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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01-11 11:07
불법의 평등 요구하는 게 ‘愛國보수’인가(동아일보 논설)
 글쓴이 : 지만원
조회 : 2,381   추천 : 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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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법의 평등 요구하는 게 ‘愛國보수’인가
김순덕 논설주간  

“최순실한테 물어보는 게 북한에 묻는 것보다 낫다”
“역대 대통령이 더 위헌 소지”
일부 보수층 탄핵 반대하지만 헌법엔 ‘불법의 평등’ 보장 없다 자유민주주의 체제 지키려면 헌법재판소 결정 존중해야 

신문사가 광화문 한복판에 있어 토요일마다 애국시민들을 본다. 발광다이오드(LED) 촛불을 든 쪽과 태극기를 든 쪽은 표정부터 다르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에 찬성하는 촛불 쪽은 밝다. 이제 나라가 바로잡힐 수 있다는 희망에 찬 것 같다. 반면 탄핵 반대를 외치는 태극기 쪽은 나라가 망할 것 같은 비장한 얼굴이다. 나라 생각하는 마음은 탄핵 찬성파와 반대파가 다르지 않다고 믿고 싶다.  

하지만 태극기 쪽 발언을 들으면 불편하다(물론 이석기 전 통진당 의원 석방 요구는 더 불편하다). 팩트를 신성시한다는 점에서 존경해 마지않는 조갑제닷컴의 조갑제 대표가 7일 청계천 집회에선 이런 발언을 했다. “조중동과 한겨레, 그리고 북한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까지 한목소리로 박근혜 대통령을 몰아세운다. 언론이 한목소리를 내니 검찰, 특검이 따라오고 정치까지 휩쓸려 간다. 언론 독재다.”   

조 대표 같은 보수층이 분노하는 표면적 이유는 언론 오보에 박 대통령이 마녀사냥을 당한다는 거다. 백번 양보해 작년 10월 24일 JTBC의 ‘최순실 태블릿PC 보도’에 의문이 있고, 최순실의 태블릿PC가 아니라고 치자. 그러나 바로 다음 날 “취임 후 일정 기간 (최 씨의) 의견을 들은 적도 있다”는 말로 사실상 최순실의 국정 개입을 시인한 사람이 박 대통령이었다.  

이후 최순실이 수석비서관회의를 열어라 말아라 했던 사실이 드러나는 등 박 대통령은 참담하리만큼 국민의 신임을 배신했다. 헌법재판소가 2004년 ‘탄핵이 필요한 중대한 법 위반’으로 ‘국민의 신임을 배신하여 국정을 담당할 자격을 상실했을 때’를 명시한 것과 지남철처럼 들어맞는다. 그럼에도 일부 보수층은 “최순실한테 물어보는 게 북한 김정일한테 물어보는 것보다 낫다”며 분노하고 있다. 2007년 유엔 북한 인권결의안 ‘기권’ 표결에 앞서 북측의 의견을 물은 노무현 당시 대통령과 대통령비서실장이던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더 나쁜데 왜 박 대통령만 탄핵을 당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최순실이 좌지우지한 미르·K스포츠재단에 기업 돈을 내게 한 것보다 2000년 김대중 당시 대통령의 남북 정상회담 성사를 위해 북한에 4억5000만 달러를 퍼준 것이 더 국익을 해쳤다는 주장도 뜨겁다. 측근 비리로 따져도 역대 대통령 측근 비리의 규모, 정도, 기간이 훨씬 무겁다며 억울해한다.  

맞는 얘기다. 그러나 과거 대통령이 더 나빴는데 왜 박 대통령만 탄핵하느냐는 지적은 남들도 다 교통위반 했는데 왜 나만 딱지 떼느냐는 말과 똑같다. 헌법이 보장하는 ‘법 앞에 평등’은 합법의 평등이지 불법의 평등을 의미하지 않는다. 헌재도 “헌법상 평등은 불법의 평등까지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밝힌 바 있다(2014헌바372).  

‘불법의 평등’을 요구하는 일부 보수층의 주장이 치명적인 것은 앞으로 어느 대통령이 어떤 헌법과 법률 위배 행위를 해도 박 대통령과 견줘 보곤 탄핵하지 못하게 만든다는 데 있다. 국민의식과 국내외 환경은 놀랍게 바뀌었는데도 이들 보수층만 과거를 기준으로 삼아 나라가 한 단계 도약할 길을 막는 것이 경악스럽다.    

개인의 자유와 책임을 중히 여기면서 헌정질서와 애국심을 강조하는 이념이 보수주의다. 박 대통령을 지키기 위해 헌법도 무시할 작정이라면 자칭 ‘애국 보수’라는 말은 하지도 말아야 한다. 이제야 전 국민이 헌법정신과 법치의 엄중함을 절감하게 됐는데 국정의 사사화(私事化)가 별일 아니라니, 언제까지 우리 아이들이 헌정유린과 정경유착이 판치는 ‘실패 국가’에서 살아야 한단 말인가.  

7일 서울 태극기 시위가 주최 측 추산 102만 명(경찰 추산 3만7000명)으로 광화문 촛불시위 60만 명(경찰 추산 2만4000명)을 능가한 큰 이유는 차기 대통령으로 갈수록 유력해지는 문재인 때문일 것이다. 자유민주주의 체제와 한미 동맹보다 대북 관계와 중국을 중시하는 그의 안보관을 믿을 수 없고, 이석기 석방을 외치며 촛불시위를 주최하는 세력의 진의가 불안하다는 이들이 적지 않다. 박 대통령이 잘했다는 건 아니라는 보수층에서까지 탄핵소추를 찜찜해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문재인이 진정 나라에 희망을 주려면 이런 보수층의 불안에 답해야 한다. 대통령에 당선되기 위해서라도 세계에서 유례없는 안보 위기 속의 대한민국을 어떻게 지킬 것인지 진심으로, 자신의 머리로 고민해야 한다. 불법의 평등보다 더 용납할 수 없는 것은 체제의 평등, 남북의 평등을 믿는 듯한 문재인 진영의 인식체계다.   

김순덕 논설주간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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