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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에서는 최후의 한 방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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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9-11-17 16:32 조회5,74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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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도생활 1년은 10개월간의 학부교육과 2개월간의 군사훈련으로 구성됐다. 4학년이 되면서 나는 두 가지 직책을 연속해 맡았다. 하나는 중대 선임하사관 생도였고 다른 하나는 1,2학년 하기군사훈련교육대 대대장 생도였다. 중대 선임하사관 생도는 학부교육 기간 중 내무생활에 대해 시어머니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었고, 1,2학년 하기군사훈련 교육대장은 하기군사훈련 기간 중 1,2학년의 전체 생활을 관장하는 총사령이었다. 하기군사훈련은 1,2학년에게 가장 고된 기간이었다. 아침 6시부터 밤 10시까지 공포분위기 속에서 인간의 한계를 시험할 정도의 고된 야외훈련과 과격한 내무생활로 일관되는 훈련이었다.


학년이 바뀔 때마다 1,2,3학년은 누가 중대 선임하사가 되느냐에 대해 가장 관심이 많았고, 하기군사훈련 기간이 다가오면 1,2학년은 「하기군사훈련 교육대」의 대대장, 중대장, 구대장 생도를 누가 맡느냐에 ‘살았다!’와 ‘죽었다!’가 교차했다. 나는 1,2,3학년 때 조용하게 독서에만 몰두했다. 누구의 눈에나, 나는 어느 한 틈바귀에 묻혀 있는 샌님이었다. 하급생에게 가장 무섭게 굴어야 할 시어머니 같은 직책에 내가 임명된다는 것은 상상 밖의 일이었다. 한걸음 더 나아가 예식을 중요시하는 생도생활에서 키가 가장 작은 내가 최고 지휘관 생도로 지명됐다는 것은 더더욱 놀라운 이변이었다.


직책을 수행하는 나의 모습을 관찰한 동기생들은 또 한 번 놀랬다. 나는 그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조용한 샌님이 아니었다. 후배들을 조였다 풀었다 하면서 재미있게 지휘를 했다. 어제도 오늘도 변함없이 공포와 긴장으로 일관하는 생도생활, 그래서 짜증나는 내무생활을, 나는 다소나마 즐겁게 해주고 싶었다. 내가 나타나면 하급생들은 또 무슨 웃음거리를 주려나 하고 기대하는 눈치였다. 내 얼굴만 봐도 실실 나오는 웃음을 참는 녀석들도 있었다. 선배들은 후배들을 순종시키기 위해 기합이라는 수단을 활용하여 권위를 세우려 했다. 그럴수록 선배에 대한 권위는 땅에 떨어지고 뒤에서 손가락질만 받았다.


나는 하급생 시절에 수많은 선배들로부터 지휘를 받으면서 늘 답답한 게 있었다. 어째서 선배들은 하급생의 복종하는 자세만 보려고 애를 쓰는지, 앞에서는 복종하는 체 하고 뒤에서는 욕을 하는 하급생의 모습이 상상되지 않는 것인지, 자기들도 그런 하급생 시절이 있었는데 왜 패턴을 바꾸어 보려 하지 않는지 참으로 궁금하고 못 마땅했다. 위대한 지휘관은 병사들의 마음을 잡지 몸을 잡지 않는다. 나폴레옹도 그랬고, 셔먼, 그랜트, 맥아더, 한니발, 예수님 모두가 그랬다. 나폴레옹은 옷을 멋지게 입고 서슬 퍼런 위엄을 내보이며 호령을 한 것이 아니라 캠프파이어를 돌면서 병사들의 마음을 다독였다. “나는 자네들을 위해 프랑스 최고의 의료진을 확보했네.” 병사들이 가장 바라는 말이었다. 이에 대해 병사들은 이렇게 반응했다. “장군님, 전투가 벌어지면 절대로 앞에 나서지 마십시오.”


아마도 당시 상급생들이 이런 생각을 했더라면 하급생들을 향한 훈육이 보다 훌륭했을 것이다. 하지만 선배들은 하급생들이 앞에서 순종하는 겉모습을 보고 만족해했다. 그렇지 않은 모습을 볼 때에는 가혹한 체벌을 가했다. 그들이 조성하는 공포분위기가 후배들에게 얼마만큼의 심리적 상처가 되는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왜 이 일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리와 명분을 설명하지 않고, 무조건 복종만을 강요했다. 이의도 달지 말고, 의문도 갖지 말고, 무조건 복종하는 것이 진짜 군인이라는 것이었다. 하급생이었을 때 나는 불만이 많았다. “나라면 저렇게 하지 않고 이렇게 할 텐데!” 가장 싫었던 것이 공포분위기였다. 공포심은 예측이 불가능해질 때 생긴다. 10분 후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저 선배의 행동이 어디로 튈지,  후배들의 가슴은 그야말로 좌불안석이었다. 아무리 힘들어도 예측된 일을 하면 마음이 편하다. 나는 후배들에게 예측할 수 있는 선배가 되기로 했다. 요점부터 명확하게 알렸다. 그 요점들만 이행하면 일체의 뒷말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 스스로가 많은 생각을 해야 했다. 생각을 하지 않으면 즉흥적일 수밖에 없다. 바로 그 즉흥성이 럭비공 같은 행동을 유발하는 것이었다.


금요일의 자유시간은 대청소시간이었다. 선배들은 가급적 더 많은 시간을 청소시간으로 뽑아내기 위해 식사시간까지도 제한했다. 기껏 청소를 했는데도, 잘못됐다며 예외 없이 기합을 주었다. “각 분대는 정해진 청소구역을 철저하게 청소하라. 만일 검사해서 지적받으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가 있을 것이다. 알겠나?” “네, 알겠습니다.” “목소리가 작다. 다시, 알겠나?” “네, 알겠습니다.” “실시.”


청소 주안점도 말해주지 않고, 어쩌다 봉걸레 조각만 바닥에 떨어져도 기합을 주었다. 마치 숨어 있다가 위반차량을 적발하는 경찰처럼! 청소를 하면서도 내내 불안에 떨었다. 맺고 끊는 맛이 없었다. 이런 생활 속에서는 맺고 끊는 분명한 성격이 길러질 수 없었다. “야, 아무리 열심히 해도 소용없어. 어차피 기합은 받아야 하는 거 아냐? 신경 쓰지 말고 기합 받을 각오나 해 두자고, 어차피 자습시간까지는 당해야 하는 거 아냐?” 나는 하급생들에 만연해 있는 이러한 인고의 문화를 고치기로 했다. 한 시간만 청소에 사용하기로 했다. 그 중에서 20∼30분은 연설시간이었다. 내가 일주일간 읽고 느낀 것들을 이야기해 주면서 후배들의 독서욕을 자극했다. 설교를 듣는 하급생들의 표정이 평화로워 보였고, 반짝이는 눈망울로 주시하는 모습들이 귀여워보였다. “자, 이제부터 청소를 해야겠지?” “예.” “청소시간은 30분. 청소복장은 상의를 벗은 팬티 바람, 청소 요점은 다음과 같다…… 이상의 요점만 완수하면 뒷말이 없다. 주간 대청소는 일일청소와 다르다. 바닥을 봉걸레로 닦다 보면 걸레조각이 떨어질 수 있다. 그런 건 내일의 ‘아침청소’ 할 때 쓸면 된다. 대청소는 일일청소로 해결되지 않는 기본적인 부분을 청소하는 것이다. 알겠지” 후배들은 자기들의 생각과 일치하는 이 지시에 만족해했다. 한 시간에 걸쳐 해오던 일을 불과 20분 만에 해치웠다.


청소구역 중에서 가장 신경 쓰는 곳은 화장실이었다. 소변기 주위에는 늘 얼룩이 져 있었고, 이를 지우기 위해서는 독한 염산을 사용해야 했다. 염산이 몸에 튀면 화상을 입게 되고 냄새 또한 고약했다. 나는 대청소 때마다 하급생 중에 누군가가 당해야 하는 이 고통을 덜어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생도 각자로 하여금 소변 방울을 깨끗하게 처리하도록 만드는 길밖에 없어 보였다. 인격과 명예를 존중한다는 분위기 속에서 소변 방울 처리에 대해 이래라 저래라 간섭한다는 것은 ‘치사한 좁쌀’이라는 트레이드마크를 자청할 수 있었다. 만일 내가 하급생들에게 이런 말을 하겠다고 동료들에게 의논하면 필시 ‘아서’라고 말했을 것이다. 또한 이 같은 생각을 동료에게 설명한다는 것은 차라리 실천을 강행하는 것보다 더 힘들고 쑥스런 것이었다.


며칠간의 생각 끝에 나는 결행을 했다. 화창한 어느 가을날 아침, 중대원들이 학과출장 행진을 하기 위해 내무반 건물 앞에 집합해 있었다. 책가방을 겨드랑이에 바짝 끼고 긴장된 모습으로 서있는 하급생들을 향해 나는 느닷없이 “엎드려, 일어서”를 여러 번 반복시키면서 긴장을 고조시켰다. 영문도 모르고 용수철처럼 ‘엎드렸다 일어섰다’를 반복한 하급생들에게 나는 내 특유의 연설 폼을 잡았다. 하급생들은 ‘이크, 또 무슨 날벼락이 떨어질까’ 하면서 바짝 긴장했다. 잠시의 침묵을 지키며 나는 직사각형 대열의 좌우를 무겁게 훑어보았다. 아마도 그 모습을 본 후배들과 동기생들은 내 입에서 무슨 중대한 성격의 말이 나올 것이라고 직감했을 것이다. “화장실에 가거든, 평소보다 한 발 더 전진하라! 그리고 최후의 한 방울까지 철저히 관리하라!”


굳어졌던 얼굴들이 잠시 의아한 얼굴들로 바뀌더니 이내 말의 의미를 터득했는지 하급생들의 눈망울과 입가에 웃음이 담기기 시작했다. 동기생인 4학년들이 먼저 킥킥거리기 시작하자 그들도 이에 가세했다. 그 후 얼마간은 화장실에 다녀오는 하급생들의 얼굴에 웃음꽃이 맺혔다. 냄새 없는 화장실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 후 ‘최후의 한 방울론’은 중대의 명언으로 회자됐다.


사관학교를 졸업하면서 하급생들이 추억의 메모지를 써주었다. 일부를 발췌하여 담아본다.



하기훈련 때였다. 대대장으로서 식당 계단에 올라서고 있었다. 올라서서 한번 훑어보았다.

서서히 입을 떼고……우리 1학년 뒤에 섰던 2학년생도 하나 왈. “참으로 침착하단 말이야…… 놀래겠어.” 지금도 그 말이 생각나서 쓴다. 사실 간덩이가 큰 것 같다. 중선 맡은 시,

- 왜 속삭이나 - 최후의 한 방울까지 등등의 명언은 잊을 수 없다. 그 유머러스한 것들은 전방에서도 뿌려 주기를 바란다. 그러나 꼭 한마디 속삭이고 싶다. 작은 고추는 맵다고……

알찬 사람이라는 말은 바로 지만원 생도를 두고 한 것 같다. 남들이 시간을 선용 못하는 것을 못내 안타까워하면서 내적인 실력 도야를 연마하는 진실한 의미의 강한 사람이다. 첫 인상이 숫처녀 같아 마음마저 그러리라 생각 했다가는 큰일이다. 일찍이 중대 선임 하사관 생도를 근무할 적에는 큰소리 한 번에 중대 1, 2, 3학년 전생도가 추풍낙엽 지듯 했다. 그러나 사적으로 대하고 보면 끝없는 사나이…… 자기가 믿는 자에게는 간이라도 줄 이 다정다감한 사람이다. 거기에 합기도로 닦은 강인한 체격과 우수한 머리로서 최고의 추리력을 가진 그야말로 문무를 겸비한 인물임을 말해둔다.

작은 체구에서 울려 나오는 우렁찬 구령 소리는 천지를 진동시킬 것 같고 모든 일에 침착 냉정하며 청산유수와 같은 웅변은 부러울 정도입니다. 무슨 일에든지 성의가 대단하시며 또한 책임감이 왕성해서 반드시 성공하시리라 믿습니다. “최후의 한 방울까지”라는 말씀이 언제나 잊혀지지 않을 것입니다. 가장 힘들다 할 하기군사훈련 시 대대장 생도로서 또 중대 선임 하사관 생도로서 그의 혁혁한 공적은 후배의 머릿속에 끝까지 남으리라. 빈틈없는 아쌀한 성격의 소유자이다. 어느새 들어갔는지 그 작은 체구와 키에 고도한 교양과 예리한 판단력, 어떤 때는 희랍 신화의 공장 같은 기분이다.

몸은 적으나 떡 벌어진 어깨와 한번 입을 열면 산천이 들썩하는 목소리에는……여기에 못지않게 풍부한 인간미와 남성미를 지닌 KMA의 심볼이라고도 하겠다. 그러나 불의와 타협을 결코 금하는 정의에 사는 맡은바 책임을 투철히 이행하는 한국의 나폴레옹을 기대한다. 온 세계가 불바다가 되어도 그는 …… 조국을 잊지 않으면서 침착할 지니, 아늑한 봄 날씨에 돋아나는 연약한 새싹 같이 그의 인상은 새 희망을 품어주고 진리를 탐구하는 열성이 뚜렷이 보인다. 어딘지 모르게 깊은 생각에 잠겨 있는 듯한 눈초리는 날카로운 이성과 어울려 세계를 내려다보고 있는 듯하다. 신입생 교육대에서부터 소개받기를 조그마하고 말 잘한다고. 생도대에 와보니 과연!

하급생을 교육하는 데에는 배꼽을 쥐게 하면서 인상적으로 타일렀다. 기발하고 꼼꼼하다. 눈가엔 휴머니티가 가물가물! 화장실에 갈 때마다 분대장 생각이 납니다. 최후의 한 방울!

그 생각만 하면 왜 그렇게 웃음이 납니까? 유머와 위트가 넘치는 사나이!

                        맨 앞이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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