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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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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9-11-17 16:49 조회8,56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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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역사는 맥주병과 같다는 생각을 한다. 현실은 병목처럼 좁아 보이고, 지나간 과거는 맥주병의 몸통처럼 넓고 넉넉하게 보인다. 현실은 괴로워도 일단 과거의 세계로 넘어가면 아름답게 보이기까지 한다. 내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 여기까지 살아온 것이 기적이라 할 만큼 어려웠고 고단했다. 서울 변두리 장안평 돌산 밑, 흙으로 지어진 토담 방에서 시골 중학교 1학년 때 선생님이 주신 영어책과 통근차 안에서 형들이 준 수학 책들을 가지고 밤을 새우며 공부를 했다. 때 묻은 이불을 머리까지 둘러쓰고, 이불 속에 감추었던 손가락을 꺼내 책장을 넘기면서 그리고 손이 너무 시릴 때는 손을 밖으로 내지 못하고 노트 대신에 둘 째 손가락을 가지고 맨 무릎 위에 글씨를 쓰면서 밤을 새운 적이 많았다. 


부뚜막에 놓였던 밥에는 바늘 같은 어름이 송골송골 박혀 있었다. 나는 거기에 왜간장을 넣어 숟가락으로 문질러 얼음을 녹인 후 밥을 입속에 넣고 한동안 온기를 가하여 넘기긴 했지만 위경련으로 데굴데굴 구를 때가 참으로 많았다. 장안평에서 답십리를 지나 청계천 둑을 따라 걸어서 숭인동에 있는 학교에까지 가는 길은 동네가 없는 허허 벌판이었다. 걸어 다니는 밤길이 고단하기는 했지만 고단한 것은 무서운 것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 야간 수업이 끝나면 숭인동 근처에 있는 학교에서 장안동 토담집까지 청계천 둑길을 따라 걸었다. 답십리와 장안평 돌산 사이에는 공동묘지가 있었고 그 주위에는 인가가 없었다. 그 곳을 앞에 둘 때마다 행여 동행자라도 나타날까 싶어 길목에서 한참씩 기다렸다. 가을이면 공동묘지의 풀이 잔뜩 메말라 쥐가 다닐 때마다 부스럭 소리를 냈다. 짧게 나는 그 소리는 차라리 가슴을 도려내는 날카로운 칼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공동묘지 앞에서 잔뜩 긴장하고 있는데 거기에 부스럭 소리까지 가세하면 가슴이 뛰고 머리가 하늘로 솟았다. 비가 쏟아지는 날엔 그야말로 칠흑 같은 논길을 더듬으면서 걸었다. 높은 논둑에서 미끄러지면 논으로 굴러 떨어져 나도 모르게 울음이 터졌다. 무서움과 벌이는 사투의  공포, 14-16세의 나이에는 너무 가혹한 형벌이었다. 춥고 비가 오는 것은 참을 수 있었지만 무서운 것은 참을 수가 없었다.


야간고등학교 2학년 시절, 나는 반 친구의 도움으로 한 가정의 가정교사로 고용되었다.         

"이보라, 창대 학생, 노가 알다시피 우리 한식이 놈이 공부를 못해써, 오디 마땅한 학생 하나 가정교사로 소개 해보련?"


한식이 어머니의 말에는 강한 평양 사투리가 남아 있었다.


"우리 반에 쬐끄만한 녀석이 하나 있는데 머리가 천재예유, 쬐끄맣다고 얕보시지 말고 한 번 시켜보세유"


빨강 가죽가방에 화장품을 채워 가지고 가정을 방문하면서 학비를 버는 창대의 말이었다. 그는 나보다 나이가 서너 살 위지만 변두리 고등학교 야간 반 동창이었다. 한식이는 어머니가 일 나가 있는 동안 동네 아이들과 어울리는 데 익숙해 져서 한 시간 이상 진득하게 앉아 있지를 못했다. 나는 야간 고등학교 2학년이었지만 나보다 나이가 한 살 더 많은 한식이는 중학교 3학년이었다. 함수, 기하, 인수분해 등 간단한 내용들을 가르쳐 주지만 그의 머리는 형광등처럼 답답했다. 답답한 것은 한식이도 마찬가지였다. 그럴 때마다 그에게는 장난 끼가 발동했다.


"야, 요 쬐끄만 대가리가 왜 그렇게 좋으냐" 하면서 나의 머리를 툭툭 건드렸다.


"야 임마, 지만원, 내 팔 좀 만져봐, 돌같이 딴딴하지? 자-식, 팔이 이게 뭐냐, 야, 임마 누가 너 건드리면 나한테 일러, 이 주먹 한방이면 다 날아간다구, 알았어? 자식, 와리바시처럼 가느다란 요 팔 가지고 뭘 하냐?"


당시 용두동에는 청계천을 가로지르는 나무다리가 하나 있었는데 물에 썩지 말라고 검은 콜타르를 발라 놓았기 때문에 사람들은 검정다리라 불렀다. 다리 밑에는 염색 업자들과 양아치라 불리는 넝마주이들이 어우러져 살았다. 다리 밑을 빼곡히 메운 육중한 가마솥들에서는 언제나 퀴퀴한 수증기 냄새가 인근 마을에까지 퍼져나갔고, 각목으로 묶여진 건조물에는 염색된 천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남 보기엔 초라하고 불행해 보이지만 밤이 되면 이들이 살고 있는 거적때기 집들에서는 깔깔대는 웃음소리가 끊기 질 않았다. 용두동 일대의 길바닥은 검고 미세한 흙먼지로 다져져 있어서 바람이 불 때마다 검은 먼지들이 길바닥 위에 얕게 깔려 구름처럼 이리저리 떼 지어 날아다녔고, 슬리퍼를 신고 다니는 사람들의 뒤꿈치에는 검은 얼룩이 덕지덕지 올라붙었다.


한식이네 옆집에는 이십칠 세의 여인이 어린 두 남매를 데리고 살면서 한 식구처럼 지내고 있었다. 원산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월남하여 결혼을 했지만 불과 5년 만에 남편을 잃고, 일곱 살 난 딸아이와 다섯 살 난 사내아이를 데리고 셋집에 살고 있었다. 돈 많은 고무신 공장 사장을 만나 팔자를 고친 한식이 어머니는 말투에서부터 무식함이 풍겼지만 이 27세의 여인에는 어딘가 귀티가 배어 있었다.


내가 공부를 가르칠 때마다 그녀는 거의 매일 같이 학습과정을 지켜보면서 한식이에게 보충설명을 해주기도 했고, 한식이가 장난을 칠 때마다 주의를 주기도 했다. 그녀가 매일 같이 학습과정을 지켜본 것은 어린애처럼 보이는 내가 우악스런 한식이에게 놀림을 당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였을 것이다. 그녀는 또한 한식이에게 학습효과가 없으면 나의 일자리도 끝이 날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내가 설명해주는 내용을 다른 방법으로 한식이에게 아주 열심히 설명해 주었다.


이런 가정교사 자리도 겨우 6개월 만에 끝이 났다. 한식이네가 더 좋은 곳으로 이사를 가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한식이를 휘어잡을 수 있는 나이든 가정교사를 원하는 것 같기도 했다. 먹고 자는 문제를 한식이네 집에서 해결해오던 나는 갑자기 오갈 데 없는 신세가 돼버렸다. 

난감해 하는 내게 그 여인은 정성껏 저녁밥을 차려주었다. 맛있게 먹고 있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마음 아파해 하는 눈치였다.


"얘, 만원아. 밥과 빨래는 내가 해주고 싶다. 당분간 학비까지도 대줄 수 있다. 하지만 잠자리만은 어찌 해볼 도리가 없구나. 어떻게 하면 좋겠니?"


의외의 따뜻한 말에 너무나 고마워서 눈물이 핑 돌았다.


"고맙습니다. 정말로요"


"당장 오늘밤은 어디서 잘래?"


"문제없어요. 학교 교실에 가서 자면 돼요. 선배들이 불을 켜놓고 밤새워 공부를 하는 것 같던데요"


"너 정말 그럴 수 있겠니?"


"그럼요. 그런 것쯤은 문제도 없어요"


내가 다니던 한영고등학교 야간반은 용두동 미나리 밭 한 가운데 지어진 판자 집 건물이었다. 판자 집은 비가와도 썩지 말라고 검은 콜타르를 발라 우중충해 보였다. 어둠이 짙게 깔리기 시작하면 미나리 밭에는 검고 음산한 기운이 퍼지기 시작했고 그 음산한 기운은 마치 이 검은 판자 집에서부터 퍼져나가는 것처럼 보였다. 바로 그 건물에, 세 명의 학교선배들이 교실 하나를 차지하여 입시 공부를 하고 있었다. 교실 앞을 지나가자 선배들이 나를 불러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너 벌써부터 입시 공부를 시작하는구나? 참 착실하다 야. 그래, 그래야 돼"


나는 유난히 무서움을 타기 때문에 선배들이 있는 바로 옆 교실을 선택했다. 멀리 가로등에서 힘겹게 비쳐오는 엷은 불빛이 또 하나의 위안이 됐다. 불 꺼진 교실. 검은 색이 칠해진 네 개의 책상을 이어놓고 책가방을 베개 삼아 고단한 몸을 의탁했다. 선배들이 옆방에 계속해서 있어 주리라 믿으면서! 교실 바닥은 딱딱하게 마른 진흙이었고, 앉을 때마다 이리 저리 움직이는 책걸상 다리에 패여 마치 바다 수면을 정지시켜 놓은 것처럼 울퉁불퉁해서 몸을 뒤척일 때마다 책상이 기우뚱거렸다. 엄마의 모습이 떠올랐다. 주르륵! 뜨거운 눈물이 눈가로 흘러내렸다. 마치 여러 시간을 울고 난 어린아이처럼 온몸으로 흐느꼈다. 어느덧, 긴장했던 신경들이 파르르 떨면서 한 올씩 한 올씩 풀어졌다. 지칠 대로 지쳐버린 나의 육신에 어느 듯 몽롱한 기운이 퍼져나갔다. 밤중이었다. 요란한 비바람이 창문을 두드렸다. 세찬 바람이 귀신 소리를 내면서 창 틈 사이로 들어와 교실 바닥을 맴돌았고, 교실 안에 있는 책상들이 이리저리 움직이며 덜거덕거렸다. 귀신이 눈치를 채지 못하게 눈을 최소한으로 가늘게 떴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할 만큼 온몸이 경직됐다. 움츠릴수록 무서움이 더 크게 엄습해왔다. 이렇게는 도저히 새벽까지 견딜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급하게 궁리를 했다. 어느 창문을 열어야 단번에 열릴까? 만일 시도했던 창문이 단번에 열리지 않으면 귀신이 덤벼들지도 몰랐다. 이를 악물고 온힘을 다해 몸을 일으켰다. 쏜살같이 창문으로 다가가, 미닫이 창문을 열어 젖혔다. 창틀이 빗물에 불어 움직이지 않았다. 필사적인 힘으로 다른 창문을 열어 젖혔다. 어디로 뛰는지 나도 몰랐다. 가로등 불빛에 은가루처럼 휘날리는 빗줄기가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 어둠 속에서는 무서워서 속력을 다해 뛰었고, 가로등 밑에서는 비를 맞고 한참씩 쉬었다.


아침에 눈을 떴다. 나는 그 여인의 어린 남매와 나란히 누워 있었다. 그녀의 셋방에는 연탄 식 부뚜막이 설치돼있고, 그 부뚜막 위에는 물이 담긴 양은솥이, 화력이 약한 연탄불 위에 걸려있었다. 나는 그 부뚜막 위에 잠이 들어 있었던 것이다. 나를 보내놓고 마음이 놓이지 않던 그녀 역시 비바람이 세차게 불어치자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했다. 한밤중에 이상한 느낌이 들어 혹시나 하고 쪽문을 열어보니 내가 양은솥 옆에 새우처럼 몸을 틀고 잠들어 있었다고 했다. 그 여인은 나를 옆에 뉘여 놓고 눈이 붓도록 울었다 했다. 무의식중에라도 내가 그 여인의 집으로 달려온 것은 나의 의식 속에 이미 그녀에 대한 믿음이 자리하고 있어서였을 것이다.


그 충격이 컸던지 나는 밤마다 가위에 눌렸다. 식은땀을 너무 많이 흘려 속옷이 물에 담근 것처럼 흥건하게 젖었다. 그녀는 동네 엿 공장에서 매일 같이 엿을 사다 주면서 꿀 대신 엿이라도 먹고 빨리 회복하라고 했다. 누우면 온몸이 방바닥에 착 달라붙었고, 한 번 잠들면 송장처럼 늘어졌다. 어느 정도 회복이 되자 그녀는 내게 다락방 하나를 얻어 주었다. 그리고 얼마 후 나는 담임선생님의 주선으로 을지로 3가에 있는 어느 무역회사에 급사로 취직해 사무실에서 잠을 잘 수 있게 됐다. 


스산한 어느 가을날의 하교시간, 비가 주룩 주룩 내리고 있었다. 울타리도 없는 학교였지만 운동장 한 끝으로 연결된 길목에 그녀가 우산과 반장화를 들고 서있었다. 콧날이 시큰할 만큼 행복했고, 이제 나도 외롭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야, 지만원, 이것 좀 신어봐, 맞을까 모르겠다."


"응, 꼭 맞아 누나, 돈도 없는데 왜 이런 걸 다 사왔어?"


누나’라는 호칭은 그녀가 내게 준 선물이었다. “나, 아줌마 아니야, 이제부터 네 누나야” 아스팔트가 없었던 흙탕 길, 여기 저기 파여진 곳마다 회색빛 빗물이 고여 있었다. 둘이는 비닐우산을 함께 받쳐 들고 이리 저리 발걸음을 골라가며 걸었다. 몸을 밀착시키기 위해 나는 그녀의 허리를 감았다. 스커트 벨트 위로 밀려난 연한 살집이 너무나 감미로웠고, 손가락에서 솟아나기 시작한 행복감이 온 몸으로 퍼져나갔다. 이렇게 허리를 감고 걸을 수 있는 누나, 우산과 장화를 가지고 와서 버스 정류장에까지 데려다 주는 누나가 있다는 것이 처음에는 믿겨지지가 않았다. 계란형으로 조각된 고운 얼굴, 가늘게 흘러내린 목선, 투명하고 뽀얀 피부, 잔잔히 배어 나오는 윤기, 이렇게 황홀하고 매력적인 여인을 누나로 둔 것도 오직 꿈에서나 가능할 일이었다. 그녀가 없었던 어제는 지옥이었고, 그녀가 있는 오늘은 천국이었다. 그녀가 곧 나의 정신적 신분이 된 것이다.      

  

"누나, 오늘 학교에 멋쟁이 화학선생님이 새로 오셨는데 그 선생님이 나 보고 알프스 소년 같대, 알프스 소년이 뭐야?".


"응, 너처럼 얼굴도 희고 눈도 크고 해맑은 소년이지. 어쩌면 너는 어린 나이에, 눈 없으면 코 베 간다는 서울에 혼자 올라올 생각을 다 했니?"


"셋째형이 나보다 열 살이 더 많거든, 둘째형이 가사를 꾸려갈 때에는 나보고 공부만 열심히 하라 했는데, 둘째형이 객지로 나가고 셋째형이 가사를 꾸려가면서부터는 나에게 곡괭이를 들려주는 거야. 화전 밭을 파라고"


"그래서?"


"화전 밭을 파고 있는데 앞 동네 학교 스피커에서 국회의원 후보들이 연설을 한다고 방송을 하는 거야, 셋째형에게 잠깐만 갔다 온다고 했더니, 허파에 바람이 들면 안 된다며 못 가게 하는 거야, 아버지는 늙으시니까 형이 시키는 일에 반대는 못하시고 한숨만 땅이 꺼져라 쉬시는 거야, 곡괭이질을 몇 번 밖에 하지 않았는데 손바닥에 물집이 생기지 뭐야, 쓰라리니까 곡괭이 자루를 잡을 수가 없는 거야, 그래서 형에게 손바닥을 보여주며 더는 못하겠다고 했어, 그런데 형이 뭐라고 말했는지 알아?"


"뭐래?"


"아파도 참고 계속 일을 해야 구덕 살이 잡혀 농부가 될 수 있대"


그녀가 가엽다는 듯이 나를 꼬옥 끌어 당겼다. 


"그래서?"


"나는 마음속에 다짐했지, 형으로부터 탈출해야겠다고"


이야기를 듣는 동안 그 여인은 한숨을 쉬기도 했고, 대견스럽다는 듯이 내 얼굴을 들여다보기도 했다.


"엄마가 많이 보고 싶니?"


"얼마 전까지도 그랬는데 지금은 학교에 가서도 누나만 보고 싶어져“


"정말?"


그녀는 어둠 속에서 내 눈을 들여다보았다. 나는 말 대신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안암동에서 나오는 물길 둑을 따라 을지로로 가는 버스를 타려면 한참을 걸어야 했다. 그녀와 나는 매일 학교 앞에서 용두동 버스 정류장까지 이렇게 걸었다. 비가 오지 않아도 매일 밤 하교시간이 되면 자동적으로 누나가 길목에 나와 있었다. 학교에서 버스 정류장에까지 가는 데에는 20분이면 되었지만 두 사람은 일부러 둑을 따라 천천히 걸었다. 여러 대의 을지로 행 버스가 앞에 와 섰지만 그냥 보냈다. 등을 떠밀어야 버스를 탔고, 버스에 오를 때마다 그녀는 언제나 엿 봉지를 건네주었다. “잘 가” 버스에 오르면, 그녀가 보이지 않을 때가지 뒤돌아보았다. 그리고는 나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흐느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얘, 지만원, 누나가 시집가도 너 혼자 공부 잘 할 수 있지?” 청천벽력 같은 말이었다. 가슴이 답답해지더니 이내 뻥 뚫린 것처럼 허전해졌다. 


"응, 누나가 행복해진다면"


기어가는 소리였다. 약간의 침묵이 흐른 후 그녀는 "정말?" 하면서 허리를 굽혀 장난기 서린 눈으로 내 눈동자를 빤히 들여다보았다.


"누나 시집가는 게 그렇게 싫으니?".


나는 말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아냐, 난 시집안가. 네가 어쩌나 보려고 한 번 해본 소리야"


"정말? 앞으로는 그런 장난치지 마, 간 떨어 질 뻔했잖아"


그녀는 내 어깨를 더욱 더 끌어 당겼다.


"이제 누나 얘기 좀 해 주라!"


그녀는 북한에서 학교 다닐 때에 있었던 많은 이야기들을 들려주었다. 남학생으로부터 귀한 만년필을 선물 받아 뜨게 실로 만년필 집을 만들어 만지작거렸다고도 했다. 석양이 찾아오면 남고생과 손을 잡고 해당화가 피어있는 바닷가 언덕을 수없이 거닐면서 연애했던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그때 그녀의 느낌이 얼마나 짜릿하고 설레었는지에 대해서도 묘사해 주었다. 그녀가 추억을 반추하는 동안 나는 동그랗게 그어진 그녀의 세계에서 밀려나 있었다. 갑자기 그녀가 남같이 멀어졌다. 유난히 빨갛던 나의 입술이 뽀로통하게 튀어나왔고, 가늘게 뜨여진 눈틈에서 쏟아지는 광채에는 질투의 감정이 배어있었을 것이다.


"야! 지만원, 노래 하나 가르쳐 줄까?"


성숙한 그녀가 나의 감정을 놓칠 리 없었다. 그녀는 나의 어깨를 어루만지며 달랬다.


"이래도 한 세상, 저래도 한세상, 도화강변에 나부껴 우는 꽃, 꽃은 피어서 만발이 되건만, 우리의 갈 길은 죽음의 길이다"


이바노비치의 ‘다뉴브강의 잔물결’에 얹혀 진 가사였다. 이 노래 속에는 사랑하지만 이루지 못했던 어느 청춘남녀의 슬픈 최후가 담겨있다고 했다.


가을철의 한 주말, 그녀는 뚝섬강 건너에 사는 언니 집에 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상하게도 그날만은 그녀의 얼굴에 어두운 그림자가 깔리고 비장해 보였다. 나는 전차를 타고 누나를 뚝섬에까지 바래다주었다. 전차가 땡그랑 소리를 내면서 시골길을 달렸다. 손을 꼬옥 잡고 있었지만 두 사람 사이에는 거대한 심연이 가로 놓여있는 것만 같았다. 이따금씩 그녀가 내 뺨을 토닥여주었지만 마음은 납덩이 같이 무겁고 답답했다.


"왜 이럴까?"


순간, 얼마 전 하교 길에서 누나가 던졌던 농담이 떠올랐다.


'아하! 그 때의 그 농담이라고 했던 말이 진담이었구나.'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목이 메고, 가슴이 울렁거렸다. 전철 안에 있던 30대 어른들이 갑자기 미움의 대상으로 부각됐다. '바로 저 정도의 남자들이 우리 누나를 가져가겠지?'


두 사람은 뚝섬역에서 내려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둑 위를 힘없이 걸었다. 가끔씩 주고받는 말은 있었지만 가슴속까지 스며든 말은 없었다. 내가 그녀를 선착장에까지 바래다주면 그녀는 다시 나를 전차 역까지 바래다주었다. 두 손을 꼭 잡고 걸었지만 가슴은 여전히 답답하기만 했다. 지친 나머지 두 사람은 둑과 모래사장이 맞닿는 양지바른 곳에 나란히 앉았다.


강 건너에서는 언니가 그녀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 하면서도 그녀는 나룻배를 번번이 그냥 보냈다. 강 건너에 사는 언니는 부자로 잘 사는데 참외와 수박 농사를 짓는다고 했다. 드디어 나룻배가 석양빛을 받으며 마지막 손님을 기다렸다. 두 사람은 손깍지를 낀 채 자리에서 일어섰다.


"조심해서 가, 밥 잘 챙겨 먹고"


'이 엄청난 순간에 겨우 이 말 밖에 할 수 없는 것인가. . .?'


잡혀 있던 손이 허전해 지는 순간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가엽다는 듯 누나는 손바닥으로 눈물을 흠쳐 주었다. 나릇배가 잔잔한 물결을 남기며 멀어져 갔다. 강가의 온갖 가을 풍경이 허공에 떠 있는 하상들 처럼 쓸쓸해 보였다. 그날 따라 가을바람에 파들거리는 미루나무 잎들이 유난히도 반짝거렸다. 

 

"이래도 한세상 저래도 한세상, 도화강변에 나부껴 우는 꽃, 꽃은 피어서 만발이 되건만, 우리의 갈길은 죽음이 길이다."

 

이제는 이 노랫말의 슬픔이 내 것이 됐다. 나는 이제 어둠 속에 버려진 고아가 됐다. 누나의 얼굴을 다시 볼 수 없다는 것이 참을 수 없는 슬픔이었다. 전차 역을 향해 터벅터벅 발길을 옮겼다. 굵은 눈물이 쉴 새 없이 매달렸다가 뺨을 타고 흘렀다. 멀리 전차 역에서 비쳐오는 불빛이 그 출렁이는 눈물에 오객영롱한 무지개를 그리고 또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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