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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분석 결과의 개요 및 호소의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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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17-04-12 15:37 조회3,78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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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18분석 결과의 개요 및 호소의 말씀
                              <5.18분석 최종보고서 중에서> 
 

5.18은 국가전복을 목적으로 하여 북한특수군 600명이 광주에 내려와 주도한 반란 폭동이었습니다. 금방 받아들이기 어려울 이 엄청난 결론은 제가 5.18을 연구한지 만 12년이 지난 2014년 9월에 최종적으로 도출한 것입니다. 그런데 북한의 대남공작 세력과 이 땅의 반역자들이 결탁하여 이를 민주화운동으로 둔갑시켜 놓았습니다.  

감쪽같이, 국가도 속고 국민도 속았습니다. 이들 반역자들은 지금까지 국민으로부터 엄청난 세금을 뜯어다 호의호식하면서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국가에 대한 적개심을 심어주고 있습니다. 국가와 국민을 능멸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5.18의 사기극이 있기에 4.3유족, 세월호 유족 등 점점 더 많은 정체불명의 세력들이 5.18의 사기극을 모방하여 금전적 이득과 신분상승을 꾀하면서 사회갈등을 일으키고 국가 사회발전에 제동을 걸고 있습니다.  

저는 5.18 수사-재판기록 18만 쪽을 정리하였습니다. 이 18만 쪽에서 이 나라에 알려진 5.18에 대한 상식 모두가 거꾸로 날조된 거짓들임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를 “수사기록으로 본 12.12와 5.18”이라는 책에 정리해 놓았습니다. 2008년이었습니다.  

그 다음은 북한이 발간한 대남공작 역사 자료들, 북한이 만든 5.18영화, 탈북자들이 쓴 5.18증언집, 통일부 자료, 일본자료 등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 자료들을 검찰보고서에 나타난 상황일지, 안기부 상황일지들과 다시 대조해 보았습니다. 그 결과 저는 5.18에 북한특수군 600명이 광주에 와서 모략작전을 기획-연출하였을 뿐만 아니라 현장 상황들을 자세하게 기록까지 해가지고 돌아갔다는 사실을 발견하였습니다. 

광주에서 북한특수군이 주도했던 작전에는 북한의 기막힌 전략과 전술이 있었다는 사실을 그들의 책에서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이때가 2010년이었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광주에는 광주의 운동권이 조직한 광주시위대와 북한특수군 600명이 병존했던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그런데 2014년 9월, 저는 민주화를 위해서든 또는 폭동을 위해서든 광주인들이 주도하여 구성한 광주시위대가 전혀 존재하지 않았음을 밝혀냈습니다. 5.18은 순전히 북한군 600명이 벌인 특공-모략작전이었다는 가공할 결론을 도출한 것입니다. 그리고 폭동에 뛰어든 광주인들은 개념 없는 부나비들에 불과했다는 결론도 도출하였습니다.  

통일부 북한자료센터에도 많이 갔습니다. 김일성이 직접 제작한 북한의 5.18영화 “님을 위한 교향시”가 보관돼 있다는 사실 그리고 이는 누구나 열람할 수 있다는 사실도 발견하였습니다. 이 영화는 미국과 한국을 모략하는 내용으로 제작되었습니다. 1989-91년 김일성이 직접 황석영과 윤이상을 불러들여 황석영에게는 시나리오를 쓰게 했고, 윤이상에게는 영화음악을 작곡케 했다는 사실 그리고, 그 주제곡이 바로 “님을 위한 행진곡”이라는 사실도 밝혀냈습니다. 북한에서는 오직 김일성만 “님”의 호칭을 소유하고 있으며, 영화제목의 “님”이나 영화주제곡에서의 “님”은 바로 북한에서 ‘님’자를 독점한 김일성을 의미하는 것임도 알아냈습니다. 5.18이 김일성에 바치는 교향시였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북한의 최고인 것들에 “5.18”이라는 호칭을 명예로 수여한다는 사실을 수많은 탈북자들이 그들의 증언록 “화려한 사기극의 실체 5.18”(2009년 9월)에서 이구동성으로 증언하였습니다. 실제로 룡성기업에 있는 1만 톤짜리 프레스에 “5.18청년호”라는 글이 새겨진 사진도 입수돼 있고, “5.18무사고정시견인초과운동”이라는 글씨가 있는 철도역 사진도 입수돼 있습니다. 그리고 2001년 09월 28일 연합뉴스는 “이제까지 막연하게 존재만 알려졌던 북한 `5.18영화연구소`의 실체가 최초로 밝혀졌다”고 보도하였습니다.  

해마다 5월이 되면 북한에서는 모든 지역에서 여러 날 동안 5.18을 기념하고 추념하는 행사가 대대적으로 열린다는 내용을 탈북자들의 증언록에서 읽었고, 이것을 통일부 ‘주간정세보고서’를 통해 재확인하였습니다. 북한이 발행한 대남공작 역사책들에는 5.18이 북한의 대남공작 역사상 최고수준의 작품이라고 자랑되어 있습니다.  

본 최종보고서의 핵심 메시지는 “5.18은 순전히 600여 명의 북한특수군이 일으킨 모략작전이었고, 광주인들은 민주화운동을 위해서든 폭동을 위해서든 독자적인 시위대를 구성한바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아래에 이에 대한 개요를 약술하고자 합니다.  

1980년 5월 18일이면, 당시 대한민국 대학생들 전체가 숨도 크게 쉬지 못했던 무서운 날이었습니다. 전두환에게 죄가 있음을 주장하기 위해 1995년 7월 18일자에 검찰 및 군검찰이 공동으로 내놓은 “5.18관련사건수사결과”에 의하면 5월 18일 아침 9:30분 경, 200여명으로 구성된 광주의 “대학생들”이 전남대학교 정문에 정렬해 있는 계엄군을 향해 책가방에 준비해온 돌멩이를 던져 계엄군 얼굴에 피가 줄줄 흐르게 했습니다.  

도대체 이 시각이 어떤 시각이었는데 그 살벌한 분위기에서 감히 대학생이 200명씩이나 몰려다닐 수 있는 것인지, 멀리 있는 경찰만 보아도 도망갈 대학생들이 감이 공수부대원들을 찾아가 돌을 던져 얼굴에 피를 낼 수 있는 것인지, 과연 이것들을 남한의 대학생들이 그 서슬 퍼렇던 분위기에서 해낼 수 있는 일인지 사리판단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그 시각에는 대한민국의 모든 대학생들이 꼭꼭 숨어 있었습니다. 심지어는 전라도에서 담력이 가장 크기로 소문났던 윤한봉, 그 지역 운동권 최고의 영웅으로 불렸던 윤한봉은 잡히면 곧바로 죽는다는 경찰 측 소문을 듣고 잔뜩 겁을 먹은 나머지 숨을 곳을 찾느라 전남-대전-서울을 허우적거리며 다녔고, 전남대 총학생회장 박관현은 흔적도 없이 숨어 있었습니다.  

이렇게 무시무시했던 시각이었는데, 감히 광주의 대학생 200여명이 떼를 지어 계엄군을 스스로 찾아가 “우리 도서관에 가야 하겠다”며 당당하게 시비를 걸고 이어서 돌멩이 공격을 감행하였다는 사실이 참으로 믿어지지 않습니다. 이런 배포를 가진 사람들이라면 어떤 사람들이겠습니까? 검찰 보고서에는 그냥 “대학생들”이라고 표현돼 있지만 아무리 상상해 보아도 이들이 광주의 대학생들일 수는 없습니다. 이것이 정상적인 사리판단입니다. 그리고 이 사리판단은 5.18영웅들이라는 사람들이 낸 증언집들(증9,10)에 의해 사실인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이른바 ‘5.18영웅들’, 이들의 한결같은 증언들에 의하면 광주의 대학생들과 지식인들은 “항쟁 10일 내내” 모두 숨어 있었고, 운동권은 잡혀 갔거나 더 꼭꼭 숨어있었습니다. 이렇게 숨는 것이, 한국의 정상적인 사람들입니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위와 같이 상식 밖의 행동을 보인 “200여명의 대학생들”이라면 어떤 사람들이겠습니까? 누구나 세계적인 수준의 싸움 능력을 가진 특수집단일 것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남들은 혹시 오해를 받아 경찰에 걸려들까 숨죽이고 있는 판에 더구나 무술 능력이 가장 뛰어나다는 공수부대가 곧 출동할 수 있는 상황에서, 별도의 수백 명이 더 나타나 금남로 충장로 등 번화가에 산재한 수십 개 파출소를 동시다발적으로 불태워, 광주에서 천대받던 사회불만 세력의 잔치를 유도해내고, 구경꾼들을 대거 유인하는 작전을 펼칠 수 있는 위장 “대학생들” 역시 대한민국 사람일 수 없습니다.  

이들 ‘위장 대학생들’은 5월 18일부터 시작하여 5월 21일 오후 5시 계엄군을 광주시에서 몰아낼 때까지 세계 최정상급의 특공작전을 펼쳤습니다. 5월 20일 밤에는 3공수여단 4개 대대 전부가 광주 신역 앞에서 몰살당할 번하였습니다. 5월 21일 오후에는 3개 공수여단에 속한 9개 대대 모두가 몰살 될 처지에 놓였다가 가까스로 시 외곽으로 탈출하였습니다. 5월 18일부터 21일 오후 5시까지 4일 동안 북한군 600여 명이 벌인 특공작전은 불가사의 그 자체였다고 평할 만큼 눈부신 것이었습니다.  

1995년에 내놓은 검찰 및 군검찰의 수사결과 보고서에 의하면 5월 21일, 오전 8시, 시위대 300여 명이 고속도로 톨게이트 부근에 매복해 있다가 극비리에 이동하는 20사단 사령부를 기습하여 사단장 차를 포함한 지휘차량 14대를 빼앗아 가지고, 방위산업 업체인 아시아자동차 공장에 가서 “20사단 사단장 차를 보아라” 하면서 순종하도록 만들었습니다.  

감히 어느 한국인이 이렇게 기발한 생각을 할 수 있는 것이며, 어느 한국인이 극비 중 극비로 취급되는 사단의 이동계획을 사전에 알아내 가지고 공격하기 가장 좋은 톨게이트라는 장소에서 매복할 생각을 할 수 있는 것이며, 어느 한국인이 감히 막강한 정규사단 사령부를 몽둥이 정도를 들고 기습할 능력과 배포를 가지고 있는 것이며, 더구나 이런 능력자들이 어떻게 300명 씩이나 될 수 있는 것인지, 사리판단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아침 9시경에는 또 다른 300여 명이 버스를 타고 아시아자동차공장에 가서 먼저 도착한 톨게이트 돌격대 300여 명과 합세하였습니다. 모두 600여 명이 집결된 것입니다. 먼저 4대의 장갑차를 빼앗아 몰고 나갔습니다. 370여대의 군용트럭을 탈취해 전남지역 17개 시군에 위장해 있는 44개 무기고를 향해 각기 질주하였습니다. 아무리 잘 훈련된 군대도 이렇게 조직적이고 빈틈이 없을 수는 없는 일입니다.  

불과 4시간 만에 2개 연대를 무장할 수 있는 무기를 털었습니다. 총에 맞아 사망한 광주인의 70%가 이 무기고들에서 꺼낸 총에 맞아 사망했습니다. 당시 광주인들은 이 총상 사망자 모두를 공수부대가 죽였다고 믿고 공수부대를 증오하였으며, 이러한 증오는 지금도 지속되고 있습니다. 북한은 이런 식의 모략작전을 통해 국군과 광주인들이 서로 총부리를 마주하고 전쟁을 하도록 유도했지만 결국은 실패하고 돌아갔습니다.  

1976년 이스라엘이 멀리 우간다 엔테베 공항에 인질로 납치돼 있는 100여명의 이스라엘 국민을 구출해오기 위해 수송기 4대를 보내 특수군사작전을 감행하였습니다. 그 어느 세계의 군사전문가들도 이런 작전이 가능할 것이라고는 짐작하지 못했습니다. 엔테베 작전은 세계 군사작전에서 하나의 기적으로 인용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북한군 600명이 주도한 광주작전은 이보다 더 화려하고 더 기적적인 특공작전에 해당합니다.  

삼엄한 계엄 상태에서, 6개월 동안 소규모 단위로 침투시킨 600여명의 특수군으로 하여금 남한 땅 광주에서 광주의 ‘인간 소모품’을 뜻하는 “쓸모 있는 바보”(공산주의 용어)들을 끌어들여 계엄군을 막다른 골목으로 몰고 갔던 그 전술은 이스라엘의 구출작전보다 더 어렵고 고난도이며 화려합니다.  

아울러 북한특수군 출신으로 광주작전에 참가했던 사람이 2006년에 탈북하여 현재 서울 근교에 살고 있다는 사실도 작년 5월, 방송을 통해 알려졌습니다. 이로 인해 5.18 측 광주사람들이 코너에 몰렸습니다. 다급한 나머지 어이없게도 이 탈북자(가명 김명국)를 허위사실 유포자라며 고발했습니다.  

그의 증언을 책자에 담은 또 다른 탈북자와 “화려한 사기극의 실체 5.18”이라는 500쪽 분량의 증언집을 편집해 발행한 또 다른 탈북자를 고발했습니다. 광주검찰은 서울과 경기도에 거주하는 이 3인의 탈북자들을 광주로 데려다 재판을 받게 하려고 형사소송법 제4조가 규정한 토지관할 규정을 어기면서 편법을 쓰려다 저항에 부딪쳤습니다.  

이들이 끝까지 거주지역을 관할하는 검찰청에서 조사를 받겠다고 버틴 것입니다. 광주 검찰로부터 사건이 서울 및 경기 검찰로 이송되자 이들 서울 등의 검찰들은 광주검찰의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았습니다. 특히 가명 김명국에게는 전화 한통도 걸지 않았습니다. 방송에 출연한 3인의 탈북자 모두가 무혐의 처분을 받았습니다. 고발을 받은 탈북 당사자들은 빨리 기소해서 법원에서 진실을 가리자 서울과 경기 검찰에 전화를 걸어 강력히 주장한 반면, 검찰은 사건이 이미 종결되었다며 조사조차 하지 않은 것입니다.  

자기가 분명히 북한 특수군 신분으로 ‘2006년에 북한의 국방차관급에 올라 있다는 문제심’이라는 지휘관을 호위하고 광주작전에 참전해서 적어도 3명의 계엄군을 총으로 쏘아 쓰러지는 것을 보았다고 방송에서 증언을 했는데 광주사람들은 아무런 근거 없이 그를 허위사실 유포자라 주장하며 고발부터 해놓고, 광주 법원에서 재판을 하려 지극히 비민주적인 편법을 고집했던 것입니다. 이로써 가명 김명국이 북한 특수군 신분으로 광주작전에 참전했다는 사실과 함께 북한 특수군이 광주에 참전하였다는 것이 사실로 공식화가 된 것입니다. 이는 역사규명에 매우 중요한 전환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사실은 모든 국민이 빨리 알아야 할 중요한 정보입니다.  

이어서 2013년 5월, 황장엽과 김덕홍이 전 월간조선 편집부장 김용삼씨에 했던 1997년의 증언내용이 TV 조선을 통해 방송되었고, 월간조선 6월호에 자세하게 게재됐습니다. “5.18은 북한의 공명주의자들이 배후 조종하여 일으킨 폭동인데 북한이 이를 남한에 뒤집어씌웠다. 광주사태가 끝난 직후 통전부 간부들이 일제히 훈장을 받고 술파티를 했다” 황장엽과 김덕홍은 제가 내린 마지막 결론과 정확히 일치하는 증언을 해준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황석영 명의로 발간돼 온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약칭 ‘넘어 넘어’)라는 책이 바로 북한 노동당이 발간한 대남공작 역사책 2권을 섞어서 베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북한 작가가 써서 남한 반역자들에 넘겨진 것으로 이 책은 1995년 7월 18일에 검찰과 군검찰이 공동으로 내놓은 “5.18관련사건수사결과” 내용과는 전혀 다른 허위사실들과 모략내용들 그리고 적화통일을 선동하는 내용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오직 북한만이 쓸 수 있는 이 책의 재료들은 김상집-소준섭-이재의-황석영 순으로 옮겨갔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한국의 386대학생들, 운동권 인물들, 교수들, 언론인들, 판검사들, 변호사들 모두가 황석영 이름으로 발간된 “넘어 넘어”라는 책을 5.18의 바이블로 존경했습니다. 그리고 1996-97년 판결은 모두 이 황석영 책의 논리대로 내려졌습니다.  

사람들은 600명의 특수군이 어떻게 넘어올 수 있느냐, 의문을 제기합니다. 아무리 해안 및 휴전선이 허술하다 해도 어떻게 600명씩이나 한꺼번에 올 수 있느냐며 핵심을 호도합니다. 하지만 이 600명을 한꺼번에 적지로 떼 지어 보낼 군 지휘관이 이 세상에 어디 있겠습니까? 이들은 6개월여에 걸쳐 조금씩 침투한 북한병력의 합입니다.  

탈북자들은 ‘남한은 북한 통전부의 안방’이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합니다. 역대 국정원 대공요원들은 ‘그동안 간첩을 잡은 것은 순전히 통신감청과 기존 간첩들의 제보에 의한 것’이었다고 말합니다. 해안경비는 믿을 수 없다 하였습니다. 이에는 저도 찬성합니다. 1986년 저는 국방연구원의 대령 연구관 자격으로 대한민국의 전 해안과 공군 레이더 기지들을 돌아다니며 레이더 등 감시 시스템과 근무실태를 파악한 바 있습니다. “해안이 비었다” “공중이 비었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 결론이 보안사를 통해 전두환 당시 대통령에 보고되자 국방장관 등으로부터 미움을 사 스스로 예편하였고 곧장 미 해군대학원 교수와 미국방성에 가서 취직을 하였습니다. 당시의 해안은 북한특수군들에는 얼마든지 열려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5.18기념사업회가 한국사회와 유네스코에 내놓은 자료들을 보았습니다. 5.18단체들이 유네스코에 자료를 내놓은 것은 이제 보니 국가차원에서 매우 바람직했습니다. 일단 유엔에 내 놓으면 문서조작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자료들은 저로 하여금 5.18의 진실이 무엇인지에 대해 마지막 결론을 얻게 했습니다.  

군법회의에서 5.18의 핵심 주범이라며 사형과 무기징역을 받았던 사람들 중에서도 5월 18일부터 5월 21일까지 시위를 조직했거나 참가한 사람이 일체 없습니다. 5.18의 주역으로 중형을 받은 사람들은 모두 계엄군이 포기한 전남도청에 5월 24일 이후 들어온 호기심 많았던 20대의 막노동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의 증언에 의하면 광주에는 대학생 시위대도 없었고, 노동자 시위대도 없었습니다.  

민주화 판사들은 1996-97년 판결문에 “광주시위대는 헌법을 지키기 위해 결집된 준-헌법기관”이라고 규정하였습니다. 그러나 제가 이번에 내린 최종결론으로는 광주인들 중에 이런 시위대든 저런 시위대든 시위대 자체가 없었습니다. 대학생들로 위장한 600여 명의 북한특수군이 최초 4일(18-21일) 작전의 주동군이었습니다. 결국 5.18기념사업회가 내놓은 ‘광주영웅들의 증언집들’(증9,10)은 북한 특수군이 내려와 국가전복 작전을 하는 사실을 모르고 거기에, 광주에서도 천대받던 부나비들이 부화뇌동했다는 고백집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5월 21일 저녁, 계엄군이 광주시를 포기하고 사라지자, 광주시는 갑자기 진공의 공간처럼 텅 비었습니다. 싸울 상대가 사라진 5월 22일, 특수군 600명도 잠시 지취를 감추었습니다. 북한군이 자취를 감추고 나니 ‘광주에는 시위대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역력히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대학생들도 시내에 얼씬하지 않았습니다. 광주에는 광주인들로 구성된 시위대가 5월 18일부터 21일까지도 없었고, 계엄군과 600명이 다 사라진 22일부터 광주 재진입작전이 끝난 27일까지에도 없었습니다.  

5월 21일, 계엄군이 광주 외곽으로 도망가자 광주유지들이 도청에 모여 그 화려한 대학생들을 애타게 찾았습니다. 하지만 그 신출귀몰하던 대학생들은 단 한명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광주유지들은 5월 22일부터 5월 25일까지 무기를 회수하여 계엄군에 반납하는 운동을 벌였습니다. 이 기간은 시위기간이 아니라 항복을 준비하는 기간이었습니다. 이때까지도 광주의 대학생들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무기회수와 반납이 대세를 이루자 이들 600명은 복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무력시위를 하면서 자기들을 믿고 다시 싸우자 선동하고 다녔습니다.  

그래도 이상한 낌새를 챈 대부분의 지각 있는 사람들은 응하지 않았습니다. 600명은 마지막으로 광주교도소 공격에 나섰습니다. 좌익수 170명을 포함한 2,700여명의 수용자들을 폭동에 동원하려고 6차례에 걸쳐 교도소를 공격한 것입니다. 이 때 참호를 파고 대기하던 공수부대와 고지쟁탈전을 벌여 아마도 많은 특수군이 사살됐을 것입니다. 북한 특수군은 중상을 당했을 경우 증거를 인멸하기 위해 죽기 전에 소형의 폭발물로 자기 몸을 분쇄하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고 합니다. 교도소 공격에서 패하자 이들은 26일, 마지막으로 도청의 일부 20대들에 결사항전을 선동하고 사라졌습니다.  

이들의 영향을 받아서였는지, 극소수의 20대 노동자들이 5월 26일 낮과 밤에 “결사항전”을 선언했다가 계엄군의 진압작전을 초치하였습니다. 당시의 5.18사건 재판에서 중죄를 받은 사람들이 바로 5월 26일부터 전면에 부상했던 이 조무래기들이었습니다. 결사항전 주창자들은 서로 일면식도 없는 남남들이었으며, 오합지졸이었고, 의견충돌로 시간을 보냈다고 증 9, 10에서 증언합니다.  

이들은 또한 5월 18일부터 5월 21일까지 벌어졌던 가장 화려한 작전에 전혀 참전하지 않았던 사람들입니다. 이처럼 5.18은 순전히 북한특수군 600명이 벌인 남남 이간용 특수작전이었습니다. 그것이 5.18의 전부입니다. 거기에 가담했던 사람들은 지각없는 사회불만 세력과 중고생들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에도 소위 ‘진보’라는 간판을 내건 사람들이 이런 부나비처럼 행동하고 있습니다. 북한에서는 이런 지각없는 사람들을 “쓸모 있는 바보”(소모품)라고 지정해 놓고 있습니다.  

5.18에 대한 재판은 최규하 정권에서도 했고, 김영삼 정권에서도 다시 했습니다. 같은 사건을 재심 절차 없이 다시 재판하는 것은 헌법이 규정한 일사부재리 원칙을 위반하는 것입니다. 헌법을 유린하기 위해 YS는 5.18특별법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지금 내린 최종결론이 맞다면 이 두 개의 재판 모두가 잘못된 판결을 낸 것이 됩니다.  

광주에 광주인들이 독자적으로 구성한 시위대가 없었음에도 1981년 4월 1일의 대법원과 1997년 4월 17일의 대법원은 다 같이 광주시위대가 있었다고 잘못 판결하였습니다. 1981년의 대법원은 이 광주시위대를 내란 음모와 연관된 폭동이라고 단죄한 반면, 1997년의 대법원은 600명 중심의 광주시위대를 놓고 헌법수호를 위해 결집한 준-헌법기관이라 판결하였습니다.  

전자는 함량미달의 판결이었고, 후자는 북한 판사의 입장에서 내린 판결이었습니다, 5.18과 같은 복잡한 사태를 대한민국 판사들이 재판하기에는 판사들의 능력이 매우 부족하다는 결론이 아니겠습니까? 5.18은 북한이 주도적으로 실행한 반란폭동이었고, 민과 군을 이간시켜 남남전쟁을 유도한 고도의 특수전이었지만, 당시의 국가기관은 그 진실을 찾아내지 못하였습니다. 한국 정부의 이 무능한 약점을 이용하여 북한은 한 걸음 더 나아가 황석영 등을 이용하여 대한민국의 역사를 북한의 뜻대로 기록하게 만드는데 성공하였습니다. 이 무슨 비극이요 치욕입니까?  

국민 여러분, 우리는 북한에 철저히 놀아났고, 5.18단체들에 철저히 속아왔습니다. 저들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정부로 하여금 이 나라에서 획책된 모든 반역의 역사를 애국의 역사, 민주화의 역사로 둔갑시키는 도미노 작전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반역세력이 애국세력으로 등극하고 기득권세력이 되어, 사회 좌경화를 가속화시키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과거에 있었던 모든 용공사건과 간첩사건을 재심으로 줄줄이 뒤집어 지금까지 1조 이상의 보상을 해주고도 앞으로도 2조 규모의 국민세금을 그들에게 퍼주는 재심재판이 줄줄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2017.4.12.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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