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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소대장의 최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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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9-11-17 16:18 조회6,40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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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이지 않아도 땀이 줄줄 흘러내리는 6월 오후, 갑자기 헬기들이 줄을 지어 날아오더니 내가 속한 중대를 낯선 마을로 데려갔다. 김제 평야 같이 광활하게 펼쳐진 논에는 짙푸르게 자란 벼가 정강이 높이까지 자라 있었고, 논물도 풍부하게 채워져 있었다. 넓은 평야에 띄엄띄엄 마을이 보였다. 숲 속에 묻혀있는 마을들이 송곳 같은 기운을 뿜어내는 것만 같아 기분이 이상했다. 아니나 다를까! 곧 이어 건너편 마을을 사정없이 폭격하는 전투기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네 대의 미군 전투기가 마치 독수리처럼 수직선으로 내려 꽂혔다 야자수 높이에서 다시 날아오르면서 사정없이 폭격을 가하고 있었다. 흙먼지가 피어오르고, 나뭇조각이 야자수 숲 위로 날아오르고, 연기가 온 마을을 자욱하게 덮었다.


“따다다다닥. . . 쾅 . . .” 한 미디로 장관이었다. 이런 것을 보고 전쟁을 예술이라고 표현하는구나 싶었다. 전투기 공격이 끝나자 포병사격이 뒤를 이었다. 전투기가 뿜어내는 소리는 부드러우면서도 둔탁하지만, 야포 포탄이 작렬할 때 내는 소리는 날카롭게 째졌다.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날아다니듯 마을과 마을 사이를 쏜살같이 뛰어 다녔다. 4개 소대가 마을을 하나씩 배정 받았다. 소위 전략촌 마을들이었다. 억센 가시나무들이 빽빽하게 마을을 둘러쌌고, 그 가시나무 울타리에는 동그란 총구멍들이 촘촘히 뚫려 있었다. 베트콩들이 마을에서 밖을 향해 총을 쏘기 위한 것이었다. 중대본부 역시 제4소대와 함께 장갑차를 타고 마을로 들어갔다. 앞으로 전진 하면서도 온 신경은 뒷마을로 곤두서 있었다. 장갑차가 논물을 가르면서 마을을 향해 달리는 동안 차 위에 설치된 기관총이 뒷마을을 향해 무차별적으로 불을 뿜어 댔다. 사수가 공포감을 느낄수록 그만큼 내뿜는 기관총 소리도 요란했다. 이에 질세라 뒷마을에서도 우리를 향해 엄청난 사격을 가해왔다. 바싹 마른 나뭇가지를 꺾을 때 내는 “딱” 소리만 내고 여운을 내지 않는 총알들이었다. 이런 소리는 총알이 나를 향해 날아올 때 내는 소리다. “따쿵-” 하고 여운을 남기는 총알은 다른 방향으로 날아가는 총알이다.


M-16 소총의 초속은 마하 2.8이다. 소리보다 2.8배 빠른 것이다. 바늘에 실 따라 가듯, 총알이 먼저 나가면 그 뒤를 이어 총소리가 따라가는 것이다. 총알을 맞은 사람은 총소리를 미처 듣지 못한 채 의식을 잃게 된다. 내가 속해 있던 중대본부와 제4소대는 아무런 피해 없이 마을에 도착했다. 장갑차에서 막 내리려는 순간이었다. 제2소대 무전병의 울먹이는 소리가 수화기에 울려 퍼졌다. 소대장이 전사했다는 내용이었다. 내가 들어간 마을과 불과 10m 떨어진 이웃마을에 도착하여 장갑차에서 막 내리려는 순간 뒷마을에서 무차별적으로 쏟아 붓는 베트콩의 총알에 머리를 맞은 것이다. 소대장의 전사 소식에 모두의 표정이 얼어붙었다. 하지만 지휘관은 한 부하의 죽음에 오래 애도할 여유가 없었다. 중대장은 기지에 남아있던 부중대장을 불러 제2소대장의 자리를 메우도록 조치했다. 부중대장은 부대에 남아 작전지역에 보급품을 보내주는 등 내조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먹 거리도 포장하고, 고국에서 온 편지도 포장해서 헬리콥터 장으로 가져가 작전지역으로 보내주는 일들이었다. 이처럼 비교적 한가한 시간을 보내고 있던 부중대장에게 청천병력(?) 같은 명령이 떨어진 것이다. 그를 작전지역으로 데려오기 위해 특별 헬기가 마련됐다. 헬기는 그를 공동묘지가 있는 벌판에 내려놓았고, 그 역시 벌판으로부터 장갑차를 타고 넓은 논에 채워진 흙탕물을 가르며 마을로 들어왔다. 장갑차가 속력을 다해 달리는 동안 건너편 마을에서 또 다시 총알이 쏟아져 날아왔다. 차에서 내린 그의 얼굴이 사색이었다. 그는 나보다 1년 선배로 성격이 유순하고, 행동에 여유가 있어 보였다. 나를 볼 때마다 씨익- 웃던 그였지만, 그 순간만큼은 얼이 빠져 있었다. 이 장면은 두고두고 그의 약점이 됐다. 훗날 그가 큰소리를 칠 때마다 나는 그의 기를 꺾었다. “아! 그때 얼굴이 꽤 창백해 보였습니다” 이 농담 한마디면 그의 기세가 즉시 꺾였다.

 

온통 숲으로 뒤덮인 마을에 모기떼가 극성이었다. 손으로 아무 곳이나 문지르면 수십 마리씩 뭉개졌다. 톡톡하기로 이름난 정글용 작업복이었지만 월남 모기의 침은 당해내지 못했다. 독한 모기약으로 얼굴과 손 그리고 작업복 위에 범벅을 해도 떼거지로 달려드는 모기떼를 막지 못했다. 모기를 막기 위해 모든 병사들은 정글용 가죽 장갑을 끼고 판초우의를 뒤집어썼다. 야간에는 방어 초소들을 잘 선정해야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전사한 소대장과 친분이 있던 제4소대장은 슬퍼하느라 아무 일도 하지 못했다. 내가 그를 대신하여 울타리를 돌면서 병사들에게 초소를 잡아주고 대응 요령을 꼼꼼히 지시해 주었다. 임무가 끝나자 잠이 쏟아졌다. 베트콩이 우리의 위치를 알고 있기 때문에 언제 공격해올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쏟아지는 잠에는 저항할 수가 없었다. 전장의 선머슴, 부중대장이 그날 밤 전과를 올렸다. 논 속을 포복해서 마을로 접근해 오는 월맹 정규군 3명을 사살한 것이다. 공장에서 갓 뽑아낸 듯한 소총 세 자루와 적탄통(미니 무반동총) 한 개를 노획하는 큰 전과를 올렸다. 이튿날, 병사들은 대나무 작대기를 뾰족하게 깎아 가지고 마을 바닥을 촘촘히 찔러댔다. 분명히 땅속에는 비밀 땅굴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렇게 찔러서 발견될 땅굴이 아니었다. 불과 3일간이었지만 생각조차 하기 싫은 기분 나쁜 전투를 치렀다. 몸과 마음이 지칠 대로 지쳤다. 작업복에는 진흙과 모기약이 범벅이 되어 덕지덕지 말라붙어 있었다. 철수용 헬리콥터를 기다리는 동안 병사들은 전우들의 시체를 나란히 눕혀 놓고 그 앞에서 C-레이션 깡통을 따서 시장기를 메우고 있었다. 전우의 죽음 앞에서도 배고프고 졸리는 것은 참을 수가 없었다.


기지로 돌아와 첫 밤을 맞았다. 있어야 할 소대장 자리가 텅 비어 있었다. 그제야 소대장의 죽음이 실감됐다. 그는 몇 달 전에 많은 전과를 올려 고국으로 포상 휴가를 다녀왔다. 그때부터 많은 여학생들과 알게 되어 펜팔을 맺고 있었다. 월남의 여름 해는 정말로 길었다. 저녁 식사를 끝냈는데도 해는 중천에 떠 있었다. 식당에서 오자마자 그는 편지부터 읽기 시작했다. 편지 읽는 소리가 간간이 새어나왔다. 월남의 영웅, 미남의 소위를 흠모하는 여고생들의 사연들이었다. 그의 침대 머리맡에는 언제나 꽃봉투가 한 뼘씩 쌓여 있었다. 읽을 때는 누워서 뒹굴었다. 기분이 좋으면 18번인 문주란의 ‘돌지 않는 풍차’를 불렀다. 약간 음치이긴 해도 특유의 가락과 감정이 있었다. 고개를 약간 뒤로 젖힌 채 눈을 지그시 감고 마치 예배를 끝마무리하는 목사님처럼 팔을 하늘로 치켜 올리고 목을 좌우로 저어가면서 소리를 뽑아내곤 했다. 하지만 그 모습은 이제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텅 빈 침대 위에는 임자 잃은 꽃봉투만 쌓여갔다. 그는 침대 밑에 귀가 쫑긋하게 올라간 귀엽고 통통한 황색 강아지를 길렀다. 주인을 잃은 첫 날부터 그 강아지는 식음을 전폐했다. 병사들이 안아주고 밥을 떠 넣어 줘도 먹지 않았다. 매일 밤 내는 애조 띤 울음소리가 병사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어느 날 그 강아지는 천막이 보이는 모래 언덕, 뜨겁게 달아오른 모래위에 잠들어 있었다. 그 강아지의 죽음과 함께 소대장에 대한 추억도 소멸돼갔다.


나 역시 몇 명의 아가씨들과 펜팔을 맺었다. 그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아가씨는 조치원 아가씨였다. 글씨도 예쁘고 내용도 재미있고, 글 솜씨도 깔끔했다. 수십 통의 편지를 주고받으면서도 서로는 신상을 소개하지 않았다. 사진도 교환하지 않았다. 생활에 대한 이야기만으로 재미있었다. 보병대대로 파견된 포병 연락장교, 대위 한 사람이 그녀의 편지를 탐내기 시작했다. 자기에게 양보하라고 매일같이 성화를 바쳤다. “야, 지소위. 너는 많잖아. 그 아가씨 내게 좀 넘겨라, 응?” 견디다 못해 그에게 편지를 쓰도록 양보했다. 그 후 그녀는 아무에게도 편지를 쓰지 않았다. 마지막 편지가 날아왔다. “사람은 내 남 없이 더 많이 배워야 할 것 같습니다.” 그녀가 내게 심어주었던 분위기가 섬세하고 깊었던 것만큼, 그 마지막 편지가 내게 남긴 여운도 좀처럼 가시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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