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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06-07 14:00
♠제9_4-2_2화 젊은 巨人의 초상{'이 용문'장군 평전}.'김 창룡'{끝}
 글쓴이 : inf247661
조회 : 91   추천 : 3  

 https://www.youtube.com/watch?v=lfcIY_54Zhw   : 무명초 항구無名草 港口{'김 영일'작사, '이 재호'작곡; '백 난아'님 노래} ++++++++++++++++++++

♥제9_4-2_1화 에서 계속 이어지는 부분임.

제목 : 무명초 항구
가수 : 차 은희
김 영일 作詞 / 이 재호 作曲 / '백 란아'님 원곡
앨범 : (1963) 흘러간 옛노래 - 남백송,차은희




{'권 혜경'님 리바이벌 曲}



제목 : 무명초 항구
가수 : 백 난아
앨범 : (197?) 고운봉,백난아 - 못잊어서 불러본 그 시절 그 노래 제2집






'박 정희'는 5.16 거사가 성공하자, 그 때,
   軍部의 악질부정사건으로 헌병대에 입건, 수사 도중에 죽은
'金 聖柱(김 성주)'사건의 책임을 지고, 민주당 정권으로부터,
         군법회의에 피소 중이던 '元 容德' 헌병총사령관을
풀어 주도록 했고, 대통려이 된 뒤에도 세배를 다녔으며,
           '元 容德' 장군의 아들{육군 장성}의 뒤도 봐주었다.
                   ㅡㅡ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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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춘근'은 "최 남근'이 반군에게 위장 체포된 것도 '이 재복'의
명령을 받고 '김 지회'에게 메시지를 전하러 간 것 때문이 아닐까"
                                                  하고 말했다.

방첩대에선 '김 수진'과 '이 승권'으로부터 정보를 다 빼낸 뒤에는
                          그를 甕津(옹진)전투지구로 보냈다.
                     전투지역에서 적당히 처리하라는 뜻이었다.

사교술이 능란한 2 사람은 그곳의 방첩대장과 친해져 '처리'를
면하고 특무대 문관으로 근무하다가 '金 昌龍'이 1956.2월 죽은 뒤
                       그만두고 폐인이 되어 5.16 직후에 죽었다.

                '김 수진'은 阿片(아편)중독자가 되었다고 한다.
         사상적인 전향자들이 마음의 갈등을 잊어버리기 위해
   阿片을 찾는 일은 더러 있는 일이다.
                            ,,, ,,, ,,, ,,.
제목 : 사이공 부두(무명초 항구)
가수 : 오 정심
앨범 : 옛노래 스페셜 No.93 - 손영옥,심연옥,오정심 외
가사 : 'hahahoho' 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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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 武協{한 무협.육사#6기생. 육군 소장 예편}' 소위는 1948년
                  12월에 육본 정보국 전투정보과로 전보되었다.

서울 명동 입구에 있는 지금의 외환은행 본점 자리에 정보국
                                               건물이 있었다.

부임한 지 며칠 뒤, '한'소위는 '金 昌龍'의 사무실에
                                      들어갔다가 깜짝 놀랐다.

         '金 昌龍'은 자리에 없었는데, 그 한구석의 책상뒤 의자에
     앉아서 굳은 얼골로 담배를 피우고 있는 육사생도 시절의
  중대장인 '박 정희' 소령이었다.
                          엉겁결에 '한'소위는 경레를 올려 붙였다.

'한'소위는 그 뒤에야 '박'소령이 그때 '백 선엽' 정보국장의
       배려로 서대문형무소에서 나와 좋은 환경에서 '金 昌龍'에게
                        조사를 받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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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주군관학교 시절, '박 정희' 생도의 1개기 선배였
'李 奇建{이 기건, 육군 준장 예편}'은 처음 그를 만났을 때,

                "왜 여기에 왔느냐?"        고 물었더니,
   "왜놈 보기 싫어 왔소!"            라고 하더란 것이다.

'李 奇建'은,  "그때 나는 '왜놈'이란 말을 처음 들었다.
              북한에서는 '일본놈'이라고 하지, '왜놈'이란
            말을 쓰지 않았다. '박 정희'가 지독한 반일
          감정을 가진 사람임을 알 수 있었다."  고 기억한다.
+++

  만주국의 首都 신경(新京)에 있는 관동군 사령부의
                      정보관계 부서에서 하사관으로 있었던
'朴 基丙{박 기병, 육군 소장 예편}'은 이런 기억을 갖고 있었다.

"그때 만군 헌병사령부에서 근무하던 '정 일권'대위는 '박 정희'
    등 만주군관학교 생도들을 불러 가끔 저녁을 사주곤 했읍니다.

        그때는, 戰時라서인지, 수을 구하기가 매우 힘들었어요.
   제가 정보 기관에 있기에, 술을 구해 오는 책임을 지곤 했읍니다.

             '박 정희' 생도는 그때도 다른 점이 있었읍니다.
    술이 거나하게 취하면, 그는 벌떡 일어나, 독립군 노래를 부르는
거예요.
         '선배님들, 이 노래를 모르시죠.' 하면서 부르는데,
                 그때의 우리들 생각으로는 놀랄 만한 일이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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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李 奇建(이 기건)'은 이렇게 증언한다.

"난, 해방 뒤, 고향인 북한에 있다가, 人民軍 創設 때는 將校가 되어,
   관여했읍니다. 그러나, 공산주의의 실체를 알고는 크게 실망하여,
     해방 3년 뒤이던, 1948년에 38선을 남하하여 서울로 탈출했지요.

                        당연히, 만군 출신 장교들을 만나 보았지요.
        '최 남근'과 '박 정희'가 그쪽 조직에 들어 있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제가 만나서, 북한의 실정을 전해 주고는 손 떼라고
충고했어요. '박 정희'는 잠자코 듣기 만 하더군요.

       그 이튿날인가, '박 정희{당시 육사 교관 겸 중대장}'가 나를
   어느 집으로 불렀는데, 가 보니까, '박 정희'와 '강 찬선',
'조 병건'등 2 장교와 '이 재복'도 있더군요. '강.조' 2 장교는
乃終(내종)에 숙군과정에서 사형 당했죠.

같이 술을 마시면서, '이 재복'이가 나한테 이야기를 하는데,

        내가 북한 공산당으로부터 밀명을 받고 온 동지로
            착각하고 있는 것 같았어요.

저는 겁이 나서, 변소가는 척하고는 맨발로 도망쳐 나왔지요."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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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 육본 정보국의 편제 조직은; 1과{전투정보}, 2과{첩보과},
      3과{방첩과}, 5과{행정과} 등 4개과 급 본부가 있었으며,

                   1과{전투정보과}에는;
서무반.북한반.남한반.기상반.사진반.상황편집실 등이 있었는데,
        민간인 신분인 문관 '박 정희'는 상황편집실장이었다.

                          ,,, ,,, ,,, ,,.

1961.5.16 때 첫 경호실장이 된 '박 종규'소령은 훗날 미군부대
카투사 중대장을 거쳐서 혁명에 직접 참가하지만,
       이때 전투정보과에서 사병으로 근무 중이었는데, 동란 발발
              후에 육군 종합학교를 졸업 소위로 임관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이때 선임하사이던 '김 이진' 상사는 1949년 10월 초순
              '김 창룡'이 지휘하는 특무과에 구속된 적이 있었다.

             전투정보과에서 만든 대북 공작 계획서가 분실되어,
     북한반 장교 '김 종필' 중위 등이 며칠간 조사를 받았고,
                           '김'상사도 혐의를 받아, 구속된 것이다.

         다행히도, 이 기밀 서류를 훔쳐 남로당에 넘겨 준
         정보국내 프락치 사병이 검거되어 '김 상사는 풀려났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육본 각과의 선임하사관들은 회합을 갖고 '김'상사가 고문을 당한
사실을 문제 삼아야 한다고 결의, '金 昌龍'을 고소하라고 부추겼다.

                          괄괄한 성미의 '김'상사는 결심을 굳히고,
                상황실장 '박 정희'문관을 찾아가 의논했다.

사정을 조용히 듣던 '박 정희'는 딱 2 마디 말을 했다.
      "야, 이 사람아, 자네는 弱者(약자)야! 아무 소리도 말게!"

'김'상사는  핵심을 찌른 이 말에 기가 죽어 결심을 포기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 ,,, ,,.

       얼마 뒤, '백 선엽'정보국장은 제5사단장으로 전출하고,
          '이 용문'대령이 보직되어 와서, '박 정희'와 처음 접하는
                  인생의 중요한 인연과 영향을 주게 되는데,

'이 용문'대령도 옹진지구전투사령부로 얼마 뒤 전출되면서
함께 데리고 가려 했는데 출발 직전에 원인 모르게 취소당하고,

'이 용문'대령 후임으로 온 '장 도영'대령이
                   '박 정희'와 함게 근무케 되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 ,,, ,,, ,,.

공교롭게도 '박 정희'는 6.25 발발 전 고향의 부모님 장례식에
      참석하고 있었는데, 유사시 구미경찰서로 관보를 치라는
              비상 연락을 예비로 알리고 떠났었었으며,

     6.25가 터지자, '장 도영' 정보국장은,
          " '박 정희'를 빨리 불러 올리라!" 고 했다.
전보도 치고, 경찰의 경비전화망을 통하여, 선산에 내려 간
  '박 정희'에게 연락한 '차 호성'은 이렇게 말한다.

" ,,, ,,. 한강 남안에 도착하니, 저쪽에 누군가가 우두커니 앉아
있어요. 가까이 가 보니, "'차'형! 접니다!" 하고, 불러요.

'박 정희'였읍니다. 남루한 작업복에 모자를 쓰고 있었어요.
       그의 이야기인즉, 연락을 받고 어젯밤에 서울로 올라와
           육본으로 갔더니, 비어 있고, 나오려니 다리가 끊겨,
             겨우 나룻배를 타고 건넜다는 거예요.

우리 3 사람은, 그때부터, 경기도 시흥 보병학교를 향해,
                    걷기 시작했어요. ,,, ,,."
             ,,, ,,, ,,.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 ,,, ,,.

'장 도영'은 그의 회고담 ≪신동아≫ 1974년 7월호 에서,

"6.30일 오전, 경기도 수원 국민학교에 임시로 설치된 육본정보국으로
       나갔더니, '박 정희' 문관과 장병들이 무사히 와 있었다.

28일 새벽에 서울에 적이 침입한 상황으로 봐서, '박'문관은
         그가 원하였다면 다르게 행동할 수도 있지 않았겠는가?!

            '확실한 근거도 없이, 부하를 의심하는 게 아니다!'
라고 생각했다.

   난, 그때부터, 그에 대한 사상적 의심을 버렸다."   고 했다.
                             ,,, ,,, ,,, ,,, ,,.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 ,,, ,,, ,,.

  1952년 5월  25일 '부산 정치 파동' 때, 육본 작전참모
'이 용문'대령은 '신 태영'국방장관으로부터 전화 받기를;

" 병력을 부산으로 보내, '원 용덕' 헌병총사령관을 도와 주라!"

고 지시하는 전화를 받고 단호하게 말하더라고 한다.

   "제가 작전참모로 있는 한은 정대로 파병은 못 합니다.
       전쟁 중인데 병력을 후방 부산으로 빼내 정치권력적 목적으로
               사용하는 것도 利敵 行爲(이적 행위) 입니다!"

그리고는 전화기를 '꽝!' 내려 놓더라고, 당시 한 부하였던,
   편제과장 '이 근양{제12사단장.육군 제3사관학교 제2대 교장,
                     소장 예편, 석공 사장 역임}' 중령은 말했다.

    대구의 육본은 야당 제압에 쓰여질 것이 확실한 병력 차출
            명령을 거부했다.   이것도 '이 종찬' 총장의 의지였다.
                                  ,,, ,,, ,,, ,,.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1952.5.25일 정부는 부산,경남 일원, 전.남북 일원에;
부분 계엄.비상 계엄을 발하고, 계엄군 사령관에는
         '원 용덕'소장을 임명했는데, 그 이유로 삼은 것은;

1.부산 '금정산'에 공비가 출몰, 미군 1명과 군속 2명을 살해한 사건.

2.민주당 국회의원 '서 민호'가 육군 대위를 술집에서 언쟁타가
        불법 소지한 권총으로 사살한 초미의 불법적 권력 남용 사건.

3.경상남도 거창군 신원면에서 발생하는 지리산 공비 출몰로 인한
                                             후방 치안 교란 사건.

                                               등이었는데;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서 민호' 민주당 국회 의원은, 내종에, 부산 '금정산' 공비사건을

" '金 昌龍' 특무부대장에 의해, 사건이 날조된 것" 이라고 증언했었다.

   重罪囚(중죄수)들을 불러내어, 공비로 위장시키고 사살했다는 주장!


  이에 反하여, 당시 내무부장관 '이 범석'은 회고록에서 이르기를;

" '재야 세력'의 중진이 미국 대사관에 가서, '금정산'사건은 정부가
  계엄령을 선포키 위해 조작한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오늘에도 그들을 인간으로 대접하지 않고 있다."
                                                          고 썼다.

      한 사건을 두고서도 보는 눈은 이렇게도 다르고,
                  지금에 와선 그 진위를 가릴 수도 없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 ,,, ,,.

                    당시 육본 정보국장 '김 종면' 대령은 또,

"나도 학병 출신이다. 親日派라고 불려도 마땅한 사람이다.
           그러나, '金 昌龍' 등, 독립투사들을 때려 잡는 것을
   직업으로 삼은 자들이 軍部의 공안 기관을 장악하고,
       '이 승만'의 私兵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은 문제라고 생각했다.

  고등계 경찰.헌병 출신 등, 이들 일제 주구들을
              재교육시키자는 건의를 '이 종찬' 총장에게 올려
        허락을 받았으나, 국방부와 청와대에서 제동이 걸렸다.

軍部가, 정치권력에 개입하기 시작한 것은, 1961.5.16 부터가 아니라,
               이미 벌써 '부산 정치 파동' 때부터 였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 ,,, ,,.

                       훨씬 훗날;
'부산 정치 파동' 당시 병력을 지원하지 아니하면서,
   인기성 조치에 만점을 얻으면서, '軍部의 精神的 대부(代父)'
      라는 칭호 까지를 들었었던 육군총장 '이 종찬'은,

                    '박 정희'등으로부터;

   " 그것은 전혀 잘 못된 차사였었으며, 마땅히,
'원 용덕'헌병총사령관에게 계엄군 파견 증원 병력을
보냈었어야 했었다!' 라는 반박성 말을 들음으로서,

       역사는 '이 승만'이의 당시 조치를 두둔했던 것이며,
'이 종찬'은 이런 반박에 대처하는 답변에 몹씨 궁했다고 한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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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용 근거
       책자명 : 젊은 巨人의 초상('이 용문'장군 평전)
       저자명 : '조 갑제' 지음
       발행처 : 사단 법인 '샘터'
       출판일 : 1988년 6월 25일
       가격 :   \ 3,000 원
================================


★디음은, 제9-5화
'이 한림'중장 : 1961.5.16 발발 당시, 제1야전군 군사령관으로
          혁명에 반대! '박 정희'와는 만주군관학교 예과
              동기.동창이자 일본육사본과 3학년에 동시에
                 편입.졸업했었으며 ,,. 총총, 끝.


제목 :무명초 항구
가수 : 백 난아
앨범 : (1996) 유성기로 듣던 불멸의 명가수 20 - 백난아,미스코리아,옥잠화
김 영일 작사/이 재호 작.편곡/백 난아 노래/1943년 3월 태평레코드
가사 : '권 두영' 님 제공

산호등이 졸고 있는 사이공 부두 갈매기 날개속에 카누야 가자
물길에 헝크러진 열대의 꽃잎 아득한 밀림길에 모닥불 곱다




부두마다 물길마다 무명초 꽃잎 다홍빛 안개속에 카누야 가자
은근히 들려오는 검둥이 노래 멀고 먼 밀림길에 북소리 곱다

추천 :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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