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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남국의 밤하늘 아래 인분을 베개 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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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9-11-17 16:20 조회5,92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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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혼자서 2개 중대를 동시에 지원하는 관측장교가 됐다. 제3중대가 작전을 나가면 제3중대를 따라가 포를 지원했고, 연대 수색중대가 장거리 정찰을 나가면 거기에도 따라 나갔다. 제3중대는 연대의 5분 대기조 같은 부대였고, 수색중대는 전투부대 중의 전투부대로 알려져 있었다. 대규모 작전을 기획하려면 그에 필요한 정보를 획득해야 했고, 그 정보를 얻기 위해 적진 지역을 숨어 다니는 것이 수색중대의 임무였다. 이런 관계로 나는 다른 관측장교들보다 3∼4배  진하게 고생은 했어도, 지나고 보니 그만큼 더 보약이 됐다는 생각이 든다. 작전의 본질, 병사들의 심리, 전투 리더십 등에 대한 보다 다양하고 구체적인 직관을 기르게 된 것 같다. 작전계획을 짜는 지휘관은 그의 작전계획에 의해 병사들이 어떻게 움직일지를 훤히 상상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경험이 없는 사람들이 작전계획을 세우면 계획은 비현실적인 것이 되고, 현장 지휘관들로부터 불신 당하게 된다. 수없이 많은 마을작전과 매복작전에 참가하여 경험해 보니 마을작전이 산악작전보다 사뭇 위험했다. 마을을 수색하다가 보면 주민을 가장한 베트콩들에게 희생되게 마련이었다. 가장 속기 쉬운 것이 어린이와 부녀자들이었다. 어린아이들이 과자를 달라며 우르르 몰려왔다 간 자리에서 수류탄이 폭발하기도 했고, 계집아이가 주는 바나나를 받아먹다가 독을 먹은 병사도 있었다. 미군과 한국군의 찢겨진 사지가 나뭇가지에 걸려 있고, 목이 거꾸로 매달려 있었던 적도 있었다. 이런 광경을 목격한 병사들은 그 마을 전체를 적으로 간주하고 무자비한 보복을 가했다. 한국군이 가장 많은 피해를 본 곳은 정글이 아니라 마을이었다. 어제까지도 안전했던 길을 오늘 달리다가 저격을 받기도 했고, 어제까지도 우리가 C-레이션을 나누어주고 잔치를 열어주던 마을에 오늘은 베트콩들이 들어와 점령하고 있기도 했다.


마을에서 불과 100m도 안 되는 곳에 한국군 소대기지가 있었다. 이웃 부대인 제2중대 소속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그 마을에 수십 명의 베트콩들이 들어왔다는 정보가 입수됐다. 내가 소속된 제1대대가 그 마을을 둘러쌌다. 마을에서 엄청난 양의 총탄이 날아왔다. 기갑 소대에 소속돼 있는 두 대의 장갑차가 보병 대대장의 명령에 따라 마을로 돌진하다가 적탄통이라는 로켓에 맞아 소대장을 포함해 4명이 순식간에 전사했다. 화가 난 대대는 총을 요란하게 쏘아댔지만 전과는 전혀 없었다. 400여 명의 한국군이 불과 10여 명의 베트콩들에 농락당한 것이다. 화가 치민 연대장은 월남 성장(도지사)과 협조하여 그 마을에 포격을 가했다. F-5기 4대가 거꾸로 내리꽂히면서 가공할 만큼의 포탄을 퍼부었고, 곧이어 포병이 포탄을 소나기 퍼붓듯 쏘아댔다. 마을 전체가 뒤집혔다. 포는 아주 먼 곳에 있기 때문에 관측장교인 내가 현장에서 좌표를 알려주고 명중되도록 포탄을 유도해 준 것이다. 새까맣게 탄 마을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여러 마리의 소가 검게 그을려 죽어 있었다. 동물의 배는 모두가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고, 타버린 동물들로부터 뿜어나는 냄새는 참으로 견디기 어려울 만큼 역겨웠다. 얼굴을 잔뜩 찡그린 어느 병사가 기다란 나뭇가지를 가지고 풍선같이 뺑뺑하게 부어오른 소의 배를 긁었더니 노란 진물이 흘러나왔다.


400여 명의 병력을 가지고도 한국군은 소수의 베트콩들로부터 귀중한 목숨을 잃고 처절한 분풀이만 한 것이다. 대대장도 연대장도 병사들을 1m 간격으로 세워 마을을 포위하도록 명했다. 하지만 이런 방법은 군을 모르는 일반 시민이나 취할 수 있는 옹졸한 방법이었다. 소단위 특공조를 편성해 예상퇴로에 매복해 있다가 잡는 것이 최고였다. 매복작전은 한국군의 강점이었다. 한국군이 올린 총 전과의 40% 정도가 매복작전에서 올린 것이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적을 코앞에 둔 대부분의 고급 지휘관들은 이런 매복작전의 근본 철학을 이해하지 못하고 참으로 이상한 지휘를 했다. 강강술래 식의 줄을 세울 것이 아니라 예상 퇴로에 소대단위로 매복을 시켰다가 밤에 때려잡았어야 했다. 전투에서는 서두르는 쪽, 성질 급한 쪽이 피해를 보게 돼 있다. 대부분의 한국군 지휘관들은 참을성 있게 머리를 쓰지 않고, 병사들을 가지고 즉흥적인 인해전술을 폈다. 아마도 앞으로 전쟁이 난다면 똑같은 방법으로 싸울 것 같다. 1996년 미련하게 진행했던 강릉작전에서처럼. 우리는 가족이 아플 때, 능력 있는 의사를 갈망해 왔다. 아무리 훌륭한 의사라 해도 한 번에 한 사람의 목숨밖에는 건지지 못한다. 하지만 무능한 지휘관은 한 번에 수십-수만의 목숨을 절단 낸다. 뛰어난 지휘관을 만났더라면 아마도 국립묘지에 묻혀있는 수많은 참전용사들이 그처럼 일찍 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월남전에서의 죽음은 가지가지였다. 오음리에서 나와 함께 훈련받던 중사는 논둑을 행군하던 중 멀리 앉아있던 헬리콥터에서 떨어져 나간 뒷날개에 맞아 전사했다. 어떤 포병 소위는 작전을 나갔다가 중대 병사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작전지역에서 야숙을 하려면 동그랗게 진지를 구성해 가지고 사방을 촘촘히 방어한다. 병사들 사이에는 선을 연결해 놓고, 앞에서 조금이라도 이상한 징후가 있으면 당기는 방법으로 신호를 보냈다. 이렇게 만반의 준비를 해놓고 있을 때, 포병 소위에게 급한 볼일이 생겼다. “야, 이 병장, 나 저 앞에 가서 큰일보고 올 테니, 소리가 나도 쏘지 마. 알았지?” “네. 알겠습니다.” 불과 3분, 이병장만 단단히 믿고 그는 유유히 돌아왔다. 하지만 그 사이에 이병장의 위치가 변경됐다. 그는 그의 매복 위치를 김상병에게 넘겨주면서 소위의 부탁을 깜박 잊었다. 임무를 교대한 김 상병, 부스럭 소리가 나고 시커먼 사람이 성큼성큼 걸어오자 극도로 긴장하면서 포병소위를 향해 총을 쐈다. 목숨을 이병장 한 사람에게만 의탁한 것이 잘못이었다.


살아남는 경우도 다양했다. 월남에서는 편지가 여러 장씩 몰려온다. 어떤 병사는 애인으로부터 받은 여러 장의 두툼한 편지들을 윗주머니에 넣고 다녔다. 그런데 그 두툼한 편지뭉치를 총알이 뚫지 못해 목숨을 건진 병사도 있었다. 3성 장군으로 예편한 나의 동기생은 바위틈에 모기장을 치고 누워 있었다. 바로 그때 “휘익-” 하고 검은 물체가 모기장을 뚫고 콧등 위로 지나갔다. 그 무서운 적탄통(미니 무반동총)은 불과 100m를 지나가 폭발했다. 어느 기갑(탱크)병과 소위는 헬기로 40분 거리에 위치한 사단본부에 갈 때마다 긴급 상황이 벌어졌다. 그의 자리를 임시로 메우러 왔던 다른 소위들이 대신 출동하다가 3번씩이나 번번이 적탄통에 맞아 전사했다. 명이 긴 그 소위는 후에 2성 장군으로 예편했다.


매복을 나갔다가 폭우를 만났다. 원체 억세게 쏟아지니까 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처음엔 판초 우의를 입고 배낭을 깔고 앉았다. 물이 점점 더 높이 차 올랐다. 조금씩 더 높은 곳으로 이동해 다니면서 쪼그려 앉다가 끝내는 높은 곳이든 낮은 곳이든 모두 다 물에 잠겼다. 베트콩을 잡기는커녕 익사가 문제였다. 물이 가슴까지 차올랐다. 헬리콥터가 뜨지 못하기 때문에 철수도 할 수 없었다. 캄캄한 밤에 섣불리 이동하다가는 깊은 웅덩이에 빠져 집단으로 익사할 수도 있었다. 이런 밤이야말로 일각이 여삼추인 지옥이었다.


병사들이 곤히 잠든 한밤중, 갑자기 출동명령이 내렸다. 헬기가 중대원들을 실어다 추수가 끝난 마른 논바닥에 내려놓았다. 추후 명령이 떨어질 때까지 논바닥에서 대기하라는 게 명령의 전부였다. 4㎞ 쯤 떨어진 곳에선 제3대대가 작전을 하고 있었다. “따따닥… 쿵 ….” 수많은 조명탄들이 하늘을 대낮 같이 밝혔다. 손수건 몇 개 크기만 한 낙하산에 조명탄이 매달려 실바람에 나부끼면서 흘러내렸다. 꺼지기 전에 또 다른 몇 개가 떠올라 밤하늘을 밝게 비췄다. 처음엔 신기했지만, 나중엔 아름답고 평화롭기까지 했다. 눈을 부비면서 출동했던 병사들이 논둑에서 대기하고 있는 동안 긴장이 풀리기 시작했다. 멀리서 은은히 들려오는 총소리를 자장가 삼아, 끝없이 펼쳐지는 조명탄의 유희를 바라보면서 병사들은 논둑을 베개 삼아 하나씩 잠들어갔다. 날이 새자 이들은 마른 인분을 툭툭 털고 일어났다. 뒤통수가 께름칙하여 뒷머리를 자꾸만 털어 냈다. 몇 녀석이 기분 나쁘다며 침을 내뱉고는 인분이 없는 곳을 골라 배낭을 깔고 앉아 퉁명스런 얼굴로 C-레이션을 먹기 시작했다. 입을 오르내리는 하얀 플라스틱 스푼이 그때 따라 유난히도 희어 보였다. 중대장은 기막힌 듯 그런 병사들을 뻔히 바라보고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컴컴한 새벽에 논둑으로 나와 일렬로 늘어앉아 변을 본 후 조심스레 발을 들어 올려 남의 변을 피해가며 돌아가는 것이 그들의 생활문화였다. 좀 산다는 집에는 반 수세식 화장실이 있었다. 매끈매끈한 콘크리트 바닥에 디딤 자리를 만들고, 그 사이에 경사진 도랑을 파서 물만 부으면 잘 씻겨 내리게 했다. 월남인들은 컴컴한 새벽에 가장 활발하게 움직였다. 검은 옷을 입고, 삿갓같이 생긴 풀 모자를 쓰고, 농작물로 채워진 바구니를 막대기의 양쪽 끝에 매달아 어깨 위에 메고 출렁이면서 빠른 걸음으로 움직였다. 새벽에 일하고 무더운 낮에는 ‘시야스타’라고 하는 열대 식 낮잠을 잤다.


가옥의 벽과 바닥은 두꺼운 콘크리트로 지어져 있었고, 하얀 벽과 스페인 식 붉은 기와가 마을의 특색이었다. 마을마다 남국의 상징인 야자수가 있었고, 대나무 숲이 두껍게 우거져 있었다. 초록색 사이를 뚫고 새어나오는 흰 벽과 붉은 지붕의 조화는 멀리서 보기엔 환상적이고 낭만적이었다. 그 속에 수많은 꿈들이 서려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가까이 가서 보면 속 빈 강정이었다. 가구 같은 건 거의 없었다. 그들은 그물 띠를 그네처럼 걸어놓고 몸을 웅크린 채 흔들거리다 잠을 잤다. 차가운 바닥에 침대가 덜렁하니 놓여있지만 잘해야 우리의 평상 같은 것들이었다. 문은 아예 없었다. 화장실에도 문이 없었다. 칸막이라야 야자수 잎을 엉성하게 얽어맨 것이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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