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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재판부를 재판한다(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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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14-01-09 06:12 조회4,88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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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5년 5월 24일, 스위스그랜드호텔에서 행한 나의 기조연설 전문

1995. 5월 24일, 스위스그랜드 호텔에서 열린 한.중 세미나에 당시 김대중 평민당 총재가 내게 기조연설을 부탁했다. 아래는 그 연설문이다. 이 연설문은 당시 내가 세계의 국제바둑판을 어떻게 읽었고, 통일에 대해 어떤 생각을 했는가가 잘 반영돼 있다.

                                  [통일개념을 바꾸자]

1988년12월 7일 고르바쵸프 대통령이 UN에서 연설을 했습니다. 불과 253자에 해당하는 짧은 연설문이었습니다. 이 짧은 연설문이 수십년간 쌓아올렸던 냉전의 벽을 한 순간에 허물어 버렸습니다. 지난 반세기 동안 세계인들의 마음을 얼어붙게 했던 이데오르기적 가치관이 사라져 버리고, 이제 세계인들의 마음 속엔 [삶의질]이라고 하는 새로운 가치관이 자리하게 됐습니다. 이 새로운 가치관이 두개의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하나는 벽 없는 세계로의 변화이고, 다른 하나는 지방 경영화 세계로의 변화입니다. 냉전시대에는 국가와 국가간에도 장벽들이 있었습니다. 이 장벽들이 국가와 국가간에 문물의 흐름을 차단했고, 이로 인해 세계인들의 [삶의질]이 침해 당해 왔습니다. 이 장벽으로 인해 미국인들이 200달러에 사 쓰는 가전제품을 우리는 700달러에 사 썼습니다.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자 하는 세계인들의 욕구는 이러한 장벽들을 그대로 방치할 수 없었습니다.

그동안 저품질 제품만 강요받던 국민들은 이제 외국으로부터 유입되는 고품질 제품을 싼값으로 향유할 수 있게 됐습니다. 바로 WTO의 세계인 것입니다. 이 로 인해 세계 곳곳에서는 가격파괴, 서비스 파괴를 비롯한 기존질서의 파괴 현상들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자본, 기술, 노동력 그리고 문화, 사상, 유행이 세계 곳곳을 국경 없이 흘러 다니고 있습니다. 이러한 흐름을 차단할 때에 삶의 질은 또 다시 손상 받게 될 것입니다. 한국 기업들이 외국으로 진출하고 있습니다. 값싼 땅과 값싼 임금을 가진 나라 , 그리고 규제가 까다롭지 않은 나라를 찾아 나서고 있는 것입니다. 영국에 서는 까다로운 규제가 없습니다. 공장부지도 거져 줍니다. 공무원들이 행정을 대신해 줍니다. 한국에서는 공무원들이 떡값을 바라지만 영국에서는 공무원들로 부터 칙사대접을 받습니다. 투자여건이 이렇게 훌륭하기 때문에 한국기업들이 영국으로 이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 나라보다 외국이 더 좋으면 기업도 개인도 고국을 떠납니다. 보다 높은 삶의 질을 위해서입니다. 이에 따라 애국의 개념도 냉전시대와는 판이하게 달라 졌습니다. 삶의 질을 찾아 외국으로 떠나는 사람을 비애국자라고 말하는 것은 이제 시대착오입니다. [애국이 먼저냐 삶의 질이 먼저냐]라는 질문에 대해 이제 세계인들은 서슴없이 삶의 질이라고 대답합니다. 애국이 대한민국에 대한 사랑이라면 통일염원은 민족이라는 감상적 상징에 대한 막연한 사랑입니다. 통일보다는 애국이 먼저요, 애국보다는 삶의 질이 먼저인 것입니다. 애국이 삶의 질을 파괴한다면 누구든지 애국의 길을 버릴 수 있습니다. 하물며 통일이 삶의 질을 저하시킨다면 누구든 통일을 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이는 결코 이기주의가 아닙니다.

애국도 통일도 [삶의 질] 앞에서는 언제나 포기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는 무엇을 의미합니까? 살기 좋은 환경과 풍요로운 사회로 이 땅을 가꾸기 전에는 점점 더 많은 기업과 국민이 한국 땅을 버리고 살기 좋은 외국 땅을 찾아 떠날 것이라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내 땅을 살기 좋은 땅으로 가꾸지 못하면, 북한 땅은커녕 우리 땅도 지키지 못합니다. 지금 우리는 우리 땅을 제대로 가꾸고 있는 것입니까? 통일이 이뤄진다면 남한 땅은 지금보다 더 살기 좋은 땅이 될 것이라고 보십니니까? 아닙니다. 통일이 되다면 더 많은 국민이 외국으로 떠날 것입니다. 말이 통하지도 않고, 생활방식에서 일일이 충돌해야 하는 북한 사람들이 싫어서라도 떠날 것입니다. 범죄가 판을 치고, 경제가 바닥을 드러내고, 세금이라는 악정에 시달려서라도 떠날 것입니다. 통일보다 더 급한 것은 허트러진 남한사회부터 가꾸는 일입니다. 아름다운 국토,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드는 일이 더욱 시급한 것입니다. 반쪽만의 남쪽사회도 제대로 경영하지 못하는 실력을 가지고 북한 사회까지 떠맡아 보십시오. 남북한은 혼란에 휩싸이게 될 것입니다.

꿈에도 그리던 친족이 영변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온 가족이 기뻐했습니다. 그 가정은 즉시 그 친척을 초청했습니다. 처음엔 반가웠지만 1주일이 지나자 살림에 구김살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이 하나의 사례에서 통일 비 용이 무엇인지에 대해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지금의 남한 경제를 가지고는 북한으로부터 유입되는 난민을 단 100만 명도 수용하지 못한 채 실증부터 느끼게 될 것입니다. 하물며 북한경제 전체를 떠맡아 보십시오. 누가 짜증스러워 하지 않겠습니까. 동독인구는 서독인구의 25%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북한인구는 남한인구의 50%나 됩니다. 서독의 엄청난 경제력을 가지고도 25%의 인구증가를 감당하지 못해 경제적 사회적으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하물며 남한 자체의 경제적 생존도 보장하지 못하는 취약한 경제구조를 가지고 어떻게 50%의 인구증가를 감당해 내려 하십니까? 그러면 우리에게 있어 통일은 무슨 의미를 갖는것입니까. 통일이 되면 사회질서가 마비될 수 있고, 국민 각자의 경제적 부담이 짜증스러울 만큼 급증합니다.통일은 현재를 사는 우리에겐 엄청난 아픔과 희생을 강요하는 것입니다.

과연 지금도 통일은 이렇게 엄청난 희생을 치르면서까지 꼭 이뤄야 하는 절대절명의 목표입니까. 분명히 아닙니다. 누가 통일을 거저 준다 해도 많은 국민들은 그 엄청난 선물을 받을까 말까 저울질하면서 망서릴 것입니다. 냉전시대에는 부국강병이 최고의 가치였습니다. 강해야 남으로부터 침략당하지 않는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그때는 이데오르기 때문에 전쟁을 했습니다. 승산만 있다면 삶의 질이 아니라 목숨까지도 희생하면서 쟁취하고 싶었던 절대절명의 목표가 바로 통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삶의 질]이 세계를 지배하는 시대입니다. 국가가 작다고 설움 받는 시대가 아니라 발상전환이 모자라 설움을 받는 시대인 것입니다. 이데오 르기가 지배하는 냉전시대에서는 통일이 최고의 목표였지만, 삶의 질이 지배하는 지금의 통일은 단지 행복을 추구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일 뿐입니다. 수단의 하나이기 때문에 언제나 다른 수단으로 바뀌어 질 수 있는 것입니다.

삶의 질을 향상시키려는 욕구는 지역마다 다르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하와이 주민들의 욕구와 마이아미 주민들의 욕구가 같을 수 없습니다. 수천 수만 지역단위에서 발생되고 있는 문제를 중앙정부가 모두 만족시켜 줄 수는 없는 것입니다. 지역주민의 욕구는 지역정부가 더 잘 해결할 수 있습니다. 삶의 질에 대한 정당한 욕구는 지방정부의 역할증대를 강요하고 있습니다. 지 방정부의 역할이 증대될수록 중앙정부의 역할은 축소되고 그 대신 고급화돼야 합니다. 삶의 질이라는 새로운 가치관이 바로 이러한 지방 우위 시대를 가 져온 것입니다. 주민들의 다양한 욕구는 과거와 같이 단순한 규정이나 법령을 가지고는 해결해 줄 수 없습니다. 규정과 법령을 가지고는 일을 하고 싶어하는 주민에게 인허가를 내줄 수는 있어도, 다양한 욕구들을 능동적으로 만족시켜 주지는 못합니다. 이와 같이 지금은 지방화시대입니다. 지방화 시대에 어째서 평양과 서울을 합치려 하십니까.

한반도에 "평화동일"은 없습니다. 평화와 통일이 따로 있을 뿐입니다. 평화와 통일은 한 마리의 토끼가 아니라 서로 다른 방향으로 달리는 두 마리의 토끼입니다. 어느 토끼를 먼저 잡을 것인가.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는 끊임없이 통일을 잡으려 했습니다. 그 결과 두 마리 토끼 모두를 놓쳤습니다. 우리는 통일에 대한 차가운 현실은 접어둔 채 통일이 주는 장미 빛 환상에만 매달려 왔습니다. 현실적으로 통일은 먹고 먹히는 게임입니다. 그래서 통일에 대한 목소리가 북한에서 높으면 남한이 긴장했고, 남한에서 높으면 북한이 긴장해왔습니다. 한반도에서는 통일에 대한 목소리를 높히면 높힐수록 긴장만 더 고조돼온 것입니다. 바로 통일이 평화를 깨고 있는 모습인이었습니다.

통일은 물 속의 그림자입니다. 잡으려 하면 사라지고, 가만 두어야 닥아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한반도 통일의 파라독스"입니다. 이러한 패턴이 앞으로 100년간 계속돼 보십시오. 남북한은 영원히 긴장속에서 군비경쟁을 통해 경제적 공멸을 자초할 것입니다. 통일은 버려야 얻을 수 있습니다. 내일의 통일을 위해서는 오늘하루 만큼은 통일을 버리고 평화를 선택해야 합니다. 평화는 평화공존 시스템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습니다. 서로의 주권을 인정하고 한반도에 두 개의 주권국가가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이는 두 가지 변화를 전제로 합니다. 하나는 현재의 휴전선을 국경선으로 전환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UN감시하의 상호감군입니다.

캐나다와 미국을 보시시오. 국경선을 사이에 두고 한집 식구들 처럼 자유롭게 왕래하고 있습니다. 남북한도 이들 처럼 지낼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통일인 것입니다. 이러한 "사회적 통일"은 지금이라도 얼마든지 이룰 수 있습니다. 사회적 통일을 이루려면, 정치적 통일을 포기해야 합니다. 정치적 통일은 정치집단간의 싸움만 불러옵니다. 남북한이 서로를 "정치적 통일"의 대상이라고 생각하는 한 "사회적 통일"은 없습니다. 대규모적인 교류는 민족동질성 구축의 지름길입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이 휴전선을 군사적 긴장상태로 유지하고, 당국의 허가 없이 38선을 넘은 동포들이 간첩으로 의심받는 상황하에서는 "대량교류"가 이뤄질 수 없습니다. 남북한 간에 형성된 적대관계를 형제관계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남북한의 군사력을 "신뢰의 군사력"으로 축소시켜야만 합니다. 신뢰의 군사력은 상대방을 안심시킬 수 있는 군사력이며, 상대방을 기습적으로 공격할 수 없을 만큼의 적은 군사력입니다. 통일의 끝은 전쟁이지만 평화공존의 끝은 통일입니다. 결론적으로 보면 평화공존은 통일의 중간과정입니다. 평화공존 시스템하에서 한 민족이 자유롭게 왕래하다보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정치적 통일이 찾아올 수 있습니다. 그 정치적 통일은 세월과 하늘이 가져다주는 것이지, 결코 인위적으로 얻을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닙니다.

평화적으로 공존하자는 사람들이 왜 군축을 회피합니까. 많은 이들이 군축의 전제조건으로 신뢰구축을 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틀린 말입니다. 군축이 이뤄져야 신뢰가 구축됩니다. 군축 없는 평화협정은 사문서에 불과합니다. 지금처럼 막강한 군사력을 휴전선에 배치해놓고 서로가 서로를 응시하면서 평화협정에 서명한들 그 서명이 무슨 의미를 갖겠습니까. 따라서 군축은 평화협정의 전제조건인 것입니다. 거꾸로 평화협정 역시 군축의 전제조건입니다. 평화에 대한 의지가 확인되지 않는데 누가 감히 군축을 단행하겠습니까. 군축과 평화협정은 서로가 서로의 전제조건입니다. 군축과 평화협정은 두개의 문제가 아니라 동전의 앞뒤를 구성하는 하나의 문제입니다. 한개의 문서에 평화와 군축이라는 두개의 합의내용이 나란히 들어있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이 엄청난 변화를 남북한 당사자들이 협상해 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바로 여기에 주변국들과 UN의 중재와 보증이 필요한 것입니다.

설사 남한이 북한 정부를 인수했다 해도 북한에는 평양을 위시해서 여러개의 지방정부가 필요합니다. 남한내에 있는 지방정부들도 이제는 독립채산제로 경영돼야 합니다. 설사 평양정부가 서울정부에 흡수된다 해도 평양에는 또 하나의 지방정부가 설치돼야 합니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긴장과 전쟁의 위험성을 감수해가면서 평양정부를 인수한단 말입니까. 남북한이 합쳐지면 어떠한 혼란들이 야기될 것 같습니까. 우선 북한의 2천5백만이 자본주의 경쟁체제에 적응하지 못한채 사회적 불만세력으로 비화될 것이입니다. 남한내의 불만세력이 여기에 가세하면 사태는 통일을 원망할 만큼 악화될 것입니다. 남한 사회마져 제대로 경영하지 못해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경영능력이 한계에 다다른 것입니다. 그 안량한 경영능력을 가지고 무슨 수로 북한사회를 흡수하려 하십니까. 지금 우리는 국가부도 선상에서 마음 졸이고 있습니다. 북한을 지원한다며 신경전을 펼 시기가 아니라고 봅니다.

감사합니다

1995.5.24  지만원


2014.1.9.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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