김윤근은 전형적인 군인이므로, 아무리 사회가 어지러워도, 군이 나서서 무언가 혁명 같은것을 일으켜야 한다는 생각에 대해 처음에는 전혀 찬성하지 않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김동하 소장과 박정희 소장이 이 위기에 처한 조국의 현실을 그대로 두고 볼수 없다. 이제는 군이 나서야 한다 는 강한 설득에 의하여, 그들의 계획에 어느정도 동조는 했으나, 마음속으로 그것은 아닌데라는 생각을 여전히 가지고 있었다.  그만큼 그는, 군은 국방이라는 군 본연의 위치에서 벗어나면 안 된다는 정신을 가지고 있었던, 철저한 군인정신의 소유자였다.

 

그런데, 여기 또 하나 해병대가 혁명의 선봉에 서게 되는, 정의에 불타는 32세의 젊은 해병 장교가 있었다.  그는 해병 제 2연대, 1대대장 오정근 중령이다. (그는 516 혁명후, 국가 재건 최고 위원회 의원, 국세청장, 국회의원 등을 역임했었다)  그리고 제2연대의 부연대장, 조남철 중령, (추후 그도 국가 재건 최고회의 의원, 국회의원 등을 역임)과 연대 인사참모였던 최용관 소령 등은 별로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나, 해병대의 516혁명 거사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핵심 인물 들이였다.

 오정근, 조남철, 최용관, 이 세사람은 서로 만나면 국가의 현실과 장래에 대하여 걱정하는 얘기들을 나누며 의기 투합하는 가까운 사이 들이엿다.  1961, 3월의 어느날, 같은 해병 여단 관활 지역인 강화도의 어느 조용한 식당에서 이 세사람이 만나 식사하면서, 드디어 그들은 해병대 단독으로 혁명을 일으키자는데 뜻을 모았다. 그리고 그들이 존경하는 김윤근 여단장을 지휘관으로 모시기로 결의하는데 까지 이르렀다.

 그런데, 그당시, 오정근 대대장의 직속상관인 제 2연대장으로 박 모 대령이 있었는데 그는처음부터 끝까지 혁명 대열에서 제외되었던것으로 알고 있다. 아마 오정근이나 김윤근은 그를 신뢰할만한 인물로 보지 않았던 것 같다.

 내가 그 얼마전, 최전방 소대장으로 근무하고 있을 때였다.  하루는 중대장으로부터 소대장 전원, 중대 본부로 집합하라는 명령이 내려왔다. 철모를 쓰고 권총을 차고, 전령 1명을 대동하고 중대 본부로 달려갔다. 연대장이 시찰 나온다는 것이였다. 그때 중대장은 허만수 대위였는데, 그는 아주 호탕한 성격으로 먹고 마시고 노는데는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다.  신학대학 출신인 나를 무척 신뢰하고 중대 내에 어떤 문제가 생기면 나를 불러 의논하거나, 또 내게 해결을 맡기는 일이 더러 있었다.  중대장을 비롯해서 우리 소대장들, 그리고 중대 본부 요원들이 모두 도열해 연대장이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드디어 연대장의 찝차가 도착했다.  우리는 모두 거수 경례를 부치며 큰 소리로 필승!을 외쳤다.  그런데 연대장은 찝차에서 내리자마자 중대장을 향하여 너 이새끼, 무슨 일을 그따위로 해. 아직도 정신차리지 못했어? 라고 소리치며 군화발로 쪼인트를 까고( 무릎 아래 다리뼈를 차는 것을 말하는데 무척 아프다.), 지휘봉으로 머리를 마구 때리는것이었다.  물론 철모를 쓰고 있었으므로 머리는 아프지 않겠지만, 이는 일종의 모욕인 것이다.

 중대장이 아무리 잘못했어도, 부하들 앞에서 상관인 중대장을 그렇게 모욕을 주는 연대장의 행동을 보고, 나는 그 후 부터 그 연대장을 전혀 존경하지 않게 되었다.  이런 사려 깊지 못하고, 즉흥적인 행동을 잘하는 면이 있는 관계인지는 모르나, 조 연대장은 혁명대열에서 제외되었다.

 

오정근 대대장, 조남철 부연대장, 최용관 인사참모, 세사람은 김윤근 여단장에게 찾아가 조국을 향한 자기들의 불타는 애국심을 토로하고 해병대 단독의 혁명 봉기를 제의하였다.  김윤근 여단장은 해병대 단독으로는 성공하기 어렵다.  육군의 박정희 장군 쪽에서 거군적으로 계획하고 있으니 거기에 함께 합류하자.고 설명하여, 결국 그들은 육군쪽과 연대하기로 합의하였다. 그렇게 해서 해병대 혁명 세력이 김윤근을 통하여 박정희, 김동하의 거사 계획 세력에 합류하게 된것이다.  박정희는 서울에 가까이 있는 해병 여단을 혁명대열에 끌어드리기 위해 김동하를 통해서 많은 노력을 기우리기도 한 것은 물론이다.

 

                        채플에서 군목과 함께 기도한 사령관

 오정근 중령의 지휘아래, 오리정의 제 1대대 지역에서 출동 준비가 급하게 진행되던 같은 시각, 여단 본부에서는 여단장의 지휘 아래 혁명에 동조하는 각급참모들이 발에 불이 날 정도로 뛰어다니고 있었다.  특히 통신참모 문성태 소령은 김포반도로부터 한국군, 미군, 경찰, 등 서울 및 외부로 연결되는 모든 통신 선을 일시 절단하는 일도 하였다.

  11시경, 최종 준비를 하고 있던 김윤근 장군은 비장한 마음을 안고, 부관을 대동하고, 여단본부 채플(교회)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김윤근은 본래 신앙심이 깊은 독실한 기독교 가정 출신이다.  여단 본부 교회는 여단 본부 지역내의 약간 언덕에 위치한 곳에 자리잡고 있는 콘ㅤㅅㅔㅌ트 건물이다.  그옆에 군종참모실 막사가 위치해 있었다. (그당시는 군종도 하나의 참모부서였다)  그때 군종참모는 김광덕 목사(소령)였다.

 

부관으로부터 여단장이 채플로 기도하러 간다는 연락을 받고, 김 목사는 이 밤중에 왠일인가? 의아해하며 채플에 가서 문을 열어 놓고 대기하고 있었다. 채플에 함께 들어간후 여단장은 김 목사에게 혁명에 대한 얘기를 간단히 설명해주고 나를 위해서가 아니고, 이 혁명이 성공하여 국가를 위기에서 구해낼수 있도록, 위하여 기도해 달라고 요청하였다.

 두 사람은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었다. 김 목사는 나라를 위하여, 혁명의 성공을 위하여, 그리고 여단장과 혁명대열에 참가하는 모든 장병들의 안위를 위하여, 특히 피를 흘리지 않게 되기 위하여 정말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였다.

 기도를 마치고 난후 여단장이 김목사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목사님.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실것을 확실히 믿습니다. 이제 마음이 편안합니다.  아무리 군인 정신이 강한 김 장군이라 해도, 국가의 운명이 좌우되고, 또한 생사의 갈림길이 될수 있는 군사 혁명 의 장도에 나서는데, 그마음이 어찌 불안하지 않을수 있겠는가?  그래서 목사의 기도를 받고 난후에 새로운 힘을 얻게되고, 그마음이 편안해ㅤㅈㅓㅆ다고 말한것이였다.

 

모든 출동준비를 마친 우리 해병 혁명군의 각부대는 구국의 뜨거운 마음을 다지며, 드디어 새벽 1시경, 목표 서울을 향하여, 김포반도에서 출발하였다.

 해병 혁명군 부대 인원은 모두 약 1300명 정도의 수였지만, 모두 일당백의 사기 충천한 귀신 잡는 해병들이다.  주력부대는 해병 제 2연대, 1대대이고, 그 뒤로 다른 대대에서 보충되어온 부대들, 그리고 1개 전차중대, 1개 포병중대, 1개 공병 중대, 통신 중대 및 본부 지원 중대등이 따랐다.

 부대를 출발할 때, 우리는, 지시에 의하여 모두 자동차의 헤드라이트를 끈채, 될수록, 저속으로 차를 움직였다. 이유는 그당시 여단본부 옆에 있는 미군 고문단 요원들의 눈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만일 미군 고문단에서 알게 되면 이것은 큰 문제가 될수 있고, 우리는 출동을 저지 당할수도 있다.  왜냐하면 최전방 방어에 임하고 있는 부대를 이동 시키려면 미군 측의 동의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 서부전선 병력의 약 3분의 1이 자리를 뜨고 있는것이다.

 지금의 얘기지만, 만일 그때에, 지금처럼 미국 측에 인공위성을 통해 지상의 이동 물체를 일일히 추적하는 장치가 있었다면, 우리의 출동은 즉각 발각이 되었을 것이고 혁명계획은 아마 좌절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때는 아직 그런 위성 추적 씨스템이나, 또한 휴대폰 같은것도 없었다.

 여단 본부와 미 고문단 막사가 있는 지역을 통과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자동차의 헤드라이트를 밝게 켜고, 일로 서울을 향해서 속도를 내며 달려 나갔다.

 

나는 트럭의 운전석 옆 자리에 앉아, 스처가는 김포 평야의 어둠을 바라보면서, 여러가지 상념에 잠겼다.  과연 총을 들고, 대한민국의 심장부 서울을 향하여, 다른 말하면 나라를 뒤엎으려 나가는 이 길이 바른 길인가? 지금 서울에는 나의 사랑하는 부모 형제, 친구들이 있다.  구국의 결단이라는 명분을 가지고 있지만, 실제로는 현정부를 무력으로 전복시키려고 나가는 길이다.  그때 내가 비록 말단 초급 장교, 1개 소대장에 불과했지만, 목숨을 내걸고 나가는 혁명대열에 참가하면서 어찌 착잡한 감정이 없었겠는가?  

 

 

 

댓글목록

성실님의 댓글

성실 작성일

다음 글이 기대됩니다.
한강다리 입구에서 만나자던 육군공수부대는
나타나지 않고....

심심도사님의 댓글

심심도사 작성일

솔직히 이야기 하자면,
5.16은 실패한 혁명이었었지요!!!!
그 당시 장면이라는 겁쟁이 수상(총리)만 아니었어도.....
윤보선  대통령이 나오라고 나오라고 해도 겁이 많아서 일주일 씩이나
명동성당 수녀원에서 숨어서 꼼짝도 못하고 있다가....
윤보선 대통령이 정권을 넘겨 주겠다고 하니까
그제서야 기어나온 그런 겁쟁이에게 정권을 계속 잡게할 만큼 어리석은 대통령이 어디 있겠습니까????
만약에 북한이 쳐들어 왔다면 거기서 평생 살려고 했었나요?????
그 당시에 비밀경찰(CIC) 하시던 분에게 들은 이야기 이니
아마도 틀림이 없을 겝니다
그 후에 1차 경제개발계획, 2차 3차.....
그리고 나서야 밥숟가락이 제대로 입으로 들어가게 됐지요

김종오님의 댓글

김종오 작성일

심심도사님!
장면 총리가 숨어있던 곳은 '명동성당 수녀원'이 아니라,
'혜화동 수녀원'이었습니다.

심심도사님의 댓글

심심도사 댓글의 댓글 작성일

그랬었나요???,
설사 자세하게 들었다 해도......
그정도의 오류는 이해해 주시기를.....
어쨋거나, 수녀원에 숨어 있었다는 건
증명이 됐네요
한나라의 국가를 경영한다는 사람들의 간뎅이가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사람들 보다 작아서야!!!!
진정으로 국가를 위하는 사람이라면,
절대로 그래서는 안된다는 뜻이었습니다

송석참숱님의 댓글

송석참숱 작성일

일설에는 지하철 경복궁역 북단의 통의동 골목안 갈멜 수녀원이었다고 들었습니다.

심심도사님의 댓글

심심도사 댓글의 댓글 작성일

그곳에 숨어 있었다면,
깊이도 꼭꼭 숨어 있었네요!!!

김종오님의 댓글

김종오 작성일

심심도사 님, 송석참춫 님!
그냥, 참고로 5,16 군사혁명 비사중 장면 총리의 도망처는 아래와 같았음을 밝혀 드립니다.

장면(총리)은, 쿠데타정보를 듣고 밤중에 미국대사관으로 달려갔지만 수위가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다시 대사관 건너 편 CIA 한국지부의 문을 두드렸지만 열리지 않았다.
그 길로 찾은 곳이 수녀원, 한국민주주의의 비극이었다.

혜화동 까멜 수녀원에 피신해 있던 장면 국무총리는,
18일 오전 은신처에서 나와 국무회의를 개최하고 내각 총사퇴와 군사혁명위원회에 정권 이양을 의결했으며, 윤보선 대통령은 국무회의 결정을 그대로 재가했다.
같은 날, 미 국무성도 한국 군사혁명위원회의 지도자가 반공친미적임을 지적하면서 쿠데타를 사실상 승인함으로써 5ㆍ16쿠데타 세력은 권력의 실체로 자리잡게 되었다.

송석참숱님의 댓글

송석참숱 작성일

김종오님 친절하신 하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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