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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휘능력을 기르지 않는 지휘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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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9-11-17 16:16 조회5,89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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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푸른 정글산 밑자락에서부터 논과 밭으로 이뤄진 넓은 평야가 펼쳐져 있었다. 10m폭의 희뿌연 강물이 산기슭과 평야 사이를 가르고 있었다. 강물 주변에는 대나무, 버드나무, 갈대가 어우러져 짙은 숲을 이루고 있었다. 베트콩이 귀신처럼 출몰한다는 음산한 지역이지만 겉으로 봐서는 인적조차 없는 평온한 들이었다. 이 들판에 베트콩이 많이 들어와 있다는 첩보가 입수됐다. 대나무와 버드나무로 형성된 숲이 강가로부터 가늘게 이어 나오다가 시골 초등학교 운동장 크기만큼 둥그렇게 펼쳐져 있었고, 숲 속에는 겨우 한 사람이 숲을 헤치며 다닐만한 소로가 이리저리 연결돼 있었다. 수많은 병사들이 숲 속을 아무리 다녀 보아도 사람이 숨을 공간은 없었다. 그런데 미군은 어째서 여기에 베트콩이 많이 있다는 정보를 한국군에게 주었을까.


미군에는 특수 정찰기가 있었다. 날아다니면서 인체로부터 발산되는 암모니아 가스의 양을 측정해서 암모니아 지도를 만드는 정찰기였다. 이 지역에 작전을 나오게 된 것은 바로 이 대나무 숲에서 암모니아 가스가 집중적으로 탐지됐기 때문이었다. 상식적으로는 베트콩이 있을 리 없는 곳이었지만 백마 제28연대의 2개 대대 병력이 사흘 째 그 벌판에 주둔하고 있었다. 낮이면 뜨거운 땡볕을 피하기 위해 숲 가장자리에 텐트를 쳤고, 밤이면 소대 단위로 흩어져 매복을 했다. 기지 내에서는 쌀밥, 국, 김치, 야채들을 먹지만 야외에 나오면 C-레이션이라는 깡통 음식을 먹어야 했다. 병사들은 이미 통조림 고기에 질려 있었다. 그런데 근 40년이 지난 지금은 그 C-레이션에 대한 향수가 새로워졌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남대문 시장에서 팔았다는 말을 들었는데 지금은 살래야 살수가 없다고 한다.


열을 펑펑 내뿜는 깡마른 밭, 드문드문 고추나무가 시들어 있었다. 고추라 해봐야 연필심 굵기보다 조금 더 굵었지만 혀끝에 대면 혀가 잘려나갈 듯이 매웠다. 병사들은 C-레이션 깡통 뚜껑 사이에 고추를 넣고 작두질을 해서 몇 쪽의 고추를 고기 속에 넣은 후 고체 알코올에 끓였다. 느끼한 음식에 늘 실증을 느끼던 터라 매콤한 자극이 입맛을 돋우어 주었다. 병사들은 과자가 든 깡통을 따서 과자를 버린 후 봉지 커피를 끓여 마셨다. 다른 용기에 커피를 끓였다면 그런 맛이 나지 않았을 것이다. 따분한 땡볕을 이겨내기 위해 어쩌다 찾아낸 맛이었지만 그 맛은 지금까지도 그리워질 만큼 특별했다. 작전을 한다는 것은 이렇게 기다리는 시간, 헬리콥터로 이동하는 시간, 정글을 누비는 시간들로 채워지고, 적과 어우러져 전투를 하는 시간은 극히 찰나에 불과했다. 나는 작전을 나갈 때마다 영문 단편소설을 철모 밑에 넣고 다녔다. 병사들이 따분해서 몸을 뒤틀고 있는 시간에 나는 영문소설을 읽었다. 이는 훗날 내게 엄청난 도움이 됐다. 만일 내가 그런 식으로 조각난 시간들을 이어 쓰지 않았다면 내게는 미국유학이라는 새로운 기회도 없었을 것이며, 프리랜서의 길도 없었을 것이다.


닷새가 지났다. 베트콩에 대한 경계는 완전히 사라지고 병사들은 지루한 캠핑 생활에 따분해했다. 다음날이면 철수를 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많은 비가 내렸다. 월남의 계절은 건기와 우기로 나누어진다. 우기에 내리는 월남의 비는 언제나 장대비로 내렸고 일단 시작한 비는 아침에도 낮에도 사정없이 퍼부었다. 군화에 붉은 진흙이 덕지덕지 붙어 걷기조차 힘들었다. 이렇게 비가 쏟아지면 병사들은 낮잠을 즐겼다. 한 병사가 잠에서 깨어나 텐트 자락을 위로 올리고 장대같이 쏟아 붓는 빗줄기를 내다보면서 넋을 잃고 상념에 잠겨 있다가 문득 우중충한 숲 속에서 가늘게 솟아오르고 있는 연기에 정신이 바짝 들었다. 옆 전우를 툭툭 치며 턱으로 가리켰다. 감각이 뛰어난 옆 전우가 판초우의를 입고 살살 기어갔다. 땅굴의 덮개가 감쪽같이 위장돼 있었다. 숨을 쉬기 위해 꽂아놓은 대나무 대롱이 나뭇가지에 밀착된 채 위장돼 있었다. 바로 그 대롱을 통해 연기가 모락모락 올라왔던 것이다. 아마도 베트콩이 닷새 동안의 배고픔을 참다못해 설마 하는 마음으로 밥을 지었을 것이다. 닷새 동안, 한국군은 땅위에서, 그리고 베트공은 땅 밑에서 생활을 했던 것이다. 이 기막힌 내용이 지휘계통을 통해 보고 됐다. 연대장의 눈이 반짝 빛났을 것이다. 독 안에 든 쥐이긴 하지만 잘못 시작했다가는 병사들이 많이 상할 수 있었다. 연대장님은 주월한국군에서 전과를 가장 많이 올린 유능한 분으로 소문나 있긴 했지만 그는 꾀와 지혜를 동원하지 않고 “즉시 공격하라”는 성급한 명령부터 내렸다. 생각할 시간을 갖지 않고 기계처럼 내린 명령이었다.


병사들이 몇 개의 아지트로 접근하여 문을 열고 수류탄을 집어넣었다. 폭발음이 들리자 땅 속에 숨어 있던 베트콩 소대 병력이 여기저기에서 문을 열고 나와 필사적으로 덤볐다. 많은 장갑차가 적탄통이라 불리는 원시적 로켓의 공격을 받아 파괴됐고, 타고 있던 병사들이 즉사했다. 맞붙어 싸우기 때문에 누가 유리하고 누가 불리한 상황도 아니었다. 한국군도 베트콩도 수십 명씩의 사상자를 냈다. 시체들로부터 나온 피가 장대 같은 빗물에 씻겨 뿌옇던 강물을 붉게 물들였다. 퉁퉁 불은 시체 조각들이 강가의 나뭇가지에 걸려 이리저리 맴돌고 다녔다. 비참한 전투였다.


하지만 그 전투는 이렇게 치르지 않아도 될 전투였다. “땅 속에는 베트콩, 땅 위에는 한국군!” 이런 상황은 누가 봐도 한국군에 유리한 것이었다.  우리는 저들의 존재를 발견했지만 저들은 우리를 모르고 있었다. 이에 더해 우리에겐 시간이 그야말로 많았다. 하지만 지휘관은 이토록 유리한 조건과 환경을 이용하지 못하고 많은 병사들의 생명을 절단 냈다. “어떻게 공격하면 병사들을 상하게 하지 않으면서 전과를 올릴 수 있을까?” 간부들을 불러 이런 회의를 했더라면 방법은 매우 많았을 것이다. 가장 쉬웠던 방법은 숲 위에 기름을 뿌리고 불을 지르는 것이었다. 또는 그 숲 속에 나 있는 소로에 마다 부비트랩(지뢰 같은 폭발물)을 대량으로 설치해 놓고 멀리서 기다릴 수도 있었다. 미군 전투기를 불렀다면 10분 이내에 날아올 수 있었다. 전투기가 손바닥만 한 숲 속을 뒤집어 놓는 동안 한국군은 멀리에서 지켜보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공군 조종사들에게는 식은 죽 먹기였고 신나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한국군 지휘관들은 불쌍한 병사들부터 투입했다. 바로 이런 게 보병장교들의 사고방식이다. 이렇게 성장한 장교들이 장군이 되고 국방장관이 된다. 과학적 사고를 하지 않는 보병 장군들이 군을 이끄는 동안 한국군은 과학화로부터 멀어질 수밖에 없다. 군의 과학화란 과학 장비를 사재는 것이 아니라 군의 운용을 과학화해야 하는 것이다. 병사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지휘관은 없다. 하지만 많은 전투를 지켜보면서 그것을 실증해준 지휘관은 거의 보지 못했다. 솔직히 많은 지휘관들에겐 전과가 병사보다 더 중요했다. 6․25전쟁을 치렀던 어느 한 장군은 이런 기막힌 말을 했다. “병사들의 생명에 일일이 신경 쓰는 지휘관이 무슨 전투를 하느냐? 전투하면 누구나 죽게 돼 있다. 남한의 젊은이는 북한보다 2배 이상 많기 때문에 우리가 이긴다.”


부상을 당한 병사는 병원 헬리콥터가 날아와 싣고 갔다. 부상을 입은 병사에게 헬리콥터는 구세주였다. 하지만 자기를 태우고 가는 헬리콥터가 미군 소속이냐 한국군 소속이냐에 따라 부상자의 마음은 천지 차이였다. 미군 의료시스템은 신뢰하지만 한국 의료시스템에 대해서는 그렇지 못했다. 나는 월남전에 42개월간 참전했지만 부하의 생명을 위해 머리를 써서 작전을 하는 지휘관은 내가 속했던 부대의 제3중대장과 그의 휘하에 있던 제1소대장 이외에는 별로 보지 못했다. 아마 지금 전쟁이 일어난다면 사정은 더 악화될지도 모른다. 머리를 쓰지 않는 작전의 또 다른 사례를 소개한다. 넓은 마을에 베트콩 1개 중대가 들어왔다. 정찰기가 날아다니면서 주민을 상대로 방송을 했다. “마을에 베트콩들이 많이 들어와 있습니다. 이 마을이 곧 파괴됩니다. 모든 양민은 밖으로 나와 주십시오” 얼마간의 민간인들이 부녀자와 아이들을 데리고 나왔다. 전투기와 포병 공격이 시작됐다. 마을이 쑥대밭으로 변했다. 연대 병력이 또 다시 강강술래처럼 손에 손을 맞잡고 마을을 포위했다. 이를 놓고 연대장은 물샐틈없이 포위됐다며 좋아했다. 밤이 되자 적막이 찾아들었다. 마을은 쥐 죽은 듯 고요했다. 낮에는 방심하지 말고 철통같이 경계하자고 다짐들을 했지만 밤이 되자 병사들의 마음에는 공포가 찾아들었다. 밤새 긴장했던 병사들이 새벽이 되자 하나 둘 눈을 감았다. 바로 이때 베트콩은 약 50명씩 두 개의 팀으로 나눠 한 줄로 늘어선 한국군의 포위망 두 곳을 집중 공격했다. 50여 명이 집중해서 돌파하는 곳에는 기껏해야 한국군 병사가 겨우 5~6명이 있었을 뿐이다. 5~6명의 한국군이 50여 명의 베트콩에 의해 유린당하는 동안, 옆에 엎드린 병사들은 자기 앞만 응시하고 있었다. 아군의 피해만 있었고, 베트콩 피해는 없었다.


바로 이런 게 ‘선방어’의 진면목이다. 한국군 30만이 155마일에 일렬로 늘어서 있다. 지금 전쟁이 터진다면 이와 똑같은 현상이 발생할 것이다. 예를 들어 인민군은 위 월남전 사례에서 발생했던 것처럼 문산과 철원 두 곳에 병력을 집중하여 돌파를 시도할 것이다. 문산 지역 10㎞ 전선에는 겨우 한국군 1개 사단이 방어를 담당하고 있다. 그런데 이 10km에 인민군은 5개 보병사단과 전차 2개 사단쯤을 투입할 것이다. 10km의 전선에서 한국군 1개 사단이 인민군 5개 사단 및 전차 2개 사단에 의해 유린당하는 동안 다른 지역에서 북쪽을 응시하고 있는 수많은 사단들은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는 것이다. 철원 지역에서도 똑같은 현상이 발생할 것이다. 문산과 철원이 동시에 뚫리는 것이다. 그러면 문산과 철원 사이에 존재하는 수십 리 전선에서 적을 응시하고 있는 수많은 다른 부대들은 싸우지도 못한 채 이 두 지역을 돌파한 10여 개의 사단들에 의해 마치 어머니 등에 엎인 어린아이가 포대기에 둘러싸이듯이 졸지에 포위되고, 서울이 맥없이 함락될 것이다. 한국군은 아직도 이를 모르고 “우리에겐 젊은이가 북한보다 많다”며 느긋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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