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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광주 민주화운동의 진실은 폭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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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흐훗 작성일10-03-15 00:26 조회10,566회 댓글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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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광주 민주화운동의 진실은 폭동 증언자료 

2005/06/16 20:53


이름 : 이경아 [ZPFFLRHDWN] 조회: 10, 줄수: 126
이런 민주화 운동(?) 보셨나요?

폭동을 굳이 운동으로 불러 달라면 운동으로 해 줄수 밖에요.

각종 무기 탈취로 중무장 해 
다 죽이자는 무법천지 총기화, 폭탄화 운동으로 보이는 데요.

방화,  약탈 운동에요.
파출소란 파출소는 다 파괴 했네요.

광주에서만 저런게 아니네요?

목포에선 왜 저랬을까요?
머리에 흰 띠 두르고 각목들고 펭귄 석방하라며 누비구요.
펭귄 석방 운동?


21일 오전 총리실 입전 보고

* 9시 20분 아세아 자동차 공장 장갑차 1대, 군용차 30대, 기타 10대 탈취. 한국은행과 가톨릭센터 사이에 5천명이 각목들고, 군지프 2대, 그레이하운드 1대를 앞세운 채 행진. 

시체 2구 손수레에 싣고 마이크로 [계엄군은 시체 인도하라]고 방송.

* 인명피해 : 경찰 1백 15명(사망 4, 경상 90명), 군(사망 1, 중상 5명).

* 도청 : 버스 1대와 차고 전소, KBS, MBC 전소, 광주 세무서 방화, 세무서 무기고 탈취(카빈 17정).

* 오늘 새벽 군병력 1천 5백 명 서울서 광주로 출발.

* 군장갑차 1대가 군중에게 탈취 됐다고. 아나운서실에서 변칙적으로 뉴스모아 방송하고 있음.


오후 4시 총리실 입전 보고

* 군중들이 카빈 3백정으로 무장, 전남 의대와 경찰국 쪽으로 진출중.

* 오후 4시 10분 광주 지원동 석산 화약고서 다이너마이트 1상자 탈취 시내로 진출 중.

* 나주 경찰서 무기 피탈 내용 : 카빈 7백 80정, M1 2백 35정, 실탄 4만 6천 4백발, 38구경 12정, 45구경 16정.

* 군 트럭과 버스 30대 동원, 30명씩 분승하여 영광으로 무기 탈취자 출동.

* 화순 경찰서 무기도 피탈.

역전 파출소서 카빈 8백정 수류탄 일부 피탈. 파출소장 납치. 또 다른 파출소 카빈 2백정.


총리실 정보 비서실 입전 보고

* 오후 4시 15분 시위대 전남의대 12층 옥상에 LMG 2대 설치, 5백m 떨어진 도청향해 발사중. 

소방차 1대에 석유를 만재, 도청 방화 위해 진출 중. 일신방적 무기고에서 카빈 1백 50정 피탈.

* 오후 4시 21분 호남집중 무기고에서 카빈 1백 80정, 실탄 9백발(화순), 승주지서에서 카빈 40정 탈취. ○○사단 병력지원 차 출동.

* 오후 4시 25분 한국화약에서 화약 6 트럭분 수송치 못함(경찰쪽으로). 서울 시내 중· 고생 내일(22일) 오전 봉기한다는 정보 있어 시교위, 문교부가 총동원, 교사 비상동원, 무마 작업중.


총리실 보고

* 오후 4시 시위대를 카빈 3백정으로 무장, 전남의대에서 경찰국 쪽으로 진출 중.

* 오후 4시 10분 광주 지원동 석산 화약고에서 다이너마이트 1상자 탈취. 시내로 진격중. 

나주 경찰서 무기 피탈 내용, 카빈 7백 80, M1 2백 35, 실탄 4만 6천 4백발, 38구경 12정, 45구경 16정. 

군 트럭과 버스 30대를 동원, 30명씩 분승, 영광으로 무기 탈취자 출동, 화순 경찰서 무기피탈, 역전 파출소 카빈 8백 정, 수류탄 일부, 파출소 소장 납치, 또 다른 파출소, 카빈 20정.

* 오후 4시 45분 전남 방적서 카빈 1백 89정 탈취

* 오후 4시 51분 전남 연초제조창 무기고 탈취 (수량미상).

* 오후 5시 15분 상황 악화로 도경 상황실 폐쇄.


목포 주재 박흥서 기자, 부산 경유 보고

* 21일 오후 2시 30분 광주서 시민 학생들이 전남 5아 1059 등 광주고속버스 6대와 승용차 2대에 분승, 목포 도착.

* 6시 현재 버스 1대 [계엄해제]등 외치며 시내 돌아다녀. 연도엔 3만여 명이 나와 박수로 환영. 밤엔 심각할 것 같다. 

경관은 모두 사복으로 갈아입고 피신, 전 파출소가 비어 있다. 시내에 군인들은 안 보여. 아직 파괴는 없다.

목포에서 서울, 광주 시외전화 안된다. 서울에서 전화 해 주기를 바란다(밤 9시에 전화해 달라).


오후 6시 여수 주재 이만영 기자 연락

* 광주에서 학생 시민이 여수쪽으로 오고 있다는 소식. 전 경찰 비상. 여수경찰서는 유치인 33명, 보호인 15명 등 48명을 순천 교도소로 호송 중. 여수 분위기도 바뀌고 있다.


목포 주재 박기자 통화 내용

* 20일 밤 9시 이후 KBS, MBC TV 중계가 중단 (광주에서 중계해 주는데 중계시설이 부서진 듯).

* 21일 오후 4시 목포 MBC에 광주학생을 실은 버스 1대가 도착, 안으로 들어갔다가 부수지 않고 그냥 나왔다.

* 오후 6시 광주 학생들 철수. 목포 학생(고교, 대학) 시내버스 7대, 시외버스 1대 탈취.

* 오후 6시 15분 서울행 특급열차(8시 15분 출발 예정)가 2시간 전에 미리 출발.

* 오후 7시 20분 군용 헬기 1대 10분간 목포역 상공을 중심으로 정찰 비행 후 사라짐.

* 오후 8시 목포 학생들 시청 유리창 심하게 부숨.

* 오후 9시 30분 흰 머리띠 두르고 각목 든 사람들, 전남 5아 1060호(광천 여객 소곡)에 [김대중 석방하라]는 플래카드 걸고 목포 시내 누비고 다닌다.


목포 박기자와 21일 자정 통화 내용

*21일 오후 9시 학생 1백여 명 목포 경찰서에 들어가 유리창 부수고 뒤뜰에 세워 둔 트럭(호송차) 1대 등 불태워.

* 오후 9시-10시 사이 영해, 대의 , 역전, 연동 파출소 기물 파손.

* 오후 9시 20분-10시 사이 3차례에 걸쳐 목포 MBC 유리창, 기재 일부 파손.

* 오후 9시 30분 부터 MBC 정규방송 중단.

* KBS 초소와 현관 유리 깨짐. 목포 역전 부근 도로에 깨진 유리조각 널려.

* 오후 4시-5시쯤 일부 다방에서 데모 학생들에게 먹을 것을 조달하기 위해 모금했다는 설.

* 밤 12시 30분 현재 시내버스, 공단의 통근버스, 덤프 트럭, 용달차, 8t 트럭 등 20여 대에 학생들이 나눠 타고 시위하고 있음 

(22일 아침 정각, 목포 박기자와 통화키로 했음. DDD는 안되고 106번 불러 통화 바람).

2005/06/16(20:43)

[출처] 5.18 광주 민주화운동의 진실은 폭동|작성자 쥬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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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패 언론이 5.18 여론을 왜곡 조장한 사례 증언자료

2005/05/22 00:53

   1943년 11월 카이로 회담 때 조선인 독립 약속을 해 주는 조항에 "때가 되면"이라는 단서가 추가되어 있었는데. 그 배경은 이러합니다.  루즈벨트 대통령은 조선인에게 독립군을 유지할 능력이 있는지 의심스럽다며 독립 약속을 머뭇거렸다고 했습니다.  다행히 쟝개석 총통이 조선을 신생 독립국 대상 명단에 포함시키자고 강력히 요구하여 우리나라도 2차 대전 후 옛 식민지로부터 해방되는 나라에 포함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광주사태에 관련된 아래 부패 언론 기사를 보면 루즈벨트의 염려에 일리가 있었음을 보게 됩니다.  무엇이 광주사태의 진실인가요?  국군은 발포한 사실이 없습니다.  늘 시민군 편에서 일방적으로 발포하였으며, 계엄군은 맞대응하지 않았습니다.  실탄이 지급된 사실이 없는데 어떻게 맞대응합니까?   시민군이 5월 19일 총기 무장을 시작하였으며, 실제로 발포하였다는 시민군 증언이 있습니다.  그러나 계엄군이 처음 발포한 시점은 5월 27일 새벽 3시 도청 진압 작전 때 채 10분도 못되는 시간이었습니다.  그것이 전부였습니다.

 

   보세요.  시민군의 무기 반납을 일주일이 넘도록 호소했습니다.  정부는 기다릴 수 있는데까지 최대로 인내하고 기다리며 무기 반납을 호소했습니다.   총은 누가 한 자루만 가지고 있어도 위험한 것입니다.  그런데 전과범들이 제일 먼저 총기 무장을 했습니다.  그리고, 끈질기에 교도소 습격을 했습니다.  그때 교도소 사수를 하기 위해 공포탄 발사한 것을 발포라고 하면 안됩니다.  신창원 한 명이 무기를 가지고 탈옥해도 위험한데, 정녕 3천명의 죄수들이 모두 탈옥하여 총기 무장하기를 광주시민들이 원했다는 말입니까?

 

   또 한번의 경우는 5월 21일 저녁입니다.  장갑차와 기관총과 수류탄으로 무장한 이십 만명의 시민군(그 중 일부는 낫과 도끼로 무장)이 실탄을 지급받지 못한 이백 명 미만의 계엄군을 여럿 사살하고 여럿 부상을 입혔을 때 지휘관이 부하들의 목숨을 구하고자 퇴각로를 열기 위해 공포탄을 발사한 것뿐이었습니다.  그 외의 공포탄 발포의 사유는 이러합니다.  도청을 점령하고 광주에 해방구를 설치한 시민군은 (1944년에 모택동이 중국 국민당 정부 영토에 해방구를 설치하고, 공산화 기지로 삼았던 것처럼, 그리고 1975년 3월에 호지명의 지령을 받은 월남 시민군이 중부 지방에 해방구를 설치하고 폭동을 전국으로 확대시키며 4월 30일에 수도 사이공을 정복하였던 것처럼) 민중봉기를 전국적으로 확대시켜야 한다며 인근 도시들로 진격하여 경찰서 습격과 주민 선동을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당국은 부득히 광주 외곽을 봉쇄하고 시민군의 광주 외곽 동태가 보이면 공포탄을 쏘며 저지한 것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실탄이 지급된 때는 5월 27일 새벽 3시경에 단 30분간이었으며, 그나마 그 실탄을 사용한 시간도 10분이 채 못됩니다.  그때도 무기 반납의 최후의 기회를 주는 계엄군에게 시민군이 먼저 사격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때는 최규하 대통령의 자위권 발동 재가가 있었기에 계엄군도 맞대응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계엄군이 맞대응하니 10분도 채 못되는 시간에 상황은 종료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여태껏 운동권의 거짓 주장이 국민을 속여왔습니다.  광주사태의 진실은 계엄군 편에서는 단 한번도 발포한 사실이 없다는 것입니다.  언제나 시민군 편에서 일방적인 발포를 하였습니다.  총기 반납을 호소하는 온건파 시민 사살 명령이 내려졌으며, 실제로 시민 희생자들은 시민군이 쏜 총탄에 희생되었습니다.  계엄군에게는 칼빈소총이나 M-1 총기가 지급된 적이 없기 때문에 희생자 몸에서 나온 탄피는 거짓말을 안합니다.

 

    그러면 왜 모든 것이 여태껏 그처럼 거꾸로 알려졌을까요.  여기에 정직하지 못한 국민성의 문제가 있습니다.  그리고 국민성이 정직하지 못할 때는 언론도 부정직한 국민 비위를 맞추어야 장사가 잘되는 모양입니다.  미국정부 공문서는 수신인 직함을 분명히 합니다.  그런데, 부패언론 조선일보 1996-02-28 기사에 이런 왜곡 보도가 있습니다.

 

    만약 지미 카터 미행정부가 광주사태 당시 한국 군부에 공문서를 전달한 적이 있다 하더라도 그 수신자가 "전씨측"이라고 되어 있을리 천부당 만부당합니다.  지미 카터 미행정부의 공문서는 만약 그 발송자가 미 국방장관이면 그 수신자는 주영복 국방장관입니다.  그리고 공동 수신자로 이희성 계엄사령관이 포함되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급 군 수사기관인 보안사령부를 수신자로 하였을 가능성이 전혀 없습니다.  따라서 당시 전두환 보안사령관은 그런 공문서를 받은 적도, 본 적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5.18 특검이 진행되고 있던 때에 부패언론 조선일보는 이런 오보로 여론을 호도하였습니다.  "이를 전두환씨등 당시 신군부측에 전달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 애매모호한 표현으로 악독한 사기 기사를 썼습니다.  독자는 마치 미국 정부가 전두환이나 신군부를 상대했던 것처럼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러나 그 당시 신군부라는 명칭이 있었습니까?   그리고 미국 정부가 일개 하급 수사기관장을 상대로 군작전을 의논한 적이 있습니까?   군사 작전을 수사기관장 보직의 업무에 포함되지 않는 문제입니다.  따라서, 미국 정부가 전두환 소장을 수진자로 공문서를 보낸 사실이 없습니다.

 

    그런데 부패 운동권의 이른바 "실권설"에 비위를 맞추어 마치 전두환이 당시 실권자였던 것처럼 여론을 조장하기 위해 미국 공문서 수신자까지 왜곡한 것입니다.  이것은 분명 우방 미국에 대해서도 큰 실례를 범한 야민적인 처사입니다.  설사 미국 정부 공문서 내용을 보도한다 하더라도 그 수신자에 대하여 사기를 치면 안되는 것입니다.  이 부패 언론의 부패 기사는 "전씨측"이라는 말을 반복해서 사용하는데, 여기에 미개하고 야만적인 한국인들이 거짓말을 지어내는 방식이 있습니다.

 

   사실에 있어서 미국 정부 공문서에서 수신자에 전두환은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왜 왜곡 보도하였느냐고 항의하면 부패 언론인 박두식기자는  "전씨측"이라는 말은 다른 수신자를 포함한다고 변명하려 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사악한 사기입니다.  언론은 보다 정직하게 기사를 써야 합니다.  그 수신자가 국방장관인지 보안사령관인지 정확하게 가려서 써야 합니다.  그리고, 실제 수신자는 국방장관인데 한국인 독자들은 마치 보안사령관이 수신자였던 것처럼 받아들였다면 이것은 부패언론인 박두식 기자가 국민을 속인 것이 됩니다.  그러나, 이런 속임수가 분명한 기사를 그래도 내보낸 조선일보도 부패언론이란 비난을 면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부패언론과 부패언론인의 이 문제의 기사는 http://altair.chonnam.ac.kr/~cnu518/data/news/sagun/l/chosun_960228(1).htm  에서 읽으실 수 있습니다.


출처: 시사논객 북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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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동 주동자들이 문화방송국을 불태운 이유  증언자료

2005/05/21 13:05

   윤상원 등 광주 5.18 폭동 주동자들이 폭동 초창기에 세무소와 방송국에 불을 지른 이유가 무엇일까요?  제가 어디선가 읽은 자료에 의하면 시위대는 유조차를 이용해 불을 질렀으며, 만약 계엄군이 빨리 구조작업을 하지 않았으면 그 안에 있던 광주 시민들이 타 죽었을 거라고 하더군요.  더욱이 아직 군경 사망자들만 있었지 시민군 사망자나 부상자는 없었던 시점에 방송국들에 불을 지른 동기가 궁금해집니다.

 

   아마, 그 이유는 일본의 조총련계 한민전과 관계하여 생각하여야 할 듯 싶습니다.  한민전은 배후에서 광주사태를 철저하게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광주사태 당시 폭도들이 방송국들을 불태운 후에 북한 방송을 듣는 이들이 있었는데, 광주 상황이 북한에서 실시간 방송되고 있어서 사람들이 깜짝 놀랐다고 합니다.  외국인 기자 신분으로 들어와 있던 한민전 소행으로 추정됩니다.

 

   요즘 방송국에서 짜집기 방송하며, 대학가 선동 자료로 이용된 비디오는 한국 방송이 제작한 것이 아니라, 김일성 똘마니 단체이며, 김대중이 초대 회장이었던 한민전에서 제작한 것이었습니다.  당시 사진 촬영이 허용되지 않았음에도 그들은 특수 장비를 가지고 있었으며, 군경과 민간 사이에 유혈 충돌이 일어날 것을 미리 알고 촬영 대기를 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그들의 의도가 수상합니다.  요즘 모 방송사가 방영하는 5.18 자료는 그러고 보면 한민전이 북한에 먼저 보내 북한에서 선전 자료로 방영되었던 영상 자료들입니다.

 

  한민전이 광주사태 준비를 하고 있었다는 징후는 여러곳에서 발견됩니다.  나중에 거짓으로 판명된 그 모든 잔혹한 유언비어들을 누가 제조하였을까요?  조총련은 1975년에도 박정희 대통령을 암살하려 한 적이 있었습니다.  폭동선동삐라를 제작하였던 광주의 좌익서점 녹두서점은 조총련으로부터 북한 공산주의 서적을 입수하여 전국 운동권에 보급하고 있었으며, 폭동 주동자 윤상원이 븍한 서적을 탐독하고 있었습니다.

 

   5월 15일 십만 명의 시위대가 모인 서울역 집회 때 시위대학생들 몇명이 갑자기 시민버스를 탈취하여 순경 5명을 깔아 몇명을 죽였습니다.  그런데 그 운전 솜씨는 학생은커녕 기사도 흉내내지 못할 솜씨였습니다.  아마 5월 20일과 22일로 예정되어 있던 김대중의 쿠데타(전국적 민중봉기)를 돕던 한민전 소행이었을 것입니다.  5월 19일 똑같은 수법으로 광주에서 순경 네명을 버스로 그 자리에서 깔아죽였습니다.  그리고, 이런 사고가 생기면 나주 경찰이 광주로 출동한다는 것을 정확하게 내다보고 있다가 텅빈 나주경찰서에 습격하여 수천정의 기관총, 수류탄 등의 총기를 시민군에게 전해 주었습니다.  이들이 광주시민들이었다고 보기 어려운 이유는 광주 시민이 나주까지 오는데는 많은 시간이 걸리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또 내국인은 아무도 모르는 극비 장소에서 8톤의 다이너마이트를 탈취하여 도청 지하에 능숙한 솜씨로 폭파 장치를 하였습니다.  이것이 그들이 광주시민들이었다고 보기 어려운 이유입니다.  더구나 누가 시간별로 일정을 미리 짜놓고, 어디서 장갑차를 탈취할 수 있으며, 광주 외곽 어느 지역에서 경찰서 무기를 탈취할 수 있는지 정확히 알고 있다가 시민군들을 선동했습니다.  하루 만에 그토록 중무장하는 것은 국군에게도 불가능합니다.  시민군이 단 하루 사이에 그토록 모든 무기를 다 갖추게 되었다는 것이 우연이었을까요?  아닙니다. 한민전의 소행이 의심스럽습니다.  그 의혹은 5.18 희생자 중에 대한민국 국민이 아닌 자들이 상당 수 있다는 사실에서 더욱 짙어집니다.  탈북자들은 한결같이 북한군이 당시 광주에서 어떻게 활동하고 있었는지를 증언합니다.  탈북자의 증언을 물리적으로 증명하기 어렵지만 요즘 방송국에서 방영하는 5.18방송물 출처가 한민전이라는 사실은 한민전의 암약을 의심케 합니다.

 

   광주사태의 진실은 폭도들이 먼저 낫과 도끼로 공수부대원들의 팔다리를 무수히 절단하여 동료 공수부대원들을 자극했기 때문에 일어났던 것입니다.  사실 광주사태를 점화한 것은 5월 15일의 서울역 집회였고, 그 시위 준비를 김대중이 선동하기도 했지만 당시 서울대 3학년 운동권이었던 한홍구, 유시민. 심재철 학생 등에게 괴전화가 걸려와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켰다"는 유언비어를 흘렸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괴전화의 발신자가 누구였을까요?  여하간 한민전의 의도는 1975년 3월 호지명이 시민군으로 민중봉기를 일으켜 월남을 공산화한 방법과 똑같은 방법을 쓰는 것이었습니다.  일시에 무수한 온갖 유언비어들을 퍼뜨렸습니다.  그리고 낫과 도끼로 공수부대원들의 팔다리를 절단한 후에 동료 공수부대원들의 진압이 시작되기를 기다렸다가 비밀 카메라로 촬영하여 북한에도 보내고 여태껏 대학가 선동 자료로 활용해 왔습니다.

 

    처음에 공수부대원들은 전혀 과잉진압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날 오전 11시부터 온종일 폭도들이 세무소 등 공공건물에 방화하고 파출서를 파괴하고 순경을 보는 대로 잡아다가 묶어놓고 개패듯 팼기에 광주경찰서장과 광주시장과 전남도지사의 요청으로 광주향토사단 2개 대대 공수부대원들이 오후 5시 40분에 광주 사람 정웅 장군의 명을 받아 폭동 진압을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처음에 그들은 전혀 과잉 진압을 하지 않았습니다.  돌맹이와 화염병을 얼굴과 가슴에 맞으면서도 대오를 흐뜨리지 않고 그들은 걸어 행진하면서 시위대를 맨손으로 해산시켰습니다. 

 

     그러나 몇몇 폭도들이 낫과 도끼로 공수부대원들이 팔다리를 절단하였기 때문에 동료 공수부대원들의 전우애를 자극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때를 미리 예상하고 기다렸다가 촬영한 한민전이 있었습니다.  한민전의 공작 임무는 선동 영상 자료를 마련하는 것이었으며, 사실 공수부대와 시위대 사이에 육탄전이 있었던 시간을 극히 짧았는데, 미리 카메라를 준비해 두고 있다가 모조리 찍었습니다.  그리고 폭동 주동자들은 방송국들을 불태워습니다.  이것은 광주사태가 오로지 한민전의 선동 자료 혹은 그들의 선동 구호로만 광주시민들에게 알려지게 하려 함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당시 상황을 기억하는 분들의 증언을 들어야 합니다.  아래는 그런 증언 중 하나입니다.

  

No.   19252 날 짜   2004-02-22 오후 12:49:00
이 름   靑率 조 회   14
나이,성별,직업   (1, 남, 1) I P   218.148.142.83
  잘 읽었습니다.

당시 흥분한 폭도들이 돌과 화염병으로 비무장(실탄 비 지급) 군인을 향해
무차별 가격하여 군인들이 쓰러지는 장면들이 TV를 통해 방영 된 적이 있었지요.
밀려드는 폭도들에 중과 부적 소수병력으로 더 이상 지탱할 수 없던 군인들이
외곽으로 철수를 하게 되지요.
이 시점부터 광주시는 해방구, 무정부 상태로 돌입하게 된 듯 합니다.

글 잘읽었습니다.

 

  폭도들이 MBC 방송국에 불을 질렀을 때 다행히 계엄군이 일찍 발견하여 건물의 완전 전소를 막을 수 있었으며, 인명 구조도 할 수 있었다.  광주사태 내내 계엄군은 수십 만명의 광주시민의 생명을 구했는데, 아마 이것이 첫번째 인명 구조였을 것이다.



 출처: 시사논객 북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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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비디오는 본래 조총련이 촬영하였으며 북한에서 실시간 방송되었던 비디오의 한 장면이다(문제의 장면은 광주사태 후 조총련이 5.15 서울역 시위 도중의 순경 압사 장면과 짜집기한 것이라고 함). 그리고 한국에서도 5.18 기념행사 때마다, 혹은 광주민주화운동 다큐멘터리로 방송사들이 푸른 눈 독일인 기자가 촬영한 비디오라고 말하며 보여주는 비디오의 한 장면이다. 그런데 어찌 방송사들이 이토록 시청자들을 속일 수 있다는 말인가? 그 독일인(기자가 아니라, 동네 케이블 업체 근무자로 일본에서 조총련을 만났던 인물) 입국일은 5월 26일이요, 그 독일인 이름으로 방송사들이 보여주는 광주사태 장면은 주로 5월 19일 장면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5월 26일 오후에 입국하여 5월 19일 현장 장면을 촬영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말인가? 그가 촬영한 것이 아니라, 조총련이 폭동 선동을 목적으로 촬영한 비디오들을 그는 전달받았을 뿐이었다. 그 사실을 알면서도 방송사들이 조총련의 이름을 숨기고 독일인 기자 이름을 팔아먹고 있으니 이 얼마나 시청자들을 우롱하는 행위인가!

한국에서는 5월 18일에는 그 누구도 광주사태가 일어난 줄을 몰랐다. 심지어 광주시민들조차 그때는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 광주사람 정웅소장이 광주향토사단 2개 공수대대에 시위진압 명령을 내리는 그순간부터 조총련은 영상 촬영하고 사진을 찍었으며 7시에 북한은 광주폭동이 일어났다고 방송하고, 그때부터 정규 방송을 중단하고 실시간 광주사태 생중계 방송을 하였다. 한국 기자들은 광주 세무소와 MBC 방송국 등이 붙타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진 때야 비로서 달려오기 시작하였는데, 조총련은 미리 대기하고 있다가 촬영했다. 이것이 무엇을 말하는가? 북한 특수부대와 조총련은 광주폭동을 일으킬 준비를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말한다. 그리고 그들의 목적은 군경과 민간 사이에 무장 유혈 충돌을 일으키는 것이었다. 조총련이 5월 26일 독일인 기자를 데리고 온 데에도 그들의 대남선전 전략이 있었을 것이다.

김대중의 비등록 정당(일명 국민연합) 사무총장 윤상원이 이끄는 폭도들이 광주 시민으로 하여금 한국 방송을 듣지 못하고 북한 방송 청취만 하도록 강요하기 위해 광주 MBC 방송국에 방화한 시간은 5월 19일 15:30 이었다. 군인들이 제일 먼저 달려와 불을 끄며 인명구조 작업을 하였으며, 이어 순경 4명이 인명 구조를 도우려 달려오자 폭도들의 버스가 달려와 깔아죽인다.

불타는 건물 인명 구조를 위해 달려온 순경들을 학살한 폭도는 민주화운동 유공자로 추켜 세우고, 위험한 상황에서도 화재 건물 안의 광주시민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다 폭도 버스에 깔려 순직한 순경들은 죄인 취급하는 운동권 방송도 교활하거니와, 폭도들이 순경들을 버스로 깔아죽이는 장면마저 민주화운동으로 미화하는 독일인 나레이터도 너무 무식하다.

5월 26일 김대중의 비등록 정당(일명 국민연합) 사무총장 윤상원이 자신을 전남대생이라고 신분을 숙이고 외국 기자회견을 하여 전두환이 쿠데타를 일으켰다고 세계를 속였다. 당시 쿠데타 세력은 김대중이었으며, 윤상원 본인은 무장봉기를 준비해 오고 있었음에도 사실과 정반대로 외국기자 인터뷰를 하였다. 김대중의 국민연합은 5월 22일 전국의 도청 소재지를 무력 점령하고 최규하 대통령 정부를 전복한 다음 김대중이 새 내각을 발표할 예정이었다. 그리고, 윤상원은 광주에서 먼저 폭동을 일으키면 서울 운동권도 폭동을 일으킬 것으로 계산했었으니 쿠테타는 김대중과 윤상원 본인이 일으킨 것었다. 그럼에도, 김대중 일당은 그때도 전세계를 속이는 재주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한가지 특기할 것은 위의 동영상은 5월 15일 오후 한시반 경 남대문에서 유시민 시위대가 순경을 깔아죽이는 장면이요, 정확히 4일 후 같은 시간에 광주 MBC 방송국 화재 현장에서 똑같은 사고가 연출되었다. 단지 차이가 있었다면 유시민 시위대의 버스 사고 때는 순경 한 명만 즉사하였던데 비해 광주사태 때는 순경 4명이 그 자리에서 즉사하였다. 그런데, 조총련은 광주사태 선동자료로서(그리고 김정일에게 바쳐지는 자료로서) 5월 15일 유시민 시위대가 순경을 깔아죽이는 장면을 광주사태 장면인 것처럼 끼어넣기 편집을 하였다.

우리가 보는 대로 한국의 버스 기사는 저런 식으로 운전하지 않는다. 시민버스를 탈취하여 기사를 강제로 하차시키고 질주하여 급회전하면서 순경들이 피할 겨를이 없도록 압사시켰다. 그리고, 이것은 5월 15일의 서울역 집회 때도 5월 19일의 광주사태 때도 북한군 특수부대원과 (일본인 기자 신분의) 조총련이 함께 행동하고 있었음을 시사한다.

5월 15일 남대문 앞에서의 순경 압사 사건은 도주 버스를 잡지 못했지만 5월 19일 광주사태 때는 버스가 가로수를 들이받고 멈추었다. 그 장면을 노동시인 박노해는 이렇게 기록한다:

<<이때 광천 교통 소속 버스 한 대가 군 저지선을 돌파하여 경찰 4명을 깔아뭉갠 후 가로수를 들이받았다. 군인들이 재빨리 차를 부수고 사람들을 끄집어냈다. 시민들은 발을 동동 구르며 화약 연기 너머로 개처럼 찢겨 죽어 가는 그들을 우우 ―비명을 지르며 지켜보았다. >>



1980년 5월 19일 폭도들이 버스로 순경들을 깔아죽이기 직전의 장면


그날 그 시각 사고 현장의 이 버스 사진은 순경 4명을 깔아죽인 후 폭도들과 승객들이 바깥을 내다보는 장면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5월 15일과 5월 18일 각각 4명씩의 순경 압사 사건은 뒤에서 달려오는 버스에 순경들이 압사당했다는 점이다. 5월 15일의 경우 순경들 뒤를 향해 달렸으며, 5월 19일의 경우 화재 현장에서 버스가 정지하는 척하다가 후진하면서 순경들을 압사시켰다는 설도 있어 박노해 시인의 기록과 약간의 차이를 보인다.

1980년 5월 15일 유시민 시위대가 시민 버스 탈취하여 순경들 깔아죽이는 장면



이렇게 하여 급회전하여 경찰들이 전혀 피할 틈을 주지 않고 압사시키는 이런 고난이도 운전을 한국의 버스 기사들은 하지 못한다고 한다. 하물며, 버스 운전 경험이 없는 학생이 저런 운전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 날의 사건은 이러하다. 시위대 학생 폭도 몇명이 지나가는 버스를 탈취하여 운전기사를 내리게 하더니 쏜살깥이 질주하여 경찰 4명을 압사시켰다 (한 명은 즉사). 이것은 당시 시위대 속에 북한 특수부대원들이 섞여 있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시위대 주최측에서 북한군 특수부대원들을 불렀다기보다 북한군 특수부대원들이 잠입하여 과격 시위를 선동하였다.








광주사태 당시 북한군 및 당 간부 증언 동영상

BBC 뉴스 동영상 칼럼

518 광주사태 사진전시회                   


(역사학도) 
http://study21.org/518/video/515.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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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광주시민군 장갑차 동영상
이곳 노컷게시판 아그들이 박정희 전두환 못잡아서 난리부르스를 추는구나!!! 이걸 알아야지 광주5.18은 민주항쟁이 아니고 폭동이다 뇌가 한쪽만 발달돼서 한쪽편 눈만 뜬 자들이 두 눈 뜬 사람과 비교되겠나 날뛰는것도 분수를 알아야지 박정희를 빨갱이 빨갱이라고 노래하면서도 진짜 빨갱이에게는 빨갱이라고 말 못하는이들 인권탄압 이라고 하면서도 진짜 인권탄압하는 곳에는 인권탄압이라고 말 못하는이들 박정희를 독재라고 하면서도 진짜 독재하는 자들에게는 독재라고 말 못하는이들 도체 이들의 정체는 뭬야

노컷게시판 바로가기

펌글 바로가기



<검찰측 자료:(5월21일) 13시경 공수부대가 철수하지 않는데 항의하며 시위대가 화염병을 투척하여 계엄군 장갑차에 불이 붙는 순간 시위대의 장갑차 1대가 갑자기 공수부대쪽으로 돌진했다. 공수부대 저지선이 무너지면서 공수부대원들은 장갑차를 피해 좌우로 갈라져 부근 전남도청, 상무관, 수협 도지부 건물 등으로 산개하였다. 미처 피하지 못한 공수부대원 2명이 장갑차에 깔려 1명이 사망했다>

<월간조선 88년 7월호 「공수부대의 광주사태」:당시 현장에 있던 11공수여단 소속 통신병 경기만씨 증언에 의하면 시위대 장갑차 돌진으로 사망한 대원은 11공수여단 소속 권용문 상병이라고 한다. 권상병은 머리가 장갑차 바퀴에 눌려 짓이겨진 채 즉사했고, 다른 사병은 가볍게 다쳐 곧 일어나 달아났다>

광주사태 당시 북한군을 비롯하여 모든 탈북자들은 이구동성으로 광주사태 당시 시민군 장갑차 부대 운전병들은 북한 인민무력부 직할부대인 특수전 1개 대대 소속의 북한군이었다고 증언한다. 만약 5.18측에서 이 증언에 반박하려면 당시 시민군 장갑차 부대 운전병들이 광주시민이었다는 증거를 대어야 할 것이다. 5.18측 논리대로 라면 장갑차로 광주군인들을 깔아죽인 자는 민주화운동 유공자인데, 누구였는지 공개하지 못할 이유가 없지 아니한가. 그리고, 도대체 광주시민들에게 북한 방송만을 들으라고 강요하였던 것이 어째서 민주화운동이었는지에 대한 설명도 있어야 할 것이다. 또, 보상금 수억 챙긴 후에 월북한 광주시민들은 단지 북한 방송의 영향으로 월북하였는가. 아니면 광주사태 때 이미 북한세력과 접선하고 있었기에 월북 루트가 있었던 것이었는가?



▲ 장갑차 위에서 총쏘며 민주화운동하는 무장폭도. 당시 북한군 증언에 따르면 518광주시민군 장갑차 부대 운전병들은 모두 북한군이었다고 한다.



오진우 인민무력부장이 지휘하는 북한 인민무력부 직할부대인 특수전 1개 대대는 광주사태 때 장발을 하고 무장봉기군으로 위장하여 시민군 틈에 끼어 있었다고 한다.



▲ 북한군 앞잡이로 이용당하여 광주경찰과 광주군인에게 총을 쏘던 무장폭도들은 우리 눈에 생소한 군용차량들을 있는 대로 동원하였다.

☞ 동영상 주요 내용
-월남의 내부 분열, 전쟁속에서도 데모를 하던 월남인들
-날이 갈수록 심화돼가는 광주사태
-광주시가 전경(
투석전, 건물 화재, 부서진 차들)
-공공건물 방화, 무기고 습격, 무기 탈취, 방위산업체 습격, 군장비 탈취
-광주사태에 간첩과 공작도 연류(간첩 : 이창용 가담)
-북괴, 정규방송 중단
-평양방송에서의 광주사태 보고(
무장한 학생, 시민들 모습, 광주시가지 모습)
-
21일, 박충훈 국무총리 서리 광주 시찰
-25일, 최규하 대통령 담화 발표
-"대화로 해결하고 혼란은 국가안위와 직결되는것을 염두하고 냉정과 이성을 되찾아 사태를 수습해나가자"고 말함.



▲ 4륜구동 장갑차 위에 올라탄 폭도들



광주시민으로 위장하고 유혈폭동 선동하기 위해 침투하다가 붙잡힌 간첩의 모습(북한 인민무력부 직할부대 "심리전" 대대 소속)

BBC News on Video

광주사태 당시 북한군 및 당 간부 증언 동영상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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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휴가는 허구


518의 의문점

이제 518에 대한 비판글을 쓰려고 합니다. 글을 쓰기전에 말씀 드릴게 있습니다.
호남지역에 대한 나쁜 감정을 갖고 있다던가, 518에 대한 의도적인 폄훼를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518은 한국 현대사에서 중요한 사건이기 때문에
객관적으로 한번 판단해 보자는 것입니다. 518 당일 날 글을 올리지 않고
지금 쓰는 이유도 감정이 앞선자들의 비판을 피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엊그제 518기념식도 끝났습니다. 이제 모두 편안한 마음으로 객관적으로 한번
풀어봅시다. 제가 지금부터 하는 말은 518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 없어도
됩니다. 상식이 통하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이해할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518에 대한 비판을 시작하겠습니다.

1. 518은 "무장"을 했다는점에서 순수한 민주화운동으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1)시민들의 "무장"은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518과 유사한 사건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천안문 사태를 보겠습니다.
천안문사태는 518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사망자가 많았습니다.
중국 민주화의 상징처럼 여기는 사건입니다만 중국 국민들은 무장하지
않았습니다. 한국에서 일어난 419혁명은 당일날 서울에서만 100여명이 사망
했습니다. 경찰은 학생들을 향해 발포를 했고, 사망자는 518보다 훨씬 많습
니다만 시민들은 "무장"하지 않았습니다. 전국적으로 시위가 일어난다고 해도
시민들의 "무장"은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조직화"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2)광주시민들은 왜 거리로 뛰쳐 나왔을까?
그것은 "유언비어"때문입니다. 호남사람들이 518을 말할때 똑같은 변명을
합니다. 공수부대가 너무 과격하게 진압을 해서 광주인들의 아들 딸들이
죽어가니까 어쩔수 없이 무장을 했다는 것입니다. 바로 그렇습니다.
당시, 광주시민들은 자신들의 아들, 딸들이 죽어간다고 믿을 정도로
유언비어를 신임했습니다. 당시에 광주에 난무하던 유언비어는 다음과 같은
것들입니다. "경상도 군인들이 전라도 사람들 씨를 말리러 왔다."
"공수부대원이 임신한 여자의 배를 갈라서 태아를 빼냈다."
"공수부대원이 여고생을 강간하고 죽였다." 매우 엽기적이고 자극적인
유언비어가 퍼져나갔고 광주시민은 거리로 뛰쳐나왔습니다. 충분히 이해할수
있습니다. 자기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 이런 말을 듣는다면 누구나 화가
나겠지요.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시민들의 "무장"은 불가능합니다.
시민들이 화가 나서 밖으로 나왔더라도 이들을 선동해서 먼저 행동하는
사람들이 있어야만 합니다. 즉, 어떤 불순세력이 개입해야만 "무장"은
가능합니다. 저는 이 세력을 친북좌파라고 부르겠습니다. 물론, 편의상
그렇게 부르는것입니다. 이 세력이 정말로 북의 지령을 받고 내려왔는지,
국내에서 박정희 독재에 저항하며 오랫동안 자생한 좌파세력인지,
아니면 김대중 지지자들인지는 저도 모릅니다.

2. 급조된 시민군이 정규군에 비해 뒤지지 않습니다.

1)불특정다수의 시민들을 착출해서 군대를 만든다는 것도 말처럼 쉽지않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세요. 일단, 통제가 안되는 사람들입니다.
상명하복관계도 없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상대로 이틀도 안돼서 마치 정규군처럼
조직을 만듭니다. 이렇게 하려면 직접 나서서 조직을 만드는 세력이 수십명으로
는 되지 않습니다. 생각보다 상당히 큰 세력이 개입한 것입니다.

2) 시민군이 장갑차를 탈취해서 나오는 필름은 어렵지 않게 구할수 있습니다.
그런데 장갑차의 대오가 한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합니다. 마치 국군의 날
행진하는 것처럼 반듯합니다. 그런데 장갑차라는 것은 승용차처럼 운전하기
쉬운 것이 아닙니다. 아무나 들어가서 승용차처럼 끌고나올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3)공수부대도 총기사고가 가끔 발생합니다.
해병대나 공수부대처럼 훈련이 세고 군기가 강한 군대에서도 총기사고는 가끔
발생합니다. 그런데 시민군은 급조된 사람들입니다. 물론, 군대를 갔다온
사람들이겠지만 평소에 사회생활 하다가 갑자기 총을 갖게 된 사람들이
일반 군대와 똑같을 것이라고 생각하세요? 오발사고는 매우 많이 발생했을 것
입니다. 즉, 518당시 사망한 162명의 시민군이 모두 군인들의 총에 의해
사망했을 것이라고 보지 않습니다. 오발사고 에 의해서도 많이 사망했을 것
입니다.

3. 군인들의 입장에서 보는 관점도 필요합니다.

1)최초의 사망자는 경찰이었습니다. 우리는 518의 발포명령자가 누구냐는데
관심이 많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가장 민주화
됐다는 미국에서도 시위대가 과격할때는 발포를 합니다. 예전에 베트남
반전데모가 심할때 경찰의 발포에 의해서 학생이 사망했습니다. 당시
언론에서는 아무도 시비를 걸지 않았습니다. 군인도 사람이기 때문에 시위대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반응할수 밖엔 없습니다. 당시 시위대는 버스를 타고
군인들을 덥치는경우가 많았고, 군인들은 버스때문에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었습니다.시민들이 탈취한 장갑차와 버스에 깔려 죽은 군인도 있었습니다.

2) "화려한 휴가"는 허구입니다.
영화에 보면 도청앞에서 군인들이 받들어 총 자세에서 시민들에게 무차별
발포합니다. 시나리오상 매우 중요한 장면입니다. 하지만 이런 일은 없었습니다.
영화를 위한 완전 허구입니다.

3)교도소 습격으로 50여명 사망.
교도소가 어떤 곳입니까? 유영철같은 각종 범죄자들, 얼마전 혜진양 유괴살인범
같은 자들이 수감된 곳입니다. 이 사람들이 교도소에서 모두 나온다고 생각해

댓글목록

반공인님의 댓글

반공인 작성일

5·18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봅니다.
순수한 의도의 시위는 분명 아닙니다.
이것은 민주화운동을 빙자한 폭동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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