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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공 뎁브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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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9-11-17 15:52 조회7,18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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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워라 사이공!” ‘사이공 뎁브람!’이라는 노래가 있다. 이 민요는 한국의 아리랑처럼 월남인들의 정서가 듬뿍 담긴 애창곡이다. 하지만 가사의 내용도 멜로디도 내가 처음 본 사이공 거리의 아름다움은 다 표현하지 못했다. 사이공은 참으로 아름다운 도시였다. 거리는 프랑스 사람들에 의해 설계됐으며, 구획정리가 자로 잰 듯 반듯했다. 아름드리 가로수들이 검푸르고 두터운 열대 잎으로 아스팔트 전체에 그늘을 드리우고 있었으며 이 푸르름은 일 년 내내 지속되었다. 길 좌우에는 넓고 아름다운 정원을 가진 프랑스식 저택들이 놋쇠 번지 표를 달고 있었으며, 울창한 정원수 사이로 보이는 새하얀 벽과 핑크 색 지붕은 검은 망사 속에 가려진 귀부인의 화사하고 기품 있는 얼굴을 연상케 했다. 사이공 여인들이 펼치는 오토바이 행렬은 아스팔트 위를 미끄러져 다니는 백조의 여인들이 벌이는 발레의 행렬이라 할  만큼 우아하고 낭만적이었다. 자연스럽게 쌍꺼풀 진 시원한 눈, 길게 풀어 내린 생머리, 짧은 상체와 길게 흘러내린 각선, 얇고 보드라운 아오자이 속에 율동하는 아담한 몸매, 달리는 오토바이 위에서 파들파들 휘날리는 치맛자락, 사이공 여인들의 프로필은 이렇게 소개될 수 있을 것이다. 사이공에서 약간 남쪽으로 떨어진 ‘붕타우’라는 섬 도시는 월남에서도 1급지로 꼽히는 아름다운 휴양지였다. 반달 같이 휘어져 간 백사장을 따라 검은 아스팔트길이 모래 바닥과 같은 높이로 낮게 깔려 돌아갔고, 그 위로 이어지는 산허리에는 새하얀 별장들이 띄엄띄엄 늘어서 있었다. 별장의 푸른 정원에는 열대성 꽃들이 집시의 새빨간 루주 색처럼 소복소복 박혀 있었으며, 정원 숲 사이로 살짝 살짝 내보이는 하얀 벽들은 선명한 초록색 색깔과 대조를 이루어 더욱 희어 보였다.


거리가 네온사인 무드로 접어들 때면 열대의 뜨거운 열기 속에서 기력을 잃고 있던 생명들이 차츰 생기를 회복해 가기 시작했다. 온갖 세계인들이 어울려 자아내는 이국적 정취는 밤이 무르익을수록 점점 더 짙어지고 있었다. 크고 작은 밴드 무대들이 건물마다 마련돼 있었고, 테이블 위에 놓인 빨간 촛불 주위에서는 술집여인들이 자아내는 이국적 정취에 취한 선남선녀들이 술잔을 비우며 정염의 눈빛을 주고받았다. 웨이트리스들은 자연스런 방법으로 팁을 요구했다. ‘사이공 티’를 한 잔 사주면 그게 바로 팁으로 계산되었다. 나팔꽃처럼 생긴 유리컵에 한모금도 채 안 되게 담겨진 콜라 같은 것이 곧 사이공 티였다. 여인들은 나비처럼 이 테이블, 저 테이블로 옮겨 다니면서 한바탕 애교를 부려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은 후 사이공 티를 요청했다. “사이공 티, 오케이?” 긴 목선을 휘어 보이며 얼굴 밑으로 다가와 가쁜 숨결을 내뿜는 것이 그녀들의 애교였다. 그런 애교 앞에서 티 한잔을 놓고 차마 안 된다 할 수는 없었다. “슈어, 플리~스!” 한 잔에 5달러 또는 10달러. 한번 가면 최소한 석 잔은 사야 했다. 한 달에 150달러를 받는 한국군 대위로서는 어쩌다 한두 번이나 가 볼 수 있는 곳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겨우 서민층을 상대하는 여인들에 불과했다. 고관대작들은 이러한 여인들을 상대할 필요가 없었다. 모든 시설이 구비된 스위트룸에서 큰돈을 쓰면서 시간을 보냈다. 이런 곳에 있는 여인들은 사이공 티를 파는 것이 아니라 몸 자체를 고가에 팔고 있었다. 한국군 중에서는 장군, 헌병대장, 보안대장 등 돈 꽤나 만지거나 이권을 부탁 받을 수 있는 소위 끗발 있는 간부들만이 갈 수 있는 곳들이었다.


노상 음식점들도 사이공의 명물이었다. 중국, 대만, 사이공, 싱가포르 등에서 한 결 같이 눈에 거슬리지 않는 거리의 명물이 바로 노상 음식점들이다. 인도는 검푸르게 우거진 가로수로 덮여 있고, 그 밑에 설치된 형형색색의 비치파라솔 밑에서 사람들은 한가롭게 간식을 즐긴다. 쇼핑과 구경으로 걷다 지친 사람들이 그 밑에 앉아 국수, 과일, 냉 음료 등을 시켜놓고 여유를 즐기는 낭만의 공간들이다. 세발자전거도 명물이었다. 사이공 거리는 택시로 다니면 별 맛이 없다. ‘럼브레타’라는 세발자전거를 타야 맛이 났다. 이 세발자전거들은 도시 정경들을 하나하나 즐길 수 있도록 느린 속도로 다녔다. 자전거처럼 사람이 발로 젓는 것도 있지만, 동력을 이용하는 것도 있다. 세발자전거 앞에는 두 사람이 앉을 수 있는 바구니가 있었다. 땅에 닿을까 말까하는 높이에 편히 앉아 한가롭게 거리를 구경할 수 있었다. 아무데서나 세워서 사진을 찍거나 쇼핑을 할 수도 있었다. 사이공 거리를 이렇게 다녀본 사람들은 그래서 그곳을 다시 가고 싶어 한다. 이러한 풍경은 서울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에 대한 실마리를 준다. 서울시가 갖고 있는 교통과 환경, 관광과 시민문화에 대한 문제들을 일거에 개선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서울 거리와 교통을 개념부터 바꾸어야 할 것이다. 옛 사이공과 싱가포르가 그런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서울 거리 몇 개를 선정해서 모델로 가꿔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서울의 거리는 자전거, 골프카트 형 차량, 럼브레타 식 세발자전거들이 다니는 낭만의 거리로 변화시키고, 곳곳에 공간을 마련하여 문화 행사와 거리 토론회 등 볼거리들이 스스로 채워지도록 하면 어떨까 싶다. 이렇게 하면 교통문제와 공해문제가 일거에 해결되면서 서울을 세계적인 관광명소로 가꿀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동양의 파리요 흑진주라 불렸던 사이공, 40여 년이 지난 지금은 어떻게 변해 있을까. 한마디로 늙고 병든 고도가 돼 버렸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공산치하로 통일된 지 30년, 월맹 은 통일 후 8년간 문을 닫고 암흑과 공포의 정치를 했다. 자유에 물들었던 사람들을 때려  죽이고 굶겨 죽였다. 이렇게 죽은 사람들이 더러는 700만, 더러는 1,000만이라 한다. 106만 명의 난민이 보트를 타고 도망가다가 11만 명이 빠져 죽었다는 보도가 있다. 이러한 희생을 치르고 통일을 이루어 낸 베트남! 지금 얼마나 잘 살고 있는가? 최근 베트남 곳곳을 다닌 사람들의 이야기로는 지금의 베트남은 1964년 한국군이 최초로 파병되었을 때보다 훨씬 낡고 병들어 있다 한다. 화려했던 사이공 거리가 남루하게 퇴색해 있고, 새로 들어선 건물은 보이지 않는다 했다. 생활은 피폐할 대로 피폐해 있고, 사이공 거리를 달리는 아가씨들의 얼굴도 예처럼 화사하지 않다고 한다. 40여 년 전보다 뒤떨어져 있는 것이 지금의 베트남인 것이다. 현지 답사자들의 마지막 말이 가슴을 때렸다. “무엇을 위한 통일이었는가?” ‘사이공 뎁브람’, 아마도 이 아름다운 선율마저 부르주아들이 부르던 것이라며 금지돼 있을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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