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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 있는 곳엔 반드시 해결책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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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9-11-17 15:53 조회7,24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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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지면 하늘을 찌를 듯 우뚝 솟은 앞산이 온 주위에 망령 같은 검은 그림자를 드리웠고, 이는 기지의 분위기를 마치 귀신이라도 곧 엄습해 올 것만 같이 음산하게 만들었다. 밤이 되면 산 밑에서부터 봉우리에 이르기까지의 넓고 높은 공간에 광솔불 같이 훨훨 타는 불꽃들이 날아다녔다. 짐승의 눈에서 내뿜는 불꽃이라면 겹겹으로 포개진 정글의 두터운 나뭇잎 층을 뚫고 나올 수 없었다. 그 음산한 불꽃들은 분명히 날아다녔지 뛰어다니는 것이 아니었다. 포를 쏘아대면 없어졌다가 포가 멈추면 다시 돌아 다녔다. 그 불꽃들은 포의 위력을 알고 있는 듯 했다. 이것이 기분 나빠 나는 가끔씩 화력 쇼를 벌였다. 앞산에 대고 무차별 사격을 가하는 것이었다. 기관총을 떠난 예광탄이 검은 공간에 붉은 색의 선을 그으며 산 속으로 날아가는 것을 신호로 모든 총과 포들이 기염을 토해 냈다. 105밀리 포, 155밀리 포, 무반동총, 기관총, 그리고 M-16 소총들이었다. 나의 포대가 벌이는 화력 쇼에 고무된 이웃 보병대대 병사들도 박격포 등을 동원하여 가세했다. 앞산을 향해 전개된 검은 공간은 총알들이 긋고 가는 붉은 선들과, 포탄들이 작렬할 때 퍼지는 주황색 섬광들로 가득했고, 기분 나빴던 공간은 이내 그야말로 휘황찬란한 공간으로 변했다. 기지에서 나는 콩 볶는 소리, 온 산에서 작렬하는 파열음들이 뒤섞여 내는 화음의 잔치에는 그 어떤 록 음악으로도 구현해 낼 수 없는 힘과 박진감과 쾌감이 듬뿍 들어 있었다. 화력 쇼는 그야말로 종합예술이었다. 스스로 쏘아대면서도 스스로 감탄했다. 총 한 자루, 포탄 한 발의 의미는 미미했다. 하지만 집단이 내는 힘은 참으로 엄청났다. 바로 여기에서 병사들은 개인보다는 집단의 의미가 중요하다는 것을 터득했을 것이다. 드디어 쉭- 딱 하고 조명탄이 하늘 중턱에 켜지면서 바람에 나부끼며 흘러내리면 온 하늘이 대낮처럼 밝아진다. 시키지 않았는데도 모두가 총을 놓고 하늘을 보며 함성을 지르고 박수를 치고 휘파람을 불어댔다. 이것이 화력 쇼의 피날레였다. 이렇게 한바탕 하고 나면 병사들의 스트레스가 확 풀리고 분위기가 한층 밝아졌다. 


당시 미군 당국은 한국군이 쏘는 실탄과 포탄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다른 부대들에는 실탄이 남아돌았다. 실탄도 부지런해야 많이 쏠 수 있었다. 나의 중사와 상사들은 실탄이 남아도는 부대에 돌아다니면서 남는 재고량을 수집해 왔다. 다른 부대에서는 배정 받은 실탄을 소화하지 못해 가끔씩 사격장으로 나가 소나기 식으로 사격해 버리기도 했다. 창고에 실탄이 너무 많이 쌓여 있으면 검열에서 지적 받기 때문이었다. 잠시 주제를 떠나 이와 유사한 한국군 사례를 하나 소개한다.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한국군에서는 배당 받은 쌀이 남아돌았다. 갑자기 검열이 나오면 다급한 나머지 쌀을 뒷산에 지고 가서 땅에 파묻는 부대들도 있었다. 쌀을 부대에서 필요한 만큼만 가져가도록 하면 될 것을 ‘정확’을 기한다며 매일 인원을 파악하고, 그 파악된 인원에 맞추어서 쌀은 576g, 보리는 252g씩을 곱해서 배급해 주니까 쌀과 보리가 늘 남았던 것이다. 곧이곧대로 남는다 보고하면 상급부대 참모들은 행정이 귀찮아진다며 짜증을 냈다. “당신네 부대는 규정을 어기고 외박과 외출을 많이 보내지 않았느냐. 그래서 쌀이 남는 게 아니냐”는 등의 책임추궁도 했다. 이런 상급부대의 행태를 너무나 잘 아는 예하부대 간부들은 “배급받은 쌀 100%를 이상 없이 소모했음”이라는 간단명료한 보고를 하게 된다. 이는 쌀에만 해당하는 게 아니라 모든 군수품에도 해당하는 낭비였다. 나는 연구소에 근무하면서 이러한 배급제를 가계살림 개념으로 바꾸려고 노력했지만 군수인들의 반발로 욕만 잔득 먹었다. “학자가 뭘 알아.” 군수품과 예산을 다루는 사람들에게 나는 적(enemy)으로 인식됐다. 아마도 이러한 현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는 군뿐만 아니라 모든 정부부처에 공통된 현상으로 지금까지 시정되지 않고 있을 것이다.


다시 월남으로 가보자. 저녁에 음산한 앞산에 대고 화력 잔치를 벌이는 것은 베트콩의 의표를 어느 정도 찌르는 것이긴 해도, 베트콩이 쏘아대는 박격포 세례에 대한 적극적인 대책은 되지 못했다. 부대에 부임하자마자 내가 가장 먼저 해결해야 했던 것은 베트콩들의 박격포공격으로 부터 당하는 병사들의 공포를 해소시켜 주는 것이었다. 진지라 해봐야 야전천막뿐인 상태에서 가끔씩 베트콩이 산에서 박격포를 쏘아대니 사는 길은 오직 한 가지 베트콩이 봐주는 길뿐이었다. 수많은 선배장교들이 있었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다른 묘책이 없다고들 했다. 그때까지 알려진 적의 박격포 공격에 대응하는 방법은 5만분의 1 지도에서 몇 개의 봉우리를 찾아내 거기에다 6문의 포를 날리는 것이었다. 6발의 포탄이 떨어지는 지점에는 가공할 공포가 형성되겠지만, 그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베트콩에게는 웃음거리밖에 안 되는 그런 방법이었다. 베트콩이 박격포를 쏘는 지점이 꼭 산봉우리일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들은 포신만 덜렁 메고 다니면서, 산의 어느 곳에서나 눈으로 목표를 직접 관측하면서 나뭇가지나 팔뚝에 포신을 의지한 채 포탄을 날린 후 그 자리를 속히 떠났다. 이런 적을 향해 봉우리 사격을 한다는 것은 난센스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날 밤, 그 을씨년스런 도깨비불을 바라보고 있다가 문득 옛날이 생각났다. 수색중대에서 정찰작전을 나갔다가 월맹 정규군에게 포위됐던 바로 그날 밤의 일이었다. 베트콩 소굴에서 밤을 새면서 나는 베트콩에게 한국군이 그 자리에 없다는 것을 표시하기 위해 우리 병사들 옆에다 포를 쏘아달라고 한 적이 있었다. 포탄이 바위틈에서 작렬하는 소리는 포에 대한 상식이 없는 병사들에게는 엄청난 공포였다. 1㎞ 밖에서 작렬하는 포탄 소리에 사색이 되어 가지고 내게 다가와 “소대장님, 파편이 옆에 떨어집니다. 포를 멀리로 보내 주십시오” 하던 병사가 생각났다. 연이어 또 다른 장면이 생각났다. 소위 때였다. 산악작전에서 길을 개척하기 위해 우리 중대가 가야 할 능선을 따라 50m 간격으로 포를 내려 쏠 때였다. 포탄이 1km 앞에서 작렬하니까 그 독하다는 중대장의 얼굴이 하얗게 변했었다. “아하! 이것이 바로 1㎞의 공포로구나” 나는 신들린 듯이 사격지휘소로 달려 가 지도 위에 그리스 펜으로 격자를 그었다. 2㎞ 단위로 적당히 바둑판 격자를 그은 것이다. 그 바둑판 네 귀퉁이에 포탄이 한 발씩 작렬한다면 가운데 들어 있는 베트콩은 그야말로 혼비백산할 것이 틀림없었다. 사격 장교 중위는 그 격자들에 대한 사격제원을 쏜살같이 산출해 냈다. 포탄은 소총과 달라 손으로 던지는 돌처럼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간다. 포탄을 멀리 날아가게 하려면 추진용 화약의 양이 많아야 한다. 정해진 목표물을 명중시키려면 그 화약의 양을 계산하고, 굴뚝 같이 생긴 포신을 상하로 몇 도, 좌우로 몇 도에 지향시킬 것인가를 계산해야 한다. 이때에 공기의 온도, 습도, 바람을 계산에 넣어야 한다. 이렇게 결정된 자료를 사격제원이라 하며 이러한 계산은 숙달된 병사만이 할 수 있다. 이 사격제원들이 각 분대로 배급됐다. 하나의 포에 20개 정도의 표적이 배당됐다. 각 포는 계속 포신을 돌려가면서 20개의 목표에 포를 날려야 했다. 그리고 그 다음날엔 바둑판의 정점을 약간씩 이동시키기로 했다. 이렇게 한판 쏘게 되면 산 전체가 콩을 볶는다. 아무리 간이 큰 베트콩이라도 이런 융단포격에는 혼비백산하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준비를 하고 있었을 때, 때마침 베트콩이 박격포 세례를 가했다. 병사들은 신들린 듯이 이 융단포격을 가했다. 포탄을 포구에 집어넣는 속도가 거의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빨랐다. 멀리에서 포탄을 포구를 향해 던지면 그게 곧 장전이었다. 나는 혹시 포구에 신관이 부딪쳐 사고가 나지 않을까 두려웠지만 숙달된 병사들은 걱정 말라고 했다. 그게 그들의 자존심이었다.


이런 대책이 없었을 때, 병사들은 박격포 세례가 끝날 때까지 공포에 떨면서 목재 틈에 숨어 엎드려만 있었다. 그러나 이번엔 달랐다. 6백발의 포탄이 단숨에 날아갔다. 1개의 포마다 100발씩을 신나게 쏜 것이다. 박격포는 겨우 3발 떨어진 후에 중단됐다. 박격포를 쏜 베트콩이 혼비백산했음에 틀림없어 보였다. 사격을 지휘했던 중위가 대대 작전주임인 소령에게 긴급한 목소리로 박격포 공격이 있었다는 사실과 포대가 발사한 탄약의 양을 보고했다. 소령은 “지금이 어느 때인데 그렇게 많은 포탄을 쏘느냐”며 야단을 쳤다. 미군이 탄약 통제를 강화하고 있는 이때에 웬 정신 나간 짓을 하느냐는 것이었다. 나는 중령 대대장님께 사실대로 보고를 했다. 원체 많은 양을 쏘았기 때문에 대대장님도 난감해 하는 눈치였다.  “대대장님, 사실 그대로 포사령관님께 보고해 주십시오. 600발은 속일 수 없는 큰 숫자입니다” 대대장님도 다른 대안이 없었는지 포병사령관으로부터 꾸중을 들을 각오를 하면서 사실대로 보고를 드렸다고 했다. 그런데! 꾸중을 예상했던 대대장님은 사령관으로부터 의외의 칭찬을 들었다고 했다. “포탄은 아낄 때는 아껴야 하지만, 쓸 때에는 시원하게 써야 하는 거야. 야, 고놈, 배포 한번 크고 시원시원하구나. 포는 그렇게 운영하는 거야. 베트콩 놈들, 간담이 서늘했겠구먼” 나는 포병 사령관으로부터 그 후 많은 사랑을 받았고 그의 사랑은 한국에 와서까지도 계속됐다. 이때부터 나는 포를 쏘는 일에 대해서는 누구의 통제도 받지 않았다. 3개 포대가 쏘는 포탄 양의 70% 이상을 나의 포대가 쏘았다. 어떤 때는 하루에 3번도 쏘았고, 어떤 때는 며칠간 거르기도 했다. 낮에도 쏘는가 하면, 밤중과 이른 새벽에도 쏘아댔다. 베트콩은 나의 포대가 언제 융단포격을 가할지 전혀 예측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 후 1년간의 재임기간 중 나의 병사들은 단 한발의 박격포 세례도 받지 않았다. 역시 공격이 최선의 방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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