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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의 집안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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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좋은나라 작성일11-08-22 18:12 조회1,429회 댓글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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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의 집안내력


이주천 칼럼] 家系에 걸친 左翼의 뿌리에 대한 의혹



▲ 임기말 평양에 들어가 김정일과 건배하는 노무현 부부

I
재작년 가을 토요일, 부산일보 대강당 10층에서 열린 조갑제강연회를 마치고 저녁회식이 있었다. 그 때 만나서 인사를 나눈 분 중에서 부산 경찰서 공안담당 K형사가 있었다.

K형사는 자신이 바로 노무현을 최초로 구속했던 장본인이라고

소개했는데, 상당히 놀라운 이야기가 있었다.

80년대에 노무현은 부산을 중심으로 해서 활동했다. 당시 부산에서는 기업체에서 일하는 노무자들을 선동하는 노무현으로 인해서 애를 먹고 있었다.

K 형사는 상부의 명을 받들어서 국가보안법위반 혐의로 노무현을 체포하려가게 되었다. 노무현의 집에 갔는데, 놀라운 것은 80년대 당시 불온서적으로 지적된 구하기 힘든 좌파서적들이 많이 진열되어있다는 점을 안 K형사는 내심으로 크게 놀랐다고 한다.

 

조정래의 『태백산맥』 등 즐비하게 불온좌경서적이 빽빽하게 진열되어 있었다. 어디에서 누구를 통해 구입했을까? K형사가 조사해 본 결과, 어쨌든 노무현은 80년대에 일반국민들이 생각하는 이상으로 친북좌경화된 인물이었다.

K형사는 노무현을 지근거리에서 구속․취조하면서 노무현이란 인물의 위험한 실체를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공공연하게 말을 하고 다닐 수는 없었고, 기자회견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K형사는 노무현이 대통령에 출마할 것이라고 간파한 몇 사람이 안되는 사람 중에 한 인물이다. 대통령에 출마한 노무현은 가끔씩 전화를 해 왔다고 한다. “왜 노무현이 일개 형사인 당신에게 관심을 가졌나?”를 물으니,

노무현 자신의 내면의 깊은 친북좌익사상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있는 K형사가 정보를 퍼트릴지도 모른다는데 대해 두려움을 느낀 것이라고 말했다. 즉 관리차원에서 전화를 한 것이다.

II
일반적으로 국민들에게 널리 알려진 사실은 노무현 변호사가 변론을 서면서 386운동권들과 친근해졌고, 이들이 이를 기회로 삼아서 노무현을 자신들이 기댈 언덕인 宿主로 만들기 위해서 사상적으로 좌파로 사상교육을 시킨 것으로 알려져 왔다.

즉 386운동권이 노무현을 좌익으로 만들었다는 논리다. 사법고시를 패스한 노무현이 1년도 안되어 판사를 그만두고 부산상고 선배인 김광일 인권변호사가 소개를 해서 운동권 변론을 맞게 되면서, 386운동권과 접촉하게 되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부산상고를 졸업하고 대학을 가지 않은 노무현은 기자회견장에서 스스로를 “84학번”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386운동권과의 사상적 동질성을 표현한 의미심장한 발언이다.

실제로, 연대출신 이광재와 고대출신 안희정과 같은 386운동권출신들이 노무현의 대선캠프에서 일하면서 당선에 일등공신이 되었으니, 386운동권과의 친밀한 관계를 알 수 있다.

노무현이 변호사 개업 이후, 김광일 변호사는 노무현을 야당정치인 김영삼 민주당 총제에게 소개시켜주었다. 김영삼의 추천으로 공천을 받아서 노무현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이 일로 해서 김광일 변호사는 만나는 사람들에게 노무현을 김영삼에게 소개해 준 장본인으로서 책임을 느끼기 때문에 사과하기에 바쁘다). ‘민주투사’라면 모든 것이 다 되는 만사형통의 시절 이야기다.

노무현은 88 5공청문회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명패를 던진다. 그것은 치밀하게 계산된 ‘정치쇼’요 훌륭한 연기였다. 그러나 노무현이 얼마나 위험한 대중선동 정치인이라고 인식한 사람들은 얼마 되지 않았다.

국민들은 그에게 까무라치도록 열광했다. 그리고 그는 5공청문회 스타로 발돋움하여 대선출마의 용트림을 시작한다.

III
노무현이 친북좌경사상으로 무장하는 배경에는 396운동권과의 접촉, 그것이 전부인 것는 아니다. 노무현 가계에 걸친 두 가지 의혹이 있다. 장인에 대한 것과 부친에 대한 것이다.

모 두 공통점이 6.25좌익활동이나 빨치산과 연관되어 있다. 장인 어른 권오석씨는 1948년에 남로당에 입당한 골수 공산주의자였다. 6.25동란시에 인민군 부위원장으로 붉은 완장을 차고 양민학살에 적극적으로 가담하여 수복후 좌익혐의로 구속되었고, 비전향장기수로서 1971년 마산형무소에서 사망하였다.

노무현은 후보시절, 방송토론에서 사상문제가 나왔을 때, 자신의 좌익사상을 교묘하게 은폐하면서 색깔론으로 되받아치면서 다음과 같이 국민들의 정서에 호소하면서 기민하게 逆攻을 취하였다.

"이런 아내를 버려야겠습니까! 그러면 대통령 자격이 생깁니까! 이 자리에서 여러분이 심판해 주십시오! 여러분이 자격이 없다고 하신다면, 대통령 후보 그만두겠습니다!"

노무현의 용기있는 발언은 결과적으로 盧風戀歌를 창출해 내었다. 그의 눈물이 흐르는 비장한 장면은 방송렌즈에 크로즈업되면서 국민들이 동정심을 이끌어 내었다.

사회자가 노무현의 친북사상에 문제를 제기했어야했는데, 그냥 넘어간 것이다. 사회자는 이혼하라는 것이 아니라, 장인의 빨치산 사상을 계승할 것인가의 여부를 더 강력하게 추궁했어야했다.

노무현의 아내를 사랑하는 눈물과 ‘색깔론’에 저항하는 발언을 끝으로 해서 노무현의 사상은 큰 문제가 없는 것처럼 구렁이 담 넘어 갔듯이 지나갔다. 이렇게 해서 장인의 좌익활동은 노무현과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것으로 유마무야되었다.

장인은 이미 고인이 되었고, 죽은 자는 말이 없다. 그리고 그의 딸이 무슨 잘못이 있나? 그런 불쌍한 가정을 감싸는 노무현은 정말 용기있고 장한 경상도 남아처럼 보였다.

그런데 언론과 국민들이 정확하게 관찰하지 못한 것이 바로 노무현의 가계다. 인터넷에서는 노무현의 부친, 노판석을 치면 이런 내용들이 나온다.

「노무현의 부친 노판석은 6.25 당시 인민군의 앞잡이 역할을 했다. 노무현의 고향 전라남도 강진(1953년 5살 때까지 그 곳서 살았음)에서 약 20~30명 가량의 사람들을 무고하게 살해를 했다.

이후 노판석은 유엔군의 인천 상륙작전으로 인하여 지리산에 들어가 빨치산 활동을 하게 된다. 노무현의 부친 노판석에게는 인천상륙작전의 영웅 맥아더가 철찬지 원수처럼 여겨졌을 것이다.

노 무현의 부친 노판석이 그러한 행동을 하게 된 데에는 노무현의 조부, 즉 노판석의 부친이 일제시대 때 일본군의 앞잡이 노릇을 했기 때문이다. 일제시대 때 노무현의 조부가 일제 앞잡이 노릇을 하다가 해방이 되자 동네 주민들로부터 엄청난 괄시와 무시를 당하게 된다.

이에 대하여 노무현의 부친 노판석은 동네 사람들에게 큰 앙심을 갖고 있다가 6.25가 터지고 나서 인민군이 전남 강진을 점령하자, 인민군 앞잡이 노릇을 하면서 자기 동네 사람들에게 철저한 앙갚음을 하게 된다.

인천 상륙 작전 이후, 노판석은 지리산에 들어가 빨치산 활동을 하게 된다.그런데 이 시절에도 죄 없는 사람들을 죽인 것으로 추정이 된다. 지리산에서 가까운 남원부근에서 민간인들을 살해하지 않았겠나 하는 큰 의혹이 든다.

왜 냐하면 당시 지리산 빨치산들에게 자발적으로 식량과 물품을 대줄 민간인들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1953년 들어서 국군이 북한군을 격퇴하고 남한 전역에 치안과 질서를 확립해 나가자 노판석은 자기 고향에 돌아와서 당시 5살 되던 노무현과 노건평을 데리고 야밤에 도망을 간다.

왜 냐하면 고향에 그대로 눌러 있다간 동네 사람들에게 보복을 당하게 될 것을 두려워 한 것이다. 그래서 야간에 목포항(목포 바로 옆이 영광 그리고 그 바로 옆이 강진)에서 부산으로 가는 배를 타고 도주를 하게 된다.(자기네 동네 사람들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배편을 이용한 것으로 추정)

가 족을 데리고 부산항에 도착한 노판석은 산골 오지인 경남진영으로 도망을 간다. 그리고 그 곳서 호적을 새로 만든다(당시에는 전란 직후였으므로 호적을 새로 만들기가 쉬웠다) 그리고 다시 김해로 도주를 한다.(김해는 진영 바로 옆에 있다)

이 후부터 노무현네 집안은 경상도 출신 행세를 해온 것이다. 그런데 노무현은 경남 김해에서 역시 6.25 당시 인민군 앞잡이 노릇을 하던 권오석의 딸과 결혼을 하게 된다. 권오석은 6.25 당시 인민군 앞잡이로서 지역주민 11명을 살해한 경력의 소유자이다.」 (http://www.hope-21.net 의 자유게시판에서)

그러나 『월간조선』의 송승호 기자가 2004년 3월 23일자에 쓴 「노무현의 가계」에 의하면, 인터넷에 올라온 기사와는 전혀 다르다. 노판석에 관한 기사는 다음과 같다.

「盧대통령의 아버지 判石씨는 타이어 제조 기술자였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判石씨는 日本과 中國 上海(상해) 등지를 돌며 재산을 모았으나 사기를 당하는 바람에 盧대통령이 태어났을 무렵에는 고향인 경남 김해시 진영읍 본산리에서 농사를 지었다고 한다.」

송승호 기자가 쓴 기사에서는 권양숙 여사의 가계에 대한 기록에서 부친 권오석의 좌익부역활동에 대해서는 일체 생략되어있다.

IV
노판석씨는 양민을 학살한 빨치산이었나, 아니면 사업가였나? 노판석이 1976년에 사망했으므로, 주변의 증언자들이 나올 수 있다. 노건평이 경찰에 구속되었으므로 부친에 대한 증언이 얼마든지 나올 수 있다.

검 찰과 경찰의 수사자료에서는 기록이 나올 것이다. 그런데, 청와대에 있을 때부터, 노무현 가족들은 가계를 자랑하지도 않고 그것에 대해서는 일체 함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솔직한 성품의 노무현 대통령도 부친에 대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기에 부친 노판석에 대한 세간의 의혹은 증폭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노무현은 386운동권으로부터 좌익교육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왔다. 그러나 필자의 잠적적인 결론에 의하면,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노무현은 이미 가계와 부인 등 집안으로부터 깊이 친북좌익사상에 뿌리를 가진 집안에서 성장했음을 알 수가 있다.

노무현의 좌파사상은 부친 노판석-장인 권오석, 그리고 386운동권의 합작품이 아닐까? 언론에서도 아직도 노판석에 대한 추적인터뷰나 특종기사가 나오지 않고 있다. 한국언론의 직무유기 행태가 여기에서도 여실히 노출되고 있다.

문제는 이런 가계의 사상에 대해서 국민들이 얼마나 정확한 정보를 알고서 선택했는가에 있다. 지금은 땅을 치면서 후회하지만, 많은 국민들은 그가 좌파이기 보다는 군부독쟁에 투쟁한 ‘인권변호사’, ‘민주투사’로 인식하여 광신적으로 지지했을 것이다.

좌파언론은 권오석이란 장인의 실체를 알 것이다. 그리고 노판석의 실체에 대해서도 알았을 것이다. 문제는 언론이 좌파에게 장악이 되어서 김대중 좌파정권의 시녀가 되어서 노무현의 친북좌파사상이 크게 이슈화하지 않았을 뿐이다.

김 대중의 ‘햇볕정책’이 맹위를 떨치고 친북좌파들이 기세가 등등했던 시절이었으니,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 그러므로 노무현 좌파정권 등장의 배경에는 권력과 언론에 의해서 ‘색깔론’으로 역공을 취하면서 노무현 후보의 사상이 철저하게 보호․은폐된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촌지’에 약한 것이 한국언론의 병폐가

아닌가?

정계에서는 노무현이 김대중의 ‘정치적 養子’로 알려져 있는데, 아마도 일반사람들이 아는 것 이상으로 두 사람간은 해방이후의 좌파활동의 역사에서 돌이켜 볼 때 깊은 관계일지도 모른다.

해 방후 김대중의 좌익활동과 노무현의 가계에 얽힌 사연이 그런 의혹을 씻어내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노무현의 등장은 민주화투쟁으로 교묘하게 위장을 한다면 모든 사람들이 환호하고 열광하여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었던 시대의 비극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댓글목록

소강절님의 댓글

소강절 작성일

노무현이 죽었을 때, 김대중이 씹어댄 말...
"노무현 대통령과 나는 전생에 형제였는지 모르겠다"
그 말이 어쩌면 사기꾼의 실수, 실언이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네요...

도사님의 댓글

도사 작성일

쇼맨쉽에
능수능란한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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